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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야 할 일들
(삼하 18: 22)
아히마아스가 다시 요압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아무쪼록 내가 또한 구스 사람의 뒤를 따라 달려가게 하소서 하니, 요압이 이르되, 내 아들아. 너는 왜 달려가려 하느냐? 이 소식으로 말미암아서는 너는 상을 받지 못하리라.
인생에 대해,
다윗은 목동을 따라야 하는 어린양으로,
예레미야는 토기장이에 의하여 빚어지는 진흙으로 비유하였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인간을 육상경기에 참가하는 선수로 비유합니다.
육상경기 주자에게는 원칙이 있습니다. 열심히 달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승리와 영광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사회를 살아가면서 애쓰고 힘쓰는 모든 내용을 살펴보면, 상대방보다 더 빨리, 더 높이, 더 멀리 나아가기 위한 몸부림입니다. 이것을 위하여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이 힘을 쏟고 있습니다. 때로는 자신의 몸과 마음을 상하면서도 경주에 열중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경주의 법칙을 따르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법칙으로 경주해야 하는 의무를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본문에는 두 사람의 경주자가 나타납니다. 한 사람은 에티오피아 사람이고 다른 사람은 아히마아스입니다. 본래는 에티오피아 사람이 압살롬의 죽음을 전해야 하는 책임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아히마아스는 승전소식을 전함으로써 더 높은 보상과 위치를 누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지름길을 택하여 에티오피아 전령보다 먼저 도착해서 소식을 전합니다. 그러나 그에게 돌아온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자식을 잃은 다윗의 슬픔 앞에서 도망치듯 나와야 했습니다.
사무엘하 본문은 우리에게 어떠한 경우라도 자신의 위치에게 바르게 경주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변칙이나 욕심을 앞세워 남을 앞서가는 경주를 해서는 안 됩니다. 아울러
우리는 1등 지상주의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내 이웃과 함께 달릴 수 있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함께 도우며
함께 하나님의 자녀 됨을 누리면서 달려야 합니다.
나아가 우리는 내 이웃의 뒤에 달릴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주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듯, 우리도 이웃의 뒤에서 섬기면서 달려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더 빨리, 더 높이, 더 멀리라는 이 세상의 법칙을 멀리하고 오직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으로 인생의 경주를 해야 합니다.
이럴 때 이 세상에서는 1등을 못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경주에 영광과 칭찬의 면류관을 씌워주실 것입니다.
사랑의 주님! 저와 저의 가족에게 주어진 믿음의 경주를 잘 할 수 있게 도와 주시옵소서. 욕심을 앞세우지 않고 주님의 방법대로 달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자신을 낮추어 섬기는 모습으로 달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아래 url을 click 하시면 베다니찬양대의 은혜로운 찬양(목마른 사슴)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http://www.somang.net/infobada/player/player01.asp?idx=27207:28208&idxc=C0000000015&langType=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