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소망교회 카페 블로그 메일 SMS 문자보내기
검색
예수님이 나와 당신을 위하여 베푸신 사랑을 쉼 없이 감사하며 올 바른 믿음과 삶을 통하여 이 기쁜 소식을 전합시다.
카테고리
전체보기 (852)
오늘의 명상 (511)
목적이 이끄는 삶 (41)
충만한 가정 만들기 시리즈 (48)
How To Be a Transformed Person (197)
올 바른 믿음과 삶 (55)
0
885
면류관을 소망하자! 댓글[0]
오늘의 명상 (2009-05-13 오후 12:19:05) http://blog.somang.net/mochung/4997

                                                      (화면을 크릭하시면 똑똑한 화면을 보십니다)
 

면류관을 소망하자!

 

(고전 9: 25)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1924년 파리 올림픽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영국의 100미터 대표선수는 에릭이었습니다. 영국뿐만 아니라 유럽 전체가 에릭에게 유럽 최초의 육상 100미터 금메달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경기 일정표에 100미터 경기가 주일에 거행되는 것으로 발표되자, 에릭은 조용하면서도 단호하게 출전포기를 알렸습니다.

 

“저는 주일에는 뛰지 않습니다.

에릭의 결정에 충격을 받은 영국인들은 그를 ‘조국의 명예를 버린 배신자, ‘편협하고 옹졸한 신앙인’이라고 신랄하게 비난했습니다. 하지만 에릭은 그가 그토록 소중히 여기던 주님의 날을 어겨가면서까지 메달을 따려는 것은 인간적인 생각과의 타협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에릭에게 또 다른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바로 그 올림픽에서 자기의 주종목과는 전혀 거리가 먼 400미터에 선수 부상으로 생긴 공백을 메우기 위해 출전하게 된 것입니다. 그날 에릭은 놀랍게도 47.6초의 세계신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땄습니다.

 

에릭이 선택한 일을 하나님께서 복 주신 것입니다.

이렇게 되자 에릭을 비난하던 영국 신문들은 그를 가장 훌륭한 영국인이라고 극찬하며 추켜올렸습니다. 놀랍게도 올림픽 다음 해인 1925, 에릭은 모든 명예와 기회를 버려두고 중국선교사로 조용히 영국을 떠납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올림픽과 유사한 고대 헬라의 4대 경기의 한 종목인 달리기를 예로 들어, 성도의 삶의 자세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선수들이 상을 받기 위해서는 많은 것을 절제하고 훈련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이처럼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기 위하여 자신들의 권리를 포기하고 절제와 훈련에 전념했다면, ‘썩지 않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는 우리는 더 말할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만일 우리가 영원한 상을 잃게 된다면

이 세상에서의 특권들이 무슨 이익이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모든 성도들은

이 영원한 가치관에 의지하여 자기의 삶을 조절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마지막에 상을 얻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절제해야 합니다.

더 높은 목적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그리고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해 자기의 권리를 절제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마지막에 승자가 되어야 합니다.

 

둘째, 사역 자체에 보람을 느끼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쓰임을 받는다는 것은 그 자체로 얼마나 영광스러운 특권입니까?

그 자체가 감격이고 보람입니다. 바울은 이 감격과 보람을 알기에 버림이 될까 두려워했습니다. 그는, 조금 힘들어도 마지막에 주 앞에 승자로 설 수 있기 위해, 자신의 모습을 본보기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거룩하신 주님, 저와 저의 가족들이 마지막에 있을 상을 위하여 철저한 신앙생활과 헌신으로 주님의 기쁘신 뜻대로 살아 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그 면류관을 소망하는 성도로서 부족함이 없도록 항상 일깨워 주시고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아래 url click 하시면 베다니찬양대의 은혜로운 찬양(주 찬양하라)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http://www.somang.net/infobada/player/player01.asp?idx=12909:13309&idxc=C0000000015&langType=K
 

이 포스트를...
표현하는 사랑 댓글[0]
오늘의 명상 (2009-05-12 오전 11:53:44) http://blog.somang.net/mochung/4992

                                                    (화면을 크릭하시면 똑똑한 화며을 보십니다)
 

표현하는 사랑

 

(고전 13: 3)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길거리에 나가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휴대폰을 들고 다닙니다. 특히 젊은 사람들은 휴대폰이 없으면 불안해할 만큼 휴대폰과 밀접한 생활을 합니다. 차 속에서도, 친구들과 대화할 때도, 밥을 먹을 때도 손에서 휴대폰이 떠나지 않습니다.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의사소통 즉 대화의 욕구를 채우려는 게 아니겠습니까?

누구에겐가 끊임없이 말하고 싶고 마음을 나누고 싶은데, 시간을 내어 들어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핵가족 속 형제자매가 적은 가정에서 자란 우리 자녀들은 늘 마음 통하는 대화에 갈급해 합니다. 그러니 부지런히 문자를 보내고 음성을 남기기도 하고 휴대폰으로 게임을 하며 무료한 시간들을 보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입니다.

우리를 향한 끝없는 사랑을 베풀어주십니다. 밤낮으로 날마다 불러도, 아무리 많은 말을 해도, 끝없이 소원을 아뢰어도, 귀찮다 하지 않으시고 다 응답해주십니다.

 

언제 어디서나 대화할 수 있는 휴대폰도 좋지만,

하나님과의 교제, 하나님과 대화가 원활하지 않으면 아무리 많은 사람과 대화해도 공허할 뿐입니다. 나를 사랑하는 진실한 친구는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말씀이 중요하고 기도가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서로 사랑하라’ 하며 사랑의 은사를 주셨습니다.

은사 중 가장 큰 은사는 사랑입니다.

종은 울려야 종인 것처럼,

사랑은 가슴에 품고만 있으면 안됩니다. 겉으로 나타내야 합니다.

 

부부 간에, 부모와 자녀 간에, 친구끼리도 사랑을 표현하지 않으면 오해가 생기고 서운한 감정만 남습니다.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고 만들어서 사랑을 나타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수도 없이 반복된 죄를 짓는 인간들을 끝없이 용서하시며 지극히 사랑하시다가 마침내 아들 예수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기도할 때마다 응답해주시고 복된 길로 인도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필요를 알고 채우시며 고통을 이길 힘을 주십니다.

병들어 고통 당해 부르짖을 때마다 불쌍히 여기시고 치료해주십니다. 죄 가운데 빠져 헤매는 백성들에게 말씀을 가르치시고 복음을 전파하십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 사랑을 받는 우리가

이웃의 아픔에 무관심하고 말로만 사랑한다면,

울리는 꽹과리에 불과하여 하나님을 슬프시게 만들 것입니다.

 

각양 은사가 없습니까?

그러나 은사 없는 사랑이 사랑 없는 은사보다 더 큰 일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받은 사랑으로 이웃을 돌보며, 마음에 있는 사랑을 말로 표현하고 몸으로 섬겨, 따뜻하고 행복한 가정과 사회를 만들어갑시다.

 

이 땅에 오셔서 몸으로 사랑을 보여주신 주님, 사랑이 식어간다고 한탄하기 전 저와 저의 가정이 먼저 사랑하는 사람 그리고 가정이 되게 도와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아래 url click 하시면 베다니찬양대의 은혜로운 찬양(주 찬양하라)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http://www.somang.net/infobada/player/player01.asp?idx=12909:13309&idxc=C0000000015&langType=K

 

 
 

이 포스트를...

처음페이지  이전페이지  206  207  208  209  210  다음페이지  마지막페이지

최근방문자
즐겨찾기
즐겨찾기가 없습니다.
최근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