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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나와 당신을 위하여 베푸신 사랑을 쉼 없이 감사하며 올 바른 믿음과 삶을 통하여 이 기쁜 소식을 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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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무지 댓글[0]
오늘의 명상 (2009-06-04 오후 12:54:42) http://blog.somang.net/mochung/5076

                                          (화면을 크릭하시면 똑똑한 화면을 보십니다)
 

영적 무지

 

( 29:16)

토기장이를 어찌 진흙같이 여기겠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어찌 자기를 지은 이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그가 나를 짓지 아니하였다 하겠으며, 빚음을 받은 물건이 자기를 빚은 이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그가 총명이 없다 하겠느냐.

 

때가 되면 모든 것은 반드시 바깥으로 드러납니다.

특히 거짓과 위선이 그러합니다. 그러나 진실은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세상이 악할수록 더욱 그러합니다. 그것은 진정성과 가식이 구분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차원도 마찬가지입니다.

진정성과 마찬가지로 영은 눈에 잘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도, 하나님의 사인을 받고도 잘 알지 못합니다.

영적 무지는 오늘날처럼 물질문명이 발달한 시대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문명의 수준이 지금보다 많이 낙후된 시대에도 영적 무지가 있었음은, 영적 긴장감을 해체하는 요소가 물질문명이 아님을 보여 줍니다.

이사야서는 우리에게 남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 목적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그것은 바로 영적 무지 때문이었습니다.

영적 무지가 무서운 것은, 그것이 모든 문제의 원인이며 그 파급력도 엄청나기 때문입니다.

영적 무지는 먼저 하나님의 사인과 음성을 듣지도 보지도 못하게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불신하고 거부하게 합니다.

 

결국 그들은 자신의 삶의 방향을 잃고 비틀거립니다.

이들은 눈에 보이는 것으로 하나님을 멀리합니다.

그들의 행동과 음성은 그래서 분명하게 구분됩니다.

 

문제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신앙심으로 영적 무지를 가장하고 있는 사람들이 문제입니다.

마치 예수님을 못 박으라고 한 사람들이 호산나를 외쳤던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믿으나 결국 거짓 신앙의 사람들입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위선된 언행’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외식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지금 주님 오심을 기다리는 대망의 계절을 살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간 우리가 돌아보아야 할 것은 내 영적 무지의 수준입니다.

안다고 했을 때 이미 그것은 교만의 늪으로 빠지는 것이 됩니다.

진정 우리가 기다려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오실 그분이 이미 우리의 믿음 안에 있음을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진정 기다리고 소망해야 할 것은

내가 영적으로 눈뜨는 것이며

눈뜸으로 이미 오신 그분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나를 구원하러 오신 구세주임을 보는 것입니다.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세상에는 저와 저의 가족들의 영적 감수성을 무디게 하는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것들에 현혹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영적 눈뜸을 위해 더욱 정진하게 도와 주시어서 다시 오실 주님을 저희들 믿음 안에서 볼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아래 url click 하시면 베다니찬양대의 은혜로운 찬양(시원한 바람처럼)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http://www.somang.net/infobada/player/player01.asp?idx=16501:16901&idxc=C0000000015&langTyp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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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어야 할 자리 댓글[0]
오늘의 명상 (2009-05-21 오후 12:21:52) http://blog.somang.net/mochung/5027

 

있어야 할 자리

 

( 8:16)

누구든지 등불을 켜서 그릇으로 덮거나 평상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는 들어가는 자들로 그 빛을 보게 하려 함이라.

 

해가 진 후 높은 산에 올라가 도시를 내려다보면,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선 불빛들이 참 아름다운 경관을 만들어 냅니다. 띄엄띄엄 세워진 길 가의 가로등은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되어 있다고 합니다.

 

만약 가로등이 한 곳에만 집중되어 있다면 그곳은 지나치게 밝겠지만, 상대적으로 다른 곳은 어두울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있어야 할 자리에서 자신의 역할을 해야 그 가치를 다할 수 있는 법입니다.

본문의 주제를 한 구절로 표현해 본다면, ‘등불은 등경 위에!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등불을 켜서 그릇으로 가리거나 평상 아래 두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켜진 등불의 역할은 주변을 밝게 비추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집안으로 들어가는 자들이 그 빛을 통해 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등불은 최대한 빛이 잘 비추일 수 있는 곳, 할 수 있는 한 밝은 빛을 낼 수 있는 곳에 두어야 합니다. 빛이 필요한 곳에 두어야 합니다. 그래야 등불로서의 가치를 드러낼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이 땅 위에
‘보냄을 받은 등불’입니다.

 

이 세상에서 빛의 역할을 감당하며 살아야 하는 자들입니다. 빛이 빛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꼭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등불을 켜서 등경 위에 두듯이 말입니다.

 

빛이 있어야 할 자리는 아직 어두움인 곳, 빛이 없는 곳입니다.

이 땅에 빛을 잃고 어둠이 자리한 곳은 어디입니까?

빛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가로등이 한 곳에 모여 있지 않고 띄엄띄엄 불빛이 필요한 곳을 밝히며 서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빛으로 보내진 우리들은 우리들끼리만의 향연을 즐겨서는 안 되겠습니다.

 

교회 안에서만, 또는 믿는 신자들끼리만 즐거운,

그런 빛이어서는 안 됩니다. 각기 흩어져서 어둠을 향해 빛을 비추어야 합니다.

나는 어디에 서 있습니까?

내가 선 곳은, 내 안락과 즐거움을 위한 자리가 아닌,

하나님의 빛을 필요로 하는 자리가 맞습니까?

 

매 순간 스스로에게 주어지는 이러한 질문 앞에 정직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꼭 있어야 할 자리에서

하늘로부터 보냄 받은 빛의 역할과 가치를 드러내는 삶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저가 선 자리를 돌아 보게 하시오니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빛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하는 저와 저의 가족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꼭 있어야 할 자리를 택할 줄 아는 지혜와 용기를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5/22~6/5까지 미국여행으로 새글이 없습니다)
 

아래 url click 하시면 베다니찬양대의 은혜로운 찬양(자연의 찬미)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http://www.somang.net/infobada/player/player01.asp?idx=14101:14501&idxc=C0000000015&langTyp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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