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에게 축복으로 나아가는 교회들
(이준행 목사)
(잠,3:27,28)네 손이 선을 베풀 힘이 있거든 마땅히 받을 자에게 베풀기를 아끼지 말며 네게 있거든 이웃에게 이르기를 갔다가 다시 오라 내일 주겠노라 하지 말라.
며칠 전, 목사들이 너무 가난하다는 어떤 목사님의 푸념을 들었습니다. 자녀를 결혼시켜야 하는데 돈이 모자라서 차마 교인들에게는 이야기할 수는 없었고, 그래도 친분이 있다고 하는 목사들에게 돈을 좀 빌리려고 했으나 빌리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저 역시 지체로서의 의식이 분명했다면 그 돈을 어떤 방법으로든지 마련했겠지만 깊이 새겨듣지 않고 적극적인 태도를 취하지 못했던 것이 미안했습니다. 이 사건은 ‘깨끗한 부자(?)’나 재물이 많아져 자신이 부요케 되는 축복의 문제가 아니라 형제의 필요를 공급해주고 격려해주는 면에서의 축복을 생각하게 하였습니다.
축복이란 “너는 중요한 사람이다. 너는 나에게 매우 필요한 사람이다.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다”라는 정서적인 영향력을 끼치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이러한 축복의 메시지는 태어날 때부터 필요하고, 사춘기를 거쳐 청년이 되고, 가정과 교회를 이루어 가는 과정에 계속 필요한 메시지입니다.만일 본심은 아니라 할지라도 “너 하는 짓을 보니 싹수가 노랗다. 마음에 드는 구석이 하나도 없다. 너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 나가 죽어라.” 이런 이야기들을 듣는다면, 특히 축복을 받아야 할 부모나 사랑하는 대상으로부터 듣는다면 그의 영혼은 피폐해질 것입니다.
“너는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다. 하나님께서 너의 생애를 인도하실 것이다. 나는 너를 진심으로 돕고 싶다. 네가 자랑스럽다.” 이러한 축복의 메시지가 자존감이 충만한 삶으로 세워갈 것입니다.많은 사람들은 어린 시절에 받아야 할 축복의 메시지를 다 받지 못하고 잃어버린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 축복의 메시지를 주어야 할 사람들이 축복하는 법을 잘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 잃어버린 축복을 찾을 수 있는 곳이 있습니다.
그곳이 성령의 공동체인 교회입니다. 바울이 “루포의 어머니는 내 어머니다”라고 했던 교회들, 예수님께서도 요한에게 “보라 네 어머니다”라고 했던 사랑의 공동체들이 잃어버린 축복의 메시지를 채워 줄 수 있는 사랑의 공동체입니다.이번 주 몇몇의 지체들과 함께 다음과 같이 서로를 축복하는 메시지들을 주고받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안하성 형제의 정직함에 감동이 됩니다.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 김영임 자매의 살아온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매가 참으로 용기가 있는 사람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성요창 형제에게는 밝은 영이 있습니다. 사려가 깊고, 목자로서의 사명이 넘칩니다. 권오영 자매가 겪는 고통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아픔과 외로움의 짐을 나누어지고 싶습니다. 권귀순 자매는 있을 자리에 꼭 있는 야무진 사람입니다. 김종영 형제는 이 시대의 다니엘입니다. 그리스도의 편지입니다.
선한아, 너는 마음이 밝고, 긍정적이고, 자신을 개선해 가며, 미래를 열어가려는 의지가 강하다. 여보, 당신은 사려가 깊은 내조자입니다. 당신의 기도가 내게 힘을 더해 줍니다...” 이러한 축복의 나눔이 교회를 교회되게 하고, 지체를 지체되게 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교회는 모일 때마다
서로에게 축복으로 나아가는 자들의 모임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목사님의 아름다운 경험이 저의 교회 모임에서 모범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지혜와 힘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아래를 클릭하시면 소망교회 베다니찬양대의 은혜로운 찬양(위대하신 여호와)를 들으실 수 있습니다.
http://www.somang.net/infobada/player/player01.asp?idx=38301:39101&idxc=C0000000015&langType=K
지금부터 영원까지
(존 피셔)
‘죽은 사람은 어디로 가는가?
그 해답은 오직 죽은 자만이 알고 있다. 만일 그들이 로마에서 살아봤다면, 분명 자신들의 죽음을 매우 안타까워할 것이다.’ - 니켈 크릭 밴드
기독교인들은 여러 곳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며 살아간다.
비록 우리가 그 사실을 피부로 느끼지 못한다 할지라도, 우리의 영원한 목적지는 지금 이곳이 아니라는 사실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영원을 위해 만들어졌다.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살기 위해 만들어졌다. 지금 이 땅에서의 삶은 나중의 삶을 위한 그림자일 뿐이다.
그렇다고 그저 가만히 앉아 있으면서, 헬리콥터 성령님께서 친히 우리에게 날라 오사, 홀연히 우리를 하늘나라로 데려가 주시기만을 기다리고 있지는 않는다.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가 이 땅에서 열심히 살아가야 할 삶을 주셨기 때문이다.
지금 이 곳에서의 삶은, 영원한 하늘나라의 삶의 일부분이다.
이 땅에서의 삶을 통해 하늘나라에서의 삶의 모습이 결정된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_ 마태복음25:23
바울은 고린도전서 3장 12-15절에서 이렇게 말했다.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또 고린도전서 15장 37절에서는 우리의 몸이 한 알의 밀이 되어 땅에 묻히면, 하늘에서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중요한 것은, 바로 지금 이 땅에서의 삶이 영원한 삶의 모습을 결정짓는 중요한 부분이라는 사실이다. 지금의 삶과 나중의 삶, 그 둘 모두 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만 한다. 그러나 주의하라.
영원의 삶을 위한 지금의 삶이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현재 우리가 하는 일과 지금의 모습이, 영원을 결정짓는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돈은 하늘나라에서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돈을 갖고 하는 일은 장차 하늘나라에서 매우 중요한 일이 될 것이다.
현재의 직업은 하늘나라에서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의 직업에 진 책임은 장차 하늘나라에서 중요한 일이 될 것이다.
재산은 하늘나라에서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재산을 가지고 하는 일은 장차 하늘나라에서 중요한 일이 될 것이다.
경쟁에서 이기는 것은 하늘나라에서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우리가 땀을 흘리며 열심히 일하고, 우리가 가진 은사를 활용하여 이루어낸 것들은 장차 하늘나라에서 중요한 일이 될 것이다.
현재의 경험을 통해 영원의 삶을 결정짓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지금의 삶과 반대되는 부분도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만일 지금 당신이 감옥에 갇혀 있다면, 하늘나라에서는 자유로울 것이다.
만일 지금 당신이 아프다면, 하늘나라에서는 건강할 것이다.
만일 지금 당신이 학대를 받고 있다면, 하늘나라에서는 귀한 대접을 받게 될 것이다.
만일 지금 당신의 몸에 장애가 있다면, 하늘나라에서는 온 몸이 완전해 질 것이다.
만일 지금 당신이 가난하다면, 하늘나라에서는 부요해 질 것이다.
만일 지금 당신이 외롭고, 소외된 삶을 살고 있다면, 하늘나라에서는 따뜻한 소속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지금 당신이 불필요한 존재라면, 하늘나라에서는 가장 귀한 자가 될 것이다.
만일 지금 당신이 슬픔으로 눈물짓고 있다면, 하늘나라에서는 기쁨으로 춤을 추게 될 것이다.
만일 지금 당신이 우울증과 싸우고 있다면, 하늘나라에서는 기쁨으로 뛰어다니게 될 것이다.
잊지 말라.
지금 우리의 삶이
영원의 삶을
결정짓는 다는 사실을 말이다.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저의 이 땅에서의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하신 말씀을 언제 어디서나 잊지 않고 맡은 모든 일 을 주께 하듯 감당하게 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아래를 클릭하시면 소망교회 베다니찬양대의 은혜로운 찬양(하나님의 영광)를 들으실 수 있습니다.
http://www.somang.net/infobada/player/player01.asp?idx=37701:38501&idxc=C0000000015&langTyp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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