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벗
(약 2: 23)
성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세상에서 친구만큼 좋은 것도 없습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이 다 있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 좋은 친구들도, 우리가 넉넉할 때는 많다가 어려워지거나 가난해지면 떠나가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친구는 신중하게 가려서 잘 사귀어야 합니다. 사귄 친구는 예의와 변함없는 우정으로 대해야 합니다. 예로부터 친구를 대하는 일에 대해, 관포지교(管鮑之交)를 변함없는 우정의 예로 삼아왔습니다. 사기(史記)에 나오는 관중과 포숙은 친구가 되어 서로 동업을 합니다. 포숙이 자본을 대고 관중이 장사를 하는데 관중이 이익을 더 많이 챙깁니다. 용서하기 어려운 섭섭한 일이지요. 그러나 이를 본 포숙은 관중이 생활이 어려워 그렇다고 이해합니다.
전쟁이 일어납니다. 같이 전장에 나갑니다. 그런데 관중이 세 번이나 도망을 칩니다. 이를 두고 사람들이 관중을 비난하고 비웃습니다. 그러자 포숙이 말합니다. “그에게는 모셔야 할 홀어머니가 있다.”
이렇게 포숙은 관중을 끝까지 믿어줍니다. 이러한 포숙에 감동한 관중이 말합니다.
“나를 낳은 것은 부모이지만 나를 아는 것은 오직 포숙뿐이다(生我者父母 知我者鮑子也).”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복의 근원으로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의 친구로 살아가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흉년을 맞게 되자, 애굽 땅으로 내려가 아내 사라를 누이라고 속여 목숨을 부지하고, 재물마저 얻습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러한 아브라함을 친구로 계속 사귀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이 아브라함을 향해 놀라운 말씀을 하십니다. 그를 “나의 벗 아브라함”이라 불러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자손에게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부르십니다(사 41: 8).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을 “친구”라 부르셨습니다.
친구 될 수 없는 사람을 친구로 삼아주시고 친구를 위해 목숨까지 내어주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요 15: 13).
사랑을 변함없이 채워주시는 예수님이 나의 친구인 것을 자랑하며 살아가는 우리 가족이기 바랍니다. 부족하지만 외면하지 아니하시고, 부족하기에 변함없이 사랑으로 채워주시고
친구가 되어주시는 하나님을 닮아가며,
하나님의 벗으로 사는 기쁨을
날마다 더해가는 우리 가족이 되기를 바랍니다.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저의 부족함을 사랑으로 채워주시고 친구로 삼아주시니 감사합니다. 언제나 하나님께서 저와 저의 가족들의 좋은 친구가 되어주심을 믿고 기뻐하며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아래를 클릭하시면 소망교회 베다니찬양대의 은혜로운 찬양(하나님의 영광)를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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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분별력을 가지라
(고후 11: 14)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오늘날처럼 영적으로 오염된 시대는 없었을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처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거짓 선지자들과 수많은 이단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들은 적극적으로 교회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미혹하게 하고 있습니다. 가짜가 진짜보다 더 진짜 같고, ‘짝퉁’이 명품보다 더 명품 같은 것처럼, 거짓 가르침들이 교회를 넘보고 있는 것입니다. 솔로몬 왕은 아버지 다윗을 이어 왕위에 오를 때 하나님께 지혜를 구했습니다.
솔로몬이 하나님께 구했던 지혜는 분별력이었습니다. 선과 악, 옳고 그름, 정의와 불의를 분별하기 원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의 기도에 응답하셔서 그 누구에게서도 찾아볼 수 없는 지혜, 분별력을 솔로몬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를 선물로 받았음에도 솔로몬 역시 넘어지고 쓰러졌습니다.
선악의 분별을 넘어서는 영적인 분별력을 발휘하지 못한 까닭입니다. 솔로몬 시대보다 더 영적으로 타락한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절실하게 영적인 분별력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 시대에도 거짓 사도들이 있었습니다.
속이는 일꾼들이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도들인 것처럼 가장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이런 현상들을 언급하며 “놀랄 것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사탄도 자신을 빛의 천사로 가장하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지금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고 우리에게 접근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도 영적인 분별력이 필요합니다. 바울은 염려했습니다.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한 것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3절).” 우리는 그리스도를 향한 순결하고 진실한 믿음에서 벗어나 더럽혀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선악을 분별할 지혜와 더불어 영적인 분별력을 하나님께 구해야 합니다.
요한은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요일 4: 1).”
혼돈의 시대에
우리가 하나님께 구할 것은
지혜와 영적인 분별력입니다.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솔로몬에게 지혜를 허락하여주셨던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저에게 영적 분별력 없는 솔로몬의 행적을 보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솔로몬에게 주셨던 지혜와 필요한 영적인 분별력까지 저와 저의 가족들에게 허락하여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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