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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나와 당신을 위하여 베푸신 사랑을 쉼 없이 감사하며 올 바른 믿음과 삶을 통하여 이 기쁜 소식을 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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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업신여긴 죄 댓글[0]
오늘의 명상 (2009-09-22 오전 10:47:20) http://blog.somang.net/mochung/5361

 

하나님을 업신여긴 죄

(차성도 교수)

 

(삼하 12:10)

이제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 사람 우리아의 처를 빼앗아 네 처를 삼았은즉 칼이 네 집에 영영히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고

다윗 왕은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취했을 뿐 아니라 최전선에 우리아를 투입하고는 다른 군인들을 고의로 후퇴시키는 명령을 내려서 그를 살인하였다. 다윗은 격렬한 전투에서 우리아가 용맹스럽게 전사한 것으로 자신의 범죄를 은폐한 후에 밧세바를 정식으로 자신의 처로 삼는다.

 

다윗은 이같이 자신의 모든 범죄들을 사람들에게는 감출 수 있었지만, 결단코 하나님에게까지 숨길 수 없다는 것을 간과하였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심각한 병을 어떻게 다루셨는가를 통해 개인과 교회가 기억해야 할 하나님의 치유과정을 알아보자.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누가 병자인지 밝힐 나단을 보내셨다.

하나님께서 나단을 통해 부자가 가난한 자의 양 새끼를 빼앗는 이야기를 한 후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 사람이라”(삼하 12:7a)면서 다윗이 범죄자임을 밝히신다.

 

하나님께서는

이 시대에도 양심, 말씀, 성경공부, 신앙서적, 성도들이라는 나단을 우리에게 보내신다.

우리 자신을 가장 잘 아는 아내나 남편 그리고 자식과 부모가 나단이 되어 우리에게 나타나는 경우도 수다하다.

 

우리가 병에 걸리면 아픔과 증상이 나타나듯이 우리에게 나타나는 심적인 고통, 육적인 어려움, 영적인 증상 등은 우리가 병에 걸렸다는 반증이다.

 

나 또는 교회는 하나님께서 이 시대의 나단을 통해 밝히시는 소리를 듣고 있는가?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병의 원인이 불만족이라고 진단하셨다.

하나님께서네 주인의 집을 네게 주고 네 주인의 처들을 네 품에 두고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 네게 맡겼느니라 만일 그것이 부족하였을 것 같으면 내가 네게 이것 저것을 더 주었으리라”(삼하 12:8)와 같이 다윗을 범죄에 빠뜨린 원인 균은 부족함이 아니라 불만족이라고 진단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처럼 우리에게도 넘치도록 은혜를 부어주시고 많은 것들을 누리게 하셨지만 감사치 아니하고 다윗처럼 불만족하여 이리저리 기웃거린다면 다윗이 걸린 중병에 걸릴 수밖에 없다.

 

나 또는 교회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에 만족하고 있는가?

셋째로 하나님께서는 병명이 하나님을 업신여김이라고 밝히셨다.

하나님께서 다윗이 실제로 간음죄와 살인죄와 같이 무서운 죄들을 저질렀음에도이제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 사람 우리아의 처를 빼앗아 네 처를 삼았은즉 칼이 네 집에 영영히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고”(삼하 12:10)처럼 그의 죄명은 하나님을 업신여김이라고 선언하셨다.

 

만일 우리들도 자신과 자기 교회를 위해서라면 시간, 재정, 열심 등을 얼마든지 내면서도 하나님께 대해서는 인색하다면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것이리라.

 

나 또는 교회는 마치 하나님이 계시지 않거나 은밀한 것들은 모르시는 것처럼 하나님을 업신여기지는 않는가?

넷째로 하나님께서는 병의 근원을 수술해주시지만 상처의 흔적은 남는다.

하나님께서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하매 나단이 다윗에게 대답하되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려니와 이 일로 인하여 여호와의 원수로 크게 훼방할 거리를 얻게 하였으니 당신의 낳은 아이가 정녕 죽으리이다 하고”(삼하 12:13-14)와 같이 다윗이 자신의 죄를 시인하자 그 엄청난 죄도 당장 용서해주셨지만 그에 대한 책임은 물으셨다.

 

다윗이 그 아이를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하되 금식하고 안에 들어가서 밤새도록 땅에 엎드렸으니 그 집의 늙은 자들이 곁에 이르러 다윗을 일으키려 하되 왕이 듣지 아니하고 저희로 더불어 먹지도 아니하더라 이레 만에 그 아이가 죽으니라”(삼하 12:16-18a)처럼 아무리 금식하며 밤새 열심히 기도 드렸지만 자식은 죽고 말았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하나님께 고백하면 모든 죄를 용서해주시고 기억도 하지 않으시지만, 모든 죄가 사해졌다고 모든 책임도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다윗은 여호와의 원수로 크게 훼방할 거리를 얻게 한 책임은 반드시 져야 했다.

 

하나님만이 아무리 큰 병의 근원도 도려내시는 수술을 하시지만, 큰 수술일수록 큰 수술자국이 남기 마련이다. 하나님께서는 장차 더 큰 병을 예방하기 위해 늘 보고 기억할 상처의 흔적을 남기신다.

 

나 또는 교회가 사탄이 크게 훼방할 거리를 제공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 육신에게는 암이 가장 치명적이듯이 영적으로 가장 치명적인 병이러므로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가 말씀하시되 너희가 이 말을 업신여기고 압박과 허망을 믿어 그것에 의뢰하니 이 죄악이 너희로 마치 무너지게 된 높은 담이 불쑥 나와 경각간에 홀연히 무너짐 같게 하리라 하셨은즉”( 30:12-13)처럼 바로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것이다.

 

나와 교회의 영적인 병을

가장 정확히 진단하시고

철저하게 치유하시는 하나님께 나아가자!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저가 알게 모르게 하나님 아버지를 업신여기고 살아 왔던 너무나 긴 세월을 깊이 돌아보게 하시고 회개하게 하시오니 감사합니다. 그로 인하여 저에게 남아있는 크고 작은 상처가 의미하는 주님의 기쁘신 뜻을 늘 감사하므로 남은 삶을 통하여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아래 url click 하시면 베다니찬양대의 은혜로운 찬양 (주 여호와는 나의 목자)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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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적 순간 댓글[0]
오늘의 명상 (2009-09-21 오전 10:49:21) http://blog.somang.net/mochung/5357

                                   (화면을 크릭하시면 똑똑한 화면을 보십니다)
 

결정적 순간

 

(11: 4)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그 병자가 나사로라면 그는 그저 ‘어떤’ 병자일 수 없습니다. 나사로와 그의 누이 마르다, 마리아는 예수님과 마음을 나누는 가족 이상의 소중한 관계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방문하실 때마다 가까운 베다니의 그들의 집에 들르셨고 그곳에서 진정한 안식을 누리셨습니다.

그 병자가 나사로라면 그 누이들이 황급히 보낸 사람들 앞에서 ‘죽을 병이 아니다’라고 태연하게 말씀하실 수 없었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볼 때, 계시던 곳에서 이틀이나 더 체류하실 수는 더더욱 없습니다.

 

그 병자가 나사로라면, 오빠의 죽음으로 마음이 상해 집에서 나와보지도 않는 마리아를 찾아보지도 않으시고 마을어귀에 버티고 서계실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그렇게 행동하셨다면 거기엔 분명히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마리아는 상심하여 집에 있었지만, 마르다는 주님께서 마을어귀에 서계신다는 말을 듣고 뛰어나갔습니다. 지금까지 마르다는 그 동생 마리아에 비해 항상 주님의 뜻과 말씀에 물리적 거리를 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 본문에서 마르다는 마을어귀로 뛰어나옴으로 주님의 은혜로운 말씀을 듣는 장본인이 되었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2526).

 

주님의 물음에 그녀는 거룩한 신앙의 고백을 합니다.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27).

‘결정적 순간’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 결정적인 순간에 당신은 어디에 있습니까? 마르다처럼 주님 앞에 서있습니까?

주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섭섭해서 다른 곳에 머물러있지는 않습니까?

 

내가 바라는 대로

주님께서 들어주시지 않는다고

주님을 멀리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바로 그때가 주님의 귀한 말씀이 전해지고 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4).” 이 말씀을 깊이 묵상합시다.

 

사랑의 주님! 주님의 행하시는 일이 좁은 저의 소견으로 이해가 되지 않을 때에도 주님께서 계시는 그곳으로, 마르다처럼 주님의 말씀을 사모하여 나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의 이해와 바람을 넘어서서 주님의 뜻을 기다리는 순종하는 마음을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아멘.
 

아래 url click 하시면 베다니찬양대의 은혜로운 찬양 (주 여호와는 나의 목자)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http://www.somang.net/infobada/player/player01.asp?idx=29401:30201&idxc=C0000000015&langTyp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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