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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나와 당신을 위하여 베푸신 사랑을 쉼 없이 감사하며 올 바른 믿음과 삶을 통하여 이 기쁜 소식을 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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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나눔(섬김)의 공동체입니다. 댓글[0]
오늘의 명상 (2010-04-02 오전 11:54:09) http://blog.somang.net/mochung/5750
 
 

교회는 나눔(섬김)의 공동체입니다.

 

(,2:10.)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공든 탑이 무너지랴?”는 속담이 있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최선을 다하라는 교훈일 것입니다. 공든 탑이 무너진다면 만든 사람의 마음이 너무 아플 것입니다. 그런데 간혹 공든 탑이 허무하게 무너질 때도 있습니다. 밤새도록 시험공부 해놓고 다음날 망치는 학생도 있고, 설교준비를 열심히 해놓고도 가끔씩 설교를 죽 쑤는 목사도 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공든 탑이 무너졌습니다.

그것도 하나님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하나님의 열정과 생기를 불어넣어 만든 최선의 작품인 인간이 사단의 유혹 한 마디에 하와도, 아담도 여지없이 와르르 무너진 형편없는 작품이 되었습니다.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마음이 아팠을 것입니다.

최선을 다하셨고, 그렇게 기뻐하셨던 작품이었기에 실패한 인간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고통은 더욱 컸을 것입니다.

이러한 허무한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활동이 중단되지 않았습니다.

더 큰 아픔으로 십자가를 준비하신 하나님은 인간이 지은 죄와는 비교할 수도 없이 큰 사랑을 베풀었습니다. 이 사랑은 죄인을 불쌍히 여기는 하나님의 눈물입니다.
 

이 사랑은 인간의 모든 죄를 단번에 용서하시는 은혜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이 십자가에서 그분의 피로 녹아내려 무너진 인간을 새롭게 다듬기 시작했습니다. 촉촉이 적셔오는 그분의 사랑이 우리의 완악한 마음을 흔들어 놓았습니다. 무덤덤한 마음이 큰 감동을 받아 감격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늘 울어도 눈물로서 못 갚을 줄 알아 몸 밖에 드릴 것 없어 이 몸 바칩니다.”

수백 번 부르고 또 불러도 감사한 노래입니다. 이렇게 감동이 있는 인간으로, 구원받은 인간으로 새롭게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2:10.)

이렇게 업그레이드하여 만드신 작품을 예전과 같이 홀로 두지 않으셨습니다.

서로 사랑하여 붙들어 주며 함께 가라고 더불어 두셨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새로운 작품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 즉 교회라고 부릅니다.

 

예수님께서 신랑이 되시고 교회를 신부로 두셨습니다.

주님을 머리로 모시고 지체가 되어 진리의 성령님이 살아가시는 집을 이룬 하나님의 성전이 교회입니다. 생각만 해도 감사한 일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새롭게 만들었다는 사실 때문에, 이것 한 가지만으로 세상에서 큰 소리 칠 수 있습니다. 가진 것이 좀 없어도, 배운 것이 좀 부족해도, 얼굴이 좀 못생겼어도 주님께서 우리를 만드셨다는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세상에서 큰 소리 치며, 넉넉한 마음으로 미소 지으며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모인 교회입니다.

서로 생김새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살아온 삶의 흔적도 다르지만, 생명의 빛과 소금이 되어 밝음과 맛을 나누어 주고, 사랑의 향기가 되어 맹맹한 관계들을 아름답게 하고 싶습니다.

 

주님의 마음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서로를 돌아보는

사랑을 나누는 공동체가 된다면

그 곳에 하나님께서 계십니다.

 

엄마와 아기가 탯줄로 그 생명이 연결되듯이 서로 사랑의 나눔(섬김)이 있는 교회가 성령 안에서 생명의 탯줄로 연결된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이준행 목사[교회갱신칼럼]중에서)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교회가 성령 안에서 생명의 탯줄로 연결된 나눔과 섬김의 공동체이어야 함을 보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의 사역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늘 함께 하시는 교회가 날로 더 늘어나게 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아래를 클릭하시면 소망교회 베다니찬양대의 은혜로운 찬양(우리 눈 여소서)를 들으실 수 있습니다.

http://www.somang.net/infobada/player/player01.asp?idx=42202:43003&idxc=C0000000015&langTyp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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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단과 책임의 차이 댓글[0]
오늘의 명상 (2010-04-01 오전 11:23:47) http://blog.somang.net/mochung/5749
 
 

판단과 책임의 차이

(존 피셔)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것에 대한 예수님의 태도는 매우 명확했다.

 

예수님께서는 판단하지 말라고 하셨다. (마태복음 7:1) 그러나 서로에게 진리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은 어떠한가? 우리는 서로에 대해 책임을 지지는 않는가? 누군가를 위해 책임을 진다면, 그로 인해 어떤 점에서는 그 사람을 판단하게 되지는 않는가?

책임은 어떠한 관계에서도 중요한 부분이다.

 

특히 그리스도를 따르는 목적을 지닌 관계에서는 더욱 그렇다. 우리는 길을 똑바로 가기 위해 서로를 필요로 한다. 인생에서의 유혹은 혼자서 상대하기엔 너무 크다. 이에 대해 바울은 이렇게 말했다.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너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갈라디아서 6:1)

누군가를 판단하는 것과 직접 대면하는 것의 차이는 무엇인가?

 

직면은 행동이다. 판단은 그저 머리 속에만 있다. 대면은 똑 같은 유혹에의 취약함을 스스로 잘 알기 때문에 그 안에 겸손의 요소가 있다. 판단은 항상 마음속으로 자신이 누군가 보다 낫다고 여기게 만든다. 또한 대면은 항상 직접적인 접촉을 의미한다. 판단하는 것은 스스로 간직할 때는 악한 작은 비밀이며 다른 사람과 나눌 때는 가십의 형태가 된다.

 
몇 년 전, 한 친구가 중요한 일을 앞두고 옳은 결정을 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또 다른 친구와 나는 그에게 가서 놀라게 해주고 그의 결정을 지지해주자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를 만나기 위해 열 시간을 운전해 가야 한다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이것이 그를 놀라게 해주려는 부분이었다) 우리는 그가 진실을 마주대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사랑에 의한대면의 행위로서 그의 앞에 나타나려고 했던 것이다.

돌이켜보건대 만약 우리가 그를 만나러 가지 않았다면, 그리고 그의 도덕적 실패를 스스로 나 자신을 더 낫게 여기는 수단으로 사용했더라면, 그에게 상처가 될 수 있는 방법으로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를 했더라면, (‘기도를 요청한다는 명목으로도 마찬가지다. 기도는 사역의 형태를 띤, 쉽게 받아들여지는 가십으로 화할 때가 많지 않은가!)

 

그것은 그를 판단하는 일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대신 우리가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고 그를 염려하는 마음으로 직접 그에게 가자 그 결과는 우리 세 사람 모두에게 큰 힘과 위안이 되었다.

너무나 오래된 이야기라 지금은 그 문제가 무엇이었는지, 또는 그가 어떤 행동을 취했는지 설명할 수 없지만, 내가 기억하는 것은 그가 너무나 상심해있어서 우리는 그를 너무나 걱정한 나머지 그를 직접 보러 갔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나는 오늘까지도 소중한 한 친구를 간직하고 있다
.

혹시 마음에 누군가를 낮춰보는 마음이 생긴다면 그 생각을 멈추고 당신이 그 사람을 판단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라. 그리고 그런 다음 당신이 그 사람을 사랑 안에서 대면하기 위해 갈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당신이 얻은 정보를 행동으로 옮기든지 아니면 그것을 그냥 두고 하나님께 맡기라.

 

마음 속에 누군가에 대한 생각을 품고

그 사람을 직접 대면하지 않는 것은

개인적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로 인해 정말 상처를 받는 사람은 바로 당신뿐이다.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저도 모르게 남을 판단하는 습관적 구습에서 온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저의 마음 속에 남을 낮추어보는 마음이 생길 때 그 생각을 멈추고 사랑 안에서 대면하기 위해 갈 수 있는 사람임을 믿음으로 행동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아래를 클릭하시면 소망교회 베다니찬양대의 은혜로운 찬양(우리 눈 여소서)를 들으실 수 있습니다.

http://www.somang.net/infobada/player/player01.asp?idx=42202:43003&idxc=C0000000015&langTyp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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