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의 아데미여!
(이준행 목사)
지난 2월에 터키에 있는 에베소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곳을 여행하면서 느낀 몇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준비된 한 사람의 영향력입니다.
신약시대의 에베소는 로마 다음으로 컸던 제2의 종교도시로서, 바울이 2년 이상을 거하며 두란노 서원에서 믿음의 동역자들을 양육했던 장소입니다. 밧모섬이 가까이 있어서 요한이 유배되었을 때 요한을 사랑했던 믿음의 동역자들이 에베소 근처로 모여들어 소아시아 일곱 교회를 개척했던 곳입니다.
특히 요한의 제자 폴리캅은 86세 때 로마황제가 “예수님을 한 번만 모른다고 하면 살려주겠다.”고 회유했지만 “주님은 나를 한 번도 모른다고 하지 않았는데, 어찌 내가 주님을 모른다고 하겠습니까?” 이런 말을 남기고 순교당한 곳입니다.
한 사람의 영향력으로 소아시아 일곱 교회가 세워진 것을 보고, 준비된 한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롭게 느꼈습니다. “나 한 사람이 잘 준비되면 세상을 뒤집어 놓을 수 있다.” 이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꿈이어야 할 것입니다.둘째는 구원의 감격을 가지고 사는 것의 소중함입니다.
에베소에서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 요한, 요한의 여러 제자들이 순교 당했습니다. 이곳에 요한과 바울, 폴리캅의 기념교회들이 세워졌으나, 지금은 침례탕이나 거대한 건물의 흔적만 남아있습니다.
다만 초대교회 교인들이 침례를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했는지, 그리고 그 침례탕을 지나면서 ‘자신의 죽음과 낮아짐’을 고백하고 예배로 나아갔던 모습들을 생각하며 구원의 감격을 가지고 사는 것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셋째는 기복신앙의 위험입니다.
에베소는 온갖 우상들을 섬기는 도시입니다. 바울은 두란노 서원에서 “예수는 그리스도다”라는 진리를 가르쳤습니다. ‘예수’는 ‘우리를 구원할 자’라는 뜻이요, ‘그리스도’는 ‘그분이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서 오신 우리의 왕, 우리의 통치자라는 뜻’입니다.
바울과 함께 공부할 때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었고, 마술을 행하던 사람들은 그 책을 모아가지고 불태웠는데, 그 책값만 은 오만이나 되었습니다. 바울이 전한 복음이 에베소를 흔들었습니다. 성경공부로 에베소가 뒤집어지자 아데미의 전각에서 풍요와 다산의 여신인 아데미를 조각하여 돈을 벌던 자들이 바울을 고발하여 잡아들였습니다. 아데미 여신이란 유방이 24개나 되는 여신입니다.
재산을 불려주고, 자녀를 잘 낳고 잘 되게 해준다고 믿는 여신입니다. 사람들은 재산이 불어나고 자녀들이 잘되는 일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고, 이런 것 때문에 미신과 우상, 점들을 치게 됩니다. 바울이 이런 잘못된 신앙을 책망했을 때 이들은 “에베소의 아데미여!” 이렇게 외치며 연극장에서 바울을 성토했습니다. 오늘날 젊은이들이 한국 기독교를 바라보면서 “기복신앙으로 흘러가고 있다. 신앙인들이 위선적이다. 교회가 화려하고 웅장한 건물에 집중하고 있다.” 이런 말들을 남기며 교회를 하나 둘씩 떠나가고 있습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에베소의 아데미가 신앙의 이름으로 둔갑한 한국교회의 모습도 있는 것 같습니다. 에베소를 여행하면서 잘못된 것을 반성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가슴에 품는 신앙의 회복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생명을 꿈꾸며,
하나님의 나라를 기대하는 교회들이 많아지길 소망합니다.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그리스도인의 올바른 삶을 소원하며 기도하는 저에게 소중한 자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의 사역에도 더 많은 지혜와 힘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아래를 클릭하시면 소망교회 베다니찬양대의 은혜로운 찬양(주의 영광 위해 살리라)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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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지도자의 자질
(차성도 교수)
(마 23:11)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교회 지도자의 위기는 교회의 위기이다.
왜냐하면 지도자는 어떤 모임에서든 가장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교회의 지도자는 어떤 자질을 갖추어야 할까?
당연히 주님의 몸 된 교회의 지도자는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의 자질을 갖추어야만 한다. 예수님께서 혹독하게 비판하신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그릇된 모습을 반면교사로 삼고, 주님의 가르침을 통해 교회 지도자의 자질을 찾아보자.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마 23:3b-4)와 같이 자신들은 말만하고 행하지는 아니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만 행하도록 시켰다.
이에 반해 교회의 지도자는 말만 하고 남에게 시키기보다는 자신이 손수 행하는 자여야 한다.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그들의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나니 곧 그 경문 띠를 넓게 하며 옷술을 길게 하고 잔치의 윗자리와 회당의 높은 자리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마 23“5-7)처럼 거룩하게 보이고자 하거나 윗자리에만 앉으려 하고 사람들에게 인사 받기와 랍비라 불리는 것을 좋아하는 등 모든 행위를 남에게 보이려고 행하였다. 이에 반해
교회의 지도자는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기보다는 겸손히 행하는 자여야 한다. 예수님께서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의 지도자는 한 분이시니 곧 그리스도시니라”(마 23:8,10)고 말씀하셨듯이
교회의 지도자는 선생이나 지도자라고 불리우기보다는 주 안에서의 형제자매들과 더불어 주님을 따라가는 제자여야 한다.예수님께서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마 23:11-12)고 말씀하신 것처럼
교회의 지도자는 교우들을 겸손하게 섬기는 자여야 한다.콘스탄틴 대제로부터 시작된 공동체와 가정으로서의 교회보다 큰 건물과 조직을 필요로 하는 교회에 대한 강조와 구약적 지도자상에 대한 동경에다가 한국 고유의 유교적 전통까지 가세하여 주님께서 보여주신 섬김의 지도자 대신 세상이 제시하는 굴림의 지도자로 변질되고 있다.
이처럼 교회까지 세상 기관들의 지도체제를 모방하면서 생명력을 잃고 있다.
이제 교회는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의 지도자로,
교회의 지도자는 말만 하지 않고 순수 행하며,
사람에게 보이려고 행하지 않고,
교우들과 더불어 주님을 따라가는 제자로,
성도들을 섬기는 자로 새로워져야 할 것이다.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저가 섬기는 소망교회를 향하신 주님의 뜻을 믿음으로 확인시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래된 당회의 불협화음을 해소하기 위한 유일한 해결책으로 믿으며 기도하오니 주님 말씀하신 대로의 지도자들로 세워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아래를 클릭하시면 소망교회 베다니찬양대의 은혜로운 찬양(나는 생명의 떡이니)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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