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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관심의 힘 댓글[0]
사랑, 관심 (2012-07-16 오전 8:16:24) http://blog.somang.net/holylove/7412

사랑과 관심의 힘

 

본문: 빌2:4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아들 3형제에게 식물을 하나씩 가꾸게 했습니다. 얼마 안 있다가 기른 식물을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가장 별 볼 일없어 보이고 약한 아들이 가장 잘 기르고 왔습니다. 그때 아버지가 “너는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식물학자가 될 거야!!”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 후 아들은 아버지의 말을 듣고 매우 긍정적인 사람으로 돌진하며 매사에 큰 자부심을 가졌습니다. 이튿날 물을 주러 아침 일찍 식물을 향하고 있는데 그만 아버지가 먼저 물을 주고 오고 있지 않습니까? 거기서 아버지가 약한 나를 이토록 사랑하고 있고나 생각하며 열정적인 사람으로 변해갔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나중 최고의 식물학자는 못 됐지만, 그 위대한 미국의 32대 대통령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이 된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벧전4:8)

 

보스턴의 한 정신병원의 지하병동에는 심한 정신질환자들만 수용해 놓는 독방이 있습니다.

한 소녀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심한 공격적 성향을 보여 그곳에 갇혀 있었습니다. 부모조차도 “너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어”라고 말하며 그녀를 포기한 채 면회조차 오지를 않았습니다. 혼자 갇혀 있는 소녀는 점점 포악해졌으며 전혀 나아질 기미가 안 보였습니다. 그런데 이미 은퇴한 간호사가 우연히 이 소녀를 보고선 사랑과 관심을 쏟기 시작했습니다. 음식을 가져다 주면 집어 던졌고 말을 건네도 대답이 없었지만, 그 간호사는 매일같이 6개월 동안 그 일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거짓말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6개월이 지나자 그 소녀는 간호사에게 마음을 열었고 차츰 회복되더니 결국엔 정신질환에서 해방되었습니다. 병원에서 나온 그녀는 평생을 봉사의 삶으로 살았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앤 설리반, 헬렐켈러의 스승입니다. 사랑과 관심의 힘은 위대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일들을 이뤄냅니다. 사랑과 관심은 모든 것을 변화시킬 힘이 있습니다.

의인은 가난한 자의 사정을 알아주나 악인은 알아줄 지식이 없느니라’(잠29:7)


킴볼은 교회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였습니다. 그는 ‘무디’라는 아이가 교회에 나오지 않자 걱정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에게 물어 무디가 일하고 있는 구두방으로 찾아갔습니다. 무디는 생활이 어려워 학교에 다니기 힘들었고, 어려서부터 구두 수선으로 생활비를 벌었습니다. 무디는 아무도 자신에게 관심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었지만, 킴볼은 그를 기억하고 그가 일하고 있는 곳까지 찾아와 주었습니다. 킴볼은 무디의 손을 붙잡고 그를 위해 기도해 주었습니다. 무디는 다시 교회를 찾았고, 훗날 목사가 되어 미국을 변화시킨 대 부흥사로 이름을 떨치게 되었습니다. 한 소년에 대한 교사의 작은 관심이 소년을 위대한 종교 지도자로 성장시킨 것입니다. 지금 내 주변에는 어떤 사람들이 있습니까? 친구가, 자녀가, 제자가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고 그의 삶을 방관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사랑의 눈으로 바라본다면 누구에게든지 보석 같은 미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지금 다가가 응원해 주세요. 그의 미래가 세상을 변화시키게 될 것입니다.

‘가난한 자를 보살피는 자에게 복이 있음이여 재앙의 날에 여호와께서 그를 건지시리로다’(시41:1)


한 선교사가 이제 막 예수를 믿기 시작한 인도 사람에게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아주 이상한 방법으로 자기 생각을 표현했습니다. 그는 허리를 구부리고 땅에 앉더니 마른 나뭇잎을 모아 동그라미를 만들어 놓고 그 가운데 벌레를 한 마리 놓은 다음 나뭇잎에 불을 붙이는 것이었습니다. 불은 삽시간에 빙 돌아 붙었습니다. 그러자 벌레는 겁에 질려 밖으로 기어 나오려고 꿈틀거렸습니다. 그러나 결국 힘에 부쳤는지 꼼짝도 못하고 자신을 구해 내려는 노력은 헛수고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인도 사람은 손을 내밀어 그 불쌍한 처지에 있는 벌레를 죽음에서 건져내었습니다. 그리고 땅에 내려놓으며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나를 위하여 바로 이렇게 하셨소”

우리 주변에는 도와달라고 절규하는 이웃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우리가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성경에 기록된 재미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지금 내게 일깨워 행케 하시는 생명의 말씀으로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먼저 우리의 이기심을 버리고 예수께서 우리에게 하셨던 것처럼 이웃에게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손을 펼쳐 그들을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의 마음 중심을 감찰하시는 하나님께서도 우리가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것입니다.

너는 사망으로 끌려가는 자를 건져 주며 살육을 당하게 된 자를 구원하지 아니치 말라’(잠 24:11)

 

누가복음 7장에 나오는 백부장은 자기의 종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지고 중풍병을 낫게 하기 위하여 에수님 앞에 아뢰는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랑의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백부장처럼 이웃에 대해 관심을 가질 때 치유의 기적이 일어나게 됩니다. 우리가 자신만을 너무 생각한 나머지 다른 사람에게 무관심한 죄를 범치 않도록 주의하여야 하겠습니다.(잠28:27, 잠22:9)

존 템플턴은 “타인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순수한 관심뿐이란 걸 기억하라”고 하였습니다. 실제로 우리가 줄 수 있는 것은 관심입니다. 그리고 관심이란 사랑입니다.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이라고도 합니다. 우리가 사랑을 베푼다는 것은 관심을 기울이는 것입니다. 관심을 기울이면 거기에 사랑의 해답이 있습니다. 관심을 가지려면 우리의 손발이 살아 있어야 합니다. 사람에게 깨어 있고 사랑에 깨어 있는 사람은 손발이 살아있습니다. 선한 사마리아 사람을 선하다고 부르는 것은 그 사람이 깨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깨어 있는 사람은 선합니다. 그는 가슴이 깨어 있었습니다. 눈과 발과 손과 온몸이 깨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포도주나 나귀나 돈과 같은 재산도 깨어 있었습니다. 이것이 관심입니다. 이것이 그가 선하다고 하는 이유입니다.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엡6:18)

 

* 기도: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은 천하만민 중에서 저희들을 택하여 주시고 저희들에게 주를 경외하는 마음을 주시고, 자유와 건강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우리의 감사와 찬송과 기도를 받아주시옵소서. 우리는 세상의 많은 것들 중 무엇에 가치와 관심을 두어야 할지 알기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주님의 일에 관심과 정열을 쏟을 수 있게 하여 주시고 나만 생각하는 이기주의에 빠져 다른 사람에게 무관심한 죄를 범치 않게 하시고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본받아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세상사람들처럼 썩어질 것, 허탄한 것에 지나치게 관심을 갖지 말고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우리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빛의 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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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추가 자료편(성장, 성숙) 댓글[0]
부흥, 성장 (2012-07-11 오전 3:55:42) http://blog.somang.net/holylove/7410

주제별 추가 자료편(성장, 성숙)

 

성숙한 신앙인은 무엇으로 아는가

 

탐구(Search)라는 이름을 가진 종교 연구소가 연구 발표를 했다. 그것은 많은 기독교인의 체험적 응답을 통해 얻은 연구 결과였다. 주제는 성숙한 신앙인은 무엇으로 알 수 있는가였다. 결과는 여덟 가지로 요약되었는데, 다음과 같다.

첫째,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확실히 믿는 사람.

둘째, 예수님이 항상 곁에 계심을 믿어 마음에 평안이 있고 감사하는 사람.

섯째, 가정, 직장, 사회에서 신앙과 삶이 일치하는 사람.

넷째, 기도, 성경 공부, 예배 참석을 하고 영적 성장을 위해 계속해서 노력하는 사람.

다섯째, 신앙 공동체 속에 들어가 동료의 영적 성장을 위해 애쓰는 사람.

여섯째, 인종, 성별, 계급을 초월해 이웃의 행복을 위해 책임감을 갖고 노력하는 사람.

일곱째, 사회정의를 위해 사명감을 갖고 노력하는 사람.

여덟째, 사랑으로 인간을 섬기는 것을 삶의 목적으로 삼은 사람.

이런 사람이 성숙한 신앙인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들 항목 중에 절반은 신앙생활에 관련한 것이고, 절반은 사랑의 실천에 관련한 것이라는 점이다. 곧 성숙한 신앙인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을 뿐 아니라 이웃과도 바른 관계를 맺음을 알려 준다.

「회복」/ 김경수

 

성숙의 기초, 자기 검토

 

전통적인 영성 훈련 과정 가운데 자기 검토가 있다. 자신을 현미경 아래 놓고 하나님이 보시듯 자신을 들여다보는 훈련이다. 리지외의 성녀 테레사가 바로 그 좋은 예이다. 테레사는 수녀원에 있는 어떤 동료 수녀의 삶에서 드러나는 인격과 자신의 삶 속에서 드러나는 인격에 대해 이런 말을 남겼다.

"내가 지내는 수녀원에는 사사건건 내 신경을 건드리는 수녀가 있다. 말 한 마디, 행동 하나하나가 다 거슬린다. 그녀의 인격 또한 사랑스럽지가 않다. 그러나 그녀는 나의 자매이고, 하나님이 그녀를 지극히 사랑하심이 분명하다. 그래서 나는 그녀에 대한 자연적 반감에 지지 않을 것이다. 기독교적 사랑은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행함의 문제이다. 앞으로 이 자매를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인 것처럼 대할 것이다. 그녀를 만날 때마다 그녀를 위해 기도하고, 그녀의 미덕과 노력으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를 드릴 것이다. 이를 예수님도 좋아 하실 것이라 확신한다."

이것이 바로 인격이 변화하는 모습이다. 표면적인 변화는 대개 변화가 없다. 하지만 영혼에 신경 치료를 하고 삶을 근본적 차원에서 재건할 때 비로소 진정한 변화가 일어난다. 우리 중에서 자기 검토를 꾸준한 훈련으로 이어 감으로써 인격이 달라지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부족함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는 지속적인 자기 검토는 우리의 인격을 날로 성숙하게 한다.

「영적 성장의 길」/ 고든 맥도날드


* 금언: 그리스도인의 인생길은 삶 밖으로 나가는 길이 아니라, 삶을 뚫고 지나가는 길이다.- 빌리 그레이엄 -

 

계속 성장하는 비결

 

본문 : 엡 6:10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스탠리 존스 선교사는 노년에 들어서까지 아무런 무리 없이 오지에 가서 선교활동을 할 수 있었습니다. 스탠리 선교사는 자신이 직접 체험하며 터득한 ‘계속해서 성장하는 7가지 비결’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① 나이와 상관없이 언제든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시작하라.

②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하루에 한 가지는 꼭 배워라.

③ 남에게 친절을 베푸는 습관을 들여라.

④ 어떤 일이든 간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여라.

⑤ 무엇이든지 감사할 조건을 찾아라.

⑥ 나이가 든다고 육체적 활동을 줄이지 마라.

⑦ 영적 활동의 중요성을 잊지 말아라.

세상의 위대한 업적의 35%는 60, 70대들을 통해 이루어졌고, 8%는 80대들에 의해서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자신의 한계를 규정하는 것은 많은 나이가 아니라 우리의 생각입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합니다. 자연스러운 노화현상은 막을 수 없지만, 노년기에도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많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한계가 아닌 사명에 집중하십시오!

* 기도: 주님! 주님의 부르심에 언제든 순종하게 하소서!

* 묵상: 노화를 두려워하지 말고, 항상 적극적인 태도를 가지십시오.

/김장환 목사, 제공 : 나침반출판사

 

* 빛의 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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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추가 자료편(씨앗, 심다) 댓글[0]
지유로운 글 (2012-07-10 오후 7:22:58) http://blog.somang.net/holylove/7409

주제별 추가 자료편(씨앗, 심다)

 

씨앗의 힘

 

대구 하면 사과, 사과하면 대구가 떠오른다. 그러나 그 유래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1895년 대구지역에서 활동했던 애덤스 선교사는 안식년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사과씨를 가져왔다. 자기 집 앞마당에 사과씨를 심고 물을 주며 잘 보살폈다. 선교사의 집에서 재배한 사과나무는 대구지역에 확산되었다. 대구사과는 전국에서 가장 맛있고 탐스러운 사과가 되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다. 하나님 앞에 축복의 종자를 심어야 하나님의 보호와 구원을 받는다. 믿음의 기도를 하지 않고, 말씀을 믿지도 않고, 봉사를 하지도 않고, 하나님께 충성을 바치지도 않을 때 어찌 복을 받겠는가! 복을 받으려고 한다면 반드시 복을 받도록 씨앗을 심어야 한다. 복을 받으려면 복 받는 비결을 알고 실천해야 복이 임한다. 하나님의 손에 축복의 씨앗을 올려놓을 때 30배 60배 100배 이상의 축복의 열매를 거두게 될 것이다.

/고수철 목사

 

▣ 절망의 씨앗

 

본문 : 살후 2:17

‘너희 마음을 위로하시고 모든 선한 일과 말에 굳건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아동심리학 박사 제임스 돕슨(James Dobson)은 아이들에 대해서 절대로 해서 안 되는 행동 중 하나는 ‘외모 평가’라고 말했습니다. 4,5살이 된 아이들도 외모에 대한 개념과 아름다움과 추함에 대한 개념이 생겨 있는 상태입니다. 하지만 어른과 달리 그것을 여과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이 때 평가받는 자신의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를 가지고 평생을 갈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5살 때 들었던 외모의 혹평 때문에 평생을 고통 받는 성인들도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아이들의 어린 시절의 중요성을 매우 간과하기 때문에 너무나도 쉽게 ‘예쁘다, 못생겼다’고 평가하고, 무시하거나 놀리기도 합니다. 물론 악의적으로 이런 행동을 하는 경우는 없겠지만 그래도 그 결과는 아이의 평생을 좌우할 수도 있습니다.

돕슨 박사는 아이들에게 외모와 학력과 같이 능력에 관한 이야기보다는 근면, 관용, 정직과 같은 미덕을 강조하는 것이 훨씬 값진 일이며, 또 좋은 때라고 조언했습니다. 모든 말에는 씨앗이 담겨 있습니다. 어린이들 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하는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섣부른 평가는 하지 말고, 희망이 되는 씨앗을 심어주십시오.

* 기도: 주님! 선한 말로 위로하고, 영혼을 세우게 하소서!

* 묵상: 희망이 피어나는 말의 씨앗을 곳곳에 심으십시오.

/김장환 목사, 제공 : 나침반출판사

 

▣ 밭에 가라지를 심지 말라

 

한 사람이 밭을 열심히 갈고 난 뒤 고랑마다 가라지를 심고 있었다. 하루 종일 땀을 흘리며 오직 가라지를 심고 있었다. 주변 사람들이 그를 보고 왜 보리를 심지 않고 가라지를 심느냐고 물었다. 소를 위한 목초지를 만들려는 것인가 물었다. 그 사람은 보리를 거두기 위하여 가라지를 심는다고 대답하였다. 그 말을 들은 동네 사람들은 그를 보고 미쳤다고 하였다. 보리를 거두려면 보리를 심어야지 왜 가라지를 심느냐고 비난하였다. 그 때 그는 자신을 비난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당신들은 선을 거두려 하면서 날마다 악을 심느냐고 되물었다. 사람들은 콩을 심은 곳에서 콩이 나고 팥을 심은 데서 팥이 난다고 하면서 정작 자신들은 악을 심는 것을 본다. 그것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마음과 뜻을 다하여 죄악을 사방에 심는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영을 거두기를 원한다고 하면서 육을 심기에 바쁘다. 구원을 원한다고 하면서 심판을 심는다. 영원한 생명을 바라며 참된 것을 심어야 한다.

/김상현 목사(인천 부광교회)

 

▣ 나는 너에게 희망의 씨앗이 되고 싶다

 

"사람이 잘 살아간다는 것은 누군가의 마음에 씨앗을 심는 일과도 같다. 어떤 씨앗은 내가 심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린 뒤에도 쑥쑥 자라나 커다란 나무가 되기도 한다."

- 위지안의《오늘 내가 살아갈 이유》중에서 -

 

* 사람 사는 일이 내가 너에게, 네가 나에게, 영향을 주는 관계의 연속입니다. 내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은 너를 변화시키는 긍정의 말, 희망의 씨앗이 되는 말이 되길 소망합니다. 상처가 되는 너의 그 어떤 말도 내 가슴에는 쓴 약으로 스며들길 또한 바랍니다.

/고도원의 아침편지(글 이선주)

 

▣ 좋은 씨를 뿌리자

 

♬ 새벽부터 우리 (찬송가 496장. <통> 260장)

 

1. 새벽부터 우리 사랑함으로써

저녁까지 씨를 뿌려봅시다

열매 차차 익어 곡식 거둘때에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

2. 비가오는 것과 바람부는 것을

겁을 내지 말고 뿌려봅시다

일을 마쳐놓고 곡식 거둘 때에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라

3. 씨를 뿌릴 때에 나지 아니할까

슬퍼하며 심히 애탈지라도

나중 예수께서 칭찬하시리니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

<후렴>

거두리로다 거두리로다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

거두리로다 거두리로다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 아-멘

 

♬ 저 밭에 농부 나가 (찬송가 591장, <통> 310장)

 

1. 저 밭에 농부 나가 씨뿌려 놓은 후 주 크신 능력 내려 잘 길러 주셨네 또 사시사철 따라 햇빛과 단비를 저 밭에 내려 주니 그 사랑 한없네

2. 저 산과 들을 보라 참 아름답구나 길가의 고운 꽃도 주님의 솜씨라 저 공중 나는 새도 다 먹여 주시니 그 사랑하는 자녀 돌보지 않으랴

3. 씨 뿌려 거둔 곡식 주님의 은혜라 우리의 몸과 마음 새 힘이 넘치네 주 은혜 받은 우리 참 감사하면서 이 예물 드리오니 다 받아 주소서

[후렴] 온갖 귀한 선물 주님이 주신 것 그 풍성하신 은혜를 다 감사드리세아-멘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라’(시126:5, 6)

우리 모두 사랑의 씨, 의의 씨, 기도의 씨, 친절의 씨, 선행의 씨, 희망의 씨, 복음의 씨를 뿌리고 성령의 열매, 축복의 열매, 아름다운 열매를 거두자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6:7- 9)

 

▣ 신앙의 씨앗 세 가지

 

나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어머니 손에 이끌려 교회를 나가기 시작했다. 어른들과 아이들이 각각 20명 정도 되는 교회였는데, 전도사님을 통해 신앙의 씨앗 세 가지가 어린 마음에 뿌려졌다. 첫째, 전능하신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사실, 둘째, 그 하나님이 우리가 아닌 나 류태영을 사랑하신다는 사실, 셋째,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어린 시절 내 마음 지성소에 뿌려진 이 세 가지 씨앗은 일평생 신앙의 뿌리가 되었고 나를 키워 준 원동력이 되었다.

가난한 농촌을 위해 살겠다고 서원한 내가 덴마크 유학을 결심하고 이룬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다. 하나님은 기도 중에 농촌에 대한 논문을 쓰라, 유학을 위해 덴마크 국왕에게 편지를 쓰라는 마음을 주셨다. 또 기적같이 덴마크로 가서 언어를 배울 때도, 기도 중에 덴마크 사람들이 하는 말 소리를 흉내 내면 되겠다는 지혜를 주셨다. 그렇게 해서 새벽부터 밤까지 죽어라 문장을 외웠고, 3개월 만에 덴마크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까지 이런 유의 인도하심이 얼마나 많은지….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그분이 나를 사랑하심과 기도로 그분과 교제할 수 있다는 사실을 붙들지 않았다면, 이런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다. 내 심령의 지성소에 새겨진 씨앗으로 인해 그 모든 일이 실현될 수 있었다.

「나는 긍정을 선택한다」/류태영

 

* 금언: 말씀 묵상이 당신 삶에 영적 자양분의 공급원이 되도록 하라(위렌 위어스비)

 

* 빛의 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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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전파에 힘쓰라 댓글[0]
전도, 복음 (2012-07-07 오전 7:12:50) http://blog.somang.net/holylove/7408

복음전파에 힘쓰라

 

본문: 마태복음 28: 18-20

 

남태평양의 뉴 헤브리스 제도는 전혀 문화 혜택이 주어지지 아니한 미개한 지역임을 확인한 페튼 목사는 그곳을 선교하기로 결심하고 주변의 동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부인과 자녀들을 데리고 1958년 영국을 떠났습니다. 페튼 선교사 가족은 탄나 섬사람들과 똑같은 모습으로 살면서 언어와 풍속을 익히며 그들에게 접근했으나 기후가 다르고 움막에서 미개한 생활을 해야 하는 어려움과 태풍이 불어 집이 무너지고 가뭄이 오거나 병든 사람이 생기면 원주민들은 하나님을 믿는 이방인의 침입 때문이라며 무장을 하고 달려와 죽이려고 위협하므로 도무지 복음이 전해질 가망은 보이지 않아 실망한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복음에 대한 열정으로 그때 그때를 잘 견디어 가다가 사랑하는 아내가 기후 병으로 죽고 설상가상으로 아들도 죽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존 페른 선교사는 “이곳에서 가족을 잃어버린 불행은 오히려 하나님께서 그들을 고생시키지 않으려고 데려가신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계속 일하기로 결심하고 더욱 복음 전도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존 페튼 선교사는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고 죽으면 죽으리라는 결심으로 계속 노력하자 그토록 완악하고 강퍅하던 주민들이 선교사의 사랑과 헌신적인 봉사에 감복하여 그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고 그들의 영혼과 육신의 생활들이 밝아져 복음의 역사는 전개되었습니다.

 

외국으로 선교하러 가시는 분들을 보면 그 헌신이 대단합니다. 얼마 전 해외선교위원회에서 선교 보고하는 내용을 듣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어느 선교사님은 네팔에서 선교하시다가 두 자녀를 잃고도 그곳에서 계속 사역하려고 했는데, 사모님이 두 자녀가 아른거려 그곳에서 선교를 못하시고 방글라데시로 사역지를 옮겼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또 한 분은 표창 받는 시간이 있었는데 선교사님은 선교지에서 세상을 떠나시고 대신 사모님이 시아버지와 같이 나오셔서 상패를 받는 것을 보고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복음전파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게 아닙니다. 본문을 보면 더욱 알 수 있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강해 설교가인 존 맥아더는 만일 어떠한 그리스도인이 마태복음 전체 부분을 이해했어도 이 마지막 부분을 이해하지 못했다면 그는 마태복음의 전체 과정을 놓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본문에는 전도는 반드시 해야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전도는 부활하신 주님의 강권적인 명령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값을 치르기 위해 십자가 고난을 받으시고 장사 지낸 뒤 3일만에 다시 부활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가라” “세례를 주라”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강권적으로 명령하셨습니다. 선교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께서 명령하신 것입니다. “너희는 가서”라는 말씀은 ‘가라’는 것입니다. 모든 족속으로 가라는 것입니다. 지난 80년대 선교열정이 전국 교회로 확산되면서 우리 한국교회는 주님의 명령에 따라 많은 선교사를 파송하였습니다. 그리고 많은 종족들을 주께 인도하고 교회도 세우는 등 큰 사역을 해냈습니다. 그러나 한국교회 전체로 볼 때 4만여 교회 중 80% 이상이 세계선교에 무관심하거나 그것을 도외시하고 있다고도 합니다.

 우리는 가는 선교에 힘을 쏟아야 합니다. 또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어야 합니다. 세례는 우리 주님께서 친히 받으셨고 또한 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나아가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바로 아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전도와 선교는 가는 선교 못지 않게 보내는 선교가 매우 중요합니다. 전쟁을 할 때 최전선에서 싸우는 군인도 중요하지만 후방에서 엄호사격을 하는 포병부대와 물자를 지원하는 사람들이 중요한 것처럼 선교 역시 보내는 선교가 중요합니다. 선교사가 아무리 선교에 사명이 있어도 생활비와 활동비를 지원 받지 않고는 사역을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특히 배후의 기도는 더욱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현장의 선교사나 후방의 후원교회 교인들, 선교행정을 담당하는 이들 모두가 선교사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전도(선교)는 궁극적으로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예수님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기에 무질서하게 물질을 보내는 것보다는 각 교단 또는 선교단과 협력하는 것이 보다 좋은 효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선교는 타문화권에 들어가는 것이기에 충분한 교육과 정확한 정보에 의한 훈련이 이뤄져야 합니다. 현지인을 교육 훈련시켜 사역하게 한다면 이보다 더 좋은 선교는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1:8)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16:15)

 

 전도(선교)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큰 권능 가지신 주님께서는 이 일에 힘쓸 때 세상 끝날 때까지 항상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가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고후4:5)

전도(선교)의 중요성을 생각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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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이민 가서 낮에는 일하고, 쉬는 날이면 전도에 열심을 내던 한 집사님이 있었습니다. 이 집사님이 한 번은 주택가를 돌아다니다가 한 웅장한 저택 앞에 섰습니다. 그런데 그 집 벨을 누르고 싶은 견디지 못할 충동을 받았습니다.

물론 외국 사람의 명패가 붙어 있었습니다. 인종 차별이 심한 미국에서 황인종이 벨을 눌렀다가 ‘거절’한다면 얼마나 자존심 상할 것입니까? 그런데도 누르고 싶은 것입니다. 벨을 세 번째 누를 때까지 아무 소리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되돌아가다가 웬지 견딜 수 없는 마음이 또 들어서, 다시 네 번째로 벨을 눌렀습니다. 그랬더니 안에서 늙은 영감님이 고개를 내밉니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예수 믿으십시오.” 집사님은 단지 그 말만 하고 전도지를 주고 돌아섰습니다. 그 전도지 속에는 집사님의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습니다.

이튿날 전화가 왔습니다. 바로 그 영감님이 만나자는 전화였습니다. 집사님이 그 집을 방문했을 때, 성령님의 뜻이 얼마나 크고 위대한가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 집사님이 벨을 누르는 그 순간, 그 노인은 이 세상이 싫어져서 자살을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대들보에 끈을 매고 목을 걸려는데 벨이 울렸고 또 울렸습니다. 세 번까지 울렸습니다. 소리가 그쳐서 다시 목을 걸려고 하는데 네 번째 벨이 울리더랍니다. 그리고 받은 전도지가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전도는 이처럼 위대합니다. 죽을 생명도 살리는 것입니다.

 성경에 “너는 사망으로 끌려가는 자를 건져 주며 살육을 당하게 된 자를 구원하지 아니치 말라”(잠24:11)하였습니다.

 

주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성실하게 감당하는 교회가 훌륭한 교회이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입니다. 자신의 사명을 회피하는 것은 무서운 죄악입니다. 천국 복음을 전파하는 일은 교회의 큰 사명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바이올린이 스타라디바리 바이올린입니다. 그 값이 수억대를 호가하는 명기입니다. 그런데 이 악기는 만들어진 지 147년 만에 최초로 연주되었습니다. 그 악기가 너무 귀한 진품이라 악기 수집가가 자기 집 창고에 보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악기를 통해서 음악이 연주되었더라면 훌륭한 연주가가 탄생되고 놀라운 음악의 세계가 확장되었을텐데, 그것이 창고에 그토록 오래 묻혀 있었다니 얼마나 어리석고 낭비하는 일이었습니까? 보배 중의 보배인 복음을 가슴에 묻어두어서는 안됩니다. 전하고 증거해서 생명을 구원하고 인간을 거듭나게 하고 천국을 확장해야 합니다. 지구상에서 1년 동안 사망자가 4천만 명이고 하루 동안의 사망자가 11만 명인데 그중 2/3가 복음을 듣지 못하고 죽는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간접 살인자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제일 우선적인 일은 복음을 전하는 일입니다. 복음을 듣고 믿을 수 있도록 힘써 전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명하셨습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딤후4:2),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16:15)

 

어떤 여인이 한 번은 불이 난 자기 집에서 그녀의 그림들과 가장 애지중지하는 가구들을 바쁘게 끌어내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오랜 시간 동안 열심히 수고했으나 사랑하는 어린 자녀의 생명을 구하지는 못했습니다. 갑자기 그녀의 머리에 자기 자녀 중 하나가 실종되었다는 사실이 떠올랐습니다. 그 아이를 불타는 집 속에 두고 나온 것입니다.

그 어머니가 황급히 다시 방안으로 돌진해 들어갔을 때 이미 그 방은 불이 활활타고 있었고 아이는 죽어 있었습니다. 그때 그 여인은 비통한 나머지 양손을 비틀고 자신의 어리석음을 탄식하며 통곡하였습니다. 어머니는 자기가 꺼낸 모든 가구들을 저주하는 것 같았으며 차라리 그것을 꺼내지 못했으면 하고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왜냐하면 그 하잘것없는 것들을 구하려다가 사랑하는 자식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호기심있는 지식부스러기와 묘한 금언 그리고 심오한 교리 등을 불 가운데서 끄집어낸다 해도 만일 사람의 영혼을 패망시킨다면 그것들은 우리의 양심을 고소할 뿐입니다.

귀한 영혼들이 사랑의 복음을 기다리고 있는데 우리가 난제를 끄집어내서 수십 가지의 토론을 하면서 매주일을 무의미하게 허비하는 것보다 우리가 죽을 때까지 그런 문제는 그대로 두고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힘쓰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우리는 헛된 철학, 교리논쟁, 이론에서 떠나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를 가르치고 전도하기를 쉬지 말아야 하겠습니다.(행5:42) 언제인가는 모든 이론을 파하고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심판하실 날이 이릅니다.(고후10:5, 딤후2:23, 딤전6:4) 온세계가 지금 복음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지금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사랑하는 친구가 예수 믿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납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시126:5) 추수하는 기쁨에 살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기뻐하며 살고 있습니까? 적어도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일하는 기쁨에 살아야 합니다. 전도하는 기쁨에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전도하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전도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써야 합니다.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 내가 자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내가 자의로 아니할지라도 나는 사명을 받았노라”(고전9:16, 17)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무화과나무를 보고 가까이 갔는데 잎사귀만 무성하고 열매가 없음을 보시고 말씀하자 무화과나무가 마릅니다.(마21:19)

우리는 반드시 좋은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전도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찍어서 불 속에 던지웁니다.(마7:19) 심판 날에 알곡과 죽정이를 구분합니다. 죽정이가 무엇입니까? 열매가 없는 것입니다.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마3:12)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7:21)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생명을 다 바쳐 복음전파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이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사명, 전도의 사명을 충실히 감당하며 살기를 기원합니다.


 

* 기도: 땅 끝까지 복음이 선포되기를 명령하신 주님. 이 세상에서 복음 전하는 것이 우리에게 주신 주님의 명령임을 압니다. 제가 오늘 서 있는 삶의 현장에서 최선을 다해 복음의 증인으로 살게 하소서. 병자에게 의사가 필요하듯, 죄인인 저희에겐 예수님이 필요합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백성임을 알지 못한 채 어둠의 영 가운데 억눌려 있는 자들에게 복음의 빛을 전하게 하소서. 하나님은 가장 아끼시는 독생자를 주셔서 우리를 구원하셨건만 우리는 주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인 복음전파에 소홀히 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서운하게 했습니다. 복음전파에 헌신할 수 있는 강한 믿음을 주옵소서. 몸과 마음을 다 바쳐 헌신한 믿음의 선배들처럼 예수와 복음을 위해 온전히 헌신을 결심하며 살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빛의 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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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추가 자료편(인도, 안내) 댓글[0]
길, 인도, 홍보 (2012-07-06 오후 5:31:32) http://blog.somang.net/holylove/7407

주제별 추가 자료편(인도, 안내)

 

▣ 구두닦이 아이들의 선생님

 

당시 서울역 주변에는 다방이 많아 구두닦이 아이들이 역 근처에 모여 살았습니다. 그들은 제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고, 왜 시각장애인이 되었는지 궁금하게 여겼습니다.

"나는 원래 맹인이 아니야. 맹인이 된 지 얼마 안 되었어. 나는 불어 선생님이었거든. 맹인이 된 후에도 여자고등학교에서 프랑스말을 가르쳤는데, 어느 날 맹인인 것이 탄로났지 뭐야. 그래서 쫓겨나게 되었어. 내 인생은 다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님이 서울역으로 인도해 주셔서 너희를 만나게 된 거야."

그 때 아이들은 제게 확 달려들면서 목을 껴안았습니다.

"아저씨가 선생님이었다고요? 그럼 됐어요. 선생님! 저희는 선생님이 필요해요. 다시 저희 선생님이 되어 주시면 되잖아요."라며 울부짖었습니다.

"다시 선생님?" 그 순간에 제 온몸이 뜨거워졌습니다. 성령님이 제게 속삭이셨습니다.

"요한아, 알았지? 이것이 너를 향한 내 계획이었단다. 너는 끝난 게 아니야. 다시 시작하는 거야. 내가 너를 도와주겠다."

그 약속의 말씀은 가슴에 항상 남아 제 인생을 이곳까지 인도해 주셨습니다.

"왜 저입니까?"라는 의문이 풀리는 순간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버리신 것이 아니구나. 나와 동행하고 계시는구나.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알면 알수록 그분 앞에 기도의 무릎으로 나아오게 됩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감사의 고백이 터져 나오고, 기쁨이 충만하게 됩니다.

- 안요한, 낮은 데로 임하소서, 그 이후.

 

* 금언: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희망으로 가득하다. 비록 고통의 길을 거쳐 가야 할지라도 말이다.(조니 애릭슨 타다)

 

▣ 현명하고 사랑 많은 안내인

 

당신 가슴이 충분히 슬퍼하고 진정한 자아를 찾을 때까지 두려움과 슬픔을 뚫고 당신을 누군가 인도해야 할 때 현명하고 사랑 많은 안내인이 함께 하길 기원합니다. 눈물이 상처 입은 곳에 떨어질 때 그 상처를 치유하고 마음을 자유롭게 놓아주길 바랍니다. 허기진 상처를 용서로 채우길 기원합니다.

- 존 오도나휴의《사람이 사람에게》중에서 -

 

* 밴쿠버 강연에서 만났던 한 노신사께서 저에게 물었습니다. "고선생님, 이민생활의 성공과 실패가 언제 갈리는지 아십니까?", "언제 갈립니까?", "처음 공항에 내렸을 때 누가 마중나왔느냐에 따라 이민생활의 성공과 실패가 갈립니다." 비단 이민생활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닐 것입니다. 처음 가보는 낯선 인생길, 현명하고 사랑 많은 안내인을 만나면 자기 인생도 달라집니다. 행복해집니다.

/고도원의 아침편지

 

▣ 하나님의 인도하심, 떠나라

 

2000년 11월 1일, 우리는 이삿짐을 날랐다. 예수전도단에서 공동으로 생활했던 집을 나오기 위해…. 짐이라야 이불과 텔레비전 한 대 그리고 두 돌 된 아들과 그해 3월에 태어난 딸의 옷가지가 전부였다. 문희곤 목사(전 예수전도단 대표)가 걱정스럽게 묻는다.

"길아, 나가서 어떻게 살려고 그래?" 실은 나도 걱정이다. 가장 큰 걱정은 내가 거룩할 수 있을까하는 것이다. 나는 대학생 때 예수전도단에 들어가 5년 넘게 간사로 일했다. 사실 선교 단체 간사를 그만두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월급을 받지 않고 자비량으로 산다 해도 단체의 보호가 있는 것과 혼자 있는 것은 차이가 있다. 선교 단체에서 훈련받고 간사 생활을 하면서 겨우 거룩함이 주는 자유가 무엇인지 알고 누리게 되었는데, 나가서도 여전히 거룩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먹고사는 것도 걱정이다. 하나님이 조용히 물으신다.

"길아, 지난 5년 넘게 너를 먹여 살린 게 예수전도단이냐, 나냐?"

"하나님이십니다."

"그래. 그럼 내가 너를 먹여 살릴 수 있으니 나가라!"

나는 스물한 살 이후로 하나님이 주신 마음을 따라 살아왔다. 세상이 다 없어져도 하나님의 인도하심만 있으면 된다. 여러 걱정이 있었지만 하나님의 뜻은 분명했다. 예수전도단을 떠나서 교회를 개척하는 삶, 그것이 내게는 부르심이요 인도하심이었다. 나는 그렇게 서른세 살에 아무런 신분 보장이 없이, 아내와 분유 먹이는 아이 둘을 데리고 전 재산인 이불과 텔레비전을 들고 공동생활 집을 나왔다. 그리고 하나님의 새로운 인도하심을 경험하는 삶이 시작 되었다.

/김길(증언)

 

* 빛의 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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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유로운 글 (2012-07-05 오전 4:24:24) http://blog.somang.net/holylove/7406

충성

 

충성

 

스코틀랜드의 수도 에든버러 시내에 중세풍의 건축양식을 지닌 아주 오래된 교회가 있다. 바로 그레이프리어스교회다. 종교개혁 이전부터 있었던 이 교회는 개혁기간 동안 개혁운동의 중심지가 되어 오늘의 스코틀랜드교회의 초석이 됐다. 교회의 정원은 신앙을 지키다 순교의 제물이 된 순교자들의 무덤으로 가득하다. 뒤뜰에는 당시의 감옥도 보존돼 있다. 수감자들은 지붕도 없어서 눈비와 추위를 온몸으로 견뎌야 했다. 이 감옥의 특색은 수감된 사람이 언제든 나가고 싶으면 나갈 수 있다는 점이다. 누구도 말리지 않았다. 얼마든지 자유롭게 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감옥에서 나가는 그 순간 그는 개혁신앙의 포기자로 간주되었다. 때문에 당시의 개혁 신앙인들은 스스로 맹세한 것처럼 형장의 이슬이 되어 생명을 주님께 바칠 뿐 살기 위해 감옥 문을 나서지 않았다. 충성이란 그런 것이다. 얼마든지 선택의 여지가 있지만 모든 가능성을 스스로 버리고 오직 주님께 드려진 삶을 살다가 생명을 바칠 뿐이다. 이런 충성의 터전 위에 오늘의 우리가 서 있다. 우리가 다음 세대에 물려줘야 할 유산도 바로 이 믿음이다. 이런 충성이 그립고 그립다.

/손달익 목사(서울 서문교회)

 

충성을 다하라

 

먼 옛날에 가난한 과부가 있었다. 그녀는 개와 고양이를 함께 키우고 있었는데 자기가 굶는 한이 있더라도 개와 고양이를 굶기는 법이 없었다. 개와 고양이는 주인의 정성에 보답코자 용왕이 가지고 있다는 여의주를 훔쳐다가 주인을 부자로 만들자고 합의를 봤다. 둘은 천신만고 끝에 여의주를 구해 집으로 오던 도중 그만 강물에 떨어뜨렸다. 개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갔지만 고양이는 끝까지 낚시꾼의 꽁무니에 붙어 있었다. 언젠가 물고기가 여의주를 삼킬 것이고 낚시꾼이 낚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렇게 많은 날이 흘러갔다. 드디어 어느 날 낚시꾼이 여의주를 삼킨 고기를 잡았다. 고양이는 목숨을 걸고 그 여의주를 훔쳐냈고 주인에게 바쳤다. 그때부터 집에서 기르는 같은 동물이지만 고양이는 따뜻한 방에서 주인과 함께 자고, 개는 추운 마루 밑에서 자게 됐다는 이야기다.

끝까지 충성을 다한 사람은 남달리 높이 대우받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어렵다고 포기하고 외면하는 사람은 낮은 대우를 받을 수밖에 없다. 충성은 얼마나 사랑했느냐 하는 것이다. 충성은 진실이요, 그 진실은 사랑의 마음이다.

/최승일 목사(서울 상도교회)

 

십자가를 질 수 있나 (찬송가 461장, <통> 519장)

 

1. 십자가를 질 수 있나 주가 물어보실 때

죽기까지 따르오리 저들 대답하였다

2. 너는 기억하고 있나 구원받은 강도를

저가 회개하였을 때 낙원 허락받았다

3. 주께 네 혼 맡기겠나 최후 승리 믿으며

걱정 근심 어둔 그늘 너를 둘러 덮을 때

4. 이런 일 다 할 수 있나 주가 물어보실 때

용감한 자 옛날처럼 선뜻 대답하리라

<후렴>

우리의 심령 주의 것이니 당신의 형상 만드소서

주 인도 따라 살아갈 동안 사랑과 충성 늘 바치오리다 아-멘

 

* 빛의 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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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여 나의 생명 나의 정성 드립니다 댓글[0]
찬송, 음악 (2012-06-29 오전 4:34:50) http://blog.somang.net/holylove/7403

(1) 주여 나의 생명 나의 정성 드립니다

이 작은 나의 생명 나의 정성 다해 주님 만을 위하여서

살기 원하오니 주여 잡아주소서

나를 잡으소서 주님만을 위하여 살게 하소서

아 불 같은 성령으로 충만케 하옵소서

환난이 와도 핍박이 와도 주님만 위해 살게 하소서

(2) 주여 나의 가진 모든 보화 드립니다

아무리 나 혼자서 몸부림 쳐 봐도

우리들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어 주만 의지합니다

주 의지합니다 성령으로 거듭남 주시옵소서

아 불 같은 성령으로 충만케 하옵소서

괴롬이 와도 슬픔이 와도 주님만 위해 살게하소서

(3) 주여 이 몸 바쳐 주의 일을 하렵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괴로움 당해도 주와 함께 승리하며 살게 하옵소서

주님 사랑 크시니 주를 따라가며 주님으로 만족케 하여 주소서

아 불 같은 성령으로 충만케 하옵소서

고통이 와도 죽음이 와도 주님만 위해 살게 하소서

/빛의 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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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여 우리의 기도를 들으소서 댓글[0]
기도 (2012-06-26 오전 4:07:04) http://blog.somang.net/holylove/7400

주여 우리의 기도를 들으소서

 

진리와 생명이 되신 거룩하신 하나님, 영광과 찬양을 드립니다. 저희에게 복된 날을 주사 예배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이 예배가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지게 하옵소서. 우리가 지은 모든 죄를 고백하오니 주님의 보혈로 사하여 주시고 주님 믿는 성도로서 본분을 다하도록 귀한 말씀과 성령충만함을 주소서. 저희가 예수님의 마음을 본받아 겸손하고 온유하고 순종하는 마음으로 살게 하시고 이 나라 이 민족에게 복을 주사 의와 평강과 희락이 넘치는 살기 좋은 나라되게 하시고, 섬기는 교회가 부흥되고 하나님 기쁘시게 하는 교회되게 하시고 우리 가정이 하나님 이름을 높이는 가정되게 하옵소서. 우리 모두가 세상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도록 영육간에 복주시고 하나님 나라 확장에 쓰임받는 성도되게 하옵소서.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고 그들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게 하시고 이웃에 질병으로 고통받는 형제들이 속히 치유함을 받게 하옵소서. 무엇보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 하나님 마음을 시원케 하는 자되기를 원합니다. 주여 나를 긍휼히 여기시고 주님의 귀히 쓰는 일꾼되게 하소서. 빛의 자녀, 빛의 사자가 되게 하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빛의 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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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추가 자료편(사랑) 댓글[0]
사랑, 관심 (2012-06-25 오전 7:13:07) http://blog.somang.net/holylove/7399

주제별 추가 자료편(사랑)

 

사랑 확인

 

하루에도 몇 번씩 사랑받고 있음을 확인하고 싶다면, 그것은 상대가 아닌, 자기 스스로가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정말 사랑이라면 그걸 굳이 표현하지

않아도 일상에서 즐겁게 마음으로 전해지게 되는 것이니까.

- 위지안의《오늘 내가 살아갈 이유》중에서 -

 

* 사랑은 값진 보석과 같습니다. 보석함에 넣어 장롱 깊숙한 곳에 간직합니다. 그 보석함을 수시로 열어 확인하나요? 사랑은 확인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마음 깊은 곳에 남몰래

품고 사는 것입니다. 믿고 가는 것입니다.

/고도원의 아침편지

 

사랑의 사칙연산

 

재키 로빈슨은 미국 메이저리그 최초의 흑인 야구선수였다. 인종 차별이 자행되던 시기에 그는 최초로 야구 타석에 섰던 흑인 선수였다. 그가 어느 날 브루클린 구장에 서게 되었다. 경기가 한창 진행되던 중 그가 볼을 놓치는 실수를 범했다. 많은 사람들, 특히 백인 관중들은 어쩔 줄 몰라 하며 서 있는 그에게 야유를 보내면서 욕을 하기 시작했다. 그때 백인 선수인 리즈가 로빈슨에게 다가가 끌어안고 청중을 쳐다보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관중들은 일순간 조용해졌다. 이후 로빈슨은 이때를 회상하며 자신의 어깨를 감싸준 동료의 팔이 자신의 인생을 구원해줬다고 고백했다.

한 사람의 따뜻한 배려와 사랑은 타인에게 구원을 느낄 만큼 큰 힘이 된다. 사랑을 나누는 것은 주님께 사랑의 빚을 갚는 것이다. 그 사랑을 나눔으로 말미암아 슬픔은 반이 되고 그 나눔의 기쁨으로 말미암아 사랑은 배가 된다. 내 손에 쥐고 있다면 그 사랑의 사칙연산의 값은 0이지만 따뜻한 마음으로 다가가면 슬픔은 반에서 반으로, 사랑의 열기는 2배, 4배, 16배의 값으로 무한하게 성장할 것이다.

/안성우 목사(일산 로고스교회)

 

사랑을 연상시켜라

 

본문 : 요일 2:29

‘너희가 그가 의로우신 줄을 알면 의를 행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줄을 알리라’

 

세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옥스퍼드 영어사전은 지난 2011년 최신개정판을 내면서 ‘Wag’, ‘Singledom’의 단어들을 새로 실었습니다. 시대가 바뀌면서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많은 신조어들이 생기고 있습니다. ‘Wag’은 원래 축구선수의 아내나 여자 친구를 일컫는 말이었지만, 현재는 매력적인 아내나 여자 친구를 총체적으로 일컫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singledom’은 독신생활을 뜻하는 단어로, 원래는 없는 단어이지만, 혼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많아짐에 따라 그들을 표현하는 대표어로 인정을 받은 케이스입니다. 그런데 이번 개정판에는 ‘♡’도 기호가 아닌 단어로 인정받아 실렸습니다. ‘기호♡’는 ‘사랑하다’라는 뜻으로 쓰였는데, 옥스퍼드 사전 역사상 기호가 단어로 인정받은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편집자인 그레이엄은 기호를 사전에 싣게 된 이유로 “다른 기호들도 많이 쓰이지만 ‘♡’처럼 직접적으로 단어의 뜻을 연상시키는 기호는 없기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기호가 문자로 인정받을 수 있는 이유는, 누구나 그것을 보고 사랑을 연상시키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보여주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마음으로 일을 하고, 예수님의 마음으로 사람들을 섬길 때, 세상에 하나님을 나타내는 사람으로 쓰임 받게 됩니다. 사랑을 연상시키는, 하나님을 연상시키는 사람이 되십시오.

* 기도: 주님! 세상에 조금이라도 주님을 알리는 자로 쓰임 받게 하소서!

* 묵상: 행함으로 주님의 사랑을 세상에 보여주십시오.

/김장환 목사, 제공 : 나침반출판사

 

사랑과 속박

 

본문 : 시 146:7

‘억눌린 사람들을 위해 정의로 심판하시며 주린 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 이시로다 여호와께서는 갇힌 자들에게 자유를 주시는도다’

 

앙드레 모아는 ‘행복한 결혼’이라는 책을 통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부부간의 대화란 자고로 매우 신중해야 합니다. 사랑만이 전부가 되어서도 안 되며, 너무 정직해서도 안 됩니다. 사랑에 치우치면 이성을 마비시키고, 너무 정직하면 사랑이 사라지게 됩니다. 뜨거운 사랑은 때론 질투로 쉽게 변하게 되고 이것은 결혼 생활을 더욱 어렵게 합니다. 과도한 정직은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며 이것은 종종 결혼 생활을 끝나게 만들기도 합니다.”

칼릴 지브란은 자신의 시집 ‘예언자’에 이런 시를 실었습니다.

‘서로 사랑하십시오. 그러나 사랑을 속박하지는 마십시오. 서로의 잔을 채워주고, 서로의 빵을 드십시오. 그러나 너무 가까이 있지는 마십시오. 참나무와 삼나무는 서로의 그늘에서는 자라나지 못하니까요.’

사랑과 속박의 차이는 믿음의 존재에 따라 갈라집니다. 진정한 믿음이 없을 때 타인의 자유를 속박하게 됩니다.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이것으로 인해 다른 개인과 하나님의 관계를 속박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어떤 이유로든 상대방의 자유를 속박하지 마십시오.

* 기도: 주님! 주님이 주신 진정한 자유를 생활에 적용하며 살게 하소서!

* 묵상: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게 사는지 점검해 보십시오.

/김장환 목사, 제공 : 나침반출판사

 

사랑은 보이지 않는 힘

 

어떤 사람이 두 개의 양파를 동일한 조건에 놓아두고 키웠다. 그러면서 하나는 무관심하게 지나치고 다른 하나는 관심과 사랑을 가지고 축복의 말을 했다. 그리고 하나는 미운 사람의 이름을 붙여놓고 다른 하나는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붙여놓았다. 그 결과 양파의 발육 상태가 다르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부터 나도 모르게 가끔 이런 생각을 하게 됐다. 내가 아프거나 힘든 일이 생길 때는 ‘누가 나를 미워하는가보다’ 하고, 힘이 나고 기쁠 때는 ‘누가 나를 위해 사랑의 마음을 주는가보다’라고.

진정한 사랑은 가시적으로 나타나지 않아도 전달된다. 그래서 교인 중에 나에게 불평을 하거나 내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이 있을 때에도 그를 탓하려고 하지 않는다. 내 사랑이 언젠가 전해지게 되면 나 역시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기다릴 수 있게 됐다. 보이는 것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게 더욱 중요하다. 돈만이 영양제가 아니라 사랑하는 마음도 뛰어난 영양소다. 진실한 사랑이 있는 곳에는 건강 웃음 능력이 있다. 하나님께선 우리에게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다.

/최승일 목사(서울 상도교회)

 

더 깊이 사랑하는 법

 

슬프고 힘든 일, 분명 반갑지 않은 불청객이지만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고마운 벗이기도 합니다. 슬프고 힘든 일이 아니면 끝내 모르고 말았을 더 깊이 사랑하는 법을 알게 해주었으니까요.

- 고도원의《꿈이 그대를 춤추게 하라》중에서 -

 

* 슬픈 일 때문에 우리는 함께 울 수 있습니다. 아프고 힘든 일이 있기에 우리는 서로 더 깊이 부둥켜안을 수 있습니다. 슬픈 마음을 다스려 함께 노래를 부르고, 아픈 몸을 일으켜 함께 춤을 추는 것, 그것이 깊은 사랑입니다.

/고도원의 아침편지

 

* 빛의 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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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전도하자 댓글[0]
전도, 복음 (2012-06-24 오후 9:02:19) http://blog.somang.net/holylove/7398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전도하자

 

본문: 빌2: 5- 11, * 찬송가 455장, <통> 507장, * 찬송가 505장, <통>268장)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달리심이라”

 

예수님은 이 세상에 전도하러 오셨습니다. 마가복음 1장 38절을 함께 보겠습니다.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우리는 전도하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전도는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고전9: 16, 17) 하였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좋은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찍어서 불 속에 던지웁니다.(마7:19) 심판 날에 알곡과 죽정이를 구분합니다. 죽정이란 무엇입니까? 열매가 없는 것입니다.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마3:12)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7:23)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생명을 다 바쳐 복음전하기를 원하십니다.

마태복음 25장 14- 30절에 보면 달란트 비유가 나옵니다.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받은 사람은 이윤을 남겼는데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땅을 파고 돈을 감추어 두었다가 주인이 이르되 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 하시고 그 한 달란트도 빼앗기고 어두운 데로 내 쫓깁니다. 전도하지 아니하는 자는 한 달란트 받은 자와 같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재능과 물질을 내 이익과 욕심, 성공을 위해 사용하지 말고 이웃과 복음전파를 위해 사용해야 합니다.

우리는 파수꾼의 사명을 받았습니다. 파수꾼의 사명은 적이 침범하거나 위기에 처했을 때 나팔을 부는 것입니다. 그런데 위험한 상태를 보고도 나팔을 불어 알리지 않고 깨우치지 않으면 그 피값을 받게 됩니다. 에스겔서 33장 5- 8절을 함께 보겠습니다.

‘그가 경고를 받았던들 자기 생명을 보전하였을 것이나 나팔 소리를 듣고도 경고를 받지 아니하였으니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그러나 칼이 임함을 파수꾼이 보고도 나팔을 불지 아니하여 백성에게 경고하지 아니하므로 그 중의 한 사람이 그 임하는 칼에 제거 당하면 그는 자기 죄악으로 말미암아 제거되려니와 그 죄는 내가 파수꾼의 손에서 찾으리라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삼음이 이와 같으니라 그런즉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에게 경고할지어다 가령 내가 악인에게 이르기를 악인아 너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였다 하자 네가 그 악인에게 말로 경고하여 그의 길에서 떠나게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자기 죄악으로 말미암아 죽으려니와 내가 그의 피를 네 손에서 찾으리라 그러나 너는 악인에게 경고하여 돌이켜 그의 길에서 떠나라고 하되 그가 돌이켜 그의 길에서 떠나지 아니하면 그는 자기 죄악으로 말미암아 죽으려니와 너는 네 생명을 보전하리라’

예수 안 믿으면 멸망당한다는 사실을 알고도 이웃의 불신을 못본채 하는 것은 큰 죄악입니다. 심판 때에 이웃의 불신자가 지옥으로 끌려가기 전에 ‘저 사람이 한 번도 나에게 전도한 적이 없었다’고 하면서 아담과 하와처럼 핑계대고 탓할 때 심판주가 그 피값을 치루게 한다는 말씀입니다.

‘너는 사망으로 끌려가는 자를 건져 주며 살륙을 당하게 된 자를 구원하지 아니하려고 하지 말라’(잠24:11) 예를 들면 물에 빠져 죽어가는 사람을 내가 가지고 있는 밧줄만 던져도 살릴 수 있는데도 구경만 하는 사람을 여러분은 어떻게 보십니까? 전도하지 않는 것은 영적 살인이요 하나님의 명령과 부탁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도하는 것을 매우 기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할 때 무엇보다 전도의 문을 열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면(골4:3), 하나님이 기쁘게 응답하십니다.

전도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길거리 문서 전도(4영리 등), 병원의 환자나 교도소 재소자를 찾아가 전도, 이웃과 친구에게 전도, 트윗터, 불로그, 카페, 홈피 등을 통한 인터넷 전도, 구제 (나눔)활동과 착한 행실과 봉사로 전도, 영화, 책을 제작하여 전도, 신앙서적을 선물하는 방법의 전도 등이 있습니다. 저는 20여년 전에 복음전하기 위해 전도지를 제작하여 집집마다 우체함 속에 넣기도 하고 전철 선반위에 올려놓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역무실까지 끌려기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전도하는데 특별한 전도전략이나 전도 요령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전도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복음전하겠다는 열정과 뜨거운 가슴이 필요합니다. 사도바울이나 베드로처럼 마음과 목숨을 다해 사람낚는 어부가 되겠다는 정신이 중요합니다. 이런 마음이 있을 때 하나님께서 성령의 은사와 능력을 주셔서 많은 전도의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세 가지가 무엇인가를 톨스토이는 말했습니다.

첫째,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순간)은? 바로 지금

둘째,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내 옆에 있는 사람,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

셋째,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할 수 있는 가장 선한 일하기, 지금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 그러나 저는 전도라고 생각합니다.

 


 

 

성도 여러분에 묻겠습니다.

 

1. 전도는 000 이다 000에 들어갈(넣을) 말은? 예: 사랑, 헌신, 기쁨, 희생, 사명, 봉사

 

한국 초기 선교사들은 우리나라에 와서 병원, 학교, 고아원을 건립하고 봉사함으로 전도

 

2. 00 교회의 현재와 미래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린다면? 전도만이 교회와 내가 살길이다.

 

3. 전도와 자원봉사의 공통점이 무엇입니까?

 

나를 필요로 한다. 전과는 달라진 나를 발견한다. 자기 발전을 이룬다. 기쁠 때도 있고 슬플 때도 있다. 내가 좋아서 하는 것이다. 사랑과 희생적인 마음이 필요하다.

 

전도의 성패는 마음가짐이 좌우합니다.

 

사람의 언행은 그 마음속에서부터 우러나옵니다. 즉 그 사람의 마음이 바르지 못하면 그에게서 나오는 말과 행실도 악합니다. 그러므로 올바른 마음과 정신자세를 갖춘다는 것은 실로 중요합니다. 마음은 나의 주인이요, 근본이고 정신은 인생의 방향타요, 운명의 운전수요, 생활의 지배자입니다. 인생은 마음을 갈고 닦는 도장이요, 정신을 다듬는 수련장입니다. 칼이 의사의 손에 쥐어지면 사람의 생명을 건지는 수술도가 되지만 도둑놈의 손에 쥐어지면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흉기로 전락합니다. 칼이 선의 도구가 되느냐 악의 도구가 되느냐를 결정하는 것은 칼 자체가 아니고 칼을 쓰는 사람의 마음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만, 음란, 거짓. 탐심, 미움, 분노 등의 악한 생각이 내 마음을 차지하지 않도록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4:23)

 

마음을 지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보는 것과 읽고 듣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바리세인과 서기관 중 몇이 예수의 제자 중 몇 사람이 씻지 아니한 손으로 떡먹는 것을 보고 부정한 손으로 떡을 먹는 것을 힐문하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능히 사람을 더럽게 못하나 사람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하시며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광패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한다.(막7:1-23)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회개하여 마음을 깨끗이 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을 깨끗이 하여 그냥 비워둘 수는 없습니다. 마음속에 올바른 마음, 좋은 생각으로 채워져야 새사람이 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마음을 무엇으로 채워야 하는 가 입니다. 수양이나 교육은 그 사람의 마음에 다소의 영향을 주나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다 주지 않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채워져야 올바른 크리스천이 되고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이십니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올바로 알아야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존경하고 그분의 사랑을 이웃에게 전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정도만을 알아서는 안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신랑되신 예수님의 중매쟁이가 되려면 신랑이 어떤 사람인가를 확실히 알아야 신부에게 자신있게 소개할 수 있듯이 예수님이 어떤 성품을 가졌는가를 알고 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요?

 

첫째, 사랑의 마음입니다.(요13:1)

주님은 사랑이십니다.(요일4:16) 셩경 몇 구절만 찾아보겠습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요일4:10),

주님은 상한 갈대를 꺽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시며(마12:20),

그러므로 사랑을 입은 자녀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사랑가운데서 행하라(엡5:1-2),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요일3:18),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5:6- 8)

 

이렇듯 하나님이 우리에게 향하신 사랑은 아무런 조건 없이 값없이 주신 것이기에 그 사랑의 위대함은 이 세상 그 어떤 언어로도 다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 사랑을 받은 우리는 주님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가! 주님을 위해 일한다고 하면서 계산적으로 하지는 않았는지...

내가 이일을 하면 복을 받고 하늘에 상급이 있기 때문에 하고 있지는 않는지...

고귀하신 주님의 사랑을 진정 깨달은 자라면 주를 위해 아까울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아무런 조건 없이 우리를 사랑하신 주님의 그 사랑에 보답하는 길은 우리도 주를 위해 모든 것을 아낌없이 드리는 삶이 아닐까요!

찬송가 323장 가사처럼 ‘아골골짝 빈들에도 복음들고 가오리다. 소돔같은 거리에도 사랑안고 찾아가서 종의 몸에 지닌 것도 아낌없이 드리리다’ 를 실천해야 합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성경의 가장 중요한 계명입니다.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입니다. 우리가 먼저 예수님의 크신 사랑을 알아야 주님의 사랑을 자랑하고 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불신자들에게 십자가의 사랑을 자랑합시다. 세상에서 사랑의 빛을 비춥시다. 그리하면 사람들이 예수님이 어떤 분임을 알고 예수를 믿게 됩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요13:35)

 

둘째, 겸손한 마음입니다.(잠18:12, 롬12:16)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참으로 겸손하신 분이십니다. 마구간에서 나시고, 사람(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분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겸손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겸양의 덕을 지니고 겸허한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벼이삭을 통해 지혜를 배워야 합니다. ‘무릇 스스로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스스로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눅14:11)하였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며 자기를 돌아보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빌2:1-4)

사도바울이 회개한 후에 나는 사도중에 가장 작은 자라고 했습니다.(고전15:9) 그리고 후에 나는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고 했습니다.(엡3:8) 그 후에 죄인 중에 내가 괴수라고 고백했습니다.(딤전1:15) 믿음이 성숙할수록 더욱 더 겸손해져야 합니다.

우리 기독교는 겸손의 기독교입니다. 어거스틴의 제자가 하루는 어거스틴에게 질문했습니다. “선생님, 그리스도인이 가장 힘써서 갖추어야 할 덕목이 무엇입니까?” 그러자 어거스틴은 주저하지 않고 “겸손이니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제자는 다시 “두 번째는 무엇입니까?”, “두 번째도 겸손이니라.”, “그럼, 세 번째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세 번째도 겸손이니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자기를 낮추는 사람들이 모이면 거기가 천국입니다. 가정은 가정천국이 되고, 교회는 교회천국이 됩니다.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의 직장에서도 서로가 낮은 자세로 상대를 높이면 천국이 될 것입니다. 반대로 자기를 높이는 사람들만 모이면 거기가 지옥입니다. 가정이나 직장뿐만 아니라 교회에서도 교회구성원들이 대접을 받으려고만 하고 자기를 높이기만 하면 교회도 지옥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사실을 그리스도인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인정받으려고 하고 얼마나 대접 받으려고 하는지 모릅니다. 교인들이 시험에 드는 가장 대표적인 이유가 섭섭함입니다. 섭섭함이란 감정은 대접받지 못했다 인정받지 못했다는 마음을 가질 때 생기는 것입니다. 인정받고자 하는 마음, 대접받고자 하는 마음을 처리하지 않으면 마음을 비우지 못한 것이고 마음이 미우지 못하면 하나님이 높여주시는 높임은 없습니다. 따라합시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을 버려야 하나님이 높여주신다. 대접받고 싶은 마음을 버려야 하나님이 높여주신다. 높고자 하는 마음을 버려야 하나님이 높여주신다”

만약 우리가 겸손함과 섬기는 마음이 없이 ‘예수 천당, 불신지옥’ 등의 고자세나 정복자(과거 서양열국이 침범한 후 선교사들이 전파)의 태도로 복음을 전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나타나고 심지어는 기독교에 대한 적대감이 생깁니다,

 

셋째, 순종의 마음입니다.(롬5:19, 고전9:27)

예수님은 죽기까지 하나님의 뜻에 복종했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십자가를 앞에 놓고 세 번이나 간절히 기도하신 예수님은 결론을 내리십니다.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눅22:42) 그리고 묵묵히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 복종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순종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시면 아골 골짜기라도 가야하고, 하나님께서 바치라고 하시면 목숨까지도 드려야 합니다. 이런 순종의 마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삼상15:22)

마태복음 22장에 보면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그 종들을 보내어 사람들을 초청하게 합니다. 종들은 임금에게 순종하여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데로 모두 데려옵니다.(마22: 10) 우리도 말씀대로 순종하여 천국혼인잔치에 사람들을 초청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예수님이 혼인잔치에 참석했을 때 포도주가 떨어지자 마리아의 요청으로 하인들이 순종하여 항아리에 물을 부었습니다. 순종하므로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에 순종하여 전도합시다.

 

넷째, 온유한 마음입니다.(마5:5)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마11:29)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가운데서 서로 용납해야 합니다.(엡4:2) 온유한 마음이란 부드럽고 따뜻한 마음입니다. 온유하지 못하고 돌밭같이 굳은 마음에는 씨가 자라 뿌리를 내릴 수 없습니다.(마13:5, 20) 예수님뿐만 아니라 모세는 온유한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민12:3)

사람의 성공 요인에서 지능이나 기술 훈련보다는 대인관계가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대개 직무수행의 실패보다는 대인관계의 실패로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만큼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는 다른 사람과 어떤 관계를 맺느냐가 중요합니다. 방법은 단순합니다. 좋은 인간관계를 가지려면 ‘온유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대하면 됩니다. 온유한 자는 말 그대로 부드러운 마음씨를 가진 사람입니다. 온유한 마음은 황폐한 관계를 회복시켜 주고 관계를 풍성하게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장단점을 갖고 있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도 단점이 있습니다. 일방적으로 누구를 탓할 수 없는 일입니다. 조금만 서로 섬기는 마음으로 다가가면 잘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온유한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온유한 자가 땅을 차지하며 풍부한 화평으로 즐기리로다(시37:11)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온유함이 강함을 이깁니다. 강한 치아보다 부드러운 혀가 더 오래갑니다. 우리는 늘 온유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전도시 주의 사항입니다. 전도할 때 과격한 말이나 너무 큰 소리로 하면 안됩니다. 말한 마디로 천냥 빛을 갚는 다는 격언이 있습니다. 말의 씨가 있습니다. 전도할 때 부드럽고 따뜻한 말로서 전도해야 합니다.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잠15:1)

 

다섯째, 긍휼히 여기는 마음입니다.(마5:7)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긍휼이 많으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하심이 크시도다 여호와께서는 모든 것을 선대하시며 그 지으신 모든 것에 긍휼을 베푸시는도다’(시145:8,9)

긍휼히 여기는 마음은 측은히 여기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예수님은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 중에 있는 병자를 고쳐 주셨습니다.(마14: 14) 예수님은 우리가 죽어 마땅한 죄인이지만 불쌍히 여기시고 구원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긍휼히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 믿는다고 하면서 불쌍히 여길 줄 모르는 것은 잘못된 신앙입니다. 중세 천주교 세력이 강해지다보니 반대파들과 거역하는 자를 마구 잡아 화형시켰고, 영국의 청교도 혁명은 너무 엄격하게 하다보니 자비가 없어 나중에 왕정복고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우리는 타종교인(불교, 천주교 등)과 이단 사이비 종교를 신봉하는 사람들을 적대시 하지 말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대하고 다투지 말아야 합니다. 불신자들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전도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골3:12- 14)

 

여섯째, 용서하는 마음입니다.(막11:25, 눅6:37)

예수님은 자기를 십자가에 못박는 자들을 위해 용서의 기도를 하셨습니다.(눅23:34) 스데반도 자기를 향해 돌던지는 자를 위해 기도하였습니다.(행7:60) 주님께서 우리를 오래 참으시고 용서하셨습니다. 이 큰 죄를 용서 받은 우리가 우리에게 작은 허물이 있는 자들을 용서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마6:14-15, 마18:21-22, 눅11:4, 눅17-3-4, 골3:12-14) 요셉은 자기를 애굽의 종으로 팔은 형들을 용서하였습니다. 손양원 목사가 자기 아들을 죽인 원수를 용서하고 자기 양자로 삼음으로 그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소서’의 주기도문을 잊지 맙시다.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마18:21,22) 탕자가 회개하고 아버지 집에 돌아왔을 때 형은 탕자를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처럼 동생을 용서해 주고 잃어버린 자를 찾은 기쁨을 함께 누려야 합니다. 이와 같이 먼저 믿은 성도는 새신자를 진심으로 환영하고 돌보아 주어야 합니다. 어린 새 싹이 잘 자라도록 사랑과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이웃의 잘못과 허물을 용서하고 전도해서 양육해야 합니다.

“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엡4:32)

 

일곱째, 오래 참고 인내하는 마음입니다.(약5:7- 11, 히10:36)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아버지여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이마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처럼 떨어지도록 간절히 기도하시고 동산으로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그때 대제사장의 하속들이 예수님을 잡으려고 검과 몽치를 들고 왔습니다. 가롯 유다가 예수님 볼에 키스하면서 “랍비여 안녕하시옵니까”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유다야 네가 내 볼에 키스하므로 나를 파느냐 빨리 행하라” 말씀하셨습니다. 많은 무리들이 달려들어 예수님을 체포하려고 할 때에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 예수님의 잡히심에 분노해서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칼로 쳐서 떨어뜨렸습니다. 그래 예수님께서 귀를 만져 낫게 하시고 “칼을 집에 꽂으라 칼을 든 자는 칼로 망한다”라고 교훈하셨습니다. 그리고 “이것까지 참으라” 말씀하셨습니다. ‘이것까지 참으라’는 말은 ‘그들의 행동을 그냥 내버려두어 하게 하라’ 그런 뜻입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너희들이 손대면 안된다. 하도록 내버려 두어라.’라는 말입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히 12:1-3).

예수님을 ‘참으신 자’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참고 사셨습니다. 참고 죽으셨습니다. 그는 참으심으로 일생을 일관되게 나아갔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바라볼 때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 마음속에 느껴지는 감동은 예수님의 인내입니다.

‘너희들이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라는 말은 ‘너희들이 세상 살기 힘들어 낙심될 때 주님 바라보라.’ 다시 말하면 ‘가난할 때 주님을 바라보면 참을 수 있다. 억울한 일을 당할 때 주님 바라보면 참을 수 있다. 원수를 만났을 때 예수님을 바라보면 참음으로 이길 수 있다. 실패하고, 낙심하고, 답답한 일을 당해도 주님을 바라보면 능히 참을 수 있다.’라는 말입니다. 중도에 포기하지 말고 끊임없이 전도대상자를 위해 기도하고 찾아가야 합니다.(진도개 전도) 사랑은 오래 참는 것입니다.(고전13:4) 오래 참음으로 전도와 성령의 열매를 맺읍시다.(갈5:22, 23)

 

여덟째, 거룩하고 의로운 마음입니다.(레11:45, 시29:2, 살전4:7, 딤후2: 21, 22)

주님은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우리는 주님의 거룩하심을 본받아야 합니다.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벧전 1:16)

거룩한 마음은 경건하고 깨끗하며 의로운 마음입니다. 거룩한 삶은 마땅히 투자가 있어야 합니다. 거룩은 순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현대는 모든 것이 인스턴트 시대이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하나의 위기를 극복하고 나면 곧바로 거룩의 경지에 이르는 것으로 착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거룩은 순간순간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에 대한 체험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거룩한 삶보다 주님을 세상에 더 잘 드러낼 수 있는 길은 없습니다. 거룩은 사람들로 그리스도를 신뢰하게 하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또 신자들에게는 유익을 가져다줍니다. 한편, 성도들이 거룩하지 않으면 범죄하는 신자처럼 주님의 이름에 불명예와 부끄러움을 가져다줍니다. 그리스도의 사랑과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지불한 값, 그리고 우리에게 부여하신 은혜가 거룩한 삶을 위한 우리의 동기가 되어야 합니다. 거룩은 발전되어가는 것이지 하루 아침에 얻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할 때 성령님은 한 단계씩 우리를 변화시키십니다. 그 조건들 중에 몇몇은 고백과 상환, 항복, 성경공부, 기도, 다른 그리스도인들과의 교제, 주를 섬기는 것, 그리고 몸과 마음을 쳐서 복종시키는 것입니다. 거룩은 우리의 성생활과 언어생활, 기질 그리고 의복과 연관이 있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거룩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는 말씀에 충격을 받아야 합니다.(히12:14) 우리는 예수님처럼 거룩하고 경건하고 의에 주리고 목마른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제부터 우리들은 마음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이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사명, 전도의 사명을 감당하며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우리 다함께 찬송가 455장, <통> 507장 ‘주님의 마음을 본 받는 자’을 부르겠습니다.

1. 주님의 마음을 본 받는 자 그 맘에 평강이 찾아옴은

험악한 세상을 이길 힘이 하늘로부터 임함이로다

2. 주 모습 내 눈에 안보이며 그 음성 내 귀에 안들려도

내 영혼 날마다 주를 만나 신령한 말씀 늘 배우도다

3. 가는 길 거칠고 험하여도 내 맘에 불평이 없어짐은

주님의 빛나는 그 형상을 다함께 보며 주 찬양하리

4. 주 예수 세상에 다시 오실 그 날엔 뭇성도 변화하여

주님의 빛나는 그 형상을 다함께 보며 주 찬양하리

 

<후렴>

주님의 마음 본 받아 살면서 그 거룩하심 나도 이루리

 

* 기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오늘도 주님 전에 나와 예배하고 기도하게 하시고 주님의 참 사랑으로 구원받게 되었으니 감사합니다. 우리의 삶의 목적이 주님이 되게 하시고 주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며 사는 저희가 되게 하옵소서. 주님께 기도드리는 이 시간 주님을 만나기를 원합니다. 주님께 찬양하기를 원합니다. 사랑과 온유와 겸손과 거룩하신 주님의 마음을 닮게 하옵소서. 먼저 우리의 부족함을 깨닫게 하사 충만함을 주시는 주님을 의지하게 하소서. 우리가 주님의 뜻을 알면서도 행하지 못할 때가 많사오니 우리의 믿음을 반석 위에 세워주시어 흔들리지 않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손길 안에서 축복된 삶을 살게 하옵소서. 불의와 타협하지 않게 하시고 언제 어디에서나 주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게 하소서. 그리고 우리의 삶이 주님의 말씀에 근거한 삶이 되게 하시고 모든 일 들 속에 주님의 능력이 나타나시어서 새롭게 변하는 저희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가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는 마음을 주셔서 복음전파에 매진하세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빛의 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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