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4-27 오전 7:13:22)http://blog.somang.net/holylove/7328
하나님을 만난 것이 제일 행복합니다
태현실씨의 태, 남진의 진, 나훈아의 아 를 따서 만든 이름, 태 진 아. 이름을 바꾸고 데뷔는 했지만 십 여년 동안 빛을 보지 못했다. 그래서 도미를 하였다. 하지만 미국에 가서도 엄청난 고생을 하 였다. 거기에서 그의 히트곡 ‘옥경이’로 알려진 지금의 아내 를 만났다. 미국을 건너간 이유는 희망이었다. 하지만 실제 이민 의 삶은 절망이었다. 배우지 말아야 할 것들을 배웠다. 그렇게 삶이 망가져가던 어느 날, 아내가 밤에 나가 새벽에야 들어왔다. 그날이 태진아의 인생을 바꾸게 된 의미있는 날이 되어 버렸다. 태진아: 당신 도대체 왜 그러는거야? 왜 밤마다 나가서 새벽에 들어오느냐구? 춤바람이 난거야 뭐야? 부 인 : 바람요? 그래요 바람 났어요 왜요? 태진아 : 어이구 이제야 실토를 하는구만, 좋아 이제 모두 끝났어 부 인 : 끝나긴 뭐가 끝나요? 예수바람 났다는데요. 태진아 : 뭐라고? 예수바람? 예수바람은 바람이 아니냐? 잔소리 말고 앞으로 그딴 곳에 가지마! 알았어? 그랬더니 부인이 눈물을 흘리며 하는 말이 “어머니가 암이시래요, 그래서 어머니와 제가 교회를 나가는 거예요. 밤마다 철야기도회에 참석 하러요.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여보, 제발 부탁이예요. 우리 모녀가 교회 나가는데 핍박하지 마세요.” “이봐 그 교회 어디야? 나도 좀 가보자.” 그날 교회에 가서 부른 찬송이 ‘인애하신 구세주여 내말 들으사 죄인 오라 하실 때에 날 부르소서.“ 찬송가 337장(새279장)이다. 희망도 돈도 없는 시절 찬양을 통해 하나님을 만났다. 다시금 희망을 찾게 되었고, 지금의 태진아로 살게 되었다. 그가 교회에 처음 나가던 그날 만난 하나님을 잊지 않고 희망을 찾게 된 지금이 제일 행복하다고 태진아는 고백하고 있다.
♥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당신을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주셨습니다. 예수는 우리의 죄값을 대신 치르기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예수를 믿기만 하면 모든 죄와 허물을 다 용서받고 이 땅에서 진정한 만족과 행복을 누리며 살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육신의 생명이 다한 후에는 복되고 영광스러운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며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빛의 사자 제공
한승진 선교사 성경공부(유월절)댓글[0]
부활, 성탄, 절기
(2012-04-26 오후 9:19:24)http://blog.somang.net/holylove/7327
한승진 선교사 성경공부(유월절)
▣ 지금 시작하십시오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지나간 삶에 드리운 어두운 구름을 걷어내고 잘못된 선택 이전으로 돌아가서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축복일 것입니다. 잘못된 결정으로 휘청거리는 사업을 그 결정 이전에서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교통 사고로 장애인이 된 사람이 그 쓰라린 기억을 씻어낼 수 있도록 다시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친구들과 노는 데 정신이 팔려서 학업 성적이 뚝뚝 떨어지면서 어느덧 중요한 시험은 코앞으로 다가왔을 때 한 학년 전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사는 데 정신없이 바빠서 인생의 민감한 시기에 있던 아이들에게 제대로 신경을 써주지 못했고 이제는 다 자란 아이들과 대화가 통하지 않아 아픈 마음을 부둥켜안고 살아가는 부모들에게 아이들이 어릴 때로 돌아가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나님은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고 있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선물을 주십니다. “이 달로 너희에게 달의 시작 곧 해의 첫 달이 되게 하고 …” 새 출발입니다. 옛날에 왕조가 바뀌면 연도 이름을 바꿔 불렀습니다. ‘세종 원년, 세종 2년’ 하는 식입니다. 어느 교회에서는 교회 창립 50주년인 희년을 앞두고 몇 년 전부터 연도를 이렇게 부릅니다. ‘희년설렘 첫 해, 희년설렘 둘째 해’. 희년을 바라보며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시작하자는 것이지요. 유월절에서 월(越)은 넘는다는 뜻입니다. 죽음의 재앙이 이스라엘 사람 집에는 들어오지 않고 건너뛰어 넘었다는 말입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해방절과 같은 절기입니다. 어린양은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며 어린 양의 피를 집 문의 좌우 기둥과 가름대에 발랐다는 것은 우리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이 칠해져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죄를 지은 사람은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보혈 덕분에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새롭게 시작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제 아무리 큰 실수를 저질렀어도 하나님 안에서는 새 출발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복음, 곧 복되고 기쁜 소식입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빠른 때입니다. 내가 다시 한 번 결단하고 새롭게 출발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하다가 중단한 말씀묵상, 아침 운동, 선교 헌금, 영어 공부, 중보기도 사역…. /지형은 목사(서호성결교회)
▣ 유월절 만찬과 포도나무
(요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왜 예수님은 유월절 만찬에서 이 포도나무의 비유를 하였을까? 그리고 왜 포도주를 마실까? 유월절은 기쁨과 해방의 날입니다. 그리고 포도주를 마시는 것은 해방의 기쁨을 누리고 기억하게 하는 당연한 모습니다. (전10:19) 잔치는 희락을 위하여 베푸는 것이요 포도주는 생명을 기쁘게 하는 것이나 돈은 범사에 이용되느니라 (출6: 6- 8)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기를 나는 여호와라 내가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내며 그들의 노역에서 너희를 건지며 편 팔과 여러 큰 심판들로써 너희를 속량하여 너희를 내 백성으로 삼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니 나는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낸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지라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으로 너희를 인도하고 그 땅을 너희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라 하셨다 하라
▣ 히스기야의 유월절
(역대하 30:1) 히스기야가 온 이스라엘과 유다에 사람을 보내고 또 에브라임과 므낫세에 편지를 보내어 예루살렘 여호와의 전에 와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유월절을 지키라 하니라 히스기야는 아시리아(앗수르)에 의해 북 이스라엘이 사라진 시기에 나라를 다스렸다. 그는 유월절을 통하여 신앙을 회복하였고 국가의 위기를 극복하였다.
▣ 요시야의 유월절
(역대하 35:1) 요시야가 예루살렘에서 여호와께 유월절을 지켜 첫째 달 열넷째 날에 유월절 어린 양을 잡으니라
남유다에서 마지막 부흥의 불꽃을 피운 요시야 왕은 아시리아 제국의 절정기에 왕이 된 히스기야 왕과 달리 아시리아 제국의 패망기에 유다왕으로 통치했다. 요시야는 아시리아 제국의 봉신으로 만족했던 므낫세, 아론과 같은 선왕들과는 달리 분명 믿음의 패기에서 출중한 인물이었다. 마침 아시리아 제국이 패망을 하게 된다.(기원전 612년) 요시야는 아시리아의 쇠퇴기를 이용해 북이스라엘의 가장 북쪽인 납달리 땅까지 포함하는 광범위한 유월절 행사를 계획했다.
▣ 느헤미야의 유월절
(느헤미야 2:1- 2) 아닥사스다 왕 제이십년 니산월에 왕 앞에 포도주가 있기로 내가 그 포도주를 왕에게 드렸는데 이전에는 내가 왕 앞에서 수심이 없었더니 왕이 내게 이르시되 네가 병이 없거늘 어찌하여 얼굴에 수심이 있느냐 이는 필연 네 마음에 근심이 있음이로다 하더라 그 때에 내가 크게 두려워하여
왕 앞에서 수심을 드러내는 것은 불충이었다. 그 이유는 유월절이 있는 니산월에도 고국을 방문하지 못하는 수심을 주체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 스룹바벨 성전의 유월절
(에스라 6:15) 다리오 왕 제육년 아달월 삼일에 성전 일을 끝내니라 (에스라 6: 19- 20) 사로잡혔던 자의 자손이 첫째 달 십사일에 유월절을 지키되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일제히 몸을 정결하게 하여 다 정결하매 사로잡혔던 자들의 모든 자손과 자기 형제 제사장들과 자기를 위하여 유월절 양을 잡으니
아달월은 유월절이 있는 니산월의 바로 전달이다.
▣ 베드로가 감옥에서 풀려난 때
(사도행전 12: 3- 4) 유대인들이 이 일을 기뻐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도 잡으려 할새 때는 무교절 기간이라 잡으매 옥에 가두어 군인 넷씩인 네 패에게 맡겨 지키고 유월절 후에 백성 앞에 끌어내고자 하더라
베드로가 풀려난 때는 구원의 기쁨을 누리던 유월절 때이다.
▣ 미드라쉬의 유월절
유대인의 성서 주석인 ‘미드라쉬’에는 유월절을 제시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신 공포의 밤에 후손들에게 임할 미래를 예언해 준 날도 유월절이다.(창15: 12- 14) 기드온이 미디안 진영을 침투할 때 미디안 군사가 꿈에서 본 보리떡 한 덩어리는 유월절 이후 초실절에 첫 열매로 바친 보리로 만든 것이다. 아시리아의 산헤립이 놉에 진치고 히스기야 왕을 위협할 때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나 아시라를 패퇴시킨 날도 유월절이다.(왕하19: 34- 35) 바벨론의 마지막 왕인 벨사살 때에 신비의 손가락이 나타나 바벨론의 운명을 벽에 기록한 날도 유월절이다.(단5:5)
▣ 삶은 달걀의 의미
「유월절」이라는 유대인의 큰 축제일이 있습니다. 이 날은 일찍이 유대인들이 이집트에 노예로 잡혀있다가 해방되어 이스라엘로 돌아온 것을 기념하는 경축일입니다. 이 날에는 몇 종류의 상징적인 음식을 먹는 풍습이 있습니다. 그 중의 하나는 고엽, 즉 쓴 나물을 씹음으로써 과거 이집트에 패배했던 쓰라린 기억을 되새기려 하는 것입니다. 또 이집트에 잡혀가 노예 생활을 할 때 먹었던 「무교병」이라는 거친 빵을 먹기도 합니다. 그리고 식탁에는 딱딱하게 삶은 달걀도 나오는데, 이 달걀은 매우 상징적인 것입니다. 일반 음식물은 삶으면 삶을수록 부드러워지지만, 이 달걀은 삶으면 삶을수록 단단해집니다. 유태 민족은 난관에 부딪히면 부딪힐수록, 그리고 패하면 패할수록 그 신념과 결의가 단단해집니다. 삶은 달걀은 그런 의미가 담긴 것입니다. 청소년 여러분! 우리의 삶에도 어렵고 힘든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견디기 어렵고 참기 힘든 일, 그것도 예고 없이 별안간에 닥쳐올 수도 있습니다. 이럴 땐 유대인의 식탁에 놓인 삶은 달걀을 생각하기 바랍니다. 그리고 어떤 고난과 고통이 닥쳐와도, 삶으면 삶을수록 더욱 단단해지는 달걀처럼 더욱 단련되어 시련을 이겨내는 힘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비가 온 뒤에 땅은 더욱 굳어지는 법입니다.
▣ 온전한 감사 생활
옛말에 “은혜는 물에 새기고 원수는 돌에 새긴다”는 말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에게 받은 은혜는 쉽게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태산 같은 은혜도 잊어버리고 조그마한 어려움이 생겨도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할 때가 많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향해 갈 때, 광야 생활 중에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유월절을 주신 하나님의 그 크신 은혜를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불평하였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건망증이 너무 심하다. 크리스천의 삶은 순간순간 감사가 끊어지지 않아야 한다. 발레리 엔더슨은 “감사는 결코 졸업이 없는 과정이다”라고 했다. 어떤 나병환자가 있었다. 그의 병이 점점 심해져서 코와 손가락이 하나씩 하나씩 떨어지고 썩어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실망하거나 비관하지 않고 오히려 감사하며 이렇게 신앙고백했다. “하나님 내가 나병으로 썩어져 죽는다 할지라도 죽는 순간까지 나의 성대만은 상하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이 성대를 가지고 내 생명이 다하는 순간까지 하나님의 사랑을 찬양하리이다.” 얼마나 아름다운 믿음이고, 차원 높은 감사 생활인가? 감사는 영적 생활의 윤활유이다. 본 회퍼라는 신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기독교인인가 비기독교인인가의 구별은 그 사람이 감사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살아가느냐, 아니면 그렇지 않느냐로 알 수 있다.” 비를 몰고 오는 사람 / 양은식
▣ 실패한 날
승리의 날을 기념하고 실패한 날은 잊으려 하는 것이 사람들의 마음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기쁘고 영광스런 날뿐만 아니라 패배한 날이나 굴욕스런 날을 더 기념한다고 합니다. 이는 패배를 기억함으로써 새로운 힘이 생겨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유월절을 지킬 때마다 이집트의 노예로 있을 때 먹었던 ‘맛소’라는 누룩 없는 빵을 먹으며 당시의 굴욕을 맛보고, 쓴 나물을 먹으며 그때 겪었던 패배의 쓴 맛을 자손들에게 이야기합니다. 또 삶은 계란과 ‘아라차’라고 하는 술을 마십니다. 계란은 찔수록 단단해지는 특성을 갖고 있으므로 고난과 패배는 거듭할수록 강해지지만 결국에는 승리할 것이라는 의미를 되새긴다는 것입니다. 성공은 사람을 오만하게 하지만, 실패는 사람에게 겸손한 지혜를 줍니다. 실패를 통해 얻은 체험은 인생의 위대한 자산입니다. 유대인들의 힘은 바로 이런 경험에서 나옵니다. 고난이 없이는 기적을 체험하기 어렵습니다. 고난은 은혜의 통로입니다. 실패를 통해 겸손을 배우십시오. * 기도: 주님, 실패한 날을 기억하여 승리하게 하옵소서. * 묵상: 실패와 패배도 교훈으로 삼읍시다.<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김장환 목사
▣ 떡과 포도주에 참여하는 자
나는 브로드웨이 뮤지컬과 영화로 잘 알려진 ‘지붕 위의 바이올린’(Fiddler on the Roof)에 나오는 유월절 장면을 기억한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모든 자녀를 불러 모은다. 그들은 가장 좋은 옷을 차려입고, 식탁에 필요한 것들을 제대로 갖춘다. 아이들의 얼굴은 ‘왜 우리가 이런 일을 하는 거죠?’라는 표정을 짓는다. 그들의 눈동자를 바라보는 아버지의 눈빛과 그들이 행하는 모든 것 속에 있는 대답은 ‘바로 우리가 유대인이기 때문이지’다. 그들은 러시아에 사는 유대인이며 위험에 처해 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기억하기 위해 이런 일을 한다. 그들은 세상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일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있었다. 우리도 하나님의 백성임을 결코 잊을 수 없다. 성만찬은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하신 일을 떠올리게 한다. 성만찬의 식탁에서 우리는 함께하는 삶의 가장 기초가 되는 그분의 사랑을 떠올린다. 성만찬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우리가 누구인지를 기억하는 드라마다. 예수님은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억하라”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자신이 어떻게 생명을 내어 주셨으며,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이 각자의 소명이 무엇인지 잊지 않기를 원하셨다. 우리는 떡과 포도주에 참여하는 모든 순간, 예수님의 길을 떠올리고 각자가 가야 할 길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를 기억한다. 「회심」/ 짐 월리
▣ 맛소
사람들은 보통 승리의 날을 기념한다. 실패한 날은 잊으려 노력한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기쁘고 영광스런 날뿐만 아니라 패배한 날이나 굴욕스런 날을 더 기념한다. 이는 패배를 기억함으로써 새로운 힘이 생겨난다고 믿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유월절을 지킬 때마다 이집트의 노예로 있을 때 먹었던 ‘맛소’라는 누룩 없는 빵을 기억한다. 그것을 먹으며 당시의 굴욕을 맛보고, 쓴 나물을 먹으며 그때 겪었던 패배의 쓴 맛을 자손들에게 이야기한다. 또 삶은 계란과 ‘아라차’라고 하는 술을 마시는데, 거기에는 뜻이 있다. 다른 음식은 찌면 찔수록 물러지지만 계란은 찔수록 단단해진다. 그것은 고난과 패배는 거듭할수록 강해지지만 결국에는 승리할 것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성공은 사람을 오만하게 한다. 그러나 실패는 사람에게 겸손한 지혜를 준다. 실패를 통해 얻은 체험은 인생의 위대한 자산이다. 유대인들의 힘은 바로 이런 경험에서 나온다. /설동욱 목사(예정교회)
▣ 인류를 구원하신 위대한 긍휼
학가다는 유대인의 민족 문학서 또는 민족 역사라고 할 수 있는 문서이다. 이 문서에는 유대인들의 최대 축제인 유월절에 대한 언급이 있다. 유월절은 유대인들이 이집트에 노예로 잡혀 있다가 탈출하여 유대로 귀환한 것을 기념하는 축제일로, 학가다는 유월절의 환희와 소중함을 다음과 같은 말로 시작하고 있다. “우리는 이집트에서 바로의 노예였다.” 세계 어느 민족사에서 이와 같이 굴욕적인 패배의 이야기로 시작되는 예가 있을까? 더욱이 제 스스로의 힘으로 해방한 것이 아니라 “해방되었다”라고 수동형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해방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러한 겸손한 태도, 곧 사람들의 힘의 한계를 받아들이는 태도가 유대인들로 하여금 패배 속에서도 살아남게 한 비결이었다. 세상의 모든 문명은 다른 민족에게 정복되는 즉시 사라졌지만, 유대 문명은 이러한 태도 때문에 수천 년 전에 잃어버린 땅을 오늘날에 다시 되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고귀한 태생이기를 바란다. 그러나 구원은 바로 우리 자신이 처참한 죄인의 후예임을 자각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예수님의 복음은 자신이 이미 의인이라고 생각하는 자에게는 해당되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베풀 수 있는 인간의 가장 큰 긍휼은 그가 죄인임을 깨닫게 해 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죄에서 돌이킬 때 참된 해방과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 말씀의 징검다리 / 정장복·주승중 엮음
▣ 다시 찾은 예수
마리아와 요셉이 유월절을 지키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갔다가 아들 예수를 잃어버렸다. 그들은 절기예식을 마치고 예수가 대열에 섞여 잘 따라 오겠거니 생각하고 길을 떠났다. 군중에 휩싸여 자신들의 대화에만 집중한 채 주위를 살피지도 않고 하루 길을 간 다음 겨우 예수가 없는 것을 알았다. 마리아와 요셉은 절기를 지키려고 몰려든 인파에 시달려 피곤하고, 밀린 집안 일 걱정으로 마음이 급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예수가 누구인가? 성령으로 잉태되었고 인류를 죄에서 구원할 자로 이 땅에 온 메시아가 아닌가? 사순절을 지내고 고난주간을 맞이하는 오늘의 우리는 어떤가? 형식적인 절기행사에 지치고 바쁜 일상과 무사안일한 신앙생활에서 예수를 잃어버리지는 않았는지? 예수는 언제나 우리 곁에 있지만 우린 가끔 너무 멀리서 찾으려고 한다. 올 부활절에는 예수를 다시 찾아 영생복락 축복을 누려보자. /강흥복 목사(상계광림교회)
▣ 유월절 때가 이르매 (찬송가 232장, <통> 282장)
1. 유월절 때가 이르매 주 팔리시던날 밤에 온제자 둘러모인 중 주께서 떡을 가지사 2. 천지를 다스리시는 천부께 사례하시고 몸가리키는 떡떼며 제자들에게 이르사 3. 이것은 너희 위한 몸 다함께 받아먹어라 인자의 죽음 전하며 날 기억하라 하셨네 4. 그후에 손에 잔들고 또 다시 사례하실때 주님의 얼굴 빛나며 입열어 말씀하셨네 5. 이 잔은 내피로 세운 너희를 위한 새언약 영원한 언약 그대로 큰은혜 부어주시네 6. 이 잔을 입에 댈때에 주사랑 마심 같으니 그 몸과 그 피 내속에 영원한 생명되시네 아-멘
▣ 주 십자가를 지심으로 (찬송가 265장, <통> 199장)
1. 주 십자가를 지심으로 죄인을 구속하셨으니 그 피를 보고 믿는 자는 주의 진노를 면하겠네 2. 흉악한 죄인 괴수라도 예수는 능히 구원하네 온몸을 피에 잠글 때에 주의 진노를 면하겠네 3. 심판할 때에 모든 백성 행한 일대로 보응 받네 죄있는 자는 피를 믿게 주의 진노를 면하겠네 4. 구주의 사랑 크신 은혜 보혈의 능력 의지하세 심판의 불이 내릴 때에 주의 진노를 면하겠네 [후렴] 내가 그 피를 유월절 그 양의 피를 볼때에 내가 너를 넘어 가리라
▣ 유월절에 관한 성경말씀
0 (출애굽기 12:21) 모세가 이스라엘 모든 장로를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가서 너희의 가족대로 어린 양을 택하여 유월절 양으로 잡고 0 (출애굽기 12:27) 너희는 이르기를 이는 여호와의 유월절 제사라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에게 재앙을 내리실 때에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자손의 집을 넘으사 우리의 집을 구원하셨느니라 하라 하매 백성이 머리 숙여 경배하니라 0 (레위기 23:5) 첫째 달 열나흗날 저녁은 여호와의 유월절이요 0 (민수기 9:2) 이스라엘 자손에게 유월절을 그 정한 기일에 지키게 하라
0 (민수기 9:4)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유월절을 지키라 하매 0 (민수기 9:14) 만일 타국인이 너희 중에 거류하여 여호와 앞에 유월절을 지키고자 하면 유월절 율례대로 그 규례를 따라서 행할지니 거류민에게나 본토인에게나 그 율례는 동일할 것이니라 0 (역대하 35:11) 유월절 양을 잡으니 제사장들은 그들의 손에서 피를 받아 뿌리고 또 레위 사람들은 잡은 짐승의 가죽을 벗기고 0 (에스라 6:19) 사로잡혔던 자의 자손이 첫째 달 십사일에 유월절을 지키되 0 (마태복음 26:17) 무교절의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유월절 음식 잡수실 것을 우리가 어디서 준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0 (마태복음 26:19) 제자들이 예수께서 시키신 대로 하여 유월절을 준비하였더라 0 (누가복음 2:41) 그의 부모가 해마다 유월절이 되면 예루살렘으로 가더니 0 (누가복음 22:1) 유월절이라 하는 무교절이 다가오매 0 (누가복음 22:13) 그들이 나가 그 하신 말씀대로 만나 유월절을 준비하니라 0 (누가복음 22:15) 이르시되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0 (요한복음 2:23) 유월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니 많은 사람이 그의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의 이름을 믿었으나 0 (요한복음 11:55)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우매 많은 사람이 자기를 성결하게 하기 위하여 유월절 전에 시골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더니 0 (요한복음 12:1)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니 이 곳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가 있는 곳이라 0 (요한복음 13: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0 (고린도전서 5:7)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 * 주의: 본 자료를 무단 수집, 제작 배포 출판하면 저작권법에 저촉(위배)됩니다. /한승진 선교사 주제별 예화모음(http://blog.naver.com/jesuskorea)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댓글[0]
영광, 경외, 사모
(2012-04-21 오전 8:05:28)http://blog.somang.net/holylove/7325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본문: 롬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슬기로운 종은 주인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 가를 잘 알아 분별 있게 행동합니다. 종은 주인을 기쁘시게 하고 결코 주인을 노엽게 하거나 미워하는 것을 절대로 행해서는 안 됩니다. 또 효도하는 자녀는 부모가 기뻐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순종합니다. 남편을 사랑하는 아내는 남편이 무엇을 기뻐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잘 알고 순종합니다. 부부간에 서로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모른다면 그건 문제가 있는 부부입니다. 여러분의 소원은 무엇입니까? 저의 소원은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습3:17)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한 뜻이 무엇인지 모르거나 무관심하다면 거짓된 사랑입니다. 우리는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피조물이요, 자녀된 자로서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미워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는 자는 망합니다.(호4:6) 육적인 사람은 어떻게 하면 돈을 벌까? 어떻게 하면 날씬해지고 예뻐질까? 어떻게 하면 출세할까? 어떻게 하면 즐겁고, 쾌락을 즐길까? 이런 것들만을 생각하지만 영에 속한 사람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까를 생각합니다. 우리가 영적인 일에 관심을 가져야지 육신의 일만 생각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고 하나님과 원수가 되며 결국은 사망입니다. 성경 로마서 8장 5-8절을 함께 봅시다.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롬8:5-8) 학교에서는 아무리 다녀도 하나님이 무얼 싫어하고, 무얼 기뻐하는 지 가르치지 않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언젠가는 반드시 죽는데 죽음 이후의 것은 가르치지 않습니다. 먼저 하나님이 미워하시고 싫어하시는 것부터 알아봅시다. 성경 잠언서 6장 16절부터 19절까지 봉독합시다. "여호와의 미워하시는 것 곧 그 마음에 싫어하시는 것이 육 칠 가지니 곧 교만한 눈과 거짓된 혀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손과 악한 계교를 꾀하는 마음과 빨리 악으로 달려가는 발과 거짓을 말하는 망령된 증인과 및 형제 사이를 이간하는 자니라" 이 잠언서 6장 말씀은 신체의 각 부분인 눈과 혀, 손, 발을 연결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들 신체들은 소중한 부분이지만 죄악된 도구로 시용될 때는 무서운 흉기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도 악을 행하는 지체를 잘라 버리라고 극단적인 말씀까지 하신 것입니다. 마18:8절에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내 버리라 불구자나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여호와의 미워하시는 것의 첫째는 교만한 눈입니다. 일곱 가지 죄목 중에 제일 먼저 등장하는 것이 교만인데, 이는 교만이 모든 죄의 근본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탄도 예전에는 천사였는데 하나님처럼 되겠다는 교만한 생각 때문에 쫓겨났다고 전합니다. 프랑스 베르사이유 궁전에는 1,000 개의 거울로 된 유리홀이 있습니다. 그곳에 들어가서 손을 흔들거나 내밀면 천 명의 사람들이 자신을 환영하는 것처럼 보이며, 또 살며시 웃으면 천 명의 사람들이 자신을 보고 웃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 손과 웃음은 모두 자기 자신의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교만한 사람이 이와 같습니다. 자신에게 몰두되어 있고, 자신에게 둘러 싸여 있으며, 자신에 의해 갇혀 있습니다. 교만한 사람의 눈은 오직 자신만을 향해 있으며, 그의 목은 자신을 만족시켜 줄 아첨과 찬사의 말에 목말라 있습니다. 기독교인들 중에도 교만에 빠져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특히, 하나님께로부터 많은 은사와 재능을 받았거나 귀한 직분 예를 들면 목사나 장로 같은 직분과 은사를 받은 사람일수록 더욱 그러합니다. 직분은 봉사, 섬기는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만할 것 없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은사와 직분을 받을 자격이 전혀 없는 자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은사와 직분을 가지고 교만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성가대 노래 잘 부르시는 분 유의하세요. 눈이 높은 사람은 세상의 고가품, 사치품에 관심이 있고 작은 것 값싼 것은 무시합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입니다. 성경 시편 101편 5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 이웃을 그윽히 허는 자를 내가 멸할 것이요 눈이 높고 마음이 교만한 자를 내가 용납지 아니하리로다" 또 잠언 21장 4절에 "눈이 높은 것과 마음이 교만한 것과 악인의 형통한 것은 다 죄니라" 눈으로 범죄치 마세요. 뱀이 하와를 꼬실 때도 선악과를 먹으면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같이 된다고 했습니다.(창3:5) 둘째, 거짓된 혀입니다. 사람은 말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생사가 좌우됩니다. 잠언 18:21 절에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 말은 침투력이 있어 듣는 이에게 칼로 찌름같이 고통을 주며 혹은 양약과 같은 유익을 줍니다. 잠언 12:18절 보세요. "혹은 칼로 찌름같이 함부로 말하거니와 지혜로운 자의 혀는 양약 같으니라" 10여년 전에 베네주엘라에 있는 어느 성당에서 미사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불이야"하는 고함소리가 울려 퍼지자 성당안에 모였던 6,000여 명의 신자들이 공포에 질려 일어나 밀고 밀치며 소란이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이 일로 여러 명이 죽고 수 십 명이 부상을 당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뒤늦게 밝혀진 바로는 "불이야"라는 소리는 거짓말이었다는 것입니다. 경찰 조사에 의하면 소매치기들이 작업을 벌이기 좋은 여건을 만들기 위해 저지른 술책이었다고 합니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입니다. 성경 잠12:22절에 "거짓 입술은 여호와께 미움을 받아도 진실히 행하는 자는 그의 기뻐하심을 받느니라" 하였습니다. <질문> 성경에 거짓말하다 죽은 사람이 누구라고 했지요? 아나니아와 삽비라. 그리고 아간이 있지요. 셋째는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손입니다. 왕상21:19절에 보면 아합 왕의 아내 이세벨은 나봇을 죽이고 포도원을 빼앗자, 피값으로 결국 그녀 자신도 개의 밥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판 가룟 유다는 뉘우쳐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에게 도로 갖다주며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했다고 고백하였으나 마침내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무죄한 피를 흘리게 한 자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사 반드시 그 피값이 자신에게 돌아가게 하십니다. 신명기 19장 10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에서 무죄한 피를 흘림이 없게 하라 이같이 하면 그 피가 네게로 돌아가지 아니하리라" 이 말씀 외에도 예레미야 22장 3절, 시편26:6절, 사무엘상25:31절 등에서 무죄한 피를 흘리게 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유신헌법과 중앙정보부 만들어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게 함으로 자신도 비참하게 죽고 마누라도 총탄에 죽고 자식들도 결혼 못하고 자손이 완전히 끊겼습니다. 넷째는 악한 계교를 꾀하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궤휼한 자의 계교를 파하사 그 손으로 하는 일을 이루지 못하게 하십니다.(욥5:12) 잠언4장 23- 24절을 읽겠습니다.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궤휼을 네 입에서 버리며 사곡을 네 입술에서 멀리하라" 또 잠언4장 26절을 계속하여 읽겠습니다. 네 발의 첩경을 평탄케 하며 네 모든 길을 든든히 하라 우편으로나 좌편으로나 치우치지 말고 네 발을 악에서 떠나게 하라 <질문> 이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것이 무엇입니까? 배설물이 아니고 악한 마음입니다. 악한 계교를 꾀하는 마음입니다. 다섯째, 빨리 악으로 달려가는 발입니다. 악한 자의 발은 악으로 달려가며 피를 흘리는데 빠릅니다. 잠언서 1장 16절을 또 읽어보겠습니다. "대저 그 발은 악으로 달려가며 피를 흘리는데 빠름이니라" 선을 행함에는 더디나 악을 행함에는 재빠른 타락한 인간을 말합니다. 범죄의 자리로 달려갈 수 있는 것은 발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섯째, 거짓을 말하는 망령된 증인입니다. 법정에 가보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거짓 증언을 하고 있습니까?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또 얼마나 거짓말을 많이 합니까? 특히 우리나라에는 사이비종교 교주와 그 추종자들이 얼마나 많은 거짓을 말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그들의 죄를 미워하시고 보응하십니다. 시편기자는 그래서 이렇게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내 생명을 내 대적의 뜻에 맡기지 마소서 위증자와 악을 토하는 자가 일어나 나를 치려함이니이다."(시27:12) "진리를 말하는 자는 의를 나타내어도 거짓증인은 궤휼을 말하느니라"(잠12:17) 일곱째, 형제사이를 이간하는 자입니다. 마귀는 역사할 때에 처음부터 분리를 주된 방법으로 사용합니다. 사단은 하나님과 사람 그리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단절시키기에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예를들면 어떤 사람은 목사와 성도 사이를 이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심지어 담임목사와 부목사 사이를 이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목사 사이를 비교하는 말도 하지 마십시오. 이런 일은 큰 죄입니다. 반면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되게 하시기 위해 스스로 화목재물이 되셨으며(요일2:2) 성도들에게는 화목케 하는 직책을 주셨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 18절 말씀을 보세요.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무슨 직책을 주셨다고요? 화목하는 직책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교회의 머리에 비유함으로써 그리스도와 성도가 유기체로서의 하나인 것을 강조하였습니다.(골1:18) 하나님께서는 성도가 서로 화목하고 사랑하는 것을 기뻐하시고 미워하고 다투는 것을 싫어하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마음을 지키고, 눈으로 보는 것과 입술을 조심하며, 손과 발을 바르게 사용하여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것을 피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가 과거에 하나님께서 싫어하시고 미워하시는 일을 행했던 것은 이 시간 회개하여 용서함 받아서 기쁨으로 변화된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본론) 사람은 누구나 행복해지기를 원하고 행복을 추구하는데, 행복은 어디에서 옵니까?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에게서 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에게 있습니다. 자, 그러면 이번에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봅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입니다. 종은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주인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종은 주인되신 예수를 위해 살아야 합니다. 다시한번 물어보는데 여러분은 하나님 사랑하세요? 예수님을 사랑하세요? 그 분이 기뻐하시고 좋아하시는 것 12 가지를 말씀드릴 터이니 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1. 하나님은 우리의 굳건한 믿음을 기뻐하십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을 함께 읽어봅시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히11:6) 믿음으로 에녹, 노아, 아브라함 등 믿음의 선배들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고 하나님의 큰 은혜를 입었으며 믿음을 통해 하나님을 기쁘게 하였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2. 하나님은 정직과 정직한 자의 기도를 기뻐하십니다. 대상29장 17절에 "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마음을 감찰하시고 정직을 기뻐하는 줄 내가 아나이다..." 잠언 15장 8절에 "악인의 제사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정직한 자의 기도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 하나님은 자신이 정직하신 분이시기 때문에(시25:8, 사26:7) 정직한 자를 기뻐하사, 정직한자를 위하여 완전한 지혜를 예비하시고(잠2:7) 거짓된 자를 미워하십니다.(잠12:22, 잠19:9) 얼마 전에 TV에서 방영한 내용인데 어떤 사람이 회사 경리 사원이었는데 IMF 맞아 실직하고는 여러 곳에 이력서를 들고 찾아다니다 하루는 술에 취해 길에 쓰러진 사람이 있어 일으키다가 돈봉투가 호주머니에서 떨어졌는데 탐내지 않고 집에까지 데려다 주었는데 술 취한 사람 집 앞에서 자기 이력서가 떨어진 줄도 모르고 돌아갔는데 나중에 연락이 와서 찾아갔더니 술취했던 분이 회사 사장인데 그의 정직함에 감탄하여 자기 회사 경리부서에 취직시켜 주었다는 이야기를 보았습니다. 또 다른 얘기로 미국에 {아딜로우}라는 아주 작은 마을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마을 사람들은 모두 정직합니다. 그곳에 사는 하메닝씨는 사료상과 농기구상을 경영하는데, 아침 7시에 문을 열어 정오에 문을 닫고는 목장에 나가 일을 합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목장에서 일을 하는 동안에도 마을 사람들이 자유롭게 필요한 물건을 가지고 갈 수 있도록 창고 문을 열어 놓습니다. 그리고 누가 어떤 물건을 가져갔는지, 그리고 얼마를 받아야 할지는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뒤, 문에 걸려있는 장부를 보고 검토합니다. 하메닝씨는 이런 식의 장사를 여러 해 해왔지만 결코 물건을 도난 당한 일이 없습니다. 그러한 일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그것은 {아딜로우}마을 사람들이 하나님을 진정으로 경외하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은 자신과 이웃과 하나님을 결코 속이지 못합니다. 거짓없는 사람을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엡5: 8- 10) <질문> 정직과 정직한 자의 무엇을 기뻐하신다고요? 기도
3, 하나님은 의와 공평, 공평한 추를 기뻐하십니다. 성경에 "속이는 저울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공평한 추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잠11:1)하였고, "의와 공평을 행하는 것은 제사를 드리는 것보다 여호와께서 기쁘게 여기시느니라"(잠21:3)하였습니다. 이는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부당한 방법으로 이윤을 추구하는 것을 미워하시고, 의와 공평을 기뻐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저울눈 속이는 것은 도적질하는 것이요 하나님이 미워하시고 싫어하는 것입니다. 제가 인천 연안부두에 교사들 회식자리 참석하고 부둣가에 나갔는데 조개를 파는데 통 가득히 담은 조개가 서울에서 보다 훨씬 싸게 팔아 사려고 돈을 주었더니 조개를 붓는데 통속에 칸막이가 있어 아주 적은 양을 받았습니다. 또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회 2Kg을 샀는데 집에 가져가서 저울에 달아보니 1.5Kg 밖에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에 내가 그곳에 가서 또 사겠습니까? 뇌물을 받으면 공평하게 처리할 수 없습니다.
4, 하나님은 온전한 행위를 기뻐하십니다. 성경에 "마음이 패려한 자는 여호와의 미움을 받아도 행위가 온전한 자는 그의 기뻐하심을 받느니라"(잠11:20)하였고, "대저 패역한 자는 여호와의 미워하심을 입거니와 정직한 자에게는 그의 교통하심이 있으며 악인의 집에는 여호와의 저주가 있거니와 의인의 집에는 복이 있느니라"(잠3:32-33)하였습니다. 우리는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십시오 사랑은 온전하게 매는 띠입니다.(골3:12-14)
5, 하나님은 죄인이 회개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겔18:23, 32, 눅15:7) 죄는 하나님이 가장 미워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는 하나님 앞에 저지른 모든 죄악을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하는 자에게는 죄를 용서해 주실 뿐만 아니라 영생을 주시고, 하나님과 교통하는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전도하여 악인이 회개하고 돌아오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에스겔 33:11절에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나는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그 길에서 돌이켜 떠나서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누가복음 15장 7절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이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탕자가 집으로 돌아오자 아버지가 기뻐하는 것처럼 우리가 전도해서 죄악 어두운 세상에서 돌아오게 하면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6, 하나님은 의로운 제사와 온전한 번제, 산제사(예배)를 기뻐하십니다. 성경에 보면 "그 때에 주께서 의로운 제사와 번제와 온전한 번제를 기뻐하시리니 저희가 수소로 주의 단에 드리리이다."(시51:7),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12:1)하였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교회에 나와 예배드리고 즐거운 마음으로 자원해서 헌금하고, 헌신할 때 기뻐하신다는 말씀입니다. 형식적으로 드린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아니하시고 속죄제물을 드린 아벨의 제사는 받으시었습니다. 우리도 향기로운 제사(예배)를 드립시다.
7, 하나님은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주고 사랑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렘22:16, 시112:9) 하나님은 선(善)과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형제간에 서로 사랑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잠14: 31절에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이를 멸시하는 자요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를 존경하는 자니라"하였습니다. 또 잠 19:17절에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주시리라"하였습니다. 나무꾼들이 산 속으로가 한 짐씩 나무를 해서 지게에 지고 돌아오는 길에 함정에 빠진 사람들을 발견했다. 자세히 보니 한 사람만 살았고 나머지는 다 죽은 것 같았다. 착한 나무꾼이 동료들에게 "보고만 있지 말고 구하자"고 했으나 동료들은 "우리도 힘들고 바쁜데..."하며 현장에서 떠났다. 착한 나무꾼은 목숨을 걸고 살아있는 한 사람을 구했는데 알고 보니 그 나라의 왕자였다. 왕자가 신하들과 사냥을 나왔다가 함정에 빠졌던 것이다. 왕이 이 "착한 나무꾼"에게 "크게 상"을 내릴 때 동료들은 또 보고만 있어야했습니다. 나눠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복을 받습니다.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주기를 잊지 말라 이 같은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느니라"(히13:16) 예물 드리기 전에 형제와 먼저 화목하라(마5:24)하셨고, 하나님 사랑한다면서 보이는 형제를 미워하면 그 믿음은 거짓이라(요일4:20)고 하였습니다.
8, 온전히 헌신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14:8) 군사는 자기 생황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군사입니다.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병사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딤후2:4)
9,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을 기뻐하십니다.(잠8:13, 잠9:10, 잠14:2)) ‘여호와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과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들을 기뻐하시는도다’(시147: 11)
10, 찬송과 감사를 기뻐하십니다. 성경 시편69:30-31절 말씀을 봉독하겠습니다. "내가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광대하시다 하리니 이것이 소 곧 뿔과 굽이 있는 황소를 드림보다 여호와를 더욱 기쁘시게 함이 될 것이라" 이는 하나님은 우리의 마지못해 헌금드리는 것보다 진실에서 우러나오는 찬양을 더 기뻐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신실하지 못한 부자가 수천만 원 헌금하는 것보다 우리 교회 성가대 대원의 찬송소리를 하나님이 더 기뻐하신다는 말씀입니다. 또 이사야 43장 21절에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하였습니다. 시편 150장 6절 말씀에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 지어다 등의 찬양하라는 단어가 성경에 250번 이상이나 기록되어 있습니다. 찬양은 곡조 있는 기도이며, 하나님을 향한 신앙고백입니다. 우리 입술은 찬양을 하도록 지음을 받았습니다. 찬양을 하면 기적이 일어나고 귀신이 떠나갑니다. 사도행전 16장에 보면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감옥에서 밤중에 찬송을 하자 지진이 나서 옥문이 열리고 메인데서 풀려나고 악신이 사울에게 이를 때 다윗이 수금으로 찬양하자 악신이 떠났습니다.(삼상16:23) 마귀와 귀신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 찬송소리입니다. 마귀가 두려워하는 것은 돈있는 자가 아니고, 권세자도 아닙니다. 누구를 두려워할까요? 성도의 기도와 찬송입니다.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즐거워하라 찬송은 정직한 자의 마땅히 할 바로다.(시33:1) 우리는 시편기자처럼 다음과 같은 고백을 합시다. 시편 146편 2절 함께 봉독합시다. "나의 생전에 여호와를 찬양하며 나의 평생에 내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 즉 사람이 제일되는 목적은 무엇인가? 이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입니다.(고전10:31, 전12:13)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더욱 기쁘시게 하는 것은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뜻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마22:36-40, 고전13:13, 삼상15:22, 히5:8-9)
11, 하나님은 우리가 전도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단12:3, 잠24:11, 막16:15, 행 5:42, 롬10: 14, 15, 고전9:16, 딤후4:2) 하나님은 우리가 많은 죽어가는 영혼을 인도하고 복음 전파하는 것을 원하시고 명령하십니다. ‘그러면 무엇이뇨 외모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내가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빌1:18)
12,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요3:36, 롬5:19, 히5: 8-9, 고후10: 5, 6)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삼상15:22) 끝으로 마귀가 좋아하는 것과 하나님이 좋아하는 것을 잘 요약한 말씀이 갈라디아서 5장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육체의 일은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입니다.(갈5:19-21) 즉 마귀의 열매는 우상숭배, 이단, 술취함, 거짓, 탐욕, 음행, 분쟁, 시기, 원수 맺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는 반드시 성령의 열매를 맺습니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갈5:22-23)입니다. 아무쪼록 성도 여러분들은 먹든지 마시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고전10:31) 살고,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어(고후5:9), 축복받고 많은 성령의 열매를 맺는 성공적인 삶을 사시기를 기원하는 바입니다.
* 기도: 찬양가운데 거하시는 주님, 우리가 이 시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깨달았습니다. 이제 우리의 남은 삶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도록 늘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저희가 어떤 삶의 자리에 있든지 주님을 항상 찬양하며 감사하는 삶을 살도록 지켜주시옵소서. 우리 교회가 날로 날로 부흥발전하게 하여주시고 우리 성도들이 어려운 가운데서도 늘 찬송할 수 있는 믿음을 주시옵소서,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고 그들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빛의 사자 한태완
승리 댓글[0]
성공, 승리
(2012-03-31 오전 7:15:26)http://blog.somang.net/holylove/7313
승리
세월이 흐르고 우리도 변해간다. 생각도 느낌도 삶의 자세도 바뀐다. 그 변하는 생각 중 하나는 이기고 지는 것에 대한 것도 있다. 혈기와 분노, 경쟁심과 성취욕망이 가득했을 때 뒤쳐짐과 경쟁에서 밀려남을 견디기 어려웠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고 생각이 달라지면서 이기고 지는 것의 부질없음을 날마다 느낀다. 한때 기어이 이기고자 했던 일들이, 이겨서 격하게 흥분했던 일들이 돌아보니 부끄러울 뿐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앞에 서셨다. 아버지께 기도하시면서 주님은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옵소서’라고 간구하셨다. 주님은 십자가 위의 자신을 부끄러운 패배로 보시지 않으셨다. 가장 자랑스럽고 가장 영광스런 순간으로 여기셨다. 물러서고 양보하고 내려앉고 포기하는 법을 배우지 못해 우리는 기어이 이기려고만 한다. 그래서 이기고 으스대고 기고만장해한다. 그런데 영광스럽지가 않다. 자꾸만 부끄럽고 후회스럽고 공허하기 이를 데 없다. 십자가를 영광으로 여기신 주님이 더욱 그립다. 그 위대함이 그립다. /손달익 목사(서울 서문교회)
하나님께 백기 들고 돌아가다 댓글[0]
회개, 거듭남
(2012-03-30 오후 8:20:38)http://blog.somang.net/holylove/7312
하나님께 백기 들고 돌아가다
내가 풍요와 안정을 포기하기 싫어서 하나님과 줄다리기를 하는 동안, 내 남편은 점점 하나님 편이 되어 가는 것 같았다. 이제는 남편이 선교 훈련을 받겠다고 한다. 남편은 내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번 일은 내가 아무리 소리를 지르고 반대를 해도 남편이 꿈쩍하지 않았다. 그날 이후 나는 남편에게 일부러 아침밥을 해 주지 않았다. 어느 주일, 혼자 바람이나 쐬러 가려고 주차장에서 후진해서 나오다가 지나가는 버스와 충돌하고 말았다. 그 순간, 죽는구나 싶었다. 차가 한 바퀴 빙 돌다가 간신히 멈춰 큰 사고는 면했다. 혹시 내가 불순종한다고 하나님이 경고하시는 걸까? 이런 생각이 들다가도, 남편이 내 마음을 긁어 놓으니 사고가 난 것이라며 남편 탓을 했다. 그러나 남편은 아무 요동이 없었다. 어느 저녁, 남편은 여전한 모습으로 청소기를 돌리고 있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그가 들고 있는 청소기를 빼앗아 집어 던졌다. "나 선교하러 안 가. 안 갈 거야! 흑흑…."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죄악 된 나 자신을 바라보게 하셨다.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욜 2:13). 나는 모든 문제가 내게 있음을 깨닫고 회개하기 시작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죄인임을 고백하는 일뿐이었다.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욕심으로 가득한 내 마음의 결박이 풀어졌다. 하나님은 추악한 나를 발견하게 하시고 마음을 찍제 하시더니, 마침내 기쁜 마음으로 선교지를 향해 나아가게 하셨다. /최수현
소용없는 재능 댓글[0]
사명, 은사, 직분
(2012-03-27 오후 5:31:57)http://blog.somang.net/holylove/7310
소용없는 재능
본문 : 눅 12: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큰 바위 얼굴’, ‘주홍글씨’, ‘낡은 저택의 이끼’ 등을 쓴 나다니엘 호손은 18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작가입니다. 그는 대학시절부터 소설을 쓰며 작가로 데뷔했지만 문학적 재능을 인정받기 시작한 것은 30세 이후였고, 경제적인 여유를 얻게 된 것은 훨씬 나중이었습니다. 그러나 말년에는 미국에서 큰 인기를 끈 유명작가가 되었고, 따라서 그가 대학생 시절 때 쓴 작품들도 큰 가치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심지어는 호손이 죽은 뒤에도 출간되지 않은 그의 원고들이 발견되었습니다. 이것은 분명 문학적으로 큰 발견이었지만, 유감스럽게도 여전히 대부분 출간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호손이 글을 쓰던 시절에는 아직 타자기란 것이 없어서 모두 손으로 글을 썼는데 그는 지독한 악필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눈이 좋고 글씨를 잘 판독하는 전문가가 와도 호손의 원고가 무슨 내용인지 알아낼 수가 없어 결국 출간을 포기하게 된 것입니다. 아무리 작품이 좋아도, 글씨를 모르면 읽을 수가 없습니다. 또 읽지 못하는 작품은 의미가 없습니다. 이처럼 아무리 성공을 해도, 예수님을 알지 못하면 마찬가지로 의미가 없는 인생입니다. 또한 구원을 받았다고 고백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도 역시 그렇습니다. 주님이 주신 것들을 주님을 위해 사용하십시오. * 기도: 주님! 주님과 함께 할 때에만 모든 것이 의미 있는 일임을 알게 하소서! * 묵상: 일과 생활이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위한 헌신이 되게 하십시오. /김장환 목사, 제공 : 나침반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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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 약속
(2012-03-26 오전 10:16:14)http://blog.somang.net/holylove/7309
하나님 앞에 먼저 해야 할 일
• 성경 출애굽기 4:10~4:31 • 찬송 458장 (통 513장)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택하시고 세우셔서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 가시는 것을 성경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브라함, 요셉, 모세, 엘리야, 이사야, 바울 같은 인물들이 그들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모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습니다. 호렙산의 불 붙은 떨기나무 가운데 나타나셔서 부르시는 하나님 앞에 모세는 단번에 순종하지 않습니다(출 3: 11, 4: 1).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을 잘 아는 모세는 끝내 확신도 없이 사명을 수행하기 위하여 애굽으로 떠납니다. 그러나 그 여정 중에 엄청난 재난이 모세에게 덮칩니다. “모세가 길을 가다가 숙소에 있을 때에 여호와께서 그를 만나사 그를 죽이려 하신지라(24절).” 여호와 하나님께서 친히 택하셔서 세우신 자신의 종을 죽이려 하시는 것입니다. 이 위급상황에서 그 이유를 알아차린 십보라는 즉시 아들에게 할례를 행하였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데는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것이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는 데에 감히 범할 수 없는 원칙, 즉 하나님의 언약과 말씀에 대한 절대적인 순종인 것입니다. 오늘 말씀의 문맥을 보면 모세의 두 아들 중 할례받지 아니한 아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는 매우 중대한 일이었습니다. 할례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축복하시면서 하나님의 백성 된 증표로서 그의 후손들이 반드시 행할 것을 명하시면서 세운 언약이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언약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한 죄를 범한 것입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어느 누구에게도 면죄특권을 주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먼저 해야 할 일과 나중 해야 할 일을 혼동해서는 안 됩니다. 결코 편의상 우선순위를 바꾸어서도 안 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려는 사람은 마땅히 순종해야 할 말씀이나 규례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소명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철저히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그분의 뜻에 어긋남이 없이 살고 있는지를 늘 점검해야 합니다. 오늘도 하나님 앞에서 전후를 잘 선택하는 지혜의 날이 되길 바랍니다. • 기도 하나님, 우리가 당신의 일을 할 때에 말과 행동이 잘못된 것이 없는지 먼저 돌아보게 하사, 하나님 앞에 이웃 앞에 결코 부끄러움이 없기를 원하나이다. 아멘.
실천의 믿음 댓글[0]
실천, 행함
(2012-03-26 오전 6:50:02)http://blog.somang.net/holylove/7307
실천의 믿음
본문 : 시 15:2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실천하며 그의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모태신앙으로 시작해 믿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평생을 신앙생활을 게을리 하지 않았고 대통령 선거 유세를 하면서도 주일은 꼭 교회를 찾아가 예배를 드렸습니다. 주일날 자신을 취재하러 온 기자들에게는 “다음 주에는 나를 취재하러 오지 말고 꼭 각자의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십시오.”라고 권유했습니다. 카터 전 대통령은 현직에 있을 때부터 퇴임 이후까지 특히나 인권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가졌는데, 이것은 세상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는 그의 신앙관에서부터 나온 것입니다. 카터는 현직 시절에도 중동의 평화와 세계의 인권을 위해 많은 일을 했지만, 경제를 발전시키지 못하고, 해외에서 터진 각종 테러들로 인해 실패한 대통령이라는 낙인이 찍혔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런 평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퇴임 이후에도 세계를 돌아다니며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활동을 펼쳤습니다. 어디든지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아무 조건 없이 찾아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습니다. 그 모범적인 모습과 헌신에 미국인들은 다시 열렬한 지지를 보냈고, 세계도 그 공로를 인정해 2002년도 노벨 평화상을 수여했습니다. 카터 전 대통령은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도 아니고,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서도 아니며 ‘오직 세계를 섬기라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이제 카터 전 대통령을 대통령이 아닌 ‘행동하는 신앙인’이라고 부릅니다. 모든 의심과 비방을 불식시킬 수 있는 것은 실천하는 믿음뿐입니다. 말씀을 실천함으로 진리를 세상에 알리십시오. * 기도: 주님! 어려움 속에서도 꿋꿋이 실천하는 신앙인이 되게 하소서! * 묵상: 성경이 진리임을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십시오. /김장환 목사, 제공 : 나침반출판사
받은 것의 가치 댓글[0]
진리, 가치
(2012-03-25 오후 8:58:08)http://blog.somang.net/holylove/7306
받은 것의 가치
본문 : 고전 12:23 ‘우리가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 주며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느니라’
19세기 미국 남부의 로이 맥클레인이라는 유명한 변호사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그 변호사가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가는 데 어떤 거지가 구걸을 했습니다. 변호사는 구걸하는 거지의 나이가 어린 것을 보고 어째서 구걸을 하고 있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날 때부터 버림을 받아서 구걸 말고는 할 줄 아는 것이 없습니다.” 거지의 사정이 딱하게 느껴진 변호사는 자신의 수표책을 꺼내 100만원 정도의 금액을 적은 후 서명을 한 뒤 건네주었습니다. “이 수표를 은행에 가서 바꾸게. 자네가 새 출발을 하는 데에는 충분한 돈이네.” 다음날 거지는 수표를 들고 은행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창문을 통해 비친 말끔한 은행원의 모습이 거지를 주눅 들게 만들었습니다. ‘나 같은 거지가 이런 수표를 들고 온다면 의심하지 않을까?’, ‘경찰을 불러 날 조사할지도 몰라...’, ‘수표를 위조했냐고 물으면 어쩌지?’ 수많은 생각에 망설이던 거지는 결국 환전하지 못하고 변호사를 다시 찾아가 은행은 자신의 수표를 받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변호사는 웃으며 말했습니다. “은행원은 그 수표에 적힌 나의 서명을 보지 자네의 옷차림을 보지 않는다네. 어서 가서 현금으로 바꾸게나.” 주님 앞에 나오기 위해 준비해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주님을 바라는 진실한 마음만 있으면 됩니다. 구원을 위해, 사역을 위해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께 나오십시오. * 기도: 주님! 우리의 연약함까지도 주님께 모두 맡기게 하소서! * 묵상: 우리의 부족함을 고백함으로 주님의 역사하심을 구하십시오. /김장환 목사, 제공 : 나침반출판사
형제를 판단하지 않으려면댓글[0]
비판, 판단, 누명
(2012-03-24 오후 7:58:51)http://blog.somang.net/holylove/7305
형제를 판단하지 않으려면
본문: 로마서 14: 5- 12
좋은 교회는 찾아 다녀야 할 무엇이 아니라 우리가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좋은 교회를 만들려면 형제끼리 한 마음이 되어 서로 사랑하고 서로 섬겨야 합니다. 진리냐 비진리냐에 관한 본질적인 문제가 아닌 이상 우리는 서로 포용해야 합니다. 견해가 다르다는 것으로 갈등을 해서는 안됩니다. 이미 14:1-4 절을 가지고 이 점에 대해 배운 바 있습니다. 우리가 함부로 형제를 판단하지 않으려면 꼭 알아야 할 중요한 원칙이 있습니다. 5절을 살펴봅시다. 로마교회 안에서는 유대교를 지키는 안식일 같은 날이나 유월절 같은 절기를 놓고 믿음이 강한 자들은 지킬 필요가 없다고, 믿음이 약한 자들은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서로를 비판하고 무시했습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어느 한 쪽도 두둔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믿음의 정도에 따라 각각 다르게 볼 수 있는 문제이므로 각각 자기마음에 확정할찌니라 고 합니다. 이 말은 소신대로 결정하라, 혹은 양심의 가책 없이 대처하라는 의미입니다. 자기의 신앙양심과 성경지식에 비추어 확신이 서는 대로 하는 것이 좋다는 말입니다. 날이나 절기 음식에 대해서는 그것들이 예수가 오시기 전까진 허용된 그림자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골2:16-17). 예수님은 그림자에 해당하는 것들을 폐기시키셨습니다. 자신이 안식일의 주인이요 유월절의 어린양이요 거룩한 하늘의 떡이요 양식이기 때문입니다(골 2:14-15).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날을 지키고 음식을 가려 먹어야 양심이 편안하고 은혜가 되겠다고 우기는 자들은 그대로 하게 두라는 말입니다. 그들이 비록 믿음이 약해서 그렇게 할지라도 포용하고 비판하지 말라고 합니다. 현대인들에게 있어서도 갈등의 소지는 많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주일 오후에는 어떻게 보낼 것인가? 주일날 업무상 여행을 해도 좋은가? 주일날 운동 경기장 참관은? 주일날 TV를 볼 것인가 안 볼 것인가? TV프로나 비디오 테이프를 어떤 기준에 의해 선택할 것인가? 주일날 자녀에게 공부를 허용할 것인가? 주일날 물건을 사고 파는 일은? 사회적인 활동에서 술은 어느 정도 허용할 것인가? 현대음악 가운데도 들어도 될 것은 무엇인가? 피임은? 불신남자 혹은 여자와의 결혼은? 이런 의문들에 대해 성경말씀은 된다’ 안 된다 고 명확하게 대답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각각 자기 마음에 확정해야 합니다. 교회의 지도를 따르고 성경을 배우면서 각자의 신앙적 소신대로 결정을 내리고 실천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지혜로우신 하나님은 우리가 아무리 신앙양심으로 내리는 결정이라 할지라도 각자의 소신대로 하게 내려두면 크게 잘못될 수 있다는 것을 아시고 두 가지 조건을 그 원칙에 달아 주셨습니다. 첫째는 동기와 목적이 순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6- 8절에 주를 위하여 라는 어구가 5번이 반복되고 있음을 주의하십시오. 주를 위하여 는 주께 대하여 주를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이것은 무슨 결정을 하든지 견해나 행동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동기나 목적에 있어서는 다 같다는 것입니다. 7-8 절에서 바울은 대단히 엄숙한 선언을 하고 있습니다. 주를 위하여 에는 하나요 둘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를 9절에서 간단히 설명하고 있는데 우리 모두가 무엇을 하든지 주를 위하여 하는 자가 되었다는 것은 나를 위하여가 끝장났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7-8절은 우리 모두의 양심 선언문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선언문에 가책받지 않을 수 있는 신앙적인 동기와 목적을 가지고 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나 순수하고 아름다운 것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주일성수의 대원리는 역시 ‘주를 위하여’ 입니다. ‘나를 위하여’ 가 아닙니다. 주일날 예배 후에는 교회 주변상가에서 쇼핑이 대 유행이라고 합니다. 어느 음식점 주인은 예수를 믿고 싶어도 사랑의 교회 손님 받는 일이 너무 바빠서 믿을 수 없다’ 고 말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나는 이것은 할 수 있고 저것은 안 된다는 식으로 선을 그을 생각은 없습니다. 그러나 주를 위하여 라는 도전을 드립니다. 둘째는 반드시 ‘주를 위하여 한 것인지 안 할 것인지에 대해 그 책임을 져야 합니다(10-12).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우린 각인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 얼마나 두려운 말씀입니까? 간혹 보면 사람끼리는 과연 주를 위하여 하는 일인지 구별하기가 어려운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심판대 앞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심판대는 다른 형제 일을 가지고 나가는 자리가 아니고 나의 일을 가지고 나가는 자리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일을 심문하시지 다른 형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서로를 비판하지 않으려면 성경에서 직접으로 답을 얻을 수 없는 모호한 문제에 관한한 각자가 신앙적 결정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십시오. 그러나 우리 모두 그 동기와 목적이 항상 ‘주를 위하여에 있다는 것을 서로 신뢰하십시오. 잘하고 못하고는 심판대에서 주님이 판단하실 일이지 내가 할 일이 아님을 명심하십시오. 그리고 우리가 아무리 작은 문제라도 어떻게 해야 좋은가를 생각할 때에는 주를 위하여를 앞세우십시오. 그가 기뻐하실 것이라는 확신이 서는 일이면 힘들어도 하십시오. 많은 사람이 하지 않는 일이라도 하십시오. 그가 기뻐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확신이 서면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아무리 하고 싶은 일이라도 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나의 결정이 잘한 것인지는 심판대 앞에서 드러날 것이라는 사실을 믿으십시오. 그러면 주일성수라든지 술, 담배 같은 애매한 문제들을 자연스럽게 풀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옥한흠 목사
하나님 아버지, 연약하고 깨어지기 쉬운 질그릇과 같은 저희들을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형제의 모습을 보며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제 자신부터 돌아보아 무슨일이지 주를 위하여 행할수 있는 행위와 결단을 주시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