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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자료모음(기도 3) 댓글[0]
기도 (2013-10-30 오전 6:57:37) http://blog.somang.net/holylove/7994
선교자료모음(기도 3)

 
▣ 기도의 중요성

 
본문: 약 5:16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감리교의 유명한 목사님이었던 로버트 뉴튼 목사님은 행복한 결혼생활로도 유명했습니다. 결혼을 한 지 50년이 지났지만 서로 얼굴을 붉힐 정도로 싸우거나 마음을 상하게 하는 말조차도 한 번 한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런 순탄한 결혼생활을 할 수 있었던 비결을 기도로 꼽았습니다.
“나와 아내는 아침과 저녁, 하루에 두 번씩 함께 기도를 합니다. 결혼을 한 첫날부터 지금까지 철저하게 지켜오고 있습니다. 하루의 시작과 마무리를 기도로 함께 하기 때문에 그 사이에 있는 시간들을 통해서는 다투거나 미워할 수가 없습니다.”
뉴욕의 풀던 거리에서는 지난 103년 동안 정오에만 되면 기도회가 열렸습니다. 그러나 최근에 사람들이 더 이상 모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 기도회가 폐지되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에서 지역을 위해 기도 할 사람이 더 이상 없다는 것은 영적인 관점으로 볼 때는 매우 심각한 손해입니다.
기도를 하지 않는 것은 기도의 능력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도에는 하나님의 분명한 응답과 능력이 있습니다. 기도생활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십시오.
* 기도: 주님! 기도의 능력에 대한 확신으로 응답받게 하소서!
* 묵상: 나와 가족, 교회와 나라를 위해 수시로 기도하십시오.
/김장환 목사, 제공 : 나침반출판사

 
▣ 다급한 기도, 신속한 응답

 
기도는 응답을 전제로 한다. 하나님과 나의 물류 시스템이 완벽하다면 구하는 것마다 즉각 택배로 배달된다. 이것을 응답이라 한다. 다급한 기도엔 신속한 응답이 있다. 6·25전쟁 때 국군으로 참전한 원로 장로님의 간증이다. 황해도가 고향인 장로님 마을에 북한군이 들이닥쳤다. 당시 중학생이던 그는 잡히면 의용군에 끌려갈 것이니 급히 낟가리 속에 숨었다. 북한군은 집집마다 뒤지며 젊은이들을 끌어냈고, 자신이 숨어있던 낟가리를 대검으로 찔렀다. 칼끝이 가슴 바로 앞까지 오기도 했다. 북한군이 떠나지 않고 그 집에 머무는 바람에 낟가리에서 나올 수도 없었다.
그러다 문득 하늘을 보니 까마귀가 날아다녔다. 그는 즉시 기도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예수님, 엘리야를 먹이신 것처럼 제게도 먹을 것 좀 주세요.” 이 기도가 끝나자마자 마당에 있던 암탉이 낟가리 안으로 들어와 알을 낳았다. 따끈따끈한 생달걀이었다. 그는 달걀을 먹으며 기도했다. “하나님 암탉이 또 알을 낳게 해주세요.” 북한군이 있는 동안 암탉은 매일 아침 낟가리로 들어와 신선한 달걀을 주고 갔다. 북한군이 떠나자 그는 숨어있던 낟가리에서 나왔다. 얼굴은 살이 쪄서 포동포동했다. 그는 응답하신 하나님께 눈물로 감사했다.
/김봉준 목사(구로순복음교회)

 
▣ 기도와 응답의 상관관계

 
사람들은 소원을 두고 기도할 때 자기 욕망에 따라 구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의 필요에 따라 응답하신다. 나는 내 소원을 구하지만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응답하시는 것이다. ‘급하고 강한 바람같이’란 책을 쓴 인도네시아의 전도자 멀 텔리는 수마트라 밀림에 다니며 복음을 전했다. 단벌옷을 입고 밀림을 다니다 보니 옷은 금세 더러워졌고 세탁할 일은 난감했다.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전도자로서 덕이 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서 하나님께 믿음으로 기도했다. “주님 이 옷을 깨끗하게 해 주세요” 그러자 하나님은 소나기를 통하여 그의 옷을 깨끗하게 해 주셨다. 옷이 더러워 질 때마다 기도했고, 하나님은 소나기와 개울물을 통하여 흰눈같이 깨끗이 해 주셨다.
안식년이 되어 그는 밀림에서 도시로 나왔다. 그는 입은 옷이 더러워지자 이때까지 했던 것처럼 기도했다. “주님 옷이 더러워 졌으니 세탁해 주세요” 그런데 이번에는 응답이 없었다.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주님, 왜 옷이 세탁되지 않나요?” 그러자 세미한 음성이 들렸다. “사랑하는 종아 이곳 도시에는 세탁기와 세탁비누가 있단다.”
우리는 나의 욕망에 따라 구하지만 하나님은 당신의 필요에 따라 응답하신다. 기도는 내가 하지만 응답은 주님의 뜻 안에서 이루어진다. 주님은 기도하는 자의 간구에 응답하신다. 그러나 욕망의 경우에는 응답이 달리 나타나기도 한다.
/김봉준 목사 (구로순복음교회 담임)

 
▣ 가장 필요한 것

 
본문: 마 6:6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1945년 4월 12일, 목요일에 미국의 32대 대통령이었던 루즈벨트 대통령이 서거했습니다.
당시 부통령이었던 트루먼이 곧 대신해서 대통령 자리에 오르게 되었는데, 많은 기자들이 백악관에 가서 취임 소감과 앞으로의 행보에 대해서 물었습니다.
“이 방송을 보고 계시는 모든 분들에게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태어나서 단 한 번이라도 하나님께 기도를 드린 적이 있는 분이라면 이 순간 모두 저를 위해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급박한 위기 상황 속에서 트루먼 대통령이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와 중보기도였습니다.
서로 연합할 때 기도의 힘은 더욱 더 커집니다. 성도들의 서로를 위해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에는 큰 힘이 있습니다. 나의 힘으론 결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도 하나님은 능히 하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기도로 간구할 때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어주시고 또한 일하십니다. 믿음의 지체들과 서로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해주십시오.
* 기도: 주님! 환란 중에도 기쁨 중에도 늘 기도하게 하소서!
* 묵상: 자신과 다른 사람의 기도 제목과 응답 날짜를 적을 수 있는 노트를 만드십시오.
/김장환 목사, 제공 : 나침반출판사

 
▣ 기도가 능력입니다

 
본문: 열왕기상 18:37~ 40 •찬송 365장 (통 484장)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에게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 (왕상 18:37)

 
엘리야의 이름 뜻은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다’입니다. 본문은 ‘여호와가 하나님이 되시는 사건(39절)’에 대한 기록입니다. 이름하여 ‘갈멜산 대결’입니다. 오늘 말씀의 배경이 되는 아합 왕 시대에는 풍요의 신 바알이 비를 주관한다고 믿었습니다. 하늘문이 닫히고 비가 오지 않아 고통 가운데 있는데도 여전히 하늘을 바라보지 못하고, 땅에서 헤매며 땅의 우상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있었습니다.
선지자 엘리야가 우상 숭배자들에게 ‘갈멜산 대결’을 신청합니다. 각기 제단 위에 송아지를 올려놓고 불을 내리는 신이 누구인지를 갈멜산에서 직접 가리자는 것입니다(왕상 18: 24). 먼저 우상숭배자 850명이 울부짖습니다. 나중에는 칼과 창으로 온 몸에 상처를 내고 피를 흘리기까지 했지만 아무런 응답이 없었습니다. 드디어 엘리야가 나섭니다. 무너진 제단을 수축하고, 제단에 물을 붓고 도랑에는 물을 채우고, 여호와의 이름에 의지하여 믿음의 기도를 드립니다.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37절).” 그때 하늘에서 불이 내려옵니다(38절). 하나님이 참 신이라는 것이 증명되는 순간입니다. 우상들은 죽은 신이기에 불을 내리지 못하고 응답하지 못했으나 하나님은 살아계신 참 신이므로 기도로 우상과 악령의 역사를 물리치는 것은 당연한 결과입니다(40절).
 
기도는 닫힌 문을 열게 합니다. 엘리야의 기도가 닫힌 하늘문을 열어 비를 내리게 했고(약 5: 18), 바울의 기도는 닫힌 옥문을 열게 했습니다(행 16: 25∼26). 삶의 닫힌 문들을 여는 열쇠가 바로 ‘기도’입니다.
오늘날도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기도’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엘리야의 기도처럼 신실하기를 원합니다. 홀로 서있다고 해도 하나님에 대한 확실한 믿음으로 당당하길 바랍니다. 허공에 소리치는 고함이 아니라, 살아계셔서 응답하시는 참 신이 되신 하나님께 분명한 기도를 올립시다. 악한 영의 어떠한 시험도 기도로 이길 수 있습니다. 가을입니다. 기도하기에 정말 좋은 때입니다. 기도로 하나님의 뜻을 여쭙시다.

 
•기도 믿음의 기도로 닫혀진 인생이 열리고, 하늘의 능력을 체험하며 살게 하소서. 아멘.

 
▣ 새벽기도의 의미

 
본문: 막 1:35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영국의 노예해방을 위해서 헌신했던 윌리엄 윌버포스는 자신의 아들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낸 적이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내가 너에게 원하는 것이 단 한 가지 있다면 그것은 새벽기도를 소홀히 여기지 말라는 것이다. 이른 아침에 주님을 예배하는 일에 소홀히 하지 말고 하루의 시작을 하나님과 교제함으로 시작하는 습관을 들인다면 너는 분명히 지금보다 하나님께 더욱 귀하게 쓰임 받을 것이다. 신앙생활에서 가장 치명적인 것은 하나님을 인생의 최우선순위에서 내려놓는 것이니 부디 조심하길 바란다.˝
하루에 시작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 매일 하나님과 이어지는 교제, 육체의 피곤함과 몸의 편안함보다도 하나님을 우선시한다는 모든 의미가 새벽기도에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도 십자가의 고난을 앞두시고는 조용한 곳에서 하나님께 집중하셨습니다. 하루의 시작과 가장 귀한 시간을 하나님과 교제하는데 사용하는 성도가 되십시오.
* 기도: 주님! 하루의 시작과 마무리를 말씀과 기도로 하게 하소서!
* 묵상: 한 달의 시작, 한 주의 시작에는 새벽 기도에 참석하십시오.
/김장환 목사, 제공 : 나침반출판사

 
* 갈릴리 공동체 http://cafe.daum.net/Galileecommunity
(http://blog.naver.com/allc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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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2013-10-30 오전 6:57:37) http://blog.somang.net/holylove/7993
선교자료모음(기도 3)

 
▣ 기도의 중요성

 
본문: 약 5:16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감리교의 유명한 목사님이었던 로버트 뉴튼 목사님은 행복한 결혼생활로도 유명했습니다. 결혼을 한 지 50년이 지났지만 서로 얼굴을 붉힐 정도로 싸우거나 마음을 상하게 하는 말조차도 한 번 한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런 순탄한 결혼생활을 할 수 있었던 비결을 기도로 꼽았습니다.
“나와 아내는 아침과 저녁, 하루에 두 번씩 함께 기도를 합니다. 결혼을 한 첫날부터 지금까지 철저하게 지켜오고 있습니다. 하루의 시작과 마무리를 기도로 함께 하기 때문에 그 사이에 있는 시간들을 통해서는 다투거나 미워할 수가 없습니다.”
뉴욕의 풀던 거리에서는 지난 103년 동안 정오에만 되면 기도회가 열렸습니다. 그러나 최근에 사람들이 더 이상 모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 기도회가 폐지되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에서 지역을 위해 기도 할 사람이 더 이상 없다는 것은 영적인 관점으로 볼 때는 매우 심각한 손해입니다.
기도를 하지 않는 것은 기도의 능력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도에는 하나님의 분명한 응답과 능력이 있습니다. 기도생활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십시오.
* 기도: 주님! 기도의 능력에 대한 확신으로 응답받게 하소서!
* 묵상: 나와 가족, 교회와 나라를 위해 수시로 기도하십시오.
/김장환 목사, 제공 : 나침반출판사

 
▣ 다급한 기도, 신속한 응답

 
기도는 응답을 전제로 한다. 하나님과 나의 물류 시스템이 완벽하다면 구하는 것마다 즉각 택배로 배달된다. 이것을 응답이라 한다. 다급한 기도엔 신속한 응답이 있다. 6·25전쟁 때 국군으로 참전한 원로 장로님의 간증이다. 황해도가 고향인 장로님 마을에 북한군이 들이닥쳤다. 당시 중학생이던 그는 잡히면 의용군에 끌려갈 것이니 급히 낟가리 속에 숨었다. 북한군은 집집마다 뒤지며 젊은이들을 끌어냈고, 자신이 숨어있던 낟가리를 대검으로 찔렀다. 칼끝이 가슴 바로 앞까지 오기도 했다. 북한군이 떠나지 않고 그 집에 머무는 바람에 낟가리에서 나올 수도 없었다.
그러다 문득 하늘을 보니 까마귀가 날아다녔다. 그는 즉시 기도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예수님, 엘리야를 먹이신 것처럼 제게도 먹을 것 좀 주세요.” 이 기도가 끝나자마자 마당에 있던 암탉이 낟가리 안으로 들어와 알을 낳았다. 따끈따끈한 생달걀이었다. 그는 달걀을 먹으며 기도했다. “하나님 암탉이 또 알을 낳게 해주세요.” 북한군이 있는 동안 암탉은 매일 아침 낟가리로 들어와 신선한 달걀을 주고 갔다. 북한군이 떠나자 그는 숨어있던 낟가리에서 나왔다. 얼굴은 살이 쪄서 포동포동했다. 그는 응답하신 하나님께 눈물로 감사했다.
/김봉준 목사(구로순복음교회)

 
▣ 기도와 응답의 상관관계

 
사람들은 소원을 두고 기도할 때 자기 욕망에 따라 구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의 필요에 따라 응답하신다. 나는 내 소원을 구하지만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응답하시는 것이다. ‘급하고 강한 바람같이’란 책을 쓴 인도네시아의 전도자 멀 텔리는 수마트라 밀림에 다니며 복음을 전했다. 단벌옷을 입고 밀림을 다니다 보니 옷은 금세 더러워졌고 세탁할 일은 난감했다.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전도자로서 덕이 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서 하나님께 믿음으로 기도했다. “주님 이 옷을 깨끗하게 해 주세요” 그러자 하나님은 소나기를 통하여 그의 옷을 깨끗하게 해 주셨다. 옷이 더러워 질 때마다 기도했고, 하나님은 소나기와 개울물을 통하여 흰눈같이 깨끗이 해 주셨다.
안식년이 되어 그는 밀림에서 도시로 나왔다. 그는 입은 옷이 더러워지자 이때까지 했던 것처럼 기도했다. “주님 옷이 더러워 졌으니 세탁해 주세요” 그런데 이번에는 응답이 없었다.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주님, 왜 옷이 세탁되지 않나요?” 그러자 세미한 음성이 들렸다. “사랑하는 종아 이곳 도시에는 세탁기와 세탁비누가 있단다.”
우리는 나의 욕망에 따라 구하지만 하나님은 당신의 필요에 따라 응답하신다. 기도는 내가 하지만 응답은 주님의 뜻 안에서 이루어진다. 주님은 기도하는 자의 간구에 응답하신다. 그러나 욕망의 경우에는 응답이 달리 나타나기도 한다.
/김봉준 목사 (구로순복음교회 담임)

 
▣ 가장 필요한 것

 
본문: 마 6:6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1945년 4월 12일, 목요일에 미국의 32대 대통령이었던 루즈벨트 대통령이 서거했습니다.
당시 부통령이었던 트루먼이 곧 대신해서 대통령 자리에 오르게 되었는데, 많은 기자들이 백악관에 가서 취임 소감과 앞으로의 행보에 대해서 물었습니다.
“이 방송을 보고 계시는 모든 분들에게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태어나서 단 한 번이라도 하나님께 기도를 드린 적이 있는 분이라면 이 순간 모두 저를 위해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급박한 위기 상황 속에서 트루먼 대통령이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와 중보기도였습니다.
서로 연합할 때 기도의 힘은 더욱 더 커집니다. 성도들의 서로를 위해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에는 큰 힘이 있습니다. 나의 힘으론 결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도 하나님은 능히 하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기도로 간구할 때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어주시고 또한 일하십니다. 믿음의 지체들과 서로 기도제목을 나누고 기도해주십시오.
* 기도: 주님! 환란 중에도 기쁨 중에도 늘 기도하게 하소서!
* 묵상: 자신과 다른 사람의 기도 제목과 응답 날짜를 적을 수 있는 노트를 만드십시오.
/김장환 목사, 제공 : 나침반출판사

 
▣ 기도가 능력입니다

 
본문: 열왕기상 18:37~ 40 •찬송 365장 (통 484장)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에게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 (왕상 18:37)

 
엘리야의 이름 뜻은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다’입니다. 본문은 ‘여호와가 하나님이 되시는 사건(39절)’에 대한 기록입니다. 이름하여 ‘갈멜산 대결’입니다. 오늘 말씀의 배경이 되는 아합 왕 시대에는 풍요의 신 바알이 비를 주관한다고 믿었습니다. 하늘문이 닫히고 비가 오지 않아 고통 가운데 있는데도 여전히 하늘을 바라보지 못하고, 땅에서 헤매며 땅의 우상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있었습니다.
선지자 엘리야가 우상 숭배자들에게 ‘갈멜산 대결’을 신청합니다. 각기 제단 위에 송아지를 올려놓고 불을 내리는 신이 누구인지를 갈멜산에서 직접 가리자는 것입니다(왕상 18: 24). 먼저 우상숭배자 850명이 울부짖습니다. 나중에는 칼과 창으로 온 몸에 상처를 내고 피를 흘리기까지 했지만 아무런 응답이 없었습니다. 드디어 엘리야가 나섭니다. 무너진 제단을 수축하고, 제단에 물을 붓고 도랑에는 물을 채우고, 여호와의 이름에 의지하여 믿음의 기도를 드립니다.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37절).” 그때 하늘에서 불이 내려옵니다(38절). 하나님이 참 신이라는 것이 증명되는 순간입니다. 우상들은 죽은 신이기에 불을 내리지 못하고 응답하지 못했으나 하나님은 살아계신 참 신이므로 기도로 우상과 악령의 역사를 물리치는 것은 당연한 결과입니다(40절).
 
기도는 닫힌 문을 열게 합니다. 엘리야의 기도가 닫힌 하늘문을 열어 비를 내리게 했고(약 5: 18), 바울의 기도는 닫힌 옥문을 열게 했습니다(행 16: 25∼26). 삶의 닫힌 문들을 여는 열쇠가 바로 ‘기도’입니다.
오늘날도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기도’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엘리야의 기도처럼 신실하기를 원합니다. 홀로 서있다고 해도 하나님에 대한 확실한 믿음으로 당당하길 바랍니다. 허공에 소리치는 고함이 아니라, 살아계셔서 응답하시는 참 신이 되신 하나님께 분명한 기도를 올립시다. 악한 영의 어떠한 시험도 기도로 이길 수 있습니다. 가을입니다. 기도하기에 정말 좋은 때입니다. 기도로 하나님의 뜻을 여쭙시다.

 
•기도 믿음의 기도로 닫혀진 인생이 열리고, 하늘의 능력을 체험하며 살게 하소서. 아멘.

 
▣ 새벽기도의 의미

 
본문: 막 1:35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영국의 노예해방을 위해서 헌신했던 윌리엄 윌버포스는 자신의 아들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낸 적이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내가 너에게 원하는 것이 단 한 가지 있다면 그것은 새벽기도를 소홀히 여기지 말라는 것이다. 이른 아침에 주님을 예배하는 일에 소홀히 하지 말고 하루의 시작을 하나님과 교제함으로 시작하는 습관을 들인다면 너는 분명히 지금보다 하나님께 더욱 귀하게 쓰임 받을 것이다. 신앙생활에서 가장 치명적인 것은 하나님을 인생의 최우선순위에서 내려놓는 것이니 부디 조심하길 바란다.˝
하루에 시작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 매일 하나님과 이어지는 교제, 육체의 피곤함과 몸의 편안함보다도 하나님을 우선시한다는 모든 의미가 새벽기도에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도 십자가의 고난을 앞두시고는 조용한 곳에서 하나님께 집중하셨습니다. 하루의 시작과 가장 귀한 시간을 하나님과 교제하는데 사용하는 성도가 되십시오.
* 기도: 주님! 하루의 시작과 마무리를 말씀과 기도로 하게 하소서!
* 묵상: 한 달의 시작, 한 주의 시작에는 새벽 기도에 참석하십시오.
/김장환 목사, 제공 : 나침반출판사

 
* 갈릴리 공동체 http://cafe.daum.net/Galileecommunity
(http://blog.naver.com/allc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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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어촌 교회 탐방 및 전도실습 댓글[0]
교회, 공동체 (2013-10-28 오후 8:58:58) http://blog.somang.net/holylove/7990
농어촌 교회 탐방 및 전도실습
 

오늘은(2013년 10월 28일) 소망교회 국내 선교부 주관으로 농어촌 교회 방문 및 전도실습을 위해 강원팀(10개 교회 방문)과 영남팀(4교회 방문)으로 나누어 출발하였다.
나는 영남권에 속하여 세계로교회(송치수 목사), 덕율교회(김태일 목사), 척곡교회(김영성 장로), 안동화곡교회(백영주 목사) 중 척곡교회를 방문하였다. 척곡교회는 목사님 없이 연로하신(89세)김영성 장로님의 인도하에 노인 교인 7명으로 교회를 유지하고 있었다. 봉화척곡교회는 한국교회 대부흥 100주년 기념교회이다.
 
즉 봉화척곡교회는 대한제국 말엽에 탁지부(현 재경부) 소속의 관직을 사임하고 외가마을에 정착한 김종숙과 이웃 동지인 장복우, 최재구 등이 합하여 1907년 5월 17일에 설립한 토착교회로서 문화재등록교회이다.(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257호) 교회가 오래 되고 낡아서 내년에 3억 이상의 예산으로 보수할 계획이라고 한다. 특히 교회내에 화장실이 남녀공용 하나밖에 없어 외부인사 초청 방문이 매우 불편하다고 한다.
교회초창기에 교회와 학교를 겸하였기 때문에 교회건물 옆에 지금도 명동서숙이 남아 있다.(예배당과 명동서숙은 1909년 6월 2일에 건축되었음) 그리고 또 눈에 띄는 것은 옛날 종각의 모습이었다.
이 교회는 문화유산으로서 건축사. 종교사 및 향토사적으로 귀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연로하신 김영성 장로님은 실로 한국 기독교사의 인간문화재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무쪼록 우리나라 농촌교회와 봉화척곡교회가 앞으로 더욱 부흥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가 되기를 기원한다.
 

* 기도: 나의 기쁨, 나의 소망, 나의 사랑, 나의 왕되신 하나님, 하나님의 크신 은혜에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우리가 농촌교회와 미자립교회에 도움을 주고 희망을 주기를 원합니다. 우리 크리스천들이 내 교회부흥에만 관심을 갖지 말고 작은 교회에도 관심을 갖고 힘을 합하여 하나님 나라 확장에 쓰임받기를 원합니다. 한국교회 특히 농촌교회와 작은 교회위에 하나님의 크신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한태완
 

* 갈릴리 공동체 http://cafe.daum.net/Galileecommun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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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어촌 교회 탐방 및 전도실습 댓글[0]
교회, 공동체 (2013-10-28 오후 8:58:58) http://blog.somang.net/holylove/7989
농어촌 교회 탐방 및 전도실습

오늘(2013년 10월 28일)은 소망교회 국내 선교부 주관으로 농어촌 교회 방문 및 전도실습을 위해 강원팀(10개 교회 방문)과 영남팀(4교회 방문)으로 나누어 출발하였다.
나는 영남권에 속하여 세계로교회(송치수 목사), 덕율교회(김태일 목사), 척곡교회(김영성 장로), 안동화곡교회(백영주 목사) 중 척곡교회를 방문하였다. 척곡교회는 목사님 없이 연로하신(89세)김영성 장로님의 인도로 노인 교인 7명으로 교회를 유지하고 있었다. 봉화척곡교회는 한국교회 대부흥 100주년 기념교회이다.
즉 봉화척곡교회는 대한제국 말엽에 김영성 장로의 할아버지가 탁지부 소속의 관직을 사임하고 1907년 5월 17일에 설립한 토착교회로서 문화재등록교회이다.(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257호) 교회가 오래 되고 낡아서 내년에 3억 이상의 예산으로 보수할 계획이라고 한다. 특히 교회내에 화장실이 남녀공용 하나밖에 없어 외부인사 초청 방문이 매우 불편하다고 한다.
교회초창기에 교회와 학교를 겸하였기 때문에 교회건물 옆에 지금도 명동서숙이 남아 있다.(예배당과 명동서숙은 1909년 6월 2일에 건축되었음) 그리고 또 눈에 띄는 것은 옛날 종각의 모습이었다.
이 교회는 문화유산으로서 건축사. 종교사 및 향토사적으로 귀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연로하신 김영성 장로님은 실로 한국 기독교사의 인간문화재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무쪼록 봉화척곡교회가 앞으로 더욱 부흥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가 되기를 기원한다.
/한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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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의 삶 댓글[0]
인내, 기더림 (2013-10-15 오후 4:06:37) http://blog.somang.net/holylove/7981
기다림의 삶
 

본문 : 히12:1, 찬송 : ‘주와 같이 길가는 것’ 430장(통 456장)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얼마 전 어느 탄광에 갱도가 무너져서 그 안에 갇힌 광부 들이 모두 질식해서 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의 한 사람은 쉽게 생명을 포기하지 아니하고 그 속에서 하나님께 기도하며 구조되기를 기다렸습니다. 끈질기게 기다리고 있던 순간, 그 갱도의 위에서부터 구멍이 뚫려 산소를 마시면서 견디게 되고, 결국 그 사람은 구출되었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쉽게 낙심한 사람은 다 죽었습니다. 다만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며 끈질기게 버티던 그 사람만이 살아나왔다는 것입니다. 인내하는 사람, 기다리는 사람이 최후에 구원을 얻게 됩니다. 어떤 시인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일하기를 배우고 기다리기를 배우라." 우리는 기다리기를 배워야 하겠습니다. 기다림은 우리를 소망의 항구로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6:9)

 
우리는 배우자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기도 응답이 오기를 기다리고, 반항적인 자녀가 철들기를 기다리고, 일자리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건강이 나아지기를 기다리고, 갈등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경제적인 압박에서 벗어나기를 기다립니다. 기다리는 것은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의 일부입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것이 곧 인내입니다. 우리는 기다림을 통해 인내를 배웁니다.
 
믿음의 영웅들의 명단을 보면, 잘 기다린 사람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노아는 홍수전에 방주를 지으면서 오랫동안 기다렸고, 홍수를 피하여 방주에 들어갔는데 비가 사십일 동안 계속되었고, 다시 물이 빠질 동안 백오십일을 기다렸습니다.
여호와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이 세대에서 네가 내 앞에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창7:1)
 
샤갈의 작품 중 노아의 방주를 보면 노아의 기다림이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들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받고 기다리다가 백세에 이삭을 낳습니다.
요셉도 형들의 시기로 애굽의 종으로 팔려가 13년간 종살이와 옥살이를 하면서도 하나님께서 주신 꿈이 이루어질 것을 기다렸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기에 앞서 광야에서 40년을 기다렸으며, 다시 40년을 광야에서 방황하면서 보냈습니다.
욥은 소중히 여기던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도 하나님을 기다렸습니다.
다윗 왕은 사울을 피해 아둘람 굴에서 기다렸습니다.
시므온은 그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는 성령의 지시를 받고 기다리다 마침내 아기 예수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였고(눅2: 25- 32), 또 안나라는 선지자도 팔십 사세가 되었어도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하고 기다리다가 아기 예수를 만나게 됩니다.(눅2: 36- 38)
엘리사벳과 사가랴는 노년이 될 때까지 기다리고 난 후에야 특별한 아이인 세례 요한을 낳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감옥에서 석방되기를 기다리면서 편지들을 썼는데, 그것이 오늘날 신약 성경의 일부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역시, 세상 죄를 대속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기 위해 ‘때가 찰 때까지’ 기다리셨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주재권(主宰權)에 얼마나 굴복하며 사는지는 ‘기다림’이라는 도가니에서 시험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운명론적인 관점을 가지고 체념 상태로 기다리거나 초조해하고 염려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기다림을 통해 하나님이 모든 일에 있어서 주님이시요, 그 모든 것의 시간 조절에 있어서도 주님이심을 고백하기 원하십니다.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렘애3:26)

 
인생은 기다림으로 시작해 기다림으로 마치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다림이 없는 인생은 죽은 것과 같습니다. 기다림이 있다는 것은 생명이 있다는 것이며 희망이 있는 삶인 것입니다.
자녀가 결혼하면 아이를 기다리게 됩니다. 아이가 가정에서 태어나면 커서 가정을 가지고 부모가 되기까지 긴 기다림의 시간을 보냅니다. 사람은 누구나 그 형편과 처지는 다르더라도 기다림은 한결 같습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은 기다림 속에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크리스천들은 기다림의 인내와 지혜를 하나님 말씀에서 찾아 은혜를 받아야 하겠습니다.

 
첫째, 세상의 그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 나라와 의를 기다리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삶의 목표를 정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이루기까지 힘쓰고 노력하며 살아갑니다. 세워놓은 목표를 달성하기까지는 인내와 기다림이 요구되기 마련입니다. 기다리는 동안에 많은 환경의 장애물을 만나게 되기도 하고 상황이 바뀌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나타나는 것은 목표를 이루어야겠다는 초조감과 긴장감입니다. 이로 인해 염려하게 되고 때론 두려움에 근심하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모든 일들은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무엇을 먹어야 하나, 입어야 하나 염려하지 말고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그리고 그의 의를 이루기 위해 인내하고 자신을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약1:3-4)

 
둘째, 범사에 믿음을 가지고 기다림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열매를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믿음이란 자동차의 기어를 넣는 것과 같습니다. 기어를 넣었다고 해서, 당장 엑셀을 밟는 것이 아니듯이, 믿음이 있다고 해서 당장 언제나 응답이 오는 것이 아닙니다. 응답이 오지 않을 때는 기어를 중립으로 다시 돌리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신호를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기다릴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 버림받았다고 생각이 들 때는 잠시 기다리십시오. 모든 상황이 여의치 않아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잠잠히 기다리십시오. 분명한 때에 확실하게 응답이 임할 것입니다. 말없이 조용히 기다리며 언제나 부름에 응답할 준비를 갖추십시오.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라'(벧후3:9)

 
들에 피는 들풀은 아무도 돌아보는 이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들풀의 아름다움이 솔로몬의 모든 영광보다 못하지 않게 하셨습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자녀들인 크리스천들을 주님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을 그렇게 사랑하시고 돌봐 주십니다. 이 믿음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이 사랑의 마음에 대한 믿음이 든든해야 염려하지 않게 됩니다. 근심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기다림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결과, 즉 아름다운 삶의 열매를 맺어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벧후1:5-7)

 
셋째, 믿음의 기다림은 하루의 삶을 가치 있고 보람되게 합니다. 우리는 현재의 삶 속에서 인생의 참된 만족과 보람을 찾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현재의 삶에 최선을 다하여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오늘이라는 현실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참된 삶의 보람은 오늘이라는 현실에 충실하고 삶의 가치를 가지고 진정으로 기다릴 때 주어지는 것입니다. 매 시간을 귀중하게 여기고 주님과 함께할 때에 삶의 행복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기다림은 곧 축복입니다. 기다림을 통해 기대하게 되고, 올바른 길로 궤도를 수정하게 되며, 뒤를 돌아보아 앞날에 이루어야 할 것을 오늘의 삶 속에서 하나하나 이루므로 한 번밖에 걸을 수 없는 인생의 길을 행복하게 걸어가게 됩니다.
기다림이 없는 자는 살아있으나 죽은 자입니다. 나는 오늘 무엇을 기다리고 있습니까?
화가 램브란트의 작품 중에 <나사로의 소생>이 있습니다, 나사로가 무덤 가운데서 살아나오기 전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11:25, 26)

 
우리에게는 영원한 생명에 대한 기다림이 있습니다.
감옥에 죄수가 석방의 날을 기다리듯이
사병이 제대하기를 고대하듯이
굶주린 사람이 먹기를 기다리듯이
구차한 삶이 풍요하게 되기를 바라듯이
파수꾼이 새벽 날새기를 고대하듯이
어린아이가 그 어머니의 젖을 사모하는 것같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사모하고 메시아가 오시기를 기다려야 하겠습니다.

 
* 기도: 오래 참으시고 모든 사람이 회개하시기를 기다리시는 하나님,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면서 생을 아름답게 수놓아가게 하소서. 시련에 넘어지지 않게 하시고 주님의 약속을 오늘 내 것으로 삼고 누리게 하옵소서. 제게 가장 좋은 때가 올 때까지 인내하며 기다리게 하소서. 우리가 마음 졸인다고 일이 더 잘되는 것도 아닙니다. 주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삶이 무엇인지를 바르게 깨우쳐 주셔서, 진정 믿음으로 기다림을 통해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복된 열매를 거둘 수 있게 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한태완 

 
* 갈릴리 공동체 http://cafe.daum.net/Galileecommunity
(http://blog.naver.com/allcome, http://cafe.naver.com/newgal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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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 기더림 (2013-10-15 오후 4:06:36) http://blog.somang.net/holylove/7980
기다림의 삶
 

본문 : 히12:1, 찬송 : ‘주와 같이 길가는 것’ 430장(통 456장)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얼마 전 어느 탄광에 갱도가 무너져서 그 안에 갇힌 광부 들이 모두 질식해서 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의 한 사람은 쉽게 생명을 포기하지 아니하고 그 속에서 하나님께 기도하며 구조되기를 기다렸습니다. 끈질기게 기다리고 있던 순간, 그 갱도의 위에서부터 구멍이 뚫려 산소를 마시면서 견디게 되고, 결국 그 사람은 구출되었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쉽게 낙심한 사람은 다 죽었습니다. 다만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며 끈질기게 버티던 그 사람만이 살아나왔다는 것입니다. 인내하는 사람, 기다리는 사람이 최후에 구원을 얻게 됩니다. 어떤 시인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일하기를 배우고 기다리기를 배우라." 우리는 기다리기를 배워야 하겠습니다. 기다림은 우리를 소망의 항구로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6:9)

 
우리는 배우자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기도 응답이 오기를 기다리고, 반항적인 자녀가 철들기를 기다리고, 일자리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건강이 나아지기를 기다리고, 갈등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경제적인 압박에서 벗어나기를 기다립니다. 기다리는 것은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의 일부입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것이 곧 인내입니다. 우리는 기다림을 통해 인내를 배웁니다.
 
믿음의 영웅들의 명단을 보면, 잘 기다린 사람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노아는 홍수전에 방주를 지으면서 오랫동안 기다렸고, 홍수를 피하여 방주에 들어갔는데 비가 사십일 동안 계속되었고, 다시 물이 빠질 동안 백오십일을 기다렸습니다.
여호와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이 세대에서 네가 내 앞에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창7:1)
 
샤갈의 작품 중 노아의 방주를 보면 노아의 기다림이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들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받고 기다리다가 백세에 이삭을 낳습니다.
요셉도 형들의 시기로 애굽의 종으로 팔려가 13년간 종살이와 옥살이를 하면서도 하나님께서 주신 꿈이 이루어질 것을 기다렸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기에 앞서 광야에서 40년을 기다렸으며, 다시 40년을 광야에서 방황하면서 보냈습니다.
욥은 소중히 여기던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도 하나님을 기다렸습니다.
다윗 왕은 사울을 피해 아둘람 굴에서 기다렸습니다.
시므온은 그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는 성령의 지시를 받고 기다리다 마침내 아기 예수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였고(눅2: 25- 32), 또 안나라는 선지자도 팔십 사세가 되었어도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하고 기다리다가 아기 예수를 만나게 됩니다.(눅2: 36- 38)
엘리사벳과 사가랴는 노년이 될 때까지 기다리고 난 후에야 특별한 아이인 세례 요한을 낳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감옥에서 석방되기를 기다리면서 편지들을 썼는데, 그것이 오늘날 신약 성경의 일부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역시, 세상 죄를 대속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기 위해 ‘때가 찰 때까지’ 기다리셨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주재권(主宰權)에 얼마나 굴복하며 사는지는 ‘기다림’이라는 도가니에서 시험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운명론적인 관점을 가지고 체념 상태로 기다리거나 초조해하고 염려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기다림을 통해 하나님이 모든 일에 있어서 주님이시요, 그 모든 것의 시간 조절에 있어서도 주님이심을 고백하기 원하십니다.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렘애3:26)

 
인생은 기다림으로 시작해 기다림으로 마치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다림이 없는 인생은 죽은 것과 같습니다. 기다림이 있다는 것은 생명이 있다는 것이며 희망이 있는 삶인 것입니다.
자녀가 결혼하면 아이를 기다리게 됩니다. 아이가 가정에서 태어나면 커서 가정을 가지고 부모가 되기까지 긴 기다림의 시간을 보냅니다. 사람은 누구나 그 형편과 처지는 다르더라도 기다림은 한결 같습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은 기다림 속에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크리스천들은 기다림의 인내와 지혜를 하나님 말씀에서 찾아 은혜를 받아야 하겠습니다.

 
첫째, 세상의 그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 나라와 의를 기다리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삶의 목표를 정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이루기까지 힘쓰고 노력하며 살아갑니다. 세워놓은 목표를 달성하기까지는 인내와 기다림이 요구되기 마련입니다. 기다리는 동안에 많은 환경의 장애물을 만나게 되기도 하고 상황이 바뀌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나타나는 것은 목표를 이루어야겠다는 초조감과 긴장감입니다. 이로 인해 염려하게 되고 때론 두려움에 근심하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모든 일들은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무엇을 먹어야 하나, 입어야 하나 염려하지 말고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그리고 그의 의를 이루기 위해 인내하고 자신을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약1:3-4)

 
둘째, 범사에 믿음을 가지고 기다림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열매를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믿음이란 자동차의 기어를 넣는 것과 같습니다. 기어를 넣었다고 해서, 당장 엑셀을 밟는 것이 아니듯이, 믿음이 있다고 해서 당장 언제나 응답이 오는 것이 아닙니다. 응답이 오지 않을 때는 기어를 중립으로 다시 돌리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신호를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기다릴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 버림받았다고 생각이 들 때는 잠시 기다리십시오. 모든 상황이 여의치 않아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잠잠히 기다리십시오. 분명한 때에 확실하게 응답이 임할 것입니다. 말없이 조용히 기다리며 언제나 부름에 응답할 준비를 갖추십시오.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라'(벧후3:9)

 
들에 피는 들풀은 아무도 돌아보는 이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들풀의 아름다움이 솔로몬의 모든 영광보다 못하지 않게 하셨습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자녀들인 크리스천들을 주님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을 그렇게 사랑하시고 돌봐 주십니다. 이 믿음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이 사랑의 마음에 대한 믿음이 든든해야 염려하지 않게 됩니다. 근심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기다림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결과, 즉 아름다운 삶의 열매를 맺어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벧후1:5-7)

 
셋째, 믿음의 기다림은 하루의 삶을 가치 있고 보람되게 합니다. 우리는 현재의 삶 속에서 인생의 참된 만족과 보람을 찾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현재의 삶에 최선을 다하여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오늘이라는 현실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참된 삶의 보람은 오늘이라는 현실에 충실하고 삶의 가치를 가지고 진정으로 기다릴 때 주어지는 것입니다. 매 시간을 귀중하게 여기고 주님과 함께할 때에 삶의 행복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기다림은 곧 축복입니다. 기다림을 통해 기대하게 되고, 올바른 길로 궤도를 수정하게 되며, 뒤를 돌아보아 앞날에 이루어야 할 것을 오늘의 삶 속에서 하나하나 이루므로 한 번밖에 걸을 수 없는 인생의 길을 행복하게 걸어가게 됩니다.
기다림이 없는 자는 살아있으나 죽은 자입니다. 나는 오늘 무엇을 기다리고 있습니까?
화가 램브란트의 작품 중에 <나사로의 소생>이 있습니다, 나사로가 무덤 가운데서 살아나오기 전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11:25, 26)

 
우리에게는 영원한 생명에 대한 기다림이 있습니다.
감옥에 죄수가 석방의 날을 기다리듯이
사병이 제대하기를 고대하듯이
굶주린 사람이 먹기를 기다리듯이
구차한 삶이 풍요하게 되기를 바라듯이
파수꾼이 새벽 날새기를 고대하듯이
어린아이가 그 어머니의 젖을 사모하는 것같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사모하고 메시아가 오시기를 기다려야 하겠습니다.

 
* 기도: 오래 참으시고 모든 사람이 회개하시기를 기다리시는 하나님,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면서 생을 아름답게 수놓아가게 하소서. 시련에 넘어지지 않게 하시고 주님의 약속을 오늘 내 것으로 삼고 누리게 하옵소서. 제게 가장 좋은 때가 올 때까지 인내하며 기다리게 하소서. 우리가 마음 졸인다고 일이 더 잘되는 것도 아닙니다. 주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삶이 무엇인지를 바르게 깨우쳐 주셔서, 진정 믿음으로 기다림을 통해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복된 열매를 거둘 수 있게 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한태완 

 
* 갈릴리 공동체 http://cafe.daum.net/Galileecommunity
(http://blog.naver.com/allcome, http://cafe.naver.com/newgal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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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 복음 (2013-10-11 오후 4:48:54) http://blog.somang.net/holylove/7979
,하나님 나라 전파와 확장
 

본문: 누가복음 17장 20~ 21절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교회와 우리의 가장 큰 사명은 하나님 나라 확장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는 꼭 죽어서만 가는 나라가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는 이 땅에서도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6: 9, 10)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14: 17)

 
만약 교회와 내 안에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 없다면 이는 죽은 교회요 죽정이 교인입니다. 내가 출석하는 교회는 과연 의와 평강과 희락이 가득합니까? 아니면 청년들이 세상에서 창업하듯이 목회자가 자신의 목회 사업을 위해 세워진 교회입니까? 모든 교회가 하나님 나라 확장에 쓰임받는 것이 아닙니다. 좁은 길이 있고, 넓은 길도 있습니다. 주여! 주여! 부른다고 다 구원 얻는 것이 아닙니다. 거듭나야 합니다. 내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과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 가득해야 합니다.

 
1. 하나님 나라의 주권과 통치자는 예수님입니다.
나라의 구성요소는 영토, 국민, 주권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영토는 우리가 죽은 후에 가는 본향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 사는 성도들의 마음에 이르기까지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기 위해 우리는 계속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주기도문에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리고 복음을 전파해야 합니다. 복음 전파를 통하여 하나님 나라가 자라납니다.(마13: 24- 30, 막4: 31, 32) 하나님 나라의 국민은 주님의 거룩한 피로 구원받은 성도들입니다. 또 하나님 나라의 주권은 왕되신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에 있습니다.
“내 처소가 그들 가운데에 있을 것이며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겔37:27)
“너희는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너희들의 하나님이 되리라”(렘30:22)

 
하나님은 한 분이시며 만유의 아버지시며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며(엡4:6), 만유를 통치하십니다(시103:19).
하나님 나라에는 불의가 없고, 정의로운 나라이며 근심, 걱정, 두려움, 불안이 없는 평강의 나라이며, 기쁨과 즐거운 찬송만이 있는 희락의 나라입니다.
즉 천국에는 불의가 없고 악마가 없습니다. 천국에는 어둠이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이 세상에서는 볼 수 없고, 육에 사는 사람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곳이므로 예수님은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눅8:10, 마13: 3- 53)

 
옛날 전도지에 보면 사람의 몸이 있고 그 몸 안에 뱀. 돼지, 이리, 늑대, 쥐 등이 그려져 있는데, 그곳에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가자 모든 짐승들이 도망가고 그 몸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거하시는 모습이 나옵니다. 즉 우리가 예수님을 내 마음에 모실 때 죄악이 물러가고 의와 평강과 희락의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됩니다.
 
본문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하였습니다.
즉 우리 마음에 하나님이 미워하시고 싫어하시는 교만, 음란, 거짓, 탐심, 우상 숭배, 분노, 게으름 등을 내어 쫓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마음 즉, 예수님의 성품인 겸손과 온유와 순종의 마음을 품고,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열매를 맺는 곳은 어디 곳이나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이 하나님의 나라이며, 성전입니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전3:16)

 
우리 마음속에 최고의 지위를 차지할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우상에서 멀리하라 하심은 우상숭배만을 금하신 것이 아니라 일보 나아가 하나님만을 섬기라는 절대적인 명령입니다. 우리는 하나님만 경배하고 그만을 섬겨야 합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이 없고, 만약 다른 신을 두고 섬기면 이는 두 주인을 섬기는 것입니다. 우상숭배자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고 정죄함을 받습니다.(겔14:3-8)
 
사람들이 하나님 보다 더 섬기는 그 ‘다른 무엇’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우상들」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섹스라는 우상, 술이라는 우상, 스타라는 우상, 게임이라는 우상, 돈이라는 우상, 오락과 스포츠, T.V 게임중독, 마약이라는 우상, 과학 기술이라는 우상 등에 빠른 속도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특히 인간을 신격화하고 개인숭배하는 우상입니다.
 
신앙공동체(교회)의 주인이 예수님이 아니고 교황이나 총회장이나 담임목사이거나 장로 등 인간인 경우 하나님 나라와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우상숭배자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엡5:5, 고전6:9) 하나님 나라는 오직 하나님만을 주인(왕)으로 모신 사람이 들어가는 나라입니다. 거짓 신과 헛된 일을 버리고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왕의 왕을 사랑하고 섬깁시다.

 
2. 하나님 나라는 의(義)의 나라입니다.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여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실 것이다’(마6:33)

 
우리는 성 프란시스를 잘 압니다. 그 사람이 유명하게 된 것은 “평화의 기도”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더 유명한 것은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은 채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실제적인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나서부터 모든 소유를 버리고 평생을 수도하며 산 사람입니다. 그는 짐승들과 대화를 할 정도로 맑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의를 입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된 참된 생활을 하였습니다. 세상에 살면서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입은 사람으로서의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는 주님을 닮은 사람을 살려고 노력을 남들 보다 많이 한 자로 여겨집니다.
“의로운 사람의 길에는 생명이 있지만, 미련한 사람의 길은 죽음으로 이끈다”(잠12: 28)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마5:6)

 
하나님은 불의와 죄악을 미워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는 죄인이 갈 수 없는 나라입니다. 음행하는 자, 더러운 자, 흉악한 자, 우상숭배자, 살인자는 갈 수 없습니다. (갈5: 19- 21, 엡5:5, 계21:8)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고전6: 9- 10)

 
우리도 과거에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없는 죄인이었으나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그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혀 죽게 하심으로 우리가 믿음으로 값없이 의롭게 되었습니다.(롬3: 23, 24, 28, 롬5:1, 롬8:30, 갈2:16) 오늘도 주님은 우리의 목자가 되셔서 우리를 의의 길, 생명의 길로 인도하십니다.(시23:3)

 
3. 하나님의 나라는 평강의 나라입니다.
영국의 종교 개혁자 리들리는 메리여왕 1세의 즉위와 함께 화체론적 성찬을 부정했다는 혐의로 체포되어, 런던탑에 투옥되었다가 뒤에 옥스퍼드에서 레티미와 함께 화형(火刑)되었는데, 그 전날 밤의 일입니다. 그의 동생은 찾아와서 그 밤동안 위로하며 같이 지내자고 했습니다. 그때 리들리는 그것을 거절하면서 말했습니다.
"나는 오늘 밤 평안히 자고 내일 순교하겠다."했습니다. 이것은 놀라운 사실입니다. 왜 그는 그렇게 평안하게 죽을 수 있을까? 그것은 주 안에 있었기 때문입니다.(빌3:7-8) 예수 믿는 사람은 환난이나 죽음을 두렵게 생각하지 않습니다.(요16:33, 행12:7)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골3:15)

 
어머니 손을 잡고 꽃밭에 놀러갔던 어린이가 꽃을 보자 어머니 손을 뿌리치고는 꽃밭에 들어가서는 이 꽃 저 꽃을 꺾으면서 기뻐했습니다. 한참 후에 주변을 보니 어머니가 안보였습니다. 아이는 앙! 앙! 울면서 손에 가지고 있던 꽃을 땅에 다 던져 버리고 엄마를 찾았습니다. 인생이 하나님의 얼굴을 피해서는 세상에 그 무엇이든 평안을 주지 못합니다. 인생의 참된 평안은 하나님 얼굴(민6:26) 주님의 품안에서 평안을 얻을 수 있습니다.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빌4:9)

 
세상 사람들은 돈, 명예, 지위, 건강 등을 잃을까봐 늘 두려워하고 불안해하며 쫓기는 삶을 살지만 성도는 하나님을 쫓음으로 주님이 나를 항상 보호하시고 지키심을 믿고 의지하기에 마음에 평안과 기쁨이 임합니다.(신31:8, 시3:6-8, 사41:10) 특히 주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사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히 살 것을 믿기에 죽음까지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멜기세댁은 예수님의 예표로서 그는 의외 왕이요, 살렘 왕이요 평강의 왕입니다(히7:2) 진정으로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신 자에게 의와 평강과 희락의 하나님나라가 임합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14:27)

 
4. 하나님 나라는 기쁨(희락)의 나라입니다.
미국의 어느 도시를 여행하던 사람이 주일이 되어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교통경찰에게 교회를 좀 가르쳐 달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경찰은 멀리 보이는 한 교회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가까운 곳에도 교회가 있을 텐데, 왜 저렇게 먼 데 있는 교회를 가르쳐 주십니까?’ 다시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경찰은 ‘예배를 드리고 나오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면 이 근처에 있는 교회들보다도 저쪽 교회에서 예배드리고 나오는 사람들의 얼굴이 훨씬 기쁘고 즐겁게 보였습니다. 나는 불신자이지만 그 교회가 은혜로운 교회이고 참된 교회인 것 같아서 소개한 겁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눈에도 은혜받은 얼굴과 은혜받지 못한 얼굴은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평안하고 기쁜 환경에서 나오는 감사보다 고통과 환난 가운데서 나오는 감사가 더욱 값진 감사입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6- 18)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4:4)

 
설령 우리의 삶에 많은 힘겨운 문제가 있을지라도 은혜받은 백성에게는 영혼에서부터 우러나오는 기쁨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싸우시며 우리 영혼을 즐겁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영혼에서부터 우러나오는 기쁨을 주변의 모든 사람들과 함께 나누며 살아야겠습니다.
 
기독교를 가리켜 소위 ‘희락의 종교’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우리의 소원이 성취되었을 때뿐만 아니라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에도 기뻐할 수 있는 종교가 바로 기독교라는 의미입니다. 더 나아가 이 말은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에 상관없이 항상 기뻐해야 하는 종교가 바로 기독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항상 기뻐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바로 우리가 ‘주 안에 있을 때’ ‘성령 안에 있을 때’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성령님께 사로잡혀 있을 때에 비로소 환경을 초월해서 ‘오직 주님’을 바라보게 되고 ‘천국’을 바라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령 충만을 받아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을 운명의 탓으로 돌리지 말고 그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나 늘 기뻐하고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케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롬15:13)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갈5:22)
‘우리가 우리 하나님 앞에서 너희를 인하여 모든 기쁨으로 기뻐하니’(살전3:9)



 
5. 하나님 나라 건설과 확장을 위해 우리가 할 일은 무엇입니까?
성도는 하나님 나라와 의를 확장할 사명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전도하기에 앞서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먼저 거듭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의 성품과 천성이 성령으로 새롭게 변화되어야 합니다. 자기가 먼저 변화되지 않고 남에게 전도하는 것은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것입니다. 결국은 둘 다 구덩이에 빠집니다.(마15:14) 지금 한국의 많은 교회가 세속화되었습니다. 교회 안에 사랑이 없고, 의와 평강과 기쁨을 찾기 어렵습니다. 말과 행함이 일치하지 않습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합니다. 외식하는 지도자들이 성행합니다. 교회와 목회자들이 먼저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으로 개혁되어야 합니다. 왜곡된 기독교 교리나, 세속적인 교회에서 교회확장을 위한 전도는 이단종교를 전파하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마23:15)

 
좁은 길, 의로운 길로 인도하여야 합니다.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성령의 9가지 열매가 나타나야 합니다.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열매가 나타나지 않는 전파는 오히려 하나님 나라를 훼방합니다. 그러므로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마3:10)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딤후4:1-5)

 
전도하는 방법은 다양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선한 모습을 통하여 그리고 서로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 전도하는 것이 바람직한 전도 방법입니다. 여러분은 핸드폰을 가지고 있지요? 여러분의 이웃에게 성경말씀을 매일 문자로 보내주시는 방법도 있습니다. 나 행한 것으로는 구원을 얻지 못하고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없습니다. 예수님으로 나의 구주 삼고 성령과 피로써 거듭나야 합니다. 주 예수님이 내 마음에 들어와 계신 후 변하여 새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천성문만 바라고 나가야 합니다. 내 주의 찬란한 성에 찬송하며 올라갑시다. 그래서 새 예루살렘 복된 집에서 주를 뵙고 주님 주시는 면류관 쓰고서 영원히 주를 높여 찬송하며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 기도: 영원히 영광 받으실 만복의 근원되신 주님, 아름다운 본향 천국을 바라보며 찬송을 부릅니다. 주 예수님 다스리시는 저 거룩한 곳은 이 땅의 가난과 슬픔, 어두움이 없는 곳이요 주님께서 나의 눈물을 씻어주시는 곳입니다. 그 영화롭고 아름다운 천국에서 주와 같이 영원히 살겠습니다. 내 마음이 주님 마음에 합한 자가 되게 하여주시고, 내가 주님의 기쁨이 되기를 원합니다. 내 마음의 주인이 되셔서 나를 다스리소서. 나의 몸과 마음 모두 드리오니 주여 받아주셔서 세상 살아갈 동안 하나님 나라와 의를 확장하는데 쓰임 받는 도구되게 하소서. 나는 주님 사랑하며 주님 인도하심 따라 어디든지 주를 따라 주와 같이 가겠습니다. 내 앞길 멀고 험해도 나 주님만 따라 가겠습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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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소중한 사람입니다. 댓글[0]
진리, 가치 (2013-09-08 오후 8:52:21) http://blog.somang.net/holylove/7958
당신은 소중한 사람입니다.
 

본문: 민6: 24- 26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저는 예전에 어떤 목사님으로부터 이런 예화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아들을 다섯이나 둔 어떤 사람이 아들이 하나도 없는 친구와 만나 저녁을 먹으면서 이런 저런 담소를 나누었답니다. 그러다가 아들이 하나도 없는 친구가 "자네는 복도 많구려. 아들이 다섯이나 되니 말이야. 그중 하나만 내게 줄 수 없겠나?" 라고 물었습니다. 아들 다섯 둔 사람은 웃으면서 "그래, 그렇게 하지. 우리 사이에 그것이 문제인가? 다섯 아들 중 하나를 줄 테니 자네 아들로 삼아 잘 키워보게나" 라며 엉뚱한 친구와 요청에 대답했습니다. 집에 돌아온 아들 다섯 둔 사람은 아내에게 친구와 만나서 나누었던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자 펄쩍 뛰며 아내는 "말도 안돼요. 절대 그럴 수 없어요" 라며 완강히 반대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이미 친구와 약속한 것이니 지켜야 한다고 우기며, 다섯 아들이 잠자고 있는 방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어떤 아들을 줄 것인지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한명씩 쳐다보면서, 첫째아들은 장남이라서 안되겠고 둘째아들은 다섯 아들 중에 제일 똑똑하고 지혜로우니 안되겠고, 셋째아들은 잘 생겼을 뿐더러 자기를 쏙 빼닮은 아들이라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넷째아들을 보니 그 아이는 늘 몸이 약해서 아플 때가 많았는데 준다고 하니 불쌍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막내아들을 보는 순간 눈물이 나면서 도저히 줄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순간 그는 하나님께서 여러 명도 아닌 단 하나뿐인 외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사실을 다시금 깊이 깨닫게 되었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여 외아들을 주시기까지 사랑한 소중한 존재입니다. 더구나 여러분과 똑같은 사람은 지구상에 한 명도 없습니다. 쌍둥이도 엄연히 틀립니다. 그러니 온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당신의 존재는 얼마나 소중합니까? 온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존재임을 기억합시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습3:17)

 
비록 당신이 죄를 짓거나 실패했어도 당신의 가치는 여전합니다.

어떤 세미나에서 한 강사가 20달러짜리 지폐를 높이 쳐들고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이 돈을 갖고 싶겠지요?"
그리고는 갖고 싶은 사람은 손을 들어 보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러자 세미나에 참석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손을 들었습니다. 강사는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저는 여러 분 중에 한 사람에게 이 돈을 드릴 생각입니다만 그전에 먼저 여길 주목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더니 갑자기 쳐들었던 20달러짜리 지폐를 마구 꾸겼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여러 분은 이 지폐를 갖기 원하십니까?"라고 물었는데, 역시 동일하게 많은 사람들이 손을 들었습니다. 그 강사는 "좋아요"라고 말한 다음 이번에는 그 20달러짜리 지폐를 바닥에 떨어뜨려 발로 밟고 더럽게 했습니다. 그리고 마구 꾸겨지고 더러워진 그 20달러 지폐를 집어 들고, 아직도 그 돈을 갖고 싶은지 물었습니다. 또다시 많은 사람들이 그렇다는 뜻으로 손을 들었습니다. 그런 후 그 강사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렸습니다.
 
"여러분은 여기서 한 가지 가치 있는 교훈을 배우게 됩니다. 제가 아무리 이 20달러짜리 지폐를 가지고, 마구 꾸기고 발로 밟고 더럽게 했을 지라도 그 가치는 줄어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20달러짜리 지폐는 항상 20달러의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인생에 있어 여러 번 바닥에 떨어지고, 밟히며, 더러워지는 일이 있습니다. 잘못된 결정에 의해서건, 환경에 의해서건 우리는 그런 일을 실제로 겪습니다. 그리고는 마치 자신이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느끼기도 합니다. 그러나 놀라운 사실은 당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건, 또 무슨 일이 일어나건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때 당신은 자신의 가치를 결코 잃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뿐만 아니라 당신의 부모나 가족에게 있어서 당신은 온 천하와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사람입니다.
이렇게 내가 소중한 사람이라면 마찬가지로 내 이웃도 소중한 존재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해야 합니다.

 
복음성가를 함께 부르겠습니다. ??

 
감사해요 깨닫지 못했었는데 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라는 걸 태초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의 사랑은 항상 날 향하고 있었다는 걸 고마워요 그 사랑을 가르쳐 준 당신께 주께서 허락하신 당신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더욱 섬기며 이제 나도 세상에 전하리라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그리고 그 사랑 전하기 위해
주께서 택하시고 이 땅에 심으셨네 또 하나의 열매를 바라시며 ??

 
마태복음 8장 5- 13절에 보면 한 백부장이 예수님께 나아가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괴로워하나이다 하며 고쳐주기를 원했습니다. 백부장은 자기 하인을 소중히 여겨 찾아온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이 번거롭게 내 집까지 오시지 말고 말씀만 하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백부장을 칭찬했습니다.
 
이처럼 내가 소중한 존재라면 내 이웃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마이클 잭슨의 강연 중 일부입니다.
 
약 12년전 Bad tour를 준비하던 중에 어느 소년과 부모가 저를 만나러 캘리포니아 주로 왔습니다 저와 제 음악을 매우 사랑한다고 말하던 그 소년은 안타깝게도 암으로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당시 아들이 얼마 살지 못할 것이며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부모의 말을 듣고 저는 소년에게 말했습니다
"3개월 후에 내가 사는 캔사스에서 오프닝공연을 할거야 네가 꼭 보러왔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건 뮤직비디오 찍을 때 입었던 재킷인데 너에게 줄게 "소년은 눈을 크게 뜨고 말했습니다 "이걸 저한테 주신다고요?" "그래 근데 말이지 반드시 이 옷을 입고 공연 보러 오겠다고 약속해야해 네가 이 재킷을 입고 또 장갑도 끼고 공연에 와줬으면 좋겠어 ".
저는 그렇게 말하고 소년에게 인조다이아몬드가 박힌 장갑 한쪽을 건넸습니다. 보통 때라면 절대 남에게 주지 않을 소중한 장갑이었지요. 하지만 어떻게든 그 아이에게 힘을 북돋아 주고 싶었기 때문에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제가 캔사스로 공연을 하러 갔을 때 소년은 이미 세상을 떠났더군요 부모는 아이에게 재킷과 장갑을 입혀서 함께 묻어주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때 그의 나이는 겨우 열 살이었습니다.
저는 그가 견디기 위해 최선을 다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아마 신께서도 잘아실겁니다. 그래도 위로가 되는 것은 죽기전에 소년이 부모에게 그리고 남이나 다름없는 제게 사랑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 사랑이 있었기에 자신이 세상에 혼자오지 않았음을 또 가는 길 또한 혼자가 아님을 분명 느꼈을 테지요.
만일 세상에 태어나서 다른 사람의 사랑을 느끼고 세상을 떠나는 순간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은 어떠한 문제와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마25:40)

 
유명한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마이클 코스타 경이 하루는 오케스트라의 연습을 시키고 있을 때 일어났던 이야기입니다. 오케스트라 단원의 한 사람인 피콜로 주자가 연주하다가 옆을 보니 트럼펫 부는 사람은 크고 높은 음들을 웅장하게 잘 내고, 뒤를 보니 드럼을 치는 사람도 신나게 한몫을 단단히 하는 것 같고, 앞에서는 바이올린도 그 아름다운 선율로 자랑하는데, 나는 도대체 이 조그만 악기로 빈약한 소리만을 내고 있으니 불어보았자 들리지도 않을걸 차라리 없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하고 피콜로를 불지 않고 부는 시늉만 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 순간 마이클 코스타 경은 지휘하다가 말고 전 오케스트라를 중지시키고"피콜로는 어디 있지?" 하면서 질문을 하였다고 합니다. 모인 청중이야 어느 파트인지 큰 것 작은 소리를 분간할 수가 없다지만 지휘자의 귀는 다릅니다. 훌륭한 오케스트라가 되는 것은 큰 악기나 아름다운 바이올린 소리만 가지고는 안됩니다. 꽝꽝 울리는 소리와 미미한 모기 같은 소리 모두가 조화될 때 하나의 웅장하고 감동적인 음악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지휘자는 여러 사람이 입을 열어 불지만, 불고 불지 않는 것 모두를 듣고 있고 세미하게 주시하고 있으므로 알게 되어 있습니다. 종종 우리 인간들의 잘못된 생각은 나 하나쯤 안 하면 어때, 나 같은 인간이야 무슨 힘이 있나 자포자기하는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내 몸에 수천 수만 가지의 혈관이 있고 세포들이 있는데 하나의 세포. 모세관이 터지거나 막히면 몸 천체가 마비되고 사망하는 데 이릅니다. 단체란 한 사람이 귀한 것입니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라도 나에게 주어진 의무와 사명, 책임이 있는 법입니다. 나 하나쯤 소홀히 생각하는 사람은 어느 단체에서나 무용한 자이며 이런 사람이 끼어 있는 단체는 무너지고 맙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가장 작은 일에 충성한 자가 큰 일에도 충성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사람의 몸에는 많은 지체가 있습니다. 눈, 코, 귀, 입, 손, 발, 염통, 간, 맹장 등입니다. 그런데 이 중에는 평소 하찮게 여기는 지체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것을 잃을 경우 병신이 되거나 심지어 목숨을 잃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데 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데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데없다 하거나 하지 못하리라 이뿐 아니라 몸의 더 약하게 보이는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고전12:21-23) 하였습니다.
‘이제부터는 그를 종으로서가 아니라 종 이상의 사랑하는 형제로 대해 주시오. 나에게 이처럼 소중한 그는 종으로서, 주님을 믿는 형제로서 그대에게 더욱더 소중할 것입니다.’(몬1:16)

 
깊은 산 오솔길 옆에 자그마한 연못 하나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더러운 물만 고이고 아무것도 살고 있지 않지만, 옛날에는 이 연못에 예쁜 붕어 두 마리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두 붕어는 서로 물어뜯고 싸움을 했습니다.
 
결국은 한 마리가 죽어 물 위에 떠오르고, 그 죽은 붕어의 살은 썩어 들어갔습니다. 그러자 연못의 물도 같이 따라 썩어 들어갔습니다. 이긴 줄 알았던 붕어, 영원히 혼자서만 잘 살 줄 알았던 붕어가 썩은 물을 먹게 되자 얼마 후에 그 붕어도 죽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깊은 산 오솔길 옆 자그마한 연못엔 지금은 더러운 물만 고이고 아무것도 살지 않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남을 사랑하는 자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고, 남을 돕는 것이 남만을 돕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자기 자신을 돕는 것이란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은 반대의 경우에도 타당하다고 생각됩니다. 즉 다른 사람을 미워하는 것이 결국은 나 자신을 미워하는 것이요, 남을 죽이면 결국 나도 죽는다는 사실입니다. 극심한 생존경쟁의 세상에서 남을 죽여야 내가 산다는 말이 진리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우리 모두가 다 잘살기 위한 길은 우리 모두가 서로 남을 잘살게끔 도와주는 길입니다. 이 길이 아니고서는 살길이 없습니다.
‘각기 이웃을 도우며 그 형제에게 이르기를 너는 힘을 내라 하고’(이사야 41:6)

 
어떤 동산에 두 그루의 나무가 있었습니다. 나무 한 그루는 크고 나뭇잎도 무성했고, 그 옆에 서있는 친구 나무는 키가 작고 가지도 나약해서 "저 키가 큰 나무 때문에 햇빛을 못 받아서 내 키는 자라지 않는 거야. 저 나무가 없었다면 훌륭히 자랄 수 있을 텐데. 저 나무는 크기만 크지 쓸모도 없고 나에겐 해만 되는군!"하고 불평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무꾼이 그곳을 지나가게 되자 작은 나무는 큰 나무를 도끼로 찍어 가져가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큰 나무가 나무꾼의 도끼에 찍혀 넘어져버리자 작은 나무는 기뻐하면서 '나는 이제 멋지게 자랄 수 있겠지'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늘이 되어주고 바람막이가 되어주던 큰 나무가 없어지자 뜨거운 햇빛과 세찬 바람에 작은 나무는 견딜 수가 없어서 쓰러져 버렸습니다.

우리가 잘 느끼지 못하고 감사할 줄 모르고 살지만 사실 우리 주위에 있는 모든 것들은 서로 도와가며 살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우리가 쓸모없다고 생각하고 귀찮아하고 손가락질하고 놀릴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조금 뒤떨어진다고 생각되는 사람을 격려하고 용기를 줄 때에 우리 자신 역시 아름답게 잘 자랄 수가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나 자신을 소중히 여기듯이 이웃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을 하나님은 사랑하시고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생명뿐 아니라 귀중한 물건은 그것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사람들의 것입니다.
아무쪼록 당신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사람임을 잊지 말고 또한 내가 소중하듯 내 이웃도 소중히 여기시기를 기원합니다.

 
* 기도: 사랑의 하나님, 가장 소중하고 귀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물질이 최고의 가치가 아님을 사람들이 깨닫게 하소서. 내가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의 성전임을 알고 내 몸을 소중히 여기고 아울러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여 이웃을 세워 주며 이웃에게 기쁨을 주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마땅히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외면하지 않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 묵상 및 토의
 
0 소중하게 여김을 받았을 때와 하찮게 취급받았을 때의 경험을 말해 봅시다.
0 나를 소중하게 여기며 사랑해 준 사람이 있었나요? 나는 누구를 소중하게 여기며 사랑해 주었나오?
0 예수님은 하인을 소중하게 여긴 백부장의 간청을 들어주어 하인의 병을 낫게 해 주었습니다. 나도 예수님께 소중한 존재입니다.

 
* 갈릴리 공동체 http://cafe.daum.net/Galileecommunity
(http://blog.naver.com/allc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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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댓글[0]
천국, 지옥, 낙원 (2013-09-03 오후 5:05:43) http://blog.somang.net/holylove/7954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본문: 사도행전 1: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교회와 우리의 가장 큰 사명은 하나님 나라 확장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는 꼭 죽어서만 가는 나라가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는 이 땅에서도 이루어져야 합니다.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17:21)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6: 9, 10)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14: 17)

 
먼저 하나님 나라는 어떤 곳입니까?
 
첫째.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이 다스리는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왕(주인)은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 이외에 다른 우상이 존재하지 않는 나라입니다. 돈, 권세, 사람(자식, 지도자) 등을 우상으로 섬기는 자는 갈 수 없고, 오직 하나님 제일주의로 사는 사람만이 갈 수 있는 나라입니다.(마10:37, 막10:15, 마6:33)

 
둘째, 하나님 나라는 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불의와 죄악이 없는 나라입니다. 악인과 죄인은 들어갈 수 없는 나라입니다.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고전6:9, 10)
하나님 나라는 회개하고 복음을 믿는 의로운 자만 들어가는 곳입니다(막1:15, 롬4:6-8).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창15:6)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시32:1)
 
돈과 장수, 성공한 자가 행복하고 복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와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가 복이 있습니다.(마5:6, 10)

 
셋째, 하나님 나라는 평강의 나라입니다.
미국의 어느 돈 많은 부자가 잭슨이라는 흑인 아주머니를 가정부로 두고 있었습니다. 이 부자는 돈 문제도 있었지만 가정 문제도 복잡했습니다. 그래서 항상 다투고 근심하여 수면제를 먹어야 잠을 이루고 술을 마셔야 하는 형편이었는데, 잭슨이라는 아주머니는 언제나 평안하고 찬송하며 명랑했습니다. 주인이 물어봤습니다.
“나는 이렇게 돈이 많아도 걱정이 많은데 아주머니는 남의 집에 살면서 늘 기쁘니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아주머니가 대답했습니다. “나는 당신처럼 돈이 없으니 잃어버릴 염려 없고, 집이 없으니 불이 날까 걱정 없고, 명예가 없으니 누가 나에게 욕할까 하는 걱정이 없고, 이미 병들어 죽을 몸이니 건강 때문에 걱정할 것 없고, 이제 다시 아프면 불편한 몸 벗어버리고 하나님께로 가니 아무 걱정도 없고, 아무 소원도 없습니다.”
내 주 예수 모신 곳은 그 어디나 하늘나라입니다. 주님과 함께 하면 슬픔은 사라지고 기쁨만 가득하게 됩니다. 주님의 평안을 누리십시오.(시29:11)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골3:15)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14:27).

 
넷째, 하나님 나라는 희락의 나리입니다.
미국의 어느 도시를 여행하던 사람이 주일이 되어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교통경찰에게 교회를 좀 가르쳐 달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경찰은 멀리 보이는 한 교회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가까운 곳에도 교회가 있을 텐데, 왜 저렇게 먼 데 있는 교회를 가르쳐 주십니까?’ 다시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경찰은 ‘예배를 드리고 나오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면 이 근처에 있는 교회들보다도 저쪽 교회에서 예배드리고 나오는 사람들의 얼굴이 훨씬 기쁘고 즐겁게 보였습니다. 나는 불신자이지만 그 교회가 은혜로운 교회이고 참된 교회인 것 같아서 소개한 겁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눈에도 은혜받은 얼굴과 은혜받지 못한 얼굴은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평안하고 기쁜 환경에서 나오는 감사보다 고통과 환난 가운데서 나오는 감사가 더욱 값진 감사입니다. 설령 우리의 삶에 많은 힘겨운 문제가 있을지라도 은혜받은 백성에게는 영혼에서부터 우러나오는 기쁨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싸우시며 우리 영혼을 즐겁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영혼에서부터 우러나오는 기쁨을 주변의 모든 사람들과 함께 나누며 살아야겠습니다.(시40:16, 빌4:4, 살전5:16)
 
다섯째, 하나님 나라는 사랑의 나라입니다.
어떤 사람이 천국과 지옥에서 식사하는 풍경을 구경하게 되었습니다. 음식이나 환경이 전혀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상하게도 천국과 지옥에서 먹는 음식은 모두 같았습니다. 그리고 굉장히 긴 젓가락을 쓰는 것도 같았습니다. 밥 먹는 시간이 되자 드디어 천국과 지옥의 차이점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지옥에서는 밥을 먹으려고 긴 젓가락으로 음식을 각자 자기 입에 넣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긴 젓가락 때문에 먹을 수가 없어 서로 짜증을 내며 아우성이었습니다. 그런데 천국에서는 그 긴 젓가락으로 맞은 편에 앉아 있는 사람을 다정하게 먹여 주면서 식사하는 것이었습니다. 보기에도 너무도 평화롭고 즐거운 식사시간이었습니다.(눅14:15)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하나님은 사랑이 있는 곳에 함께 하십니다. 사랑이 없는 곳이 곧 지옥입니다.

 
만약 교회와 내 안에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 없다면 이는 죽은 교회요 죽정이 교인입니다. 내가 출석하는 교회는 과연 의와 평강과 희락이 가득합니까? 아니면 청년들이 세상에서 창업하듯이 목회자가 자신의 목회 사업을 위해 세워진 교회입니까? 모든 교회가 하나님 나라 확장에 쓰임받는 것이 아닙니다. 좁은 길이 있고, 넓은 길도 있습니다. 주여! 주여! 부른다고 다 구원 얻는 것이 아닙니다. 거듭나야 합니다. 내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과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 가득해야 합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3:3-5)

 
유명한 어거스틴의 책 가운데 ‘신의 도성’ 이라는 불후의 명작이 있습니다. 그가 이 책을 쓰게 된 동기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습니다. 신성 로마 제국은 당시로 보면 절대로 멸망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도끼를 휘두르면서 벌거벗은 채로 쳐들어오는 야만인 오트족한테 로마는 함락됩니다. 아우성과 화염 속에서 거대한 로마성이 무너지는 순간에 어거스틴은 굉장한 고민을 합니다. 어찌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이 나라가 무너지고, 저 야만인들이 점령하게 되는가? 그 때 모든 기독교인들이 고민을 합니다. 여기서 어거스틴은 유명한 역사관을 내어놓게 됩니다. ‘사람이 세운 이 세상 나라는 무너진다. 무너지면서 동시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진다.’ 무너지는 로마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건설되어 가는 것을 그는 바라볼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칠흙같은 캄캄한 어두움이 있습니다. 이 어두움을 치른 후에야, 아침 여명이 밝아오는 것을 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역사관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 가 어떻게 이루어집니까? 우리는 때로 어린이들로부터 질문을 받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어디 있어요?'
그때 여러분은 어떻게 대답하십니까?
"저 하늘에 있단다."
"하나님 나라는 네 마음에 있단다."
이런 답을 하십니까? 그러나 그 어린 아이가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있을 때, 어떤 답은 거짓말일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나라는 어디에 이루어지는 것일까요?

 
1.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곳에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장소의 개념이 아니라 통치의 개념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하나님 나라(Kingdom of God) 사상은 하나님의 지배라는 뜻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능력 있는 통치를 말합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을 떠나 사탄의 손에 빠져 있는데, 하나님의 지배가 임하시는 때, 사탄과 그 아래 있는 모든 악의 세력을 물리치고, 사랑과 의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집니다.
 
에덴 동산이라 할지라도 범죄함으로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할 때, 그곳은 더 이상 하나님의 나라일 수 없습니다. 그가 타락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사탄의 말을 들을 때, 사탄이 대신 ‘이 세상 임금’으로 되었습니다(마 4:8-10, 요 14:30). 하나님 말씀이 다스리지 않은 곳은 더 이상 하나님의 나라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아담을 에덴을 떠나야 합니다.
 
노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방주를 지었을 때, 그 말씀대로 지어진 방주는 하나님의 나라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이 그 방주를 어떻게 할 수 없었던 까닭은 그 방주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지어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있는 방주는 심판이 범할 수 없는 것입니다.
 
다윗이 하나님께로부터 택정되고(삼상 16:1-13), 다윗이 하나님께 순종할 때, 하나님의 나라가 다윗과 그의 후손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후손에 의해 통치될 나라를 약속하셨습니다. 그는 참 사람이며 또는 ‘임마누엘(하나님이 함께 계심),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강의 왕)입니다(행15:14-17).
다니엘과 세 친구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때, 그가 풀무불에 들어가도, 사자굴에 들어가도 그곳은 하나님의 나라일 수 있습니다. 사자도 풀무불도 그들을 상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곳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들 가운데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1:15)는 말씀으로 설교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통치가 온전히 시작된 것입니다. 예수의 임함과 함께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여 ‘교회’의 주인이시며 머리가 되셨습니다. 살아계셔서 통치하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형태로선, 임하지 않습니다(눅17:20, 21, 롬14:17).
 
그러나 참된 그리스도 신자는, 현재, 지상에 있어서, 하나님 나라의 통치를 받습니다. 이런 의미에 있어서 하나님의 나라는 성도 안에서 현재, 지상에 임한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현장이 척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너무 낙심하지 마십시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한 그곳은 하나님의 나라일 수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 나라는 제자들의 복음전파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예수께서 열 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세를 주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내어 보내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내어 보내시며’(눅9:1, 2)
 
여기서 부터 갈릴리 3차 전도 사역이 시작됩니다. 하나님 나라의 꿈을 감당할 수 있는 사명자로 부르신 것입니다. 그 사명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제자들로 하여금 천국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열두 명의 제자를 불러 모아서 세상에 파송하십니다. 그들은 당시에 연약한 자들입니다. 그러나 2천년이 지난 오늘 돌이켜 볼 때, 그보다 값진 결단이 없습니다. 그들보다 존경받는 사람이 없습니다. 부르시고 보내신 그들의 생애에 하나님께 순종하여 나아간 그들의 삶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이 열두 제자들은 세상에서 어부였습니다. 세리였습니다. 갈릴리 지역의 평범한 백성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그들은 하나의 새로운 신분을 더 부여받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꾼 신분으로 부름을 받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원인 것입니다. 로마 식민지 국가의 무엇이 아닙니다. 유대 갈릴리 지역의 어부나 세리가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의 한 구성원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원이 된다는 것은 참으로 복된 특권입니다. 모세는 그 일원의식을 가진 사람입니다.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히11:24- 26) 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내어 가나안 땅에 내어 보내셨습니다. 아브라함은 그곳에서 말씀에 순종하심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동참합니다. 아브라함이 말씀을 좇아갈 때, 그곳은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채색 옷을 입고 사랑을 받는 아버지의 품으로부터 불러내어 애굽의 군대장관 보디발의 집에서 종살이를 하고, 또 옥살이를 하게 하십니다. 요셉은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통치권을 인정함으로 그가 가는 곳은 감옥이라 할지라도, 감옥이 변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28: 19- 20)

 
3.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만 의지하는 곳에 이루어집니다.
요즈음에는 선교사를 파송할 때 보면, 일종의 형식이 있습니다. 신학교육과 목사 안수 등의 자질과 신분을 갖춥니다. 선교지의 정보를 모아 교육합니다. 선교비를 확보합니다. 선교사 파송식을 가집니다. 이런 신중한 절차를 따라서 선교사를 파송합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 좀 색다릅니다. 그냥 12명의 제자를 '불러모아 내어 보냅니다.' '세상에 던져버렸다!'는 표현과 같습니다.'이르시되 `여행을 위하여 아무 것도 가지지 말라 지팡이나 주머니나 양식이나 돈이나 두벌 옷을 가지지 말며'(눅9:3, 막6:8)
 
우리가 파송함을 받은 그 당시의 제자라면, 이런 말씀을 들을 때, 어떤 생각을 하겠습니까? 두둑하게 선교비를 주신 것도 아니요, 비자카드라도 만들어 주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아닙니다. 아무런 보장이 없이 세상에 보내시는 예수님의 제자 파송은 요즈음 선교 관점에서 보기에는 참 너무하신다는 생각이 스쳐가지 않습니까?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는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일입니다. 전도자로 파송되어 길을 떠나는 사람들에게는 필수적으로 있어야 할 여행 장비들이 있습니다. 여행 경비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숙식을 위한 기본적인 의류나 식량, 또 험로를 대비한 지팡이 따위가 그것입니다. 특히 오늘날같이 도로 사정이 좋지 못하고 교통 통신 수단이 발달하지 못한 당시에는 더욱 그러했습니다. 그런데도 주님께서는 이러한 여행에 필요한 장비들을 일체 금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왜 그처럼 보편적으로 여행에 필수적으로 사용되는 장비들을 금하셨을까요?
 
첫째, 하나님만을 의지하게 하려는 의도 때문이었습니다.
'지팡이를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지팡이는 거친 들에서 여행자를 보호하기도 하고 높은 곳을 오르는 데 큰 힘이 되어 줍니다. 그리고 어쩌다 넘어졌을 경우 용이하게 일어설 수 있도록 해줍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이러한 지팡이 소지를 금하셨습니다. 복음 전도자는 오로지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가 의지해야 할 것은 지팡이가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다윗도 내게 부족함이 없노라고 노래하였습니다.
 
둘째, 주머니나 양식이나 돈이나 두 벌 옷 역시 여행자에게 빼놓을 수 없는 필수품입니다. '양식'이 없어 배를 곯습니다. '돈' 또한 생활 필수품입니다. '주머니'란 요즈음 여행가방 정도입니다. 여기에 여행에 필요한 것들을 담습니다. '두 벌 옷' 정도는 여행하는데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주님은 이 모든 필수품들을 의지하지 말라 명하십니다. 이는 우리가 보기에 일차적인 필수품이지만, 하나님 나라 측면에서 보면, 2차적인 문제입니다. 그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면 이 모든 것은 주님께서 책임지시겠다는 말씀이지요. 이 모든 필수품이 되어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책임지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양식'이 주린 영혼을 채우지 못합니다. '돈'으로 그 나라를 살 수 없습니다. '주머니'에 영혼의 양식을 담을 수 없습니다. '두 벌 옷'도 벌거벗은 영혼을 가릴 수는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나라는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께서 채워 주십니다.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하나님의 나라를 세울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셨을 때, 모세는 몇 번이고 망설입니다. 이름도 주시고, 이적도 주시지만 '주여, 보낼만한 자를 보내소서!' 합니다. 대 선지자 예레미야의 경우도 이런 망서림이 있습니다.
‘내가 너를 복 중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내가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이라 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렘1:5- 7)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 파송은 하나님나라의 일원으로 제자들을 세상에 세우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대사로 이 세상에 파송하셨습니다. 그리고 책임지십니다. 이것이 귀합니다. 예수님의 정체를 알고 싶어하는 헤롯의 태도로 보아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의 활동이 매우 활발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능력과 권세는 하나님께서 주신 힘이었습니다. 그들이 가진 권세는 세상 사람들이 갖지 못한 것으로 그 능력을 시행할 권리이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는 열 두 제자들의 사역은 예수님 행하시던 사역의 연장이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할 일이 있습니다. 나 같은 죄인이 용서함 받고 하나님 나라 확장의 일원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욱 감사한 것은 하나님 나라에서 그 일꾼으로 부름 받아 그 일을 감당할 힘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 일을 감당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실 때, 어두움의 권세가 떨게 됩니다.
 
예수님의 명성은 팔레스틴 전역에 퍼져 어떤 사람은 세례 요한이 다시 살아났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엘리야가 나타났다고도 하며, 또 어떤 사람은 옛 선지자 중에서 한 사람이 살아났다고도 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분봉왕 헤롯은 매우 당황했습니다. 그가 당황한 것은 일차적으로 세례 요한이 다시 살아났다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분봉왕 헤롯은 대 헤롯의 아들로서 세례 요한을 죽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왕권의 새로운 시작이 그를 본능적으로 위협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분봉왕 헤롯은 어두운 권세자의 표상적 인물입니다. 그는 에돔인으로서 당시 유대 사회의 권력을 관장하고 있던 사두개 교도였으므로 죽은자의 부활 같은 것은 전혀 믿지 않는 현실주의자였습니다. 그러나 자기의 통치 관할 구역인 갈릴리에서 예수의 명성이 높아가고 그를 추종하는 백성들이 많아지자 예수에 대한 두려움을 갖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갈릴리 지방에서 많은 기적을 일으키셨으며, 그의 제자들도 놀라운 일을 행하자 그 소문은 즉시 헤롯에게로 전해졌습니다. 그리하여 어두움의 권세도 떨고 있습니다.
 
워나메이커는 미국 제23대 대통령 벤자민 해리슨 정부의 내각요원으로서 체신부 장관을 역임하며 큰 발전과 공헌을 한 사람입니다. 또한 워나메이커는 미국의 백화점을 초기에 본격적으로 운영했던 백화점 왕으로서 크게 성공한 사람이었을 뿐 아니라 크리스천으로서 아주 훌륭한 생활과 헌신을 한 사람입니다. 한번은 어떤 사람이 워나메이커 체신장관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워나메이커씨, 당신은 그 큰 사업에 바쁠 뿐만 아니라 체신장관의 업무를 수행하고 또 다른 일들이 많을 터인데 어떻게 4천명의 주일학교 학생들을 다루는 주일학교 교장직을 감당할 수 있습니까?’
그러자 워나메이커는 정색을 하고 답변하였습니다. ‘무슨 말씀을! 주일학교가 나의 정작 본 사업입니다. 그 외의 다른 일들은 그저 일들입니다. 나는 이미 45년 전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의 말씀을 확실히 깨닫고 믿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하여 성령의 은사를 받아야 합니다.
 
본문 말씀을 다시 읽겠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1:8)
그런데 성령의 은사를 받고 거기에 머무르고 안주하면 하나님께 버림을 받습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7: 23- 25)
 
성령의 은사와 능력을 받았어도 복음전파와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사용하지 않으면 도리어 화가 있습니다. 마25장 14- 30절에 나오는 달란트 비유를 아시지 않습니까? 1달란트 받은 사람은 땅에 묻어 두었다가 바깥 어두운 데로 쫓겨나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했습니다.
 
저는 방언과 예언과 환상과 치유의 역사 등을 볼 수 있는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는 교회가 있다고 해서 가본 적이 있습니다. 성도가 20여명 정도되는 교회인데 성도의 대다수가 방언을 하고 환상을 보고 하나님의 계시를 듣는 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이 이러한 성령의 능력을 맛보는 데 그치고 교회 안에 의와 평강과 희락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없고,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서는 힘쓰고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물론 그들도 전도에 힘쓰고 있으나 그 전도는 교인수 확장을 위해 하는 것이지 진정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비단 이 교회뿐만 아니라 많은 기존의 교회가 하나님 나라가 어떤 것인지 조차 모르고 전도하고 있습니다. 특히 교역자(인간) 중심의 교회는 하나님 나라 확장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왕과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내 안에 하나님 나라가 임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나의 주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내 자신이 주인이 되거나 인간이거나 물질이나 우상이라면 하나님 나라와는 거리가 멉니다. 이런 교회로 전도한다고 하나님 나라가 확장됩니까? 내게 성령의 은사와 능력을 주신 목적과 본질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받은 은사와 능력을 통해 하나님을 진정으로 왕으로 모신 곳으로 불신자를 인도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 확장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오순절 성령의 은사를 받고 제일 처음 한 것이 의와 평강과 희락의 공동체를 이루었습니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2: 42- 47)
 
그리고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복음전파에 힘썼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서 내 것을 희생하며 동행하고 따르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누가복음 8장 2-3절을 보면, "또한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 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 곧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와 또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또 수산나와 다른 여러 여자가 함께 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저희를 섬기더라."고 말씀합니다. 누가는 ‘여인들이 자신들의 소유로 예수 그리스도를 섬겼다.’는 말을 강조합니다.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 고침으로 치유받고 주님을 따른 여인들은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여인들이 주의 능력으로 치유되어 자신의 소유로 주님을 섬기며, 주의 나라 확장에 기여했습니다.
 
하나님 나라 확장은 그냥 가만히 있는 데 이루어지 않습니다. 기도만 한다고 이루어지지 않고, 기도한 만큼 내가 희생하고 손해 볼 때 이루어집니다. 열정만 있어도 안 됩니다. 내 것을 드리는 헌신과 희생이 필요합니다. 실제로 주의 나라가 확장되는 역사를 보면, 많은 신앙인들이 물질과 명예를 버리고, 가족과 생명까지 버리며 헌신하였습니다. 내 것을 주장하면서 하나님의 나라는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어떻게 섬겨야 합니까? 제자들 중 일부, 또는 여인 중 몇 명의 헌신으로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나라 확장은 헌신된 개개인이 하나가 되어 사역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8장에 등장하는 인물을 보면, 모두 복수형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열 두 제자, 어떤 여자들, 다른 여러 여자! 예수님을 제외한 한 단어도 단수형으로 되어 있지 않습니다.
주님을 만나기 전에 이들의 삶은 참으로 열악하고 쉽지 않았습니다. 많은 여인들이 귀신이 들려서 고생하였고, 각종 질병으로 앓았던 경험이 있습니다. 사도들을 보아도, 어떤 이는 세리출신이고, 어떤 이는 어부 출신이었고, 어떤 이는 열심당원 출신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만나고, 그들의 삶이 주님께 온전히 헌신합니다. 그리고 이처럼 헌신된 개개인이 하나가 될 때, 결국 주의 나라가 힘 있게 확장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의 은사와 능력을 주신 것은 자신의 명예를 높이고 자랑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고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쓰라고 주셨다는 것을 항상 명심해야 합니다. 내가 받은 은사와 능력을 오직 하나님께 영광돌리고 하나님 나라 확장하는데 사용하시기를 축원합니다.

 
* 기도: 하나님 아버지, 아버지의 나라가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갈릴리 공동체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공동체가 되고, 우리 모두가 세상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도록 영육간에 복주시고 하나님 나라 확장에 쓰임 받는 성도되게 하옵소서. 갈릴리 공동체를 통하여 병든 자가 치료받게 하시고 낙심가운데 있는 자가 기쁨과 소망을 갖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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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 지옥, 낙원 (2013-09-03 오후 5:05:42) http://blog.somang.net/holylove/7953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본문: 사도행전 1: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교회와 우리의 가장 큰 사명은 하나님 나라 확장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는 꼭 죽어서만 가는 나라가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는 이 땅에서도 이루어져야 합니다.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17:21)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6: 9, 10)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14: 17)

 
먼저 하나님 나라는 어떤 곳입니까?
 
첫째.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이 다스리는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왕(주인)은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 이외에 다른 우상이 존재하지 않는 나라입니다. 돈, 권세, 사람(자식, 지도자) 등을 우상으로 섬기는 자는 갈 수 없고, 오직 하나님 제일주의로 사는 사람만이 갈 수 있는 나라입니다.(마10:37, 막10:15, 마6:33)

 
둘째, 하나님 나라는 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불의와 죄악이 없는 나라입니다. 악인과 죄인은 들어갈 수 없는 나라입니다.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고전6:9, 10)
하나님 나라는 회개하고 복음을 믿는 의로운 자만 들어가는 곳입니다(막1:15, 롬4:6-8).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창15:6)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시32:1)
 
돈과 장수, 성공한 자가 행복하고 복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와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가 복이 있습니다.(마5:6, 10)

 
셋째, 하나님 나라는 평강의 나라입니다.
미국의 어느 돈 많은 부자가 잭슨이라는 흑인 아주머니를 가정부로 두고 있었습니다. 이 부자는 돈 문제도 있었지만 가정 문제도 복잡했습니다. 그래서 항상 다투고 근심하여 수면제를 먹어야 잠을 이루고 술을 마셔야 하는 형편이었는데, 잭슨이라는 아주머니는 언제나 평안하고 찬송하며 명랑했습니다. 주인이 물어봤습니다.
“나는 이렇게 돈이 많아도 걱정이 많은데 아주머니는 남의 집에 살면서 늘 기쁘니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아주머니가 대답했습니다. “나는 당신처럼 돈이 없으니 잃어버릴 염려 없고, 집이 없으니 불이 날까 걱정 없고, 명예가 없으니 누가 나에게 욕할까 하는 걱정이 없고, 이미 병들어 죽을 몸이니 건강 때문에 걱정할 것 없고, 이제 다시 아프면 불편한 몸 벗어버리고 하나님께로 가니 아무 걱정도 없고, 아무 소원도 없습니다.”
내 주 예수 모신 곳은 그 어디나 하늘나라입니다. 주님과 함께 하면 슬픔은 사라지고 기쁨만 가득하게 됩니다. 주님의 평안을 누리십시오.(시29:11)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골3:15)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14:27).

 
넷째, 하나님 나라는 희락의 나리입니다.
미국의 어느 도시를 여행하던 사람이 주일이 되어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교통경찰에게 교회를 좀 가르쳐 달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경찰은 멀리 보이는 한 교회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가까운 곳에도 교회가 있을 텐데, 왜 저렇게 먼 데 있는 교회를 가르쳐 주십니까?’ 다시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경찰은 ‘예배를 드리고 나오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면 이 근처에 있는 교회들보다도 저쪽 교회에서 예배드리고 나오는 사람들의 얼굴이 훨씬 기쁘고 즐겁게 보였습니다. 나는 불신자이지만 그 교회가 은혜로운 교회이고 참된 교회인 것 같아서 소개한 겁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눈에도 은혜받은 얼굴과 은혜받지 못한 얼굴은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평안하고 기쁜 환경에서 나오는 감사보다 고통과 환난 가운데서 나오는 감사가 더욱 값진 감사입니다. 설령 우리의 삶에 많은 힘겨운 문제가 있을지라도 은혜받은 백성에게는 영혼에서부터 우러나오는 기쁨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싸우시며 우리 영혼을 즐겁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영혼에서부터 우러나오는 기쁨을 주변의 모든 사람들과 함께 나누며 살아야겠습니다.(시40:16, 빌4:4, 살전5:16)
 
다섯째, 하나님 나라는 사랑의 나라입니다.
어떤 사람이 천국과 지옥에서 식사하는 풍경을 구경하게 되었습니다. 음식이나 환경이 전혀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상하게도 천국과 지옥에서 먹는 음식은 모두 같았습니다. 그리고 굉장히 긴 젓가락을 쓰는 것도 같았습니다. 밥 먹는 시간이 되자 드디어 천국과 지옥의 차이점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지옥에서는 밥을 먹으려고 긴 젓가락으로 음식을 각자 자기 입에 넣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긴 젓가락 때문에 먹을 수가 없어 서로 짜증을 내며 아우성이었습니다. 그런데 천국에서는 그 긴 젓가락으로 맞은 편에 앉아 있는 사람을 다정하게 먹여 주면서 식사하는 것이었습니다. 보기에도 너무도 평화롭고 즐거운 식사시간이었습니다.(눅14:15)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하나님은 사랑이 있는 곳에 함께 하십니다. 사랑이 없는 곳이 곧 지옥입니다.

 
만약 교회와 내 안에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 없다면 이는 죽은 교회요 죽정이 교인입니다. 내가 출석하는 교회는 과연 의와 평강과 희락이 가득합니까? 아니면 청년들이 세상에서 창업하듯이 목회자가 자신의 목회 사업을 위해 세워진 교회입니까? 모든 교회가 하나님 나라 확장에 쓰임받는 것이 아닙니다. 좁은 길이 있고, 넓은 길도 있습니다. 주여! 주여! 부른다고 다 구원 얻는 것이 아닙니다. 거듭나야 합니다. 내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과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 가득해야 합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3:3-5)

 
유명한 어거스틴의 책 가운데 ‘신의 도성’ 이라는 불후의 명작이 있습니다. 그가 이 책을 쓰게 된 동기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습니다. 신성 로마 제국은 당시로 보면 절대로 멸망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도끼를 휘두르면서 벌거벗은 채로 쳐들어오는 야만인 오트족한테 로마는 함락됩니다. 아우성과 화염 속에서 거대한 로마성이 무너지는 순간에 어거스틴은 굉장한 고민을 합니다. 어찌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이 나라가 무너지고, 저 야만인들이 점령하게 되는가? 그 때 모든 기독교인들이 고민을 합니다. 여기서 어거스틴은 유명한 역사관을 내어놓게 됩니다. ‘사람이 세운 이 세상 나라는 무너진다. 무너지면서 동시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진다.’ 무너지는 로마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건설되어 가는 것을 그는 바라볼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칠흙같은 캄캄한 어두움이 있습니다. 이 어두움을 치른 후에야, 아침 여명이 밝아오는 것을 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역사관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 가 어떻게 이루어집니까? 우리는 때로 어린이들로부터 질문을 받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어디 있어요?'
그때 여러분은 어떻게 대답하십니까?
"저 하늘에 있단다."
"하나님 나라는 네 마음에 있단다."
이런 답을 하십니까? 그러나 그 어린 아이가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있을 때, 어떤 답은 거짓말일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나라는 어디에 이루어지는 것일까요?

 
1.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곳에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장소의 개념이 아니라 통치의 개념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하나님 나라(Kingdom of God) 사상은 하나님의 지배라는 뜻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능력 있는 통치를 말합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을 떠나 사탄의 손에 빠져 있는데, 하나님의 지배가 임하시는 때, 사탄과 그 아래 있는 모든 악의 세력을 물리치고, 사랑과 의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집니다.
 
에덴 동산이라 할지라도 범죄함으로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할 때, 그곳은 더 이상 하나님의 나라일 수 없습니다. 그가 타락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사탄의 말을 들을 때, 사탄이 대신 ‘이 세상 임금’으로 되었습니다(마 4:8-10, 요 14:30). 하나님 말씀이 다스리지 않은 곳은 더 이상 하나님의 나라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아담을 에덴을 떠나야 합니다.
 
노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방주를 지었을 때, 그 말씀대로 지어진 방주는 하나님의 나라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이 그 방주를 어떻게 할 수 없었던 까닭은 그 방주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지어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있는 방주는 심판이 범할 수 없는 것입니다.
 
다윗이 하나님께로부터 택정되고(삼상 16:1-13), 다윗이 하나님께 순종할 때, 하나님의 나라가 다윗과 그의 후손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후손에 의해 통치될 나라를 약속하셨습니다. 그는 참 사람이며 또는 ‘임마누엘(하나님이 함께 계심),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강의 왕)입니다(행15:14-17).
다니엘과 세 친구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때, 그가 풀무불에 들어가도, 사자굴에 들어가도 그곳은 하나님의 나라일 수 있습니다. 사자도 풀무불도 그들을 상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곳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들 가운데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1:15)는 말씀으로 설교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통치가 온전히 시작된 것입니다. 예수의 임함과 함께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여 ‘교회’의 주인이시며 머리가 되셨습니다. 살아계셔서 통치하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형태로선, 임하지 않습니다(눅17:20, 21, 롬14:17).
 
그러나 참된 그리스도 신자는, 현재, 지상에 있어서, 하나님 나라의 통치를 받습니다. 이런 의미에 있어서 하나님의 나라는 성도 안에서 현재, 지상에 임한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현장이 척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너무 낙심하지 마십시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한 그곳은 하나님의 나라일 수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 나라는 제자들의 복음전파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예수께서 열 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세를 주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내어 보내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내어 보내시며’(눅9:1, 2)
 
여기서 부터 갈릴리 3차 전도 사역이 시작됩니다. 하나님 나라의 꿈을 감당할 수 있는 사명자로 부르신 것입니다. 그 사명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제자들로 하여금 천국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열두 명의 제자를 불러 모아서 세상에 파송하십니다. 그들은 당시에 연약한 자들입니다. 그러나 2천년이 지난 오늘 돌이켜 볼 때, 그보다 값진 결단이 없습니다. 그들보다 존경받는 사람이 없습니다. 부르시고 보내신 그들의 생애에 하나님께 순종하여 나아간 그들의 삶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이 열두 제자들은 세상에서 어부였습니다. 세리였습니다. 갈릴리 지역의 평범한 백성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그들은 하나의 새로운 신분을 더 부여받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꾼 신분으로 부름을 받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원인 것입니다. 로마 식민지 국가의 무엇이 아닙니다. 유대 갈릴리 지역의 어부나 세리가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의 한 구성원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원이 된다는 것은 참으로 복된 특권입니다. 모세는 그 일원의식을 가진 사람입니다.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히11:24- 26) 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내어 가나안 땅에 내어 보내셨습니다. 아브라함은 그곳에서 말씀에 순종하심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동참합니다. 아브라함이 말씀을 좇아갈 때, 그곳은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채색 옷을 입고 사랑을 받는 아버지의 품으로부터 불러내어 애굽의 군대장관 보디발의 집에서 종살이를 하고, 또 옥살이를 하게 하십니다. 요셉은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통치권을 인정함으로 그가 가는 곳은 감옥이라 할지라도, 감옥이 변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28: 19- 20)

 
3.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만 의지하는 곳에 이루어집니다.
요즈음에는 선교사를 파송할 때 보면, 일종의 형식이 있습니다. 신학교육과 목사 안수 등의 자질과 신분을 갖춥니다. 선교지의 정보를 모아 교육합니다. 선교비를 확보합니다. 선교사 파송식을 가집니다. 이런 신중한 절차를 따라서 선교사를 파송합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 좀 색다릅니다. 그냥 12명의 제자를 '불러모아 내어 보냅니다.' '세상에 던져버렸다!'는 표현과 같습니다.'이르시되 `여행을 위하여 아무 것도 가지지 말라 지팡이나 주머니나 양식이나 돈이나 두벌 옷을 가지지 말며'(눅9:3, 막6:8)
 
우리가 파송함을 받은 그 당시의 제자라면, 이런 말씀을 들을 때, 어떤 생각을 하겠습니까? 두둑하게 선교비를 주신 것도 아니요, 비자카드라도 만들어 주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아닙니다. 아무런 보장이 없이 세상에 보내시는 예수님의 제자 파송은 요즈음 선교 관점에서 보기에는 참 너무하신다는 생각이 스쳐가지 않습니까?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는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일입니다. 전도자로 파송되어 길을 떠나는 사람들에게는 필수적으로 있어야 할 여행 장비들이 있습니다. 여행 경비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숙식을 위한 기본적인 의류나 식량, 또 험로를 대비한 지팡이 따위가 그것입니다. 특히 오늘날같이 도로 사정이 좋지 못하고 교통 통신 수단이 발달하지 못한 당시에는 더욱 그러했습니다. 그런데도 주님께서는 이러한 여행에 필요한 장비들을 일체 금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왜 그처럼 보편적으로 여행에 필수적으로 사용되는 장비들을 금하셨을까요?
 
첫째, 하나님만을 의지하게 하려는 의도 때문이었습니다.
'지팡이를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지팡이는 거친 들에서 여행자를 보호하기도 하고 높은 곳을 오르는 데 큰 힘이 되어 줍니다. 그리고 어쩌다 넘어졌을 경우 용이하게 일어설 수 있도록 해줍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이러한 지팡이 소지를 금하셨습니다. 복음 전도자는 오로지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가 의지해야 할 것은 지팡이가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다윗도 내게 부족함이 없노라고 노래하였습니다.
 
둘째, 주머니나 양식이나 돈이나 두 벌 옷 역시 여행자에게 빼놓을 수 없는 필수품입니다. '양식'이 없어 배를 곯습니다. '돈' 또한 생활 필수품입니다. '주머니'란 요즈음 여행가방 정도입니다. 여기에 여행에 필요한 것들을 담습니다. '두 벌 옷' 정도는 여행하는데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주님은 이 모든 필수품들을 의지하지 말라 명하십니다. 이는 우리가 보기에 일차적인 필수품이지만, 하나님 나라 측면에서 보면, 2차적인 문제입니다. 그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면 이 모든 것은 주님께서 책임지시겠다는 말씀이지요. 이 모든 필수품이 되어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책임지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양식'이 주린 영혼을 채우지 못합니다. '돈'으로 그 나라를 살 수 없습니다. '주머니'에 영혼의 양식을 담을 수 없습니다. '두 벌 옷'도 벌거벗은 영혼을 가릴 수는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나라는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께서 채워 주십니다.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하나님의 나라를 세울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셨을 때, 모세는 몇 번이고 망설입니다. 이름도 주시고, 이적도 주시지만 '주여, 보낼만한 자를 보내소서!' 합니다. 대 선지자 예레미야의 경우도 이런 망서림이 있습니다.
‘내가 너를 복 중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내가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이라 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렘1:5- 7)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 파송은 하나님나라의 일원으로 제자들을 세상에 세우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대사로 이 세상에 파송하셨습니다. 그리고 책임지십니다. 이것이 귀합니다. 예수님의 정체를 알고 싶어하는 헤롯의 태도로 보아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의 활동이 매우 활발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능력과 권세는 하나님께서 주신 힘이었습니다. 그들이 가진 권세는 세상 사람들이 갖지 못한 것으로 그 능력을 시행할 권리이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는 열 두 제자들의 사역은 예수님 행하시던 사역의 연장이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할 일이 있습니다. 나 같은 죄인이 용서함 받고 하나님 나라 확장의 일원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욱 감사한 것은 하나님 나라에서 그 일꾼으로 부름 받아 그 일을 감당할 힘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 일을 감당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실 때, 어두움의 권세가 떨게 됩니다.
 
예수님의 명성은 팔레스틴 전역에 퍼져 어떤 사람은 세례 요한이 다시 살아났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엘리야가 나타났다고도 하며, 또 어떤 사람은 옛 선지자 중에서 한 사람이 살아났다고도 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분봉왕 헤롯은 매우 당황했습니다. 그가 당황한 것은 일차적으로 세례 요한이 다시 살아났다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분봉왕 헤롯은 대 헤롯의 아들로서 세례 요한을 죽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왕권의 새로운 시작이 그를 본능적으로 위협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분봉왕 헤롯은 어두운 권세자의 표상적 인물입니다. 그는 에돔인으로서 당시 유대 사회의 권력을 관장하고 있던 사두개 교도였으므로 죽은자의 부활 같은 것은 전혀 믿지 않는 현실주의자였습니다. 그러나 자기의 통치 관할 구역인 갈릴리에서 예수의 명성이 높아가고 그를 추종하는 백성들이 많아지자 예수에 대한 두려움을 갖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갈릴리 지방에서 많은 기적을 일으키셨으며, 그의 제자들도 놀라운 일을 행하자 그 소문은 즉시 헤롯에게로 전해졌습니다. 그리하여 어두움의 권세도 떨고 있습니다.
 
워나메이커는 미국 제23대 대통령 벤자민 해리슨 정부의 내각요원으로서 체신부 장관을 역임하며 큰 발전과 공헌을 한 사람입니다. 또한 워나메이커는 미국의 백화점을 초기에 본격적으로 운영했던 백화점 왕으로서 크게 성공한 사람이었을 뿐 아니라 크리스천으로서 아주 훌륭한 생활과 헌신을 한 사람입니다. 한번은 어떤 사람이 워나메이커 체신장관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워나메이커씨, 당신은 그 큰 사업에 바쁠 뿐만 아니라 체신장관의 업무를 수행하고 또 다른 일들이 많을 터인데 어떻게 4천명의 주일학교 학생들을 다루는 주일학교 교장직을 감당할 수 있습니까?’
그러자 워나메이커는 정색을 하고 답변하였습니다. ‘무슨 말씀을! 주일학교가 나의 정작 본 사업입니다. 그 외의 다른 일들은 그저 일들입니다. 나는 이미 45년 전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의 말씀을 확실히 깨닫고 믿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하여 성령의 은사를 받아야 합니다.
 
본문 말씀을 다시 읽겠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1:8)
그런데 성령의 은사를 받고 거기에 머무르고 안주하면 하나님께 버림을 받습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7: 23- 25)
 
성령의 은사와 능력을 받았어도 복음전파와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사용하지 않으면 도리어 화가 있습니다. 마25장 14- 30절에 나오는 달란트 비유를 아시지 않습니까? 1달란트 받은 사람은 땅에 묻어 두었다가 바깥 어두운 데로 쫓겨나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했습니다.
 
저는 방언과 예언과 환상과 치유의 역사 등을 볼 수 있는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는 교회가 있다고 해서 가본 적이 있습니다. 성도가 20여명 정도되는 교회인데 성도의 대다수가 방언을 하고 환상을 보고 하나님의 계시를 듣는 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이 이러한 성령의 능력을 맛보는 데 그치고 교회 안에 의와 평강과 희락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없고,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서는 힘쓰고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물론 그들도 전도에 힘쓰고 있으나 그 전도는 교인수 확장을 위해 하는 것이지 진정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비단 이 교회뿐만 아니라 많은 기존의 교회가 하나님 나라가 어떤 것인지 조차 모르고 전도하고 있습니다. 특히 교역자(인간) 중심의 교회는 하나님 나라 확장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왕과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내 안에 하나님 나라가 임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나의 주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내 자신이 주인이 되거나 인간이거나 물질이나 우상이라면 하나님 나라와는 거리가 멉니다. 이런 교회로 전도한다고 하나님 나라가 확장됩니까? 내게 성령의 은사와 능력을 주신 목적과 본질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받은 은사와 능력을 통해 하나님을 진정으로 왕으로 모신 곳으로 불신자를 인도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 확장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오순절 성령의 은사를 받고 제일 처음 한 것이 의와 평강과 희락의 공동체를 이루었습니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2: 42- 47)
 
그리고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복음전파에 힘썼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서 내 것을 희생하며 동행하고 따르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누가복음 8장 2-3절을 보면, "또한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 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 곧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와 또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또 수산나와 다른 여러 여자가 함께 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저희를 섬기더라."고 말씀합니다. 누가는 ‘여인들이 자신들의 소유로 예수 그리스도를 섬겼다.’는 말을 강조합니다.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 고침으로 치유받고 주님을 따른 여인들은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여인들이 주의 능력으로 치유되어 자신의 소유로 주님을 섬기며, 주의 나라 확장에 기여했습니다.
 
하나님 나라 확장은 그냥 가만히 있는 데 이루어지 않습니다. 기도만 한다고 이루어지지 않고, 기도한 만큼 내가 희생하고 손해 볼 때 이루어집니다. 열정만 있어도 안 됩니다. 내 것을 드리는 헌신과 희생이 필요합니다. 실제로 주의 나라가 확장되는 역사를 보면, 많은 신앙인들이 물질과 명예를 버리고, 가족과 생명까지 버리며 헌신하였습니다. 내 것을 주장하면서 하나님의 나라는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어떻게 섬겨야 합니까? 제자들 중 일부, 또는 여인 중 몇 명의 헌신으로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나라 확장은 헌신된 개개인이 하나가 되어 사역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8장에 등장하는 인물을 보면, 모두 복수형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열 두 제자, 어떤 여자들, 다른 여러 여자! 예수님을 제외한 한 단어도 단수형으로 되어 있지 않습니다.
주님을 만나기 전에 이들의 삶은 참으로 열악하고 쉽지 않았습니다. 많은 여인들이 귀신이 들려서 고생하였고, 각종 질병으로 앓았던 경험이 있습니다. 사도들을 보아도, 어떤 이는 세리출신이고, 어떤 이는 어부 출신이었고, 어떤 이는 열심당원 출신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만나고, 그들의 삶이 주님께 온전히 헌신합니다. 그리고 이처럼 헌신된 개개인이 하나가 될 때, 결국 주의 나라가 힘 있게 확장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의 은사와 능력을 주신 것은 자신의 명예를 높이고 자랑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고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쓰라고 주셨다는 것을 항상 명심해야 합니다. 내가 받은 은사와 능력을 오직 하나님께 영광돌리고 하나님 나라 확장하는데 사용하시기를 축원합니다.

 
* 기도: 하나님 아버지, 아버지의 나라가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갈릴리 공동체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공동체가 되고, 우리 모두가 세상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도록 영육간에 복주시고 하나님 나라 확장에 쓰임 받는 성도되게 하옵소서. 갈릴리 공동체를 통하여 병든 자가 치료받게 하시고 낙심가운데 있는 자가 기쁨과 소망을 갖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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