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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나와 당신을 위하여 베푸신 사랑을 쉼 없이 감사하며 올 바른 믿음과 삶을 통하여 이 기쁜 소식을 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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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는 ‘삶의 기술(예술)’ 댓글[0]
오늘의 명상 (2009-10-14 오전 11:27:03) http://blog.somang.net/mochung/5405

 

지혜는 ‘삶의 기술(예술)

 

(왕상 10: 8)
복되도다, 당신의 사람들이여. 복되도다, 당신의 이 신하들이여. 항상 당신 앞에 서서 당신의 지혜를 들음이로다.


지혜는 무엇인가를 많이 알고 있다는 말인 지식과 혼동해서 잘 쓰이곤 하지만, 분명히 다른 말입니다. 지혜를 ‘삶의 기술(예술)’이라고 부르는 것이 적합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학교 공부를 조금 덜한 사람도 살아가는 기술을 갖추고 있다면 즉 하나의 예술작품을 만들듯 자신의 삶을 가꾸어간다면, 지혜로운 사람이라 하겠습니다.

 

옛날에는 불을 피우는 것이나 짐승을 잡는 법과 같은 것이 지혜에 속하는 일이었지만, 현대에는 환경오염을 줄이는 일이나 암과 에이즈로부터 목숨을 지키는 일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려서 살아가는 감성지수가 높은 사람이 되는 일 등이 지혜에 속한다고 하겠습니다.

본문에는 남부 아라비아의 강국 스바여왕이 솔로몬을 방문하고, 엄청난 예물을 바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스바는 인도와 아프리카 그리고 베니게까지 국제무역을 하던 나라로, 황금과 보석 그리고 향료가 주된 상품이었습니다.

 

예수님도 언급하신 적이 있는데( 12: 42), 스바 여왕은 무엇 때문에 솔로몬을 찾았고 또 그 많은 예물을 바쳤을까요? 그것은 솔로몬에게서 지혜를 배우려고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스바 여왕이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들을 솔로몬에게 던졌으나(1), 솔로몬이 대답하지 못하는 말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솔로몬의 궁궐과 성전을 보고 그의 지혜로움에 정신이 나갈 정도였습니다(35). 그러니까 스바 여왕은 솔로몬에게 지혜를 배웠고, 그 값으로 예물을 바쳤던 것입니다.

바른 교육, 혹은 참교육을 외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만큼 바르지 않은 교육이, 거짓 교육이 판을 치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많은 지식과 정보를 제공하는 것만이 교육이 아님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지혜가 없는 지식순진하고 약한 사람들을 힘들게 할 수도 있습니다.

 

참교육이란 올바른 삶의 기술(예술)로 자기자신의 삶을 창조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사람을 만드는 일이어야 할 것입니다.

 

자신이 가진 재능과 누리고 있는 모든 복을,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하고 헌신하는 데에 사용하는 것이야말로,

참된 청지기정신이라고 하겠습니다.

 

어쩌면, 솔로몬의 가장 큰 슬픔은,

그가 받은 지혜를 돈으로 팔았다는 데서 시작되었는지도 모릅니다( 23: 23).

 

지혜의 원천이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 저와 저의 가족들이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가 되라고 부르셨다는 것을 항상 생각나게 하셔서, 그런 지혜로운 삶을 살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아래를 클릭하시면 소망교회 베다니찬양대의 은혜로운 찬양(사슴이 시냇물을 찾듯이)를 들으실 수 있습니다.

http://www.somang.net/infobada/player/player01.asp?idx=31101:31901&idxc=C0000000015&langTyp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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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을 부인하지 않게 하소서 댓글[0]
오늘의 명상 (2009-10-13 오전 11:10:27) http://blog.somang.net/mochung/5403

 

주님을 부인하지 않게 하소서

 

( 14: 68)
베드로가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네가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겠노라.


로마를 여행하는 순례자는 사도 베드로를 기념하는 2개의 성당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바티칸의 중심에 자리잡은 성 베드로성당이고, 다른 하나는 지하교회 카타콤베로 가는 길 옆에 초라하게 서있는 쿼바디스성당입니다.

 

바티칸의 성 베드로성당은 세계 최대의 규모이지만, 쿼바디스성당은 매우 작은 성당입니다. 이 두 성당을 떠올리면서 뭔가 생각나는 것이 없습니까? 큰 성당은 베드로가 벳새다 광야에서 했던 저 위대한 신앙고백,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16: 16)”를 기념하고 있고,

 

초라하게 서있는 작은 쿼바디스성당은 오늘 본문에 나오는 또 다른 베드로의 고백 “베드로가 저주하며 맹세하되, 나는 너희가 말하는 이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71)”를 기념하고 있다고 말입니다.


똑같은 한 사람에게서 이렇게 전혀 다른 말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어느 베드로가 진짜 베드로일까요? 안타까운 일이지만, 두 모습 모두 베드로의 참 모습입니다.

 

한 입으로 주님을 시인하기도 하고

부인하며 저주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누구도 자신의 신앙을

장담해서는 안 되는지도 모릅니다.


제가 존경하는 한 노()신학자는 입버릇처럼 말하곤 하셨습니다. 죽는 순간까지 주님을 부인하지 않도록 기도한다.” 아무리 구원의 확신을 심어주려는 좋은 뜻에서라고 해도, 구원 여부를 놓고 손을 들어 호언장담하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칫 쿼바디스성당의 베드로가 될지도 모르니 말입니다.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세 학생과 함께 길을 가던 랍비가 물었습니다. 만약에 길에서 큼직한 돈 보따리를 주웠다고 하자. 그걸 어떻게 하겠느냐?

 

그때, 한 학생은 누가 보는지 안 보는지 살피다가 보는 사람이 없으면 자신이 가지겠다고 했습니다. 랍비는 너는 도둑놈이나 다를 바 없다고 했습니다.

 

다른 학생은 자신은 무조건 경찰서에 가서 주인을 찾아주라고 하겠다고 대답했습니다. 랍비는, 너는 아직 장담하기에 이르다고 했습니다.

 

마지막 학생은 자신이 그 돈 보따리를 어떻게 할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고 하면서, 그 돈 보따리를 경찰서로 가지고 가서 주인에게 찾아주라고 말하게 해달라고 기도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때 랍비는 대답했습니다. “너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저는 너무도 연약하고 어리석은 인생살이에서 온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저를 죄와 죽음에서 살려주신 구원의 확신은 죽는 순간까지도 부인하지 않는 하나님의 자녀의 삶을 살아 가도록 도와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아래를 클릭하시면 소망교회 베다니찬양대의 은혜로운 찬양(사슴이 시냇물을 찾듯이)를 들으실 수 있습니다.

http://www.somang.net/infobada/player/player01.asp?idx=31101:31901&idxc=C0000000015&langTyp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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