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 목회 연구원(원장 김상복목사)의 2007년 2학기 - 변화의 신학을 수강하면서 새로운 지식과 받은 은혜를 간추려서 간증 드립니다.
10. 투쟁에서 면제 받은 사람
히 12:15-17
15 : 너희는 돌아보아 하나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는가 두려워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고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러움을 입을까 두려워하고
16 :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
17 : 너희의 아는 바와 같이 저가 그 후에 축복을 기업으로 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림받아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
자기가 하나가 될 희망이 없이 두 사람으로 분리되어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을 조금 만 더 살펴보기로 합니다. 어느 시인이 이 분리된 영혼을 이렇게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내가 할 수 없는 것 때문에 좋아하기도 하고 싫어하기도 하고 탄식하기도 한다.
내가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해 놓고는 다시 원상태로 돌려 놓았다가 또 다시 한다.
똑같은 순간에 나는 내가 원하지 않는 내가 될 것이다.
이런 상태는 슬프지만 희망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갈등을 하고 있는 사람은 자기 속에 분쟁이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분리되어 있는 것을 증오하기 때문입니다.
이 상태는 오직 하나가 될 때에만 나쁜 것입니다 - 즉 나쁜 쪽으로 하나가 될 때에는 - 분쟁이 끝나버리면 시체를 쪼아 먹을 준비가 된 말똥갈이처럼, 절망이 근처에 있는 나무에 와서 앉아 대기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절망에 빠지지 않고, 활기 없고 무감각한 단조로움으로 통일되지 않고 계속 갈등하고 있다는 사실은 소망이 있을 뿐만 아니라 당신이 변화된 사람이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것을 보여주는 징조입니다.
사람은 두 수준으로 통일될 수 있습니다 - 내부에서 반항하며 소리 지르는 항의가 없는 낮은 수준의 욕망을 가진 사람으로. 그러나 그런 수준은 동물이나 벌레와 같이 된 통일입니다. 그곳에는 튀기는 불꽃이 몸뚱이 속에 없는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그러한 통일에는 만족할 수 없습니다. 그곳에서 당신은 하나가 되었지만 그 중심은 무덤과 하나가 된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불멸하는 부분, 즉 당신의 영혼의 무덤입니다. 당신은 만족한 벌레보다는 오히려 만족하지 못하고 있는 인간이 되기를 원해야 할 것입니다.
마치 친구들이 수면제를 과용 복용한 사람을 깨워서 걷게 하듯이 하나님은 당신을 가만두지 않으십니다. 만일 그 친구가 잠자리에 들어 누우면, 그는 절대로 다시 깨어나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영원한 자비의 하나님이 우리를 계속 추격하며 우리의 낮은 자아와 싸우도록 부추기고, 우리를 홀로 있게 해달라고- 죽게 내버려 두어달라고 빌 때까지 우리를 계속 추격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은 절대로 우리를 죽게 두지 않습니다. 우리의 고통 자체가 바로 하나님의 찌르는 막대기입니다 - 우리가 변화된 사람이 되기 위해 찌르는 막대기가 거기에 있는 동안에는 – 그 분이 거기에 계신다는 증거입니다.
자비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저를 떠나가게 두지 않으시는 사랑이신 주님, 저가 주님을 향하여 가도록 계속 찌르시는 주님의 그 막대기를 느낄 수 있도록 함께하여 주시 옴을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께서 막대기로 저를 찌르시는 그 고통을 은혜로 받아들이는 믿음을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아래 url을 ctrl+click 하시면 소망교회 베다니찬양대의 은혜로운 찬양(주 찬양)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http://www.somang.net/SMPS_IB/show/IB_Common_Show_Movie.aspx?addr=/FILE/SMPS_IB/video/080518_1.as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