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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나와 당신을 위하여 베푸신 사랑을 쉼 없이 감사하며 올 바른 믿음과 삶을 통하여 이 기쁜 소식을 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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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눈을 떠라 댓글[0]
오늘의 명상 (2009-06-06 오후 12:02:02) http://blog.somang.net/mochung/5087

                                       (화면을 크릭하시면 똑똑한 화면을 보십니다)
 

신앙의 눈을 떠라

 

( 3: 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라오디게아’라는 말의 뜻은 ‘민중의 비위를 맞추다’입니다.

‘민중의 의와 판단, 혹은 민중의 즐거움’이라는 이름을 가진 라오디게아교회는 그야말로 그 이름에 걸맞게 하나님 대신 인간들이 주인이 된 교회였습니다.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이나 사명에 무관심한 교회입니다.

요한계시록의 일곱 교회 중 라오디게아 처럼 부요하고 평안한 교회는 없었습니다.

외적인 박해나 내적인 이단의 공격도 없었습니다. 교회는 물질적으로도 부요 했으며 문화적으로도 풍성한 환경을 소유했습니다. 그러나 그 풍요롭고 넉넉한 환경과 조건 때문에, 라오디게아 교인들은 그만 그리스도를 망각해버린 것입니다.

이러한 라오디게아교회를 향해 주님은 영적 분별력을 소유하도록 힘써야 할 것을 권하셨습니다.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보게 하라(3:18)하셨습니다. 신앙의 눈을 뜨라는 말씀입니다. 영적인 세계를 바라볼 수 있는 성령의 시력, 판단력을 가지라는 말씀입니다.

 

물질과 문화 그리고 인간의 지혜만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안목을 고치라는 말씀입니다. 영적인 안약은 바로 ‘회개와 믿음’뿐입니다. 그 회개와 믿음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의 차원으로 받아들이는 데에서 시작됩니다.

 

웅장한 건물, 부유한 성도들이 교회의 재산과 생명은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권세와 은혜를 떠난 교회란, 눈멀고 병들어 굶주려 죽어가는 걸인의 처지와 다를 바 없음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증인으로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의 분신으로서의 사명을 다해야 합니다. 그러나 라오디게아교회는 오직 자신들의 물질적 번영과 평화에만 열심이었고, 교회의 선교적 사명에는 무관심했습니다. 교회가 선교의 사명에 무관심해지면 주님께서는 불로 연단을 하십니다.

라오디게아교회에 주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어보십시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20).” 주님께서는 영적인 눈이 멀어버린 우리들을 찾아오셔서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왜 두드리십니까?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두드리십니다. 용기를 주시기 위해서 두드리십니다.

 

주님께서는 영적인 눈이 멀어버린

우리들을 찾아오셔서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차지도 않고 덥지도 않고, 미지근한 우리에게,

신앙에 열심을 내라고 두드리십니다.

 

여기에 끝까지 참아주시는 예수님의 인내가 있습니다. 찾아와주시는 예수님의 사랑이 있습니다. 넘어진 나를 일으켜주시는 주님의 위로가 있습니다. 그 주님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마음의 문을 여시기 바랍니다.

문을 여는 자에게는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20)”고 하신 주님의 약속, 하나님나라에서 누리게 될 친밀한 교제의 약속이 있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저와 저의 가족들에게 영적 진리의 세계를 바라볼 수 있는 신앙의 눈과 판단력을 주옵소서. 마음의 문을 열고 문 밖에 서서 계시는 주님을 영접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아래 url click 하시면 베다니찬양대의 은혜로운 찬양(시원한 바람처럼)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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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정 중심의 신앙 댓글[0]
오늘의 명상 (2009-06-05 오전 11:07:41) http://blog.somang.net/mochung/5079

 

과정 중심의 신앙

 

( 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성경의 첫 구절은 역사의 시작을 알린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서간의 인사말을 제외하고 본다면 성경의 마지막 구절은 역사의 종말을 알린다. 성경은

 

역사가 하나님에 의하여 시작되고

예수의 재림에 의하여 끝난다는 것

그 중간 사로서의 역사에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역사가 중간사의 성격을 가진다는 것이 시사하는 점은 많다. 그 중에서도

 

첫째, 인간은 하나님께서 주재하시는 역사 한가운데 보내진 존재라는 것이다.

보냄을 받고 온 그는 따라서 역사에서 살아가는 동안 자신의 일이 아닌 보내신 분의 일을 하도록 되어 있다.

 

둘째, 인간의 보람은 사명 수행의 과정에 있다는 것이다.

처음과 끝은 그의 몫이 아니다. 오직 과정만이 그의 몫이요 과정에서만 보람을 찾게 되어 있는 것이다.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는 세상에 비극이 두 가지 있다고 말한다.

일이 아직 시작되지 않은 것일이 다 끝난 것비극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보람은 과정에 있다는 말일 터이다.

 

영국의 시인 알프레드 테니슨(Alfred Lord Tennyson)도 그런 뜻의 글을 남겼다.

“나는 이것을 진실이라 믿는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나는 하나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견딜 수 없이 슬프더라도/ 차라리 사랑을 시작하였다가 잃는 것이/ 사랑을 아예 시작하지 않은 것보다는 낫다고.

한국 교회의 순교자 주기철 목사는 바로 이 과정 중심의 신앙에 투철한 인물이었다.

그의 최후의 유언 설교로 기록되는 5종목의 나의 기원’에서 우리는 이러한 그의 신앙 형태의 단면을 보게 된다.

 

“단번에 받는 고난은 이길 수 있으나 오래 끄는 장기간의 고난은 참기 어렵습니다. 칼로 베고 불로 지지는 형벌이라도 한두 번에 죽어진다면 그래도 이길 수 있으나 한 달, 두 달, 1, 10년 계속되는 고난은 견디기 어렵습니다. … 나같이 연약한 약졸이 어떻게 장기간의 고난을 견디어 배기겠습니까? 다만 주님께 의지하는 것뿐입니다.

순교자 주기철, 그는 우리와 같은 연약한 인간이었다. 그러나 순교에 이르기까지 한 순간 한 순간 오직 주님께 의지하여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디뎠다. 장기간의 고난을 이기게 하소서, 기도한 그는 이렇게 믿음으로 시간의 과정을 초극(超克)하고 있었다.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인간은 하나님께서 주재하시는 역사 한가운데 보내진 존재이며 인간의 보람은 사명 수행의 과정에 있다는 것을 분명히 확인하게 하시오니 감사합니다. 저와 저의 가족들이 주님의 기쁘신 뜻을 따라 사는 동안 이 땅에서 삶의 보람과 천국의 기쁨을 누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아래 url click 하시면 베다니찬양대의 은혜로운 찬양(시원한 바람처럼)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http://www.somang.net/infobada/player/player01.asp?idx=16501:16901&idxc=C0000000015&langTyp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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