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십자가 밑에서
(막 15: 24)
십자가에 못박고 그 옷을 나눌새, 누가 어느 것을 가질까 하여 제비를 뽑더라.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았든지 한 사람이 죽는 순간에는 주위의 사람들이 경건해지고 조심하게 됩니다. 자신이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고, 자신이 죽게 되는 순간을 생각해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로마 군인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관심은 ‘온통 예수님의 옷가지를 누가 차지할 것이냐?’에 만 있었습니다. 결국 그들은 제비 뽑기를 해서 옷을 나누어가졌습니다.(막 15: 24)
다른 사람의 고통과 죽음에는 아무런 관심도 가지지 않았습니다.
오직 ‘이 물건을 내가 차지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제일 중요했습니다.
그 당시 로마의 군인들만 그랬겠습니까?
오늘날에도 다른 사람들이 죽어가는데도 제 손에 무엇인가 움켜쥐는 것에만 관심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런 사람들에게는 구원과 은혜가 없습니다. 악다구니 속에서 살아갈 뿐입니다. 로마 군인들이, 이 세상을 새롭게 창조하실 구세주이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시는 구원주이신 예수님의 십자가 밑에서, 무엇을 얻었습니까? 겨우 썩어질 천 조각일 뿐이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십자가 앞에 나와서 무엇을 얻기를 기대하고 있습니까?
교회에 나오고 신앙생활을 하기는 하는데 관심이 어디에 있습니까? 로마 군인들처럼 내 손에 움켜쥐어지는 것에만 관심이 있다면 그것 때문에 오히려 멸망하게 됩니다.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습니다.(약 1: 15)
선지자 엘리사가 활동하던 때 게하시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아만을 치유하시는 기적과 능력을 엘리사를 통하여 보여주셨습니다. 그 기적을 본 게하시의 마음은 딴 데 있었습니다. 그는 ‘어떻게 하면 내가 나아만으로부터 돈을 받아서 정원을 사고, 양과 염소를 사고, 하인과 하녀를 부릴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왕하 5: 26). 욕심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욕심의 대가는 나병이었습니다(왕하 5: 27).
기독교의 생명은
결국 썩어지고 말 옷 몇 조각을
움켜쥐고 확보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주님을 믿음으로
그 피로 내 죄가 씻음 받고 새롭게 되는 데 있습니다.
이것이 영생과 영원한 축복, 영원한 기쁨의 근원이 됩니다.
사랑의 주님, 저와 저의 가족들이 예수님을 믿으면서 욕심과 탐욕을 버리고, 오직 십자가 은혜와 능력을 구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아래 url을 click 하시면 베다니찬양대의 은혜로운 찬양(나는 주의 자녀라)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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