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3-02 오전 9:04:33)http://blog.somang.net/holylove/7258
최고의 예술
"사람을 만드는 것, 그것은 최고의 예술." 18세기 독일 낭만주의 기독교 시인 노발리스(Novalis)의 노래이다. 인류 교육의 역사는 사람을 사람되게 하는 전인교육의 역사라 할 것이다. 요즘 같은 전문화 시대에 더 절실히 요청되는 인성교육이 그것이다. 이렇게 볼 때,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성경 진리를 중심한 교회교육이야말로 최고의 예술이라 하겠다. 더욱이 죄로 말미암아 못쓰게 된 인간을 예수 안에서 새사람 만드는 일(고후 5:17)이야말로 세상에서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생명의 예술, 그 자체인 것이다.
최근 미국은 향후 5년 내에 교육이 부실한 학교 5000곳을 없애겠다고 발표하는가 하면 우리나라도 경쟁력 없는 대학을 폐교시키는 등 특단의 교육혁명을 예고하고 있다. 이러한 때일수록 한국교회가 진정 사람을 사람 되게 하는 도제(徒弟)교육의 모델을 제시해야 한다.
/김성영 목사<전 성결대 총장> 겨자씨
▣ 예술가의 자격
인내하시오! 영감을 기대하지 마시오.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예술가의 자격은, 오직 지혜와 주의와 성실과 의지뿐입니다. 성실한 노동자처럼, 그대들의 일을 하시오.
- 최기원의 《로댕 어록》 중에서 -
* 천부적 재능이나 요행수를 믿고 감나무 아래에서 감이 떨어지기를 바라는 태도로는 예술가 자격이 없다. 성실한 노동자처럼 하루하루 열심히 일해야 예술가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 모든 것을 일거에 해결해 주는 도깨비 방망이는 없다. 존재하지도 않는 도깨비 방망이를 손에 쥘 것을 기대하며 빈둥거린다면 큰일이다.
/고도원의 아침편지
▣ 평화와 예술
지구촌의 모든 사람들은 모두 예술인들이다. 공사장에서 노동을 하는 자, 집을 지으며 노동하는 자, 길을 닦는 자, 노래하는 자, 춤을 추는 자, 길을 걸어가는 자의 움직이 까지도 그 자체가 곧 예술이다. 만물도 모두 예술을 한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불며 구름이 유유히 떠가고 해와 달과 별들이 조명이 되어 빛을 비추고, 그 속에서 인간들이 예술을 하게 한다.
* 예술은 위대한 힘을 가진 것 같습니다. 얼굴색, 언어, 생활방식이 각각인 지구촌의 모든 사람들을 한자리에서 하나게 되게 하는 힘이 있어요. 모든 예술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 미완성의 명작
이탈리아 화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생존시부터 명성이 높았습니다. 그에게 어느날 부호인 프란체스코 델 조콘다가 찾아와 작품을 부탁했습니다.
다 빈치는 무려 4년이나 걸려 초상화를 완성했습니다. 그는 작품을 조콘다에게 건네면서 말했습니다. 이 그림은 아직도 미완성입니다.
그 그림이 그 유명한 모나리자라는 작품입니다. 모나리자는 그런 사연이 있는 작품입니다. 명작은 순간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명작은 완성이 없습니다. 우리는 돈을 벌려는 욕심 때문에 모든 것을 급조해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주변에는 감동을 주는 삶도, 작품도 없는 것입니다.
/이정익 목사(신촌성결교회)
▣ 음모와 시련에서도 성공한 미켈란젤로
위대한 조각가 미켈란젤로가 개종하여 기독교인이 되었다. 그에게는 아주 가까운 친구가 있었다. 어느 날, 이 친구가 미켈란젤로를 교황에게 소개해서 시스틴 성당의 천정화를 그리게 해 주었다. 그러나 이 일을 진행하던 친구는 미켈란젤로를 도와주려는 목적으로 행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미켈란젤로의 명성을 손상시키려는 음모로 가득 차 있었다.
미켈란젤로는 끌을 사용한 조각은 잘하지만 붓을 사용한 그림은 서투를 것이라 생각하고, 그로 하여금 실패하여 망신을 당하게 만들어 명성을 땅에 떨어뜨리려는 음모였다.
그러나 미켈란젤로는 4년 동안(1508-1512)을 천정에 매달려 그림을 그렸고, 그림이 완성되었을 때, 그것은 유례없는 대작이 되었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천지창조이다.
▣ 예술이란
예술이라는 단어를 이보다 더 잘 정의한 말은 아직 듣지 못했구나. 예술은 자연에 인간을 더한 것이다. 자연, 현실, 진실 하지만 실상 중요한 것은 예술가가 자연 안에서 찾아 내는 개념이나 특징이겠지. 거기에 적당한 표현을 찾아 주고, 원래의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예술가의 일일 거야. 하나하나 뜯어서 보여 주고 자유롭게 해 주고 그렇게 해석하는 일이지.
깊은 자연 속으로 들어가십시오. 만물이 여전히 조화롭게 돌아감을 볼 것입니다
/이주연 목사
▣ 예술적 지성
멋진 작품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우선 상상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예술적 지성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예술적 지성이란 현실과 상상력 사이의 점들을 연결할 수 있는 능력이다. 상상력은 가능성을 파악하고, 지성은 그 가능성을 머릿속에서 가공한다.
- 스탠 데이비스의《예술가처럼 일하라》중에서 -
* 멋진 작품뿐 아아니라 멋진 인생을 만들기 위해서도 현실과 상상력의 결합이 필요합니다.
현실과 상상력 사이가 처음에는 아득해 보이지만 어느 순간 하나가 되어 상상의 세계가 현실의 세계로 바뀌어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런 능력을 갖게 하는 예술적 지성은 독서, 명상, 여행 등을 통해서, 특히 좋은 사람, 좋은 경험과의 만남을 통해 높여 갈 수 있습니다.
/고도원의 아침편지
▣ 90세 예술가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아르투르 루빈스타인이 90회 생일을 맞았다. 그는 한 음악잡지의 기자로부터 『선생님은 20세기 최고의 피아니스트라고 불리는데 소감을 말해달라』는 질문을 받고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예술의 세계에는 『최고』가 있을 수 없습니다. 차이점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술가는 개성을 가져야 합니다. 나는 나 자신이어야 합니다. 예술인들에게 있어서 최대의 비극은 남의 모방자가 되려는 것입니다. 나는 리스트도 파데레우스키도 아닙니다. 루빈스타인일 뿐입니다』
▣ 침묵의 예술
"우리는 침묵의 예술을 배워야 한다. 고요히 주의를 기울이며 머무는 법을 배워야 한다."
침묵은 밭을 갈고 씨앗을 뿌린 후에 새싹이 돋아나기를 기다리는 농부의 기다림과 같다.
긴 인내와 희망을 필요로 한다.
- 브라이언 피어스의《동행》중에서 -
* 때로는 침묵에 해답이 있습니다. 침묵이 곧 씨앗이고, 지혜이고, 예술입니다. 그러나 그 침묵은 고요한 기다림을 요구합니다. 고요히 머물러 기다릴 줄 아는 사람에게만 침묵은 예술이 될 수 있습니다.
/고도원의 아침편지
▣ 난해한 현대 예술 이해 법!
나는 현대 음악, 현대 미술, 현대 조각, 현대 젊은이들의 랩 음악과 춤 등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점에서 남몰래 항상 주눅들어 있었습니다. 현대 문화에 대한 무지! 신세대와 쉰세대의 제네레이션의 높은 波高! 현대 예술 하면 아예 처음부터 나는 그런 거 잘 몰라! 하며 꽁무니를 빼던 나!
그러던 어느 날 나는 한 예술가의 글을 읽은 후부터 나는 참 자유를 얻었습니다!
오, 자유! 자유란 참 좋은 것입니다.
<현대 예술에서 단 하나의 올바른 해석이란 없다. 작가가 의도한 어떤 효과는 있겠지만 내가 반드시 작가의 의도대로 그 작품을 감상해야만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그래서 옳다고 하는 해석에 도달하지 못했거나 작가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을 경우, 나는 틀렸다고 생각할 필요도 없다. 어떤 경우는 작품을 오해하면서 더 창조적인 해석이 나오기도 한다. 현대 미술에 오면 단 하나의 진리를 강요하지 않는다. 예술은 작품을 보는 내가 있음으로 해서 완성된다. 나는 더 이상 단지 작가의 의도를 가만히 서서 받아들이는 수동적인 관람자가 아니다. 나의 해석은 작가의 그것보다 더 창조적일 수도 있다. 나는 작품을 창조적으로 읽는다. 창조적 해석을 통하여 나 또한 예술가가 될 수 있다. 멋지지 않은가!>
(조이한 진중권의 천천히 그림 읽기, 값 10,000원, 웅진출판사, 1999, 274쪽)
얼마나 끝내주는 명언인가!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몇 번이나 맞어! 맞어! 아멘!이로구먼 하였습니다. 이 책을 통하여, 나는 예술에 대하여는 무식한 사람이라는 내 스스로 내린 자괴감에서 해방될 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이 글을 읽고, OK! 예술이 별 거냐? 알았다 오바! 하는 자유함을 느낀 거지요.
네가 나를 헷갈리게 했는데 나는 괜히 안 헷갈려보려고 질서를 찾고 의미를 찾느라고 안간힘을 썼는데, 이제부터는 아니라는 말입니다. 네가 나를 헷갈리게 한 대로 나도 계속 헷갈려 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 참이나 헷갈리다가 무엇인가 번쩍 번쩍 버번쩍 하고 영감적 해석이 오면 그 희한한 해석의 기쁨을 누려보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도 예술가가 되는 거지요.
이 책의 저자들은 <그림을 어떻게 봐야 제대로 보는 걸까? 그림을 이해하는 데 정답이 있을까? 무엇보다 그림은 그림을 보는 지금의 나와 내가 사는 현재라는 시간이 서로 얽혀 있어 끊임없이 다르게 이해될 수 있다> 라고 하였습니다.
/이정수 목사
▣ 일상의 삶을 예술처럼
제 곁에 믿음 있는 화가 한 분이 계십니다. 혼인 후에는 작품 활동을 전혀 하지 않다가, 30년 만에 작품전을 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 작품전은 모두를 놀라게 하였습니다. 그때 전시회에 참석했던 한 화가가 그분께 물었습니다.
"어떻게 집에만 있던 분이 이런 작품을 할 수 있습니까?"
그러자 대답했습니다. "설거지하고 빨래하고, 아이들을 길렀는데, 왜 못합니까? 그것이 제겐 힘이었고 작품 활동이었습니다."
그런데 후에 제자가 찾아와서 물었습니다. 그 제자는 10여 년간 집에 있다가 아이들을 길러놓고, 다시 작품 활동을 시작하려고 하는 데 막막한 처지가 되어 찾아왔던 것입니다.
"선생님, 어떻게 하면 작품을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요?"
그때 그분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동안 빨래하고 설거지하고 아이들을 기르지 않았니? " "예, 그렇게 했지요. 그런 일만 하고 살았으니 이렇게 막막해서 찾아온 것이지요. "
"아니, 빨래하고 설거지하고 아이들을 길렀으면 됐지, 또 무슨 다른 방법이 있니? 그것이 다 방법이야!" 일상의 삶을 예술처럼 여기고, 예술을 일상의 삶으로 사는 데에 깊은 삶과 높은 예술의 길이 있습니다. 오늘 하루도 매 순간을 삶에 충실히, 정성을 다하여 작품을 해 나가듯 산다면, 오늘 우리의 삶은 아름다운 작품이 될 것입니다. 영성의 길이란 일상을 거룩한 것을 모시듯, 그리고 거룩한 일을 일상의 삶으로 살아가는 여정입니다.
/이주연 목사
▣ 인생을 예술품으로 만드는 방법
누구에게나 불행과 비극의 가능성은 있습니다. 삶의 어느 순간, 우리는 눈물 골짜기에서 목마른 기도를 드려야 할 때가 있습니다. 삶의 어느 순간, 우리는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하고 새벽을 맞이하는 어부처럼 절망의 빈배에 앉아 탄식의 숨을 내뿜을 때가 있습니다. 또한 삶의 어느 순간, 우리는 이별의 항구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실은 배가 멀리 사라져 가는 것을 보고 슬픈 마음을 가지게 될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눈물이 존재하지 않았으면 좋았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며, 어부가 되지 않았으면 좋았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며, 항구가 존재하지 않았으면 좋았었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들은 참으로 불필요합니다. 불행과 비극의 가능성을 내포한 것, 이것이 바로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고난과 절망은 언뜻 보면 깊은 관련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는 인생의 여정에서 전혀 상반된 상황을 만들어냅니다.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지만 고난은 진정한 삶에 이르는 약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배반하는 삶을 살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위선적인 삶을 살고 있습니까? 그러한 삶의 가면들이 고난으로 인해 벗겨지게 됩니다. 신학자 루이스 벌콥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습니다. "고난은 우리의 말과 행동의 진실성을 판단할 만한 중요한 표준이 된다." 이처럼 고난이 진실성을 판단할 만한 중요한 표준이라면 그러한 표준을 가지지 못한 사람은 얼마나 불행합니까? 인생이 하나의 예술품이라면 고난의 과정을 통과하지 않고는 진정한 예술품이 만들어질 수 없습니다. 실연을 겪은 사람이 사랑의 고귀함을 깨닫게 되며, 가난함을 겪어본 사람이 자선의 고귀함을 깨닫게 되며, 무직생활을 경험한 가장이 일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며, 낙방을 경험한 사람이 노력의 소중함을 깨닫게 됩니다. 또한 배신을 경험한 사람이 충성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며, 실패를 경험한 사람이 "나는 높은 사람이 아니다"는 진리를 깨닫고 비로소 겸손해질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여러 가지의 고난은 우리들의 삶에 진실성을 가져다주어 종국에는 우리들의 삶을 하나의 아름다운 예술품으로 만듭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고난의 순간이 찾아온다면 자가진단을 통해 그 순간을 우리들의 삶에 스며있었던 위선의 때를 벗기고 우리의 삶이 보다 성숙해지는 순간으로 활용하는 지혜를 가져야 하겠습니다. 고난으로 인하여 절망한다면 죽음에 이르게 되지만 고난 자체를 기꺼이 수용한다면 진정한 삶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 이한규 목사(분당 사랑의 교회)
▣ 삶의 예술 시작은
삶의 예술! 예술의 근본 정신은 창조성 구현입니다. 창조력은 지금 있는 상태와 다른 것을 상상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지금 있는 상태와 다른 것을 만들기 위해서는 지금 있는 상태의 좋고 나쁨을 판단할 수 있는 비판력, 판단력이 필요합니다. 그 지점에서 비판력과 창조력, 상상력은 늘 함께 하는 세 쌍둥이 입니다. 스스로 홀로 골똘히 상상하고 비판해 봅니다.
자기 반성적 태도, 바로 양심성찰입니다. 또 자기의 상상과 판단, 창조를 이웃이나 세상 바깥 세계에다가 표현해 봅니다. 개관적 성찰입니다. 주관에 사로 잡히지 않고 사는 비결입니다. 비판력이 없이는 상상력도 없고 상상력이 없이는 창조력도 나오지 않습니다.
비판력, 상상력, 창조력 이들은 의좋은 삼총사입니다.
▣ 예술가의 고통
삶의 예술가들은 고통을 만납니다. 첫째는 삶을 예술로 작업을 하지 않는 고통이고 둘째는 삶을 예술로 작업하는 고통입니다. 작업을 하지 않는 고통은 작업을 하는 고통으로서만이
넘어 갈 수 있습니다. 작업을 하는 고통은 작업을 하지 않는 고통에 비해 얼마나 행복한 고통인가를 알게 되면 저절로 극복이 됩니다. 삶의 예술가는 고통을 환희로 즐기는 사람입니다.
▣ 예술로서의 삶
위대한 철인 소크라테스(Socrates, BC 470?∼BC 399)가 다음 같은 말을 남겼다.
“성찰되지 않은 인생은 살 가치가 없다.(The unexamined life is not worth living)”
이 말에 담긴 의미는 우리가 자신의 삶을 스스로 반성하고 검토하지 않는다면 뜻있게, 보람되게 살아갈 수 없다는 말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성찰함이 없이 살아가고 있기에 헛된 삶을 살고 있다. 자신의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참된 삶의 시작이다. 우리가 자신의 삶을 성찰한다는 것은 자기의 자아(自我)를 실현하는 것이며 자신의 인생을 창조해 가고 있음을 뜻한다. 음악이나 미술이 예술인 것처럼 삶도 예술이다. 그런데 예술에는 두 가지 특징이 있다. 이들 두 가지 특성 중에 한 가지라도 빠지면 예술이 되지 못한다. 그 첫째가 개성이요, 둘째가 독창성이다. 유명한 화가의 그림을 한 획 틀림없이 그대로 모방하는 재간이 있을지라도 그를 화가라 일컫지 않는다. 자신의 개성이 독창적으로 베어 있는 그림이 아니기 때문이다.
심리학자 에릭 프롬(Erich Fromm)이 삶이 예술임에 대하여 다음같이 말했다.
“의학이나 공학이나 미술만이 예술이 아니다. 산다는 것 자체가 예술이다.(Living itself is an art.) 사실 산다는 자체는 인간이 행하는 예술 중에서 가장 중요하고 그리고 동시에 가장 어렵고 또한 가장 복잡한 예술이다.” -Erich Fromm, Man for Himself 중에서.-
/김진홍
▣ 예술적 동반자
스물일곱 살에 처음 그를 만났을 때, 그는 별처럼 멀리 있는 예술가였다. 남자로서도 좋아했지만 예술가로도 흠모했다. 저렇게 빛나는 남자를 어떻게 잡을 수 있겠느냐고 친구가 물었을 때, 나 역시 치열한 예술가가 되어 그에게 닿겠노라고 다짐했었다. 그의 연인으로, 그리고 아내로 살아 온 지난 40년은 그의 예술적 동반자가 되기 위한 열망과 정진의 시간들이기도 했다. 때론 고통스러웠지만, 더 큰 희열이 있었기에 포기할 수 없었다.
- 구보타 시게코의《나의 사랑, 백남준》중에서 -
* 세계의 별이 된 백남준 같은 예술가는 누가 만들었을까요? 당연히, 그의 타고난 재능과 각고의 노력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와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이 만들었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서로 사랑을 나누고, 영감을 나누고, 예술을 나누는 사람이 있었기에 가능했으니까요. 예술적 동반자와 인생을 함께 걸어가면 삶 자체가 예술이 됩니다.
/고도원의 아침편지
▣ 명작의 조건
본문 : 골 1:28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나이는 어리지만 그림 실력이 출중한 소녀가 있었습니다. ‘로자’라는 이름의 소녀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엄청난 재능을 보였고 언제나 붓을 들고 다닐 정도로 열정 또한 있었습니다.
그녀 인생의 목적은 멋진 그림을 그려서 다른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가난이 그녀의 앞길을 막았습니다. 그녀는 당시의 다른 화가들처럼 인물을 묘사해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싶었지만 돈이 없었기에 모델을 구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또 여자라는 이유로 뛰어난 실력에도 불구하고 변변한 후원자조차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그림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비록 모델을 구하지 못해도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절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붓과 그림틀을 준비해 다니던 그녀는 집을 나서던 중 한 농부가 끌고가는 말을 보게 됩니다. 순간 그녀에게 말은 완벽한 모델처럼 느껴졌고 꼭 그려야만 한다는 느낌이 떠올랐습니다. 말의 모습을 급하게 스케치 한 그녀는 심혈을 기울여 그림을 완성했습니다. 그 그림은 지금 뉴욕시 미술관에 ‘장터의 말’이라는 제목으로 전시되어 있습니다. 사람만이 모델 취급을 받던 그 시대에 오히려 말을 모델로 한 그림이 불후의 명작이 된 것입니다.
명작은 이미 우리들 안에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이미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완벽한 작품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나타내는 것 그것이 명작의 조건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창조하고 만족하셨던 완전한 작품임을 기억하십시오.
* 기도: 주님! 내가 하나님의 작품임을 알게 하소서.
* 묵상: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십시오.
/김장환 목사
▣ 중세시대의 기독교미술
비잔틴 제국,즉 기독교화한 동로마제국이 찬란한 기독교문화를 창조하고있는 동안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한 유럽의 로마제국은 쇠퇴의 길을 걷고 있었다. 로마제국에선 서로 세력을 겨루는 무수한 게르만족 왕국들이 분열돼 전쟁을 했다.이들의 살생과 약탈,방화로 유럽의 도시와 교회는 폐허가 됐다.이로 인해 한때 찬란했던 로마문화는 점차 쇠퇴해 중세 암흑시대가 1100년까지 지속됐다. 교회는 약탈과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퇴폐적인 도시생활을 피하기 위한 방편으로 한가한 시골과 조용한 산간에 수도원을 세웠다.이때 세워진 많은 수도원은 새로운 기독교활동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고대에서 전해진 학문과 미술품을 보존하는데 기여했다.수도원운동의 간접적 동기가 된 것은 게르만족의 대이동과 유럽침공이었다.이러한 게르만족의 대이동과 방황,전쟁이 가져온 공포와 불안 속에서 기독교는 종교적․정치적 중심세력으로 자리를 굳힐 수 있었다. 게르만족의 대이동과 정착이라는 대혼란기에서 지금의 독일과 프랑스를 주축으로 하는 프랑크 왕국은 정치적․종교적으로 안정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중세 초기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정치지도자는 샤를마뉴 대제였다.샤를마뉴(독일어로는 칼 대제)는 라틴어식 이름이며 그의 시대를 일컬어 카롤링거 왕조라고 부른다. 768년부터 814년까지 샤를마뉴의 군대는 북유럽의 드넓은 지역을 장악했다.그는 군사력을 바탕으로 북유럽의 기독교세를 확장하고 3백여년전 로마제국이 멸망하기 전에 융성했던 고대예술을 부흥시키려고 노력했다. 샤를마뉴는 라틴어에 유창했고 그리스어를 알아들을 수 있었다.그는 예술가들이 기독교의 메시지를 전함과 동시에 제국의 위엄과 영광도 표현하기를 원했다.특히 수많은 라틴어 복음서의 필사작업을 후원했다.그리스와 로마의 책은 첫 페이지에 저자의 초상화를 싣는 것이 관례였다.따라서 복음서 필사본에도 이런 관례에 따라 저자의 초상 또는 중요부분에 삽화를 그려넣었다.그 중에는 고전적인 품격과 엄숙함을 드러내는 훌륭한 작품들도 많았다.이 시대에 탄생한 삽화들은 고전미술에는 없었던 새로운 양식의 회화를 출현시켰다.과거 이집트인들은 대체적으로 그들이 존재한다고 `알았던 것을 그렸고 그리스인들은 그들이 `본 것을 그렸다.반면 중세의 미술가들은 그들이 `느낀 것을 그림 속에 표현했기 때문이다.이들은 자연을 그럴듯하게 닮게 그리거나 아름다운 것을 만들어내려고 한 것이 아니라 신앙의 형제들에게 성경의 내용과 가르침을 전달하고자 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랭스의 대주교 에보의 복음서중 `성 마태(830년경,에페르네 시립도서관 소장)의 삽화다.마태는 성서의 말씀을 성령에 감동받아 열심히 기록한다.너무 긴장되어 머리카락이 일어서고, 옷자락은 심하게 뒤틀리고, 떨려서 마치 온몸에 전류를 받은 것처럼 보인다.그의 눈은 매우 긴장돼 있고 얼굴과 목에선 땀이 줄줄 흐르는 것 같다.생동감있게 그려진 언덕에는 날개 달린 천사가 그에게 성서의 복음말씀을 읽어주고 있고 마태는 그것을 조급하게 받아적느라고 정신이 없다. 화가는 아름답게 균형잡힌 고대나 비잔틴의 인물이 아니라 성령으로 충만한 마태가 정확히 받아쓰려는 경건한 모습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또 고개숙인 머리와 부릅뜬 눈, 깃털 펜을 쥔 긴장된 손가락, 잉크가 담긴 뿔병과 책에 그의 창작의 정열을 쏟았다.오자가 없는 성서를 만들기 위해 종교적 영감에 몰입한 감동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이와함께 약 1백년 뒤인 1000년경 독일에서 그려진 오토 3세의 복음서중 `사도들의 발을 씻기시는 그리스도(뮌헨 바이에른 국립 도서관 소장)도 성경의 가르침을 확신있게 전달하는 대표적인 것 중 하나다.요한복음 13장8~9절을 소재로 한 이 그림은 그리스도가 최후의 만찬을 가진 후 사도들의 발을 씻겨주는 장면을 묘사했다. 베드로가 안됩니다.제 발만은 결코 씻지 못하십니다라고 사양하자 예수께서는 내가 너를 씻어주지 않으면 너는 이제 나와 아무 상관도 없게 된다고 말씀하셨다.그러자 베드로는 주님, 그러면 발 뿐아니라 손과 머리까지도 씻어주십시오라며 간청했다. 베드로의 간청하는 모습과 예수의 조용히 꾸짖는 모습, 오른쪽에는 제자 한 사람이 신을 벗고 있고, 다른 한 사람은 대야를 가져오고, 그밖의 사람들은 베드로의 뒤에 모여 서있다.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화면 중앙에 고정돼 있어 우리에게 무엇인가 중요한 사건이 일어나고 있다는 암시를 주고 있다.이 그림에서도 정확한 균형에는 관심이 없다.다만 얼마만큼 성경의 교훈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냐에 관심이 집중돼 있을 뿐이다.여기에서 우리는 과거 그레고리우스 교황의 가르침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에게 책이 해주는 역할을, 그림은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사람에게 해줄 수 있다
/이강미
▣ 완전무결한 걸작
1945년 4월 12일,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갑작스럽게 뇌출혈로 사망했다. 당시 루스벨트는 정치적인 부담감에 시달린 탓인지 심신이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다. 그러나 그 무렵 화가 엘리자베스 슈마토프가 그린 초상화 속 루스벨트의 모습은 그야말로 완전무결하다. 그 안에는 한 시대를 풍미하며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성실하고, 용기 있고, 확신에 찬 지도자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하나님은 우리의 결점을 모두 알고 계시면서도 있는 그대로 사랑하신다. 슈마토프가 대상의 내면에 깃든 아름다움을 화폭에 담고자 했듯이, 하나님도 우리 안에서 주님이 십자가를 통해 성취하신 구원과 약속을 바라보신다. 우리는 은혜와 사랑으로 창조된 하나님의 작품이다. 비록 지금 우리 삶은 온전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완성된 우리 모습을 이미 알고 계신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대한 약속과 가치를 지닌 존재로 보신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끊임없이 변화시키신다. 우리가 하나님께 사랑받는 존재이며 참으로 위대한 소명을 받았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분을 영화롭게 할 수 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인생 계획」/ 찰스 스탠리
* 금언: 하나님은 목적없이 나를 창조하지 않으셨기에 그분의 일에 내가 차지하는 부분이 반드시 있다.(찰스스텐리)
▣ 하나님이 창조하신 (찬송가 477장)
1. 하나님이 창조하신 꽃들이 아름다워 들길
따라 핀꽃들도 하나님을 찬양하네 맑은
향기를 고운 노래를 온천지에 날리네
아버지여 우리믿음 꽃들처럼 피게 하소서
2. 하나님이 창조하신 수목이 아름다워 숲속
에서 자라란 나무 하나님께 감사하네 곧은
가지를 푸른 희망을 하늘높이 뻗치네
아버지여 우리믿음 나무처럼 곳게하소서
3. 하나님이 창조하신 강들이 아름다워 돌무
덤과 가시밭길 가로질러 흘러가네 깊은
바다로 넓은 바다로 쉬지않고 흐르네
아버지여 우리믿음 강물처럼 깊게하소서
4. 하나님이 창조하신 별들이 아름다워 밤하
늘을 수놓으며 하나님을 경외하네 빛이
되어라 어둠 밝혀라 주의말씀 따르네
아버지여 우리 믿음을 별처럼 밝게 하소서
▣ 참 아름다와라 (찬송가 478장, <통> 78장)
1. 참 아름다와라 주님의 세계는 저 솔로몬의 옷보다 더 고운 백합화 주 찬송하는 듯 저 맑은 새소리 내 아버지의 지으신 그 솜씨 깊도다
2. 참 아름다와라 주님의 세계는 저 아침 해와 저녁놀 밤 하늘 빛난 별 망망한 바다와 늘 푸른 봉우리 다 주 하나님 영광을 잘 드러 내도다
3. 참 아름다와라 주님의 세계는 저 산에 부는 바람과 잔잔한 시냇물 그 소리 가운데 주 음성 들리니 주 하나님의 큰뜻을 내 알듯하도다 아멘
▣ 예술, 아름다움에 관한 성경 말씀
0 (신명기 3:25) 구하옵나니 나를 건너가게 하사 요단 저쪽에 있는 아름다운 땅, 아름다운 산과 레바논을 보게 하옵소서 하되 0 (시편 16:6)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
0 (시편 81:2) 시를 읊고 탬버린과 아름다운 하프와 수금을 연주하라.
0 (시편 96:9) 아름답고 거룩한 것으로 여호와께 예배할지어다 온 땅이여 그 앞에서 떨지어다
0 (시133:1)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0 (시147:1) 할렐루야 우리 하나님께 찬양함이 선함이여 찬송함이 아름답고 마땅하도다
0 (잠언 11:22) 아름다운 여인이 삼가지 아니하는 것은 마치 돼지 코에 금 고리 같으니라
0 (잠22: 17- 18) 너는 귀를 기울여 지혜 있는 자의 말씀을 들으며 내 지식에 마음을 둘찌어다 이것을 네 속에 보존하며 네 입술에 있게 함이 아름다우니라
0 (잠언 24:4) 지식 때문에 방마다 귀하고 아름다운 보물들이 가득 찬다.
0 (잠언 31:30)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지만, 주님을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는다 0 (전도서 7:1) 아름다운 이름이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고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으며
0 (아가 2:10) 내가 사랑하는 그분이 입을 열어 내게 말씀하십니다. “내 사랑이여, 일어나세요. 아름다운 내 사람이여, 나와 함께 가요.
0 (아가7:1) 귀한 자의 딸아 신을 신은 네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네 넓적다리는 둥글어서 숙련공의 손이 만든 구슬 꿰미 같구나 0 (이사야 4:2) 그 날에 여호와의 싹이 아름답고 영화로울 것이요 그 땅의 소산은 이스라엘의 피난한 자를 위하여 영화롭고 아름다울 것이며 0 (이사야 32:15) 마침내 위에서부터 영을 우리에게 부어 주시리니 광야가 아름다운 밭이 되며 아름다운 밭을 숲으로 여기게 되리라 0 (이사야 40:9)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여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 아름다운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는 자여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 두려워 말고 소리를 높여 유다의 성읍들에 이르기를 너희 하나님을 보라 하라 0 (마태복음 7:19)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0 (롬10: 15)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0 (벧전 2: 20)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0 (벧전 3:3)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 예술에 관한 금언
0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히포크라테스)
0 예술가가 되고 애호가가 된다는 것은, 신이 인간에게 운명 지운 진정한 목적과 유일하고도 적당한 목표가 있는 것이다. (버나드 아이딩즈 벨)
0 오늘날 예술과 기술 사이에 그토록 예리한 경계선을 긋기를 주장하고 있는 까닭이 무엇일까? 실제적으로 예술이 사람들의 일상생활의 절대 필요한 요소가 되었던 시대에는 경계선이 그어져 있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날에 와서는 예술가는 도시 한 모퉁이에서 살고, 기술자는 다른 모퉁이에서 살고, 기술자는 다른 모퉁이에서 살면서 서로 다른 세계를 이루고 있고, 이 두 세계는 좀처럼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헨드릭 윌름 반룬)
0 장인의 긍지는 그의 예술에 있고, 그 용도는 그 자신에게 있다. 그가 기뻐하는 것이 되도록 바라는 것들을 만다는 기술과 능력이 그에게 있다. (죠지 산타야나)
0 유일하게 존경을 받지 못하는 예술가는 상업상의 성공을 목적으로 작품을 만들거나, 출세할 목적과 대중을 기쁘게 하기 위하여 작품을 만드는 자들이다. (쟈크 마리탱)
0 아무리 솜씨가 뛰어난 예술가라 할지라도, 아무리 그의 기술이 완벽하다 해도, 우리에게 말해 줄 것이 없다고 한다면, 불행하게도 그의 작품은 가치가 없다.(쟈크 마리탱)
0 예술가가 만들고 있는 작품이 흙으로 만든 꽃병이건 어선이건 사물 그 자체보다는 다른 어떤 의미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이 작품이 하나의 사물로서 중요하지만 전조로서도 중요하고, 그것이 나타내는 의미가 생명을 불어넣지 않으면 된다. 그것으로 하여금 그 자체의 의미 이상의 것을 말하게 해야 한다. (쟈크 마리탱)
0 예술은 창조적 노력이며 근원이 정신에 담겨져 있는 것으로 직관이나 비젼에 의해 사물을 감지하여 예술가와 가장 친숙한 자아요, 직관과 비젼의 결합으로 나타난 것이다. 따라서 단지 말이나 생각의 표현이 예술은 아니다. (쟈크 마리탱)
0 모두 위대한 예술은 인간의 작품이 아니라 하나님의 작품에 인간의 기쁨을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 (죤 러스킨)
0 예술과 인생은 성급하게 재 결합시켜 함께 살도록 만들어야 한다.(휴 윌폴)
0 현대 예술에 있는 것과 같은 그런 것은 없다. 예술은 있으나 그것은 광고 예술이다. (알버트 에드워드 스터너)
0 예술은 마치 도덕과 같아서 어딘가에 선을 긋는 것으로 이루어진다.(길버트 K. 체스터튼)
0 어떤 예술의 가장 고상한 문제는 좀더 고상한 실재의 착각으로 나타나게 만드는 것이다(요한 볼프강 폰 괴테)
0 진정한 예술 작품은 하나님의 완전성의 그림자에 불과하다. (미켈란젤로)
0 예술적으로 훌륭한 것들은 모두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의사를 전달하는 표현이요, 그것을 말하는 인간의 위대성에 따라 그 작품도 고상하게 여겨진다.(죤 러스킨)
0 학생이 그의 스승을 닮듯. 예술도 말하자면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므로 능력이 있는 한 하나님의 자연을 닮지 않으면 안 된다. (알리지에리 단테)
0 에술의 완성을 예술을 감추는 것이다. (퀸틸리안)
0 예술 작품을 대함에 있어 그의 결점으로 판단하지 말라.(위싱턴 알스턴)
0 예술가는 세상 우화에 나오는 어린 아이이다. 그의 눈물 방울은 모두 진주이다. 아, 가혹한 계모인 세상이여! 좀더 진주를 많이 쏟도록 그 가련한 아이를 좀더 세차게 때리려므나! (하인리히 하이네)
0 아름다운 사람을 칭찬하는 것보다 더 호색을 억제하는 효능 있는 해독제는 없다. 모든 계획의 좀더 고상한 예술은 그 대상에 관계없이 본질적으로 순결하다. 비극이 욕망을 정화하듯 생각을 정화하고, 그들의 우발적인 결과는 생각할 가치가 없는 것들이다. 그들은 영원한 정결을 맹세하고, 여신의 제단에 끊임없이 불타는 성화를 지킨다는 처녀들까지도 거룩하지 않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아우구스트 빌헬름 폰 쉴레겔)
0 예술의 가장 고상한 승리는 가장 참되게 자연을 나타내는 것이다. (나다니엘 파커 윌리스)
0 위대한 화가들의 이름은 마치 죽음을 알리는 조종과도 같았다. 벨라스퀴즈의 이름을 듣는 순간 그대는 스페인의 몰락의 소식을 들었고, 티티안의 이름과 동시에 베니스의 몰락의 소식을 들었으며 레오나르도의 이름으로는 밀란의 몰락, 라파엘의 이름으로는 로마의 몰락의 소리를 들었다. 여기에는 심오한 공의가 있었다. 힘을 헛되게 사용하거나 악하게 상용하여 죄를 범하는 것은 힘의 고상함에 비례하는 것이요, 그때까지 예술이 위대하면 위대할수록 분명히 더 많이 사용되어 왔으나 허세를 부리기 위한 장식 목적에만 사용되었거나 육욕을 자극하는데 사용하여 왔기 때문이다.(죤 러스킨)
0 예술의 사명은 자연을 모방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진실성과 위대성을 나타내는 데 있다. (알프레드 윌리엄 헌트)
0 조각, 그림, 기록된 소설 등 상상으로 된 모든 작품들의 진정한 신뢰성은 그 상상이 어찌나 순수한지 예술가가 적극적으로 진리를 나타내려고 시도하지 않아도 진리의 이상적인 영상이 들어 나기 마련이다.(에드워드 죠지 벌위- 리튼)
0 보통으로 진실된 것이나 순수하게 사실적인 것은 예술의 대상물이 될 수 없다. 진실에 근거를 둔 환상이 미술의 비결이 되는 것이다.(조세프 주베르)
0 예술은 자연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 연구에 자체의 기초를 두고 자신의 의향과 가장 잘 부합하는 것들을 선택해 내는 것이며, 그리고 나서는 자연이 가지고 있지 못한 것들, 즉 인간의 마음과 영혼을 거기에 부여하는 것이다. (에드워드 죠지 벌워-리튼)
0 예술의 대상은 생각으로 감정을 구체화하는 것이요, 그리고 나서 형태를 갖추게 만드는 것이다(프랑수아 델사르)
0 배운 자는 예술의 이치를 이해하고, 배우지 못한 자는 쾌락을 느낀다.
(퀸틸리안)
0 모든 에술의 가장 고상한 문제는 그 작품이 모습을 드러냄으로 인해 좀더 고상한 실재의 환상을 낳게 하는 것이다.(요한 볼프강 폰 괴테)
0 필요는 유용한 예술의 어머니요, 사치는 미술의 어머니이다. 전자는 그들의 아버지에 대하여 지성적이지만, 후자는 뛰어난 재주로서 그 자체로서는 사치의 한 종류이다.(아르투어 쇼펜하우에르)
0 화가는 그의 작품을 만드는 일에 관하여는 직공일 수 밖에 없으나, 그의 개념과 정신과 계획에 관한 그는 좀처럼 시인보다 아래라고 할 수 없다.(요한 크리스토프 프리드리히 폰 쉴 러)
0 의장술의 색깔은 산문시의 절과 같다. 좀더 조화되고 좀더 빛을 내는 사고의 수단이다. (안나 제임슨)
0 예술가는 하나님의 작품을 직접적으로 다루고 일하면서, 창조의 가르침을 인류에게 풀이하는 일을 하므로 매우 거룩한 것이다. 그것을 거룩하게 다루는 인간에게 영광이 있을지어다. 하나님의 임재하심에서와 같이 그에게 제시된 하나님의 생각을 연구하고, 가장 진지하고 존경받는 산상의 천재에게 보여줄 수 있도록 늘 준비하고 모든 것을 그의 본에 따라 만든다.(죤 헤딩턴 브라운)
0 우리가 보는 즉시 눈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다고 한다면 우리는 눈에서 팔을 통하여 손에 쥐어진 연필에까지 가는데 얼마나 긴 시간을 허비하는 것이라고 생각할까? (고트홀드 E. 레싱)
0 예술은 자연을 복사하는 것이 아니다. 자연은 그 자체로 아직 나타내지 않은 미를 나타내려는 수단으로 소재를 제공하고, 예술가는 자연 자체가 알고 있는 것 이상의 많은 것을 본다. (헨리 제임스)
0 가장 높은 수준의 예술은 예외 없이 가장 종교적이요, 가장 위대한 예술가는 언제나 독실한 사람이다. 비웃는 라파엘이나 혹은 엉뚱한 미켈란젤로는 생각할 수 없다. (윌리엄 가든 브레이키)
0 예술가들은 하나님과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다. 그들은 그들의 영혼에 하나님의 명을 호흡하고, 그들의 손을 통하여 세상을 축복하는 뚜렷한 형태가 아름답게 흘러나온다.(죠시아 길버트 흘랜드)
0 구원을 받고 하나님을 안 후 그림이나 시, 그리고 음악으로부터 전에는 알지 못하던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아, 참으로 종교는 그들의 긍지의 원천이 되고 있어서 하나님으로부터 얼마나 많은 것을 받아 간직하며 고조된 쾌락의 즐거움을 받아 누렸던가! (헨리 마틴)
0 예술의 극치는 하나님의 능력의 손이 미친 창조의 세계요, 그 중에도 가장 위대한 작품은 인간이다.(김경선)
0 예술은 우리 인간 사회 깊숙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발효하고 그 예술 정신은 쉴 새 없이 퍼지고 자라서 강력한 힘으로 작용하며, 때로는 그 사회의 흥망의 결정적인 역할도 하게 되는 것이다.(조상현)
0 그림은 말이 없는 시(로마 격언)
0 자연은 신의 묵시이며, 예술은 인간의 응답이다.
* 주의: 본 자료를 무단 수집, 제작 배포 출판하면 저작권법에 저촉(위배)됩니다.
/빛의 사자
완전무결한 걸작 댓글[0]
사명, 은사, 직분
(2012-03-02 오전 8:12:19)http://blog.somang.net/holylove/7257
완전무결한 걸작
1945년 4월 12일,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갑작스럽게 뇌출혈로 사망했다. 당시 루스벨트는 정치적인 부담감에 시달린 탓인지 심신이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다. 그러나 그 무렵 화가 엘리자베스 슈마토프가 그린 초상화 속 루스벨트의 모습은 그야말로 완전무결하다. 그 안에는 한 시대를 풍미하며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성실하고, 용기 있고, 확신에 찬 지도자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하나님은 우리의 결점을 모두 알고 계시면서도 있는 그대로 사랑하신다. 슈마토프가 대상의 내면에 깃든 아름다움을 화폭에 담고자 했듯이, 하나님도 우리 안에서 주님이 십자가를 통해 성취하신 구원과 약속을 바라보신다. 우리는 은혜와 사랑으로 창조된 하나님의 작품이다. 비록 지금 우리 삶은 온전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완성된 우리 모습을 이미 알고 계신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대한 약속과 가치를 지닌 존재로 보신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끊임없이 변화시키신다. 우리가 하나님께 사랑받는 존재이며 참으로 위대한 소명을 받았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분을 영화롭게 할 수 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인생 계획」/ 찰스 스탠리
* 금언: 하나님은 목적없이 나를 창조하지 않으셨기에 그분의 일에 내가 차지하는 부분이 반드시 있다.(찰스스텐리)
두려움으로부터의 자유 댓글[0]
평안, 불안, 공포
(2012-03-02 오전 6:59:28)http://blog.somang.net/holylove/7256
두려움으로부터의 자유
영국 옥스퍼드 대학의 알렉산더 플로그하우스 박사는 ‘거절에 대한 두려움이 실제로 거절당하는 것보다 더 두렵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사람의 삶에 있어서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실패 그 자체보다 더 큰 불안과 고통을 가져다준다. 일을 하기 전에 가진 일에 대한 두려움은 결국 그 일의 실패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두려움은 자신의 잠재적인 능력을 제한시키고 축소시켜 시도도 하지 못하게 할 뿐 아니라 시도하면서도 최선을 다하지 못하게 만든다.
사람의 길을 막고 마음을 지배하고 승리의 미래를 가로막는 두려움을 먼저 제거하여야 한다.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서는 두려움의 진정한 실체가 아무 것도 아님을 알아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내게 그 두려움을 능히 이길 힘이 있음을 발견하여야 한다. 믿음의 선배들이 가졌던 하나님의 동행하심에 대한 확신은 그들을 두려움에서 자유롭게 하였다.
어디를 가든지 함께하시겠다는 주님의 말씀에 대한 신뢰가 그들을 두려움에서 자유롭게 하였고 패배와 좌절의 늪에서 벗어나게 하였다.
/김상현 목사(인천 부광교회)
사치, 검소댓글[0]
절제, 사치, 분수
(2012-03-01 오후 8:09:30)http://blog.somang.net/holylove/7255
사치, 검소
▣ 사치를 경계하라
한번은 어떤 젊은이가 무디에게 찾아와서 "선생님, 저는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세상을 포기해야 합니까?" 하고 질문을 했다.
이때 무디는 "젊은이, 젊은이가 철저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면 세상이 젊은이를 포기할 걸세"라고 대답했다. 육체적인 정욕을 철저하게 다스린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무디는 이 점을 포착하여 "저는 제가 아는 어떤 사람보다 D.L.무디와 제일 트러블이 많습니다."고 말했다. 정욕을 따르고자 하는 우리 자신이 제일 심각한 골치거리인 것이다. 무디는 육체적인 정욕을 제어하지 않으면 불신자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영력을 상실한다고 다음과 같이 경고했다.
"방종하면 능력을 상실한다. 하나님의 능력을 가지고 살려는 자는 자기를 부인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사치스럽게 살고, 자연적인 욕망을 지나치게 추구하며, 맛있는 음식을 탐하면서도 하나님의 능력을 충만하게 받고 살 수 있다고 나는 믿지 않는다. 육체의 충족과 성령의 충만은 동행하지 않는다. 성령의 능력을 계속 받고 살려면 검소한 생활을 하기 위해서 자기 경계를 해야 한다. 방종과 포만을 멀리하고 사치를 두려워해야 한다. 사치는 매우 간교하고 매우 유능한 능력의 적이다."
▣ 작은 사치
식탁에 테이블클로스를 씌우고 식사를 하면 조금 사치스러울 것 같지만, 단지 그것만으로도 식탁이 즐겁고 화사해집니다. 요즈음은 가족과 뭔가를 함께하는 기회가 줄어들어서 가족들이 모두 모여서 식사를 하는 식탁은 대단히 중요한 자리가 되었습니다. 매일이 무리라면 휴일 저녁식사 때만이라도 해보면 어떨까요.
- 오오하시 시즈코의《멋진 당신에게》중에서 -
* 그건 사치가 아닙니다. 너무도 중요한 삶의 한 부분입니다. 테이블클로스(식탁보) 하나가 가족들을 모이게 한다면 그보다 더한 것도 기꺼이 준비하는 것이 좋습니다. 식구(食口)는 음식을 함께 먹는 사람입니다. 함께 먹는 시간이 사랑, 감사, 격려, 소통, 관계회복의 지름길이기도 합니다. 행복을 만드는 시간입니다.
/고도원의 아침편지
▣ 목걸이
프랑스의 단편작가인 모파상이 쓴 “목걸이”라는 작품을 소개합니다.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하급관리와 결혼하여 언제나 불만 속에 살아가는 "마띨드"라는 아리따운 여주인공이 등장합니다. 그녀는 늘 몽상에 잠겨 살면서 사치와 쾌락을 동경하며 자기의 미모를 뽐내보고 싶어했고 뭇 남성들로부터 찬사와 구애를 받고 싶어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화려한 어느 무도회 초청장을 들고 옵니다. 가난한 그들에게 그것은 오히려 걱정을 몰고 왔습니다. 고민하던 남편은 하는 수 없이 저축해 둔 돈 전액을 찾아 아내의 옷을 한 벌 사주고는 아내만 무도회에 보냅니다. 이렇게 옷을 준비한 마띨드는 부자 친구를 찾아가 아주 비싼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빌려옵니다. 드디어 무도회의 밤, 그녀는 누구보다 아름답고 우아하게 보였으며 희열에 넘쳤습니다. 모든 남성들은 그녀를 극찬했고 그녀와 춤추기를 열망했습니다. 장관마저도 그녀에게 호감을 가졌습니다. 그녀는 흥분 속에 취한 듯 춤추었습니다. 그러나 황홀한 시간도 끝나고 새벽이 되어 낡고 초라한 자기 집으로 돌아와야만 했습니다. 거울 앞에서 화려한 자기 모습을 감탄하며 바라보던 그녀는 갑자기 비명을 질렀습니다. 목걸이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이들 부부는 그 목걸이 때문에 재산을 정리하고 집을 저당하고 많은 빚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는 그 빚을 갚기 위해 1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온갖 고생을 경험합니다. 그러나 그녀는 이제 더 이상 불평을 늘어놓지 않고 성실한 삶의 자세를 간직하게 되며 인내도 배우게 됩니다. 아직 가난하지만, 그녀는 비로소 굳센 주부가 되었고 충실한 아내가 되었습니다. 작가는 그것을 가리켜, "목걸이가 가져다준 행복" 이라고 묘사했습니다. 분명히, 그녀는 그 목걸이 때문에 막심한 피해를 당했지만 돈주고 살 수 없는 인내와 자족함을 배웠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시련 혹은 고난을 여기에 비교해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 관한 중요한 진리 하나를 잘 알고 계십니다. 그것은, "시련이 없이는, 사람들은 결코 인내를 배울 수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목걸이”라는 책에서 우리가 사치와 허영에 빠지면 결과가 어떻다는 것을 풍자해 주고 있습니다.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벧전3: 3- 4)
/한태완
▣ 과시하기 위한 사치
해외로 도망을 해야 했던 전 필리핀 대통령 마르코스의 부인 이멜다 여사는 자신을 ‘비너스의 여신’처럼 신격화하여 “필리핀 국민들은 미를 희망한다. 가난한 필리핀 사람들은 숭배할 수 있는 스타를 원하며 이 열망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나는 아름다워야 할 의무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기아로 죽어 가는 아이들이 널려 있는 필리핀 땅에서 그녀는 하루에 20억 원어치의 쇼핑 사냥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기적인 그녀가 말라카낭 궁을 떠난 후 남은 구두는 2,200켤레나 되었고, 그녀가 소장하고 있던 화려한 보석 목걸이, 팔찌, 보석을 박은 관(冠), 보석으로 만든 장난감 등은 경매에 붙여졌습니다. ‘과시하기 위한 사치’라는 뜻의 ‘이멜다픽’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기도 했지만, 각종 소송에 직면해 있는 그녀는 아무것도 잘못한 것이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남들에게 과시하기 위한 욕심은 결국 남들 눈에 가장 비참한 모습으로 드러나는 결과를 낳습니다. 참된 아름다움과 즐거움은 다른 사람들의 눈을 통해 확인되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의 눈이 아니라 주님의 눈에 아름다운 모습으로 비치는 삶을 사십시오. 그로 인해 내면에서 흘러나오는 행복감으로 사십시오.
* 기도: 주님, 사라질 아름다움이 아닌 영원한 아름다움을 가꾸게 하소서.
* 묵상: 남에게 보이기 위해 사치하고 있습니까?
<김장환 큐티365>
▣ 호화사치 병
프랑스의 과학자이며, 철학자인 파스칼은 신앙생활을 시작한 후에는 청빈한 생활을 계속했는데, “모든 쾌락과 모든 사치를 물리치라”는 것이 그의 생활신조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가지고 있던 말과 마차를 팔고, 장식품과 귀금속을 다 처리했으며, 음식은 나무젓갈로 먹고, 식기는 토기를 썼습니다. 책도 신앙서적 외에는 전부 남에게 나눠주고, 예배와 봉사, 구제, 은밀한 골방 기도에 힘썼습니다. 그는 주님의 수난을 생각함으로써 모든 호사스러운 일을 다 버렸던 것입니다. 이것은 누구나 따라야 할 것으로, 주님의 낮아지심을 생각하는 모든 크리스천은 사치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엡5:15-21)
사치와 낭비는 망국 병입니다. 필요이상 분수를 뛰어넘는 소비는 패망을 가져옵니다. 우리 나라 국민들은 대부분 근검절약하려고 애를 쓰지만 일부 돈있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위화감을 느낄 정도로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몸치장, 집장식에 물쓰듯 돈을 쓰고, 해외골프장, 유흥장을 돌아다니며 고급외제승용차를 타고, 수백 수천만 원짜리 향수니 양주니 옷 등을 구입하고, 퇴폐향락에 빠진 그런 사람들을 볼 때 우리는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일년 소득이 3만 불이 넘는 선진국의 국민들보다 더 호화롭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서민들에게 위화감을 줄 뿐만 아니라 사회에 사치풍조를 조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많은 외채를 짊어지고 있고 무역수지에서 적자를 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돈이 있다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특히 고가 해외여행을 하고 돌아오는 사람들을 보면 외국에서 값비싼 사치품을 많은 외화를 주고 사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충분히 구입할 수 있는 물건들을 무엇 때문에 구태여 외국에까지 가서 돈주고 구입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호화사치, 과소비풍조는 정부의 책임도 큽니다. 정치적 의도에서 우리의 위상을 터무니없이 부풀려 놓았습니다. 시장개방이다, 외환규제의 자유화다, 해외부동산 투자 자유화다 해서 헤픈 씀씀이를 조장한 것이 정부입니다. 정부 스스로 대내외적으로 씀씀이가 컸던 것도 일조가 됐습니다. 어쨌든 망국병인 호화사치, 과소비, 퇴폐향락은 자제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정신자세가 올바로 되어 있지 않으면 우리는 국제 경쟁 사회에서 뒤떨어질 수밖에 없고 고립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근검절약하는 생활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사치하는 자는 부자가 되어도 항상 부족하고 만족함이 없습니다. 어찌 검소한 자의 가난하나마 여유 있음만 하겠습니까? 미련한 자가 사치하는 것이 적당치 못하며(잠19:10), 유덕한 여자는 존영을 얻고 근면한 남자는 재물을 얻습니다.(잠11:16)
톨스토이의 대작 「전쟁과 평화」에 보면 니콜라이 로스토프 백작이 등장인물로 나옵니다. 그는 타고난 신분과 막대한 재산으로 마음껏 유랑을 즐기는 전형적 러시아 귀족입니다. 많은 하인을 부리고, 사냥을 즐기며 모스크바의 호화스런 저택에서 흥겨운 파티로 여생을 보내는 노신사입니다. 그는 나폴레옹의 입성이 임박해지자 여러 대의 마차에 각종 호화 가재 도구를 산더미 같이 싣고 피난을 가려 합니다. 그러나 외동딸 나타샤의 간청에 그만 감동되어 모든 가구들을 내려 팽개치고, 거기에 조국을 위해 싸우다가 부상한 군인들을 태웁니다. 이것은 귀족과 평민의 만남이며, 부자와 가난한 자의 한데 어우러짐입니다. 이처럼 가슴 뭉클한 동족 사랑과 인류애의 실천이야말로 두 말할 나위도 없이 톨스토이의 사상과 간절한 외침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톨스토이의 이러한 외침에 러시아의 황실과 귀족들이 가슴을 치며 귀를 기울이지 않고 사치와 방종생활 때문에 결국 1917년 러시아 혁명이 폭발되었던 것입니다. 그 동안 짓눌리고 소외당했던 빈민계층들이 일단 공산주의자들의 사주를 받자 무서운 짐승으로 돌변하여 혁명의 주류가 되고 만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큰 죄악 중 아모스 선지자가 지적한 것은 그들의 안일과 사치와 계급적인 빈부의 격차와 학대, 도덕적인 부패 등이었고 이를 탄식하고 슬퍼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급성장 하였으나, 사회전반에 사치향락과 뇌물거래가 확산되고 이기주의와 한탕주의가 만연됨으로 발전과 풍요의 과정 속에서 소리 없이 봉사하고 헌신한 계층과 신음하는 소외계층에 대한 무관심, 무책임 풍조와 함께 사치와 향락을 일삼을 때 그 결과가 어찌되겠습니까? 행복을 사치한 생활 속에서 구하는 것은 마치 태양을 그림으로 그려 놓고 햇빛이 비치기를 기다리는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성경은 경고합니다. “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을 인하여 울고 통곡하라... 너희가 땅에서 사치하고 연락하여 도살의 날에 너희 마음을 살지게 하였도다”(약5:1-5), “화 있을진저 너희 배부른 자여 너희는 주리리로다....”(눅6:25)
* 기도: 오 신실하신 주님, 우리가 땀흘려 열심히 일하되 나에게 생기는 물질은 모두 주님의 것임을 알게 하시고 그래서 주님께서 허락하신 물질을 주님 뜻대로 선하게 사용하도록 지혜를 주시옵소서. 이기심을 버리고, 이타적인 삶을 사는 우리가 되게 하시고 주님처럼 청빈하고 검소한 삶을 살게 하옵소서 우리 국민들의 호화사치병을 고쳐주시고 근검절약하며 하나님 공경하는 백성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그가 어떻게 자기를 영화롭게 하였으며 사치하였든지 그만큼 고난과 애통으로 갚아주라 그가 마음에 말하기를 나는 여황으로 앉은 자요 과부가 아니라 결단코 애통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그와 함께 음행하고 사치하던 땅의 왕들이 그 불붙는 연기를 보고 위하여 울고 가슴을 치며 그 고난을 무서워하여 멀리 서서 가로되 화 있도다. 큰 성, 견고한 성 바벨론이여 일시간에 네 심판이 이르렀다 하리로다”(계18:7-10)
/빛의 사자(한태완)
▣ 사치 선진국
경제가 휘청거리고 있다.그런데 과소비지수는 높아만 간다. 보도에 따르면 국회의원이 해외에 나갔다가 2백만 원을 호가하는 양주를 들여와 비난을 받고 있다. 국민적 대각성이 시급하다. 自覺과 自淨을 잃은 공동체는 망한다. 지난 11일자 월스트리트 저널은 서울발 보도를 통해 한국인의 소비성향을 다음과 같이 꼬집었다.『한국인들은 이제 월풀 냉장고를 찾고 맥도널드 햄버거 맛에 익숙해 있으며 리바이스 청바지를 즐겨 입고 에스테로더 화장품을 애용하며 포드 승용차를 타고 있다』
▣ 법보다 더 무서운 것
영국의 헨리 4세는 법을 숭상했던 인물로 손꼽힙니다. 그는 법을 어겼다는 하나만으로 자신의 아들을 감옥에 보냈을 정도입니다. 그런 헨리 4세 시대에 부녀자들의 사치가 극에 달했습니다. 거듭된 계몽과 경고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마침내 헨리 4세는 황금이나 보석으로 몸을 치장하는 사치를 금한다는 법을 공포했습니다. 그러나 법이 공포되어도 효과는 없고 사치는 여전했으므로 왕은 난처하기만 했습니다. 그렇다고 법을 폐지하는 것은 왕의 권위를 크게 손상시키는 일이라 그럴 수도 없었습니다. 헨리 4세는 궁리 끝에 묘안이 떠올랐습니다. 법안의 부칙에 단서 하나를 추가한 것입니다.
“이 법은 매춘부와 소매치기에겐 적용되지 않는다.”
단서 조항의 효과는 금방 나타났습니다. 그렇게도 심하던 사치 바람이 가라앉은 것입니다. 누구도 매춘부나 소매치기로 인정받는 것은 싫었기 때문입니다. 몸은 당신의 영혼의 거울입니다. 무엇이 당신을 나타내는 기준이어야 하는가 생각해 보십시오.
* 기도: 주님! 내 삶속에 주님이 드러나게 하소서.
* 묵상: 당신의 삶은 무엇으로 단장되어 있습니까?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 행복 끝 불행 시작
지난 88년 봄 어머니가 사다준 복권이 당첨돼 26세의 나이에 2071만 달러, 당시 한화로 약 240억 원을 받아 일약 갑부가 된 폴 쿠니라는 청년이 있었다. 평범한 자동차 수리공이었던 쿠니는 당첨금을 받자마자 자신이 일하던 자동차 판매회사를 사들였고, 도너츠 가게 종업원으로 맞벌이하던 아내도 당첨 직후 가진 인터뷰에서 “복권에 당첨됐어도 전과 변함없이 일을 계속하겠다”며 조신하게 말해 주위의 칭찬을 들었지만 언론의 관심이 줄어들자 곧바로 도너츠 가게를 때려치우고 사치스런 생활을 즐기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이 쿠니의 복권 당첨을 ‘불행 끝, 행복 시작’이라며 부러워했지만 사실은 불행의 시작이었다. 쿠니의 회사는 잘못된 경영으로 1년도 안돼 문을 닫았고,3년 뒤에는 아내와도 이혼했다. 그 후 재혼했지만 다시 이혼을 했고, 두 번의 이혼으로 엄청난 위자료를 지불했다. 새로 시작한 사업도 제대로 되지 않아 결국 쿠니는 11년만에 오히려 500만 달러의 빚까지 진 채 파산하고 말았다.
얼마 전 재미교포 이모 여인 역시 복권에 당첨돼 받은 234억 원을 8년만에 탕진하고 친구집에서 기거하며 국수와 야채로 연명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파산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분수에 넘치는 사치스러운 생활을 했기 때문이었다. 돈 쓰는 용도를 보면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 수 있다. 그리스도인은 소유의 개념이 분명해야 한다. 특히 하나님과 나의 것을 구별하지 못하는 것은 참으로 큰 잘못이다. 엄밀히 말해서 우리 것은 없다. 우리의 몸까지도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입으로만 “나는 하나님의 것입니다”고 말하지 말고 바른 청지기 삶을 통해 하나님의 소유권을 인정해야 한다.
(충신교회 박종순 목사)
▣ 요한 웨슬리와 돈
1700년대 후반의 영국. 산업화의 물결이 휘몰아치면서 향락과 사치, 도덕적인 타락이 영국을 병들게 했다. 언제나 그렇지만 그때도 사람들의 빗나간 재물관리가 병리현상을 심화시켰다.
그때 요한 웨슬리가 영적 각성운동을 크게 펼쳐 영국을 변화시켰다.
그의 재물관리청지기론
"돈을 쓸 때 하나님의 청지기가 된 나의 도덕에 어긋남이 있지 아니한가를 살피고, 돈 쓰는 일이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가를 파악하고, 이 돈의 사용이 훗날 하나님의 상을 받을만한가를 생각해야 한다."
▣ 검소한 부자
미국 오리건주의 메드포드에 사는 고든 엘우드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무서운 내핍생활로 ‘자린고비’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사망했을 때 유산은 무려 1000만 달러에 이르렀다. 그의 유서는 그가 왜 절약을 실천했는지를 보여주었다. “내 유산 중 900만 달러는 적십자사와 구세군에 남긴다. 그리고 내 아이들에게는 100만 달러를 남긴다” 시카고에서 여비서생활을 하며 평생을 홀로 지낸 글래디스홈은 주식투자로 1800만 달러를 벌었다. 철저한 내핍생활을 했던 그녀는 암에 걸린 어린이들을 위해 사용해달라며 전액을 아동병원에 희사했다. 모텔에서 청바지에 셔츠를 입고 지내는 어윈 유런은 자신의 친구가 시장으로 있는 한 마을의 주민들의 위해 사용해달라며 100만 달러를 기부했다. 미국은 검소한 부자들이 많다. 미국이 여전히 부강한 나라인 것은 물질의 청지기들이 많기 때문이다.
▣ 현명한 소비
갑부라고 해서 모두가 호화로운 생활을 하는 건 아닙니다. 미국의 경제 주간지 포브스는 억만장자들의 자린고비 생활을 소개했습니다. 세계 2위의 갑부 워렌 버핏은 내브라스카 주의 소도시에서 담장도 없는 평범한 집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한화로 30조원의 자산을 보유한 스웨덴 가구회사 창업자인 잉그바르 캄프라드는 15년 된 자동차를 몰고 다니며 식사는 서민들이 이용하는 식당에서 즐기곤 합니다. 스탠포드대학 데이비드 셰리턴 교수는 구글 창업을 통해 약 1조 4천억을 벌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전거를 즐겨 타며, 14년 된 승용차를 바꾸지 않고 있습니다. 그는 비행기를 탈 때도 이코노미석 만을 이용하고 한 개의 홍차 티백으로 여러 번 우려먹는 습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검소함은 모두 개개인의 철학이 담겨져 있습니다. 워렌 버핏은 재산의 85%를 자선단체에 기부해 감동과 충격을 던져 주었습니다. 셰리턴 교수는 자신의 검소함에 대해 "더 큰 목표를 이루기 위해 상품이나 서비스를 합리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내가 가장 동경하는 가치" 라고 소개했습니다. 그리고 영국의 억만장자 존 코드웰은 "명품 옷이나 초고가 와인을 사들이는 것은 낭비일 뿐" 이라며 허세를 부리기 위해 소비를 하는 부자들을 꼬집었습니다. 돈은 현명하게 사용되어질 때 비로소 자신의 가치를 발산합니다. 그리고 그 가치는 내 인생의 가치를 높이는 기준이 될 것입니다.
/류중현 | 지하철사랑의편지 운영자
▣ 바르게 써야 합니다.
벌 때도 바르게 벌어야 하지만 쓰기도 바로 해야 합니다. 바로 쓸 때 물질은 우상이 되지 않고 소유의 제한도 기할 수 있습니다. 더불어 이웃과 함께 살아가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고상한 인격자가 될 수 있습니다. 신학자 폴 틸리히는 물질을 자기 마음대로 쓰는 것이 죄악의 근본이라고 했습니다. 인간은 청지기일 뿐인데 스스로가 하나님인 양, 주인인 것처럼 창조자의 의향을 변경해서 자기 마음대로 물질을 쓰는 것이 바로 죄라는 것입니다. 다니엘 피어슨이라는 사람은 의학공부를 하였으나 물려받은 대규모의 농장이 있어 농사를 지었으며 목재상까지 크게 키워 아주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가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신부에게 내건 조건이 있었습니다. 열심히 돈을 벌되 그들 자신을 위해서는 최소한의 살림만 하고, 나머지는 공익사업에 쓰자는 것이었습니다. 신부가 아주 마음에 들어 하며 그 결혼조건을 수락했고, 죽을 때까지 이를 성실하게 지켰습니다. 피어슨 내외는 24개 주에 47개 대학을 후원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 자신은 결혼할 때 산 침대를 사용하는 검소한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들의 돈과 그들의 이름은 하나님의 영광과 함께 길이길이 빛나고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물질의 선한 청지기가 되어야 합니다.
새 힘을 주시는 하나님 / 유의웅
▣ 어느 부부의 물질관
뉴욕 타임즈에 실렸던 미국 뉴욕 폴리테크닉대 도널드 오트머 교수 부부의 숨은 선행이 우리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오트머 씨 부부는 특허권 등을 통해 평생 모은 재산 9천 7백억 원을 모두 대학과 사회단체에 희사했습니다. 선한 사업에 재물을 모두 사용하겠다던 약속을 그대로 지킨 것입니다. 이 사실이 알려진 후 가장 놀란 사람은 오트머 씨의 친구와 이웃들이었습니다.
“오트머 씨 부부가 그런 부자인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들은 보통 사람보다도 더 검소하게 살았습니다.”
‘근검’과 ‘절약’을 통해 모은 재산을 모두 쾌척한 오트머 씨 부부는 다음과 같은 물질관을 갖고 있었습니다.
“재물은 하나님께서 잠시 내게 위탁한 것일 뿐 결코 내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물질을 주신 것은 이처럼 그 물질을 우리 마음대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청지기처럼 그 물질을 잘 관리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물질이 바로 하나님의 것임을 늘 명심하며 사십시오.
* 기도: 주님, 물질을 잘 관리하고 하나님을 위해 쓸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 묵상: 모든 소유가 하나님의 것임을 진심으로 고백하십시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 청빈하고 검소한 삶
일본 오부치 총리의 부인 지즈코는 아담한 총리 관저에서 살고 있다. 지즈코는 남편의 아침과 저녁식사를 준비하고 옷가지를 세탁하는 일에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가정부나 요리사를 두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다. 전임 하시모토총리의 부인 구미코는 일주일에 한 번씩 단골 슈퍼마켓에 들러 음식재료를 구입했다. 또한 자녀들의 도시락을 손수 준비하느라 새벽부터 관저의 불이 환하게 밝혀져 있었다. 일본의 퍼스트레이디들은 한결같이 청빈하고 검소한 삶을 살았다. 그리고 이런 모습들은 일본 국민들에게 생생한 교훈이 됐다.
미국 텍사스 주지사 조지 W 부시는 백만장자다. 그러나 그의 부인 로라는 이 마을에서 가장 값이 저렴한 월마트의 단골손님이다. 로라는 주말마다 월마트에서 딸들과 함께 알뜰쇼핑을 하는 것이 큰 즐거움이라고 말한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 국민들은 지도자의 ‘말’이 아니라 ‘삶’에서 감동을 받는다.
▣ 청지기
* 성경: 신15:10
‘너는 반드시 그에게 구제할 것이요 구제할 때에는 아끼는 마음을 품지 말 것이니라 이로 인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범사와 네 손으로 하는 바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신문에 이런 글을 기고해 놓은 것을 보았습니다. 『미국 오리건주의 메드포드에 사는 고든엘우드라는 사람은 철저한 내핍생활로 자린고비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10월 사망했을 때 유산은 무려 1000만 달러에 이르렀습니다. 그는 유서 한 장을 남겼는데 그 안에는 절약한 이유를 밝히고 있어 사람들의 가슴을 따뜻하게 감쌌습니다. “내 유산 중 900만 달러는 적십자사와 구세군에 남긴다. 그리고 내 아이들에게는 100만 달러를 남긴다” 시카고에서 여비서생활을 하며 평생을 홀로 지낸 글래디스홈은 주식투자로 1800만 달러를 벌었습니다. 그녀 역시 소아암과 사투를 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사용해달라며 전액을 아동병원에 희사했습니다. 모텔에서 청바지에 셔츠를 입고 지내는 어윈 유런은 자신의 친구가 시장으로 있는 한 마을의 주민들의 위해 사용해달라며 100만 달러를 기부했습니다.』 미국은 검소한 부자들이 많습니다. 한국도 검소한 부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가난한 사람의 내핍생활로 기부한 기부금이 더욱 많습니다. 그렇게 모아진 기부금을 전달받은 사람들은 가슴이 더욱 아파집니다. 호화 백화점의 고가 상품은 없어서 못판다는 뉴스를 들으며 길거리를 거니는 노숙자, 소년 소녀 가장들이 절로 떠오릅니다. 물질을 가치있게 사용할 줄 아는 청지기들이 더욱 많아지길 기도합니다.
▣ 절약 정신
본문 : 잠 21:26
‘어떤 자는 종일토록 탐하기만 하나 의인은 아끼지 아니하고 베푸느니라’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재산을 갖고 있는 사람 중 한 사람입니다. 경제잡지 포브스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엘리자베스 여왕의 재산은 약 5200억 원으로 현재 세계에 있는 여성군주들 중에선 가장 많다고 합니다. 하지만 많은 재산을 가진 여왕답지 않게 영국 왕실의 씀씀이는 매우 검소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절약정신이 투철했던 여왕은 심지어 영국을 방문하는 해외정상들에게 건네는 선물의 가격도 5천원을 넘지 않는 선에서 정한다고 합니다. 겨울에는 난방비를 줄이기 위해서 직원들에게 사무실에서도 옷을 두툼히 입으라고 지시하고 궁을 시찰할 때도 자전거를 사용합니다. 그녀가 이렇게 검소함을 강조하는 이유는 이렇게 아끼는 것이 왕실의 재정에도 영국 국민들에게도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절약한 많은 돈을 가지고 엘리자베스 여왕은 자선행사의 성격을 띠는 큰 규모의 공연들을 계획해 영국인들과 어려운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조금만 신경 쓰면 일상생활에서도 유용하게 절약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절약한 것으로 다른 이들을 도울 수 있습니다. 생활 속의 실천할 수 있는 절약 방법들을 고민해 보십시오.
* 기도: 주님! 목적을 가지고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 묵상: 절약의 의미와 목표를 정하십시오.
/김장환 목사, 제공 : 나침반출판사
▣ 허영심
독일에서 오래 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우화이다. 악마들이 인간을 파멸시키기 위해 대책회의를 가졌다. 첫 번째 아이디어는 인간의 마음속에 악한 심성을 심어주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방법은 사람들에게 곧 탄로 날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로 폐기됐다. 두 번째는 사람의 마음속에 이기심과 독선이라는 괴물을 심어주자는 것이었다. 세 번째는 인간의 도덕성을 허물어 그릇된 것들을 바르게 여기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방법들도 모두 환영받지 못했다.
악마들은 머리를 맞대고 연구한 끝에 네 번째 방법으로 인간을 공략했다. 사람의 마음속에 화려한 옷과 첨단의 유행을 추구하는 허영심을 심어주는 것이었다. 악마는 뱀의 껍질을 벗겨 화려한 옷을 만들었고 이것을 인간세상에 퍼뜨렸다. 그러자 사람들은 곧 허영과 사치의 늪에 빠져들었다.
허영은 사탄의 달콤한 유혹이다. ‘고급 옷’의 유혹에 빠져 낭패를 당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 구름 같은 이 세상 (찬송가 483장, <통> 532장)
1. 구름 같은 이 세상 모든 부귀영화
나는 분토와 같이 내어 버리고서
오직 천국의 복만 사모하며 사니
주여 내작은 이름 기억하옵소서
2. 주여 보배피로써 모든 죄 씻으사
나의 부정한 것을 씻어 맑히소서
흰눈보다 더 희게 죄를 씻었으니
지금 내 작은 이름 기록하옵소서
3. 죄가 하나도 없고 아무 병도 없는
영화롭고도 밝은 천국 올라가서
주와 같이 그곳에 길이 살리로다
이런 소망의 삶은 참된 행복이라
<후렴>
주가 나의 이름 보좌 앞에 놓인 어린양
생명책에 기록 하셨을까
▣ 사치, 허영, 검소에 관한 성경 말씀
0 (잠언 19:10) 미련한 자가 사치하는 것이 적당하지 못하거든 하물며 종이 방백을 다스림이랴
0 (누가복음 7:25)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보라 화려한 옷을 입고 사치하게 지내는 자는 왕궁에 있느니라
0 (누가복음 15:13) 그 후 며칠이 안 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낭비하더니
0 (빌립보서2:3)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0 (야고보서 5:5) 너희가 땅에서 사치하고 방종하여 살륙의 날에 너희 마음을 살찌게 하였도다
0 (요한계시록 18:7) 그가 얼마나 자기를 영화롭게 하였으며 사치하였든지 그만큼 고통과 애통함으로 갚아 주라 그가 마음에 말하기를 나는 여왕으로 앉은 자요 과부가 아니라 결단코 애통함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0 (요한계시록 18:9) 그와 함께 음행하고 사치하던 땅의 왕들이 그가 불타는 연기를 보고 위하여 울고 가슴을 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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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사자
지금 여기 계시는 하나님댓글[0]
하나님, 창조
(2012-03-01 오후 5:02:23)http://blog.somang.net/holylove/7254
지금 여기 계시는 하나님
끊임없이 하나님의 임재를 인식하며 살아가고자 했던 프랭크 루박은 말한다.
"15분이나 30분에 한 번씩 내 행동을 하나님의 뜻에 일치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깨어 있는 모든 순간 끊임없이 "아버지, 제가 무슨 말을 하기 원하세요? 지금 이 순간 무슨 일을 하길 원하세요?"라고 묻는다. 이처럼 오랫동안 하나님의 임재 연습을 한 사람은 하나님이 더 가까이 계심을 느낀다. 등 뒤에서 밀어 주시고 앞에서 당겨 주시는 하나님의 힘이 더 강하게 느껴진다." 우리의 감각이 그분을 감지하지 못하더라도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 곁에 계신다.
어느 해 12월31일 밤, 콜로라도 스프링스에서 열린 파티에 참석했다가 집으로 차를 몰았다. 그런데 정확히 자정이 되자, 산악인들이 파이크 산 정상에서 새해를 기념하여 불꽃놀이 행사를 벌였다. 크고 화려한 불꽃은 하늘 위로 피어오르며 눈으로 덮인 거대한 파이크 산의 모습을 비춰 주었다. 그러자 파이크 산이 시야를 가득 채우며 그 산 이외의 모든 것은 장난감처럼 보였다. 산은 계속 거기에 있었는데, 다만 그 산을 볼 수 있는 눈이 우리에게 없었던 것이다. 야곱도 "참으로 이곳은 여호와께서 계신 곳인데 내가 몰랐구나"(창 28:16)라고 말했다. 당신이 아직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이미 눈앞에 펼쳐져 있는 그 분의 은혜를 미처 못 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아, 내안에 하나님이 없다 / 필립 얀시
* 금언: 하나님과 끊임없이 대화하며 사는 삶보다 더 달콤하고 기쁜 삶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로렌스 형제
천사와 악마 댓글[0]
봉사, 선행
(2012-03-01 오후 4:01:27)http://blog.somang.net/holylove/7253
천사와 악마
어렸을 때 목사가 되고픈 사람이 있었다. 그래서 몰래 교회에 들어가 강단에 서서 목사 흉내를 내며 설교를 했다. 그는 철학, 역사, 정치 등 각 방면의 책을 즐겨 읽었으며 재능 또한 대단했다. 특히 가난한 사람들이나 병든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남달랐다. 부활절이 되면 월급을 몽땅 털어서 달걀을 사서 가난한 사람들이나 소외된 사람들을 찾아갔다.
이쯤 되면 이 사람이 누구일까 알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그의 이름을 들으면 대부분은 깜짝 놀란다. 그토록 악명 높았던 아돌프 히틀러이기 때문이다. 히틀러는 아마도 이 지구상에서 태어난 인간 중에 가장 잔인하고 악마 같은 사람일 것이다. 그런데 그의 삶 가운데 이런 의로운 생활이 한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사람은 누구든지 양면성이 있다. 더구나 변한다. 누구나 마음속에 악마와 같은 본성이 도사리고 있다. 그러나 오직 하나님의 은총이 임재할 때 천사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주님의 도우심을 구한다. 하나님께서 내 안에 정직한 영을 부어주시기를 기도한다. 오직 주님의 은총으로!
/최승일 목사(서울 상도교회)
영원한 믿음의 가치 댓글[0]
믿음, 신앙, 의심
(2012-03-01 오후 3:55:45)http://blog.somang.net/holylove/7252
영원한 믿음의 가치
본문 : 요일 2: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33인의 예수 이야기’란 책에는 어려움을 믿음으로 극복하고 당당히 신앙을 고백하는 33명의 크리스천 연예인들의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탤런트 이유리 씨는 사춘기 때에 성공만 바라보고 달려온 인생에 절망감을 느꼈습니다. 어린 나이에도 심각한 두려움을 느꼈던 이 유리 씨는 우연히 다른 친구가 꺼낸 교회 얘기에 무작정 자기도 교회에 가겠다며 따라갔습니다. 처음 드려본 예배에 눈물이 쏟아졌고 그렇게 하나님과의 첫사랑이 시작되었습니다. 교회 오빠였던 전도사님과 결혼까지 한 이 유리씨는 지금도 하나님과의 사랑을 키워가며 신앙을 가꿔가고 있습니다.
탤런트 한혜진 씨는 극심한 가난 속에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없어서 힘들었던 기억 말고는 추억이랄 것이 아무것도 없을 정도로 어려운 시절이었습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자 하는 심정으로 교회에 나가며 길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고, 점점 신앙생활을 열심히 할수록 길이 열려가는 기적을 삶 속에서 체험하며 믿음이 굳건해졌습니다. 지금도 아무리 바빠도 하루에 4장의 성경은 꼭 읽고, 새벽기도를 챙기려고 노력한다고 합니다.
차인표 씨와 신애라 씨 부부도 어려서부터 교회에 다녔지만 제대로 구원의 확신을 가진 것은 결혼 생활을 통해서라고 합니다. 행복한 결혼과 수많은 선행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의 본을 보이는 부부는 교회의 익숙함과 편리성에 빠져서 진정한 신앙의 감동을 잊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어떤 가치도 영원한 믿음보다 귀할 수는 없음을 기억하십시오.
* 기도: 주님! 영원한 믿음의 가치를 목표로 값진 인생을 살게 하소서!
* 묵상: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 필요한 사역을 감당하십시오.
/김장환 목사
책임감을 가지라댓글[0]
책임, 자세, 각오
(2012-03-01 오후 2:30:39)http://blog.somang.net/holylove/7251
책임감을 가지라
성경: 민11:14
“책임이 심히 중하여 나 혼자는 이 모든 백성을 질 수 없나이다”
옛날에 모든 사람(Everybody), 어떤 사람(Somebody), 누구라도(Anybody), 아무도(Nobody)라는 이름의 네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일이 한 가지 생겼고모든 사람이 그 일을 하도록 요청받았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은 어떤 사람이 그 일을 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일은 누구라 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그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화가 났습니다. 왜냐하면 이 일은 모든 사람의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은 누구라도그 일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고 아무도 모든 사람이 그 일을 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이 일은 모든 사람 이 어떤 사람을 비난하고, 애초에 누구라도 할 수 있었던 그 일을 아무도하지 않음으로써 끝이 났습니다. 마지막 보고에 의하면, 이 네 사람은 여전히 말다툼을 하고 있었고, 그 일은 아직도 이뤄지지 않은 채로 있다고 합니다.
책임의 소중성을 일컫는 이야기입니다. 오늘도 책임을 다하는 아름다운 날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송태승 목사
주께서 뭐라 하실까
주께서 이 날에 오셔서
그의 뜻 아닌 나의 뜻대로 행함을 보실 때
주께서 뭐라 하실까
주께서 이 날에 오셔서
식어진 사랑과 미지근한 신앙과 주를 떠남을 보실 때
주께서 뭐라 하실까
주께서 이 날에 오셔서
한 영혼에게도 영원한 나의 친구, 은혜의 구주를 말하지 않음을 보실 때
주께서 뭐라 하실까
주께서 이 날에 오시면
기쁘게 그를 맞을까
만민을 위하여 죽으신 주께서
한 영혼도 내가 얻지 못함을 보실 때
주께서 뭐라 하실까
찢어진 보증서
한 철학자는 복음의 약속을 받아들이라는 간곡한 권유를 받았다. 그런데 그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친구와 토지를 잃게 되는 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다.
그러자 전도자는 그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그의 구주로 받아들임으로써 입게 될지도 모르는 모든 손실에 대해 책임을 지겠다는 증서를 즉석에서 써 주겠다고 제의했다.
그리하여 그 철학자는 불시의 재난들에 대한 확고한 보증을 받고 기독교를 받아들여 가정에 제단을 쌓고 자신을 하나님의 추종자요, 종이라고 선언했다.
여러 해가 흘러 그가 영원한 세상으로 떠날 시간이 임박했다. 죽음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의식한 그는 자기에게 증서를 써 주었던 그 전도자를 오도록 청하였다.
그가 오자 그는 그 증서를 찢어버리고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보상해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주 예수께서 내가 일찍이 그 분으로 말미암아 입었던 모든 손실에 대해 내게 100배로 보상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본인의 책임
자동차 보험 만기가 되어 계약을 다시 했습니다. 약관을 읽어보니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교통사고가 발생하면 가해자는 형사상, 민사상, 행정적, 도의적 책임이 따르게 되며 자동차 보험에서 보상하는 것은 민사상의 책임에 한합니다. 보험 가입 여부와 관계없이 형사상의 책임은 본인이 져야 합니다.>
그러니까 사고를 내면 아무리 보험에 가입하였다 할지라도 민사상의 손해를 보상해 주는 것 외에 다른 책임은 본인이 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은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 외에도 사회윤리, 도덕, 규범, 관례를 무시하면 안되고 그에 합당하게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그분의 은혜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회 윤리, 도덕, 규범, 관례를 무시하는 죄 까지 다 용서받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믿는 것과는 상관없이 본인이 죄 값을 치루어야 하는 본인의 책임입니다.
/최용우
지옥댓글[0]
천국, 지옥, 낙원
(2012-03-01 오후 1:22:42)http://blog.somang.net/holylove/7250
방공호와 지옥
황해도 봉산에 김기봉이라는 여집사가 있었는데 6.25때 인민군들에게 잡혀 예수를 믿겠다고 해서 방공호에 갇혔다. 그런데 방공호 안에는 물이 있어서 무릎에까지 차고 높이는 그의 키보다 낮아서 일어설 수도 없었다. 그래서 하루종일 허리도 못 편 채 하루를 보냈다. 저녁때가 되자 방공호에서 나오라고 하더니 기분이 어땠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김 집사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세상에 방공호의 하루 생활도 이렇게 고통스러운 데 지옥생활이야 얼마나 고통스럽겠는가 느꼈소. 그러니 앞으로는 예수를 더 잘 믿고 천국에 가야겠소." 신앙을 포기하라고 방공호에 보냈는데 오히려 더 좋아진 믿음으로 방공호를 나왔던 것이다.
▣ 지옥의 고통
희랍신화에 보면 지옥에서 고생하는 인물 중에 탄타로스와 시지프스가 제일 유명하다. 부르기아의 왕이었던 탄타로스는 무릎까지 잠기는 물속에서 있는데 바로 코 끝에는 먹음직스런 열매가 달린 나무가지가 드리워져 있다. 그러나 탄타로스가 목이 말라 물을 마시려고 허리를 굽히면 물은 금새 땅 밑으로 빨려 들어가고 과실을 따먹고자 손을 뻗치면 나무 가지는 바람에 날려서 높이 올라가고 만다. 그래서 탄타로스는 과실과 물을 눈앞에 보면서도 영원히 굶주림과 갈증에 시달려야만했다. 그리고 고린도의 왕으로서 알베르 까뮤의 소설에서 부조리의 영웅으로 찬양 받은 시지프스는 가파른 비탈길에서 커다란 바위를 밀어 올리는데 힘을 다하여 꼭대기까지 밀고 올라가면 바위는 다시 아래로 굴러 떨어져 버린다. 즉 그는 영원한 노역에 종사하는 것이다. 이런 것들은 모두가 지옥의 무한한 고통을 잘 말해 주고 있다.
▣ 나에게 말할 필요 없다
영국 무신론 클럽의 거두인 프란시스 뉴포트경(Sir Francis Newport)은 임종시에 주위에 모인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에게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그 분이 계시고, 화난 그 분 앞에 서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으니까. 지옥이 없다고도 하지 말라. 벌써 네 영혼이 그 불길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느끼고 있으니까. 가엾은 사람들아. 나에게 희망이 남아있다고 말하는 것을 그만두어라! 왜냐하면 나는 영원히 가망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 지옥
현대인들에게 거부감을 주는 단어 중에 하나가 바로 지옥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지옥에 대해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고 예수님께서도 적어도 18번 이상 지옥에 대해 언급하셨으며, 어떤 경우에는 상세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지옥을 거부하고 지옥이라는 말 자체까지 싫어하는 이유는 지옥의 존재를 마음속에 인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천국보다는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인생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는 사람이 더욱 강하게 부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부정해도 지옥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예수님은 더욱 집요하게 지옥의 실상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너무나 끔찍한 곳이기에 예수님은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서 희생하시면서 까지 지옥문 입구를 막고 서신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내세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오늘만이 중요하지 내일이 무슨 소용이냐는 식으로 삽니다. 그러나 사람이 아무리 부인하고 잊으려해도 죽음이 다가오듯이 죽음 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습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 현대인들이 유치하다고 말하는 지옥의 실상을 성경을 통해 살펴보도록 합시다. 지옥은 첫째, 마귀와 저주받은 자가 함께 거하는 영원한 불 속(마25:41)이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우리는 누구와 함께 사느냐에 따라 천국처럼 살 수도 있고 지옥처럼 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지옥은 마귀, 저주받은 사람, 보기 싫은 사람들과 영원히 함께 있어야 한다니, 이 얼마나 기막힌 일입니까? 둘째, 지옥은 끝없는 고통을 당하는 곳입니다.(계19:20) 감기로 며칠만 앓아도 지겨운데 영원히 고통을 당해야 하니 얼마나 지긋지긋하겠습니까? 또한 지옥은 산 채로 가는 곳입니다.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고 생각하는 분은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합니다. 인간은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존재가 아닙니다. 셋째, 끔찍한 형벌이 있는 곳입니다.(마15:29-30) 그래서 예수님은 눈이나 팔이 범죄하거든 그것을 떼어내고라도 천국에 가는 편이 지옥 가는 것보다 훨씬 낫다는 것입니다. 천국에 들어가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단지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됩니다. 예수님이 나의 죄를 대신해 죽으신 구세주이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으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이 시간 당신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옥은 너무 고통스러운 곳이니 제발 들어가지 말아라!"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마10:28) ▣ 성공적인 지옥행 생각해보면, 요즘 특히 서울에 사는 사람들이 죽어서 성공적으로 지옥에 간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왜냐하면 서울의 8,000여개 교회를 성공적으로 피해 다닐 때에야 비로소 그것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남산에 올라가서 붉은 십자가를 보고도 "나는 안봤어, 나는 안봤어"라는 말을 80년 동안 성공적으로 해야 됩니다. 또 한국은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인구의 1/4이나 되어서, 어디를 가더라도 예수 믿는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만나서 전도를 받아도 "나는 안들었어, 나는 안들었어" 그래야만 이러한 이야기가 가능해 집니다. 라디오를 틀더라도 어쩌다가 한번씩 잡혀지는 기독교방송과 극동방송을 무시해야만 합니다. 길을 가다가도 누군가가 손에 무엇을 집어 주면 "이딴 것 안봐"라고 해야 됩니다. 또 전도집회에 초청받더라도 "안가, 절대로 못가. 죽여봐라, 내가 가나"라고 해야만이 비로소 무사히 지옥까지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서울에 살면서 70-80세가 되기까지 예수를 못믿고 죽는다는 것은 굉장한 순발력을 갖추었다는 것이 됩니다.
▣ 예수 없는 곳이 지옥
두 여자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똑같은 환경에서 학교를 다닌 두 여자는 결혼 조건이 서로 달랐습니다. 한 여자는 생활 능력이 있고 학벌이 좋고 가정이 좋은 건강하고 성실한 남성을 원했습니다. 결혼 조건 가운데 신앙이 들어 있지 않았습니다. 신앙이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무방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학교 다닐 때는 예수를 잘 믿던 사람인데 결혼 조건으로는 신앙을 생각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또 찬 여자는 신앙이 없는 사람과는 절대로 결혼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7,8년이 지난 후에 저는 결혼해서 살고 있는 두 여자의 집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지 않아도 무방하다고 한 사람은 아닌게 아니라 사장 아들과 결혼해서 호화 주택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자가용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문을 들어서니 정원은 황폐할 대로 황폐했습니다. 현관에 들어가 보니 신발들이 흙투성이가 된 채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여자를 보는 순간 깜짝 놀랐습니다. 그렇게 아름답던 얼굴은 어디로 가고 기름기가 낀 뚱뚱한 여자로 변해 버렸습니다. 옛날의 이미지가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방안에 들어갔더니 환경 정리가 하나도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아주 지저분했습니다. 눈에 띄는 것은 화장대뿐이었습니다. 거기에는 외국의 상표가 붙은 화장품이 가득 쌓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집에서 책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옵니다. 응접실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책은 고작해야 3류 주간지뿐이었습니다. 그녀가 하는 이야기도 전부 죽겠다는 것뿐이었습니다. 좋아서 결혼했던 남편은 신앙도 없고 도덕도 없는 무식하 고 나쁜 사람이라고 하면서 미치든지 자살을 하든지 이혼을 하든지 해야겠다고 했습니다. 그것 이 바로 지옥입니다. 얼마 후에 저는 신앙이 없는 남자와는 절대로 결혼하지 않겠다던 여자의 집을 가 보았는데 그녀는 전세 집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대문에서 나왔을 때 깜짝 놀랐습니다. 그녀는 성모 마리아와 같았습니다. 살도 찌지 않고 너무나 밝은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청초하고 아름다왔습니다. 현관에 들어가 보니 신발도 정돈되어 있었습니다. 환경 정리도 잘되어 있었습니다. 정원에는 청포도를 심어 놓았습니다. 한 잔밖에 안 되는 마루에 성화 액자도 붙어 있었습니다. 화장대 위에 는 화장품이 몇 개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성경을 비롯해 여러 가지 책이 쌓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남편에게도 자식에게도 감사가 넘쳤습니다. 정말 축복해 주고 싶은 가정이었습니다. 저는 여기서 우리 민족의 미래의 운명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미국이나 일본은 경제적으로는 우리보다 부유한 나라입니다. 그러나 그곳은 지옥입니다. 예수가 없는 나라는 그렇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께 기뻐하심을 받으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 식물을 인하여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말라 만물이 다 정하되 거리낌으로 먹는 사람에게는 악하니라(롬14:17∼20)
▣ 지옥이 있는 곳
한 설교자에게 어떤 사람이 다가와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목사님, 도대체 지옥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러자 그 설교자는 그 사람에게 아주 적절한 대답을 해주었습니다.
“지옥이 어디에 있느냐 하면,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 없이 계속 걸어가다가 당신의 인생 맨 끝에 도달하는 곳이 바로 지옥입니다.”
아무리 돈을 많이 벌고 성공하였다 할지라도 그리스도가 없는 그 결과는 심판 받는 것뿐입니다.
/이동원 목사
▣ 성철스님의 마지막 고백
인간의 공로 사상 중에서 최고로 잘 정립된 사상이 불교입니다. 일전에 온 매스컴이 떠들썩하게 보도한 성철 스님이 있습니다. 그분의 일대기를 보면 한 마디로 대단한 고행을 한 사람입니다. 결혼 직후 처자식을 버리고 집을 떠나서 그 이후로 부모가 찾아와도 수행에 방해된다고 만나지를 않았습니다. 기거하는 곳에 철조망을 쳐놓고 십 년 동안 사람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고, 십육 년 동안 솔잎가루와 쌀가루만 먹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이게 가능한 얘긴지 모르겠는데 팔 년 동안 장좌불와, 눕자 않고 앉아서 잤다고 합니다. 이런 식의 수양을 쌓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고행을 쌓고도 심령과 양심에 평안이 없었던 모양입니다. 성철 스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남긴 열반송이라는 게 있습니다. 제가 평이한 말로 풀어서 한 번 소개해보겠습니다. "나는 한평생 무수한 사람을 속였으니 그 죄업이 하늘에 가득 차 수미산보다 더하다. 산채로 지옥에 떨어져 그 한이 만 갈래니 한 덩이 불덩이 푸른 산에 걸렸있다." 요약하면 한평생 동안에 무지무지하게 많은 사람을 속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업이 하늘에 가득 차 수미산보다 더하다고 합니다. 그 결과 산채로 지옥에 떨어지 겠다는 것입니다...
▣ 일과 지옥
본문: 살전4:11 * 찬송:358장
" 또 너희에게 명한 것같이 종용하여 자기 일을 하고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
어떤 사람이 죽은 지 며칠 후 눈을 떠보니 그곳은 천국이었습니다. 한없이 넓고 푹신한 곳이었지요. 그는 당연히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리하여 평안한 자리에서 며칠 푹 쉬었습니다. 그곳이 그는 무척 마음에 들었습니다. 출근 하라고 아침 일찍 깨우는 아내도 없었고, 상사의 잔소리도 물론 없었습니다. 머리를 싸매고 매달려야 할 일도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인이 한시라도 자리를 비우지 않고 대기하고 있다가 시중을 들어주었습니다. 밥을 먹는 것도 손끝하나 까딱할 필요도 없이 그 하인이 먹여 주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목욕을 할 때도 화장실에 갈 때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평안한 생활도 며칠 지나지 않아 싫증나게 되었습니다. 도무지 자신이 하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지요. 일이 없으니 지겹기만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인에게 말했습니다. 「내 손으로 무엇이든 일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네.」그러나 하인은 그의 그러한 청을 한 마디로 거절했습니다. 「이곳에서는 당신이 원하는 것은 모두 해결되지만 단 하나, 당신이 직접 하는 것만은 금지되어 있습니다.」그 말에 그는 화가 나서 소리쳤습니다.「그렇다면 차라리 지옥이 낫겠네. 이렇게 심심해서 대체 어떻게 살란 말인가?」하인이 그 소리를 듣고 다시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했습니다. 「그럼 당신은 지금껏 여기가 천국인 줄 아셨나요? 여기가 바로 지옥입니다.」 일을 하지 않고 편안히 쉰다는 것, 그게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쉬는 것도 일을 하는 가운데 쉬어야지 의미가 있는 것이지 마냥 쉰다고만 해서 그게 좋기만 하겠습니까? 일을 하고 싶어도 일을 하지 못하는 것, 딴게 지옥이 아니라, 그게 바로 지옥입니다. 바꿔 말하면 열심히 일할 수 있다는 그 자체가 바로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천국인 셈이지요(전 9:10) "게으른 자의 정욕이 그를 죽이나니 이는 그 손으로 일하기를 싫어함이니라"(잠21:25) * 기도: 주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일을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하게 하시고, 충성스럽게 힘을 다하여 수행하는 저희 가족들이 되게 하옵소서.
/한태완(가정 예배 중에서)
▣ 지옥은 죄의 열매 거두는 곳
지옥은 어떤 곳입니까. 지옥은 분리의 장소입니다. 지옥은 하나님의 임재와 하나님의 축복으로부터 영원히 분리된 곳을 의미합니다. 지옥은 하나님의 집에 있는 사랑하는 자들로부터 영원히 분리된 곳입니다. 지옥은 고통의 장소입니다. 사람들은 세상에서 고통을 받지만 지옥에서 받는 고통에 비하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지옥은 그 어떤 곳보다 가장 깊은 고통의 장소입니다. 어떤 분은 아마도 『지옥에는 문자 그대로 불이 있는 곳입니까』라고 질문할 지 모릅니다. 예수님은 가장 적당한 용어로 말씀하시기를 「불붙은 지옥」이라고 묘사했습니다. 지옥은 영원한 고통의 장소입니다. 지옥의 고통은 영원하고 끝이없는 고통입니다. 지옥에는 소망이라곤 전혀 없습니다. 고통, 고통, 고통이 계속되지만 그것을 피할 소망이란 전혀 없는 곳입니다. 영원히 계속되는 고통이 있는 곳입니다. 영원이란 길이를 이렇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백두산만한 화강암 돌산이 있는데 독수리 한마리가 백년에 한 번씩 그 날개 끝으로 살짝 건드리고 가곤 하는데 그 돌산이 다 달아 없어지려면 몇 억만 년이나 걸릴까요. 그러나 그 돌산이 다 달아 없어져도 영원에 비하면 시작밖에 안됩니다. 지옥은 죄의 열매를 거두는 곳입니다.『그들이 슬피울며 이를 가는 곳』이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죄악된 생활을 한 것에 대해서 열매를 거두면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아버지한테 이를 갈며 부르짖기를 『아버지, 아버지가 나를 여기 오게했어! 교회갈 시간이 없다고 했잖아. 예수님을 제쳐놓고 평생 살았잖아. 나는 아버지를 따라서 죄를 지으며 살다가 결국 아버지 때문에 이 지옥으로 왔어』하며 원망할 것입니다. 어떤 딸은 어머니를 향해 이를 갈며 부르짖기를 『엄마가 나를 여기 오게했어! 엄마는 모든 시간을 세상만 위해 써 버렸어. 그리스도를 위해서는 전혀 시간을 안 드렸잖아. 나는 엄마의 뒤를 따르다가 엄마 때문에 이곳 까지 왔어!』하며 원망할 것입니다. 지옥은 기억나는 장소입니다. 만일 여러분 중에 지옥가는 사람이 있다면 모든 것을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어머니의 기도가 생각날 것입니다. 예수 믿으라고 전도하는 말을 들었던 것도 생각날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그때는 늦은 때입니다. 영원히 기억하며 고통을 당할 것입니다. 그럼 누가 지옥에 갑니까. 예수님을 믿지 않고 그리스도를 거절한 사람들이 지옥에 갑니다. 하나님의 독생자를 짖밟는 죄가 제일 큰 죄입니다. 혹시 『나는 술도 안마셨고 저주 하지도 않았고 간음죄도 안지었어』할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기를 거절했다면 바로 지옥갈 죄인입니다.『나는 세상에서 너무 바쁘게 사느라고 예수 믿을 시간이 없었습니다』라고 핑계댈지 모르지만 죽음의 시간은 올 것이고 구원의 유일한 길을 거절했기 때문에 지옥에서 깨어날 것입니다.
/김홍도 목사
▣ 목사님 혀, 성도 귀
어떤 사람이 천국에 갔다. 안내하는 천사를 따라 이곳저곳을 둘러보는데 한 곳에 이르니 ‘혀’가 수북이 쌓여 있더란다. 깜짝 놀라 천사에게 물었다. “아니, 천국에 웬 입들인가요?” “이것들은 모두 목사님들의 혀입니다” 두근거리는 가슴, 의아한 마음을 안고 다른 한 곳에 이르니 이번에는 ‘귀’만 수북이 쌓여있었다. 재차 너무 놀라 묻지도 못하는 그에게 천사가 한 말이다. “이것들은 모두 성도들의 귀입니다. 목사님들은 좋은 말만 했기에 혀만, 성도들은 좋은 말만 들었기에 귀만 천국에 온 것입니다” 다음날 그 사람은 천사의 안내로 지옥 구경을 갔더랍니다. 천사가 보여 주는 곳을 보니 피가 줄줄 흐르는 사람의 혀가 오징어를 철사에 꿰어 말리듯 주렁주렁 수없이 매달려 있었습니다. 너무너무 끔찍하여 고개를 돌리는 그에게 천사가 한 말입니다. “가지각색으로 죄를 진 혀들입니다. 설명이 필요없겠지요? 다른 곳으로 가실까요?” “아-아니요!” /김우영 목사 ▣ 지옥여행 천국에 있던 어떤 사나이가 어느 날 지옥이 궁금해서 지옥여행을 떠났다. 가서 보니 듣던 것과는 딴판이었다. 웬 지옥에서 저렇게 호의호식하며 신나게 즐기고 놀고 있을 수가 있는가. 그래서 그 사나이는 당장 지옥에 이민을 신청했다. 그리고 기대를 갖고 지옥에 이민을 갔다. 그런데 가서 보니 전번에 본 것과는 또 딴판이었다. 그래서 그 사나이는 강력하게 항의를 했다. “왜 전번에 여행왔을 때와 이렇게 다른가” 안내자가 아주 태연하게 말했다. “그때는 관광코스였다” 우리나라가 싫다고 이 땅을 떠났던 우리 이웃들이 많다. 다른 나라는 모두 이 땅보다 좋게 보였던 모양이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우리나라 대한민국 만세를 목청껏 외치고 있다. 내 것이 최고다. 왜냐 하면 그것이 하나님이 내게 주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정익 목사(신촌성결교회)
▣ 자궁 속 대화
엄마의 자궁 안에 있는 쌍둥이가 서로 이야기를 나눕니다.동생: "나는 저 밖에도 새로운 삶이 있다고 생각해"오빠: "말도 안돼! 절대 그렇지 않아. 우리에게 영양분을 공급해주는 것은 탯줄 뿐이야. 탯줄을 끊고 어떻게 살 수 있어? 여기가 전부라니까. 우리는 우리를 먹여주고 살려주는 탯줄만 잘 붙들고 있으면 여기에서 영원히 살 수 있다니까"동생: "캄캄함 곳보다 더 좋은 곳이 분명히 있을거야. 마음껏 움직일 수 있고 환한 빛을 볼 수 있는 곳 말이야. 잘 들어봐 저 밖에서 들리는 웃음소리를... 나는 분명히 엄마가 있다고 생각해."오빠: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는 거야? 나는 엄마를 한번도 본적이 없어. 보지 않은 것을 어떻게 믿어? 딴 생각 말고 여기에 만족하라구."동생: "아니야, 난 그렇게 생각 안 해 저 밖에 새로운 삶이 있어. 아름답고 행복한 곳, 엄마의 얼굴을 볼 수 있는 곳...난 저곳으로 곧 나갈꺼야"결국 새로운 세상이 있다는 동생의 말도 안 되는 주장에 질려 버린 오빠는 동생의 말을 무시하고 그냥 입을 꾹 다물어 버리고 맙니다. 천국과 지옥은 분명히 있습니다.
▣ 천당과 지옥
어떤 사람이 아버지에게 닭을 잡아 극진히 대접하였다. 이 닭을 어디서 구했느냐고 아버지가 묻자, 아들은 아버지, 그런 염려는 하지 마시고 어서 많이 잡수시기나 하세요.라고 대답했다. 그래서 아버지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또 한 사람은 밀가루를 빻는 방아꾼이었는데, 왕이 나라 안에 있는 방아꾼을 소집한다는 포고령을 내려, 아버지에게 자기 대신 방앗간을 돌보게 하고 왕이 있는 궁성으로 갔다. 여러분들은 이들 두 아들 가운데 누가 천국으로 가고 누가 지옥에 갈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어째서 그렇다고 생각하는가? 두 번째 사람은 왕이 강제로 소집한 사람들을 혹사하고 매질하고 좋은 음식도 주지 않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아버지 대신 자기가 갔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죽어서 천국으로 갈 수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에게 닭을 잡아 드린 사나이는 아버지가 묻는 말에 제대로 대답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지옥에 갔다. 부모에게 정성을 다해 진심으로 대하지 않는다면 차라리 일을 하게 하는 편이 낫다. ▣ 천국과 지옥 이 세상에서 천국과 가장 흡사한 것은 남편과 아내 그리고 부모와 자녀가 주님과 서로를 위해서 평화와 사랑 가운데 함께 살고 있는 가정입니다. 이 세상에서 지옥과 가장 흡사한 것은 부모들이 싸우고 말다툼하며 자녀들을 악과 악한 세력에 내버려 두는, 그리고 죄와 부정으로 손상된 경건치 못한 가정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작고 완전한 사회구성 단위를 가정으로 만든 것은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가정이 있기에 나라와 문명 그리고 세계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가정들, 즉 먼저 우리나라의 모든 부모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기 전까지는 우리나라는 도덕적으로나 영적으로 퇴보해 갈 것입니다. 그냥 믿는 것이 아니라 바르게 믿어야 합니다. 매일 성화되는 삶을 보여주는 그런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을 가진 생동하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가정은 어떻습니까. 천국입니까, 아니면 지옥입니까. 한번 점검해보십시오.
/김상복 목사(할렐루야교회)
▣ 천국과 지옥
프랑스의 철학자 볼테르는 임종시에 "나는 하나님과 인간에게 버림을 받았구나. 의사 선생, 내 생명을 6개월 연장시켜 주면 내 재산의 절반을 주겠소."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죤 뉴우튼은 노예 상인이었으나 후에 예수 믿고 82세까지 살다가 숨을 거두면서 유명한 말을 남겼다. "나는 지금 하나님 나라로 간다. 그러나 아마 내가 하나님 나라로 가면 세 번 놀랄 것이다. 처음엔 전혀 하나님 나라에 오리라고 기대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와 있는 것을 보고 놀랄 것이고 두 번째는 반드시 하나님 나라에 가면 만나리라고 기대했던 사람이 안 보이는 것을 보고 놀랄 것이고, 세 번째는 노예상인인 죤 뉴으튼 내가 그 자리에 와 있다는 것을 보고 놀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가? 다시 한 번 진지하게 듣고 깊이 묵상하며 삶의 지혜로 삼자.
"청년이여 네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네 청년의 날을 마음에 기뻐하며 원하는 길과 네 눈이 보는 대로 좇아 행하라.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인하여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전11:9)
▣ 돈과 지옥
“어떻게 하면 우리가 돈 때문에 지옥에 빠져 들어가지 않을 수 있을까? 한 가지 방법이 있다.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사람은 돈을 벌만큼 다 벌어서, 할 수 있는 만큼 다 저축해 놓고, 나누어 줄 수 있는 만큼 다 나누어 주면 된다. 돈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더 많이 성장할 것이고, 하늘에 더 많은 보화를 쌓아놓게 될 것이다. 선한 일을 하되,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하되, 최대로 할 수 있는 만큼 해야 한다. 모든 사람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마지막 때까지 최선을 다하며 살아야 한다.”이것이 요한 웨슬레의 물질관이다. 가슴을 때리는 귀한 말씀이다. 움켜쥔 돈은 돈이 아니다. 돈은 남을 위하여 베풀 때 빛이 난다. 웨슬레는 88세에 소천하며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이다.”
/김상복 목사(할렐루야교회)
▣ 스스로 택한 지옥
누군가를 미워하고, 미워하다 못해 증오하고, 그를 죽여버리고 싶다못해, 그냥 저절로, 내 손에 피 한 방울 안 묻히고, 그 사람이 고통스러운 병에 걸려 천천히 죽어가기를 바랐던, 그러면 나는 고통받으며 죽어가는 그를 앞에 두고 두 눈 똑바로 뜨고 빙긋이 웃으며 그 모습을 지켜보리라, 이를 악물던 그런 황폐한 날들이 내게도 있었다. 증오가 사랑보다 강렬한 것을 알게 되고, 미움 앞에서 사랑은 얼마나 무력하게 사위어가는지 알게 되었던 그런 날들이 내게도 있었다. 그를 파괴하고 싶은 욕망이 결국 나 자신을 파괴하고 싶은 욕망의 다름 아니었다는 것도 모르던 그런 날들이…. 다시 신앙을 찾았을 때 나는 기도했다. “다시 돌아왔지만 그 사람을 용서하라는 말일랑은 하지 마세요. 설사 그것 때문에 지옥에 간다 해도, 물론 지옥에 가는 건 무섭지만, 그래도 지금 나는 그 사람만은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 말만은 내게 하지 마세요. 하나님… 다른 건 다 돼도 그것만은 안 됩니다.” 당장 그를 용서하라는 계시를 받은 것도 아닌데 나는 성당에 앉아 안돼요, 안돼요 하며 엉엉 울었다. 사실 지옥은 누가 우리를 억지로 보내버리는 그런 곳이 아니었나 보다. 곁에 두고 그를 증오하던 마음이, 사랑이 미움 앞에서 무력하게 사라지던 걸 속수무책 바라보아야 했던 그 시절이, 내 스스로 걸어 들어간 지옥이었을 뿐.
/공지영 <수도원 기행>에서
▣ 엄숙한 하나님의 심판
‘로댕’하면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조각상이 얼른 머릿속에 떠오릅니다. 덕수궁에서 열렸던 그의 작품전에 가서 문제의 작품 ‘생각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습니다. 단테의 「신곡」 중에 지옥편을 소재로 해서 지옥문 위에 만들어진 조각품이 바로 ‘생각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그 작품을 보며 제목을 누가 붙였는지는 모르지만 지옥문 위에 붙여진 글귀로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지옥문 앞에까지 갔다면 이미 끝난 것입니다. 지옥문에서 무슨 생각을 할 시간이 있으며 무슨 생각이 필요하겠습니까? 때가 너무 늦습니다. 그 작품을 감상하면서 약간의 모순을 느꼈지만 그것대로 우리에게 상당한 의미를 부여해 주는 작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미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이나,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있는 모든 사람들 앞에 다가올 최후의 심판에 대해 마치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처럼 우리도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깊이 머리를 숙이고 손으로 턱을 고이고 조용히 겸손하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정말 그런 곳이 있단 말인가?’, ‘내가 비록 예수 믿고 교회에 다니지만 그곳에 가지 않는다는 확신이 나에게 있는 것일까?’ 이것은 우리에게 있어서 그 무엇보다도 심각한 문제요, 또한 엄숙한 과제입니다.- 「문밖에서 기다리시는 하나님」
/ 옥한흠
▣ 자기 중심은 지옥의 근원
자기 중심이라는 것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현상이지만 이것은 지옥의 수 많은 재앙을 가져오는 근본 원인입니다. 자기 중심에서 자기 입장이 일어나며 체면이 일어나며 비교의식이 일어납니다. 자기 입장에서 서운함, 상처, 억울함, 고집 등이 일어나며 체면에서 외식, 위선, 분노, 등이 일어나며 비교의식에서 판단, 열등감, 교만 등 많은 악들이 일어납니다.
항상 자기를 의식하는 이들은 무거운 쇠사슬을 온 몸에 묶여 끌려다니는 것과 같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의식하지 못하고 사람과 환경만을 의식하게 됩니다. 이러한 자기 중심의 삶은 우리의 영혼을 질식하게 하고 마귀로부터 채찍질을 당하는 삶과 같은 것입니다.
자기를 내려놓는 것은 해방입니다. 자유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주를 따르는 것은 주의 마음, 아버지의 마음을 얻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에게는 아버지의 마음이 임하고 주의 사랑의 마음, 긍휼의 마음이 임하며 무한한 지혜와 능력과 권세와 역사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자기를 버리는 것은 이처럼 지옥의 재앙을 끝내고 천국의 영광을 끌어당기는 것이므로 마귀는 어찌해서든지 이 자기를 포기하지 못하도록 속이고 역사합니다. 자기 중심이 되어야만 마귀는 그에게 두려움을 주고 상처를 주고 분노를 주고 낙담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어찌하든 사람의 자존심을 세우고 높이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버리십시오. 입장을 내려놓으십시오. 자기 애정을 내려놓으십시오. 내가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신 주님이 사랑하게 하십시오. 애정도, 혈연도, 입장도. 체면도.. 아무 것도 손에 붙들지 말고 오직 주의 손에 올려 놓으십시오. 그것이 해방이며 천국이며 승리이며 자유의 길입니다. 소년이 가지고 있던 오병이어가 주님의 손에 올려지자 놀라운 도구가 되었던 것처럼 우리가 붙들고 있는 자아, 자존심, 입장과 체면을 주님의 손에 올려드릴 때 우리는 아름답고 놀라운 천국의 도구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곧 승리의 삶이며 천국의 삶입니다. 할렐루야..
ⓒ 정원 목사
▣ 천국과 지옥의 전화번호
최근에 입수한 정보에 의하면 천국에도 전화가 있고 지옥에도 전화가 있어서 좌석 예약이 가능하다고 한다. 천국의 전화번호는 66-3927이고, 지옥의 전화번호는 11-1111이란다. 그 이유는 구약성경의 권수 39와 신약성경의 권수인 27을 합한 66이 천국의 국번이 되고 39와 27이 그 고유번호이기 때문이란다. 그리고 지옥의 전화번호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가 최고라는 일류의식 등 자기만이 제일이라는 생각이 합쳐서 11-1111이 된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천국의 전화번호보다는 지옥의 전화번호가 훨씬 외우기가 쉽고, 따라서 지옥의 좌석 예약자들이 천국의 좌석 예약자들보다 더 많다는 정보는 이해가 간다.
천국 좌석을 예약하려면 성경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고, 지옥 좌석을 예약하려면 자기가 최고라는 주장만 열심히 하면 되니까 당연히 천국 좌석 예약은 어렵고 지옥 좌석 예약은 쉬울 수밖에 없지 않은가?
- 편집부 제공
▧ 묵상
* 나는 풍족한 가운데서 하나님을 즐거움으로 섬기고 있습니까? 아니면 징계를 받고야 돌아서는 우매함을 행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 하나님의 말씀이 정확하게 성취되는 것을 보면서 나는 어떤 도전을 받고 있습니까?
▧ 기도: 하나님, 제가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정확하게 그대로 실현된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소서.
/생명의 삶
▣ 지옥으로 보낸 이유
어느 수도원에 유명한 수도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 수도자는 단식도 자주 하고, 기도 역시 빠뜨리지 않고 꼬박꼬박 했으며, 자신의 수입 중 일부를 하나님께 드렸으며, 성도들이 찾아오면 좋은 이야기를 해주곤 했습니다. 그 수도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 가난한 과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자식들을 먹여 살려야 했고, 살림도 꾸려 가야 했지만 배운 것이 없어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그녀는 도둑질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수도자는 과부를 불러다 호되게 꾸중했습니다. 과부는 수도사의 꾸중에 눈물을 흘리며 회개했습니다. 하나님께 자신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빌고 또 빌었습니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온 과부는 시간이 흐르자 먹고 살기 위해 또 다시 죄를 짓고 말았습니다. 수도자는 과부가 죄를 지을 때마다 돌을 하나씩 쌓았는데, 마침내 그 둘은 커다란 돌무더기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수도자는 다시 과부를 불러 질책했습니다.
"이 죄악된 여자야! 이 돌무더기를 보았느냐? 이것은 네가 죄를 지을 때마다 내가 던져 놓은 돌들이다. 천벌을 받아도 시원찮을 죄인아! 아직도 하나님이 두렵지 않단 말이냐?"
과부는 수도자의 질책에 죄를 뉘우치며, 하나님께 이토록 비참한 자신을 구원해 주시기를 기도드렸습니다. 그날 밤 하나님은 수도자와 과부의 영혼을 거두어 가셨습니다. 그런데 수도자는 지옥으로, 과부는 천당으로 보내졌습니다. 수도자가 이 어이없는 일에 대해 강력히 항의하자 천사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명예를 위해 살았고, 자만심과 교만에 가득 차 이웃에게 사랑을 베풀기는커녕 아픈 상처만 주었습니다. 또한 이웃의 환경이 좋아지도록 노력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지옥으로 보내진 것입니다.
가장 절망적일 때 가장 큰 기쁨을 주시는 하나님 / 기독신문사 출판기획부 엮음
▣ 세상 모든 수고 끝나 (찬송가 236장, <통> 223장)
1. 세상 모든 수고 끝나 우리 장막 벗고서 모든 근심 걱정 사라진 뒤에 주를 뵙고 성도함께 면류관을 쓰리라 새 예루살렘에서
2. 가는 길이 외로와도 주 날 붙드시리니 시험 환난 근심 걱정 없으며 주를 믿고 따라가면 주의 뜻을 알리라 새 예루살렘에서
3. 내가 세상 작별하고 눈물 흔적 거둔 뒤 주의 찬란하신 영광 비칠때 나를 구속하신 주를 기쁨으로 뵈오리 새 예루살렘에서
4. 아름다운 그곳에서 구속 받은 성도와 사랑하는 주를 만나 뵈올 때 주의 영광 노래하며 영원토록 살리라 새 예루살렘에서
[후렴] 성도들이 함께 올때 기뻐 노래하리라 새 예루살렘 새 예루살렘 호산나를 높이 불러 왕의 왕을 맞으리 새 예루살렘에서
▣ 저 요단강 건너편에 (찬송가 243장, <통> 224장)
1. 저 요단강 건너편에 화려하게 뵈는 집 주 날위해 예비하신
집일세 그 강가에 생명나무 꽃이 만발하였네 주의 낯을 그곳에서 뵈오리
2. 주가 내게 부탁하신 모든 역사 마친 후 예비하신 그곳에서 쉬겠네 성도들이 주의 영광 할렐루야 부를 때 나의 음성 그 노래에 합하리
3. 일찍 떠나 그곳에 간 사랑하는 친구들 나를 기다리고 있으리로다 세상길을 다간 후에 나도 거기 올라가 그 집에서 저희들과 살겠네
4. 이 세상에 머물 동안 주의 일을 힘쓰며 주의 구원함과 은총
전하고 나의 생명 마치는 날 저본향에 올라가 주의 얼굴 그곳에서 뵈오리
[후렴] 주의 얼굴 뵈오리 주의 얼굴 뵈오리 슬픔 하나도 없고 금빛 찬란한데서 구속하신 주의 얼굴 뵈오리
▣ 지옥에 관한 성경 말씀
0 <신명기 32 : 22> 내 진노 중에 불이 붙어서 가장 낮은 지옥까지 사를 것이며 땅 을 그 소산과 더불어 소멸할 것이며 산들의 기초에도 불을 놓으리라.
0 <사무엘하 22 : 6> 지옥의 슬픔이 나를 에워쌌으며 사망의 올무가 내 앞에 있었도다.
0 <욥기 11 : 8> 그것은 하늘만큼 높으니 네가 무엇을 하겠으며, 지옥보다 깊으니 네가 어찌 알 수 있겠느냐?
0 <시편 16 : 10>이는 주께서 내 혼을 지옥에 버려두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하신이로 썩어짐을 보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
0 <시편 18 : 5> 지옥의 고통이 나를 에워싸고 사망의 덫이 나를 막았나이다.
0 <시편 55 : 15> 사망으로 그들을 덮치게 하고, 그들을 급히 지옥으로 내려가게 할지라. 이는 사악함이 그들의 처소에, 또 그들 가운데 있음이라.
0 <시편 86 : 13> 이는 나를 향하신 주의 자비가 크시며, 주께서 내 혼을 가장 낮 은 지옥으로부터 구하셨음이니이다.
0 <시편 116 : 3> 사망의 슬픔이 나를 에워싸고 지옥의 고통이 내게 미쳤으니, 내가 고난과 슬픔을 만났도다.
0 <시편 139 : 8> 내가 하늘로 올라갈지라도 주께서는 거기 계시며, 내가 지옥에 잠자리를 마련한다 하여도, 보소서, 주께서는 거기 계시나이다.
0 <잠언 5 : 5> 그녀의 발은 죽음으로 내려가고, 그녀의 걸음은 지옥으로 접어드는도다.
0 <잠언 7 : 27> 그녀의 집은 지옥으로 가는 길이며 죽음의 방들로 내려가는 길이니라.
0 <잠언 9 : 18 >그러나 그는 죽은 자가 거기 있고, 그녀의 객들이 지옥의 깊은 곳들에 있는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0 <잠언 15 : 11> 지옥과 멸망이 주 앞에 있거늘, 하물며 사람의 자손들의 마음들이야 더욱 그렇지 않겠느냐?
0 <잠언 15 : 24> 생명의 길은 현명한 자 위에 있으니, 그는 아래 있는 지옥으로부터 벗어나리라.
0 <잠언 23 : 14> 너는 그를 매질해야 하리니, 그리하면 그의 혼을 지옥으로부터 구해 내리라. 0 <잠언 27 : 20> 지옥과 멸망은 결코 가득 차지 않으며, 사람의 눈도 결코 만족함 이 없느니라. 0 <이사야 5 : 14>지옥은 스스로를 확장하였고 한없이 입을 벌렸으니, 그들의 영광과, 그들의 많은 무리와, 그들의 허영과, 기뻐하는 자가 그 곳으로 내려가리라.
0 <이사야 14 : 9>아래로부터 지옥이 너로 인하여 움직여서 네가 올 때 너를 맞이하려 하는도다. 그것이 너로 인하여 죽은 자들을 움직이니, 곧 땅의 모든 지도자들이라. 또 그것이 민족들의 모든 왕들을 그들의 보좌에서 일어서게 하였도다.
0 <이사야 28 : 15> 너희가 말하기를 우리가 사망과 더불어 언약을 맺었고 우리가 지옥과 더불어 합의하였도다. 넘치는 재앙이 지나갈지라도 우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이는 우리가 거짓을 우리의 피난처로 삼았고 허위 아래 우리가 우리 자신 을 숨겼음이라. 하였도다.
0 <이사야 28 : 18> 사망과 더불어 맺은 너희의 언약이 무효화되며 지옥과 한 너희의 합의가 서지 못하리니, 넘치는 재앙이 지나가면 너희가 그것에 짓밟힘을 당하리라.
0 <이사야 57 : 9> 네가 향기름을 가지고 왕에게로 갔으며 네 향수를 늘리고 또 네 사자들을 멀리 보내서 스스로를 지옥에까지 낮추었도다.
0 <에스겔 31 : 16>내가 그를 구렁으로 내려가는 자들과 더불어 지옥에 던질 때 그의 떨어지는 소리에 민족들이 진동하게 하였으니, 에덴의 모든 나무, 즉 물을 흡수한 레바논의 아름답고 가장 좋은 것들이 땅의 아래 부분에서 위로받게 되리라.
0 <에스겔 31 : 17> 그들은 또한 그와 함께 지옥에 내려갈 때 칼로 살해된 자들에게 갔으며, 그들은 그의 팔이었고 이방 가운데서 그의 그늘 아래 거하던 자들이니라.
0 <에스겔 32 : 21> 막강한 자들 사이에서 강한 자가 그를 돕는 자들과 더불어 지옥 한가운데서 그에게 말할 것이니, 그들은 내려와서 칼로 살해된 채로 할례 받지 않고 누워 있도다.
0 <에스겔 32 : 27> 그들은 할례 받지 않은 자들 가운데서 엎드러진 용사들, 즉 그들의 전쟁 무기를 가지고 지옥에 내려간 자들과는 함께 눕지 아니할 것이니, 그들은 칼을 자기들의 머리 밑에 두었으나 그들이 산 자들의 땅에서는 용사들의 두려움일지라도 그들의 죄악은 그들의 뼈 위에 있으리라.
0 <아모스 9 : 2> 그들이 지옥으로 파고 들어간다 할지라도 내 손이 거기서 그들을 끌어낼 것이요, 그들이 하늘까지 올라간다 할지라도 내가 거기서 그들을 끌어낼 것이라.
0 <요나 2 : 2> 말하기를 내가 나의 고통으로 인하여 주께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나를 들으셨나이다. 내가 지옥의 뱃속으로부터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내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0 <하박국 2 : 5> 그는 교만한 자이며 또한 술로 인하여 참으로 범죄하였기에 집에 가만있지 못하고, 그는 자기 욕심을 지옥처럼 넓히며 죽음처럼 되고 만족할 줄 모르며 모든 민족들을 자기에게로 모으고 모든 백성들을 모으나니
0 <마태복음 5 : 22>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까닭 없이 자기 형제에게 노하는 자는 누구든지 심판의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이며, 형제에게 라카라 하는 자는 누구나 공회의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이요, 또 어리석은 자라 하는 자는 누구나 지옥불의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이라.
0 <마태복음 5 : 29> 또 만일 너의 오른쪽 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 던져 버리라. 네 지체 가운데 하나가 손상되는 것이 네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0 <마태복음 5 : 30> 또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잘라 던져 버리라. 네 지체 가운데 하나가 손상되는 것이 네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0 <마태복음 10 : 28>또 너희는 몸은 죽일 수 있으나 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차라리 혼과 몸을 모두 지옥에서 멸하실 수 있는 그 분을 두려워하라.
0 <마태복음 11 : 23>카퍼나움아, 하늘까지 높아진 너는 지옥까지 낮아지리라. 너에게 행하였던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라면 그 성읍이 오늘까지 남아 있었으리라.
0 <마태복음 16 : 18>나도 너에게 말하노니, 너는 베드로라. 그리고 이 반석 위에 내가 나의 교회를 세우리니, 지옥의 문들이 그것을 이기지 못하리라.
0 <마태복음 18 : 9> 또 네 눈이 너를 실족케 하거든 뽑아 던져 버리라.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한 눈을 가지고 생명으로 들어가는 것이 더 나으니라.
0 <마태복음 23 : 15>위선자인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아, 너희에게 화 있으리라! 이는 너희가 한 사람의 개종자를 얻으려고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얻고 나면 그를 너희보다 두 배나 더 악한 지옥의 자식으로 만들기 때문이라.
0 <마태복음 23 : 33>너희 뱀들아, 독사들의 세대야, 어떻게 너희가 지옥의 저주에서 피할 수 있겠느냐?
0 <마가복음 9 : 43> 네 손이 너를 실족케 하거든 잘라 버리라. 두 손을 가지고 결코 꺼지지 않는 불속인 지옥에 들어가는 것보다 불구자로 생명에 들어가는 것이 더 나으니라.
0 <마가복음 9 : 45> 네 발이 너를 실족케 하거든 잘라 버리라. 두 발을 가지고 결코 꺼지지 않는 불 속인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절름발이로 생명에 들어가는 것이 더 나으니라.
0 <마가복음 9 : 47> 네 눈이 너를 실족케 하거든 뽑아 버리라.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는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더 나으니라.
0 <누가복음 12 : 5> 그러나 너희가 누구를 두려워해야 하는지 내가 보여 주리라. 죽인 후에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를 가진 그 분을 두려워하라. 정녕,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 분을 두려워하라.
0 <누가복음 16 : 23>부자가 지옥에서 고통 받는 중에 눈을 들어 저 멀리 아브라함을 보았더니 나사로가 그의 품에 있는지라.
0 <사도행전 2 : 27> 이는 주께서 내 혼을 지옥에 내버려 두지 아니하시며, 또 주의 거룩하신 분이 부패되는 것을 보지 않게 하실 것이기 때문이라.
0 <사도행전 2 : 31> 그가 미리 앞을 내다봄으로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하여 말하되 주의 혼이 지옥에 내버려지지 않았으며, 또 주의 육신도 부패되는 것을 보지 못하였도다. 하였느니라.
0 <야고보서 3 : 6> 혀는 불이요, 죄악의 세상이라. 그러므로 혀는 우리 지체들 가운데 있으면서 온 몸을 더럽히며 또 일생을 불태워 버리나니 곧 지옥의 불에서 태우느니라.
0 <베드로후서 2 : 4> 하나님께서는 죄를 지은 천사들조차 아끼지 않으시고 지옥에 던져서 흑암의 사슬에 내어주어 심판 때까지 가두어 두셨으며
0 <요한계시록 1 : 18>나는 살아 있는 자며, 죽은 자였으나 보라, 영원무궁토록 살아 있노라. 아멘. 또한 내가 지옥과 사망의 열쇠들을 가졌노라.
0 <요한계시록 6 : 8> 이에 내가 보니, 보라, 창백한 말 한 마리가 있는데 그 위에 탄 자의 이름은 사망이요 지옥이 그 뒤를 따르니, 그들에게 칼과 굶주림과 사망과 땅의 짐승들로 땅의 사분의 일을 죽일 권세가 주어졌더라.
0 <요한계시록 20 : 14> 사망과 지옥도 불 못에 던져지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 지옥에 관한 금언
0 지옥은 배은망덕으로 가득 차 있다.(토마스 풀러)
0 살아서는 법정을 조심하고 죽어서는 지옥을 조심하라(중국격언)
0 만약 덕을 위한 천국이 있을진대 범죄자가 갈 지옥이 있음이 틀림없다.(니콜라스 카우상)
0 마음이 바로 그곳이다. 마음 자체가 지옥의 천국을 만들거나 천국의 지옥을 만들 수 있다.(죤 밀턴)
0 지옥은 훌륭한 변명과 핑계와 소원으로 가득한 곳이다.(죠지 허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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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하게 구제하라댓글[0]
구제, 나눔, 베품
(2012-03-01 오전 11:53:14)http://blog.somang.net/holylove/7249
은밀하게 구제하라
본문: 마 6: 1- 4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어느 회사 사장 비서가 이웃돕기 성금을 가지고 서울 시내 모 일간 신문사를 찾아갔습니다. 이웃돕기 성금을 기탁한 그 비서는 "이 성금을 내신 우리 사장님 사진을 신문에 실어 주십시오."하며 부탁하자 신문사에서는 신문에 얼굴을 낼 수 있는 성금의 한도액을 말해주며 어렵다고 하자 "그러면 그 성금 돌려주십시오." 하며 되찾아 갔습니다. 아무리 명예가 귀중하고 본능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기탁한 불우 이웃돕기 성금을 다시 찾아갔다는 이 사실은 그냥 웃어 넘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의인은 가난한 자의 사정을 알아 주나 악인은 알아 줄 지식이 없느니라’(잠29:7)
바리새인들은 구제를 할 때 사람이 많이 모이는 회당과 거리에서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구제할 때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은밀한 구제, 어떤 대가를 바라지 않는 구제,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그저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의 마음을 가지고 돕는 선한 손길, 이것이 우리 주님이 원하시는 구제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마음에 합당한 은밀한 구제,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는 구제를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가 하는 모든 일과 우리의 손이 닿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겠다고 하십니다.(신15:10)
‘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아니하겠으므로 내가 네게 명령하여 이르노니 너는 반드시 네 땅 안에 네 형제 중 곤란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네 손을 펼지니라’(신15:11)
세상에 구제를 받아야 할 만한 가난한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는데 하나님은 이 땅에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않도록 남겨두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가난한 자들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축복을 주시기 위한 통로입니다.
‘선한 눈을 가진 자는 복을 받으리니 이는 양식을 가난한 자에게 줌이니라’(잠28: 9)
미국 남침례교총회에서 총회장의 자리를 물러나게 된 칼 E.베이츠가 설교 중에 다음과 이야기를 들려 주었습니다.
"잠비아에 파견된 콜린 모리스 선교사로부터 굶어 죽은 원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원주민의 시체는 선교지역에서 100야드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발견됐습니다. 해부를 해보니 그의 위 속에는 몇 장의 나뭇잎과 약간의 풀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상황인데도 선교를 후원하고 있는 본국의 교단에서는 성만찬이 끝난 뒤 남은 빵을 어떻게 처리할 것이냐 하는 문제로 심각하게 싸우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우선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할 문제는 굶주림과 슬픔과 고통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고 보살핌으로써만 주님을 닮아 갈 수가 있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가난한 자를 보살피는 자에게 복이 있음이여 재앙의 날에 여호와께서 그를 건지시리로다’(시41:1)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약1: 27)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약2:15- 16)
성도여러분, 어려운 이웃에게 관심을 가지고 돌아보고 그들의 아픔을 외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 기도: 사랑의 하나님, 어려운 이웃을 보고도 외면하는 자가 되지 말게 하시고 착한 사마리아인처럼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늘 성령께서 도와주시옵소서, 은밀한 가운데 나보다 약한 자를 도우며, 위로하고 나누어 주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