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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나와 당신을 위하여 베푸신 사랑을 쉼 없이 감사하며 올 바른 믿음과 삶을 통하여 이 기쁜 소식을 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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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감과 존중감 댓글[0]
오늘의 명상 (2009-06-17 오전 10:42:52) http://blog.somang.net/mochung/5117

 

안정감과 존중감

 

( 25: 4-5)

여호와여, 주의 뜻을 나에게 보이시고 주의 길을 나에게 가르치소서. 주의 진리로 나를 인도하시고 가르치소서. 주는 내 구원의 하나님이시므로 내가 하루 종일 주만 바라봅니다.

 

사람에게는 두 가지의 기본적인 욕구가 있습니다.

안전에 대한 욕구와 존중 받고 싶은 욕구가 바로 그것입니다.

 

안전에 대한 욕구 속에는 집이나 음식, 물과 공기 그리고 사회의 폭력이나 무질서로부터 보호받기 위한 법질서나 경찰력 같은 것들이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람은 육체를 지닌 존재이기 때문에 오늘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그리고 어디에서 잠 잘까?’ 처럼 자신의 안전을 지키는 일에 가장 큰 관심을 보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선지 이 세상은 언제나 이 안전에 대한 욕구를 더 많이 충족시키려는 사람들의 전쟁터로 쉽게 변해 버립니다.



그렇지만

존중 받고 싶은 욕구는 좀 다릅니다. 육체보다는 정서적인 만족을 위한 욕구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육체적인 안전이 보장된다고 생각되면 그때부터는 자신이 좀 더 높아지고 인정받는 일에 촉각을 곤두세웁니다.

 

이 같은 욕구는 교회라고 해서 예외가 되지 않습니다.

큰 교회가 작은 교회보다 더 인정받고 큰 교회 목회자가 작은 교회 목회자보다 더 큰 관심의 대상이 된다세상적인 가치관이 이미 교회 안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도 사람들은 더 커지고 높아지길 원합니다.

그렇지만 문제는 이 같은 안전과 존중에 대한 욕구 자체 보다는

그 욕구를 어떻게 충족시킬 것이냐?’는 방법이 더 중요합니다.

 

사실 우리가 아는 대로 나 자신의 힘으로는 이들 욕구를 영원히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나의 힘보다는 주님과의 밀접한 관계 속에서만 나의 안전이 진정으로 지켜질 수 있고

 

나를 통해 주님이 높아지고 존중 받게 될 때에만

나 자신도 존중 받게 된다는 원리를

진리로 받아들이면서 그대로 실천할 수 있어야겠지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그렇게도 중히 여기는 돈과 재산은 언젠가는 사라지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이와 아울러서 진정한 욕구는 예수그리스도 안에서만 채워질 수 있다는 믿음을 다시 한 번 확실히 확인해야겠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저의 기본적인 욕구와 이를 얻을 수 있는 길을 보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진정한 욕구는 예수님 안에서만 채워질 수 있음을 믿음으로 지켜나갈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아래 url click 하시면 베다니찬양대의 은혜로운 찬양(하나님께 찬양드리세)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http://www.somang.net/infobada/player/player01.asp?idx=19201:19601&idxc=C0000000015&langTyp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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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일 댓글[0]
오늘의 명상 (2009-06-16 오전 11:35:56) http://blog.somang.net/mochung/5114

                                                       (화면을 크릭하시면 똑똑한 화면을 보십니다)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일

 

( 9: 13)

여호와께서 또 내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 백성을 보았노라. 보라. 이는 목이 곧은 백성이니라.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일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지 않으며 살아가는 모습일 것입니다.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라!(Let God be God!)

 

이것은 종교개혁자들이 내세운 기치입니다.

하나님을 인간의 자리에 끌어내려서 인간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시킨 중세 교회를 향해서 외친 명제입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 모세는 이스라엘이 시내산에서 금송아지를 숭배한 사건을 회고하면서 그들에게 충고하고 있습니다. 금송아지 숭배사건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역 가운데서도 하나님과의 언약을 정면으로 배반한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영광을 금수의 형상으로 바꾸었던 사건입니다.

 

그뿐 아니라 이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내신 하나님의 은혜를 멸시하고, 다시 애굽의 신이었던 ‘아피스’를 본뜬 우상을 섬긴 사건이었습니다. 금송아지를 만들어놓고 우리를 애굽에서 구해내신 하나님이라고 하면서, 하나님을 우상의 자리에까지 전락시킨 것이었습니다.


이 금송아지 사건은 하나님의 구속사역에 정면으로 배치된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패역함과 불의를 구체적으로 보여준 뼈아픈 사건을 통해,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정착했을 때 경각심을 가지고 하나님만을 잘 섬기는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을 환기시키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일은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가

첫 번째 계명을 바로 지키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 자리에 하나님 아닌 다른 것들로 가득 채우고서는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떠드는 일들입니다.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해드리는 일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을 하나님 자리에 모시는 일입니다.

 

인간의 자아가 살아서 날뛰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자리에 계실 수 없습니다.


오늘의 교회 안에서도 하나님이 안 계시는 것처럼 신앙생활을 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합니다. 너무나도 쉽게 교회가 분열되었고 너무나 긴 세월 서로 비방과 정죄는 하여도 포용할 수 있는 사랑의 모습을 볼 수 없음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교회분열이 교회성장의 한 요인이 될 수 있으며 더 큰 축복의 통로가 된다고 하는 말들로 성도들을 위로하는 목회자나 영적 지도자들예수님의 무조건적 용서의 사랑을 보여주지 못하고 그 사랑이 조건적 사랑임을 몸으로 가르치고 실천하며 주님의 자리에 앉아 계시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세상적 윤리관념이나 인간적 종교인의 생각으로는 이해하거나 용서가 쉽게 될 수 있는 사건입니까?

 

교회 안에 팽배해있는 인본주의의 모습이요, 하나님 자리에 인간들이 앉아있는 모습을 보는 듯 합니다. 하나님이 정말 계시다는 것을 믿는다면 어떻게 그런 일들을 저지를 수가 있나요?


우리의 자아를 내려놓고

주님 앞에 겸손하게 무릎 꿇고 머리 숙일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경배와 찬양을 받으시며 하나님이 되십니다.

 

찬송과 경배를 받으시는 하나님, 피조물인 저와 저의 가족들이 하나님께만 돌려야 할 영광을 가로채는 일이 너무나 많았음을 회개하오니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저와 저의 가족들이 하나님 아닌 명예, 재물, 지식과 육체적인 성공들을 우상화하고 그 앞에 머리 숙이는 어리석음과 죄를 범하지 않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아래 url click 하시면 베다니찬양대의 은혜로운 찬양(하나님께 찬양드리세)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http://www.somang.net/infobada/player/player01.asp?idx=19201:19601&idxc=C0000000015&langTyp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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