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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나와 당신을 위하여 베푸신 사랑을 쉼 없이 감사하며 올 바른 믿음과 삶을 통하여 이 기쁜 소식을 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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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같이 될 만큼 널 사랑해” 댓글[0]
오늘의 명상 (2009-01-14 오후 12:13:21) http://blog.somang.net/mochung/4291

 

너 같이 될 만큼 널 사랑해

 

(로마서 14: 10)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비판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맥스 루케이도의 책 『예수님처럼』에, 예수님의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이 나옵니다저자는 예수님의 사랑의 인사 법에 대해 설명합니다.

 

예수님은 “너같이 될 만큼 널 사랑해”라고 인사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인사는 여러 가지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첫째로 이 인사에는 상대방을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또한, 이 인사는 단지 말의 인사가 아니라 행함의 인사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통해 그 사랑을 몸소 실천으로 옮기셨습니다.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품고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이 인사의 말은,

세상사람들이 느끼는 것과는 다른 깊은 감동을 전해줍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형제에 대해 비판하는 그리스도인을 책망합니다.

그는 우리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한없이 작은 존재임을 일깨웁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남을 비판하기보다

이해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갖기 원하십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어떠한 사랑입니까?

빌립보서는 이 사랑에 대해 증언합니다.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2: 78).

 

예수님께서는 아무 죄 없는 순결한 분이셨지만

‘죄인 된 우리와 같이 될 만큼’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 사랑으로 하나님 아들의 직분을 벗어 던지시고 인간의 모습으로 오시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죄를 당신의 피로 도말 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사랑, ‘우리와 같이 될 만큼 우리를 사랑하신’  주님의 표현할 수 없는 은혜와 사랑입니다.

내 잣대에 따라 상대방을 미리 판단하고 이해한다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법이 아닙니다.

 

내 관점이 아닌 하나님의 관점에서 형제를 이해하고 있는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는 진정한 사랑법입니다.

 

우리는 사나 죽으나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우리의 주인 되신 그리스도처럼,

우리도 믿음의 형제와 자매들을 그리고 세상 사람들까지도,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듯 진정으로 사랑하는 모습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우리와 같이 될 만큼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 아버지! 세상의 형제와 자매들을 그리고 특별히 믿음의 형제와 자매들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하여 주시옵소서. 남을 비판하기보다 이해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하여 주시어서 주님의 자녀답게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아래 url ctrl+click 하시면 베다니찬양대의 은혜로운 찬양(복의 근원 강림하사)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http://www.somang.net/SMPS_IB/show/IB_Common_Show_Movie.aspx?addr=/FILE/SMPS_IB/video/090111_1.asx&code=AA005&seq=2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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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첫째 가는 덕목 댓글[0]
오늘의 명상 (2009-01-13 오후 12:25:08) http://blog.somang.net/mochung/4289

 

기독교의 첫째 가는 덕목

 

(사무엘상 9: 21)

사울이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이스라엘 지파의 가장 작은 지파 베냐민 사람이 아니니이까. 또 나의 가족은 베냐민 지파 모든 가족 중에 가장 미약하지 아니하나이까.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이 같이 말씀하시나이까

 

어떤 사람이 성 어거스틴에게 찾아와서 물었습니다.

“선생님, 기독교의 첫째 가는 덕목이 무엇입니까?” 그러자 어거스틴은

“첫째는 겸손”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면 둘째는 무엇입니까?” 어거스틴은

“둘째도 겸손”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사람은 또 물었습니다.

“셋째는 무엇입니까?” 그러자 이번에도 역시 어거스틴은

“셋째도 역시 겸손”이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성 어거스틴은 기독교의 덕목을

첫째는 겸손, 둘째도 겸손, 셋째도 겸손이라고 했습니다.


본문에는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인 사울이 왕으로 선택되는 과정이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신 사울은 과연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그는 순종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잃어버린 암나귀를 찾아오라는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여 암나귀를 찾으러 나갔습니다. 그리고 성실하게 암나귀를 찾아 다녔습니다.


그는 부모에게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인 사무엘에게도 순종하였습니다.

사무엘이 하나님의 뜻을 전하며 그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세웠을 때도 그 뜻을 무조건 따릅니다. 후에는 달라졌지만 그가 왕이 될 사람으로 선택 받았을 때는 매우 순종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사울은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어찌 저에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라고 대답하며 매우 겸손한 태도를 보입니다.

 

사울은 비록 이스라엘 지파 중에 가장 권리가 없는 지파, 가장 미약한 지파의 사람이었지만, 매우 잘생긴 젊은이로서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삼상 9: 12). 그러나 그는 자신이 하나님 앞에 작은 자임을 인정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울을 택하셨고 “내가 너를 보내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울에게 성령이 함께하셨을 때, 그는 전혀 새로운 사람이 되어 이스라엘 백성을 블레셋의 손에서 구해내는 하나님의 큰일을 감당하게 됩니다.

 

사울을 통해 우리는,

순종하며 겸손한 사람을 들어 큰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도,

늘 겸손한 모습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일을 이루실 것입니다.

 

작은 자를 통해 큰 일을 이루시는 주님, 저가 늘 겸손한 모습으로 주님 말씀에 순종하며 주님 뜻에 합한 복음의 통로로 살기를 원하오니 저의 온라인 사역을 통하여 주님의 뜻이 이루어 지는 축복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아래 url ctrl+click 하시면 베다니찬양대의 은혜로운 찬양(복의 근원 강림하사)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http://www.somang.net/SMPS_IB/show/IB_Common_Show_Movie.aspx?addr=/FILE/SMPS_IB/video/090111_1.asx&code=AA005&seq=2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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