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에게 배우는 “목회철학”
목회를 처음 시작할 때 ‘부흥’이라는 말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부흥이란 말에 대한 막연한 나의 생각은 열심히 전도하고, 심방하고, 기도의 능력을 경험하고, 설교 잘 하여서 교인들이 많아지는 것, 그리고 힘을 합하여 성전을 아름답게 지어 봉헌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목회의 성공이요, 주님께서 목회자에게 주시는 은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알면 알수록 나의 생각이 틀렸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부흥’은 회개로부터 시작되는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이요, 성전은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는 주님의 몸이요, 하나님은 분명한 목적을 가지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가족으로 부르신 것이었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고, 하나님의 자녀들은 서로가 형제, 자매가 되어 함께 사랑의 관계성을 이루며 하나님의 성전을 지어가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 놀라운 사실 앞에서 저는 교회에 대한 목회철학을 새롭게 설정하게 되었습니다.
가족에게 있어서 집이나 돈, 건강, 생활력 등 여러 가지들이 필요하겠지만
교회는 주님의 몸이요,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제도나 건물보다 사람이 중요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의 관계성입니다.
그 관계성을 경험하기 위해서 구조를 나눔 중심의 목장모임으로 바꾸었고, 목장 안에서 사랑의 관계성들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한 가지 예로 어리석은 자랑 같지만 금주에 경험한 사랑의 관계성을 소개합니다.
바울은 비록 언변에는 부족하였으나 영적 진리에 탁월한 사명자로서의 자세는 언제나 불변했습니다.
첫째, 섬기는 지도력이었습니다.
지체를 높이려고 자신을 낮추는 사람이었습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긴 예수님처럼 철저하게 섬기는 자세로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둘째, 돈에 욕심내지 않았습니다.
비용이 부족했지만 그 동안 함께 해왔던 마게도냐의 빌립보, 데살로니가에 있는 형제들이 보내준 돈으로 비용을 감당했습니다.
셋째, 오직 하나님의 사랑으로 대했습니다.
계산하지 않는 사랑, 포기하지 않는 사랑, 때로는 낭비하는 것 같이 보이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대했습니다.
저 역시 이렇게 살아온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목적이 이끄는 삶을 공부하면서, 큐티하면서, 또한 요즈음 나의 삶의 모습 속에서 그러지 못한 나를 발견했습니다.
계산하지 않는 사랑을 하겠다며 살아왔는데, 지금 사랑을 계산하고 있는 나를 발견합니다.
고린도 교회는 나보다 못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고린도 교회보다 못한 나를 발견합니다.
하나님 앞에서(코람데오) 바로 서지 못하고, 동역자들 앞에도 허우적거립니다. 희생하는 삶을 살아온 줄 알았는데, 지금 지극히 이기적인 나를 발견합니다.
그래서 동역자들이 힘들어하나 봅니다. 나 때문에………..
(이준행목사 “목회철학”중에서)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바울의 목회에서 배워야 할 요점을 확인하고 볼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 소망교회와 저의 온 라인 사역에서 보다 많이 바울을 본 받아 실천하게 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아래를 클릭하시면 소망교회 베다니찬양대의 은혜로운 찬양(내 주는 강한 성이요)를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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