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06-14 오후 8:58:52)http://blog.somang.net/koenonia/1499
눈길 바퀴의자 밀어주기
어제 저녁 스테피(Stephie : 이 친구는 어릴 때 무슨 병을 앓았었는지, 머리가 하얗게 세고, 걸음이 불편한데다가, 말까지 어눌해서 말이 서툰 저는 알아듣기 참 힘듭니다)가 제 방으로 찾아왔습니다. 요즘 계속 눈이 와서 아주 오랜만에 눈 덮인 뜀박질 길(조깅코스)을 산책하고 막 돌아온 길이었습니다. ‘오늘 노인들의 바퀴의자(Rollstuhl) 밀어주는 일 좀 도와 달라’고.... 두 말 하지 않고 그러마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러고 나니 솔직히 고민이 생겼습니다. 지난번의 경험으로 볼 때 결코 쉽지 않은 일인데, 더구나 요즘 눈이 많이 와서 길이 미끄러울 거거든요. 맨 땅에서도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해서 비탈길에서 바퀴의자에 앉은 분과 같이 굴러버릴 위기가 여러 번 있었는데, 하물며 이렇게 눈이 쌓인 다음에야... 더군다나 요즘 급격히 체력이 떨어져 있던 차에...
어쨌든 그건 나중에 해결하기로 하고, 일단 기꺼이 돕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작은 일 하나하나가 곧 주님의 일일테니까.... 일상 속에서 작은 도움과 기쁨을 서로 나눌 수 있다면, 그게 바로 ‘섬김’이겠지요. 그러니 언론이나 방송, 혹은 인터넷에 주목을 받지 않더라도 그저 일상 속에서 평범하게, 매일 매일의 삶이 작은(사실 섬기는 일에 ‘작고, 크고’는 없다고 전 생각합니다만) 섬김이 될 수 있다면, 그거야 말로 주님이 진정 기뻐하시는 일이겠지요.
그러니 소위 “아름다운 소식”을 다루는 기사들이 더 이상, 미담이 되지 않고, 그저 자연스런 일상사가 되도록 하는 것이 우리들의 할 일이겠지요. 그것을 주님은 특별한(?!) 사순절 프로그람 보다 더 기뻐하실 거구요. 약속 시각에 맞춰 가느라 그 좋아하는 제3서독일방송(WDR3)의 '영적인 음악'(gheistliche Musik: 교회음악)듣기는 포기했습니다.
4 명의 학우들이 역시 네보(Nebo: 성경의 느보산의 이름을 따 온 양로원 시설이죠. 이름이 보여주고 있듯이 연세가 많이 드신 분들이 편안하게 임종을 맞으실 때까지 거처하는 곳입니다)에서 노인들을 모셨습니다. 거리가 먼 곳의 시설에 계신 분들은 차를 타고 오시지만, 이곳은 아주 애매하거든요. 차를 타기에는 가깝고, (장애가 있는)연세 드신 분들이 걷기에는 그다지 가깝거나 수월한 길이 아니고...
나빠진 날씨 때문인지, 건강 상태가 좋지 못하셔서 대부분 외출 허락을 받지 못하고 두 분만 교회로 가기로 했습니다. 바퀴의자 밀어주기가 자신 없었던 저는 솔직히 내심 고마웠습니다. 그래서 문을 여닫는 일이며 소지품을 챙겨드린다거나, 보도에 오르내릴 때 돕는 일 외에는 할머니의 말벗이 돼 드리면서 같이 교회까지 걸었습니다.
역시 노인 분들을 제일 앞자리에 모시고 나니, 다른 시설에서 오신 듯, 중증의 환자 몇 분이 자리하고 계시는 군요. 누군가 저분들을 모시고 오느라 남모르게 애썼겠죠.
오늘은 또 지난번에 실습을 나갔던 엠마오의 집(Haus Emmaus) 식구들이 특송하는군요. 식구들이 많이 바뀌어서 아는 얼굴은 한 분 밖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대부분 돌아가셨겠죠. 달리 가실 데가 없는 분들이니까. 과연 지난주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으신 분을 광고하는데, 그 중에 한 분이 엠마오의 집에서 82세의 연세로 돌아가셨군요. 어쩌면 제가 아는 얼굴이었을지도 모를텐데.
그리고 나니 우리의 노인문제 대처 능력과 준비에 대해 생각이 미쳤습니다. 코앞에 닥친 고령화 사회, 취약한 복지재정과 인프라, 게다가 얼마 되지 않는 자원 및 여건을 잘 활용할 수 있는 메니지먼트나 네트웍의 부재...제가 떠나올 때까지만 해도 당장 부닥친 문제였습니다만, 요즘은 어떤지... 하여튼 그 분야에서 일하시는 분들께 또 이렇게 넷 상으로나마 큰 절 한 번 올립니다.
사실, “독일의 특/별/사순절 프로그람”이 무엇이 있는지 기사거리로, 혹은 개인적인 관심으로 찾았었는데, 이제 생각해 보니 ‘사순절 지키기’는 금식도, 작정기도도, 특/별/성가도, 연/속/기도회도, 특/별/헌금도 아니었습니다. 고기와 맥주를 거의 주식으로 하는 이 사람들은 고기나 알콜 등을 피하는 금욕을 재의 수요일부터 시작되는 사순절 기간동안 잘 지키는 편입니다. 어릴 때부터 그렇게 가정교육을 받지요.
예배 분위기가 이상하게 된다고 격리시키지 않고, 노인-간질교우들과 (늘 하던 대로) 함께 하는 것- 그것이 보/통/ 사순절 지키기였습니다.
교인 가운데 35살이라고 들은 기억이 나는 한 여성과 그 어머니로 보이는 할머니가 앉아계신데, 이 여성은 늘 예배시간에 조용히 있지 못하죠. 겉으로 보기에는 여성인지도 분명치 않고요. 항상 할머니께 짜증내며 뭔가 조릅니다. 처음엔 그 소리가 아주 거슬렸었는데, 이제는 전혀 이상하지 않군요.
언젠가 할머니가 하신 말씀으로는 나이 30이 넘어도 늘 저렇다고... 자기가 옆에서 지켜 줘야 한다는 말씀을 하시는 할머니의 눈을 차마 바로 뵙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저 분들의 뒷감당은 누가 해주는지... 국가인지, 가정인지... 가정이래야 할머니 한 분 밖에 계시지 않은 것 같은데,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면 어떻게 되는 건지...
기자정신(?)에 사실 몰래 카메라 렌즈 초점을 맞췄었는데, 이내 그런 제가 부끄러워졌습니다. 남의 불행을 취재감으로 몰래 사진 찍다니.... 하여튼 결코 남의 일만은 아니기 때문에 더욱 가슴이 메어짐을 느끼며 돌아오는 눈길...
아직 제 정확한 나이를 모르는 짓궂은 학우 한 녀석이 던진 눈 덩이에 맞아, 그 차가움에 화들짝, “그저 그렇게 평범하게 하루하루... 어렵지 않고, 대단치 않은 작은 섬김 하나하나가, 주님이 받으신 고난에 자그마하나마 동참하는 것일” 거라는 생각에서 깨어났습니다. 저런! 가느다란 눈발이, 또 시작입니다. 봄은 언제나 오려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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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상
(2005-06-14 오후 8:43:36)http://blog.somang.net/koenonia/14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