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5-19 오전 9:07:12)http://blog.somang.net/holylove/7360
지옥은 있습니다.
본문: 요한계시록20: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2012년 5월 18일 오후 방송된 SBS TV 궁금한 이야기 Y에서는 최진실 지옥의 소리에 대해 방송했습니다. 방송내용은 이러합니다 제작진에게 故 최진실의 지인이 찾아왔습니다. 그는 "2주 전에 영상파일을 받았다"며 "몇 초 안되지만 섬뜩합니다. 정말 최진실 같았다"고 말하며 음성 파일을 들려줬습니다. 그 음성은 최진실 지옥의 소리로 불리는 파일로 "나 좀 꺼내주세요. 자살하지 마세요"라는 절규가 담긴 끔찍한 소리가 담겨있습니다. 제작진은 이 파일의 출처를 찾아냈고 만든 이는 한 교회의 목사였습니다. 그 단체는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몇몇 사람들이 지옥의 문을 열 수 있는데 내가 지옥문을 통해 최진실을 봤다"며 "거기에서 최진실이 당하고 있는 끔찍한 벌을 녹음했다"고 말했습니다. 목사는 "김수환 추기경도 보고 김정일, 김대중 대통령도 지옥에 있다"고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늘어놨습니다. (중략) 나름대로 故 최진실이 지옥에서 전한 메시지가 담긴 음성 파일에 대해 실체를 파헤쳤다고 합니다.
저는 그 목사가 이야기하는 음성 파일 등의 진실여부는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지옥은 엄연히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지옥은 있습니다. 지옥은 하나님도 없고 사랑도 기쁨도 없는 밤낮 괴로움을 받는 곳입니다. 지옥은 예수 믿지 않는 사람이 들어갑니다.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범하는 죄 중 가장 크고 두려운 죄가 불신앙의 죄입니다. 회개하고 예수 믿으십시오. 그리고 지옥은 어떤 사람이 갑니까?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계21:8) 자살은 살인과 같은 행동입니다. 결코 자살하면 안됩니다. 죄의 결과는 실로 무섭습니다.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퍅게 됨을 면하라’(히3:1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6:23)
희랍신화에 보면 지옥에서 고생하는 인물 중에 탄타로스와 시지프스가 제일 유명합니다. 부르기아의 왕이었던 탄타로스는 무릎까지 잠기는 물속에서 있는데 바로 코 끝에는 먹음직스런 열매가 달린 나무가지가 드리워져 있습니다. 그러나 탄타로스가 목이 말라 물을 마시려고 허리를 굽히면 물은 금새 땅 밑으로 빨려 들어가고 과실을 따먹고자 손을 뻗치면 나무 가지는 바람에 날려서 높이 올라가고 맙니다. 그래서 탄타로스는 과실과 물을 눈앞에 보면서도 영원히 굶주림과 갈증에 시달려야만했습니다. 그리고 고린도의 왕으로서 알베르 까뮤의 소설에서 부조리의 영웅으로 찬양 받은 시지프스는 가파른 비탈길에서 커다란 바위를 밀어 올리는데 힘을 다하여 꼭대기까지 밀고 올라가면 바위는 다시 아래로 굴러 떨어져 버립니다. 즉 그는 영원한 노역에 종사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모두가 지옥의 무한한 고통을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성경은 지옥에 관해 여러 곳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장애인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곧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막9: 43- 47)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마10:28)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벧후2:4) (생략)
그러면 교회만 다니면 다 천국에 갑니까? 아닙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7:21, 22) 믿는다고 말하면서 행함이 없고 아무리 교회를 다녀도 이런 사람은 천국과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거듭나야 합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3: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3:5)
2, 어린 아이와 같아야 합니다.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18:3)
3. 예복과 기름을 준비해야 합니다. ‘임금이 손님들을 보러 들어올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이르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그가 아무 말도 못하거늘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하니라’(마22:11- 13) ‘그들이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오므로 준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마25:10)
4. 회개해야 합니다.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눅13:3) ‘너희도 정녕 이것을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엡5:5) 사람들은 지옥에 관한 이야기를 듣기 싫어합니다. 그러나 지옥은 엄연히 존재합니다. 지옥에 가면 절대 안됩니다. 지옥에 가지 아니하려면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를 용서하시고 구원하여 주십니다.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시34:18)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사55:7)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요일1:9-11) ‘그러므로 너의 이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혹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행8:22)
저는 이 말씀을 전하면서 부끄럽게 생각하는 것은 지옥이 있고, 많은 불신자들이 지옥에 간다고 알고 믿으면서도 그들을 구하려고 복음 전파에 힘쓰지 아니한 것입니다. 이제부터라도 우리 모두 기도와 전도하기를 쉬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행5:4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딤후4:2-5)
* 기도: 참회의 눈물을 아름답게 보시는 주님, 우리에게 진실로 회개하는 마음을 주셔서 우리의 죄를 애통해 하고 비천함을 고백하게 하소서. 영육 간에 병든 것이 없게 지켜 주시고 회개할 것이 있을 때 미루는 잘못을 범하지 않게 인도하여 주옵소서. 그리고 주님의 사랑의 매를 감사합니다. 사랑의 매를 맞으면서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범치 말게 도와주옵소서. 항상 나의 마음이 영적으로 민감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깊으신 사랑과 임재를 깨닫게 하옵소서.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진실한 신자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나의 어머님 이영순 여사댓글[0]
은혜, 구원
(2012-05-14 오전 10:50:31)http://blog.somang.net/holylove/7351
나의 어머님 이영순 여사
본문: 요19: 25- 27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어머니와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오늘은 교회에서 어버이 주일입니다. 부모님 은혜에 감사하는 날입니다. 어버이 하면 아버지와 어머니를 생각합니다. 그런데 나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없습니다. 나의 아버지는 6. 25때 공산군에게 단지 부자라는 죄목으로 강제로 납치당해 북쪽으로 끌려가셨기 때문입니다. 마리아가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목격했듯이 나의 어머니는 죄없이 끌려가는 아버지를 보면서 통탄하셨습니다. 이렇듯 나의 어머니는 남편을 잃고 어린 5남매를 이끌고 서울에서 제주도까지 피난을 갔었습니다. 말할 수 없는 어려움을 겪으시면서도 나의 어머니는 우리 5남매를 훌륭하게 키우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나의 어머니를 누구에게나 자랑합니다. ‘엄마, 어머니’라는 말은 우리가 최초로 배운 말로, 우리의 안식처요, 피난처였습니다. 나의 어머니는 항상 간절한 기도와 사랑으로 우리를 키우셨습니다. 여자는 약하지만 참으로 어머니는 강합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고 희생적인 사랑입니다. 어머니의 은혜를 우리 모두 잊지 맙시다. 지금은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면 불효했던 때가 생각이 나서 몹시 후회하게 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너를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지니라’(잠23:22)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를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잠23:25)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엡6:1- 3)
또 부르고 또 보고 싶고 그리운 사랑하는 어머니! 지금은 하나님 품에 계실 나의 어머니를 회고해 봅니다.
나의 어머니는 기도하는 어머님이셨습니다.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 디모데의 어머니 유니게는 성경의 대표적인 경건하고 현숙한 어머니들입니다. 무디의 어머니는 남편을 잃고 유복자 쌍둥이 합해서 아홉 자녀를 키우면서 밤마다 벽난로 앞에서 성경을 가르치고, 자녀들이 잠든 후에는 밤을 세워 울며 기도하고, 아침에는 햇살처럼 밝고 맑은 표정으로 아이들을 대한 훌륭한 어머니였습니다. 기도하는 어머니의 자식은 잘못되는 법이 없습니다.
또 나의 어머니는 봉사하는 어머님이셨습니다. 봉사의 정신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베푸신 사랑에서 난 것입니다. 봉사는 명령에 따라서 하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 찾아서 하는 것이며 자기보다 높은 자나 낮은 자를 가릴 것 없이 충성하는 마음으로 태어날 때부터 받은 일종의 은총일 수도 있습니다. 바로 나의 어머님은 그런 성품을 가진 분이셨습니다. 어머님은 일생을 남을 위해 봉사의 삶을 사셨습니다. 나의 어머님은 종종 수십 명의 손님들에게 우아한 만찬 파티를 베푸셨습니다. 그러나 어머님이 베푸신 가장 중요한 만찬은 우리들이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어머니는 배고픈 사람들을 위해 온종일 음식을 장만하셨다가 그들이 찾아오면 정성껏 준비한 음식들을 내 놓아 먹게 하고, 그들이 먹는 모습을 보시고 흐믓해 하셨습니다. 어머님은 교회(화곡동 장로교회, 당회장 김학만 목사)에서 권사와 구역장 직분을 맡으시고 교회와 구역식구들의 애경사를 찾아다니며 수십 년을 돌보셨습니다. 실업자들을 위해서 발벗고 직장을 구해 주기 위해 나섰고,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일에는 언제나 앞장 서셨습니다. 그러나 어머님께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 자존심을 상하지 않도록 항상 염두에 두셨고, 될수록 은밀한 가운데 자신을 나타내지 아니하려고 애썼습니다. 나의 어머님은 우리 집에 가정부로 있던 여인들을 친딸이나 동기처럼 돌보시고, 그들이 결혼한 이후에도 여전히 힘껏 도우시고 사랑하셨습니다. 이제 연세가 90세가 되셔서 노인병원에 입원하셨는데, 우리 형제들이 먹을 것을 장만해 병원에 찾아가면 자신의 입보다 함께 입원한 노인들부터 먹을 것을 챙겨주십니다. 나는 항상 어머님이 가지신 봉사의 정신과 친절을 본받으려고 애쓰고자 합니다. 어머님으로부터 내가 확실히 배운 것은 “남에게 봉사하고 친절을 베풀 만한 여유와 시간은 항상 있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자랑스런 나의 어머님의 자식들을 위한 희생정신과 남을 위한 봉사의 정신은 우리 모두가 본받고 배워야 할 고귀한 정신인 것입니다.
또 나의 어머니는 전도하는 어머님이셨습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이웃에게 주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치기를 힘썼습니다. 교통사고로 죽을 뻔 하셨으나 수많은 성도들의 기도로 기적적으로 살아나신 것을 가는 곳마다 증언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명령하셨습니다.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16:15) 초대교회 성도들은 언제나 기도에 힘쓰고 어디서나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힘썼습니다.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행5:42) 복된 좋은 소식을 전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롬10:15, 딤후4:2) 나는 어머니를 통해 참된 신앙생활을 배웠고 하나님의 사랑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다함께 찬송가 ‘어머니의 넓은 사랑’을 부르겠습니다.
어머니의 넓은 사랑 (찬송가 579장, <통> 304장)
1. 어머니의 넓은 사랑 귀하고도 귀하다 그 사랑이 언제든지 나를 감싸줍니다 내가 울때 어머니는 주께 기도드리고 내가 기뻐 웃을 때에 찬송부르십니다 2. 아침 저녁 읽으시던 어머니의 성경책 손때남은 구절마다 모습 본듯 합니다 믿는자는 누구든지 영생함을 얻으리 외워주신 귀한말씀 이제 힘이 됩니다 3. 홀로 누워 괴로울 때 헤매다가 지칠 때 부르시던 찬송소리 귀에 살아옵니다 반석위에 샘물나고 황무지가 꽃피니 예수님과 동행하면 두려울 것 없겠네 4. 온유하고 겸손하며 올바르고 굳세게 어머니의 뜻 받들어 보람있게 살리다 풍파 많은 세상에서 선한 싸움 싸우다 생명시내 흐르는 곳 길이 함께 살리라
온갖 것을 희생하면서 뒷바라지 하시느라 머리칼이 희어지고 잔주름이 늘어만 가신 어머니, 주시기만 하고 아무 것도 못 받으신 어머니, 어느 성자(聖者) 못지 않게 고행(苦行) 길을 걸어오신 어머니!
전 연세대 교수이셨던 전규태 박사의 시 두 편을 소개합니다.
1. 어머니
성자의 기원인양 알알이 모운 정을 열 두폭 치마에 구비구비 실었다 낙조에 어른거리는 사모친 그 얼굴. 아픈 서러움을 살포시 잠재우고 아스라한 쪽빛 하늘 그리운 한 줄기 빛 애타는 수센 메아리에 훌쩍이는 어머니.
2. 멀리 계신 어머니
어머니는 좀처럼 꿈에 안 나타나신다 별무리 사이보다 먼 거리인데도 언제나 맑고 곱게 들려오는 그 낭낭한 목소리
유성(遊星)이 그림자를 드리우며 스쳐서 지나간다 안개처럼 포근히 나를 감싸며 꿈나라로 인도하는 교회당의 새벽 종소리 나는 달려간다.
나의 어머니뿐만 아니라 이 땅의 모든 착하고 장한 어머니에게 우리 모두 뜨거운 박수와 아낌없는 존경과 찬사를 보내드립시다. 그리고 어머니의 기대에 어긋남이 없는 자식이 되어 드리도록 참되고 보람있는 삶을 하루하루 성실하게 살도록 힘써 나아갑시다.(레19:3, 신27: 16, 시127:3, 잠13:1)
* 기도: 부모를 공경하라 말씀하신 주님, 주님의 은혜에 늘 감사하며 우리 가정의 모든 식구들에게 굳건한 믿음을 주시고, 경건한 부모, 효도하는 믿음의 자녀들되게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우리가 부모님께 감사하지 못하고 원망하고 불평하며 효도하지 못한 죄를 용서하옵시고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온 세상에 전하게 하옵소서. 아무리 바쁘더라도 자녀를 위해 기도하지 않는 죄를 범하지 않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빛의 사자
서로 축복합시다. 댓글[0]
복, 축복, 면류관
(2012-05-12 오전 10:32:00)http://blog.somang.net/holylove/7350
서로 축복합시다.
본문: 로마서 12:14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야곱의 축복이란 복음성가가 널리 불리고 있습니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을 부르며 상대를 향해 두 손을 펼칩니다. 서로를 기쁜 마음으로 축복하는 모습은 참 보기 좋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축복의 사람, 축복의 통로로 세우셨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축복을 사모합니다. 축복의 사람이 되기를 간절하게 소망합니다. 우리가 축복을 기뻐하고, 의심하지 않는 것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의 선물이요, 계획이기 때문입니다. 축복은 무엇입니까. 축복은 삶을 증진시키고 보존하는 힘을 넘겨주는 것입니다. 복을 주시는 분은 궁극적으론 하나님이시지만 믿음의 사람들은 축복의 통로가 됩니다. 축복하는 사람은 참으로 당당합니다. 애굽의 총리인 요셉이 아버지 야곱을 바로에게 인도하였을 때 야곱은 바로를 축복했고, 바로의 왕궁에서 물러나올 때에도 다시 축복을 했습니다. 서로 축복합시다. 축복하는 사람,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사람 모세가 죽기 전에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축복함이 이러하니라’(신33:1) 누구에게나 인생의 끝은 있습니다. 그러나 그 날이 숨겨져 있으므로 삶에 대해 만용하게도 하고 여유있게도 하는 게 아닐는지요. 인생의 끝에 우리가 서 있다면 삶의 여정을 뒤돌아볼 때 무엇을 가장 후회하게 될까요? 어느 사람은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나는 이 세상을 꼭 한 번 지나간다. 그러므로 만일 내가 베풀어야 할 친절이 있다면, 내가 줄 수 있는 좋은 것이 있다면 지금 당장 그렇게 하겠다. 그것을 게을리하거나 연기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이 세상을 두 번 다시 지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삶의 길목에 잠시 머물러서 음미해볼 만한 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꼭 한 번 지나가는 인생길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축복된 삶을 사는 것일까요?
첫째,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고전10:31) 당신은 요즘 어떻게 살고 계십니까? 눈코 뜰 새 없이 열심히 살고 계시는지요? “열심”이라는 말은 참으로 좋은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열심히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것을 위안삼아 자신이 진정으로 무엇을 위해 열심을 내고 있는지 망각하고 살 때가 많습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당신이 요즘 땀흘리고 있는 일은 진정 가치가 있는 일입니까? 그 일에서 당신은 보람을 느끼고 계십니까? 만약 그렇지 않다면 당신의 삶을 정리해 보는 시간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당신이 무엇을 원하고 있으며, 인생을 어떠한 방향으로 살아갈 지에 대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바쁜생활 중에서 크리스천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솔로몬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전12:13)고 했습니다.
둘째, 베푸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잠3:27-28, 잠19:17, 사58:7, 10, 렘22:16 겔18:16, 행20:35, 갈2:10) 테레사 수녀가 미국을 방문했을 때, 한 여인이 찾아와 고민을 털어놓으며 울부짖었습니다. “저의 삶은 너무 권태롭습니다. 인생의 의미를 느끼지 못하겠어요. 차라리 죽어버리고 싶어요.” 테레사는 그 여인에게 이렇게 말했답니다. “그래요, 제가 살고 있는 인도에 오시면 진정한 삶을 드리겠습니다. 죽기 전에 꼭 한 번 와보세요.” 그래서 그 여인은 인도로 갔다고 합니다. 거기에는 죽어가는 사람들, 질병으로 거동도 못하고 앓고 있는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사람들...,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거기에서 그 여인은 테레사 수녀와 같이 그들을 돕고 보살폈습니다. 온종일 다른 사람을 치료하는 일에 자기 삶을 쏟다보니 삶의 의욕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 그 여인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인도에 오시면 진정한 삶을 드리겠습니다’라고 하신 말씀을 이제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자기가 해야 할 일을 발견하여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될 때, 우리의 삶은 새로운 기쁨과 능력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셋째, 복음전하는 삶입니다.(막16:15, 행5:42, 고전9:16-17, 딤후4:2) 화니 크로스비는 가장 위대한 찬송가 작사가로 생전에 2천여 곡의 찬송가 가사를 지었습니다. ‘예수로 나의 구주 삼고’ ‘오 놀라운’ ‘나의 갈 길’ 등이 그의 대표작입니다. 1820년에 태어나 95세까지 산 그녀는 안타깝게도 생후 6개월 만에 두 눈을 실명, 평생 앞을 못 보고 살았으나 남들이 못 보는 섭리의 세계를 보며 행복한 생애를 보냈습니다. 그녀는 늘 만나는 사람에게 전도하며, “당신의 영혼에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길...” 이라고 인사를 했는데 노년에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이 인사로 은총을 받은 건 저였습니다.” 일생을 복음전도와 선교활동에 바친 삶은 축복된 삶입니다.
넷째, 참되고 바른 삶을 살아야 합니다.(마5:16, 벧전2:12, 벧전4:9-11) 한 권사님이 비몽사몽간에 하늘나라에 갔다 오셨다고 합니다. 그 분은 세상적으로 이름이 있는 분이었고, 또 신유의 은사를 크게 받은 분으로 기도도 많이 하고 주님 앞에 외견상으로는 충성을 다한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늘나라에 가보니 그분에게 배당된 집은 너무 초라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주님께 자기를 아시느냐고 물었더니 모른다고 하시더랍니다. 이번에는 한국에서 제일 유명한 목사님 몇 명을 아시냐고 물었더니 역시 모른다고 하시더랍니다. 그 분이 그런 일을 경험한 후에는 자기 재산을 전부 정리해서 북한 선교원에 몇 십억을 기증했다고 합니다. 당신의 삶은 마지막 날에 주님께서 ‘착하고 충성된 종’(마25:21)이라고 칭찬받을 만합니까? 아니면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겠노라’(마7:23)할 것 같습니까? 미국의 한 신문이 독자들에게 “당신의 수명이 1년밖에 남지 않았다면 어떻게 살겠습니까?”라는 설문을 냈습니다. 응답자들중 집이나 땅을 사겠다거나 개인비자금을 만들어놓겠다는 사람은 전혀 없었습니다. 물질적 희망에 대한 내용보다는 더 많은 도움을 주겠다거나 더 많은 사랑을 베풀겠다는 내용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지금 살고 있는 1년이 인생의 마지막 한 해라면 우리는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더 많이 갖기 위해 계속 몸부림칠 것인가? 아니면 더 고귀한 일을 찾을 것인가?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14:8)
다섯째, 감사와 찬양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욥36:24, 시146:2, 엡5:19-21) 삶의 의미를 잃은 사람은 몸은 살아 있어도 실상은 죽은 것입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영원한 미래를 향한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주께서 나를 위해 엄청난 희생을 대신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과거를 다 청산해버리고, 새로운 삶을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주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삶을 살아갑시다.
여섯째, 이웃에게 축복과 위로와 희망과 용기를 주는 말을 하면서 살아야 합니다.(눅6:28, 롬12: 14, 벧전3:9) 미국에 ‘메트로 골드윈 메이어’(Metro Goldwin Mayer)라는 유명한 영화사가 있습니다. 이 회사 설립자는 회사 이름의 끝자인 메이어(Mayer)입니다. 메이어가 어렸을 때 친구와 싸운 적이 있었습니다. 메이어는 친구에게 맞고 집에 돌아와 분통을 터뜨리며 친구를 욕했습니다. 그러자 어머니가 메이어를 산으로 데리고 가 친구 욕을 실컷 하라고 합니다. 메이어는 산을 향해 소리칩니다. “나쁜 놈아. 못된 놈아.” 그런데 이 소리가 메아리가 되어 자신에게 10배의 소리로 되돌아옵니다. 그러자 어머니가 이번에는 “하나님이 너를 축복하신다”고 외쳐보라고 말합니다. 메이어가 그렇게 말하자 동일하게 메아리가 자신에게 축복의 말로 되돌아옵니다. 그때 메이어는 깨닫게 됩니다. “내가 남을 향해 한 번의 욕을 하면 그것이 10배로 되돌아오고 남을 한 번 축복하면 10배로 축복이 되돌아온다.” 메이어는 이 교훈을 평생 마음에 새기고 MGM이라는 큰 영화사를 세우게 됐습니다. 이삭은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했습니다.(히11:20, 창27:30) 야곱은 바로에게 축복하였습니다.(창27:41) 모세와 아론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수시로 축복하였습니다. 성경의 위대한 인물들은 만나는 사람들을 축복하였습니다. 우리도 이웃에게 축복합시다. 서로 서로 축복합시다. ‘모세와 아론이 회막에 들어갔다가 나와서 백성에게 축복하매 여호와의 영광이 온 백성에게 나타나며’(레9:23)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민6:24- 27)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사58:11) 말에 씨가 있습니다. 좋은 씨를 뿌리면 좋은 열매가 맺습니다. 우리를 핍박하고, 욕하고, 저주하고, 박해하는 사람까지도 우리는 저주하지 않고 오히려 축복을 빌 수 있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벧전3:9) 우리는 항상 이웃에게 복을 빌어주는 사람이 됩시다. 옆에 앉아 계신 분에게 이렇게 말씀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복 주시기 원합니다.” 성도 여러분 모두가 축복된 삶을 살고 복된 성도들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기도: 복의 근원되신 하나님, 늘 우리와 함께 하시고 은혜와 평강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우리가 되게 하옵소서. 다른 사람을 축복하며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마음을 본받아 우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우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시옵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빛의 사자
하나님 알고 배우기를 힘쓰자댓글[0]
학문, 지식, 책
(2012-05-11 오전 8:50:05)http://blog.somang.net/holylove/7349
하나님 알고 배우기를 힘쓰자
본문: 호6:3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사랑하는 사람의 그 진실 알지 못하면 그 사람의 사랑을 받을 수 없답니다. 기도하는 사람의 그 정성 알지 못하면 그 사람의 축복을 받을 수 없답니다. 가끔씩 당신은 나의 마음을 우울하게 하지만 따스한 그대의 눈빛은 안타까운 나의 마음을 믿음과 사랑으로 가득차게 합니다. 미워하는 사람의 노여움 알지 못하면 그 사람의 용서를 받을 수 없답니다. 돌아서는 사람의 그 마음 알지 못하면 그 사람은 영원히 돌아오지 않습니다. 가끔씩 당신은 나의 마음을 우울하게 하지만 따스한 그대의 눈빛은 안타까운 나의 마음을 믿음과 사랑으로 가득차게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아야 나 자신도 바로 알 수 있고, 자기 죄를 깨달아 회개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아야 진리를 알 수 있고,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아야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즉 우리가 가진 것이 있어야 남에게 주고, 베풀 수 있습니다. 내가 없으면서 이웃에게 전하고 나누어 줄 수 없고, 내가 모르면서 남을 가르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힘써 하나님을 배우고, 진리를 깨달아야 이웃에게 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나의 사명은 하나님 나라 확장과 진리를 가르치고 영의 양식을 공급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러기 위해 열심히 배우기를 힘씁니다. 사도행전 20: 35절에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하였습니다. 여러분들도 이웃에게 사랑을 베풀고 나누어 주려면 열심히 배우고 알기를 힘쓰시기를 바랍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라’(요17:3) 성도가 무엇보다 배우고 알아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첫째, 성경 말씀을 배우고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딤후 3: 14, 15)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시1: 1, 2) 듣지도 알지도 못한 이를 믿을 수 없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습니다.(롬10: 14, 롬10: 17)
둘째, 하나님 경외하기를 배워야 합니다. ‘평생에 자기 옆에 두고 읽어 그의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의 모든 말과 이 규례를 지켜 행할 것이라’(신17: 19) ‘내 아들아 네가 만일 나의 말을 받으며 나의 계명을 네게 간직하며 네 귀를 지혜에 기울이며 네 마음을 명철에 두며 지식을 불러 구하며 명철을 얻으려고 소리를 높이며 은을 구하는 것 같이 그것을 구하며 감추어진 보배를 찾는 것 같이 그것을 찾으면 여호와 경외하기를 깨달으며 하나님을 알게 되리니’(잠2: 1- 5)
셋째,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 곧 온유하고 겸손을 배우고 본받아야 합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마11:29)
넷째, 순종을 배워야 합니다.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히5:8)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요3:36) 이밖에 우리는 의를 배우고(시26: 9, 10), 열조의 지혜를 배우고(욥8:8), 하나님의 율법과 계명을 배워야 합니다.(신5:1, 시119: 71- 73) 배우기를 싫어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잠30: 3,4), 미련하여 지고(잠17:16, 잠10:10), 축복을 놓치고(창25:32- 34),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이단(거짓)에 속기 쉬우며(딤후4:4), 괴로운 인생행로를 걷게 되며(시119: 105), 구원에 이르지 못합니다.(딤후3:15) 우리는 남에게 베풀고 나누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행20: 35) 그런데 내가 가진 것이 있어야 남에게 주고 베풀 수 있습니다. 내가 알지 못하면서 남을 가르칠 수 없습니다.(행8:31) 하나님을 알지 못한 자는 망합니다. ‘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호4:6)
성도 여러분, 하나님 알기를 힘씁시다. 하나님을 알면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고,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고 내 마음에 기쁨과 평강이 임합니다. 하나님을 알아야 그 분의 뜻을 알 수 있고, 그 뜻대로 순종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아야 그 분이 무엇을 싫어하고 무엇을 기뻐하시는 줄 알고, 그분이 싫어하는 것을 멀리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아무쪼록 여러분 모두가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을 가까이하시기를 기원합니다.
*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찬송가 가사가 생각납니다. 가사처럼 하나님의 크고도 넓은 은혜와 대속해 주신 사랑을 간절히 알기 원합니다. 성령이 스승되셔서 진리를 가르치시고 거룩한 뜻을 깨달아 예수를 더욱 알게 하소서. 성령의 감화 받아서 하나님 말씀 배우니 그 말씀 한 절 한 절이 내 맘에 교훈이 됩니다. 내 평생의 소원은 하나님의 사랑을 배우고 알아 이웃에게도 널리 전하고 예수님 마음 본받아 겸손하고 온유하고 죽기까지 순종하며 살기를 원합니다. /빛의 사자
주제별 추가 자료편(소망, 소원)댓글[0]
소망, 희망
(2012-05-10 오후 5:33:58)http://blog.somang.net/holylove/7348
주제별 추가 자료편(소망, 소원)
▣ 소망의 그리스도인
본문 : 요 8:12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일제강점기 시절 한국의 신앙인들에게는 많은 어려움과 유혹이 있었습니다. 일부는 그 유혹에 넘어가 신사참배와 같은 잘못된 길과 타협하고 친일로까지 돌아선 실수를 한 사람도 있었지만 그대로 신앙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투쟁을 한 사람도 많았습니다. 당시 일본의 요구를 받아 들이지 않아 80여개의 교회가 파괴되었습니다. 그리고 기독교 계열의 학교 8곳이 폐교를 당했습니다. 3.1운동을 하다가 감옥에 간 신도는 3,373명이었고, 목사님은 54명 전도사님은 127명, 장로님은 63명이라고 합니다. 총독부에 사실로 기재된 것만 이 정도입니다. 그러나 조국 광복과 신앙에 대한 열망은 그 누구도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조국의 광복과 하늘의 소망 하나로 3월 1일에 태극기 하나를 들고 거리로 나왔던 것입니다. 믿음의 선배들은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결코 하늘의 소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시대에도 주님의 길을 바르게 따르는 사람이 있었고 아무리 신앙이 번영하던 때에도 주님의 길에서 멀어지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더욱 빛나는 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입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주님을 향한 소망의 끈을 놓지 마십시오. * 기도: 주님! 흑암에 비추이는 주님의 빛을 바라보게 하소서! * 묵상: 힘든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믿음의 자세를 가지십시오. /김장환 목사, 제공 : 나침반출판사
▣ 소망의 첫걸음
미국의 국민화가 모지스 할머니(Grandma Moses)를 먼저 소개하고 싶습니다. 이름이 모세라 제게는 친근감이 갑니다. 미국에서‘ 국민 화가 ’로 불리어지셨던‘ 모지스 할머니 ’(1860~1961)는 놀랍게도 76세 때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서 101세로 세상과 이별하기 전까지 붓을 놓지 않았습니다. 모지스 할머니는 평범한 시골 주부였습니다. 그녀는 신실한 신앙심으로 작은 농장을 꾸려가며 10명의 자녀를 출산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중 5명을 불러 가셨습니다. 5명을 잃고 난 후, 그녀는 아픈 마음을 달래고자 자수를 하게 되는 데 푹 빠져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72세 때 관절염 때문에 바느질을 못하게 되어 자수를 그만 두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녀에게 영감을 주사 붓을 들게 하셨습니다. 할머니는 하나님의 세계를 정성을 다하여 그려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수집가 루이스 칼더가 우연히 시골 구멍가게 창가에 있는 그녀의 그림을 보게 하셨고, 그 그림을 사가게 하셨습니다. 이듬해 미술 기획가 오토 칼리어가 그녀의 그림을 뉴욕의 전시관에 내놓으면서 할머니는 일약 스타가 됩니다. 이어 유럽과 일본 등 세계 각국에서 모지스의 그림 전시회가 열리면서 세계적인 화가로 떠오르게 됩니다. 1949년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그녀에게 ‘ 여성 프레스클럽 상 ’을 선사했고, 1960년 넬슨 록펠러 뉴욕주지사는 그녀의 100번째 생일을 ‘모지스 할머니의 날’로 선포했습니다. 모지스는 시골의 풍경을 그렸으며 그의 화풍은 단순하면서도 밝습니다. 그녀의 마음속에 역사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반영된 것으로 여겨집니다. 하나님을 가슴에 품고 하나님의 세계를 아름답게 드러내고자 하는 진심을 하나님께서 받으셨습니다. 자녀 5명의 죽음, 관절염의 아픔을 겪을 때에는 그 마음이 얼마나 상심이 되었겠습니까? 그녀는 병들고 상처 입은 시골의 불행한 할머니에 불과하였습니다. 주변 이웃들도 본인도 그렇게 여겼을 것입니다. 때로는 하나님의 사랑이 의심이 들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계셨습니다. 그녀의 아픔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아픔 중에도 변함없이 주님을 찾는 그녀를 보면서 심히 기뻐하셨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지켜보고 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날에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손길로 축복하십니다. 사람들은 그 때까지 인내하지 못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놓쳐버립니다. 우리는 이런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76세의 할머니에게, 어쩌면 처참하게 깨어진 인생을 살아왔다고 볼 수 있는 한 할머니에게 임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도 아직 기회가 있는 것입니다.
▣ 시련 중의 소망
플로리다에 101세 흑인 노인이 있었다. 노인은 항상 침대에 누워 지냈다. 그녀의 가족은 이미 다 세상을 떠났다. 남편은 약 50년 전에 죽었고, 자녀들도 하나둘 세상을 떠났다. 그렇게 남편과 자녀들을 다 여의고 홀로 무의탁 노파로 남아 있었다. C.I. 스코필드 박사가 그 할머니를 격려하기 위해 방문했다가 깜짝 놀랐다. 스코필드 박사는 방문한 지 10분도 채 되기 전에 할머니에게 자기를 격려해 주고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랬더니 할머니는 "제가 하늘에 계신 제 아버지께 당신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라고 했다. 할머니는 죽음 앞에서도 기뻐하고 감사하는 사람, 미래에 들어갈 "영광의 집"에 대한 소망을 지닌 사람이었던 것이다. 시련 중에도 소망으로 인한 벅찬 기쁨이 있다면 그는 참된 성도이다. 진정한 기쁨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만 있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우리를 하늘 기업의 산 소망으로 낳으시고 능력으로 보호하시는 하나님 아버지께 찬양을 돌리 마음이 있는가? 시련 중에도 하늘 기업의 소망으로 인한 벅찬 기쁨이 있는가? 우리는 생존경쟁으로 처절한 삶의 현장에만 관심이 있을 뿐, 죽음 저편의 영광스러운 소망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자들이다. "시련 중에도 산 소망 때문에 찬양과 기쁨이 넘치는 삶을 사는가?" 오늘 이 질문을 자신에게 던져 봐야 하지 않겠는가. [시련을 너끈히 이기는 하나님의 은혜 / 권성수]
* 금언: 이 세상에서 가질 수 있는 마음 중 천국에 대한 소망과 비견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 윌리엄 거널
▣ 내일의 행복을 기대하라
산고를 겪을 때 모든 여성들이 다시는 아기를 안 낳겠다고 결심한다고 한다. 아기를 낳을 때 207개의 모든 뼈가 흔들리고 살이 늘어난다고 하니, 그 아픔이야 나 같은 남성 따위는 죽을 때까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하는 고통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결심을 한 여성이 둘도 낳고 넷도 낳는다. 내가 아는 어떤 분은 9명을 낳았다. 어째서일까? 그것은 ‘뒤의 기쁨’이 ‘앞의 고통’을 잊어버리게 하기 때문이다. 환희는 아픔을 삼키는 마술을 지니고 있다. 또다시 임신하는 것은 ‘결과의 기쁨’이 ‘과정의 고통’을 삼켜버리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구약성경에 쓴 나물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탈출하기 전날 밤 누룩을 넣지 않은 맛없는 빵과 쓴 나물을 먹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려면, 그리고 노예생활에서 해방되려면 적어도 그런 고통의 과정을 거쳐야 된다는 지시였다. 아픔과 고난을 통해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과정으로 해석한 것이다. 인간이 사는 세상 안에는 고통이 없는 곳이 없다. 깨끗한 것만 있는 곳도 없다. 분명 오늘의 아픔이 기쁨을 가져올 것이라는 소망을 갖고 의연하게 아픔을 아파하자. /최승일 목사(서울 상도교회)
* 빛의 사자
심는 대로 거둡니다댓글[0]
지유로운 글
(2012-05-09 오후 5:36:17)http://blog.somang.net/holylove/7345
심는 대로 거둡니다
본문: 갈6:7-9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 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미국을 여행해 본 사람이 느끼는 것은 미국은 잘사는 나라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미국은 세계의 경제를 좌우할 정도로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나라입니다. 경제력만이 아니라 군사력도 마찬가지입니다. 200여 년 밖에 역사가 안 되는 나라가 어떻게 이렇게 잘사는 나라가 되었습니까? 저는 그들의 선조들이 즉 신앙의 자유를 찾아 나섰던 청교도들이 복 받을 만한 합당한 씨를 심었기에 그 후손들이 거두는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저들은 학교를 세우기전에 교회를 세웠고, 그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았고, 하나님께 감사의 열매를 드렸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나라가 하나님께 복 받는 나라가 되려면, 우리의 자손들이 하나님의 복을 누리는 자손들이 되기를 바란다면 우리도 하나님 앞에 복 받을 만한 씨를 많이 심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7절 말씀은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누구에게나 이 심은 대로 거두는 추수의 원칙을 적용하십니다. 우리는 먼저 자연계를 생각해 봅니다. 자연의 법칙은 심어야 거둡니다. 심지 않고는 거둘 수가 없습니다. 또 종류대로 심어야 종류대로 거둡니다. 콩을 심으면 콩을 거두고 팥을 심으면 팥을 거둡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대로 가시나무에서 포도열매를 엉겅퀴에서 무화과 열매를 거둘 수 없는 원칙입니다. 이 원칙은 영적 도덕적인 세계에서 그대로 적용됩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로스알데 힐이라는 작은 마을에 요한이라는 집배원이 있었습니다. 그는 젊었을 때부터 마을 부근 약 오십 마일의 거리를 매일 오가며 우편물을 배달해왔습니다. 어느 날 요한은 마을로 이어진 거리에서 모래먼지가 뿌옇게 이는 것을 바라보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하루도 빠짐없이 다녀야 하는 길이 이렇게 황폐하다니… 앞으로도 오랜 기간을 흙먼지만 마시고 다녀야 한단 말인가. 요한은 정해진 길을 왔다갔다 하다가 그대로 인생이 끝나버릴지도 모른다는 황막감을 느낀 것입니다. 풀, 꽃 한송이 피어 있지 않은 모래 길을 걸으며 요한은 깊은 시름에 잠겼습니다. 그러다가 그는 무릎을 탁 치며 혼잣말로 중얼거렸습니다. "어차피 나에게 주어진 일이고 그것이 매일 반복되는 것이라면 그저 구경만 할 수는 없잖은가? 그래, 아름다운 마음으로 내 일을 하자! 아름답지 않은 저것은 아름답게 만들면 되지 않은가?" 그는 다음날부터 주머니에 들꽃 씨앗을 넣어 가지고 다녔습니다. 그리고 우편배달을 하는 짬짬이 그 꽃씨들을 거리에 뿌렸습니다. 그 일은 그가 오십여 마일의 거리를 오가는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계속되었습니다. 이렇게 여러 해가 지나자 그가 걸어다니는 길 양쪽에는 노랑, 빨강, 초록의 꽃들이 다투어 피어났습니다. 봄이면 봄꽃들이 활짝 피어났고 여름에는 여름에 피는 꽃들이, 가을이면 가을 꽃들이 쉬지 않고 피어나 그가 가는 길을 환영해주었습니다. 그 꽃들을 바라볼 때마다 요한은 더 이상 자기의 인생이 외롭지도 황막하지도 않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그 긴 거리에 이어진 울긋불긋한 꽃길에서 휘파람을 불며 우편배달을 하는, 수채화같이 아름다운 그의 뒷모습을 보다가 자기들도 주머니에 꽃씨를 넣어 가지고 다니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누구나 다 농부입니다. 우리의 삶은 매일 매일이 씨를 뿌리는 것이고 씨를 심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도 씨앗입니다. 우리의 말도 씨앗입니다. 우리의 행하는 것도 씨앗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심고 사느냐에 따라 심는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개인생활도 심는 대로 거두고, 가정도 심는 대로 거두고 교회도 국가도 심는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봄에 심는 것을 가을에 거둡니다. 현재 심는 것을 미래에 거둡니다. 젊어서 심는 것을 늙어서 거둡니다. 조상들이 심는 것을 자손들이 거둡니다. 금세에 심는 것을 내세에 거둡니다. 우리는 이 분명한 원칙을 알고 내 생각, 내 말, 내 행동들을 심어가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의 신령한 농부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둔다면 우리는 무엇을 심어서 거두어야 합니까?
첫째로 우리는 영적인 것을 심어야 합니다.(롬8:5-15)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입니다.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둘째로 우리가 심어야 할 것은 복음입니다. 복음이 무엇입니까? "복음은 예수를 믿어야 구원을 받는다. 예수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길이며 진리이며 생명이시다"라는 사실이 복음입니다. 나는 그 복음 때문에 구원받았고 그 복음을 전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으로 복음을 심어야 합니다. 우리 주님은 승천하시기 전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두 가지를 부탁하셨습니다. 하나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는 부탁이셨습니다.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하셨습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너희에게 성령이 임하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내 증인이 되라는 명령입니다. 오늘 우리가 복음을 전하려면 성령 받아야 합니다. 성령을 받아야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성령은 인격적인 신이시기에 우리가 성령을 사모하여 우리 마음에 모셔 들여야 합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만이 복음을 능력 있게 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매일 성령 충만을 구해야 합니다. 성령 충만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의 권능을 힘입고 복음의 씨앗들을 심어가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딤후 4:2에서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고 하였습니다. 복음의 씨앗을 항상 심어 가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안 하면 안 되는 것이 복음전하는 일입니다. 만일 우리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내게 화가 있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에스겔 33:6을 보면 "파숫군이 칼이 임함을 보고도 나팔을 불지 아니하여 백성에게 경고치 아니함으로 그중 한 사람이라도 제함을 당하면 그 피를 내가 파숫군의 손에서 찾으리라"하였습니다. 파숫군이 나팔을 불지 않는 것이 죄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죄 값으로 심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복음의 씨를 심어 나갑시다. 내가 심어나가는 그 복음의 씨앗들 때문에 많은 영혼 구원의 열매들이 맺혀지시기를 축원합니다. 셋째로 기도의 씨앗들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힘은 영의 힘입니다. 이 영적인 힘과 능력을 축적해 가는데 있어서 유일한 방법은 기도 외에는 없습니다. 기도하는 사람들이 성령 충만을 받았고 성령 충만한 사람들이 능력 있는 삶을 살았습니다. 성경에 놀라운 영적 힘을 발휘하여 큰일을 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기도의 사람들이었습니다. 한번은 예수님이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따로 데리시고 변화산에 올라가 기도하시는 동안에 산아래에는 아홉 제자가 남아 있었습니다. 그때 어떤 사람이 간질병 걸린 자기 아들을 데리고 와서 고쳐주기를 바랐지만 제자들이 아무리 애를 써도 낫지 않았습니다. 그때 마침 예수님이 내려 오셨습니다. 그때 아이의 아버지가 예수님께 달려와서 "제 아이가 불에도 넘어지고 물어도 넘어집니다. 제자들에게 데려 왔지만 그들이 고치지 못했습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너희를 참으리요 그 아이를 내게로 데려 오라" 하시니 그 아이를 데려 오매 예수님이 "이 벙어리 더러운 귀신아 그 아이에게서 나가라"하시자 그 아이가 금방 나았습니다. 그 다음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주여,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기도하지 않아서 그러니라. 기도 외에는 이 같은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하셨습니다. 귀신을 쫓아 낼만한 능력은 기도함으로써만 얻을 수 있다고 하신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자에게는 능력이 임할 수가 없습니다. 영적인 힘을 공급받는데 있어서 기도보다 더 귀한 첩경은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기도로 내일을 준비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기도해서 하나님의 능력과 힘을 쌓아 가면 내일 부닥치는 어떤 어려움도 영적인 장애물도 넉넉히 이겨갈 수 있습니다. 또한 기도는 씨앗과 같습니다. 농부가 씨앗을 땅에 심고 물을 주고 거름을 주면 반드시 싹이 나고 열매를 거두는 것과 같이 우리들이 심는 기도도 반드시 응답의 열매가 맺히게 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가지만 그 기도는 살아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자녀들을 위하여 많은 기도의 씨앗들을 심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기도가 자녀들의 삶에 성공과 실패를 좌우한다면 자녀들을 위해 기도를 심어 가시기 바랍니다.
넷째는 의와 화평을 심고 긍휼을 거두어야 합니다.(호10:12, 고후9:10) 나치 독일 사람들이 유대인을 수없이 닥치는 대로 학살할 때였습니다. 어떤 비행장의 한 조종사가 자기 비행기 속에서 무엇을 고치고 있는데 어떤 젊은 사람이 상기가 되어서 황급하게 비행기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 "나는 지금 당신이 살려 주지 않으면 죽을 것인데 어서 이 비행기를 띄워서 독일 국경 밖으로 좀 데려가 달라"고 애원을 했습니다. 이 청년은 유대인이었습니다. 이 사람의 뒤를 지금 비밀 경찰대가 추격해 오고 있었습니다. 이 비행기 조종사는 불쌍한 생각이 들어서 얼른 비행기를 띄워 멀리 국경 밖으로 데려다 주었다고 합니다. 물론 오랜 세월을 지나는 동안에 그 사실을 다 잊어버렸습니다. 얼마 후에 2차 대전이 일어났습니다. 이 조종사 역시 독일에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영국으로 가서 연합국의 공군으로 종군하면서 전쟁에 가담해서 싸웠습니다. 한 번은 비행기를 타고 출전했다가 큰 사고를 당해 그가 탔던 비행기가 추락하면서 중상을 입었습니다. 뇌를 다쳐서 도무지 의식이 하나도 없고 중태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때 수술을 제일 잘하는 의사를 초청하여 수술을 하고, 두어 주일 후에야 의식을 회복하게 되었고, 그 의사를 만나 감사하다고 인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만나 이야기하는 가운데 그 의사가 바로 여러 해 전에 자기가 비행장에서 구해준 그 유대인인 것을 알았습니다. 덕을 심으면 덕을 거둡니다. "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약3:18)
다섯째는 물질의 씨앗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심든지 심는 대로 거두게 하시는 하나님은 우리가 복음의 씨앗을 심으면 영혼구원의 열매를 거두게 하시며, 기도의 씨앗을 심으면 응답의 열매를 거두게 하시지만 우리의 물질 축복은 물질을 심는데서 얻어지는 결과입니다. 그러기에 바울 사도는 고후 9:6에서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두나니 각각 그 마음에 정한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하였습니다. 물질은 하나님의 것이기에 즐거운 마음으로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경제계에 투자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영리를 위하여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물질을 여러 곳에 투자를 합니다. 어떤 때는 그 투자로 인하여 많은 이익을 얻기도 하고 또 그 투자로 인하여 많은 실패를 가져오기도 합니다.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안전한 투자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가장 안전하고 보람있는 투자가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사업에 투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업에 투자하면 위대하신 하나님이 하늘의 축복으로 땅의 축복으로 보상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빌리그래함 박사는 이 세상에 100%의 이윤을 주는 은행이 없으나 하나님의 천국은행은 30배 60배 100배의 이윤을 붙여준다고 하였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위해 과감하게 투자하는 만큼 과감하게 하나님은 그 사람을 축복해 주시는 것입니다. 마 19장 29절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영생을 얻지 못할 자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주님을 위해서 주의 복음 사업을 위해서 희생하는 것만큼 하나님은 여러 배로 축복하시는 말씀입니다. 사르밧의 과부는 자기 아들과 마지막으로 먹고 죽으려고 했던 식량을 몽땅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에게 투자하자 그 나라의 가뭄이 끝날 때까지 그 집에 떡 반죽 그릇과 기름병의 기름이 마르지 아니하는 축복을 받았고 보너스로 그 아들이 죽게 되었을 때 그 아이가 엘리야의 기도로 살아났습니다. 저물어 가는 벳세다 광야에서의 소년은 어떠했습니까? 다른 사람들은 바치지 않았을 때 갸날픈 어린 손으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바친 후 5천명을 먹이고 12광주리가 남는 축복이 나타났지 않습니까? 하나님께 물질을 심어야 물질 축복을 가져옵니다. 하나님의 사업의 많은 것으로 투자하여 많은 것으로 거두게 하시는 축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너는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일곱에게나 여덟에게 나눠 줄지어다 무슨 재앙이 땅에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함이니라’(전11:1, 2) 인도의 어떤 왕이 궁정에서 나가다가 한 거지를 만났습니다. 손을 내밀고 무엇을 달라고 하자 왕이 거지에게 하는 말이 "네가 나에게 무엇을 먼저 주면 나도 너에게 주겠다." 거지는 옆집에서 강냉이 한 홉을 얻었는데 그 강냉이 주머니를 열고 "저는 이것밖에 없습니다."하며 강냉이 다섯 알을 내밀었습니다. 왕이 그것을 받더니 웃으면서 하인에게 "금주머니에서 이 강냉이 알만한 금덩이 다섯 개만 꺼내서 주라"고 했습니다. 그때 거지는 속으로 탄식하면서 돌아갔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그 강냉이 주머니를 다 그대로 드렸으면 금주머니채 내가 다 받았을 텐데"하는 후회 때문이었습니다.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두는 것입니다.(고후9:6) ‘사람의 행위를 따라 갚으사 각각 그의 행위대로 받게 하시나니’(욥34:11) 또한 우리 인생은 파종하는 인생입니다. 심는 대로 거두게 하십니다. 낙심하지 말고 심어야 합니다. 착한 일을 하다가 낙심할 때가 있습니다. 복음의 씨앗을 심다가 영혼구원의 열매가 없다고 낙심 할 수도 있습니다. 기도하다가 응답의 열매가 없다고 낙심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업에 물질로 헌신하다가 물질축복의 열매가 없다고 낙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9절 말씀을 보면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하였습니다. 시편 126장 5절에는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이 추수의 법칙은 절대로 없어지지 않습니다. 심는 대로 거두게 하시는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번에는 심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첫째는 죄악의 씨를 심지 말아야 합니다. 이화대학 부속병원에서 있었던 실화입니다. 거기에 여전도사님으로 수고하던 분이 들려준 말씀입니다. 돈 많은 집 며느리가 아이를 낳으러 왔습니다. 보통은 일반 산실에서 낳는 것이지만 돈이 워낙 많아서 특실에서 아이를 낳게 되고 그리고 뭐 화환이 아주 즐비하게 들어왔고 굉장하게 이렇게 환영을 받으면서 정말 공주처럼 환영을 받으면서 아이를 낳았어요. 마침 아들을 낳았는데 문제는 이겁니다. 혈액 조사를 해보니까 그 아이가 그 집안에서 태어날 아이가 아니에요. 그 아버지가 지금 그 아버지가 아니란 말이에요. 이걸 알고 간호원들이 숙덕숙덕하고 의사들이 숙덕숙덕 하다가 마침내 이것을 미리 알리는 게 좋겠다고 그 어려운 일을 여전도사님에게 책임을 지웠어요. 들어가서 얘기하라고. 조용한 시간에 당신이 이렇게 아이를 낳고 이 집에서 환영을 받지 만은 사실은 저 아이는 이 집 아이가 아니요, 하고 선언을 하니까 처음에는 펄쩍 뛰었지만은 그래봐도 소용없다고 애가, 아이가 크면은 언젠가는 다 알게 될 텐데 그래서 미리 알라는 거라고. 그랬더니 울면서 어떻게 하면 되겠냐고 하지만 어떻게 하긴 어떡해요 심은 대로 거둬야지…….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마 12:35) ‘악을 뿌리는 자는 재앙을 거두리니 그 분노의 기세가 쇠하리라’(잠22:8) ‘함정을 파는 자는 그것에 빠질 것이요 돌을 굴리는 자는 도리어 그것에 치이리라’(잠26:27)
둘째는 게으름(나태)을 심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이스의 아테네에 어떤 부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멋진 여행을 즐기고자 배를 타고 여행을 떠났었는데 그만 폭풍을 만나 배가 뒤집히고 말았습니다.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바닷가로 헤엄쳐 나가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이 부자는 아테네 여신에게 계속 호소하면서 자기를 살려만 주신다면 자기의 재물을 아낌없이 바치겠노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이때 난파된 배의 승객 중 한 사람이 헤엄쳐 지나가면서 이렇게 외쳤다고 합니다. "여보시오! 아테네 여신에게만 만사를 떠맡기지 말고 당신의 두 팔도 좀 사용해 보시구려." 우리는 이 이야기에서 매우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스스로 노력하지 않고 신의 도움만 빌리려고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자신은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으면서 요행만 바란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우리 크리스천 청소년들은 시험 때에 특히 이런 어리석은 생각에 빠지기가 쉽습니다. 더 좋은 성적을 원하는 마음과 신앙이 묘하게 어우러져서 노력은 별로 않고서는 시험에서 좋은 성적 얻도록 해 달라고 기도만 열심히 하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다가 성적이라도 떨어지면 하나님은 능력 없는 분이시거나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분이라고 원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스스로를 속이는 행위"라고 꼬집습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을 만홀히 여김 받게 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쉽게 말해서 하나님을 조롱하는 엄청난 잘못을 저지르는 행위가 된다는 것입니다. 공부하지 않고서 좋은 성적을 바란다거나, 수고하지 않은 일에서 성공을 기대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합니다. 나태하게 살면서 풍요하기를 기도하는 신앙은 자기를 속이는 것입니다. 기도는 나태한 크리스천의 도피처가 아닙니다.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 주께 하듯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심든지 심는 만큼 거두게 될 것입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 만이 기쁨으로 단을 거둘 수가 있습니다.
셋째는 거짓(속임수)을 심지 말아야 합니다. 아버지 이삭을 속이고 장자권을 얻은 야곱은 동생 요셉을 애굽의 종으로 팔은 자기 아들들에게 속임을 당합니다. 영국의 어느 제과업자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빵을 만들어 마을 사람들에게 팔았습니다. 그 제과업자에게는 매일 아침, 버터를 만들어 공급해주는 가난한 농부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납품되는 버터를 보니 정량보다 조금 모자라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며칠을 두고 납품된 버터를 저울로 일일이 달아보았습니다. 예측한 대로 정량에 미달되었습니다. 화가 난 이 업자는 버터를 납품하는 농부에게 변상할 것을 요구하며 법정에 고발했습니다. 농부는 체포되어 재판을 받았습니다. 재판을 하던 재판관은 농부의 진술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가난한 농부의 집에는 저울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버터를 만들어 그 제과업자가 파는 1 파운드 짜리 빵의 규격에 맞추어 버터를 자르고 포장해서 납품을 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 제과업자가 이익을 남기기 위해 그 1 파운드 짜리 빵의 양을 줄였던 것입니다. 그것도 모르고 이 농부는 줄여서 만들어진 빵에 맞추어서 버터를 만들고 납품을 한 것입니다. 누구의 잘못입니까?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빵을 줄인 결과가 자신에게 돌아오고야 만 것입니다. 우리가 남을 헐뜯고 비난하고 거짓말을 하게 되면, 그 비난과 헐뜯음과 미움과 증오, 거짓은 결국 자기에게 돌아오는 것입니다. 선한 일을 하면 그 선한 결과가 자기에게로 되돌아옵니다. 심은 대로 거둔다는 만고 불변의 진리가 있습니다.
넷째는 가라지를 심지 말아야 합니다.(마13:28-39) 가라지를 심고 보리를 기대하지 말라. 악습을 심으며 어떤 날 우연히 고매한 품성의 인물이 되리라고 기대하지 말라. 시기와 증오를 심으며 우정과 사랑을 기대하지 말라. 뱀의 알을 품고 병아리가 깨일 것을 기대하지 말라. 남의 인격을 멸시하는 사람아 그대가 존경받을 것을 기대한다면 탱자를 심어놓고 감귤을 기대하는 것과 같다. 인생은 심은 대로 거둡니다. 어떤 제자가 스승인 현인에게 물었습니다. "제게 왜 기쁨이 없습니까? 왜 다른 사람들이 제게 행복을 주지 못합니까?" 현인은 말했습니다. "그대는 어찌 한 되짜리 그릇을 갖고 한 말의 쌀을 받아오려 하는가. 한 조각의 천을 들고 옷 만드는 집에 가서 한 벌의 옷을 지어 달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매사를 찡그린 얼굴로 대하면서 기쁨이 있기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다정한 이웃, 베푸는 사람이 되지 않고서 어찌 다른 사람이 행복을 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게으른 사람이 성공을 기대하는 것은 심지 않은 밭에서 곡식을 기대하는 것과 같습니다. 심은 대로 거두리라. 이것은 인과의 철칙이요,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지식을 뇌 속에 입력(入力)한 만큼 유식할 것이며 선수는 연습한 만큼 챔피언이 될 것입니다. 육으로 심은 것은 육이요, 영으로 심은 것은 영이니 내 인생의 밭에 영원한 사랑과 믿음을 심어 양질의 영원한 생명을 거두도록 노력합시다. 어떤 바보스런 사람이 어느 누구도 자기를 인정하지 않아 주기 때문에 매우 고민 중에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인생을 비관한 나머지 산으로 가면서 소리를 질러 보았습니다. 산도 자기를 아는 체 하지 않았습니다. 산에 올라가서 얼마나 자기 자신이 싫었던지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나는 너를 싫어한다." 조용한 산중에 그 소리가 메아리쳐 다시 울렸습니다. "나는 너를 싫어합니다." 그래서 그는 매우 실망한 나머지마을의 현명하고 덕 있는 분에게 물어보았습니다. 그분이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큰소리로 `나는 너를 사랑한다고 외쳐 보십시요." 그 바보스러운 사람은 다시 산에 올라가 소리를 질렀습니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 그 소리가 다시 메아리쳐 들려 왔습니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눅6:31)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히13: 1- 2)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심은대로 거두게 하시며 행한대로 갚아 주십니다. 이 말씀을 믿고 순종하며 하나님께서 그 믿음대로 역사해 주시므로 기도하는 대로 응답받게 됩니다. 자기 자신의 마음 밭을 점검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거울같이 비춰봐서 골라낼 것 골라내고 잘라 버릴 것은 잘라버려서 옥토로 개간하여 여러 가지 많은 씨를 심고 인내하면서 정성껏 가꾸어 풍성한 열매를 많이 수확하게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오늘도 의와 자비와 복음과 기도와 덕을 심어서 사랑과 의와 선과 성령의 열매를 맺는 아름다운 날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도: 공의로우신 하나님, 주님의 말씀을 듣기만 하는 자가 아니라, 듣고 깨달아 행하여 좋은 씨를 뿌리는 자 되게 하소서. 그러함으로 풍성한 열매,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자 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빛의 사자
주제별 추가 자료편(효도, 효행)댓글[0]
가정, 부모, 부부
(2012-05-08 오전 4:09:13)http://blog.somang.net/holylove/7341
주제별 추가 자료편(효도, 효행)
▣ 효부총
맹자는 다섯 가지 불효를 경계하라고 했다. 첫째는 수족을 게을리 하여 부모님을 살아서 섬기지 못하는 것, 둘째는 도박과 음주를 즐기면서 부모를 섬기지 못하는 것, 셋째는 재물 욕심과 자기 처와 자식만을 알면서 부모를 섬기지 못하는 것, 넷째는 듣고 보는 대로 말하면서 부모님의 체면을 손상시키는 것이며, 마지막으로는 불량한 자들과 다니면서 부모님의 신변에까지 위협을 끼치는 것이다. 강원도 정선에 ‘효부총’이라는 비석이 있다. 어떤 사람이 개 한 마리를 잡아먹고 뼈다귀를 도랑에 갖다 버렸다. 그런데 그 개의 새끼가 뼈를 물어다 산 밑에 묻은 후 그 옆에서 죽었다. 그 강아지의 지극한 정성을 본 동네 사람들이 세운 비석이다. 오늘은 어버이날이다. 동물도 자기를 낳고 길러준 부모가 귀한 것을 안다. 자식과 부모와의 만남은 필연적인 만남이다. 하나님의 섭리 속에 있다. 성서는 자녀에게 어떤 부모를 공경하라고 부모의 자격이나 부모 됨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단지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신다. 부모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공경 받을 만하다. /안성우 목사(일산 로고스교회)
▣ 교독문 98. 어버이 주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20:12) 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 이는 네 머리의 아름다운 관이요 네 목의 금 사슬이니라(잠1:8-9) 너를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지니라(잠23:22)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를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잠23:25)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엡6:1-3) * 빛의 사자
이태석 신부와 기독교의 개교회주의댓글[0]
교회, 공동체
(2012-05-03 오후 2:23:41)http://blog.somang.net/holylove/7334
한국교회의 사명과 회개
본문: 요한계시록 2: 1-5
한국 교회의 성장이 어느 때부터 인가 정지, 또는 하락하고 있다고 합니다. 즉 오늘의 한국 기독교는 세속화되어가면서 점점 그 쇠퇴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제 한국 교회가 새롭게 거듭나야 하겠습니다. 한국 교회 개혁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목회자가 변화되어야 합니다. 목회자와 교회 지도자의 의식의 변화가 선행되지 않으면 기독교는 이 땅에서 설자리가 없어질 것입니다. 유럽 기독교가 쇠퇴하고 있지만 서양은 그래도 기독교적인 기반이 있었기에 이 정도의 서서히 죽어 가는 흐름을 타고 있으나 한국적인 상황은 기독교적인 기반이 아니고 무속적이고, 유교적이고, 불교적이고, 기타 혼합적인 기반 위에 기독교의 영성이 세워져 왔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정신차리지 못하면 그 죽어 가는 속도는 가속도가 붙어 막을 방도가 없이 속수무책이 될 것입니다. 촛대를 한국에서 옮기우기 전에 회개합시다.
* 한국교회가 갱신되어야 할 점 오래 전에 아프리카 콩고의 한 마을 전체가 다 주님 앞으로 돌아오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선교사들의 사역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이 놀라운 부흥은 두 여인과 한 남자 성도의 진실한 회개 때문에 일어났습니다. 어느 날 기도하는 가운데 두 여인의 마음이 성령님께 깊이 붙들리어 자기의 삶을 돌이키기 시작했습니다. 그 중 한 여인은 교회에 바쳐진 쌀을 한 자루 갖다 쓴 것이 왜 그런지 마음에 자꾸만 걸렸습니다. 그래서 그 여인은 그것을 교회에 가지고 와서 성도들 앞에 고백합니다. 사실, 이 쌀은 교회에서 쓰여져야 할 것인데 제가 썼습니다. 저를 용서해주십시오 그랬더니 또 한 여인이 성도들 앞에 나와 이런 고백을 합니다. 저는 남의 집에서 일을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주인집의 계란 한 개를 주인에게 말하지 않고 가져온 적이 있습니다. 그것을 회개합니다. 이어서 한 남자가 나와서 고백을 합니다. 저는 어떤 선교사와 교제를 하면서 선교사 집에 갔다가 선교사에게 말하지 않고 책 한 권을 몰래 가지고 나왔습니다. 내가 그것을 다시 돌려 드리며 회개하기를 원합니다. 자기의 삶을 바로 잡으려는 이 세 사람의 진지한 고백 때문에 이 마을은 놀라운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한국교회가 다시 부흥되기 위해서는 한국교회에 회개운동이 일어나야 합니다. 호세아서에 나오는 고멜이 바로 우리입니다. 한국교회가 갱신되고, 회개하려면 먼저 어떤 점이 잘못 되었는가를 알고 바로 잡아야 합니다.
1. 개교회 주의를 버려야 합니다. 얼마전 나는 이태석 신부의 헌신적 삶을 그린 영화 <울지마, 론즈>를 보았습니다. 나는 이 분의 훌륭함을 인정합니다. 그리고 이런 영화가 천주교 성장에 크게 기여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개신교 선교사님과 목사님 중에는 그 분보다 더 훌륭한 분들이 얼마든지 계십니다. 그런데 그 분들을 알리고 선교하는 데 한국 기독교가 전혀 힘쓰지 않고 있습니다. 그 가장 큰 이유를 나는 개교회주의 때문이라고 봅니다. 한국의 많은 교회들이 하나님보다 자기 교회를 우위에 두고 있습니다. 자기 교회 건물 건축과 홍보에는 많은 돈을 투자 하지만 기독교 문화 창출과 어려운 이웃 교회를 돕는 데는 너무나 인색합니다. 심지어는 담임 목회자들 중에는 성도를 하나님의 양으로 보지 않고 자기 양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성도가 다른 교회로 이전할까봐만 전전긍긍하여 뛰어난 부목회자들을 홀대하고 내 교회의 안정과 성장에만 분투 노력합니다. 한국 교회가 부흥하려면 이점부터 회개하고 이제 개교회주의에서 벗어나 하나님 중심으로 하나되기 운동이 벌어져야 할 것입니다. 특히 우리는 T.V, 영화, 신문 등을 통하여 기독교의 진리됨과 헌신된 일꾼들을 널리 알리고, 뛰어난 일꾼들을 발굴하고 그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을 내 것이라 생각하여 움켜쥐려고만 하지 말고 손을 열고 베풀려고 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더 큰 축복을 주실 줄로 믿습니다. 교만과 음란과 거짓과 탐심으로 가득했던 나(자아)를 버리고, 거룩하신 하나님 이 내 삶과 교회의 주인되게 하시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면서 삽시다.
2. 한국교회의 성도는 우선순위를 바뀌어야 합니다. 삶의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어야 합니다.(마22:37, 38) 하나님보다 더 우선하고 사랑하는 것은 우상숭배입니다. 재물이 소중하지만 하나님과 재물은 함께 섬길 수가 없습니다.(눅16:13) 자기 사업이나 물질보다 하나님이 먼저입니다. 가족과 가정이 소중하지만 하나님보다 먼저가 되어서는 안됩니다(딤후2:4, 마10:37).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순종하여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쳤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이삭 대신 양을 준비하셨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복받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세상에서의 축복보다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먼저입니다. 먼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기도가 중요하지만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해야지 오직 기도하는 것이 내 가족의 행복이나 건강, 사업의 성공을 추구하면 잘못된 기도입니다.(마6:33) 내가 소중힌 존재이지만 나보다 하나님이 나의 삶의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불신자보다 믿는 형제를 먼저 도와야 하고 북한주민을 돕기보다 먼저 대한민국의 어려운 이웃을 도와야 합니다. 성령의 은사가 중요하지만 말씀이 먼저입니다. 말씀이 뒷받침되지 않은 은사와 능력은 교만만 불러옵니다. 그래서 어떤 이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자기가 받은 계시의 음성과 예언을 성경말씀과 동등 또는 그 위에 두려고 말합니다. 이는 이단입니다. 목사나 지도자를 높이지 마십시오. 누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하면서 성경의 권위를 무시하는 말을 하면 이는 이단이요, 거짓 선지자입니다. 그리고 성경을 멋대로 해석하는 자도 거짓이요 이단입니다. 이들에게 속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교회는 무엇보다도 성경의 권위를 강조합니다.(딤후3:16-17) 그러나 이단들은 성경의 권위를 부정하여 가감하며 교주의 신비체험이나 계시, 설교를 더 믿게 만듭니다.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 찌어다"(갈1:7,8) 하나님 말씀은 다 순전하며 하나님은 그를 의지하는 자의 방패시니라 너는 그 말씀에 더하지 말라 그가 너를 책망하시겠고 너는 거짓말하는 자가 될까 두려우니라(잠30:5,6) 아무리 성령의 능력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괭과리에 불과합니다. 믿음과 소망이 다 중요하지만 사람이 제일입니다. 한국교회와 성도는 하나님 제일주의로 사는 교회와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신30: 19- 20)
3. 한국교회의 직분이 계급화 되어가고 있습니다. 당회장 제도와 권사, 서리 집사는 세계 어느 나라 교회에도 없고, 오직 한국교회에만 존재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사도들이 기도와 말씀 전하는 것에 전무하기 위해, 집사제도를 두었습니다.(행6:4) 그리고 모세와 예수님만이 왕과 선지자와 제사장을 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담임목사가 당회장과 주일학교 교장, 유치원 원장 등의 교회내의 높은 자리를 모두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교회 안의 독재자(교주)가 되기 위해 한국교회가 만든 자리입니다. 이 자리가 모세의 자리로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앉은자리입니다.(마23:2) 웃시야 왕은 제사장이 하는 일을 자신이 하려다가 문둥병이 걸렸고(대하26:16-26), 사울 왕은 사무엘 선지자를 기다리지 않고 자기가 번제를 드림으로 하나님의 노여움을 샀습니다.(삼상13:8-14) 교주가 되려는 이러한 제도는 없어져야 합니다. 많은 교회가 원로목사 밑에 당회장, 그 밑에 부목사, 강도사, 전도사, 장로, 안수집사, 권사, 권찰, 서리집사, 성도 순으로 계급화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장로(감독), 집사외에 이러한 직분들이 존재하지도 않았고, (엡4:11의 목사는 오늘날 성가대나 교사와 같은 사역임) 또한 장로와 집사도 동등한 직분이었지, 장로 밑에 집사가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지도자는 오직 예수님 한 분 뿐이며, 모두가 한 형제입니다.(마23:8-10)
4. 오늘날 일부 교회 목회자들은 율법 중 하나인 십일조와 헌금을 강요합니다. 그래서 맥추감사, 추수감사, 부활절 감사, 생일 감사, 성탄절 감사 및 건축헌금, 헌신예배헌금, 선교 헌금, 주정 헌금, 작정 헌금, 구역 헌금, 개축 헌금, 일천번제 헌금, 약속 헌금 등 성경에도 없는 여러 가지 이름을 붙여 교인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고 있습니다.(마23:4, 마21:12-13) 주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율법, 죄, 죽음 등)진 자들을 쉬게 하리라 하시고(마11:23), 돈 없이 값없이 포도주를 사라고 하십니다.(사55:1) 하나님은 돈이 필요하신 분이 아닙니다. 그 정성을 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교회에 십일조나 헌금을 바치는 것 보다 인애와 긍휼과 순종과 선행을 더 기뻐합니다.(시40:6, 호6:6, 마9:13, 마12:7, 히13:16, 삼상15:22, 요5:29 등) 또한 십일조와 헌금은 하되 말씀대로 바르게 사용되어야 합니다.(신14:28-29), 신26:12, 렘22:16 등)
5. 교회는 제자 양육 후 흩어져 복음 전하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12제자를 양육하시고, 그들이 나가서 또 제자를 양육하고, 그 제자들이 또 나가서 제자를 양육하고 하여서 땅 끝까지 복음 전파하기를 원하시는 데, 한국교회는 평신도들을 교회 우리 안에 가두워 놓고, 평생 그 교회의 교인화되기 만을 원합니다.
6. 일부 교회 목사들은 화려한 교회 건축에 열을 올리고 있으나, 주님은 이 같은 행위를 기뻐하지 아니하십니다.(사66:1, 행7:47-48, 행17:24 등) 말세를 만난 지금은 교회건물을 거대하게 건축할 시기가 아닙니다. 교회건물을 우상화하지 맙시다. 예수님은 교회건물을 지으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으며, 초대교회 당시는 성도들의 집에서 예배를 보았습니다.(골4:15, 고전16:19, 몬2 등) 비록 조그만 교회건물이라도 매일과 같이 꺼지지 않는 불꽃처럼 모여 예배하고 찬송하고 기도하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히10:25)
7. 기독교 교단, 교파간 반목과 분쟁 그리고 자격 없는 목사 후보생들을 양성한다는 무인가 신학교의 난립과 엉터리 석, 박사학위 등의 남발입니다. 이밖에 한국교회의 일부 목사들은 스스로를 섬기는 자들이라고 하면서 실제로는 옛날 바리새인, 서기관들처럼 외식하며, 상석(높은 감투)을 좋아하고 대접받기를 즐기며...(마23:1-35) 해외 나들이, 고급승용차(비교: 마21:5), 고급호텔 세미나 등 물량주의와 권위주위를 추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날에 그들을 도무지 알지 못한다. 내게서 떠나가라 하실 것입니다.(마7:21-23) 그리고 교회의 대형화와 양적인 증가에 치중하다가 보니 거품교인이 많습니다. 여기서 거품교인이란 믿음이 없어도 교회에 소속된 사람들을 말합니다. 이들 거품교인의 유형도 여러 가지입니다. 우리 사회가 체면을 중시하는 사회이기 때문에, 할 수 없이 교회에 나오는 교인, 기복적 신앙에 의해 믿음 없이 교회에 출석하는 교인, 실리 추구적인 측면 즉 자기 사업이나 이익을 위해 교회를 나오는 교인, 친교를 위한 장으로서의 교회의 이용 등 이런 저런 목적으로 출석하는 교인의 수가 많아짐으로 말미암아 교회의 세속화를 부추기게 만들었습니다. 마치 솔로몬 시대에 이방여인들이 이스라엘에 우상문화를 퍼트린 것처럼 말입니다. 이들 거품교인들이 세상이 추구하는 돈, 명예, 권세 등 허망한 가치관과 잘못된 사고의식들을 교회 내에 끌어 들어와 그리스도의 근본정신인 사랑, 겸손, 온유, 희생의 정신 등을 희석하여 교회의 섬기는 직분을 계층적 서열로 바꾸어 놓고 교회적 리더쉽을 혼돈케 만들고 이런 저런 텃세로 인해 새신자들이 발 부칠 곳을 잃게 만들고 있습니다. 또한 한국교회가 무자격 교역자 양산으로 목회자의 자질이 함량부족이라는 점과 영적인 준비가 철저하지 못하다는 사실입니다. 목회자들은 교회의 일 때문에 혹은 세속적인 관심 때문에 매우 분주합니다. 그 때문에 목회자는 기도하는 무릎을 상실하였고 성경과 신학을 심도 있게 연구하기는커녕 연구할 생각조차 갖지 않아도 그 양심이 괴로움을 당하지 않게끔 되었습니다. 목회자 자신은 안일한 성경연구로 인해 기존에 나와 있는 성경 공부 책이나 외국의 베스트셀러를 번역하여 그대로 교인들에게 소개하는 대리자로 전락되고 있습니다. 또한 이들 목회자들이 눈에 보이는 양적 증가와 성도들의 삶의 아무런 변화를 줄 수 없는 비전만을 제시하고 있으므로 더 이상 불신자들에게 매력을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특히 사회를 향해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고, 한국교회는 자체의 물적, 인적 자원을 사회봉사나 구제에 활용하기보다는 대부분을 교회당 증축, 기도원이나 수양관 건립, 교회묘지 구입 및 교육관 건축 등 보이는 일, 대형화하는 일에만 치중했다는 점입니다. 이러다보니 교회가 교회의 본질에서 벗어나 마치 교회가 교역자들의 사업장이나, 교인들의 친교장소나 지식을 전하는 강연장, 심지어 결혼식장이나 구제단체로 변모되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교회가 교회의 본질을 되찾을 때만이 부흥될 수 있습니다. 교회는 기도하는 집이요, 예배하는 곳이요, 찬송하는 곳이요, 선교하고 봉사하는 곳입니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한 곳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교회의 참된 터는 주님의 말씀 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우리 크리스천들이 진심으로 회개하여 바른 교회, 좋은 교회를 세우기 위해 힘을 합하고, 마음을 합하고, 뜻을 모읍시다.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계2:5)
8. 많은 성도가 빛과 소금, 사랑 운운하면서 말과 행함이 일치하지 않습니다.(약2:14-16, 계3:8, 딛1:16) 당신은 그리스도인의 이름에 합당한 즉 세상의 빛된 삶을 살고 있습니까? 예수님과 세례요한이 복음 전파하실 때에 처음으로 하신 말씀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오늘도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이 하실 것이요”(요일 1:8∼9)
9. 교회 건물을 사고 파는 행위입니다. 많은 교회가 이전을 할 때 목사의 의도에 따라 교회 건물을 팔고 새로운 곳으로 이전하려고 할 때 많은 문제가 생깁니다. 평소에는 하나님의 집 운운 하다가 교회 부흥을 말하면서 이사를 하려고 기존의 교회 건물을 팔아치웁니다. 그러다보면 함께 가지 못하는 성도는 예배장소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이것은 분명히 큰 죄를 저지르는 것입니다. 모든 교인의 동의가 없는 한 교회 건물을 팔아서는 안됩니다. 다른 사역자에게 넘겨주고 이사하여 개척할 생각을 하여야지 이전 것을 팔고 옮기는 행위는 분명히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행위입니다. 사람들은 지금 우리 사회를 총체적 위기의 시대라고 부릅니다. 정치 경제 사회 환경에서 많은 문제가 나왔지만 가장 근본적인 것은 희망이 없다는 게 그 이유입니다. 그저 제도적 구조적인 면만 바뀌면 될 것 같으나 사람의 강퍅한 마음이 바뀌지 않는 한 진정한 해결은 없습니다. 우리 현대인들은 극단적 이기주의가 판을 치는 시대에서 모든 것을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는 문제를 갖고 있습니다. 또 윗사람을 인정하지 않아 권위가 땅에 떨어졌고 어른을 공경할 줄 모릅니다. 스트레스에 시달린 현대인들은 앞뒤를 돌아보지 않고 정신적 경련 속에서 일을 저지릅니다. 최근 청소년들이 자살사이트를 보고 직접 살인을 저지르는 등의 문제가 우리 시대에 나타나는 한 모습일 것입니다. 이런 위기의 시대에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사명을 한번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한국교회는 부패한 사회도덕성과 아울러 민족갱신을 통한 국민 의식개혁에 중차대한 사명과 책임을 통감하면서 교회가 어떻게 그 본연의 사명을 다해야 할지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나라처럼 십자가가 많은 나라도 없을 텐데 이 사회에 미친 영향력을 보면 스스로 부끄럽게 느낄 때가 많습니다. 한국교회는 이 사회의 정신적 지주가 되어 교회가 스스로 새로워지며 초대교회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 안에 있는 우리 그리스도인은 나라와 이 사회에 책임을 다하기 위해 교회일치운동, 사랑의 운동, 회개의 운동으로 빛과 소금이 되어 민족의 등불이 되기를 힘쓰며 기도해야 합니다. 또 우리 젊은이들은 미래 사회를 여는 기둥입니다. 민족에게 정신적 시멘트가 되어 세계 속에 한국을 빛내줄 것으로 믿습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 그리스도인의 행복한 삶을 위해 평안과 소망을 가져다주십니다. 그 시대의 종교는 바로 그 시대의 수준을 재는 척도입니다. 이것은 역사 속에서 배워온 교훈입니다. 사회가 병들고 흔들릴 때 그 사회를 살려내는 것은 정치도 경제도 군사도 교육도 아닙니다. 사회가 파멸로 치달을 때마다 기독교 지도자들은 영적 대각성의 파도를 일으켜 한 시대의 갈등과 모순을 극복시키는 사회개혁에 앞장 서왔습니다. 100여 년전 이 땅 위에 흑암이 짙었을 때에 복음의 빛으로 역사의 새벽을 일깨웠던 신앙의 선배들은 오늘 우리에게 하나님 사랑, 나라 사랑을 가르쳤습니다. 순교의 피와 희생의 대가를 치르고 진리 가운데 민족을 영도했던 우리 신앙의 선열들의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쟁쟁합니다. 앞서가신 분들의 피와 땀과 눈물의 토양 위에서 한국 교회는 성장했고 짧은 역사 속에서 괄목할 만한 발전을 거듭했습니다. 그러나 세속문화의 오염이 교회 안으로 들어왔고 그로 인해 점차로 신앙의 본질마저 위협 당하는 시점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물론 긍정적인 면에서 한국 교회가 부흥하고 왕성하여 민족사에 있어서 선도적인 역할을 감당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영향력이 어느 덧 교회 내부 뿐이요 사회와 동떨어지게 되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지금 이 사회는 부표처럼 비전을 잃고 정도와 원칙을 벗어나서 표류하고 있습니다. 사회를 지탱해야 할 교회의 진정한 모습이 보이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거울인 것입니다. 이 겨레의 마지막 진실이어야 할 한국교회는 민족의 보루로서의 역할을 못하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우리는 더 이상 아픔의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교회는 깨어 일어나야 할 것입니다. 이제는 불 꺼진 등처럼, 맛 잃은 소금처럼 걷기를 포기해야 할 때입니다. 이 세상에 가장 낮은 자로 오신 예수님처럼 자신을 낮추는 겸손으로 회개의 열쇠를 다시금 손에 쥐어야 할 때입니다. 더 이상 어리석은 상처를 반복하지 말고 이 세상에 영원한 하늘의 생명력과 피묻은 십자가 복음으로 채워야 할 시점에 와 있습니다. 교회는 이 시대 속에서 진실과 정의를 지켜야 할 양심의 보루가 되도록 거듭 자신을 정화시키는 개혁에 힘써야 할 때입니다. 우리 스스로가 돌이켜 보아야 할 것은 바로 진실에로의 회귀입니다. 잎만 무성한 무화과가 된 것을 돌이켜 진실한 열매를 찾아야 할 것입니다. 숫자가 적어도, 가난해도, 무식해도, 진실해야 힘이 있는 것입니다. 해방직후 38선을 넘어 월남하려던 작은 배가 밤새도록 노를 저었건만 아침에 보니 어젯밤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닻줄을 끊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진실을 얻기 위해 우리는 세상줄을 끊어야 합니다. 허수의 줄, 허세의 줄, 욕심과 교만의 줄, 죄악의 쇠사슬을 말씀과 성령의 검으로 잘라야 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당면한 교회의 갱신은 민족을 살리는 생명의 근원이며 세계를 이끌고 나갈 핵심윈리이며 동시에 이 민족 겨레의 미래 청사진을 제시할 원동력인 것입니다. 요한복음 2장 13절 이하에 보면 예수님은 성전으로 들어가서 채찍으로 장사꾼들을 내몰았습니다. “만민이 기도하는 하나님의 집을 강도의 굴로 만들지 말라”고 야단을 치시면서 채찍으로 내리치셨습니다. 당대의 성전이 기도하는 거룩한 장소가 아니라 대제사장 서기관 장로들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장소가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채찍을 높이 드신 것입니다. 이 썩어 냄새나는 부패의 상징, 유대교의 상징인 성전을 완전히 개혁하지 않고는 하나님 나라의 건설이 불가능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한 자들은 바로 이 성전 지도자들이었습니다. 성전을 독차지하고 있는 저들 때문에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의 나라가 일반 백성들 속으로 전파되지 못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전해야 하는 성전이 오히려 하나님을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그 성전을 타고 앉아 있는 종교지도자들을 몰아내고 성전을 다시 재건하시려고 예수님은 성전에 오신 것입니다. 우리들은 거대한 변화가 일고 있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겪고 있는 변화는 급변이라는 말로는 부족합니다. 기업이나 모든 조직들이 변화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변화하지 않으면 생존하지 못한다는 시대의 필연적인 요청 때문입니다.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교회도 변화하지 못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교회는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고 과감하게 해나가야 합니다. 뼈를 깎는 고통을 감수하고라도 변화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사회뿐만 아니라 많은 기관들과 조직체들이 패러다임의 전환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거대한 사회적 변화가 학교 병원 대학 봉사기관 등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아직도 교파간의 경쟁과 대립, 성장과 업적주의의 옛 패러다임의 옷을 벗어버리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새 술은 마련돼 있는데 새 술을 담을 그릇이 준비돼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주로 고백하는 예수님은 낡은 패러다임을 바꾸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가져왔던 혁명적이고 창조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패러다임 변혁운동은 성전체제의 정화에서 절정에 이릅니다. 그는 바리새, 에세네, 열심당 운동 등과는 달리 세계변혁운동의 목표를 권력구조의 개혁이나 사회경제구조의 변혁에 두지 않고 성전체제의 정화에 두었습니다. 이 같은 예수님의 개혁운동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 공동체 가운데 살롬이 파괴된 근본적인 원인을 하나님을 섬겨야 할 성전이 장사하는 사람들의 소굴로 변질된 데서 보았던 것 같습니다.때문에 성전을 중심으로 한 권력구조를 혁파하는 것이 참된 정의와 자유를 보장하는 평화를 이루는 첩경이라고 여겼습니다. 예수님 당시 예루살렘 성전은 헤롯이 유대인의 환심을 사서 유대를 통치하기 위해 세운 것이었습니다. 대제사장들은 성전을 완공하기 위해 헤롯에게 온갖 아첨을 다 떨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헤롯의 물질공세를 통한 정치목적과 종교목적이 혼합된 타락의 온상이었습니다. 이곳을 중심으로 극에 달한 대제사장 세습과 유대교의 교권주의는 잘못된 권력구조와 상업주의로 나아간 나머지 진정한 예배는 온데 간데 없고 형식주의에 빠졌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성전정화운동은 종국에는 정치·경제·종교·사회를 움직이는 특권층의 기득권을 근본적으로 위협했습니다. 또 십자가와 부활사건으로 이어진 이스라엘 민중들의 대변혁운동으로 발전돼 낡은 권력구조와 사회체제의 붕괴를 가져왔고 하나님 나라를 위한 교회의 탄생을 가져온 것입니다. 오늘 한국사회가 이처럼 타락하고 부패한 것은 진심으로 하나님을 섬겨야할 교회들이 이 세속 세계의 권력과 결탁하고 상업주의의 온상이 돼 버린 데 있지 않나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교회가 진정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키 위해서는 무엇보다 주님께서 회복하신 진정한 교회의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교회에 침투한 세상 가치와 맘몬의 지배를 물리치고 성장주의와 공적주의로 얼룩진 과거의 낡은 모습을 청산해야 합니다. 종교 개혁은 부패한 교회, 경직된 종교, 변질된 신앙을 썩지 않고 부드럽게 열린 종교, 영원토록 변치 않는 신앙으로 개조하는 데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새로운 시대에 걸 맞는 구조로 태어나기 위해서는 첫째, 교권주의의 틀을 지양하고 전문영역과 전문성을 중심하는 선교구조로 개혁돼야 합니다. 둘째, 목회자나 평신도들의 자발적인 개혁 운동을 통해 딱딱하게 굳어진 구조를 열린 구조로 바꿔 가야 합니다. 셋째, 성직자에게 편중된 교회구조를 평신도 중심의 분산된 구조로 재편해야 합니다. 넷째 성장에서 사회 섬김으로 교회구조를 바꿔가야 합니다. 다섯째, 한국 기독교를 대표하는 연합기구 탄생을 통해 화해와 일치를 이루고 기독교의 위상을 높여가야 합니다.
오늘의 한국교회의 긴급한 과제는 정체성을 되찾아 교회가 서야 하는 자리를 되찾고 섬김과 나눔에 힘쓰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이 시대의 등불과 소금으로서 한국교회의 사명과 역할과 책임은 큽니다. 한국교회의 현주소는 생활신앙의 부재로 인한 신뢰의 붕괴, 정체성 상실로 인한 힘의 상실, 교단분열로 인한 힘의 약화, 성장의 담보로 한 이기적인 모습, 신앙의 이중성에 지탄을 받고 있습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도도한 영적 도전 앞에 직면해 있습니다. 한국교회는 교만으로부터 해방되고 잃어버린 영성과 진실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리고 지역사회에 섬김과 나눔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오늘의 한국교회가 지역사회를 섬김과 나눔으로 감당할 때, 지역사회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게 될 것입니다. 지역사회로부터 우리지역 교회로 칭찬을 받게 되며, 교회에 대한 호감을 갖게 하고 전도의 접촉이 쉽게 됩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성장하고 발전하게 됩니다. 교인들의 은사를 개발하여 적재 적소에 섬기게 하므로 교회가 살아 움직이는 교회, 평신도를 개발하는 교회가 됩니다. 이처럼 지역과 이웃에 대한 봉사의 사명을 감당할 때 목회의 위기는 극복되고 건강한 교회, 성장하는 교회, 성숙한 교회, 우리지역 교회, 우리동네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이웃을 섬기고 나누는 봉사의 공동체가 될 때 교인들만의 이기적인 집단이 아님을 보여주게 되며 지역사회에서 비난받는 교회가 아니라 존경과 사랑을 받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이미 한국교회는 지역사회 섬김과 나눔를 위한 시설과 재정,인적 자원를 충분히 갖추고 있습니다. 이제 한국교회는 세계화, 지방화 시대에 지역사회 기독교문화를 창조해야 하겠습니다.
추운 겨울밤 넓고 큰그릇에 고슴도치 떼를 담아 밖에 내어놓았습니다. 영하 20도 혹한 속에 찬바람이 불어오자 부들부들 떨던 고슴도치들이 한 마리 두 마리 몰려들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따뜻해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저마다의 침이 상대방을 찌르자 아파오기 시작합니다. 피를 흘립니다. 고슴도치들은 아파서 흩어지기 시작합니다. 흩어지면 춥습니다. 추워서 부들부들 떨다가 견딜 수 없어 다시 몰려들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모였다 흩어지고 흩어졌다 모이고... 날이 밝아왔습니다. 아침에 나가 보았더니 다 죽어 있었습니다. 절반은 얼어서 죽었고 절반은 피를 흘리고 죽어 있는 것입니다. 21세기에 들어선 지금 공동체들이 급속히 깨어져 가고 있습니다. 개인주의, 이기주의가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저마다 혼자 살아가겠다고 합니다. 내가 중심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이 그립습니다. 용서와 용납의 자리가 그립습니다. 따뜻한 마음을 나누는 교제의 자리가 그립기만 합니다. 우리는 무엇인가 아쉽고 외로워서 모여 봅니다. 서로들 의지해 봅니다. 그런데 공동체가 연습이 안되어 있기에 갈등을 느끼고 문제를 일으킵니다. 문제를 극복할 줄 모릅니다. 나는 너에게 상처를 받고 너는 나에게 상처를 받습니다. 그래서 흩어져갑니다. 흩어지면 다시 외로움을 느낍니다. 춥습니다. 추위에 떨어 봅니다. 세상이 혹독하기만 합니다. 공동체가 그립습니다. 은혜의 자리가 그립습니다. 다시 몰려옵니다. 그러나 몰려와서는 또 상처를 주고받습니다. 증오심만 키워갑니다. 주님 오시는 마지막 날 교회 문을 열고 보았더니 절반은 피를 너무 흘려 죽어있고 절반은 추위에 얼어서 죽어있는 것이 아닌가. 사랑 받고 사랑 나눌 공동체가 없어서, 상처가 치유되고 쓰러진 자아가 회복될 삶의 자리가 없어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벅찬 감격과 은혜를 경험할 자리가 없어서 부둥켜안고 씨름하다 죽어있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면류관 쓰는 아름다운 교회를 건설하는 사람이 없는 것이 아픕니다. 하나님 기뻐하시는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받은 은혜와 감격을 나누기 위해, 받은 상처와 약점을 내어놓고 회복하며 치유 받는 자리를 만들기 위해 수고하고 섬기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지 않음을 인해 아프기만 합니다. 오히려 저마다 썩을 세상만을 위하여 일하고 살고 있습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세웠던 영광스러운 성도를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저마다 가슴속에 상처를 안고 신음하고 있는 것입니다. 추위에 떨고만 있는 것입니다. 참된 공동체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주님이 그토록 세우기를 원했던 그 거룩하고 아름답고 능력 있는 교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초대교회는 바로 한가족이요 함께 삶을 나눈 하나된 공동체였습니다. 로마의 창칼과 핍박, 콜로세움과 십자가에서의 순교 앞에서도 성도들은 매일 카타콤에서 가정에서 소그룹으로 대그룹으로 함께 모여 주님의 피와 살을 나누며 감격하고 사랑을 나누고 상처를 치유하며 복음 전파의 사명에 불타 있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구원받는 사람들이 날마다 더하였다’고 말씀은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세우신 공동체, 주님의 마음이 담겨있는 교회. 바로 이것이 오늘날 주님께서 보고 싶어하시는 공동체의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지금 이 시대에도 이 일을 감당할 동역자들, 성도들, 교회를 찾고 계십니다. 우리가 본받아야 할 초대교회의 모습을 돌아봅시다.
"믿는 사람들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2:44-47)
* 기도: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지금의 한국교회를 바라보면서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느 때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한 이 시대에 온전히 말씀이 선포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급속하게 변화하는 시대를 올바르게 이끌지 못하는 한국교회를 용서해주소서.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 한국교회가 처음 복음을 받아들일 때 가졌던 믿음과 사랑을 회복하는 은혜를 다시 베풀어주소서. 모든 입이 주를 고백하며 주께 영광 돌리기를 원합니다. 서로를 위해 눈물로 기도하며 중보하는 하나 된 모습을 갖게 해주소서. 주님이 베푸시는 은혜의 강물로 이 땅의 반목과 질시를 씻어주소서. 깊은 갈등의 골짜기를 메워주시고 상처를 싸매주소서. 그리하여 한국교회가 이 시대의 소망이 되게 해주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빛의 사자(한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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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말씀
(2012-05-01 오전 3:10:46)http://blog.somang.net/holylove/7330
▣ 아기와 성경책
저는 딸내미가 둘이지만 백일잔치나 돌잔치를 해주지 못했습니다. 백일이나 돌에 큰 의미를 두고있지 않기도 하고 그만한 형편이 못되어서 슬그머니 그냥 넘어갔습니다. 어떤 아기의 돌잔치에 갔는데, 호텔의 뷔페집을 빌려 정말 거나하게 차렸더군요. 사람들은 반지며 돈봉투를 들고 왔습니다. 저는 돌이나 백일잔치에 꼭 아장아장성경이나 두란노어린이그림성경을 선물로 들고 갑니다. 저는 딸내미들이 태어나자마자 장난감보다도 먼저 어린이용 성경책부터 샀습니다. 그래서 두 아이들이 성경책을 한 권씩 찢어 먹고 자랐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이가 태어나면 성경책에 꿀을 발라서 입으로 빨게 한다지요. 그래서 성경은 달다는 인식을 태어나면서부터 갖게 한다는 것입니다. 저도 성경책에 설탕물을 묻혀 아이들에게 빨리려다가 마누라에게 들켜 맞아죽을 뻔했습니다. 이스라엘 성경책은 양가죽으로 만들어서 빨아도 되지만 우리나라 성경책은 화공약품처리가 된 인조가죽으로 만들어서 위험하다나요. 어쨋든 아기가 태어나거나, 돌, 백일이 되면 아기에게 유아용 성경을 선물로 주는 좋은 전통을 만들어보면 참 좋겠습니다. ⓒ 최용우
▣ 성경에 꿈이 있다
“Boys, Be ambitious!”(젊은이들이여 야망을 가져라) 널리 알려진 이 말은 19세기 세계적으로 유명한 식물학자이며 농학자였던 미국 윌리엄 클라크 박사가 한 말이다. 매사추세츠 주립농과대학 학장이었던 그는 1876년 7월 일본 삿포로 농림학교 초대 교장에 취임했다. 그의 일행이 처음 일본에 도착했을 때 유난히 ‘큰 짐’을 본 장학관이 “무슨 짐입니까?”하고 물었다. “성경이지요.” “성경은 가르칠 수 없는데요.” “그러면 돌아가겠습니다.” 돌아가겠다는 말에 크게 당황한 장학관은 “강의 시간 이후에 가르치시지요”라고 허락했다. 그는 학생들에게 농업기술을 전수하는 한편 ‘성경에 인생의 꿈이 있다’고 가르쳤다. 임기를 마친 후 그는 고별사에서 ‘젊은이들이여 야망을 가져라’란 이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일본 삿포로농과대학 교정에 세워진 그의 동상에 이 세계적인 명언이 새겨져 있다. 성경엔 인생을 살리는 꿈’이 있다.
▣ 인간은 나약하다
‘사랑의 아버지’로 불리는 조지 뮬러 목사는 3천명 이상의 고아를 돌보았다. 한 기자가 그에게 “어떻게 그런 훌륭한 일을 일을 할 수 있었습니까? 라고 묻자 “나는 평생 동안 성경을 1백번 읽었습니다. 단 한 번도 싫증을 느낀 적이 없지요. 내가 성경을 읽지 않았던 3년은 ‘잃어버린 시간’이었습니다. 하루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먹지 않으면 영적인 활력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미국의 링컨 대통령도 “하나님이 내게 주신 최고의 선물은 성경이다”라고 말했다. 링컨은 매일 성경을 묵상하며 삶의 지혜를 얻었다. 새는 9일 동안 먹지 않고 살 수 있다. 개는 20일을 견딜 수 있다. 거북은 5백일, 뱀은 8백일을 버틴다. 사람은 음식을 먹지 않고 12일을 살 수 있다고 한다. 인간은 나약하다. 그러나 영적인 허기를 느끼는 유일한 동물이다. 온전한 사람은 없다. 성경의 인물들을 보라 노아, 기드온, 다윗 등도 어느 정도 성공하고 성취하자 자만하여 져서 범죄하였다. 사람을 높이지 말라. 누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하면서 성경의 권위를 무시하는 말을 하면 이는 이단이요, 거짓 선지자이다. 그리고 성경을 멋대로 해석하는 자도 거짓이요 이단이다. 이들에게 속지 말라. 하나님의 교회는 무엇보다도 성경의 권위를 강조한다.(딤후3:16-17) 그러나 이단들은 성경의 권위를 부정하여 가감하며 교주의 신비체험이나 계시, 설교를 더 믿게 만든다.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 찌어다"(갈1:7,8) 하나님은 기도와 말씀을 항상 가까이 하는 자를 기뻐하시고 귀히 여기신다. 성경 말씀을 가까이 하라 ‘말씀을 멸시하는 자는 자기에게 패망을 이루고 계명을 두려워하는 자는 상을 받느니라’(잠13:13)
▣ 성경속의 인물들을 배워라
아마 미국 역사상 가장 감사장을 많이 받은 사람은 데일 로저스 여사일 것입니다. 여사는 녹음예술, 텔레비전, 영화에서 상당한 성공을 거두어 좋은 일을 많이 했습니다. 특별히 고아나 정신박약아 같은 버림받은 불행한 어린이들을 돕기 위해 많은 자선모금행사를 했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500번도 힘든데, 아니 50번도 어려운데, 무려 5000번이나 되는 자선행사를 열어서 감사장을 제일 많이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God in Hard Time(어려운 때의 하나님)』이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은 고백을 했습니다. "나는 마약에도 빠졌었고 인생의 밑바닥까지 떨어졌었습니다. 버림받은 인간, 쓸모 없는 인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읽기 시작하고부터 인생이 새로워졌습니다. 성경속의 인물들은 어려울 때 하나님앞에 기도하고 신앙으로 위기를 극복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도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어려울 때는 반드시 성경을 읽으세요.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도움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 외딴섬에 있는 단 하나의 책
내가 열예닐곱 살 무렵이었을까, 국어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물었다. “만약 망망한 바다의 외딴섬에 한 권의 책만 가져갈 수 있다면 무엇을 가져가겠니?” 우리는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만화책 등 생각나는 것을 말했다. 그런데 누군가, “성경이나 백과사전이요”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선생님은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선생님이 묻는 건, 너희가 성경을 고르겠느냐 백과사전을 고르겠느냐 하는 거다.” 그때 결론이 어떻게 나왔는지는 잊어버렸지만, 선생님의 그 반문만은 기억하고 있다. 여학교를 졸업할 때, 나는 친구와 그 선생님 댁을 방문했다. 젊은 우리는 단도직입적으로 질문했다. “선생님, 인생이란 게 대체 뭔가요?” 언제나 환하게 웃고 있던 선생님이 갑자기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난 결혼해서 아내와 아이가 있단다. 요즘 들어 어렴풋이 인생은 이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한단다. 그렇지만 인생이 뭐냐고 묻는다면 모른다고 하는 게 정직한 대답일 거야. 죽을 때까지 고민해도 인생이 무엇인지는 모를 테지.” 나는 그 한마디에 무척 감동을 받았다. 그 뒤 나는 폐결핵을 앓아 13년간 요양 생활을 해야 했다. 요양 생활은 나 자신과의 고독한 싸움이었다. 그야말로 망망대해의 외딴섬이었다. 나는 이 인생의 외딴섬 속에서 백과사전 대신 성경을 선택했다. 사전은 지식을 늘려 줄지 모르지만, 살아가는 힘도, 하나님을 찾는 겸손도, 사람을 마음으로 사랑하는 힘도, 죄를 씻을 수 있는 능력도 없다. 성경만이 인생의 모든 의문에 대답해 준다. 인생은 외딴섬과 같다. 내게 성경은 외딴섬에 있는 단 하나의 책이다. - 「삶에 답이 있을까」/ 미우라 아야코
▣ 내 인생 최고의 투자, 성경
존 워너메이커가 사업가로서 60년을 맞은 기념행사에서 한 기자가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회장님, 지금까지 투자한 것 중에서 가장 성공적인 투자는 무엇이었습니까?” 그는 답변을 마음속에 담고 있었다는듯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10살 때 최고의 투자를 한 적이 있지요. 그때 나는 2달러 75센트를 주고 예쁜 가죽 성경 한 권을 구입했어요. 이것이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위대한 투자였습니다. 왜냐하면 그 성경이 나를 만들었으니까요.” 기자가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성경만 구입하면 성공할 수 있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먼저 하나님을 믿고, 말씀을 실천해야지요. 하나님을 신뢰하며 즐겁고 기쁘게 일하다 보면 성공은 어느새 자신의 옆에 다가와 있게 됩니다.” 미국의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과 정열의 복음 전도자 D. L. 무디와 동시대를 살았던 존 워너메이커. 가난했던 어린시절,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며 자랐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으며 꿈을 품고 성경의 가르침을 실천했던 사람. 그는 실로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최선을 다해 살면서 그 모든 영광과 찬사를 하나님께 돌렸던 위대한 거인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경을 아는 것에 만족하며 사는 동안 워너메이커는 그의 인생의 매순간을 성경 말씀을 실천하며 꿈을 성취하는 것으로 채워 나갔던 것이다. - 「성경이 만든 사람」/ 전광
▣ 성경에 대한 열정
카우만(C.E. Cowman)은 스웨덴 소프라노 가수로 세계 정상에 올랐던 제니 린드(Jenny Lind)의 전기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19세기의 대표적 소프라노의 가수인 제니 린드의 경력에 있어서 가장 놀라운 일은 그녀의 화려한 시기가 매우 짧았다는 것입니다. 그녀는 영국의 오페라 극장에서 불과 2년을 노래했을 뿐이며, 실질적으로는 런던에 모습을 나타낸 지 불과 5년 만에 은퇴했습니다. 그리고 그 후 수년간 가끔 자신을 위한 음악회에 모습을 나타냈을 뿐입니다” 젊은 여성으로 이토록 높은 인기를 버리고 시골로 은퇴해 버린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이해할 수 없는 기이한 일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녀가 해변에서 성서를 읽고 있을 때, 그녀를 무척 아끼는 사람이 그녀를 찾아가 물었습니다. “왜 당신은 인기의 절정에서 그렇게 돌아서 버렸나요?” 제니 린드는 읽고 있었던 성서 위에 손을 놓으며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이 성경을 읽을 시간이 날마다 줄어드는데, 어떻게 그만두지 않을 수 있었겠어요.” /김성철 목사(왕십리교회)
▣ 6·25 성경
필자가 결핵 치료를 위해 고향에서 요양할 때 김 집사에게서 성경책 한 권을 선물받았다. 김 집사는 사리원에서 피란 와 우리 동네에 정착한 분이다. 피란하면서 공습 때 파편을 맞아 오른손 기능이 마비된 50대 부인이었다. “고훈아, 네가 살려고 주님께 나왔구나. 우리가 네가 구원 받도록 기도 많이 했다. 한경직 김창인 조용기 목사님이 모두 결핵을 앓았으나 예수 믿고 목사가 되신 분들이다. 너도 후일 목사 되라고 결핵을 주신 것 같다. 이 성경은 내 보물이다. 이제는 눈도 멀고 읽을 수도 없구나. 네가 읽고 꼭 목사가 되거라.” 내 가슴에 안겨준 성경. 표지는 불에 타 없어지고 겨우 알맹이만 남아있었다. 그 성경이 내 가슴에 닿았을 때 내 가슴이 뜨거워졌고 지금까지 평생 한 번도 성경 말씀을 의심해본 적이 없다. 나는 그 성경을 읽고 또 읽어 정말 목사가 되었다. 그때부터 내가 교인에게 주는 최고의 첫 선물은 성경이다. 주님이 네게 면류관 2개를 준다면 나를 전도한 윤 권사님과 성경을 선물한 김 집사님께 드리겠다. /고훈 목사(안산제일교회)
▣ 위대한 문화
전 인류 중 1300만 명밖에 되지 않는 유대인들이 각 분야에서 엄청난 힘을 발휘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 힘의 원천은 교육이다. 유대인들은 책을 보물처럼 다루어 왔다. 유대인의 가정에서는 아이들이 철이 들 무렵 성경을 펼쳐들고 그 위에 꿀을 떨어뜨려 성경에 입을 맞추게 한다. 평생 성경을 꿀송이처럼 생각하며 살라는 가르침이다. 그리고 유대인들은 성경에서 삶의 지혜와 힘을 얻는다. 인류 역사상 위대한 문화와 문명은 수없이 있었다. 영원할 것 같았던 그리스 문명도 500년밖에 번영하지 못했다. 그러나 유대인은 ‘구약성경의 백성’이라고 일컬어질 만큼 오랜 전통과 역사를 지니고 있다. 이집트나 로마를 보면 위대한 유적에 의해 기억되는 문화가 많지만 유대인은 유적을 거의 가지고 있지 않다. 그들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유적을 그들의 가슴 속에 세웠기 때문이다. 성경을 소중히 여기는 나라와 민족,가정은 번영한다.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설동욱 목사(예정교회)
▣ 성경을 읽을 때 영으로 읽어라
성경을 읽을 때 건성으로 읽지 마세요. 어명(御命:임금님의 명령)을 받들 듯 심각하게 받아야 합니다. 그러면 성경 말씀이 벌떡 일어나 나를 덮쳐옵니다. 성경을 다 쓰고 다 외운다고 해도 성경을 건성으로 읽는다면 아무 소용없습니다. 오히려 "나는 성경을 다 썼네~ 성경을 몇독이나 했네~ 너희들은 뭐냐~" 하면서 자기자랑과 남을 판단하는 판단 꺼리가 되어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립니다. 성경을 지식적으로만 읽지 마세요. 성경을 현으로 들여다보듯 너무 파고 연구를 하고 원어풀이나 역사적 배경을 하다보면, 성경 자체가 주는 생명을 놓쳐버리고 고등비평신학이나 신신학이 되어 결국에는 하나님은 없다는 결론이나 내리게 됩니다. 성경을 읽을 때 눈으로 읽지 말고, 내 심장 속에 있는 영으로 읽어야 합니다. 그러면 심장에서 영적인 파장이 솟구쳐 올라와 거대한 파도가 됩니다. 평생에 성경 한 구절만 내 몸 안에 제대로 들어와도 그 사람은 세상을 말없이 변화시키는 성인(聖人)이 됩니다. ⓒ 최용우
▣ 구원에 이르는 지혜
1945년 일본이 패전한 후 일본 군국주의가 몰락되던 때 일본 동경대학 야나이 바라다다오 신임 총장 취임식이 있었다. 기독교인인 그는 총장으로 취임하면서 취임연설에서 "하나님께서 우주만물을 창조 하셨습니다. 오늘도 그 하나님은 살아 계셔서 인류의 역사를 섭리하시고 주관하십니다...." 하는 말씀을 하자 당시 고분학자의 권위있는 교수였던 운천 교수가 반발을 일으켰다. "도대체 총장 취임연설이 마치 기독교 설교같은데 저래서 되겠는가? 하고 불평을 토로했다. 이런 불평을 들은 야나이 바라다다오 총장이 운천 교수를 만나 "기독교 성서를 읽은 일이 있으십니까?" 하고 묻자 운천 교수는 없다고 했다. 총장은 "한번이라도 성서를 읽어보시고 비판 하십시오." 라고 했다. 운천 교수는 비판하기 위하여 성경전서를 사서 창세기부터 읽어 내려가다가 여러 번 중단하였으나 시편, 잠언을 읽어가는 동안 기독교의 깊은 도리를 깨닫기 시작하여 예언서를 거쳐 누가복음에 이르자 예수님의 십자가상의 기도와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새 하늘과 새 땅에 관한 내용을 읽고 기독교인이 되어 교수직을 사임하고 미국으로 유학하여 신학을 한 후 목사가 되었다. 성경은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지혜가 담겨있는 책이다.
▣ 어머님의 사진과 성경
세계 제 2차대전 때의 일이다. 미국 항공모함이 비율빈 해협을 통과하고 있을 때 갑판에서 일을 하던 수병 상의가 바람에 날려 물속으로 떨어졌다. 그 수병은 쏜살같이 물속으로 다이빙해서 그 상의를 건졌는데 그 사건으로 인해 수십 대의 비행기와 많은 병기를 실릉 항공모함이 급히 멎었고 긴급히 구조선을 내려서 그를 구출하였다. 전시에 항공모함을 서게 한 죄로 그 수병은 군법회의에 회부되었고 크게 이적행위를 한 결과가 되면 사형에 해당한다. 군 법무장관은 그의 죄상을 논고하였고 재판장은 그로 하여금 진술하라고 했다. "재판장님, 저의 잘못으로 군 작전에 크게 지장을 드려 죄송합니다. 제가 상의 때문에 물속으로 뛰어든 것은 그 상의 주머니에는 저를 전쟁터에 보내시고 주야로 기도하시는 어머님의 사진과, 전쟁터에서 꼭 하나님께 의지하고 읽으라는 어머님의 성경이 들어 있습니다. 제가 아직껏 이토록 용감하게 싸운 것은 다 어머님의 덕분이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재판장은 "미합중국 헌법에 어머니의 사진과 성경을 건지기 위하여 물에 뛰어든 수병을 처벌하라는 조항은 없다. 무죄!"라고 하였다.
▣ 내 아버지 이야기
어느 날 아버지의 말에 나는 깜짝 놀랐다. “칩, 무슨 일이 있었니? 너 달라졌어.” 나는 수줍어하며 털어놓았다. “저, 아버지, 일년쯤 전에 예수님을 영접했어요.” 그때까지 나는 그 사실을 부모님께 말씀드리기를 꺼리고 있었다. 그때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털어놓은 후 아버지의 질문을 듣고 느꼈던 놀라움은 결코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아들아, 네가 있는 게 뭐니? 그게 무엇이건 내게도 필요한 것 같구나.” 그러나 당시만 해도 어떻게 복음을 전해야 할지 몰랐던 나는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 제가 아는 건 이래요. 성경을 읽기 시작했고 영접기도를 드렸더니 제 속에서 많은 것들이 변하기 시작했어요.” 이렇게 해서 아버지는 진리를 접하기 시작하셨다. 아버지는 매일 아침 5시 반에 일어나서 1시간 동안 성경을 읽으셨다. 그렇게 6개월 동안 하나님의 진리를 접하신 후, 아버지는 신약성경의 중심 주제가 믿음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셨다. 그 발견이 있은 지 얼마 후, 아버지는 형식적으로 교회를 다니는 불신자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변화되었다. 예수님을 통한 값없는 구원의 선물을 받아들였고, 그분을 삶에 모셔 들였다. 삶의 변화는 언제나 진리와 더불어 시작한다. 변화는 단지 체험이나 활동, 행사로 되는 게 아니며 교회에 출석하거나 착한 사람이 되려고 애쓴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변화는 언제나 진리에 뿌리를 박고 있다. - 「탈바꿈」/ 칩 잉그램
▣ 나는 거북이 교인이 아닌가?
미국의 유명한 실업가로 세계 최대의 백화점을 운영하며 나중에 체신부 장관까지 역임한 존 워너메이커는 성경을 사랑한 사람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이런 고백을 했다. “저는 오늘까지 무려 30,026일을 살아오면서 투자하는 것마다 많은 이윤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제가 한 가장 위대한 투자는 열두 살 때 2달러 50센트(3,000원 정도)를 주고 빨간 가죽 성경을 산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낡은 성경이 현재의 나를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세계적인 명문 예일대학 총장을 지낸 W. L. 펠프 박사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대학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 교육이 없는 대학 교육보다는 대학 교육이 없는 성경 교육이 인간을 더 고귀하게 만듭니다.” 성경을 읽지 않고도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자기 지혜를 믿고 살아가는 사람은 교만한 사람이다. 그러나 성경을 의지하여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다. 사납던 개도 며칠만 먹지 못하면 기운이 없어지고 무기력하게 죽어 간다. 그런데 거북이는 500일 동안 음식을 먹지 않고도 견딜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영의 양식을 먹지 않고 살아가는 교인을 가리켜 ‘거북이 교인’이라고 한다. 성경 말씀을 먹지 않고 살아가는 거북이 교인은 겉모양은 살아 있지만 영적으로는 죽은 것이다. 성경은 우리를 새롭게 하며, 우리에게 소망을 준다. 우리가 바로 살기 위해서는 성경 사랑 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 「성경 읽고 위대한 영웅이 되라」/ 전광
▣ 페스탈로치의 성경 사랑
페스탈로치는 전쟁 후 고아들의 교육에 헌신한 스위스의 위대한 교육자였습니다. 특히 그는 어려운 가운데 아내와 함께 성경을 애독하며 인생을 가꿨습니다. 1815년 그는 아내를 잃었을 때 관 위에 성경을 놓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두 사람은 성경에 의한 사랑을 체험했고 오랜 세월 동안 고난과 싸웠다. 극심한 가난 속에서 마른 빵을 먹어야 할 때도 하나님의 뜻에 거슬리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 하나님의 가르침에 의해서 우리 두 사람은 헤어졌다. 그러나 성경의 정신으로 함께 있다』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시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는 모든 자가 살아 있습니다. 이 세상에 살아 있는 우리들과 저 세상에 살아 있는 앞서간 성도들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두를 보고 계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는 금생과 내생이 복이 있는 것입니다.
▣ 내가 읽어야 할 성경
본문 : 시18:28, 잠20:27 ● 시 18:28- 주께서 나의 등불을 켜심이여 여호와 내 하나님이 내 흑암을 밝히시리이다 ● 잠 20:27- 사람의 영혼은 여호와의 등불이라 사람의 깊은 속을 살피느니라
의사로 불우한 환자를 위해서 평생을 사신 장로님이 있습니다. 은퇴 후에는 무의촌에 내려가서 주민들을 진료했습니다. 돌아가시기 직전까지도 몸소 환자들을 돌보셨습니다. 그때의 나이가 92세였습니다. 그분의 특징이 있습니다. 바로 ‘과묵’입니다. 통 말씀이 없어서 친구들이 찾아오면 ‘오늘은 몇 마디 했는가?’라고 물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책은 언제나 손에 잡고 사셨습니다. 응접실과 진찰실에는 책이 그득했습니다. 그래서 ‘참으로 책을 많이 보시는 분’이라고 소문이 났는데, 어느 날인가는 책이 한 권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진찰실 책상 위에 큼지막한 글씨로 인쇄된 한 권의 성경만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물었습니다. “책은 다 어떻게 하셨습니까?” 장로님의 대답입니다. “나이 여든이 넘으니 이제는 어떤 책도 필요가 없어요. 신문을 읽거나 뉴스를 들을 필요도 없고, 이제 내가 읽어야 할 책은 오직 이 성경뿐이더군요.” 하루에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몇 절씩이나 읽고 묵상합니까? 다윗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나의 발길을 비추는 등불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매일 꾸준히 성경을 읽으십시오.
* 기도: 주님, 다윗처럼 말씀의 맛을 알게 해 주소서. * 묵상: 성경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만 만족하지 말고 읽으십시오. /김장환 목사
▣ 성경의 단맛
사도 요한은 성경말씀이 "내 입에 꿀같이 달다"(계10:10)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아기가 기어다닐 즈음에 성경책 표지에 꿀을 바른 다음 그걸 혀로 빨도록 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아기는 성경은 달다는 인식이 무의식 가운데 새겨져 평생토록 성경은 단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산다는 것이지요. 성경이 꿀처럼 달다는 말은 사실입니다. 아주 지리산 순 토종 송이꿀 보다도 더 달콤하고 감미롭습니다. 하지만 정말 많은 사람들이 성경의 참 맛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니 예배를 마치고 나면 여기저기 성경책이 굴러다니고 어떤 분은 가지고 다니기 귀찮다고 교회에 두고 다니지요. 성경은 영혼이 먹는 양식입니다. 내 영혼도 정기적으로 밥을 먹어야 하는데, 성경책을 교회에 두고 다니면 어떻게 매일 밥을 먹습니까? 성경 맛을 보지 못해서 그래요. 영혼은 금식시키면 안됩니다. 예수 믿는다 하면서도 아직 성경의 단 맛을 경험하지 못했다면 지금부터 신앙생활의 모든 목표를 성경말씀의 맛을 경험하는데 맞추십시오. 그보다 더 중요하고 시급한 일은 없습니다. ⓒ최용우
▣ 나를 강하게 하는 힘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는 은퇴 후 고향 미주리 주의 인디펜더스에 기념관을 짓고 아이들과 어울려 지냈습니다. 한 번은 도서관을 찾아온 행색이 초라한 어린이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대통령 아저씨께서는 제 나이 때에 어떤 아이였어요? 항상 1등만 하고 반장만 하셨지요?" 트루먼 대통령은 그 소년의 어깨 위에 손을 얹고 말했습니다. "아니란다. 나는 지금의 너보다 훨씬 형편없었단다. 친구들이 소리를 지르면 겁이 나서 몸을 바들바들 떨었고 운동도 못해서 사람 구실을 제대로 할까 걱정이 많았단다." 소년이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다시 물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대통령이 되었나요?" 트루먼은 친절하게 대답했습니다. "나를 용기 있게 하고, 강하게 하고, 쓸모 있게 한 것은 바로 성경이었단다. 성경이 나를 강하고 쓸모 있는 사람으로 만들었단다." 약하고 어릴지라도 누구에게, 그리고 무엇을 배우느냐에 따라 강하고 튼튼한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지하철 사랑의 편지에서
▣ 성경이 주는 다섯 가지 유익
오늘날의 학교교육은 입시지옥이라는 말로 표현될 만큼 입시를 위한 지식교육에 편중되어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그리스도인 부모들도 자연히 이 같은 세상의 성향을 따라 자녀를 양육하게 됩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모든 지식의 근본임을 가르쳐주지요. 따라서 그리스도인 부모들은 세상지식을 아이들에게 주입시키기에 앞서 성경을 가르쳐야합니다. 이처럼 성경으로 자녀를 양육할 때 우리는 다섯 가지의 큰 유익을 얻게 되지요. 첫째, 어려서부터 자녀에게 성경을 가르침으로 그 아이는 믿음을 갖게 되고 결국 구원받게 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는 말씀처럼 어려서부터 가정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는 것이 아이가 구원에 이르게 되는 첫 단계이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성경을 통해 자녀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인생의 최고의 목표임을 교훈으로 얻게 됩니다. 이처럼 부모가 자녀에게 성경을 통해 교훈을 주기 위해서는 부모가 먼저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면서 삶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어야 되겠지요. 그리고 세 번째, 부모는 성경을 통해 아이의 죄 된 행위를 책망하고 아이는 고침을 받게 됩니다. 네 번째, 바로 이 책망의 과정을 통해 부모는 말씀으로 아이를 바르게 할 수 있습니다. 즉, 아이가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고 고백함으로 죄 된 삶을 버리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게 되는 것이지요. 마지막 다섯 번째로 부모는 성경을 가르침으로 아이가 의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습니다. 즉, 믿음과 삶이 하나 되는 참 된 믿음의 소유자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아이가 성경을 통해 어려서부터 성품과 삶의 변화를 체험하게 되면 다른 어떤 아이들보다도 학교공부에서도 큰 성과를 보이게 됩니다. 무엇 때문에 공부해야 하는지 그 의미를 이미 깨달았기 때문이지요. 그렇습니다. 이 세상 모든 지식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성경을 통해 아이들에게 소개하십시오. 이것이 자녀를 승리하게 만드는 지혜로운 부모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강안삼 장로
▣ 성경 다이어트
외모가 경쟁력이 되는 현대인에게 ‘다이어트(diet)’만큼 친숙하고도 피하고 싶은 단어가 있을까? 신문·잡지를 펼치면 기기묘묘한 다이어트가 지면을 도배하여 사람들의 이목을 끈다. 그웬 샘블린(Gwen Shamblin)은 ‘Rise Above(극복하다)’라는 책에서 ‘성경 다이어트’라는 것을 창안했다. 임상적으로 효과가 입증되었고 캐나다에서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기본적인 메시지는 사람들은 영적으로 허기진 것을 음식으로 대신 채우려고 한다는 것이다. 현대인이 지나치게 먹을 것에 집착하는 근본적 이유는 텅 빈 마음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운동이나 음식조절은 일시적으로 증상을 치료하는 것에 불과하다. 먹고 싶은 욕망 자체를 다스려야 한다. 영혼의 허기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먼저 달래주면 자연히 음식을 절제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음식을 대하기 전 읽을 말씀들을 적절하게 제시해 주고 있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영혼을 위하여 ‘말씀의 양식’을 먹어야 한다. 게다가 다이어트까지 된다니 이야말로 일석이조 아닌가! 오늘부터 매일 말씀과 기도로 영육 모두의 건강을 돌아보자. /한기채 목사(중앙성결교회)
▣ 30센티미터의 여행
단순한 진리이지만 생각한 것을 그대로 마음으로 받아들이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지식적으로 이해하고 머리로는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을 마음으로 믿고 따르며 나의 하나님, 나의 왕으로 고백하는 일은 뜻대로 잘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믿음에는 인격적인 ‘나의 결단’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 결단은 머리에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머리’와 ‘가슴’의 거리는 불과 30센티미터밖에 되지 않지만 예수님을 머리로만 아느냐 아니면 가슴에 모셨느냐의 차이는 우리의 영원한 운명을 결정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머리에서 가슴으로 이어지는 30센티미터의 여행을 중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을 내 마음의 중심에 모시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고 듣고 믿을 때에 구원을 선물로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믿음에서 말미암았느니라”(롬10:17) 성경을 기록한 가장 중요한 목적인 ‘구원’과 ‘온전한 사람이 되게 함’을 늘 가슴속에 품고 성경을 가까이 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성경과 함께 구원의 감격을 맛보고 하나님이 일꾼으로 멋지게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전광(생명의 삶에서)
* 금언: 하나님의 진리의 빛이 꿰뚫지 못하는 어둠의 골짜기는 없다.(챨스 스원돌)
▣ 위대한 보화
강해 설교의 왕자라고 일컫는 영국 웨스트민스터 채플의 켐벨 몰간이 사역하던 영국의 상황도 오늘날과 별다를 바 없이 영적으로 어두운 시대였다. 사회의 혼란이 계속되었고, 교회의 강단도 급속도로 퇴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렇게 열악한 상황에서도 몰간은 말씀을 붙들었다. 당시 진화론의 위협과 거친 자유주의의 물결은 몰간 자신에게도 큰 도전이었다. 다른 지성인처럼 그도 성경에 대한 의심을 품었다. 과학자들과 불가지론자들의 강연과 저서들이 그의 지성을 흔들었기 때문이다. 결국 몰간은 더 이상 설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한 갈등에 빠졌다. 위기에 빠진 그는 모든 설교를 취소하고, 자신이 즐겨읽던 모든 책을 벽장에 내던져 놓고 문을 잠가 버렸다. 그러고 나서 성경을 새로 구입해 읽기 시작했다. 당시의 심정을 그는 이렇게 간증했다. "만일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고, 내가 편견을 갖지 않고 열린 마음으로 성경을 대하면, 성경은 분명히 내 영혼에 확신을 심어 줄 것이다." 그는 밤낮으로 성경을 붙들고 씨름했다. 매일 성경을 읽다가 어느 날 성령의 빛이 그의 영혼을 환하게 비춰주었다. 그 순간 갈보리 십자가가 보였다. 그는 십자가의 복음을 찾아낸 후 소리쳤다. "아! 드디어 찾았다. 위대한 보화를!" 그 때붙 몰간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확신하면서 말씀으로 돌아갔다. 성경속에서 십자가의 복음을 발견한 그는 평생 십자가를 설교할 수 있었다. -십자가 영성을 회복하라/송삼용-
▣ 차범근 감독의 성구
프로축구 수원 삼성의 차범근 감독을 변화시킨 성경구절이 있다. 그는 이 말씀을 묵상하던 중 크게 변화를 받았다. 그 성구는 출애굽기 35장 30,31절. 주위로부터 숱한 모함을 당할 때,경기장에서 불안과 초조의 시간을 보낼 때 그는 이 성구를 묵상하면서 힘을 얻는다. 여호와께서 유다 지파 훌의 손자요 우리의 아들인 브살렐을 지명하여 부르시고 하나님의 신을 그에게 충만케 하여 지혜와 총명과 지식으로 여러 가지 일을 하게 하셨다 차 감독은 이 성구를 통해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시면 최고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다. 그래서 고난이 닥칠 때마다 지혜와 총명을 주시는 하나님을 향해 기도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향해 기도하는 사람의 인생은 향기가 있다. 과일과 채소의 가장 달콤한 부분은 하늘의 태양을 향한 쪽이다. 사람도 마찬가지. 기도하는 손, 회개하는 마음에서는 향기가 피어오른다. 그러나 불신앙의 인생은 무색무취의 삶처럼 건조할 뿐이다. /임한창 국민일보 기자
▣ 종이를 의지하여...
어느 그리스도인 사장이 있었습니다. 그는 기회가 닿는 대로 고용인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고용인들 중 하나님의 말씀은 단순히 인쇄된 하나의 책에 불과하므로 믿을 수 없다고 말하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그 청년이 사장에게 돈을 빌리고자 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신실한 그리스도인 사장은 종이 쪽지를 건네주고 읽어보라고 했습니다. 그 종이 쪽지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습니다. "오늘밤 12시에 우리 집으로 오게." 그 청년은 돈을 빌릴 생각으로 비록 늦은 시간이었지만 밤 12시에 사장의 집으로 찾아갔습니다. 똑, 똑, "누구시오? 이 늦은 시간에" "사장님 접니다." 사장은 문을 열면서 매우 불쾌하다는 듯이 말했습니다. "자네는 도대체 생각이 있는 사람인가, 없는 사람인가? 저녁 12시에 다른 사람의 집을 찾는다는 것은 실례가 아닌가?" 청년은 쭈삣거리며 종이 쪽지를 사장에게 보여주며 억울하다는 듯이 말했습니다. "낮에 사장님이 주신 종이에 저녁 12시에 오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저는 다만 사장님이 주신 이 쪽지를 의지하고 왔을 뿐입니다." 사장은 짜증난다는 듯이 종이를 흘겨보며 말했습니다. "자네는 정말 그 종이 쪼가리를 의지하여 왔단 말이지?" 그러자 청년은 이제야 말이 동한다는 듯이 대답했다. "예, 그 종이가 없었다면 제가 이렇게 늦은 시간에 사장님께 왔겠습니까? 저는 그 메모를 쓰신 사장님을 믿고 온 것입니다." 그러자 사장은 미소를 띄우며 말했다. "들어와 보게, 자네에게 해 줄 이야기가 있네, 자네는 그 작은 종이를 의지하고 왔지만, 그것보다 더 신뢰하고 믿을만한 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라네." 이 세상에서 성경보다 더 신뢰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그 이유는 이 책을 기록하신 분이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서 멸망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 성경은 하나님 말씀이다
성경은 지금으로부터 약 3,500년 전인 기원전 1,500년경부터 기원후 100년까지 약 1,600년이나 되는 긴 기간에 걸쳐 기록되었다. 기자(記者)는 약 40명이며,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에 기록된 구약이 39권, 그리스도가 오신 후에 기록된 신약이 27권, 합계 66권으로 되어 있다. 구약은 히브리어로, 신약은 헬라어로 기록되었다. 성경을 기록한 장소는 시나이 반도, 이스라엘, 바벨론, 소아시아 여러 지역, 로마, 지중해 작은 섬 등이다. 성경을 기록한 사람의 신분은 학자, 혹은 장군, 왕, 농부, 어부, 의사, 세리 등으로 높은 지위의 사람도 있고 천한 사람도 있으며, 유식한 사람도 있고 무식한 사람도 있어, 여러 계층의 신분을 가진 사람이 성경을 기록했다. 유식한 자라고 하여 자기의 유식(有識)을 기록한 것도 아니고, 무식한 자의 무식이 그대로 쓰여진 것도 아니다. 그들은 오직 하나님의 하시는 말씀을 받아 기록한 것이다. 다만 성경이 기록될 당시에는 종이가 없었으므로 양피지나 파피루스에 기록하였다. 그런데 성경은 곧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이나 보는 책으로 잘못 인식되다 보니, 특정 종교의 경전(經典)으로서 평가되기도 하고 막연히 인간에게 유익을 주는 고전(古典)의 하나로 여겨지기도 하는 것이다. 또 어떤 이는 전승(傳承)과 신화를 모아 놓은 것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이란 표현이 신구약 합쳐 3,800번 정도 나온다. 성경 기자들은 자신이 생각한 바를 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 기록하라고 하신 것을 받아서 기록한 것이라고 성경 곳곳에서 증거한다. 성경이 하나님 말씀인지도 알지 못하는데 ‘하나님이 가라사대’ 라고 했다니까 그렇게 믿으라고 하는 것은 아니고, 하나님이 기록케 하셨다면 그게 사실인지 분명히 밝혀지게 되어 있으므로 그 말이 맞는지 확인해야 한다는 점을 재차 강조하는 것이다. 성경에 있는 예로써 다음의 말씀을 실례로 든다. “여호와께로서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니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일러 가라사대 내가 네게 이른 모든 말을 책에 기록하라” (예레미야 30:1,2). “유다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 사년에 여호와께로서 예레미야에게 말씀이 임하니라 가라사대 너는 두루마리 책을 취하여 내가 네게 말하던 날 곧 요시야의 날부터 오늘까지 이스라엘과 유다와 열방에 대하여 나의 네게 이른 모든 말을 그것에 기록하라” (예레미야 36:1,2). “제 삼십년 사월 오일에 내가 그발강 가 사로잡힌 자 중에 있더니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이상을 내게 보이시니 … 갈대아 땅 그발강 가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부시의 아들 제사장 나 에스겔에게 특별히 임하고 …”(에스겔 1:1,3). 만일 사람이 자기의 생각을 기록해 놓고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한다면, 그 거짓은 금방 드러나고 만다. 사람은 자기가 아는 지식의 범위를 넘는 말을 할 수가 없다. 설사 어떤 영적 계시(啓示)로 썼다고 해도, 그 계시를 준 영이 하나님이 아닌 바에는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고 알고 계시는 일을 드러내 주지 못한다. 그와 반대로 하나님께서 쓰라고 하셨다는 언급이 없을지라도, 그 말씀하신 바가 하나님의 지혜의 소산인지 사람의 지혜로부터 나온 것인지는 연구해 보면 안다. 사람의 두뇌로 할 수 있는 것이 있고 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조차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이란 구절이 3,800번 씩이나 사용된 성경이 사람이 지어낸 것인지, 참으로 우주 삼라만상을 창조하고 인간 역사를 주관해 가시는 하나님께서 섭리와 계시로써 기록케 하신 말씀인지 연구해 보고 살펴보자. 다음으로, 성경이 종교(宗敎)경전이나 도덕(道德)경전은 아닌가도 짚고 넘어가겠다. 종교라는 것은 사람이 신을 찾으려는 노력 혹은 신이 원한다고 생각하는 기준에 도달하고자 하는 선행·고행의 노력이라 할 수 있다. 섬기는 대상을 향한 헌신과 봉사, 자신을 정결케 하기 위한 수행 또는 타인에 대한 선행에 대하여는 어떤 기대가치가 내재되어 있고, 해당 종교의 경전들은 결국 그것을 행하게 하고자 하는 데 의의가 있다. 그런데 성경은 정반대의 측면을 갖고 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찾아 뜻을 이루실 뿐만 아니라, 인간의 어떤 노력·행위도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 될 수 없음을 선포한다. 종교경전은 그 종교를 가진 사람들의 외면적인 행위를 규제할 행위의 준칙(準則)일 뿐이지만, 성경은 종교 유무에 관계없이 모든 인간에게 말씀하시는 창조주의 뜻이다. 읽어 보지 않고서도 “아! 성경, 참 좋은 말씀이죠!” 라며, 마치 사서삼경이나 명심보감 등과 같이 인간 언행을 가다듬어 줄 좋은 가르침으로 여기는 사람도 있다. 더도 말고 4복음서만 읽어 봐도, 정신 차리고 보면 무서운 경고가 더 많다. 지옥 심판(審判)을 경고(警告)하는데, 그것이 바로 자기를 향해 하는 소리인데, “좋은 말씀”이라니 그것은 또 무슨 경우인가? 오래 전에 미국의 저명한 법률가요 문학가이며 다재다능한 인재로서 뉴멕시코 주지사를 지내기도 했던 웰리스라는 사람이 있었다. 웰리스는 ‘사람이 지어낸 성경이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이 될 수 있다는 말인가? 예수가 어째서 하나님의 아들인가? 그는 단지 평범한 한 인간일 뿐이다’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웰리스는 자신이 허구(虛構;fiction)라고 생각해 온 성경을 연구하여 ‘사람이 지은 책’이라는 것을 입증함으로써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을 생각을 했다. 그런 목적하에 성경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계속적인 조사와 연구를 하면서 그는 하나님의 존재와 성경의 완전성·정확성을 시인,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게 되었다. 그가 성경에서 생명과 진리를 발견한 후 가장 먼저 심혈을 기울여 쓴 책이 바로 그 유명한 『벤허(Benhur)』이다. 책이나 영화를 통해 우리에게조차 익숙한 명작을 탄생시켰다. ‘성경은 하나님 말씀이 아니다’라고 성경을 비판하기 위해 성경을 연구하다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게 된 사람은 수없이 많다. 웰리스가 발견한 것처럼 성경은 하나의 종교경전이 아니다. 한 마디로 성경은, 사람이 하나님을 알고 믿을 수 있는 증거로 주신 하나님의 책이다. 그러므로 누구나 진리를 찾는 마음으로 자세히 성경을 상고하면 믿을 수 있는 확실한 증거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수께서는“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마태 5:18).고 말씀하셨다. 일점은 히브리 문자 중에서 가장 작은 부분이며, 일획은 의미가 변하는 문자 중에 가장 작은 부분이다. 따라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바는 성경은 결코 폐하지 못하는 것이며 (요한복음 10:35 참조),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음을 선포하신 것이다.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마태 24:35). 만약 어떤 사람이 성령의 계시를 받았다고 하면서 성경말씀의 완전성을 부인하면 이는 거짓이요, 이단이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것은 검증되지 않은 주관적인 것이요, 성경은 객관적으로 검증된 진리의 말씀 하나님의 말씀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어도 그 사람의 욕심과 감정, 편견, 마음가짐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 하늘나라를 이야기 할 때 제자들은 하나님의 뜻을 모른채 하늘나라에서 누가 크냐? 로 다투었고,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자신이 십자가의 고난당할 것을 말씀하실 때 베드로는 그리하지 말 것을 간청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은 개인적이요, 부분적인 사실이며. 때로는 자기의 뜻과 욕심 또는 사탄의 소리를 하나님의 음성으로 착각할 수 있다는 사실도 잊지 말자. 변덕스러운 내가 중심이 되어서 내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성경말씀이나 진리보다 내가 들은 음성과 그 뜻을 강조하고 주장하는 자는 이단이요, 어리석은 지요, 교만한 자이다.
▣ 나의 사랑하는 책 (찬송가 199장, <통> 234장)
1. 나의 사랑하는 책 비록 헤어졌으나 어머님의 무릎 위에 앉아서 재미 있게 듣던 말 그때 일을 지금도 내가 잊지 않고 기억합니다 2. 옛날 용맹스럽던 다니엘의 경험과 유대 임금 다윗왕의 역사와 주의 선지 엘리야 병거 타고 하늘에 올라가던 일을 기억합니다 3. 예수 세상 계실 때 많은 고생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일 어머님이 읽으며 눈물 많이 흘린 것 지금까지 내가 기억합니다 4. 그때 일은 지나고 나의 눈에 환하오 어머님의 말씀 기억하면서 나도 시시때때로 성경 말씀 읽으며 주의 뜻을 따라 살려 합니다
[후렴] 귀하고 귀하다 우리 어머님이 들려 주시던 재미있게 듣던 말 이 책중에 있으니 이 성경 심히 사랑합니다
▣ 달고 오묘한 그 말씀 (찬송가 200장, <통> 235장)
1. 달고 오묘한 그 말씀 생명의 말씀은 귀한 그 말씀 진실로 생명의 말씀이 나의 길과 믿음 밝히 보여주니 2. 귀한 그 말씀 내 노래 제목이 되도다 모든 사람에 복 주는 생명의 말씀을 값도 없이 받아 생명길을 가니 3. 널리 울리고 퍼지는 생명의 말씀은 맘에 용서와 평안을 골고루 주나니 다만 예수 말씀 들어 복을 받네
[후렴] 아름답고 귀한 말씀 생명샘이로다 아름답고 귀한 말씀 생명샘이로다 아멘
▣ 성경에 관한 성경 말씀
0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며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수1:8) 0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여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은 같도다(시12:6) 0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시119:9) 0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하나이다. (시119:103) 0 내가 새벽 전에 부르짖으며 주의 말씀을 바랐사오며 주의 말씀을 묵상하려고 내 눈이 야경이 깊기 전에 깨었나이다.(시119:147-148) 0 말씀을 멸시하는 자는 자기에게 패망을 이루고 계명을 두려워하는 자는 상을 받느니라(잠13:13) 0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마4:4) 0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마5:19) 0 예수께서 가라사대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눅11:28) 0 저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눅24:45) 0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 하더라(행12:24) 0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갈1:7,8) 0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딤후3:15- 17) 0 내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계22:18- 19)
▣ 성경에 관한 금언
0 성경은 가장 뛰어난 철학이다. 나는 무엇보다 성경에서 확실한 증거를 발견한다.(아이작 뉴턴) 0 하나님의 말씀은 그 자체로 명료하다.(존 낙스) 0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영원한 빛을 계속 쬐어야 한다.(성 어거스틴) 0 모든 영토는 버릴지언정 성서는 버릴 수 없다.(엘리자베스 영국 여왕) 0 성경은 천국 항해에 없어서는 안될 항해도요, 나침반이다.(김경선) 0 성경책이 없이는 세상을 올바르게 다스리지 못한다.(죠지 워싱턴) 0 죽는 순간 우리가 의지할 책은 성경 외에는 없다.(죤 셀든) 0 성경 없이는 인간들을 훌륭히 교육 시킬 수 없다(엘리파렛 노트) 0 가정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지배될 때 천사들이 그들과 동거하며 그들의 친구가 될 것이다.(찰스 스펄전) 0 한 나라의 흥망은 성경을 많이 읽느냐, 읽지 않느냐에 달려있다.(다니엘 윌슨) 0 성경은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지혜가 담겨있는 책이다. 0 하나님이 내게 주신 최고의 선물은 성경이다(링컨) 0 성경이 말하는 것은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이다 * 주의: 본 자료를 무단 수집, 제작 배포 출판하면 저작권법에 저촉(위배)됩니다. /빛의 사자(한태완)
교회 바로 세우기댓글[0]
교회, 공동체
(2012-04-29 오후 3:14:39)http://blog.somang.net/holylove/7329
교회 바로 세우기
본문: 딤전3:15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
이런 교회가 되게 하여 주소서 말씀이 있으면서 행동이 있는 교회 사랑이 있으면서 순교가 있는 교회 모임이 있으면서 역사가 있는 교회 기도가 있으면서 능력이 있는 교회 감사가 있으면서 찬송이 있는 교회 연약한 자들에게 힘이 되게 하시고 실패한 자들에겐 희망이 되게 하사 살아있는 교회로 부흥하게 하소서(작자 미상)
오늘날 목회 현장을 보면 마치 성공에 미친 세상에 살고 있다는 느낌이다. 효과적인 교회의 성장전략을 마련하고 적용하기에 여념이 없다. 새로운 시대이기 때문에 새로운 방법이 필요하다는 것은 단지 일리 있는 이야기일 뿐이며 시대가 어떠하든지 하나님의 일과 교회의 부흥을 주시는 이는 오직 하나님뿐이라는 사실은 영원히 진리이다. 우리는 방법과 기술과 지식을 과신하는 세대에 살고 있다. 하나의 성공사례가 나오면 마치 방법 그 자체가 교회의 부흥을 가져온 것처럼 사람들의 시선을 끌지만, 그들이 주목하는 것은 그 방법을 사용하신 하나님이 아니라 방법 자체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교회가 교회 되는 것은 결코 인간의 기계 문명이나 새로운 조직이나 반짝이는 아이디어에 의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붙들고 계신 하나님 자신에 의해서다. 교회는 사람을 필요로 한다. 성령이 쓰실 수 있는 사람,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하고, 삶의 꿈과 죽음에 대한 가치 인식이 거듭난 사람, 그분의 이름의 영광 하나를 위하여 살도록 목회 사역의 동기가 영적인 만져 주심으로 정화된 사람을 필요로 한다. 인간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교회의 묵은 땅을 기경하는 위대한 영적인 역사는 오직 성령을 통해 흘러나온다. 하나님의 영은 제도 위에 부어지지 않고 당신의 종들 위에 임하신다. 당신이 기뻐하시는 기도의 사람 위에 친히 임하신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는 성도는 누구일까요? 하나님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사람,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 하는 사람일 것이다. 즉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에 같이 기뻐하고, 하나님이 분노하는 일에 같이 분노하는 사람일 것이다. 성경에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이에게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 냉수 같아서 능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케 하느니라”(잠25:13)고 하였다. 지금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무엇인가? 추수하는 날에 얼음 냉수같이 주인의 마음을 시원케 할 충성된 사자가 부족하다. 그러므로 교회는 바로 주인의 마음을 시원케 할 충성된 자들을 키워야 한다. 예수님 당시의 성전은 주님의 마음을 답답하게 만드는 곳이었다. 제사장들과 성도들이 “편리성”만을 추구하다 보니, 성전 앞에서 제물을 사고 팔고, 심지어는 환전을 하는 일들이 벌어졌다. 제사장들은 점점 영성에는 관심이 없어지고, 돈벌이에만 눈이 어두워진 것 같다. 지금의 교회가 이런 모습은 아닐까? 상업화되고, 외식과 형식, 권위주의와 거짓이 판치는 곳은 마귀의 소굴이요, 강도의 굴혈이다. 하나님은 다른 것은 다 참아도 교회가 교회로서의 본질을 떠나는 것은 참지 못하신다. 그렇다면 교회의 본질은 무엇이고 바른 교회는 어떠해야 할까?
첫째, 교회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곳이 되어야 한다.(요4:23-24) 예수님이 함께 하지 않는 곳은 하나님의 집이 아니다. 어떤 집에서 술을 팔면 술집이 되고, 빵을 팔면 빵집이 되고, 예배를 보면 예배당이 된다. 예배를 통하여 진리의 말씀이 가르쳐지고 배우고,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훈련되어야 한다. 교회는 결코 교역자들의 사업장이나, 교인들의 친교장소나 지식을 전하는 강연장이 아니며 더욱이 결혼식장이나 구제단체가 아니다. 교회는 예배하는 곳이다.
둘째, 교회는 기도하는 곳이 되어야 한다.(마21:13) 예수님이 교회를 가르켜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성도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교회를 기도하는 집으로 만들어야 한다. 교회에서 기도의 불이 꺼지지 않게 해야한다. 교회는 “기도하는 집”이 되거나 “강도의 굴혈”이 되거나 둘 중의 하나이다. 주일 아침마다 온 성도가 모였을 때, 기도소리로 성전을 가득 채워야 한다. 그러면 많은 죽어 가는 영혼이 모여들고 살아나기 시작한다. 교회를 기도로 채우자. 기도가 있는 곳에 능력이 있고, 기도가 있는 곳에 모든 악한 영의 세력은 물러간다.
셋째, 교회는 병든 자를 고치는 곳이 되어야 한다. 성경에 “소경과 저는 자들이 성전에서 예수께 나아오매 고쳐 주시니”(마21:14)라는 말씀이 나온다. 교회는 병든 자의 치유가 있는 곳이 되어야 한다. 범죄한 인간은 영육간의 질병으로 시달린다. 머리 아픈 자, 실직의 아픔, 실연의 아픔, 인간관계의 고독의 아픔, 사랑 받지 못한 자의 아픔 등등, 교회는 이런 것들을 치유하는 것이 사명이다. 그러면 이런 치유가 나타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그것은 “능력”이다. 성도에게는 이미 이런 능력이 예수님으로 인해 주어졌다. 마가복음16장17절의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는 말씀이 바로 성도의 능력을 나타내고 있다. 그런데 제사장과 서기관은 예수님의 치유의 사역을 이상한 일로 보았다. 이 어찌 통탄할 일이 아닌가. 살리는 일에는 아무 능력도 없는 무력한 자들이 이것저것 따지면서 예수님의 사역을 방해했다는 것이다. 영육의 치유와 죄인을 살리는 사역은 ‘이상한 사역’이 아니라 ‘정상적인 사역’이 되어야 한다.
넷째, 교회는 성도들로 하여금 찬양케 해야 한다. 성경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그렇다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케 하셨나이다 함을 너희가 읽어 본 일이 없느냐 하시고”(마21:16)라는 말씀처럼 성도들의 입에서 참된 찬양이 흘러나오게 해야 한다. 성도는 찬송하는 자들이다. 이사야 43장21절은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씀하고 있다. 계시록의 천국의 모습은 찬양의 소리가 끊이지 않는 곳으로 묘사되어 있다. 역대하 20장을 보면 여호사밧은 찬송으로 모압을 물리쳤다. 바울과 실라는 찬송으로 옥문을 열었다. 찬송은 성도의 무기이다. 우리 성도는 어떤 상황에서도 부를 찬송이 있다. 어떤 순간에도 찬송할 수 있다면 그는 이미 승리한 것이다. 짐바브웨 출신의 니프라이스라는 골프선수가 있다. 그는 골프를 치다가 슬럼프가 오면 항상 휘파람을 분다. 왜? 그의 아버지가 그에게 어려서부터 “어려움이 있을 때는 휘파람을 불어라”고 가르쳤기 때문이다. 우리의 아버지 되신 주님께서도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찬송을 불러라. 기쁠 때에든지, 슬플 때에든지 찬송을 불러라. 힘찬 찬송은 마귀를 물리치며, 막힌 곳을 뚫으며, 마귀의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이니라”
다섯째, 교회는 선교하고 봉사하는 곳이 되어야 한다. 교회가 존재하는 목적과 사명은 복음 전도를 통해 영혼을 구원하고, 나아가 세상에 사랑을 실천하기 위함이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마가복음16:15)고 명령하셨을 뿐만 아니라, “내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마가복음12:31)고 말씀하셨다. 선교는 교회의 열매이다. 선교를 열심히 하면 교회가 축복을 받는다. 그리고 교회는 가난한 자, 고아와 과부 등 불우한 이웃을 돌봐주고, 착한 일을 행하는 데 힘써야 한다. 따라서 우리가 말씀을 바로 알고, 바로 깨닫고 그 말씀을 따라 살도록 해야 한다. 이런 교회가 바른 교회이다. 그 무엇보다 교회의 본질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데 있다.(고전10:31, 엡1:14) 학교가 무너져가고 교회의 주일학교에 아이들이 사라지고 있는 현실을 그냥 내버려두면 이 땅의 수많은 가정과 학교와 교회는 손쓸 수 없는 심각한 영적 공황에 빠질 것이다. 학교와 교회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학교와 교회가 본질과 대안을 찾아야 한다. 무엇보다 초대교회의 모습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 기도: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한국에 많은 교회를 세워주심을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께서 피로 값주고 세우신 교회들이 세속화되지 않도록 지켜 주시고, 진리이신 하나님의 말씀이 충만한 교회가 되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뜻대로 행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교회가 되어 마지막 때에 주님께 칭찬받는 교회가 되도록 축복하여 주옵소서. 우리 교회가 더욱 더 부흥하고 성장하기 위해서 성도간에 서로 사랑하고 주 안에서 하나되는 역사가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사랑과 기쁨이 넘치는 교회, 기도에 힘쓰고 항상 말씀을 가까이 하고 배우기를 힘쓰는 교회, 경건한 교회, 봉사하는 교회, 선교하는 교회, 성령충만한 교회, 하나님을 경외하고 언제나 찬양이 넘치는 교회가 되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빛의 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