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한 삶
(엡 3:10~11)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보여주는 TV 프로그램에 등장한 적이 있는가?
아니 그런 프로그램에 나오기를 바란 적이 있는가?
종종 우리가 살아가는 매일의 일상이 지루하게만 느껴질 때가 있다.
하지만 우리 삶에는 보이는 것 이상의 것이 존재한다. 목적이 이끄는 메시지가 우리에게 의미를 갖는 진정한 이유는 우리의 일상을 소중한 것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땅에서의 우리의 일상에 참된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까?
오늘날 우리는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다루는 여러 유명한 TV 프로그램을 만난다. 이른 바 “리얼리티 쇼”라고 불리는 이들 프로그램에서는,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삶의 단편들을 카메라에 담아낸다. 그렇다면 이들 프로그램이 사람들에게 매력을 갖는 이유는 무엇일까?
누군가 우리의 삶을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의 존재를 중요하게 만든다.
누군가 항상 나를 지켜보고 있다면, 그리고 그가 내 삶 속에 일어나는 일을 돌보고 있다면 어떻겠는가?
우리 역시 작은 카메라 하나를 늘 가지고 살아간다.
이 카메라는 보이지 않는 청중, 즉 하나님을 위한 것이다.
이 카메라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담아내기 위한 것이다.
지루하게만 느껴지는 우리의 일상이 참된 의미를 갖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를 지켜보고 계신다. 우리의 작은 일상에 관심을 가지고 계신다.
우리가 어떻게 믿음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지금 이 순간 어떻게 죄의 유혹을 거부하고 있는지,
다른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우리의 개인적인 삶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지를 지켜보고 계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의 아주 작은 순간도 놓치지 않으신다.
우리의 일상이 의미를 갖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매 순간을 이 믿음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우리의 삶 전체는 사명의 삶으로 바뀔 것이다.
우리의 삶이 중요하고 참된 의미를 갖는 것은
이 세상의 모든 권세와 통치권을 가지신
하나님께서 지켜보고 계시기 때문임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지루하게도 느껴지는 일상이 참된 의미를 갖는 이유를 확실하게 보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순간에도 관심을 가지시고 저를 지켜보고 계시다는 진실을 믿음으로 한 순간도 잊지 말게 도와 주시옵소서. 남은 삶은 주님의 계획과 목적에 이끌리어 기쁨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아래를 클릭하시면 소망교회 베다니찬양대의 은혜로운 찬양(내 주는 강한 성이요)를 들으실 수 있습니다.
http://www.somang.net/infobada/player/player01.asp?idx=32201:33001&idxc=C0000000015&langType=K
일방적인 관계
(존 피셔)
나는 관계에서 문제가 생기는 이유는 다른 사람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중의 하나일지 모른다. 왜냐하면 나는 나 자신과는 잘 지내기 때문이다. 나는 내 자신과는 거의 충돌을 일으키지 않는다.
우리는 항상 원하는 것이 같다.
특히 우리가 좋아하는 주제인 나에 관한 한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만약 이 문제에 다른 사람이 끼어든다면, 충돌이 일어날 것은 자명하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은 나와는 다른 생각과 감정, 주장, 행동양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 글을 미 캘리포니아 리버사이드에 있는 스타벅스에서 쓰고 있는데, 창 밖에는 한 남자가 서 있다. 그 남자는 등에 가방과 휴대용 침낭을 짊어지고 손에는 대형손가방을 든 채, 땅을 쳐다보며 무엇인가를 중얼거리며 천천히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그는 매우 약해 보였고, 면도도 하지 않았으며, 거의 노숙자처럼 보였다. 그는 10분 가량 왔다 갔다 하다가, 마침내 짐을 땅에 내려놓고 문을 열고 들어섰다. 그리곤 잠시 서 있다가 다시 다른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할 무언가를 말하곤 밖으로 휙 나가버렸다.
나는 그 남자를 보면서 다른 사람이 없다면 문제가 생기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던 내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게 되었다.
만약 우리가 자기 자신과만 살아갈 수 있다면, 분명 우리는 보다 적은 문제로 시름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어쩌면 나는 조금 전에 마주쳤던 그 남자와 같이 이 세상을 살아가게 될 지도 모른다.
어떤 문제를 풂에 있어 우리는 관계의 단절이라는 수단을 동원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들 대부분은 마음 속 깊은 곳에 최후의 방법으로 이 수단을 품고 살아가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수단의 결과는 우리가 기대했던 것만큼 효과적이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혼자 중얼거리며 인생 길을 걸어갈 수도 있고, 우리 주위의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갈 수도 있다. 바라기는
자신의 짐을 내려놓고,
다른 사람의 삶 속으로 들어가기를 바란다.
비록 그것이 크고 작은 충돌을 가져올 수도 있겠지만,
혼자 되는 것보다 더 비참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다른 사람이 없다면 문제가 생기지 않으리라고 생각하는 저의 모습을 돌아 보게 하셔서 감사합니다. 관계의 단절을 해결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어리석음을 일깨워 주셔서 감사합니다. 혼자되는 것보다 더 비참한 것은 없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크고 작은 충돌을 감수하며 사람의 삶 속으로 들어가는 올바른 선택을 늘 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아래를 클릭하시면 소망교회 베다니찬양대의 은혜로운 찬양(오 기쁜 소식을 전하는 자여)를 들으실 수 있습니다.
http://www.somang.net/infobada/player/player01.asp?idx=36102:36904&idxc=C0000000015&langTyp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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