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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추가 자료편(노인, 늙은이) 댓글[0]
노인, 허무, 고독 (2012-06-13 오후 3:32:37) http://blog.somang.net/holylove/7381

주제별 추가 자료편(노인, 늙은이)

 

젊음의 유지 방법

 

본문 : 딤후 4: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70세에도 광장에 나가 사람들과 토론을 멈추지 않았고 새로운 악기를 배우기 시작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미켈란젤로는 죽을 때까지 창작 활동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는 89세에도 앞으로 자신이 어떤 인생을 살 것인지를 계획했고, 90세가 넘어서도 교황청의 천정을 조각했습니다.

피카소는 90세가 넘어서까지 그림을 그리고 조각을 했습니다. 그가 남긴 모든 작품을 합치면 25만 점이 넘고, 아직까지도 그 작품들을 분류하는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모세가 호렙산에서 하나님을 만났을 때의 나이는 80세입니다. 모세는 그후로 120세가 되기까지 많은 일을 감당했으나, 눈의 빛을 잃지 않고 몸이 쇠약해지지 않았습니다. 모세는 자신의 나이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나이를 문제 삼지 않은 것입니다. 오로지 사명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중요합니다. 환경과 나이같은 세상의 잣대들로 자신이나 사람을 평가하지 마십시오. 자신의 상황을 생각하지 말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찾아서 행하십시오.

* 기도: 주님! 사명을 제한하는 모든 굴레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 묵상: 나이에 맞는 일이 있다는 편견을 버리십시오.

/김장환 목사, 제공 : 나침반출판사

 

실버인생 생활수칙 33가지

 

1. 누워있지 말고 끊임없이 움직이면 살고 누우면 죽는다.

2. 하루에 하나씩 즐거운 일을 만들어라. 하루가 즐거우면 평생이 즐겁다.

3. 마음에 들지 않아도 웃으며 받아들여라. 이 세상 모두가 내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4. 자식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마라. 아무리 효자도 간섭하면 싫어한다.

5. 젊은이들과 어울려라. 젊은 기분이 유입되면 활력이 생겨난다.

6. 한번 한소리는 두 번 이상 하지마라. 말이 많으면 따돌림을 받는다.

7. 모여서 남을 흉보지 마라. 나이 값하는 어른만이 존경을 받는다.

8. 지혜롭게 처신하라. 섣불리 행동하면 노망으로 오해받는다.

9. 성질을 느긋하게 가져라. 조급한 사람이 언제나 먼저 간다.

10. 매일 목욕으로 몸을 깨끗이 하라. 그래야만 사람이 피하지 않는다.

11. 돈이 재산이 아니라 사람이 재산이다. 돈 때문에 재산을 잃지 마라.

12. 술 담배를 줄여라. 내 나라 내가 지키듯 내 생명 내가 지킨다.

13. 좋은 책(성경)을 읽고 또 읽어라. 마음이 풍요해지고 치매가 예방된다.

14. 대우 받으려고 하지마라. 어제 다르고 오늘이 다르다.

15. 먼저 모범을 보여라. 그래야 젊은이들이 본을 받는다.

16. 경로석에 앉지 마라. 서서 움직이면 그곳이 헬스클럽이다.

17. 주는데 인색하지 마라. 되로 주면 말로 돌아온다.

18. 하루에 10분씩 웃어라. 수명이 연장되고 인자한 어른으로 기억된다.

19. 걱정은 단명의 주범이다. 걱정할 가치가 있는 일만 걱정하라.

20. 남의 잘못을 보며 괴로워 말고 잘하는 점만을 보며 기뻐하라.

21. 급할 때만 하나님 예수님 하지마라. 미리부터 그 분들과 가까이하라.

22. 병을 두려워 마라. 일병장수(一病長壽) 무병단명(無病短命)이라는 말도 있다.

23. 세상을 비관적으로 보지마라.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밝은 눈으로 바라보라.

24. 아파트 관리비만 신경 쓰지 마라. 자기 관리비도 신경을 써라.

25. 좋건 나쁘건 지난날은 무효다. 소용없는 일에 집착하지 마라.

26. 누가 욕한다고 속상해하지 마라. 죽은 사람은 욕먹지 않는다.

27. 고마웠던 기억만을 간직하라. 괴로웠던 기억은 깨끗이 지워버려라.

28. 즐거운 마음으로 잠을 자라. 잠속에서 축복이 열매를 맺는다.

29. 지혜로운 사람과 어울려라. 바보와 어울리면 어느새 바보가 된다.

30. 그날에 있었던 좋은 일만 기록하라. 그것이 행복 노트다.

31. 작은 것도 크게 기뻐하라. 기쁠 일이 늘어난다.

32. 유서를 작성하고 다녀라. 그것은 자신의 고백서요 삶의 계산서다.

33. 내가 가지고 떠날 것은 없다. 무엇을 남기고 갈 것인가를 생각하라.

 

노년의 건강관리

 

1. 과식을 삼가야 한다

2. 짠 음식을 많이 먹으면 안 된다

3. 노인은 충분한 수면을 취해야 한다

4. 노인이라고 채식만 하면 안 된다

5. 노인에게 슬픈 소식을 알리면 안 된다

6. 노인은 푹신한 의자에 앉으면 안 된다

7. 갑자기 고개를 돌리면 안 된다

8. 먹으면서 이야기하면 안 된다

9. 해바라기씨를 많이 먹으면 안 된다

10. 너무 자주 씻으면 안 된다

11. 똑바로 누우면 안 된다

12. 과다한 당분의 섭취를 삼가야 한다

13. 고단백 음식을 삼가야 한다

14. 식사 직후에 TV를 보면 안 된다

15. 항생제를 남용하면 안 된다

16. 바둑에 몰입하면 안 된다

17. 이가 빠지면 의치를 꼭 끼워 넣어야 한다

18. 격렬한 시합이나 아슬아슬한 장면 보지 말라

19. 과거에 너무 젖어 있으면 안 된다

20. 노인은 식사 직후에 걸으면 안 된다

21. 식후의 낮잠을 삼가야 한다

22. 크게 화를 내면 안 된다

23. 치료를 마음대로 중단하면 안 된다

24. 뚱뚱한 노인은 달리기 운동을 하면 안 된다

25. 세 끼 식사를 꼭 한다.

26. 손을 자주 씻는다.

27. 하루 한 알 종합 비타민을 먹는다.

28. 모든 일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많이 웃어라

29. 스트레스를 다스린다.

30. 매일 5가지 이상 채소, 과일을 먹는다.

31. 일 년에 한 번 건강검진을 받는다.

32. 체중을 자주 달아 본다.

33. 이 닦기를 자주하고, 7시간 이상 푹 잔다.

 

* 빛의 사자/한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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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6장 주 예수여 은혜를 댓글[0]
찬송, 음악 (2012-06-12 오전 11:32:21) http://blog.somang.net/holylove/7378

486장 주 예수여 은혜를

 

1. 주 예수여 은혜를 내려주사

곧 충만케 하옵소서

이 주리고 목마른 나의 맘에

주 성령을 부으소서

2. 주 예수여 죄에서 풀어주사

날 정결케 하옵소서

이 세상의 유혹이 나의 맘에

틈 못타게 하옵소서

3. 옛 야곱이 천사와 씨름하던

그 믿음을 주옵소서

이 세상의 물결이 흉흉해도

날 평안케 하옵소서

4. 주 예수여 완전한 주의 사랑

나 받기를 원합니다

그 사랑이 내 맘에 충만하여

날 기쁘게 하옵소서

5. 내 마음에 임하신 주의 성령

늘 계실 줄 믿습니다

큰 은사를 나에게 부어 주사

주 섬기게 하옵소서

<후렴>

주 예수여 충만한 은혜 내 영혼에 부으소서

주 예수만 나의 힘 되고 내 만족함 됩니다

/빛의 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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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 대접 댓글[0]
위로, 친절 (2012-06-12 오전 9:05:54) http://blog.somang.net/holylove/7377
친절, 대접


 

▣ 친절은 가장 큰 무기이다.


 

 어느 내무반에 한 믿음 좋은 병사가 있었는데 그 병사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로 늘 놀림을 당했습니다. 어느 날 저녁 한 상사가 병사의 오른 뺨을 군화로 힘껏 후려치고는 너희 기독교에서는 오른 뺨을 때리면 왼쪽 뺨도 내민다면서라고 조롱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다음날 아침, 상사는 자신의 군화가 반들반들하게 닦여져 있는 걸 보았습니다. 상사는 누가 그랬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의 주변에도 우리를 괴롭히는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럴 때 쓸데없는 감정 소비를 하기보다는 친절을 베푸십시요. 친절 이상으로 힘있는 무기는 없습니다.


 

▣ 친절의 힘


 

싱가포르가 주변 국가들에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 왜? 주변의 어려움을 이용해 이익을 챙겼기 때문이다. 분노한 주변국들은 교류를 끊으려고 한다. 싱가포르는 경주 최부자의 교훈을 들었어야 한다. 경주 최부자는 300년 동안 부를 이어온 가문이다. 그 가훈 중에 하나가 ‘흉년 때 남의 땅을 사지 않는다’는 것이다. 남의 불행을 이용해서 치부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남의 아픔을 이용하지 않고 품어주는 것이 친절한 인격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 가면 신문왕 허스트가 지은 거대한 저택 허스트 캐슬이 있다. 1919년부터 20년이나 걸려 지은 집으로 방만 160개가 넘는다. 이런 집을 섬기는 데 사용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3대도 잇지 못하고 지금은 20달러 받고 구경시켜주는 관광지가 되었다. 친절을 베풀지 않는 부는 썩는다. 건강한 인격은 친절하다. 비굴하거나 무례한 극단의 행동을 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너무 비굴하다. 성도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존재이다. 너무 비굴한 것은 옳지 않다. 반대로 어떤 사람은 너무 무례하다. 일종의 허세를 부리는 것이다. 건강한 인격은 비굴도, 무례도 아닌 친절한 모습을 보인다. 우리는 상대방을 숭배(Worship)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존경(Respect)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옳은 일이다. 정당하게 상대의 문화에 대해서 존경해주면 상대도 우리를 존중해준다. 이것이 친절의 힘이다. 어떤 여대생이 친구 소개로 남자를 만났다. 별로 마음에 드는 남자가 아니었다. 그런데 이 남자는 여대생이 마음에 들었다. 초콜릿도 주고 의자도 빼주는 친절을 베풀었다. 그러나 여대생은 그런 남자의 행동이 느끼하기만 했다. 어느 날 6층 도서관에서 책을 보다가 쉬려고 밖에 나왔다. 부슬부슬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런 날은 커피가 생각난다. 그런데 6층의 커피판매기가 고장이 나 있었다. 좀 후진 학교였는지 커피판매기가 1층과 6층에만 있었다. 1층까지 내려가기 귀찮아서 여대생은 다시 들어가려고 했다. 그때 그 남자가 쏜살같이 1층으로 뛰어내려가 커피 두 잔을 들고 올라왔다. 하도 빨리 뛴 탓으로 커피가 쏟아져 손목에 흘러내리고 있었다. 화상을 입은 듯한 손으로 커피를 건네며 이렇게 말했다. “네게 뜨거운 커피를 주려고 뛰다가 많이 흘렸어. 그럴 줄 알고 두 잔을 뽑았지. 두 잔을 합치면 한 잔이 될 거야.” 그 말을 듣는 순간 여대생은 두 가지를 할 수 없었다. 더 이상 그 남자를 미워할 수 없었고 두 잔을 합쳐 한 잔으로 만들 수 없었다. 반 잔의 커피를 나눠 마시다가 교제가 깊어지고 나중에 결혼까지 생각하게 되었다. 친절은 얼어붙은 마음도 녹이는 힘이 있다.

/전병욱 목사(삼일교회)


 

▣ 친절은 자본이다.


 

미국 L.A 근교의 한 식당은 언제나 손님들로 북적댔다. 음식맛이 특별하거나 값이 싼 것도 아니었다. 이 음식점의 최대무기는 친절이었다. 식당 입구에는 "손님은 왕"이라는 글이 적혀있다. 또 남자화장실에는 왕(king), 여자화장실에는 여왕(queen)이라는 팻말이 붙어있다. 손님들은 자신을 위해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는 식당측의 친절에 감동해 단골 고객이 된다. 친절은 돈으로 바꿀 수 없는 자본이다. 그러나 이 자본을 활용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 작은 친절


 

필리핀의 한 법학도가 미국으로 유학을 갔습니다. 그는 독실한 카톨릭 신자였습니다. 미국에서 맞은 첫 주일, 그의 룸 메이트가 자기가 나가는 감리 교회에 나가자고 했습니다. 비가 오는 주일 그는 친구를 따라 교회에 나가 예배를 드렸습니다. 예배가 끝나자 목사님은 필리핀에서 온 유학생을 소개 하고 따뜻하게 환영 했습니다. 교인들은 그에게 점심을 대접하고 관광을 시키는 등 자기 자식처럼 영접했습니다. 저녁에는 성경 공부하는 곳으로 그를 데려 갔습니다. 독실한 카톨릭 신자인 그는 카톨릭 교회에서는 볼 수 없는 친교와 사랑과 뜨거운 교제를 체험하고 나서 매 주일 감리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그는 4년 동안의 법학 공부를 마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법학을 가지고 고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들고 돌아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다시 신학을 공부했습니다. 그 후 그는 목사가 되어 필리핀으로 돌아 갔습니다. 그가 바로 비숍 바렌티어 입니다. 비오는 날 작 은 친절로 그를 교회로 인도한 것이 필리핀의 훌륭한 교회 지도자를 탄생시킨 것입니다.


 

▣ 작은 친절의 결과


 

미국 피츠버그에서 가구점으로 성공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비가 내리는 어느 날 어떤 할머니 한 분이 가구점이 모여있는 거리에서 여기 저기 살펴보고 있었습니다. 아무도 그 할머니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한 가게의 주인만은 그 할머니를 안으로 모셨습니다. 그 할머니는 "나는 가구를 사러온 것이 아니라 차를 기다리며 시간을 보내려는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물건을 안 사셔도 좋습니다. 편히 앉으셔서 구경하세요"라고 친절하게 말한 다음 차번호를 적어 몇 번이나 밖에 나가 차가 왔는가를 확인했습니다. 이런 그의 행동을 지켜 본 주위 사람들은 그를 비웃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차가 올 때까지 미소를 잃지 않고 그 할머니에게 친절을 베풀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 그는 미국의 대재벌 강철왕 카네기로부터 깜짝 놀랄 편지를 받았습니다. "비오는 날 저의 어머니께 베푼 당신의 친절에 대해 감사를 드립니다. 이제부터 우리 회사에 필요한 가구 일체를 당신에게 의뢰하며 또한 고향 스코틀랜드에 큰집을 짓는데 그곳에 필요한 가구도 모두 모두 당신에게 의뢰합니다." 그의 작은 친절이 어마어마한 소득을 얻게 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는 이유로 이웃에게 소홀히 대합니다. 우리 속담에 "내가 다시 마시지 않겠다고 침 뱉고 돌아선 우물을 나중에 다시 찾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맑고, 밝고, 환한 태도와 말로 이웃을 대하면 우리에게 언젠가 큰 축복이 되어 돌아올 것입니다.


 

▣ 우산 친절


 

지난주 토요일, 아내와 나는 어느 한국인들의 자발적 친절에 대단히 감동을 받아 이 사실을 널리 알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우리는 대사관 인근으로 초저녁 산책을 나갔다. 태풍은 이제 지나간 듯했고, 그래서 우리는 맑은 공기를 좀 쐴 작정이었다. 우리는 관저에서 걸어서 10분 정도의 거리에 떨어져 있는 정동의 서울 시립미술관을 둘러보기로 했다. 가보니, 미술관은 이미 문이 닫혀 있었다. 우리는 발길을 돌려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뜻밖에 갑자기 소나기가 퍼붓기 시작했다. 우리는 우산도 없었고 비를 피할 곳도 없었다. 옷이 흠뻑 젖기 시작했다. 그때 우리 곁을 걷고 있던 젊은 한국인 남녀 한 쌍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두 사람은 각각 우산을 갖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 하나를 우리에게 건네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말 없이 그냥 사라졌다. 특히 올해는 외국인들에게 한국에 관광 오도록 하기 위한 많은 노력들이 펼쳐지고 있다. 월드컵은 한국을 세계에 알리는 데 더 없이 좋은 계기가 되었다. 잉글랜드는 월드컵 경기를 일본에서 하게 됐지만, 상당수의 영국 축구 팬들은 한국도 함께 방문하는 기회를 가졌다. 그들은 월드컵 경기장의 훌륭한 시설과 편리한 교통체계, 그리고 대회 지원을 위한 각종 조직 체계에 강한 인상을 받았다. 하지만 외국인에게 한국을 좋아하게 만드는 데 있어서 내가 겪었던, 이 젊은 커플이 보여주었던 것과 같은 개인의 친절한 행동을 능가하는 것은 없을 것이다. 그 젊은 커플은 우리가 누군지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고, 그러면서도 자연스럽게 그 같은 친절을 베풀었다. 이 기회를 통해 그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전하고자 하며, 또한 우산을 되돌려주고 싶다. 그들이 혹시라도 이 글을 읽고 나에게나 영국 대사관으로 연락을 주었으면 좋겠다.

/찰스 험프리(주한 영국대사)


 

▣ 손님 대접하기를 힘써라


 

성경: 히13:2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


 

어느 비바람치던 날 밤, 필라델피아에 있는 여관에서 한 노부부는 머물 곳을 찾고 있었습니다. "웬만한 여관이나 호텔은 다 사람들이 꽉 차 있군요. 우리가 들어갈 방이 있습니까?" 노인이 물었습니다. 안내인은 마침 이 도시에 세 개의 큰 총회가 모이는 관계로 빈방이라곤 어디에도 없을 것이라고 알려 주며, "객실은 모두다 사람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밤 한 시에 이렇게 비 쏟아지는 거리로 당신들같이 나이 든 부부를 쫓아내고 싶지는 않군요. 누추한 제 방에서라도 쉬었다 가시면 어떨까요? 제 걱정은 안하셔도 좋습니다." 다음날 아침 노신사는 방 값을 지불하면서 그 안내인에게 말하기를 "당신은 미국에서 가장 훌륭한 호텔 주인이 될 만한 사람입니다. 언젠가 내가 당신에게 그런 호텔 하나를 지어 드리겠습니다." 안내인은 웃었습니다. 그리고 2년 후, 뉴욕행 왕복 기차료와 비바람 치던 날 만났던 그 때 그 손님을 찾아와 달라는 초청장이 동봉된 편지를 받아들었던 때도 그는 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노신사는 거대한 도시 뉴욕에서 그 젊은 안내인을 데리고 5번가 34거리로 가서 하늘 높이 솟아 있는 새로운 빌딩을 가리켰습니다. "저것이 바로 내가 자네에게 운영해 보라고 지어 주는 호텔일세." 벼락에 맞은 듯이 그 젊은 안내인은 땅에 꼿꼿이 서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에게 은혜를 베푼 사람은 바로 윌리암 왈도르후아스톨이었습니다. 사랑을 베푸는 것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오늘도 이러한 사랑가운데 아름답게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한태완


 

▣ 주님대접


 

비가 퍼붓는 어느 날 한 중년 부인이 비를 피하여 조그만 집 처마 밑에 들어섰다. 늦은 저녁이었는데 주인은 그 낯선 사람을 안으로 맞아 난롯가에서 옷을 말리게 하며 따뜻한 보리차를 대접하고 저녁 식사로 준비한 감자 몇 알까지도 나눠주었다. 잠시 후 감사하다는 말을 남기고 떠난 그 부인은 바로 수행원을 일찍 돌려보내고 혼자 거닐던 평상복 차림의 여왕이었다. 성경은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에 대해 말한다. 평상시에 우리가 사람들을 대하는 것 우리가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대하는 것이 곧 주님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가 아닐까? 주님도 그렇게 말씀 하셨다


▣ 나그네를 대접하는 일


유대인들에게 이런 잠언이 있다. “나그네를 대접하는 일은 하나님의 이름에 경외심을 표하는 것보다도 위대한 일이다.” 유대인들이 여호와라는 이름에 극도로 깊은 경외심을 표했다는 사실을 생각해볼 때, 접대가 얼마나 중대한 일이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우리를 기도와 예배로 부르는 교회의 종소리는 우리 귀에 아주 친숙하게 느껴진다. 이와 마찬가지로 대문의 초인종 소리도 실은 우리를 기도와 예배로 부르는 소리이다. 현관의 초인종이나 노크 소리는 우리를 기도로 부르는 소리이며 손님 대접의 성례로 초청하는 소리이다. 손님 대접이란 하나님께로부터 시작된 베품의 흐름이 우리를 통하여 다른 사람들에게로 계속되도록 이어주는 방법이다. 우리 마음에 감사가 사라지는 순간 이 거룩한 흐름은 거기서 중단되고 만다. 우리가 친철하고 공손한 몸가짐으로 사람들을 반겨주고 다정하게 대해줄 때 우리에게 흘러온 인생의 선물들은 다시 세상으로 흘러나가게 되며 그리하여 마침내 최초의 근원지로 되돌아가게 된다. 하나님의 사랑은 끊임없이 흘러나와 일상 속의 베품이라는 흐름을 타고 세상으로 흘러간다. 우리는 그 선물이 계속해서 다른 사람들에게로 흘러가게 해야 한다. 그럴 때 이 사랑은 시원인 하나님의 마음으로 되돌아가 다시 새로운 흐름의 길을 떠날 수 있는 것이다.

네가 선 곳은 어디든지 거룩한 곳이니라 / 에드워즈 헤이즈


 

▣ 어떤 기쁨


 

 매표 업무를 보다가 2번 출구를 계속 물으시는 분께 불친절하게 안내한 적이 있었습니다. 나중에서야 그분이 시각장애인인 것을 알고 죄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그로부터 며칠 후 휠체어를 탄 여자 분이 장애인복지관을 찾는다며 제게 말을 걸었습니다. 안내해 드리고 내려 오려는데. 그 분이 택시나 버스를 타고 목적지를 찾아가기에는 어려움이 있을 것 같았습니다. 순간 지난 번 일이 떠올라 내 차를 가지고 와서 그분을 목적지까지 모셔다 드렸습니다. 그 분은 복지관에 면접을 보러가는 길이었는데 시간이 늦으면 어쩌나 걱정했다며 연신 감사의 표시를 했습니다. 그 날은 지난번의 실수를 만회한 것같아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근무를 할 수 있었고 친절은 베푸는 사람에게 더 기쁘고 즐거운 일이라는 교훈을 얻은 하루였습니다./김종용▣ 백화점 왕이 된 동기 미국의 존 워너메이커가 1896년 필라델피아에서 17층 규모의 거대한 백화점을 개설한 후, 세계적으로 "백화점 왕"이 된데는 그 동기가 있었다. 소년시절 워너메이커는 용돈으로 한 점포에서 어머니 머리 장식품을 구입한 후 마음에 들지 않아 다시 브로치로 교환해 달라고 했다가 모욕과 함께 거절을 당했다. 그는 집으로 돌아오면서 "친절하고 자유롭게 손님을 대하는 것이 상점의 도리가 아닌가. 내가 종합적이고 친절한 상점을 세우리라"고 결심, 꿈을 갖고 일을 추진했던 것이다.


 

▣ 우리 어머니


 

오래 전 시외버스 안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그것은 불과 10여 분 안팎의 일이었습니다. 만원버스도 아니었고 정류장마다 멈추는 시간이 그리 철저히 지켜지던 때도 아니었습니다. 버스기사가 엔진 시동을 걸고 막 출발하려는데, 승객 중 한 사람이 버스를 타려는 사람을 발견하고 말했습니다. "저기 웬 할머니가 오십니다." 버스기사가 바라보니, 제법 떨어진 거리에서 한 할머니가 무언가 머리에 인 채 버스를 향해 종종걸음으로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어서 출발합시다. 언제까지 기다릴거요." 버스에 타고 있던 어떤 승객이 바쁘다면서 서둘러 떠나기를 재촉했습니다. 그러자 버스 기사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저기, 우리 어머니가 오십니다. 조금 기다렸다 같이 가시지요." 승객은 할 말을 잃고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 때 창가에 앉았던 한 청년이 벌떡 일어나 버스에서 내려 할머니를 향해 달려갔습니다. 승객들의 시선은 자연스레 버스 밖으로 모아졌습니다. 머리 위의 짐을 받아든 청년은 할머니의 손을 부축하여 잰걸음으로 버스로 돌아왔습니다. 할머니와 청년이 버스에 오르는 순간 승객 중 누군가가 박수를 치자 마치 전염된 듯 너나없이 박수가 이어졌습니다. 물론 그 할머니는 버스 기사의 어머니도 청년의 어머니도 아니었습니다. ▣ 평소의 친절 어느 날 한 부인이 런던 역 앞 건널목을 지나고 있을 때 한 할아버지가 다가와 다짜고짜 감사합니다 하는 것이었다. 그 여인이 놀라운 표정을 짓자 그는 그 사연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저는 오랫동안 런던 역원으로 있었는데 당신은 표를 건네주고 갈 때마다 제게 진심 어린 미소로 아침 인사를 하곤 했지요. 그 후 어느 날 아침 당신의 손에 쥔 성경책을 보고는 나도 그 성경책을 사게 되었고 마침내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불친절한 서울시민얼마 전 리더스 다이제스트에서 세계 35개 도시의 친절도를 조사했습니다. 각 나라 시민 60명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의 친절테스트를 했습니다.1. 뒤 따라오는 사람을 위해 문을 잡아주는가? 2. 상점에서 물건을 구입한 후 점원이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가?3.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 서류뭉치를 떨어뜨렸을 때 줍는 것을 도와주는가? 결과를 보니 서울의 친절도는 40점이었고, 놀랍게도 35개 대도시중 32위에 머물렀습니다. 게다가 꼴찌와는 큰 차이가 없는 점수였습니다. 한국이라는 브랜드의 성장과 문화계의 활발한 교류로 매년 서울을 찾는 외국인들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한국에서 좋은 추억을 남기고, 다시 오고 싶게 만드는 것은 멋진 상품이나 화려한 건축물이 아닙니다. 우리들의 아름다운 미소와 친절한 모습입니다./류중현(지하철사랑의편지 운영자)


 

▣ 불친절한 여직원


한 노신사가 은행을 찾았습니다. 마침 이 신사가 만나야 할 직원이 출장을 가고 자리에 없었습니다. 할 수 없이 되돌아 나오다 자동차를 주차장에 세워두며 받아온 주차카드를 여직원에게 내밀며 확인을 요청하였습니다. 그러자 여직원은 사무적인 태도로 말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오늘 저희 은행에서 아무 업무도 보지 않으셨기 때문에 확인해 드릴 수 없습니다.” 신사는 여직원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지만 여직원의 태도는 여전히 냉담했고 신사의 요청은 거듭 거절되었습니다. ‘선생님의 요청을 들어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라는 말뿐이었습니다. 신사의 표정이 일그러지며 여직원에게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은행에서 아무 업무라도 보면 주차카드에 확인해줄 수 있습니까?”

여직원은 그렇다고 짧게 대답하였습니다. 신사는 예금인출서를 작성하여 여직원에게 주었습니다. 예금인출서에는 이 신사의 통장에 든 모든 예금을 인출하겠다고 기록하였는데 그 액수가 100억 원이 넘었습니다. 직원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고, 잠시 후에 은행지점장이 부랴부랴 달려왔지만 노신사는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이웃을 대할 때에 주님께 하듯이 해야 합니다. 부지중에 천사를 만날 수 있습니다. 작은 친절이 큰 성공을 가져오기도 합니다. 날마다 친절을 베푸는 아름다운 그리스도인이 되십시오.

* 기도: 주님! 누구에게나 친절을 베풀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 묵상: 당신은 친절이 생활화되어 있습니까?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 외국 관광객의 서러움


 

성경: 신14:29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우거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로 와서 먹어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얼마 전 외국인 친구 두 명이 한국을 방문했다. 이들을 목적지까지 데려다 줄 수 없는 상황이어서 택시를 태워 보내기로 했다. 그리고 택시 기사에게 "친구들을 잘 부탁드린다."며 목적지 주소를 적어줬지만 일말의 불안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친구들로부터 들은 얘기는 너무 황당했다. 평소 택시를 탄 금액의 네 배나 되는 돈을 지불한 것이다. 친구에게 이것저것 물었다. 친구는 일반 택시를 탔는데 기사는 미터기도 작동하지 않은 채 운전했다고 한다. 외국인이 한국에 올 때 주위에서 택시 바가지 요금을 주의하라는 충고를 해준다고 한다. 나는 이런 얘기가 과장된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막상 이런 일을 보고 나니 문제의 심각성이 느껴졌다. 일부 기사 때문에 한국 전체의 이미지가 실추되는 게 아닐까 걱정된다. 남에게 보이기 위해 외면적인 친절과 호의보다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름 없이 도울 수 있는 마음이 우리 나라를 선진국으로 발전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우리들의 모습이라면 우리가 외국에 가서 혹 겪게 될지 모를 차별에 대하여 불평할 권리가 없지 않겠는가. 우리도 낯설고 물설은 환경 가운데 처음 들어온 이가 있다면 그들의 친절한 안내자로서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더구나 성도로서 우리의 자세는 대가를 바라지 않고 베푸는 자세로 임해야 함은 당연한 일이다.


 

▣ 젊은 날의 충격


 

 영국의 유명한 문인 찰스 램이 잘 알고 지내던 사람 가운데,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던 한 사람은 결혼을 하지 않고 평생 동안 혼자 살았습니다. 그 이유는 젊은 날의 충격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청년 시절에 한 여인을 깊이 사랑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청혼을 하기 위해 사랑하는 여인의 집을 향해 가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녀가 자신의 청혼을 받아 줄 것으로 굳게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 집에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자 하인이 나와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아가씨가 이제 더 이상 당신을 만나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그 청년은 마음에 깊은 상처를 안고 집으로 돌아와서 그녀에게 자신을 거절한 이유를 알려 달라는 편지를 썼습니다. 그 여인으로부터 온 회답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나는 당신을 기다리며 창 밖을 내다보고 있었습니다. 당신이 오는 것을 보고 나는 기뻤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길에서 일하고 있던 한 여인을 밀치고 그냥 지나쳐 버리더군요. 당신은 넘어진 그 여인을 부축해 주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때 당신은 내 한평생을 맡길 수 있는 남편이 될 수 없는 사람임을 알았습니다. 불쌍한 여인에게 친절을 베풀 수 없는 사람이라면 나에게도 진정한 사랑을 베풀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이 있은 후 그 청년은 완전히 변화되어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고 관대하게 대했다고 합니다.

- 전도 예화 다이제스트 / 배창돈


 

▣ 셰이퍼와 거지


 

숨겨진 예술이라는 책을 쓴 에디스 셰이퍼의 진솔한 삶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잔잔한 감동을 준다. 평소 그의 집 뒷문으로 가끔씩 찾아와 “아주머니, 커피 한 잔만 주시겠어요? 그리고 빵도 조금 주시면 좋겠고요”라고 애원하는 한 걸인이 있었다. 어느 날 셰이퍼는 자기 집 뒷문으로 찾아온 그에게 들어와 앉으라고 한 후, 부엌에 들어가서 왕에게나 어울릴 만한 음식을 준비했다. 따끈한 수프에 두툼한 샌드위치를 잘라서 접시에 모양 있게 놓고 장식까지 곁들였다. 아이들은 그를 위해 작은 꽃다발을 만들었고 마침 저녁 시간이라 촛불도 준비했다. 이런 환대에 놀란 걸인은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아니 이게 모두 저를 위한 것입니까?” “그럼요, 커피도 곧 드릴 거예요. 그리고 이 요한복음서도 당신 것이니 꼭 가져가 세요. 아주 중요한 것이랍니다” 그날 저녁 셰이퍼의 집에 왔던 걸인은 셰이퍼와 그의 가족에게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했다. 성경은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히 13:2)고 교훈하고 있다. ▣ 아주 특별한 손님맛있기로 소문난 제과점이 있었다. 어느 날 남루한 차림을 한 거지가 찾아와 빵을 주문했다. 가게 종업원은 빵을 포장하고도 건네주기를 망설이고 있었다. 이때 가게 주인이 달려와 정중한 자세로 빵을 포장해 직접 건네주었다. 그러자 거지는 호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지폐 한 장을 꺼내 빵 값을 치렀다. 주인은 공손히 돈을 받으며 "가게를 찾아와 주셔서 감사드립니다"며 거지를 향해 허리까지 굽혀 인사를 했다. 거지가 돌아간 뒤 의아해하는 종업원에게 주인이 말했다."평소 우리 가게에 오는 손님은 모두 돈이 많고 지체가 높은 사람들이지. 그들이 우리 가게를 찾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닐세. 그러나 아까 그 거지손님이 우리 빵을 맛보기 위해 얼마나 고생하며 돈을 모았을 지를 생각해보게. 그러면 그가 얼마나 특별한 손님인지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일세."이후 주인의 거지에 대한 친절한 태도는 미담이 돼 빠르게 전해졌고 그 제과점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 노신사의 친절


 

모처럼 매여있던 일들을 훌훌 털어버리고 나들이에 나섰다. 맛있게 점심식사를 하고 해수욕장 길을 시원하게 달렸다. 그런데 해변가 백사장 위에 한쌍의 연인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차가 빠진 것이였다. 그때 멋있는 노신사 한분이 뛰어가시는게 보였다. 마침 차에 굵은 밧줄이 있어 차를 묶어 끌어 당겼다. 밧줄이 자꾸만 풀어지고 차는 움직이지 않았고 물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자꾸만 물이 들어오고 있었고 참으로 초조하고 긴장된 시간이였다. 그러는 중에 그 노신사는 온통 진흙 범벅이 되어서야 차를 끌어당기는데 성공을 했다. 미소를 짓는 노신사의 모습이 참으로 멋있게 보였다. 그 연인들은 4년만에 만나 바다에 나와 이런 일이 생겼다면서 연신 고개를 숙이며 감사의 표현을 하였다.


 

▣ 따뜻한 마음


 

 할머니 한 분이 버스를 타셨는데 짐을 올려놓고 뒤지니 돈이 없었답니다. 그래서 기사분한테 "기사양반 미안한데 돈이 없구려..." 계속 미안하다고 하셨는데 기사분은 차도 출발시키지 않고서, 화를 내면서 "돈도 없는데 왜 타요! 내리세요." 무뚝뚝하게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습니다. 할머니는 무안해서 계속 미안하다고만 하고 있었고, 마침 출근길인 손님들도 많았답니다. 손님 중에는 운전 기사처럼 화를 내며 그냥 출발하라는 사람도 있었고, 할머니더러 내리라는 사람도 있었는데 기사분이 계속 뭐라고 하니까 한 고등학생이 만원을 꺼내 요금함에 넣으면서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이걸로 할머니 차비하시고, 또 이렇게 돈 없는 분 타시면 아까처럼 화내지 말고 남은 돈으로 그분들 차비해 주세요." 순간 버스 안은 조용해지고 기사분은 말없이 차를 출발시켰답니다. 삭막해져가는 요즘 그런 마음씨를 가지고 있는 학생을 정말 칭찬해 주고 싶습니다. 우리 모두 조금은 남에게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대할 수 있었으며 좋겠습니다.


 

▣ 백정과 박서방의 차이


 

엣날, 고기를 파는 백정을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던 시절의 이야기 입니다. 어느 날 푸줏간에 두 명의 손님이 들어섰습니다.먼저 들어선 손님이 거칠고 사나운 말투로 말했습니다."야, 백정! 여기 고기 한 근 대령해!"푸줏간 주인은 말 없이 정확한 한 근을 달아 내어놓았습니다.두 번째 손님은 부드러운 말씨로 주문했다."박서방, 나도 고기 한 근 주시우"그런데 두 번째 손님에게 내어놓은 고기는 얼른 보기에도 두 근은 넉넉히 되어 보였습니다. 그러자 먼젓번 손님이 얼굴을 붉히고 화를 냈습니다. "아아니, 똑같이 한 근 값을 냈는데 이럴 수가 있어?" "어르신, 어르신께 드린 한 근은 백정이 드린 한 근이고, 저 어르신께 드린 한 근은 박서방이 드린 한 근입니다."


▣ 바보 같은 친절


어린이날을 제정한 소파 방정환 선생님의 집에 하루는 강도가 들었습니다. 강도가 칼을 휘두르며 돈을 내놓으라고 협박을 했습니다. 방정환 선생님은 돈이 필요하면 말로 하면 되지 왜 위협을 하냐며 강도에게 칼을 치우라고 한 다음 자신의 돈을 모두 주었습니다. 생각하지 못했던 상황에 강도는 미안해하며 돈을 받아 나갔습니다. 돈을 줬으니 고맙다고 인사를 하라는 선생님의 말에 강도는 고맙다는 한 마디를 하고는 도망쳤으나 나오자마자 경찰에게 잡혔습니다. 강도가 아니라고 우기다 칼이 발견되어 모든 것을 포기하고 경찰과 함께 다시 집으로 돌아갔는데 강도를 본 방정환 선생님은 “아니 그새 돈이 또 필요해서 왔단 말이요”라고 말했습니다. 당황한 경찰이 “이 집에서 도둑질을 했다기에 잡아왔습니다”라고 하자 “저 사람은 강도가 아닙니다. 내가 사정이 딱해 보여서 돈을 주고 저 사람은 고맙다는 말까지 했는데 어째서 강도입니까?” 라고 선생님이 대답했습니다. 경찰은 결국 그 강도를 풀어주었고 방정환 선생님의 친절에 탄복한 강도는 그 자리에서 용서를 빌었습니다.

친절은 그만한 힘이 있습니다. 때론 바보 같아 보일지도 모르지만 생활 속에 작은 친절들이 습관으로 된다면 자신을 적대시 하는 사람들에게도 친절을 베풀 수 있을 것이고 그것은 더 좋은 것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지금 당장 내키지 않더라도 일단 친절을 베푸십시오.

* 기도: 주님, 언제나 누구에게도 친절을 베풀게 하소서.

* 묵상: 사람을 대할 때 언제나 친절하게 처음부터 미소로 대하십시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 친절 전염병


사람을 따뜻하게 만들고 이 세상을 살만하게 만드는 것은 다른 사람이 나에게 나누어 주는 마음입니다. 비록 잘 알지 못하고 서로 오랜 대면이 없는 사이라 할지라도 상대방에게 아무런 대가없이 베푸는 친절은 우리를 살맛나게 만듭니다.

TV 에서 나오는 어려운 이웃의 이야기에 눈물 한 방울 흘릴 줄 아는, 길가에서 무거운 짐을 들고 가는 노인들의 짐을 미소 한 줌과 함께 들어 줄 수 있는, 은행창구에서 바빠 발을 동동 구르는 사람을 위해 한 걸음 물러나 먼저 사용하도록 양보하는, 그런 사람 내가 그런 사람이 되고 내 도움을 받은 사람이 그런 사람이 되고 그렇게 친절이라는 전염병이 온 세상에 번진다면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도 참 살만한 곳이 되지 않을까요?

출처 :<행복한 아침을 여는101가지 이야기> 중에서


▣ 친절한 마음은 사람들을 감동시킨다


캘빈 쿨리지는 안느 모로의 부친인 드와이트 모로가 주최한 만찬에 초대되었습니다.

그날 저녁 쿨리지가 일이 있어서 먼저 자리를 뜨자 모로는 사람들에게 쿨리지가 훌륭한 대통령이 될 것으로 믿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거기에 동의하지 않았고, 쿨리지의 능력에 대해 격한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사람들은 쿨리지가 너무 말이 없고 카리스마가 없으며 성품에 문제가 있어 대통령감이 못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들은 또한 그에게 별로 호감이 가지 않는다는 말도 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여섯 살이었던 꼬마 아가씨 안느가 옆에 있다가 반창고를 붙인 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말했습니다.

“나는 좋은데... 이 파티에 온 사람들 중에 내게 손가락이 많이 아프냐고 물어본 사람은 그 아저씨뿐이에요. 그러니까 그 아저씨는 훌륭한 대통령이 될 거예요.”

안느의 지적은 옳았습니다.

어린 소녀에게 손가락이 많이 아프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반드시 대통령직을 훌륭히 수행할 성품을 지녔다고는 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친절한 마음은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확실한 방법입니다. 그리스도인답게 친절하십시오.

* 기도: 주님, 작은 것에도 친절을 보이는 마음을 갖게 하소서.

* 묵상: 내 기호에 맞지 않는 사람이라도 친절을 베풀려고 노력하십시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 친절은 경쟁력이 있습니다.


어느 무더운 여름날, 미국 메릴랜드의 한 마을에 서적 외판원을 하는 남루한 복장의 고학생이 나타났답니다. 더위와 굶주림에 지친 청년은 마을입구의 허름한 집을 방문했답니다. 한 소녀가 책을 파는 학생을 맞아 "우리는 너무 가난해요. 책을 살수가 없어요"라고 말했답니다. 그는 이마의 땀을 닦아내며 시원한 우유 한 잔을 부탁했답니다. 이 때 소녀는 쟁반에 우유 두 잔을 담아 정성껏 대접했고 그는 소녀의 친절에 감동해 수첩에 그녀의 이름을 적어두었답니다. 그 후 세월은 20 여 년이 흘렀습니다. 메릴랜드병원에 한 여성 중환자가 실려왔답니다. 이 때 병원장 하워드 켈리 박사는 의사들을 총동원해 환자를 살려냈답니다. 그녀의 치료비는 1만 달러가 넘었다고 합니다. 여인은 1만 달러가 넘는 치료비 청구서를 받아들고 한숨을 토했답니다. 그런데 그녀가 받아든 청구서 뒤에는 병원장의 짤막한 편지 한 장이 붙어 있었답니다. "20년 전에 저에게 대접한 우유 두 잔이 치료비입니다" 20년 전에 베푼 작은 친절이 1만 달러가 넘는 보은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원장이 된 20년 전의 고학생은 우유 두 잔의 친절을 잊지 않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작은 친절일지라도 남에게 베푼 친절은 헛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마 10:42)" 하였습니다. 친절은 손해보는 것이 아닙니다. 눈앞에 이익이 없어도 대가를 바라지 않고 친절하게 대하면 아무리 작은 친절일지라도 친절은 사람에 깊은 감동을 줍니다. 친절은 경쟁력이 있고 친절은 생명력이 있어 심어 놓으면 꽃이 피고 열매를 맺습니다.

-열린편지/친절경쟁력/김필곤 목사


▣ 친절의 기름


어디를 가나 작은 기름통을 갖고 다니는 노인이 있었다. 그는 다니다가 문이 뻑뻑하며 경첩에 기름을 조금 쳐주었다. 대문이 잘 열리지 않아도 기름을 쳐주었다. 늘 뻐걱거리는 곳에 기름을 발라서, 뒤에 들어오는 사람이 쉽게 문을 열게 해주었다. 사람들은 노인을 별나다, 괴팍하다, 이상하다는 등 수군대며 흉을 봤다. 하지만 노인은 늘 변함이 없었다. 기름을 다 쓰면 다시 통을 채워서 지니고 다니며 필요한 곳에 기름을 부어주었다. 그냥 다니다가 어디가 뻐걱대면 집에 가서 기름통을 가져오는 게 아니라, 어디 가나 늘 지니고 다녔다.

생활을 하다보면 뻐걱거리고 뻑뻑하고 잘 돌아가지 않는 일이 생긴다. 그럴 때는 친절이나 상냥함, 배려의 기름을 쳐야 한다. 우리는 늘 그런 기름통을 갖고 다녀야 한다.

/김용호


▣ 국무장관의 친절


미국의 어떤 사업가가 호텔에 투숙하려 했지만 객실이 다 차서 방을 얻지 못했습니다. 난감한 표정으로 걸어 나가는 그에게 어떤 신사가 다가와 지금은 어디를 가도 방을 구할 수 없다며 자기 방에서 함께 있자고 했습니다. 사업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그 고마운 제의를 받아들였습니다. 그 신사는 잠자리에 들기 전에 기도를 드렸는데, 같이 투숙하게 된 사업가를 위해서도 간절히 기도해주었습니다. 아침 식사를 같이 하고 헤어질 시간이 되었습니다. 전날 밤에는 서로 간단하게 인사만 했었기에 헤어지기에 앞서 서로 명함을 교환했습니다. 신사의 명함에는 윌리엄 제임스 오브라이언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사업가가 의아스럽다는 듯이 물었습니다. "국무장관하고 이름이 똑같군요." 그러자 신사는 겸손한 어투로 "네, 같은 인물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겸손할 때 사람들에게 주는 감동은 훨씬 더 큽니다. 만왕의 왕이신 주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신 겸손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주님의 본을 따라 자신을 낮추는 겸손한 종이 되십시오.

* 기도: 주님! 나의 삶가운데 교만한 부분들을 깨닫게 하소서.

* 묵상: 사람들 앞에서 우쭐해지는 때는 주로 언제입니까?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주의 친절한 팔에 안기세 (찬송가 405장, <통> 458장)


1. 주의 친절한 팔에 안기세

우리 맘이 평안하리니

항상 기쁘고 복이 되겠네

영원하신 팔에 안기세

2. 날이 갈수록 주의 사랑이

두루 광명하게 비치고

천성 가는길 편히 가리니

영원하신 팔에 안기세

3. 주의 보좌로 나아갈 때에

기뻐 찬미소리 외치고

겁과 두려움 없어지리니

영원하신 팔에 안기세

<후렴>

주의 팔에 그 크신 팔에 안기세

주의 팔에 영원하신 팔에 안기세


 

▣ 친절, 대접에 관한 성경말씀


 

0 우리에게 향하신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크고 진실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할렐루야(시117:2)

0 구하오니 주의 종에게 하신 말씀대로 주의 인자하심이 나의 위안이 되게 하시며(시119:76)

0 사람은 그 인자함으로 남에게 사모함을 받느니라 가난한 자는 거짓말하는 자보다 나으니라(잠19:22)

0 산들은 떠나며 작은 산들은 옮길지라도 나의 인자는 네게서 떠나지 아니하며 화평케 하는 나의 언약을 옮기지 아니하리라 너를 긍휼히 여기는 여호와의 말이니라.(사 54:10)

0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마7:12)

0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눅6:31)

0 이튿날 시돈에 대니 율리오가 바울을 친절히 대하여 친구들에게 가서 대접 받기를 허락하더니(행27:3)

0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롬12:13)

0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엡2:7)

0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골3:12)

0 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신중하며 단정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딤전3:2)

0 선한 행실의 증거가 있어 혹은 자녀를 양육하며 혹은 나그네를 대접하며 혹은 성도들의 발을 씻으며 혹은 환난 당한 자들을 구제하며 혹은 모든 선한 일을 행한 자라야 할 것이요(딤전5:10)

0 오직 나그네를 대접하며 선행을 좋아하며 신중하며 의로우며 거룩하며 절제하며(딛1:8)

0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히13:2)

0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밷전4:9)


 

▣ 친절에 관한 금언


 

0 인생은 큰 희생이나 큰 일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웃음과 친절과 습관적으로 주어지는 작은 의무를 감당해 나가는 것과 같은 작은 것들로 이뤄지고, 마음에 간직하고 즐거워하며 위로를 받는 것들로 이뤄진다.(험프리 데이빗 경)

0 남에게 베푸는 친절, 그에게 도움을 주기 위하여는 즐거움으로 하고 싶다. 그러나 의무로서는 하고 싶지 않다.(키쿠치칸 국지관)

0 낙원은 친절한 모든 심령에게 개방되어 있다.(피에르 베링거)

0 예수와 소크라테스는 매우 다른 배경에서 같은 말을 하셨다. 지성은 친절이다. 친절은 지성이다. 두 말이 다른 길을 제시하는 것으로 보이는 기본 원리는 모든 인간 문화를 기초로 한 같은 특성이다.(알렉산더 마이클 죤)

0 친절은 사회를 하나로 묶는 황금 사슬이다.(요한 볼프강 폰 괴테)

0 주먹 같은 눈물을 바다같이 흘리는 것보다 적은 눈물 한 방울이 말라붙은 것이 좀더 정직한 명성을 가진다.(죠지 고든 노엘 바이런)

0 비록 아름답지 않을지라도 친절한 여인은 나의 사랑을 받을 것이다.(월리엄 셰익스피어)

0 동정의 눈물을 가지고 있고, 녹이는 사랑의 손을 가지고 있어서 대낮처럼 벌리고 있다.(월리엄 셰익스피어)

0 내 인생은 일회용임을 나는 잘 안다. 그러므로 내가 친절을 베풀 수 있는 길이 있든가 아니면 나의 동료에게 선을 베풀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기회를 놓칠 수가 없구나. 나의 인생 길은 한 번 지나가면 다시는 되돌아 올 수 없기 때문이다.(월리엄 펜)

0 친절한 대면과 친절한 말, 친절한 행동과 따뜻한 악수. 이 모든 것들은 사람들이 고난을 당하여 보이지 않는 싸움을 하고 있을 때 은혜의 부차적인 수단이다.(죤 홀)

0 선한 인간의 삶에서 가장 훌륭한 부분은 그의 적고 이름 없고, 기억되지 않는 친절과 사랑의 행위이다.(윌리엄즈 위즈워드)

0 친절한 마음은 그의 주변을 신선하게 만들어 모든 것을 웃음의 동산으로 만드는 기쁨의 샘이다.(워싱턴 어빙)

0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다른 사람을 축복하셨다는 사실을 알기 전에는 어떤 은혜나 축복도 우리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 좋다.(필립스 브룩스)

0 친절은 벙어리가 말할 수 있는 언어요. 귀머거리가 들을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언어이다.(크리스챤 네스텔 보비)

0 원수를 죽이는 가장 고상하고 참된 길은 그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그대가 원수에게 친절을 베풀어 그가 원수가 되지 않도록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러면 그는 살고 원수는 죽임을 당하는 것이다.(알렌)

0 기름과 동전 두 드라크마가 없이도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일을 충분히 할 수 있는 사람의 일을 충분히 할 수 있는 사람들을 발견할 수 있게 될 것이다.(시드니 스미스)

0 친절한 말은 사람들의 심령에 그대의 형상을 심어 주는 것으로서 매우 아름다운 것이다. 그 말들은 듣는 사람들을 달래주며 평온하게 해주며 위로해 준다. 친절한 말은 성미가 까다롭고, 괴팍하고 불친절한 감정을 가진 자를 부끄럽게 만든다. 친절한 말의 용도는 엄청나게 많고 그 효과도 엄청난데 우리는 그 귀한 보배를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블래즈 파스칼)

0 우리의 친절은 다른 사람의 불친절에 의한 통증을 무감각하게 만드는 꿀과 같다.(월터 새비지 랜도)

0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위하여 기울인 우리의 노력은 우리 자신들것보다 높이 드리운다.(리시아 M. 챠일드)

0 악한 마음을 품은 수많은 자에게 친절한 기질을 나타내 보였는지 매일 그대 자신에게 물어보라.(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우스)

0 친절한 노인에게 허락된 유일의 매력이요, 백발의 아양이다.(옥타브 페러)

0 사랑과 온유가 깃든 친절한 말 세 마디가 경멸적인 기지의 예리함이 배인 책 3000권보다 훨씬 더 복된 상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진리가 담겨져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면 인간의 저술의 방법이 우리의 마음을 진리로부터 멀게 해서는 안된다.(헬만 후커)

0 위대한 화해자, 죽음이 찾아왔을 땐 우리가 후회하는 상냥함이나 부드러움은 다 사라져 버리고 통열함 만이 남을 것이다.(죠지 엘리옷)

0 선한 봉사의 씨를 심으라. 아름다운 추억의 나무가 자랄 것이요, 사랑의 열매를 거둘 것이다.(스탤 부인)

0 친절을 장려한다는 것은 인생의 일의 귀중한 부분이다.(사무엘 죤슨)

0 최고의 지혜는 친절과 겸손이다(탈무드)

0 낯선 사람에게 친절하게 하는 것은 천사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과 같다.(탈무드)

0 친절은 아름다움보다 더 가치가 있다.(아라스)

0 친절은 미덕을 자라게 하는 햇빛이다.(로버트 잉거졸)

0 마음이 착하고 친절한 자가 하나님을 가장 닮은 자이다.(번즈)

0 당신을 거쳐가는 사람은 누구든지 더욱 좋아지고 행복해져서 떠나게 하라. 하나님의 사랑이 생동감있게 표현되도록 하라. 당신의 얼굴에 친절이, 당신의 눈에도 친절이, 당신의 미소 속에 친절이, 당신의 따뜻한 인사 속에도 친절이 서려있게 하라.(마더 테레사)

* 주의: 본 자료를 무단 수집, 제작 배포 출판하면 저작권법에 저촉(위배)됩니다.

/한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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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구할 참된 복 댓글[0]
복, 축복, 면류관 (2012-05-29 오전 11:46:41) http://blog.somang.net/holylove/7369

우리가 구할 참된 복

 

본문: 마5: 3- 12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소위 세간에서 말하는 오복(五福)이 있습니다. ① 수복(壽福) - 오래 사는 것 ② 부귀(富貴) - 재물과 명예가 넉넉한 것 ③ 강녕(康寧) - 건강하게 사는 것 ④ 유호덕(攸好德) - 덕을 좋아하고 베풀고 봉사하는 것 ⑤ 고종명(考終命 )- 명대로 잘 살다가 편히 죽는 것 등입니다. 그리고 높은 지위에 오르는 것, 자식이 좋은 대학과 좋은 직장에 다니는 것, 부족함 없는 경제생활 등을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들은 이 세상에서 잠시 누리는 복입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참된 복은 무엇일까요? 우리의 최종목표는 천국에 가서 영생하는 것입니다. 이것보다 더 큰 복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가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무엇보다 예수 믿고 하나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뜻대로 올바르게 살기 위해서는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사람의 언행은 그 마음속에서부터 우러나옵니다. 즉 그 사람의 마음이 바르지 못하면 그에게서 나오는 말과 행실도 악합니다. 그러므로 올바른 마음과 정신자세를 갖춘다는 것은 실로 중요합니다. 마음은 나의 주인이요, 근본이고 정신은 인생의 방향타요, 운명의 운전수요, 생활의 지배자입니다. 인생은 마음을 갈고 닦는 도장이요, 정신을 다듬는 수련장입니다. 칼이 의사의 손에 쥐어지면 사람의 생명을 건지는 수술도가 되지만 도둑놈의 손에 쥐어지면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흉기로 전락합니다. 칼이 선의 도구가 되느냐 악의 도구가 되느냐를 결정하는 것은 칼 자체가 아니고 칼을 쓰는 사람의 마음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만, 음란, 거짓. 탐심, 미움, 분노 등의 악한 생각이 내 마음을 차지하지 않도록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4:23)

마음을 지키기 위해서는 보는 것과 듣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마음을 비워두면 안됩니다. 우리 마음에 본문의 8가지 마음으로 채워야 합니다. 그래야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따라서 다음의 8가지 마음을 가진 자가 참으로 복된 사람입니다.

 

1. 심령이 가난한 자의 복

참된 복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세상에 없어질 재물이나 권력, 그리고 장수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알고 그 분의 뜻 안에서 그것을 누리고 사는 영원한 기쁨과 감사를 말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복으로 받는󰡐심령이 가난한 자󰡑의 삶이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의 삶에 임하기 위해서는 먼저 내 마음의 그릇을 비워야 합니다. 물질에 대한 욕심과 세상의 명예와 자랑에 대한 욕심으로 가득찬 그릇에는 하나님의 보화를 담을 공간이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의(義), 가치관, 철학, 편견, 주의주장으로 가득찬 사람에게는 복음이 들어갈 수 없습니다. 이것들을 배설물처럼 여기고 비워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을 알 수 없고, 진리에 이를 수가 없습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었으므로 그들이 생겼느니라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내 말을 듣고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돌보려니와’(사66:2)

2. 애통하는 자의 복

하나님이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시51: 17)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에 그가 얼굴을 벽을 향하여 울면서 기도할 때에 하나님은 그에게 15년을 더 살게 하셨습니다.(왕하 20:1-7)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께서 대하여 예언하기를 "멸시를 받아서 싫어버린 바 된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세상에서 예수님만큼 슬픔을 당한 자가 또 누가 있겠습니까? 우리 성도들은 예수님이 보여주신 "애통하는 자의 복"을 배워야 합니다. 애통하며 회개하는 자는 구원을 받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하늘의 위로를 받습니다. 진심으로 회개한 사람은 타인의 불행을 동정하며 눈물을 흘립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명령은 웃는 자와 함께 웃기만 하지 말고 우는 자와 함께 울기도 해야됨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오지 못한 과거를 바라보면서 애통하고 내 마음의 누군가를 미워하며 살아온 것을 애통하며 회개할 때 천국이 우리 안에 임하게 됩니다. 요한계시록 7장 17절에 보면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어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은혜가 여러분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3. 온유한 자의 복

오직 온유한 자는 땅을 차지하며 풍부한 화평으로 즐기리로다(시37:11)

온유라고 하는 일반적 개념은 마음 착한 사람, 마음가짐이 부드럽고 따뜻한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온유한 사람은 남을 편안하게 합니다. 온유한 사람은 관용이 있어 남을 용서하고 허물이 있어도 감싸줍니다. 우리 주위에는 이런 온유한 사람이 있기 때문에 밝아질 수 있고 소망을 갖게 됩니다. 온유함은 생명의 특징입니다. 우리는 가장 온전한 형태의 온유함을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발견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말구유에 누이실 때부터 온유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마11:29) 예수님의 온유하심은 십자가에서 온전히 나타났습니다. 원수들이 욕하고, 비웃고, 저주했지만 예수님은 묵묵히 참으셨습니다.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같이(사53:7) 온유하게 모든 것을 참으셨습니다. 그 예수님의 온유가 죄와 죽음의 세력을 이겼으며, 결국 우리가 그 승리를 통해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 것입니다.

4.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의 복

어떤 사람들이 의에 주리고 목말라하는 사람들일까? 여기 의에 주리고 목말라 한다는 말은 하나님과 사람앞에 의롭게 살고자 하는 열정이 있는 사람들, 의에 주리고 목말라 하는 사람은 깨끗하게 한 번 살고자 하는 뜨거움을 가진 사람들, 의에 주리고 목마른다는 말은 바르게 살고자 하는 마음이 뜨거운 사람들, 옳게 정직하게 살아보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한 사람들, 그게 바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입니다.

의는 곧 진리요, 의는 믿음이요, 의는 성령이요, 의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기를 간절히 소망할 때 영적인 배부름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이 되어서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오는 영적 배부름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5. 긍휼히 여기는 자의 복

긍휼은 측은히 여기다, 불쌍히 여기다, 친절히 대해주다는 뜻입니다. 즉 죄인을 불쌍히 여긴다는 뜻과 함께 무엇인가 모자라고 부족해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선행을 긍휼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긍휼히 여기사 자비와 인자하심을 베푸시고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구원하십니다.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긍휼이 많으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하심이 크시도다 여호와께서는 모든 것을 선대하시며 그 지으신 모든 것에 긍휼을 베푸시는도다’(시145:8,9)

우리도 주님의 긍휼하심과 인자하심을 본받아야 합니다.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엡4:32)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야고보서 2:13)

6. 마음이 청결한 자의 복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누구며 그 거룩한 곳에 설자가 누군고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치 아니하는 자로다(시24:3-4)

청결이라는 말은 깨끗하다, 순수하다, 오염이 되어있지 않다는 뜻입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자가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있습니다.(막10:15)

7. 화평하게 하는 자의 복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히12:14)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가 하나님과 화평케 되었습니다.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롬5:10)

나로 인해서 동서가 합치고, 남북이 합치고, 나 하나의 희생으로 인하여 서로가 하나되는 역사가 있을 때 바로 거기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고 바로 그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게 될 것입니다.

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약3:18)

8.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의 복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요15: 18, 19)

하나님은 감당 못 할 핍박을 우리에게 주지 않으십니다. 핍박을 통해 우리가 장차 받을 하늘의 상급을 더 크게 하시기 위해 핍박이 있는 것입니다. 핍박을 좋아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선 그 핍박을 통해 이 땅위에서의 삶만이 아닌, 영원한 하늘나라의 삶을 바라보게 하시고 그 나라를 위해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미래가 없는 축복은 진정한 축복이 아닙니다. 오늘 핍박 속에 있다할지라도 미래의 큰 상급을 바라보는 여기에 참된 축복이 있는 것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막10:29, 30)

우리가 팔복을 받고 빛과 소금이 되는 삶을 살아야 참으로 영원히 복이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이 땅에서 뿐 아니라 영원히 천국까지 복으로 넘치는 삶을 살게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도: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 우리 마음이 가난하게 하옵시고 애통하게 하옵시고 온유한 마음과 청결한 마음, 의에 주리고 목마른 마음, 긍휼히 여기는 마음, 화평케 하는 마음을 갖고 살게 하옵소서. 세상 철학을 따르지 말고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헛된 복을 쫓지 말고 하나님의 지혜와 진리를 따르는 우리되게 하옵소서. 성령이여 우리 마음을 지켜주시옵소서. 참으로 복받은 사람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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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 [이권희 작사. 이권희 작곡] 댓글[0]
찬송, 음악 (2012-05-28 오전 11:14:44) http://blog.somang.net/holylove/7368

사명 [이권희 작사. 이권희 작곡]

 

주님이 홀로 가신 그길 나도 따라가오

모든 물과 피를 흘리신 그길을 나도 가오

험한 산도 나는 괜찮소

바다 끝이라도 나는 괜찮소

죽어가는 저들을 위해 나를 보내길 바라오

아버지 나를 보내주오 나는 달려가겠소

목숨도 아끼지 않겠소 나를 보내주오

주님이 홀로 가신 그길 나도 따라가오

모든 물과 피를 흘리신 그 길을 나도 가오

험한 산도 나는 괜찮소

바다 끝이라도 나는 괜찮소

죽어가는 저들을 위해 나를 보내길 바라오

세상이 나를 미워해도 나는 사랑하겠소

세상을 구원할 십자가 나도 따라가오

생명을 버리면서까지 나를 사랑한 당신

이 작은 나를 받아주오 나도 사랑하오

/빛의 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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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5장 구주와 함께 나 죽었으니 댓글[0]
찬송, 음악 (2012-05-28 오전 7:04:35) http://blog.somang.net/holylove/7367

465장 구주와 함께 나 죽었으니

 

1. 구주와 함께 나 죽었으니

구주와 함께 나 살았도다

영광의 기약이 이르도록

언제나 주만 바라봅니다

2. 맘속에 시험을 받을 때와

무거운 근심이 있을 때에

주께서 그때도 같이하사

언제나 나를 도와주시네

3. 뼈아픈 눈물을 흘릴 때와

쓰라린 맘으로 탄식할 때

주께서 그때도 같이하사

언제나 나를 생각하시네

4. 내몸의 약함을 아시는주

못고칠 질병이 아주 없네

괴로운 날아니 기쁜 때나

언제나 나와 함께 계시네

<후렴>

언제나 주는 날 사랑하사

언제나 새생명 주시나니

영광의 기약이 이르도록

언제나 주만 바라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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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을 사랑하는 자 댓글[0]
안내, 알림 (2012-05-27 오전 10:21:49) http://blog.somang.net/holylove/7366

주님을 사랑하는 자

 

본문: 요21: 1- 17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 호수에서 또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셨으니 나타내신 일은 이러하니라 시몬 베드로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또 다른 제자 둘이 함께 있더니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니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그 날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이신 줄 알지 못하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 이르시되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 하시니 이에 던졌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이르되 주님이시라 하니 시몬 베드로가 벗고 있다가 주님이라 하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 내리더라 다른 제자들은 육지에서 거리가 불과 한 오십 칸쯤 되므로 작은 배를 타고 물고기 든 그물을 끌고 와서 육지에 올라보니 숯불이 있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였고 떡도 있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지금 잡은 생선을 좀 가져오라 하시니 시몬 베드로가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 올리니 가득히 찬 큰 물고기가 백쉰세 마리라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조반을 먹으라 하시니 제자들이 주님이신 줄 아는 고로 당신이 누구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예수께서 가셔서 떡을 가져다가 그들에게 주시고 생선도 그와 같이 하시니라 이것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이라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또 두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 하시고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영국의 한 시골 노인이 난생 처음 런던 관광을 왔습니다. 그는 그림에 조예가 깊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유명한 화실에 들러 이 그림 저 그림을 구경하다가 신앙이 독실한 대 화백이 필생의 걸작으로 그린 예수님의 상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앞에서 발길을 멈추었습니다. 경건하고 감격스러운 마음으로 한참 그림을 쳐다보다가 노인은 두 눈에서 두 줄기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는 고개를 숙인 채 움직이지 못하고 신앙을 고백했습니다. “오! 주여,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혼자 중얼거리는 것을 들은 관람객 중의 한 부인이 그 노인에게 가서 손목을 꽉잡으며 “나도 주님을 사랑합니다.”하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또 한 학생이 이 장면을 보고 “할아버지, 저도 주님을 사랑합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주님의 이름 아래서 그들은 서로 통했고 사랑을 고백했습니다. 삽시간에 칠 명의 사람들이 그 앞에 모여 예배를 드리는 것같은 분위기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주님을 향하는 뜨거움이 예수를 믿는 순간부터 항상 있어야 됩니다.

당신은 그리스도를 세상의 그 무엇보다 더 사랑합니까? 당신의 삶 속에서 육체의 일보다 성령의 열매가 더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까?

만일 그 어떤 것이라 할지라도 주님을 가장 사랑하는 자리를 빼앗아 버리면 우리는 그릇된 길에 서있는 것입니다. 참신앙이란 무엇일까요? 이는 하나님께 대한 애정, 사모, 앙모인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갈급함이 없는 신앙은 죽은 믿음이요, 관념과 지식에 불과한 것입니다. 온종일 주님을 바라는 생활을 합시다.

‘...주를 사랑하는 자들은 해가 힘 있게 돋음 같게 하시옵소서 하니라 그 땅이 사십 년 동안 평온하였더라’(삿5:31)

 

예수님이 부활한 뒤 제자들에게 세 번째 나타나셨습니다.(요21:1-3) 베드로를 중심으로 한 어부 출신의 제자들이 디베랴 바다에서 밤새 고기잡이를 했으나 고기를 잡지 못했습니다. 주님 없이 일한 제자들은 실패했습니다.(요21:4-8)

예수님이 나타나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에 순종해 제자들이 그물을 던졌더니 그물을 들 수 없을 정도로 고기를 많이 얻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이와같이 주님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우리는 축복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성도의 삶이 성공이냐 실패냐 하는 것은 예수님을 의지하고 사느냐, 예수님 없이 맥없이 사느냐 하는데 관건이 달려 있습니다.

또한 바다에서 육지로 올라와 보니 몇 가지 은혜의 사실이 있었습니다. 요한복음21장9절을 보면 고기를 잡은 제자들이 희희낙락해 육지에 올라와보니 숯불이 있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였고 떡도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몇 가지 비유적 의미를 되새겨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숯불입니다. 하나님은 불로 재를 사르는 역사를 하십니다. 실패한 제자들에게 새로운 사명을 주기 위해서는 성령의 불이 필요했습니다.

이사야가 죄를 회개할 때에 하나님은 숯불로 이사야의 입을 지지셨습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가 되었습니다. 제자들도 성공하려면 성령의 불을 받아야 했습니다. 숯불은 성령의 불로써 온전히 제물을 사르게 됩니다. 제물은 불타야 하나님에게 흠향돼 응답이 됩니다.

둘째, 떡입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느니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떡도 귀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더 귀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혼의 떡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육신의 떡을 준비하시면서 영혼의 떡도 준비하셨습니다. 영혼의 떡이란 바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셋째, 물에서 잡아 불에 구워진 생선입니다. 전에는 세상 멋대로 살던 죄인이던 사람이 예수님의 은혜로 세상에서 거듭나고 성령의 불로 태워지면 그는 변하여 향기를 내는 아름다운 성도가 됩니다. 그리하여 그는 주님의 뜻대로 살게 되고 주님께 바쳐진 제물처럼 됩니다. 숯불에 구워진 떡과 생선을 먹은 제자들은 이제 예수님으로부터 사명을 재확인 받게 됩니다.

주님께서 시몬 베드로를 찬찬히 보며 말씀하십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 양을 먹이라”(요21:15)하시고 또 두 차례 더 물으셨습니다.(요21:17-18)

베드로는 근심어린 표정이 됩니다. 이처럼 오늘 예수님이 당신에게 네가 다른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고 확인 하신다면 당신은 무엇이라 대답하시겠습니까?

베드로는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이에 예수님께선 나를 따르라 내 양을 먹이라고 하십니다. 여러분이 주님께 쓰임받는 귀한 그릇이 되려면 먼저 주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어느 날 나는 한 젊은이와 노년의 신사가 나누는 대화 한 토막을 우연히 엿듣게 되었습니다. “요즘 우리 젊은이들은 참 똑똑해요.” 젊은이의 말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원하는 곳은 어디든 갈 수 있잖아요? 돈도 더 많이 벌구요! 교육도 더 많이 받았고, 따라서 기회도 훨씬 더 많아요! 아버지 시대보다 사는 환경이 훨씬 좋죠.” 그 말에 노신사는 슬며시 웃었습니다. “그렇지만 한번 말해 봐라, 얘야!” 노신사는 사랑하는 젊은이에게 더할 수 없이 온화한 표정으로 이야기했습니다. “요즘 사람들이 예전 사람들보다 더 서로 사랑한다고 생각하니? 요즘 젊은이들이 내가 젊었을 때보다 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생각하니? 예전 사람들보다 요즘 사람들이 더 자신들의 신념에 충실하다고 생각하니?”

흥미 있는 질문이 아닙니까? 나는 이 두 사람의 대화가 분명 시사하는 바가 많다고 생각했습니다. 한편, 우리네 삶은 예전보다 나아진 듯합니다. 삶의 즐거움이 늘고 선택도 다양해진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무엇 때문에 삶이 나아졌다는 것입니까? 삶의 즐거움이 늘어났다는 것만으로 삶이 가치 있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까? 우리에게 진정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신실함은 단순한 헌신에서 나옵니다. 사랑에서 나옵니다. 논리적 결단이 아니라 마음에서 나옵니다. 신실함은 하나님이 그 백성에게 하신 약속이며, 또한 그 백성에게 받으시는 특권입니다. 그 신실함은 세상의 선물들처럼 비교되고, 구분되고, 평가되는 선물이 아닙니다. 신실함은 그저 분명한 목소리로 “주님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하는 선물입니다.

지금까지는 나 자신을 위해서 살았지만 이제부터는 내 영혼이 주님 영광 위하여 남은 생애를 바치게 하옵소서. 죄송합니다. 지금까지는 주님께 많이 대화(기도) 하지 않고 주님께 더 사랑을 고백하지 못해서.. 그러나 오늘은 주님을 향한 나의 마음을 전달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나의 생명을 바칩니다. 내 마음을 바칩니다. 나의 전부를 바칩니다. 주님! 긍휼히 여겨 주시고 나를 받으옵소서.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시18:1)

 

복음성가를 다 함께 부르겠습니다.

세상에서 천년을 사느니 내 주와 함께 하루를 살겠네

육에 속하여 천년을 사느니 영에 이끌려 하루를 살겠네

주를 사모하는 자 복이 있나니 주께 부르짖는 자 복이 있나니

주께 의지하는 자 복이 있나니 항상 주를 찬송하라

세상에서 천년을 사느니 내 주와 함께 하루를 살겠네

 

성경의 첫째 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마22:37, 38)

하나님은 우리를 잠잠히 사랑하시고 기뻐하십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습3:17)

성도여러분, 하나님을 사랑하지 아니하고 주님을 떠나면 실패만 거듭됩니다. 그러나 주님과 같이 동행하는 생활을 하면 성공과 승리를 차지하게 됩니다. 여러분 모두가 성령의 불에 태워져 변화된 성도가 되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쓰임받기를 축원합니다.

 


* 기도: 사랑하는 주님, 내가 몸과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기뻐하며 살고 하나님의 기쁨이 되기를 원합니다. 또한 내 발이 이르는 곳마다 주님의 사랑과 복음이 증거되고 전해지기를 원합니다. 내가 만나는 사람마다 복받게 하옵소서. 나의 몸과 마음을 온전히 주께 드리오니 나를 하나님나라 확장에 쓰임받게 하옵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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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하고 깨어 있으라 댓글[0]
시간, 기회 (2012-05-27 오전 5:59:25) http://blog.somang.net/holylove/7365

준비하고 깨어 있으라

 

본문: 마가복음13: 33- 37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그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함이라 가령 사람이 집을 떠나 타국으로 갈 때에 그 종들에게 권한을 주어 각각 사무를 맡기며 문지기에게 깨어 있으라 명함과 같으니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집 주인이 언제 올는지 혹 저물 때일는지, 밤중일는지, 닭 울 때일는지, 새벽일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 그가 홀연히 와서 너희가 자는 것을 보지 않도록 하라 깨어 있으라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은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라 하시니라’

 

물고기는 잠잘 때도 눈을 감지 않습니다. 죽을 때도 눈을 뜹니다. 사람들은 이 모습을 물고기 특유의 현상이라고 쉽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에게 깊은 교훈을 줍니다. 초대교회 시절,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핍박을 피해 로마 외곽의 지하동굴로 도피했습니다. 이곳은 원래 시체를 매장하는 곳이었습니다. 로마는 장례지를 신성불가침한 곳으로 여겼기 때문에 접근을 꺼렸습니다. 결국 기독교인들은 10대에 걸쳐 300년 동안 이곳에서 생활했습니다. 이곳이 바로 카타콤입니다. 사람들은 카타콤 벽면에 물고기 그림을 새겨넣었습니다. 그곳에 물고기를 그려놓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자나 깨나 영적으로 깨어 있으라는 메시지였는지도 모릅니다. 그리스도인은 항상 예비하고 깨어 있어야 헙니다. 겉사람은 후패할지라도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져야 합니다. 죽은 물고기는 강물을 거슬러 올라 가지 못합니다. 죽은 영혼으로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오직 준비하고 깨어있는 사람만이 천국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내일 닥칠 일을 계획하고 미리 준비합니다. 비가 올 것 같으면 우산을 준비하고, 학생은 열심히 공부함으로서 대학입시와 취직시험을 준비하며, 사업가는 각종 사고 예방과 사업 확충을 위해 계획하고 준비합니다. 이렇듯 만사에 준비가 필요합니다. 군인에게는 전쟁준비, 신부에게는 혼인 준비가 있어야 하듯, 인생에게는 세상을 떠날 준비가 더욱 필요합니다.

한 부자에게 예수 믿는 하인이 있었습니다. 이 부자는 이 하인을 천하 미련한 놈이라고 책망하다가, 한 번은 지팡이를 주면서 너보다 더 미련한 자를 만나거든 이 지팡이를 주라고 명령했습니다. 그 후 주인은 병석에서 신음하게 되었습니다. 하인은 묻기를 당신은 세상 떠나면 어디에 갈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했습니다. 그러자 주인은 아무 준비도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하인은 받았던 그 주인에게 도로 주면서 말했습니다. “당신이야 말로 제일 미련한 사람입니다. 사람이 수일간 여행의 길을 떠날 때도 준비가 있는데, 당신은 이 세상을 떠나면서 아무 준비가 없으니, 당신보다 더 미련한 사람이 어디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사람은 아무도 자기가 언제 죽을지 모릅니다. 준비가 안된 사람은 심판 때 지옥으로 떨어집니다. 그것보다 더 두려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준비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25장에 열처녀 비유의 말씀이 있습니다.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등에 기름을 준비하여 신랑이 올 때 맞이하였으나, 미련한 다섯 처녀는 졸다가 등에 기름이 없어 준비하러 간 사이에 문이 닫혔다는 비유의 말씀입니다.

이 세상에 제 아무리 잘나고, 똑똑한 사람도 내일 자기 앞에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모릅니다. 더구나 하나님 말씀에 그 마지막 날 곧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오리라 했으니, 도적은 밤중에 올는지, 닭울 때 올는지, 새벽에 올는지 주인이 알지 못하게 오는 법입니다.(벧후3:10-13) 따라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언제 임할는지 알 수 없는 주의 날을 대비하여 항상 깨어 준비하고 있어야 하겠습니다.

탈무드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임금이 하인을 만찬회에 초대했습니다.

그러나 언제 만찬회가 열릴지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슬기있는 하인은 “임금님의 일이니 언제든 만찬회는 열리겠지 나는 그 만찬회를 준비하자”하고 만찬회가 언제 열려도 좋도록 궁궐 문앞에 가서 기다렸습니다.

어리석은 하인은 만찬회를 준비하는 데 시간이 걸릴 것이므로 열리기 까지는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아 있다고 생각하고 아무 채비도 아니했습니다. 만찬회가 열렸을 때 슬기로운 하인은 얼른 문을 통과하여 만찬회에 참석할 수 있었으나 어리석은 하인은 때가 늦어 만찬회에 참석할 수 없었습니다. 피조물인 사람은 언제 불리어 갈는지 전혀 모릅니다. 창조주 하나님으로 부터 만찬회에 부름 받았을 때 당황하지 않도록 언제나 준비되어 있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습니다. 겨울이 닥치기 전에 먹을 것을 여름에 준비하는 개미에게서 지혜를 배워야 하겠습니다.(잠30:4)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누구며 그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군고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치 아니하는 자로다’(시24: 3- 4)

등산을 하기 위해선 여러 가지 장비가 있어야 합니다. 뒷동산에 올라갈 때는 아무 장비가 없어도 되지만, 지리산이나 설악산을 올라가기 위해선 어느 정도의 장비가 필요합니다. 히말라야 산의 경우는 웬만한 장비로는 어림없습니다. 암벽을 타거나 빙벽을 타려면 자일, 하켄, 캐러비너, 해머, 등자, 유마르, 피피, 피켈, 아이젠 같은 특수 장비가 있어야 합니다. 등산가로 유명한 허영호씨라 할지라도 이런 장비가 없이는 산에 올라갈 엄두를 내지 못할 것입니다.

여호와의 산도 마찬가지입니다. 여호와의 산에 오르기 위해서는 영적인 장비가 필요합니다. 손이 깨끗함, 마음이 청결함, 하나님께만 뜻을 둠, 맹세를 철저히 지킴(하나님께 한 맹세뿐 아니라, 사람들에게 한 약속도 포함합니다), 항상 기뻐하고 깨어 기도하는 것이 영적인 장비입니다. 산에 오르는 과정은 힘이 들고 어렵지만, 산에 올라간 후에 그 상쾌함을 맛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 거룩한 곳에 올라 영적인 상쾌함을 맛보지 않겠습니까?

‘누구든지 내게 들으며 날마다 내 문 곁에서 기다리며 문설주 옆에서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나니’(잠8:34)

 

미국 폭스사가 신문에 판매직 사원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냈습니다. 그런데 무려 1천5백 명의 지원자가 자기소개서를 보내왔습니다. 폭스사는 그 중에서 단 한 명의 직원만을 채용했습니다. 이 사람의 자기소개서는 간략했습니다.

‘저는 현재 가구점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어느 때라도 가구점을 한번 방문하시면 세일즈맨으로서의 능력을 금방 판단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가구를 사는 척하고 한번 방문해 주십시오. 제 머리는 빨간색이기 때문에 저를 알아보기가 쉽지만 저는 손님을 알아볼 수가 없어요. 저는 단지 당신을 평상시의 손님처럼 맞을 것입니다. 그리고 저의 판매실력과 손님에 대한 친절이 어느 정도인지를 금방 알게 될 것입니다. 그것을 보고 저를 채용해 주십시오’

항상 준비된 사람에게는 반드시 기회가 옵니다. 행운은 모든 사람에게 골고루 찾아옵니다. 그러나 그것을 붙잡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행운은 나비와 같은 것. 붙잡지 않으면 그대로 날아가 버립니다.

누가복음 12: 36절에 "너희는 마치 그 주인이 혼인집에서 돌아와 문을 두드리면 곧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과 같이 되라"하였고, 잠언에는󰡐지혜는 성문에서 일찍 기다리는 사람들을 만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지혜는 침대에서 흔들어 깨워야 하는 사람들을 방문하지 않습니다. 지혜는 준비되고 그 음성을 듣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과 만나 이야기 할 것입니다.

미국 휴스턴에 있는 복음장로교회 임관웅 목사는 5년전 미국인 교회를 빌려 개척교회를 시작했습니다. 미국인 교회의 목사는 페인트공으로 일하면서 교회에서 보수를 받지 않고 30여명의 신자를 대상으로 목회 사역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항상 밝은 표정으로 찬송하며 예배당을 청소하고 뜰의 잔디를 깎는 임 목사에게 존경심을 갖게 됐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침마다 무릎 꿇어 기도하고 성경을 연구하며 설교를 준비하는 임 목사에게 기쁜 마음으로 교회를 내놓았습니다. 미국인 목사의 말. ‘영적으로 항상 은혜로운 말씀을 먹이는 임 목사에 비해 나는 늘 식은 음식을 데워서 먹이는 종이었습니다. 이제부터 나는 집사로 봉사하겠습니다. 예배당은 복음교회로 등기 이전을 해주겠습니다.’

임 목사도 훌륭하지만 자신보다 더 훌륭한 종을 위해 스스로 자리를 비워주는 미국인 목사의 신앙과 용기도 아름답습니다. 하나님은 준비된 사람에게는 반드시 기회를 주십니다.

 

‘네가 무엇을 얻길 원하느냐’ 주님이 물으신다면 무엇이라 대답하시겠습니까? 망설임 없이 지혜를 구했던 솔로몬처럼 우리 역시 주님의 질문에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 삶에 가장 필요한 것을 구하기 전에 우리 삶에 가장 중요한 것을 구해야 합니다.

미국의 선박왕 토머스 달러는 스코틀랜드의 공장 지대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열두 살 때 학업을 중단하고 공장에서 직공으로 일했습니다. 스무 살 때는 목재회사에 입사해 재목을 베는 일을 했습니다. 그는 30대 중반에 목재운반선을 구입, 일약 세계적인 기선회사로 발돋움했습니다. 그가 선박을 구입할 것으로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어느 날 한 기자가 그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당신은 불리한 환경에서 어떻게 사업에 성공할 수 있었습니까. 그 비결을 좀 가르쳐 주시지요󰡓 토머스 달러는 웃으면서 대답했습니다. ’저는 열두 살 때 공장에서 첫 월급을 받았어요. 그것을 고스란히 저축했어요. 처음부터 저축하는 습관을 들인 것입니다. 저는 저축한 돈으로 작은 목재운반선을 구입했지요. 사업에 성공한 비결은 저축에 있었습니다‘ 성공은 준비된 사람에게 찾아옵니다. 저축하는 사람에게는 기회의 문이 항상 열려 있습니다.

세기적인 과학자 뉴턴이 말년에 기억상실증에 걸려서 그 많던 지식을 망각해 버렸습니다. 답답해하던 제자들이 안타깝게 묻습니다.

‘이제 와서 선생님이 알고 있는 것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뉴턴은 여유 있게 대답합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내가 죄인이라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예수께서 내 구주라는 사실이다. 이것 외에 더 무슨 지식이 필요하느냐?’ 세상이 아무리 복잡할지라도 신앙인은 무엇보다도 두 가지를 준비해야합니다. 내가 죄인이라는 것. 이를 인정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용서하고 배려하며 겸손할 수 있습니다. 또한 예수가 내 구주라는 것. 환경에 요동하지 않고 조용히 주를 기다리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쓰십니다. 두 가지가 준비된 사람을 쓰십니다. 자신이 죄인됨을 인식하고 예수가 내 구주임을 믿는 사람, 그로 인해 계시에 절대 순종하는 믿음의 사람을 찾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생의 겨울이 오기 전에 기름을 준비해야 합니다.

기드온의 군대에는 모두 1만 여명의 용사가 자원했지만, 기드온은 주위를 살피며 물을 마시는 300 명만 선택하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이런 경우를 통해 알 수 있는 점은, 부름 받은 사람은 많지만 선택된 사람은 적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손들고 자원하는 사람이 아니라 준비된 사람을 선택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모든 관심을 기울이십니다. 여러분의 행동과 걸음걸이, 작은 마음의 생각까지도 주님께서는 놓치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여러분을 면밀히 살피시며 준비된 자의 면모를 발견하길 원하십니다. 사람 앞에서가 아니라 주님 앞에서 당당해 지시길 바랍니다. 주님의 용사로 지목 받는 주님 앞에 준비된 여러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 기도: 준비된 자를 귀히 쓰시는 하나님, 여호와의 산에 오를 수 있는 영적 장비를 허락하소서. 저로 하여금 주께서 쓰시기에 부족함이 없게 하시고 주의 일을 감당하는 동안에 주의 도우심을 얻게 하소서. 게으름 때문에 주님께서 허락해 주신 시간들을 헛되게 사용했던 것을 용서해 주시고, 제 안에 있는 게으름의 요소들을 철저히 제거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천국 잔치 때 입을 예복을 준비하며 살게 하소서. 기회를 놓치는 어리석은 자 되지 않게 하소서. 항상 깨어 있어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쁨으로 맞이하는 자녀가 되게 하소서. 오늘도 주님이 주신 지혜로 시대를 분별하며, 맡겨진 일과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충성된 사람이 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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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따라오라 댓글[0]
제자, 군사. 성도 (2012-05-26 오전 8:08:26) http://blog.somang.net/holylove/7363

나를 따라오라

 

본문: 마4: 19- 22

 

‘메테오라’는 그리스 산악지대의 험한 바위산 꼭대기에 있는 수도원 사회입니다. ‘공중에 떠있는 수도원’이라는 뜻이며,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습니다. 과거에 수도사들이 숨어 지내면서 필사한 성경사본들이 그곳에 전시되어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많은 순교자들이 어떻게 순교를 당했는지 생생하게 묘사한 그림들도 전시되어있습니다. 톱에 잘리거나 피부를 벗겨내는 고통으로 순교당한 처참한 장면은 차마 볼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 옛날 주님을 따르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을 따랐고 주님을 위해 순교의 자리까지도 갔습니다. 복음이 전파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순교자들의 피가 뿌려졌는지 모릅니다. 세례 요한도 복음을 전파하다가 순교했습니다. 우리에게 복음이 되어주신 예수님도 복음이 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고기잡는 어부들을 부르셨습니다.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막1: 17).”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에 순종한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복음을 위한 고난의 길을 걸었고, 순교하였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따르면서도 무심코 영광과 축복, 승리와 기적의 길을 원합니다. 복음을 위한 고난과 순교의 길은 회피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성공과 축복을 구합니다. 예수님이 행하시는 권능을 보기를 원합니다. 귀신을 잠잠케 하고, 소경된 눈을 뜨게 하며, 죽은 자를 살리는 기적을 요구하면서 주님의 뒤를 따르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나를 따라오라”는 주님의 부르심은 영광을 위한 부름이 아니라 복음을 위한 부름이었습니다. 복음에는 보혈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따르기로 결심하는 우리들에게도 피가 요구됩니다. 주님을 위하여 복음이 이 땅 위에 선포되기를 위해 우리의 피가 요구됩니다. 우리의 피와 땀과 눈물과 헌신 위에, 복음은 더욱 널리 전파될 것입니다. 오늘도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를 따라오라.” 주님의 부르심에 지금 곧 응답해야 하지 않을까요?

 

여러분은 과연 본문에 나오는 이 제자들처럼 곧 그물을 버려두고... 곧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 예수를 따를 결단을 하실 수 있습니까?

주님께서 부르신 자들은 순박한 어부들과 세리였습니다.(마9:9) 그러나 이들이 마지막 이 한 가지 결단이 없었다면 그들은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곧바로 옛 생활을 청산하는 결단인 것입니다.

여기서 ‘곧’ 이란 말은 응답이 즉각적이고 신속했다는 것을 뜻합니다. 어부들의 생존수단인 그물을 즉각적으로 버렸다는 사실은 예수님의 권위와 능력이 절대적이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의 제자입니까? 그걸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제자가 되었다는 증거가 무엇일까요? 제자가 된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할지 모릅니다. 어떤 사람들은 확신합니다. 예수님을 만난 경험이 확실하다는 겁니다. 확실하게 믿을 수 있다면 좋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확신이 줄어든다는 느낌이 들 겁니다. 그래서 다시 뜨거운 믿음을, 그런 확신을 달라고 기도하면서 매달립니다. 믿음이 떨어지는 상황과 올라가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갈등을 느낍니다. 교회생활의 경력은 많아도 예수님의 제자라는 사실에 아무런 감동도 느끼지 못합니다. 단순히 교회 조직의 한 지체라는 사실에만 매달려서 신앙생활을 합니다. 이런 현상은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하게 모르기 때문에 벌어집니다.

 

예수님은 12명의 제자를 두셨습니다. 인류의 다른 스승들도 제자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12제자들은 제자가 되는 과정이 특이합니다. 일반적으로는 제자가 스승을 찾아와서 제자로 삼아달라고 요구하고 스승이 허락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열 두 제자는 예수님이 직접 부르셨습니다. 물론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을 직접 찾아온 사람들도 있습니다만 그들은 예수님에게 실망해서 돌아갔습니다. 예수님이 주도적으로 부른 이들만 제자가 되었습니다. 열 두 제자는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따라나선 이들입니다. 오늘 본문과 마가복음1장에는 네 명의 제자를 부르신 사건이 나옵니다.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님이 갈릴리 해변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가 그물질을 하는 것 예수님이 보시고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곧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이어서 같은 어부 형제인 야고보와 요한도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아버지, 품꾼, 배를 다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라나섰다고 합니다.(막 1:16-20) 이런 이야기를 읽으면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제자들은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들 앞에서 우리 자신이 부끄러워지기도 합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아무리 예수님의 영적 카리스마가 탁월하다고 해도 부름을 받자마자 곧 따라나섰다는 건 좀 과장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여기서 제자들이 언제 자신들의 결심을 실행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제자들이 결국 예수님의 제자로 나섰다는 사실, 즉 예수님이 선포한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곧 그물과 배와 아버지를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는 결단을 단행했다는 사실입니다.

시몬 형제와 야고보 형제들의 행동을 보십시오. 시몬 형제는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고, 야고보 형제는 아버지 세베대, 품꾼, 배를 ‘버려두고’ 나섰습니다. 야고보 형제 집안은 시몬 형제 집안에 비해서 살림살이가 넉넉했던 것 같습니다. 버려둔 게 더 많습니다. 어쨌든지 최초로 예수님의 제자로 나선 이들은 그 이전에 자신들의 호구지책이었던 모든 것, 그리고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있던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이런 결단이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닙니다. 이들은 평생 고기만 잡아먹고 살았습니다. 그것이 삶의 모든 것이었습니다. 고기를 많이 잡은 날은 기분이 좋았고, 못 잡은 날은 나빴습니다. 고기잡이를 포기한다는 것은 자신의 삶을 포기하는 것과 같습니다. 자기들의 삶만 포기하는 게 아닙니다. 이들 때문에 가족들도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합니다. 가족들의 생계조차 크게 어려움을 당할지 모릅니다. 그래도 이들은 그것을 버려두었습니다. 기존의 삶을 포기한 것입니다. 제자가 된다는 것의 첫 걸음이 바로 이것입니다. ‘버림’입니다.

 

도대체 버린다는 게 무슨 뜻일까요? 복음서에는 이 말씀 이외에도 버리라는 말이 흔하게 나옵니다. 그중 하나만 보겠습니다.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막 10:29, 20)

 

지난 기독교 역사에서 세상의 모든 소유를 버리고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옛 것을 버리고 새출발한 이들은 많습니다. 모든 걸 버리고 제자로 산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그걸 원하실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목회자가 된다고 생각해보십시오. 농사도 짓지 않고, 소도 키우지 않고, 공장도 다 문을 닫고, 결혼도 없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인류 역사는 곧 끝장납니다. 자신의 형편에 따라서 목회할 사람은 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세상살이를 열심히 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버림의 영성은 목회자들에게만 해당되지 일반 성도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라고 한다면 당연히 버림의 영성에 참여해야 합니다.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엡4:22)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골3:9) 옛 사람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죄를 벗어 버려야 합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히12:1)

주님의 길을 동행하기 위해서는 세상의 육신적인 일들을 버려야 합니다. 즉 새출발하기 위해서 이전 것을 뒤로 포기하고 잊어야 합니다. 옛 사람을 버리고 주를 따라야 합니다.

 

마가복음 1장 14절 이하에는 구체적으로 제자를 부르는 사건 앞에 또 하나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세례 요한이 잡힌 후에 예수님은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셨다고 합니다. 전하신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 1:15)

이 말씀에서 키워드는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받아들이기 위해서 필요한 일은 두 가지입니다. 회개와 믿음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회개가 바로 앞에서 말씀드린 버림입니다. 마가복음 기자는 예수님 사역의 핵심을 마가복음 1장 15절에서 언급한 뒤에 그걸 구체적으로 제자들의 부르심에서 확인한 것입니다. 회개가 곧 버림이며, 버림이 곧 회개입니다. 회개가 무엇인지를 알면 버림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회개는 헬라어 메타노이아입니다. 이 단어는 돌아선다는, 또는 방향을 바꾼다는 뜻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향해서 삶의 방향을 바꾸는 것이 회개입니다. 사람들은 보통 회개를 자기가 잘못한 행동을 뉘우치는 것쯤으로 생각합니다. 이렇게 되면 회개가 희석화될 수 있습니다. 어렸을 때 남의 과수원에 가서 복숭아나 사과를 몰래 따먹은 것을 회개한다고 합니다. 어린이들을 집회에서 자기의 잘못을 공책에 적어 불에 태우는 이벤트를 벌이기도 합니다. 청소년들과 심지어는 어른들의 부흥집회에서도 그런 방식으로 회개를 유도합니다. 수년 전에 한국에서 가장 큰 교회의 담임 목사를 중심으로 몇몇 분들은 자기의 잘못을 회개한다는 퍼포먼스를 펼쳤습니다. 회초리로 자기 종아리를 치는 겁니다. 자신의 부도덕성, 파렴치한 행위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회개가 아닙니다. 단순히 반성입니다. 이런 반성은 기독교 신앙이 아니라 다른 데서도 얼마든지 일어나는 겁니다. 회개는 교양 차원의 반성이 아니라 영혼 차원의 돌아섬입니다. 삶의 무늬가 아니라 삶의 실체가 돌아서는 겁니다. 나 중심에서 예수님 중심으로 사는 것입니다. 이기적인 삶에서 하나님 나라로 삶의 중심을 옮기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 통치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의와 평강과 희락입니다.(롬14:17) 하나님은 생명의 힘으로 통치하십니다. 그 하나님의 통치로 삶의 중심을 옮기는 것이 회개입니다. 이런 말이 멀게 느껴지는 이유는 지금 하나님보다는 자기를 삶의 중심에 놓고 살아가는데 길들여졌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확대하는 것에만 마음이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돈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에만 예민합니다. 물론 우리가 세상에서 살아가려면 돈이 필요합니다. 여유 있게 살아가려면 더 많은 돈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 나라는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를 방해할 수도 있습니다. 돈과 하나님을 겸해서 섬길 수 없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우리의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보면 하나님 나라에 관심이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돈이 제일 좋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 겁니다. 신앙생활도 돈이 없으면 안 된다고 말입니다. 돈이 여러분의 영혼을 만족시켜주는지 잠시 생각해보십시오. 10분 동안 숨을 쉬지 않으면 10억 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합시다. 그걸 선택할 사람이 있을까요? 개척 교회였을 때 오히려 영적으로 만족했는데, 큰 교회가 되어서 마음들이 갈가리 찢기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즉 하나님의 생명 통치가 결정적으로 드러난 사건은 예수님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 생명으로 불러내시어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증명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으로부터 생명으로 자리가 옮겨졌습니다. 하나님은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여기서 시작됩니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를 향해서 돌아선다는 것은 곧 예수님을 향해서 돌아서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회개입니다. 예수님에게 일어난 하나님의 구원 통치의 빛으로 영혼의 관심을 돌리는 것이 회개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르실 때 사람의 내면에 있는 진리를 발견하라고 하지 않고 “나를 따라오라.”고 하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을 향해서 삶의 방향을 바꾼다는 것, 그를 따른다는 것, 그의 제자가 된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에게 일어난 하나님의 생명통치에 모든 것을 맡긴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에게 현재의 실존만이 아니라 죽음 이후의 미래까지 완전히 맡긴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서 구원의 길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을 통해서만 부활생명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만 자신의 운명을 맡긴다면 여러분은 이제 세상의 그 어떤 대상에게도 자신의 영혼을 맡기지 말아야 합니다. 맡길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 한 분에게만 순종함으로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집니다. 역설적이게도, 아니 당연하게도 예수님을 향한 의존성이 깊어질수록 이 세상에서 우리의 자유는 더 확대됩니다. 그걸 아는 사람은 “나를 따라오라.”는 예수님의 부르심 앞에서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라갑니다. 이것이 여러분과 제가 선택한 ‘제자의 길’입니다.

"시몬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가는 곳에 네갸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오리라"(요 13:36)

베드로에게 "나를 따라오라" 는 주님의 말은 생소한 것이 아닙니다. 3년 전에도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이 말을 하셨습니다. "나를 따라오라."(마4:19) 이 때 베드로는 예수님을 쉽게 따라 갈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매력이 그를 사로잡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이 "나를 따라오라"고 하셨을 때에는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말에는 자신의 자아를 죽여야 하는 내적 순교의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내적순교를 하며 자신을 포기할 때에라야 성령을 받을 수 있습니다. 베드로의 영적 돌파는 자신을 철저히 죽이며 주님을 따르겠다는 결단을 할 때 일어났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16:24)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서는 내가 죽어야 합니다. 목사가 죽어야 교회가 산다는 말이 있습니다. 목사가 가지고 있는 고집, 편견, 우상, 욕심을 버려야 진리를 발견하고 올바로 복음을 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갈5:24)

 

김남준 목사는 자기 부인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기 깨어짐이란 신자 안에 있는 부패한 자기 사랑이 파괴되는 것을 의미 하는데, 이는 죄에 대한 사랑과 거기에 기반을 둔 자기 의에 대한 신뢰가 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거듭난다는 것은 세상이 옷 입혀준 옛사람의 모든 가치와 기준, 습관과 형식에서 벗어나 본래 창조된 목적에 따라 하나님의 의의 옷을 입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새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때 우리는 반드시 자기부인의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존재 자체에 대한 회의나 부정이 아닌 세상의 가치관이나 욕심으로 물든 거짓된 자아를 부인하고오직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의의 길을 갈 것을 결단해야 합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쫓아가는 길, 이것이 진리의 길이요, 하나님께로 가는 영원한 생명길입니다.

 

또 성경은 말씀합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12:24)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막8:35)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눅14: 26)

우리가 주안에서 아름다운 열매를 많이 맺고, 맡은 본분을 다하는 주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항상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목숨을 버릴 마음의 각오가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 목숨을 버릴 각오가 되어 있었습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20:24)

 

우리 모두 주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먼저 회개하고 삶의 방향을 바꾸어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목숨을 버릴 각오가 되어 있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기도: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으신 주님, 우리가 지은 모든 죄를 고백하오니 주님의 보혈로 사하여 주시고, 주님 믿는 성도로서 맡은 본분을 다하기 위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갈 수 있는 귀한 믿음과 성령충만함을 주시옵소서. 온 교회가 회개하고 부흥하는 역사가 나타나게 하시고 우리 모두가 하나님 나라 확장에 쓰임받는 일꾼되게 하옵소서. 선한 목자되는 주님! 나를 따라오라 불러주시니 감사합니다. 주님을 따라 영혼을 살리는 일에 동참하게 하소서. 우리에게 영육간에 강건하게 하시고,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고 그들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게 하옵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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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를 부인하고 주를 따르라 댓글[0]
십자가, 순교 (2012-05-25 오전 9:27:14) http://blog.somang.net/holylove/7362

자기를 부인하고 주를 따르라

 

본문: 마16: 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움베르토 에코의 저명한 소설 장미의 이름 에는 회자되는 유명한 문구가 있습니다.

"진리를 위해 죽을 수 있는 자를 경계하라." 이 책의 등장인물인 윌리암 수사에 따르면 그들을 경계해야 하는 까닭은 "진리를 위해 죽을 수 있는 자는 대체로 많은 사람을 저와 함께 죽게 하거나, 때로는 저보다 먼저, 때로는 저 대신 죽게 하는 법" 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엄밀하게는 진리를 위해 죽일 수 있는 자를 경계해야 합니다. 무릇 기독교의 가장 기본적이고 원초적인 진리는 자기 부인입니다. 섬뜩할는지 모르겠지만 자기를 죽이는 것이 신앙의 첫 걸음입니다. 나를 부인하고 새로운 나로서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위해 자신을 죽일 수 있어야 진리를 누리게 됩니다. 이런 자기 부인이 없는 신앙은 끊임없는 자기 확장의 재생산이라는 경로를 걷게 됩니다. 자기 부인 없는 신앙은 늘 타자를 부인합니다.

한번은 <런던타임즈>가 저명한 작가들에게 "이 세상에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동일 주제로 에세이를 부탁했다고 합니다. 그중 한 사람이 체스터턴(G.K, Chsterton)입니다. 그의 대답은 역사상 가장 짧고도 가장 강력한 것이었습니다. "나입니다" (I am)

오늘날 사람들은 너무나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합니다.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딤후3:1-2)

자기를 부인하고 거듭나지 못한 사람이 하나님의 큰 은사나 권능을 받으면 그 은사와 권능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고 교만하여지거나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사욕과 자기 명예를 위해 사용하게 됩니다. 예를 들면 자아가 죽지 않은 사람이 큰 교회 담임목사가 되면 교회의 독재자가 되거나 삮군목자가 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서는 내가 죽어야 합니다. 때로는 목사가 죽어야 교회가 삽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고집, 편견, 우상, 욕심을 버려야 진리를 바로 알고 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갈5:24)


마요네즈와피클 그리고 케첩 등으로 전 세계를 석권한 하인츠 식품 회사의 창시자 헨리 존 하인츠는 1919년 세상을 떠나기 직전, 자신의 어머니인 애너 마거레타 하인츠(Anna Mararetta Heinz)를 위해 예배당을 건립하라는 유언을 자식들에게 남겼습니다. 이에 하인츠의 자녀들은 5년에 걸친 대공사 끝에 피츠버그 대학 캠퍼스 내에 자신들의 부친과 할머니를 위한 대예배당을 완공하고, 그 이름을 ‘하인츠 기념 예배당’(Heinz Memorial Chapel)이라고 붙였습니다. 그 이후, 그림처럼 아름다운 그 예배당은 피츠버그의 상징물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예배당을 직접 찾아가 그 어느 곳을 둘러보아도, 심지어는 교회 안내서에서까지도 예수 그리스도를 찾아볼 길은 없습니다. 물론 거기에도 목사가 있고 주일마다 예배가 드려지고 있지만, 어느 모로 보아도 그 예배당은 이름 그대로 주님과는 전혀 무관한 오직 하인츠의 예배당일 따름입니다. 하인츠 예배당은 오늘날의 교회가 주님의 교회이기보다는 세상에서 출세하고 성공한 사람들의 교회가 되어 있는 현실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주님을 믿는다는 것은 나 중심의 사고에서 주님 중심으로, 세상을 압도하는 논리에서 영원의 논리로 사고의 축이 바뀌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속적 사고방식이나 자기 과신의 부인 없이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는 길은 있을 수 없습니다. 진리의 좁은 문을 선택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세속적 사고의 넓은 문을 포기했음을 뜻합니다. 바로 여기로부터 그리스도인의 순결과 거룩이 샘솟는 법입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20:28)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자존심을 내려놓는다는 의미입니다. 사람들에게 금전적인 어려움, 육체적인 고통보다 더욱 더 힘든 일이 있다면 자존심이 상할 때일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자기를 부인하라! 자존심을 내려놔라”

우리 주님은 자기를 부인하며 사신 모델이십니다. 사람들은 주님을 향하여 손가락질하고 침을 뱉고, 빰을 때리는 온갖 능욕과 멸시를 했지만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으시며 털깎는 자 앞에 있는 양과 같이 침묵하셨습니다.

자기를 부인하며 십자가를 지고 살 때 다른 사람들은 알아주지 않아도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다 보시고 들으시고 아시므로 전지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이며 무소부재하신 영광의 하나님이시고 모든 복의 근원아신 하나님, 영원한 사랑의 하나님이며, 은밀한 중에 보시고, 은밀한 중에 갚아주시는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이 갚아 주실 것입니다.

자기를 부인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는 것이 하나님 사역의 원리입니다. 광야 학교에 입학한 사람은 누구나 자기 부인의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자기 부인은 자기 무시가 아니며, 지나친 자기 비하도 아닙니다. 자기 정체성을 상실하는 것도 아니고, 자기 멸시도 아닙니다. 자기 부인은 자기 정체성을 분명히 인식하면서 자기를 부인합니다. 그 대표적인 모델이 바로 우리 주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에 대한 분명한 ‘자아인식’이 있었습니다. 주님은 하나님 아버지를 보여 달라는 빌립에게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느니라(요14:9)”고 하시며 자신이 곧 하나님이신 것을 분명히 밝히셨습니다. 그러나 십자가를 앞에 두고서는 주님은 마치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침묵으로 일관하셨습니다. 죽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불법 재판 앞에서는 어땠습니까? “네가 그리스도냐?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라는 질문 앞에서 주님은 그들이 책잡으려는 것을 뻔히 아시면서도 긍정으로 대답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주님은 때로 침묵과 긍정으로 ‘예수님 자신이 곧 그리스도요 만왕의 왕이라는 사실’을 결코 숨기지 않으셨습니다. 자기 스스로에 대한 분명한 이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자기를 부인하셨습니다. 여기에 우리 주님의 위대함이 있습니다. 자신이 곧 하나님이시면서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취하시고, 자기를 낮추시며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자원해서 십자가를 지셨던 것입니다(빌2:7-8). 여기에 ‘자기 부인’의 위대함이 있습니다. 하나님으로서 자기를 부인하신 예수님, 그것만이 하나님의 구속의 사업을 완성하는 일이었기에 죽기까지 자기를 쳐서 부인하신 것입니다.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자기를 부인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자기 존재의 가치를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자기를 부인해야 할 때 그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모세는 자기 존재에 대한 가치를 잘 알았던 사람입니다. 그는 애굽 궁중의 40년 생활에서 모든 학술을 다 익혔습니다. 육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잘 훈련받은 유능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모든 학문에 통달했고, 지도력을 습득하기까지 철저히 자기를 훈련하고 절제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모세는 자신이 누구이며, 어떤 일을 해야할 것인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성경은 모세가 40세 되었을 때의 생각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 형제들이 하나님께서 자기의 손을 빌어 구원하여 주시는 것을 깨달으리라고 생각하였으나 저희가 깨닫지 못하였더라(행7:25)”.

모세는 애굽 사람을 죽인 후에 자기 동족 이스라엘이 그의 숨은 애국심을 알아주기를 내심 기대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것을 깨닫지 못했다는 내용입니다. 이 말씀 속에는 모세가 이미 40세에 자기 존재에 대한 인식, 사명에 대한 인식이 분명히 있었음을 암시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자기 존재를 인정하는 데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존재를 부인하는 데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부인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는 것이 하나님 사역의 원리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광야에서 자기를 부인하는 훈련을 받아야 했습니다. 모세는 광야에서 자기 증오가 아닌 자기 부인을 함으로써 자기 성취나 자기실현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고 실현하는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막8:34)”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허물과 죗값을 치르기 위해 대신 죽으셨습니다. 십자가는 남을 위한 자기희생입니다. 남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 자기가 수치를, 남을 평안하게 하기 위해 자기가 고난을, 남을 살리기 위해 자기가 죽는 것입니다. 기독교 2000년 역사에서 어두운 밤하늘에 빛난 별과 같은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이 보내는 곳에서 천국의 비밀을 가르치며 복음을 전파하며 병든 자를 고치는 일을 위해 자기의 모든 것을 희생하는 자들입니다. 자기 이익을 위해 남을 해롭게 하는 십자가의 원수인 내가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합니다. 십자가를 져야 부활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좇는 길은 날마다 자신을 부인하는 데서부터 출발합니다. 자기 부인을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김남준 목사는 자기 부인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기 깨어짐이란 신자 안에 있는 부패한 자기 사랑이 파괴되는 것을 의미 하는데, 이는 죄에 대한 사랑과 거기에 기반을 둔 자기 의에 대한 신뢰가 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거듭난다는 것은 세상이 옷 입혀준 옛사람의 모든 가치와 기준, 습관과 형식에서 벗어나 본래 창조된 목적에 따라 하나님의 의의 옷을 입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새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때 우리는 반드시 자기부인의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존재 자체에 대한 회의나 부정이 아닌 세상의 가치관이나 욕심으로 물든 거짓된 자아를 부인하고오직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의의 길을 갈 것을 결단해야 합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쫓아가는 길, 이것이 진리의 길이요, 하나님께로 가는 영원한 생명길입니다.

또 성경은 말씀합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12:24)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막8:35)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눅14: 26)

우리가 주안에서 아름다운 열매를 많이 맺고, 맡은 본분을 다하는 주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항상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목숨을 버릴 마음의 각오가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 목숨을 버릴 각오가 되어 있었습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20:24)

우리 모두 주의 일을 위해서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목숨을 버릴 각오가 되어 있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기도: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으신 주님, 우리가 지은 모든 죄를 고백하오니 주님의 보혈로 사하여 주시고, 주님 믿는 성도로서 맡은 본분을 다하기 위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갈 수 있는 귀한 믿음과 성령충만함을 주시옵소서. 온 교회가 회개하고 부흥하는 역사가 나타나게 하시고 우리 모두가 하나님 나라 확장에 쓰임받는 일꾼되게 하옵소서. 우리에게 영육간에 강건하게 하시고,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고 그들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게 하옵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빛의 사자(한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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