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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나와 당신을 위하여 베푸신 사랑을 쉼 없이 감사하며 올 바른 믿음과 삶을 통하여 이 기쁜 소식을 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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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변화 댓글[0]
오늘의 명상 (2009-05-11 오후 12:02:27) http://blog.somang.net/mochung/4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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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변화

 


( 19: 26)

주인이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릇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예수님께서는 종종 비유를 통해 천국의 비밀스러운 일들을 선포하셨습니다.

본문의 ‘므나 비유’는 마태복음 25장의 ‘달란트 비유’와 비슷한 내용을 다루지만, 마태복음과 달리, 당시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그릇된 천국관과 메시야관을 지적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오늘 비유에는 두 대상이 나옵니다.

한 대상은 ‘귀인’으로 소개되는 주인이고 다른 대상은 ‘종’입니다.

그리고 ‘종’은 다시 ‘착한 종’‘악한 종’으로 나뉩니다.

 

그런데 ‘귀인’에게는 굉장한 사건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것은 귀인이 한 집의 주인에서 한 나라의 왕이 되는 것입니다.

한 집의 주인과 한 나라의 왕은 분명히 다른 신분입니다. 그래서 왕은 그 신분에 따른 시비가 끊이지 않습니다. 본문의 귀인에게도 왕이 되기 전, 자격에 대한 시비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귀인은 왕이 되기 위해 먼 길을 떠나며 종들에게 특별한 과제를 줍니다. 열 명의 종에게 동일하게 은 열 므나를 나누어주고 “내가 돌아오기까지 장사하라(13)”는 것이었습니다.

 

시간이 흐른 뒤 왕이 되어 돌아온 주인은, 맡긴 돈과 일에 대한 셈을 하게 됩니다.

이때 착한 종으로 불리는 두 명은 자신이 가진 것으로 최선을 다해 많은 이윤을 남겼습니다.

반면 악한 종으로 불리는 세 번째의 종은 자신이 받은 것을 수건에 싸두었다가 고스란히 주인에게 돌려줍니다.


왕이 된 ‘주인’과 칭찬받는 ‘착한 종’ 사이에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변화’입니다. 종들에게 과제를 주고 먼 길을 떠났던 주인은 한 나라의 왕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착한 종들은 주인이 내준 과제를 잘 이행하여 이윤을 남겼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고을을 다스리는 자로 신분도 변하게 됩니다. 그러나 ‘악한 종’에게는 전혀 변화가 없었습니다.


종들의 신분은 모시는 주인의 신분에 따라 달라집니다.

종들은 이제, 한 집의 주인이 아니라 한 나라의 왕을 섬기는 엄청난 신분을 얻게 된 자들입니다. 하지만 한 므나를 숨겨둔 종은 아직 한 집의 주인을 모시는 종의 생각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악한 종이라는 책망을 받게 된 것입니다.

 

신분이 바뀌었다고 해도

의식이나 태도가 바뀌지 않는다면

그것은 진정한 변화라고 할 수 없습니다.

우리 기독교인은 왕을 모시는 자들로 신분이 바뀐 자들입니다.

그러나 신분이 바뀌었지만 태도, 생각, 사고, 행동이 바뀌지 않았다,

우리도 주인에게 꾸중들은 ‘악한 종’ 같은 자가 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의 행동을 멈추고

과연 변화된 신분에 맞는 생각, 사고, 태도를 하고 있는가 뒤돌아봅시다.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하찮은 종의 신분이었던 저와 저의 가족들을 왕의 자녀로 삼아주신 은혜에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이제 저희들 모두가 하나님나라의 자녀다운 신분과 생각을 가지고 행동하는 신앙인으로 조금도 부족함이 없이 살아가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아래 url click 하시면 베다니찬양대의 은혜로운 찬양(주 찬양하라)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http://www.somang.net/infobada/player/player01.asp?idx=12909:13309&idxc=C0000000015&langTyp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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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하지 말라 댓글[0]
오늘의 명상 (2009-05-09 오후 1:06:33) http://blog.somang.net/mochung/4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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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하지 말라

 

(40:25)

거룩하신 이가 이르시되, 그런즉 너희가 나를 누구에게 비교하여 나를 그와 동등하게 하겠느냐 하시니라.

 

우리 사회의 병리현상 중 하나가 ‘비교하는 것’입니다.

세상이 온통 비교하는 풍토로 둘러싸여있습니다. 비교는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는 악한 기능이 되고 말았습니다. 학력사회라는 것은 시대의 흐름으로 수용할 수밖에 없지만, 수능 성적으로 인생이 결정되고, 명문학교 졸업장이 탄탄대로를 보장해주는 사회구조에서 영혼은 질식해가고 있습니다.

 

몇 점 받았나요? 몇 평 아파트에 사는가요? 자동차 종류가 무엇인가요? 연봉은 얼마 받아요? 비교급 질문으로 억장이 무너지고 슬픔과 분노를 가슴에 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가인이 동생 아벨을 살해하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요?

비교하는 마음이 동생에 대한 분노로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사촌이 땅을 사면 왜 배가 아파집니까? ‘내가 못 가지는 것을 네가 가지는 꼴, 보지 못하겠다’는 놀부 심보가 있어서입니다.

이 마음 역시 비교하는 습성이 만드는 부정적 현상이라 하겠습니다.

 

비교하는 것의 문제는

보이는 것, 손에 쥐는 것에 더 가치를 둔다는 데 있습니다.

사랑, 정직, 진실, 신뢰, 신실, 보람 등은

보이지는 않지만 더욱 소중한 가치들은 지니고 있습니다.

 

이 비교하는 세상적인 풍토에서 하나님의 사람들로 살아가는 유일한 축복은 하나님께서 귀중히 여기시는 것을 더욱 귀하게 여기고 가꾸어가며 행복할 수 있는 삶입니다.

 

비교의 유혹에서 자유 하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경은 무엇을 말씀하실까요?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을 우상과 비교하지 말라고 합니다(25).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창조와 전능을 선포함으로 하나님만이 신()이심을 선언합니다(26).

 

이사야의 예언은 죽은 우상을 신으로 섬기는 이스라엘 백성의 잘못을 질타하며,

그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회복하기를 촉구합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은 어쩌다가 우상숭배에 빠지게 되었을까요?

그들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보이는 우상을 더 능력 있게 보았고,

우상에게 빌 때 현실적인 만족이 더 많이 있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들은 하나님과 우상을 비교함으로써 심판 받아 이방민족에게 고난을 겪게 된 것입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은 비교의 대상이 아니, 믿음의 대상임을 선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비교하지 말라’고 요구하십니다.

 

여기에 살 길이 있습니다. 언제나,

비교의 유혹에서 자유 하며 천국백성으로서

이 땅에서의 삶이 주님의 은혜로 풍성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의 주님, 비교하거나 비교당함으로 겪는 고통에서 언제나 자유 할 수 있도록 인도해주시옵소서. 저와 저의 가족들이 주님의 진리 안에서 구별된 행복을 누리며 살게 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아래 url click 하시면 베다니찬양대의 어린이 날 주일의 은혜로운 찬양(날 사랑하심)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http://www.somang.net/infobada/player/player01.asp?idx=12101:12501&idxc=C0000000015&langTyp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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