배려함으로써 관계 맺기(3)
(릭 워렌 목사)
(빌 2:4 새 번역)
“또한 여러분은 자기 일만 돌보지 말고, 서로 다른 사람들의 일도 돌보아 주십시오.”
사람들과 관계를 맺기 위한
두 번째 원칙은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돌아보는 것이다.
즉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싶다면 자신의 필요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필요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관계 맺기의 출발점이다.
오래된 중국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이해 받기를 구하기 전에 이해하려고 애쓰라.”
성경은 빌립보서 2장 4절에서 이렇게 말한다. “자기 일만 돌보지 말고, 서로 다른 사람들의 일도 돌보아 주십시오.”(새번역) 이는 매우 반문화적인 구절이다. 우리 문화는 모든 부분에서 - 태어나는 순간부터 - ‘나 먼저’를 생각하도록 훈련시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우리 모두는 자신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다른 사람의 필요에 대해 생각하지 않아 스스로 고립된다.
그러나 내가 ‘목적이 이끄는 삶’에서 썼듯이 “그것은 당신에 관한 것이 아니다!”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게 아닌 것처럼 당신을 중심으로 돌아가지도 않는다. 당신은 하나님의 눈에 매우 특별한 존재이며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창조된 사람이지만, 그렇다고 세상이 당신을 중심으로 돌아가지는 않는다. 또한 우리는 자신의 필요가 충족되길 원한다면 먼저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왜 그래야 하는가? 하나님은 당신이 이타적으로 되는 법을 배우길 바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당신이 사랑하는 법과 하나님처럼 후히 주는 법을 배우길 원하신다. 골로새서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골 3:13)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돌아보는 것에는 다른 사람에 대한 불만을 용납하는 것도 포함된다. 한번은 ‘디어 애비’(Dear Abby: 미국 칼럼리스트 Abigail Van Buren이 독자의 질문에 답하는 미국 신문의 인생 상담란)에 한 이혼한 여성이 편지를 보내왔다. “저는 44세인데요, 나쁜 습관이 없는 제 또래의 남성을 만나고 싶어요.” 편지를 받은 애비는 이렇게 답변했다. “저도 그래요.” 나쁜 습관이나 결점이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따라서 우리는 서로 상대방의 결점을 용납해야 한다. 잠언 17장 9절은 “허물을 덮어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라고 말한다. 영어 성경에서는 이를 “사랑은 허물을 잊는다”라고 표현한다. 즉 위대한 친구는 잘 잊는 사람이다. 용납은 다른 사람의 결점이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잊어버리기로’ 선택하는 것이다. 그들은 나쁜 것을 의도적으로 잊는다. 되풀이해서 상기하는 것이 아니라 지워서 없애는 것이다.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용납에 인색한 저의 모습을 보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은 허물을 덮는다는 잠언의 말씀을 믿음으로 작정합니다. 믿음이 삶으로 드러나게 늘 함께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아래를 클릭하시면 소망교회 베다니찬양대의 은혜로운 찬양(사랑의 주님)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http://www.somang.net/infobada/player/player01.asp?idx=45243:46163&idxc=C0000000015&langType=K http://cfile234.uf.daum.net/attach/1849F2274BDFD7094CA012
또한 우리는 자신의 필요가 충족되길 원한다면 먼저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왜 그래야 하는가? 하나님은 당신이 이타적으로 되는 법을 배우길 바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당신이 사랑하는 법과 하나님처럼 후히 주는 법을 배우길 원하신다.
골로새서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골 3:13)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돌아보는 것에는 다른 사람에 대한 불만을 용납하는 것도 포함된다.
한번은 ‘디어 애비’(Dear Abby: 미국 칼럼리스트 Abigail Van Buren이 독자의 질문에 답하는 미국 신문의 인생 상담란)에 한 이혼한 여성이 편지를 보내왔다. “저는 44세인데요, 나쁜 습관이 없는 제 또래의 남성을 만나고 싶어요.”
편지를 받은 애비는 이렇게 답변했다.
“저도 그래요.” 나쁜 습관이나 결점이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따라서 우리는 서로 상대방의 결점을 용납해야 한다.
잠언 17장 9절은 “허물을 덮어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라고 말한다. 영어 성경에서는 이를 “사랑은 허물을 잊는다”라고 표현한다. 즉 위대한 친구는 잘 잊는 사람이다.
용납은 다른 사람의 결점이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잊어버리기로’ 선택하는 것이다.
그들은 나쁜 것을 의도적으로 잊는다.
되풀이해서 상기하는 것이 아니라 지워서 없애는 것이다.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용납에 인색한 저의 모습을 보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은 허물을 덮는다는 잠언의 말씀을 믿음으로 작정합니다. 믿음이 삶으로 드러나게 늘 함께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아래를 클릭하시면 소망교회 베다니찬양대의 은혜로운 찬양(사랑의 주님)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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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다가가면서 관계 맺기(2)
(딤후 1:7)“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사람들과 관계 맺는
첫 번째 원칙은 바로 ‘용기를 내서 먼저 다가가라!’라는 것이다.누군가가 당신과 관계를 맺기를 기다리지 마라. 당신이 먼저 나서서 관계를 맺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종종 용기가 필요하다. 왜 그런가? 두려움과 염려에 휩싸여 있으면 서로에게 다가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는 서로에게서 멀찌감치 떨어져있다. 거절당하고 속고 상처받고 이용 당할까 봐 두려운 것이다.이러한 두려움은 인류 역사와 함께 해왔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뒤 하나님이 아담을 찾으시자 아담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창 3:10) 우리는 진정한 자아를 숨기고 자기가 진짜 어떤 사람인지 사람들이 알지 못하게 한다. 왜 그럴까? 그것은 “만약 내가 누구인지 얘기했을 때 그가 날 싫어한다면 그 사람과의 관계는 끝이야”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가면을 쓰고 자신을 숨긴다.두려움은 관계에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악영향을 끼친다.
두려움은 우리를 방어적으로 만든다.
자신을 드러내기를 두려워한다. 사람들이 약점을 지적하면 우리는 보복하고 자기자신을 방어한다.
두려움은 사람들과 멀어지게 한다.
사람들이 자신에게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한다. 우리는 도망쳐서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싶어한다. 마음을 열고 솔직해지고 싶어하지 않는다.
두려움은 요구하는 사람이 되게 한다.
불안해질수록 우리는 더 통제하거나 더 지배하려고 한다. 관계에서 자신이 모든 것을 결정하려고 한다. 그것은 늘 두려움과 불안의 징후다.
그럼 누군가와 관계를 맺기 위해 첫 발자국을 떼는 용기는 어디에서 얻을 수 있을까?
그것은 우리의 삶 속에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부터 얻을 수 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딤후 1:7)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한 것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관계에서 더 용기를 낸다. 사람들을 사랑한다.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을 즐거워한다. 자신의 삶에 하나님의 영이 계시므로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성경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며”(요일 4:16), “사랑은 두려움을 내쫓는다”(요일 4:18)라고 말한다.
삶에 하나님의 영이 계실수록
두려움은 더욱 사라질 것이다.
따라서 누군가와 관계 맺는 시작점은 이렇게 기도하는 것이다.
“하나님, 제게 첫 발자국을 뗄 수 있는 용기를 주옵소서.”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누구인가와 관계를 맺기 위한 첫 발자국을 떼는 용기를 어디서 얻을 수 있는지를 보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며 사랑은 두려움을 내쫓는 것을 믿음으로 보다 많은 사람의 관계를 주님의 사랑으로 맺을 수 있게 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아래를 클릭하시면 소망교회 베다니찬양대의 은혜로운 찬양(거룩하시다)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http://www.somang.net/infobada/player/player01.asp?idx=45143:46061&idxc=C0000000015&langTyp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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