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 목회 연구원(원장 김상복목사)의 2007년 2학기 - 변화의 신학을 수강하면서 새로운 지식과 받은 은혜를 간추려서 간증드립니다.
3. 책임 전가의 희생양
시 27:7-8, 11
7 : 여호와여 내가 소리로 부르짖을 때에 들으시고 또한 나를 긍휼히 여기사 응답하소서
8 : 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 하실 때에 내 마음이 주께 말하되 여호와여 내가 주의 얼굴을 찾으리이다 하였나이다
11 : 여호와여 주의 길로 나를 가르치시고 내 원수를 인하여 평탄한 길로 인도하소서
인간에게 세 가지 기본적 갈망이 있는데, 이 갈망은 인간본성의 핵심이고 따라서 불가피하다는 점을 지금까지 살펴보았습니다. 나 자신을 넘어서려는 갈망, 옳은 방향으로 가려는 갈망, 그리고 “우주의 더 큰 마음” 즉 하나님과의 재결합에 대한 갈망이 그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이런 갈망의 존재를 기꺼이 인정하며 이런 것들이 우리를 희망의 방향으로 안내해 줄 것으로 믿고 붙잡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어쩌면 우리는 변화된 사람이 되리라는 이 희망을 의심스럽게 만드는 - 심지어 더 나빠지거나, 아예 불가능한 것처럼 만들어버릴 수 있는 - 다른 것들이 우주 안에 함께 있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을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의 기본적 갈망들 외에 혹시나 다른 것들이 우리의 운명을 결정하고 있지나 않은가? 우주 속의 악한 세력들, 전생의 업보, 불길한 별자리 아래서 태어났다는 것, 잠재의식, 유전형질, 환경에 기계적으로 적응해야만 한다는 필연성 등, 이런 것들이 우리 운명의 결정인자가 아닌가? 하고 고민하게 된다고 합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많은 전능한 신들이 있어서 인간의 곤경에 대한 책임이 누구에게 보다 신들에게 있다고 보았습니다. 후에 그들은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 논리의 부족에서 오는 도피성이였고 결국 자기 책임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죄책과 구속](Guilt and Redemption)이라는 책에서 셰릴(Lewis J. Sherrill)은 신들은 인간의 비웃음소리를 들으며 해고당했다고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인간의 곤경에 대한 책임을 묻곤 했던, 땅에서 태어난 신들은 그 고별식에서 크게 비웃는 소리를 들으면서 죽어 버렸다. 그러나 아, 그 웃음소리! 그 웃음은 기뻐서 웃는 소리나 멋진 유머를 듣고 웃는 소리가 아니었다.
그 웃음소리는 사람들이 빛인지 어둠인지도 모르고 바깥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갈 때 그저 떠들어대는 소리였다. 요컨대 고대 그리스인들이 인간의 곤경에 대한 책임을 신들에게 씌우고 나서 도달한 결론은 한 마디로 ‘난센스’였다. 그리스인들에게는 비극보다 더 무서운 난센스였다.”
인간이 잘못해 놓고 느끼는 일차적 충동은 책임회피의 방법을 찾으려고, 즉 자기 죄를 전가할 만한 모종의 희생양을 찾으려고, 두리번거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마음 깊은 곳에서 그래봤자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압니다.
인간의 도덕적 본성이 반항하면서, 고대 그리스인들과 같이 한 마디로 ‘난센스’라고 말합니다. 우리 속의 무언가가 도덕적 우주의 편을 들면서 우리 자신에게 항거해 봅니다만, 도덕적 우주와는 어떤 싸움을 벌여도 우리가 호되게 당한다는 느낌이 들 뿐이라고 합니다.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저에게 문제가 있엇음을 깨달아 알게해 주시오니 감사합니다. 저는 지금의 저의 상태에서 벗어나려고 합니다. 저의 힘으로는 능치 못하오니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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