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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과 생각을 지키라 댓글[0]
마음, 정신, 생각 (2013-12-20 오전 8:34:53) http://blog.somang.net/holylove/8035
마음과 생각을 지키라
 
 
본문: 신명기 4:9∼10, 잠4:20- 23
 
 
의학용어 중에 플라시보(Placebo) 효과란 말이 있습니다. 실제로는 없는데 있을 것이라 마음에 기대함으로써 나타나는 실제 효과를 말합니다. 우리말로는 기대효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렌지 크기의 종양 때문에 입원했던 미국인 라이트씨는 말의 장액인 크레비오젠이 암에 효과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의사에게 그걸 사용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의사들은 별 기대 없이 사용했으나 암덩어리가 눈 녹듯 사라지는 놀라운 결과가 생겼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그는 말의 장액이 암에 소용없다는 기사를 읽었고 암은 재발했습니다. 의사는 이전보다 두 배나 강한 크레비오젠이라며 물을 주사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다시 건강해졌습니다.
이것은 의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입니다. 다만 사람의 마음과 생각에 따라 육체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무엇보다도 마음을 지키라고 했고, 마음의 즐거움이 얼굴을 빛나게 한다고 했습니다.
 
세상의 부자들은 돈을 지키기 위해 힘씁니다. 정치인들은 자기의 권세를 지키기 위해 애씁니다. 그리고 연애 중인 사람은 자기의 사랑을 지키려고 힘씁니다. 직장인은 자기의 지위를 지키기 위해 애씁니다. 부모는 자기의 자녀를 지키려고 애씁니다. 그런데 그 무엇보다도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마음입니다.
마음이 쌓이면 행동으로 나타나고 행동이 쌓이면 습관이 되고 습관이 쌓이면 그 사람의 성품이 되어 그 사람의 운명을 좌우합니다. 칼이 의사의 손에 쥐어지면 사람의 생명을 건지는 수술도가 되고 어머니의 손에 쥐어지면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도구가 됩니다. 그러나 강도나 도둑놈의 손에 쥐어지면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흉기로 전락합니다. 칼이 선의 도구가 되느냐 악의 도구가 되느냐를 결정하는 것은 칼 자체가 아니고 칼을 쓰는 사람의 마음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사용하느냐에 따라 자신의 삶을 결정합니다. 악한 마음을 가진 자가 권세와 돈을 쥐면 그것은 큰 죄악을 낳고 불행을 낳습니다. 수 억원의 복권에 당첨된 사람들의 대다수가 결국 불행해 지는 이유를 아십니까? 그것을 바르게 사용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언행은 그 마음속에서부터 우러나옵니다. 즉 그 사람의 마음이 바르지 못하면 그에게서 나오는 말과 행실도 악합니다. 그러므로 올바른 마음과 정신자세를 갖춘다는 것은 실로 중요합니다. 즉 마음은 나의 주인이요, 근본이고 정신은 인생의 방향타요, 운명의 운전수요, 생활의 지배자입니다. 인생은 마음을 갈고 닦는 도장이요, 정신을 다듬는 수련장입니다. 마음은 우리 삶의 근본입니다.
수백 수천 평의 배가 어느 방향으로 가느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배의 가장 조그만 부분인 키에 달려 있습니다. 키에 의해 인천에서 부산으로 갈 수도 있고 미국이나 일본으로 갈 수도 있습니다. 우리 몸에 있어서 키와 같은 것은 생각입니다. 생각은 우리의 육체를 움직일 뿐 아니라 인생을 움직입니다.마음과 생각은 육체의 면역 체계화와 정서? 정신적 건강, 행복 그리고 성공에까지 영향을 줍니다. 베임스 앨런이란 사람은 “육체는 마음의 노예다”라고 말했습니다. 육체는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마음가는 대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생각은 삶에 있어서 필수적인 것입니다. 생각이 없다면 그것은 죽은 것입니다.생각은 우리의 모든 행동과 감정의 기초가 됩니다. 마음과 생각은 인간을 동물과 다르게 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런데 그 생각이 어떤 생각이냐가 우리의 인생을 결정합니다. 마음은 우리 육체의 건강과 질병에 영향을 줍니다. 생각은 우리의 현실을 결정합니다. 마음은 우리의 태도를 결정합니다.마음과 생각은 우리의 성공에 영향을 줍니다 우리는 흔히 생각하기를 내 주변의 상황이 엉망이기 때문에 내 생각이 어쩔 수 없이 엉망이 된다고 말합니다.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내 인생이 엉망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내 생각이 그런 것이 아니고 내 생각이 엉망이기 때문에 내 삶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내 생각이 나를 만들고 내 삶을 만듭니다. 오리알을 품으면 오리가 나옵니다.독수리 알을 품으면 독수리가 나옵니다.내가 어떤 생각을 품느냐가 나를 만들고 삶을 만듭니다. 아치발트 하트는 그의 책 ‘마음의 습관’에서 ‘당신 생각의 결과’라는 사실을 지적합니다.그렇습니다.지금의 나는 내가 어떻게 생각했느냐의 결과인 것입니다.그래서 우리에게 능동적이고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생각이 필요합니다 부정적인 생각은 암이 우리의 육체를 파괴하듯 우리의 삶을 파괴합니다. 성경은 그래서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도 네 마음을 지키라고 말씀하십니다.
 
최근에 와서 크리스천 심리학이나 상담학의 발달로 그리스도인의 마음에 대하여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습니다. 종래에는 눈에 보이는 일들만 중요했지 눈에 보지 않는 마음이 중요한지 잘 몰랐습니다. 그러나 육체는 건강하고 공부도 잘 하는 사람이 마음에 병이 들어서 자살을 한다든지 아니면 병원 치료를 받아야 하는 경우가 너무나도 많은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누군가는 말하기를 21세기는 우울증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했는데 상당히 일리가 있는 말이라고 생각됩니다. 원래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을 구정물통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그 안에는 지금까지 자기가 보고들은 모든 말이나 경험들이 다 들어 있어서 자극을 주기만 하면 온갖 반응들이 다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이 너무나도 모르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예수를 주로 믿기만 하면 마음속에 있는 모든 상처가 다 치료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가 않습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지만 마음에 병이 들어서 정신치료를 받아야 하는 사람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또 마음을 지키지 못해서 시험에 빠지거나 유혹에 넘어가는 경우도 많고 또 과거의 상처 때문에 풍성한 삶을 살지 못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마음의 평화를 지키는 것을 조용한 명상에서 찾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이것도 누구나 택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마치 구정물을 가만히 내버려두면 모든 찌꺼기가 가라앉아서 맑은 물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작대기로 저으면 금방 또 흙탕물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매번 그런 모양이 반복되다보면 효과가 떨어지게 마련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에는 두 구멍이 있습니다. 하나는 더러운 구정물을 내는 정욕의 구멍이고 다른 하나는 맑은 물을 내는 성령의 샘물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적극적으로 더러운 물은 퍼내고 성령의 샘물은 열어서 마음은 언제나 깨끗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을 본문은 '마음을 지킨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고백이 중요합니다. 잘못한 것은 입으로 고백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마음에 문을 달아서 아무 생각이나 마음속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마음에 충만히 하시며 하나님의 능력 있는 삶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우리 마음은 하나의 방입니다. 마음에 무엇을 담아 두느냐, 마음에 누가 함께 하고 있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집니다. 우리들이 지내는 방에 밥상을 놓으면 식당이 됩니다. 책상을 갖다. 놓으면 공부방이 되지요 방석을 깔면 응접실이 되고, 이불을 깔면 침실이 됩니다. 요강을 갖다 놓으면 화장실도 되고 화투를 치려고 담요를 깔아 놓으면 금세 도박장이 되지요 마찬가지로 우리 마음도 그렇습니다. 누구와 함께 하는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는 지에 따라 많이 달라지지요 우리들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계시는 분이 있습니다. 그 분은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그분을 우리 마음의 방에 영접하면 평안가운데 삶이 새로워집니다. 변화된 삶 속에 확신이 생깁니다. 날마다 기쁨 속에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마음은 정원과 같아서 가꿀수록 아름답습니다. 돌볼수록 향기를 발합니다. 내면의 마음을 가꾸는 사람은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고상한 사람입니다. 마음을 가꾼다는 것은 인격을 가꾼다는 것입니다. 성취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품입니다. 성공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실입니다. 성실에는 황혼기가 없습니다. 가장 위대한 성취는 무엇을 얻는 것보다 향기로운 사람이 되는 데 있습니다. 향기로운 사람이 되려면 마음의 정원을 잘 가꾸어야 합니다.
 
마음은 하나님의 활동 무대입니다. 생명의 근원이 마음에서 나옵니다. 마음에서 지혜와 창조적인 아이디어가 나옵니다. 인생을 승리한 사람들은 마음의 세계를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을 가꾸고 다스릴 줄 알았습니다.
인간의 마음에는 양면성이 있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생명의 근원이면서 또한 부패의 원천입니다. 마음에서부터 악한 생각, 추한 생각, 파괴적인 생각이 나옵니다. 결국 모든 것이 마음에서 나옵니다.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마음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천국도 마음에서부터, 지옥도 마음에서 경험합니다. 사랑도 마음에서, 미움도 마음에서 나옵니다. 일찍이 이태리의 문인 빠삐니는 말하기를 "오늘날 세계의 문제는 인간의 문제이며 인간의 문제는 마음의 문제이다"라고 갈파하였읍니다. 마음이야말로 가장 근원적인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기독교 신앙은 ‘마음의 종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점은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무엇보다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마태복음 5장부터 7장에 산상설교가 기록돼 있습니다. 예수님은 5장에서 사람의 마음을 강조하셨습니다. 팔복을 말씀하시면서 첫 번째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입니다. 예수님은 “옛 사람에게 말한 바…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라는 표현을 통해 계속해서 마음의 상태와 태도를 강조하십니다. 직접 사람을 죽인 것만이 살인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 대한 심한 분노를 마음에 품고 있는 것도 살인입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갚지 말고 오른쪽 뺨을 치는 사람에게 왼쪽 뺨을 대주고 5리를 같이 가자는 사람과 10리를 동행하라고 하십니다. 형식적으로가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태도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잠언에도 마음에 대한 강조가 많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에 주의하고 귀를 기울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것을 마음으로 지키라고 명령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자리해야 할 궁극적인 자리는 마음입니다. 신명기에서도 모세는 같은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역사를 잊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면서 그 말씀과 은혜가 마음에서 떠나지 말게 하라고 명령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베푸신 위대한 일들을 마음에서 떠나지 말게 하고 계속해서 힘써 마음을 지키라고 합니다.
 
마음을 지켜야 하는 까닭은 악한 영이 우리 마음을 공격하기 때문입니다. 악한 영은 우리 마음이 주님 말씀이 아닌 다른 것으로 채워지게 하려고 끊임없이 기회를 노립니다. 우는 사자처럼 위협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힘써’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매일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주일을 성수하고 성도와 교류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 가정에 이같은 복이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나폴레옹은 왕위에 올랐을 때 자신의 정적 중 한 명인 앙기엔 공작을 매우 눈엣가시처럼 여겼습니다. 그러나 앙기엔 공작은 인품이 좋고 백성들을 잘 살펴 파리 백성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었기에 나폴레옹은 그를 함부로 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점점 치솟는 공작의 인기에 위기를 느낀 나폴레옹은 결국 말도 안 되는 모함을 통해 공작을 사형시켰습니다. 당시 이 같은 행태를 목격한 파리 시민들은 큰 분노를 느꼈고 자칫하면 폭동이 일어날 기미까지 보였습니다.
나폴레옹은 시민들의 분노를 가라앉히기 위해서 ‘서정시인’이라는 뜻의 오시앙이라는 발레 공연을 열라고 지시했습니다. 파리 시민들은 화려한 발레 공연에 정신이 팔려 며칠이 지나자 공작의 죽음에 대해서는 모두 잊은 채 발레에 대한 이야기만 하고 있었습니다.
정말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잊지 않기 위해서는 작은 유혹과 하찮은 쾌락으로부터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아무리 달콤하게 느껴지는 쾌락과 즐거움일지라도 세상의 모든 것은 금세 사라질 안개와 같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신앙생활에 있어서 세상과 죄악, 그리고 우리를 더럽히고 병들게 하는 요소에 감염되는 것은 대부분 우리의 마음입니다. 마음과 마음이 맞닿을 때 해로운 사상이나 생각, 태도가 우리에게 전달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지 않은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자연히 그리스도인들도 그들의 영향을 받아 세상적인 것에 물들어 버리고 맙니다. 생각, 사상, 감정, 선택, 충동, 욕망, 이 모든 것은 우리의 마음이 다른 사람의 마음과 만날 때 변화하는데, 대중 매체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현대에는 '대중 의식'이 더욱 증대되고 있습니다. 특히 마음이 여린 젊은이들은 부모나 교사, TV, 라디오, 잡지, 신문, 친구들이 주는 미묘한 압력과 충격에 큰 영향을 받습니다. 대중 매체들은 우리의 의식 형성에 많은 영향을 끼치는데, 이것을 주도하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비 그리스도인이거나 아니면 반 그리스도적인 사람들입니다. 이런 것들을 계속 접하면서도 오염되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오늘날의 이 시대는 폭력과 증오, 편견과 탐욕, 냉소주의가 팽배한 반면, 고상하고 순수하며 아름다운 것은 멸시받는 경향이 있습니다.
 
세상의 오염에 물들지 않을 실제적인 방법은 날마다 영적으로 깨어 있어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는 성령이 마음속에 임재하심을 깨닫고 성령의 능력을 우리 마음에 적용하는 것뿐입니다. 그리고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아뢰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십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4:6-7)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책, T.V, 라디오, 그리고 특히 광고 등을 통하여 계속적으로 우리에게 침투하는 세상의 태도와 사고 방식과 철학 등의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조심하지 않으면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그것들을 받아들입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는 그것들에게 길을 내주고 동화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백하면서도, 매일의 삶에서는 세상을 닮은 행동들을 자연스럽게 합니다. 마침내 세상 사람들과 정말 아무 차이도 없는 데까지 다다르게 됩니다.
 
한 선교사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그는 5년마다 본국에 돌아왔습니다. 그에게 본국에 돌아올 때마다 어떻게 느꼈는지 물었더니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슬픈 사실은 고국에 올 때마다 표준들이 더욱 낮아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더욱 더 슬픈 것은 교회까지도 점점 더 세상을 닮아가고 있습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성서적인 표준에서 떠나고 있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그것이 바로 오늘날 한국 그리스도인들의 문제인 것입니다. 우리 사회가 점점 무신론적이고 물질주의적이 되어감에 따라, 아주 조심하지 않으면 교회 분위기는 점차 세상을 받아들이고 세상을 닮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여 성령께서 그의 일을 하시도록 해야 합니다. 그것은 성령께서 우리의 생각과 태도가 주님을 닮도록 하기 위하여 사용하시는 그 수단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우리가 성경 말씀으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가득 채울 때 우리는 세상을 경계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생각을 따라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생각대로 생각하기 시작할 때, 세상의 위장된 겉모습을 벗겨내고 본래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됩니다.
 
사람은 누구나 몸과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몸보다 마음을 중요시 합니다. 본문의 말씀에서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하였으며, "내 마음이 악한 일에 기울어 죄악을 행하는 자와 함께 악을 행치 말게 하시며 저희 진수를 먹지 말게 하소서"(시141:4),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히10:2) 하였습니다. 우리는 몸보다는 마음으로 살아가며, 마음가짐에 따라 자기 운명이 달라집니다. 따라서 우리는 나의 눈과 혀를 지켜야 하겠지마는 그보다 더욱 내 마음을 잘 지켜야 합니다. 우리가 집이나 돈을 지키는 일은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수 있어도 마음을 지키는 일은 나 이외의 어떤 사람에게도, 맡길 수 없는 일입니다.
 
행복과 불행, 평안과 불안도 외부 환경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모두 다 내 마음 여하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편안하고 안이한 마음으로만 살려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매일 수염을 깍아야 하듯 내 마음도 매일 다듬지 않으면 안됩니다. 한 번 청소했다고 언제까지나 방안이 깨끗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도 한 번 반성하고 좋은 뜻을 가졌다고 해서 그것이 늘 우리 마음속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제 먹은 뜻을 오늘 새롭게 하지 않으면 곧 우리를 떠나고 맙니다. 우리는 마음속에 무엇이고 들여보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마음을 지키라는 것은 의심, 두려움, 거짓, 교만, 음란 등과 같은 악한 감정이 내 속에 자리잡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일단 마음속에서 나갔다가도, 곧잘 다시 찾아오는 손님입니다. 이런 손님에게 마음의 좌석을 점령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사랑과 온유와 관용과 화평과 겸손 같은 좋은 친구들이 먼저 마음속에 자리 잡도록 하여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속은 선과 악의 싸움터입니다. 이 싸움에서 선한 마음이 승리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합니다. 즉 진리로 허리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평안의 복음의 신을 신고, 믿음의 방패와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엡6:10-18)
"주께서 너희 마음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게 하시기를 원하노라"(살후3:5)
 
저는 이렇듯 마음의 중요성을 잘 알기 때문에 매일 기도하는 것이 내 마음에 교만과 음란과 거짓과 탐심을 물리쳐주시고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온유와 자비와 절제와 양선과 충성과 오래 참음의 마음을 갖게 해달라고 수시로 기도드립니다. 바리세인과 서기관 중 몇이 예수의 제자 중 몇 사람이 씻지 아니한 손으로 떡 먹는 것을 보고 부정한 손으로 떡을 먹는 것을 힐문하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능히 사람을 더럽게 못하나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하시며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광패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한다.(막7:1-23)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회개하여 마음을 깨끗이 하여야 합니다.
 
옛날 교회 전도지를 보면 사람 가슴판에 뱀, 돼지, 여우, 개, 늑대 등이 그려져 있고 후에 말씀과 복음이 들어가자 이 동물들이 다 쫓겨나고 그대신 가슴에 예수님이 좌정하는 그림이 들어있는 전도지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마음속에 있는 개, 돼지, 뱀, 여우, 늑대 등을 내 쫓아야 합니다. 즉 우리 마음을 더럽히는 음욕, 탐심, 시기질투, 교만, 분노와 혈기, 미움, 거짓, 도적질, 간음, 살인 등을 깨끗이 회개하고 비워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을 깨끗이 하여 그냥 비워둘 수는 없습니다. 마태복음 12장 43- 45절과 누가복음 11장 24- 26절에 더러운 귀신이 나가 집이 비고 소제되고 수리되자 저보다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갔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그릇이 그냥 빈 채로 있으면 무엇이든 담기게 됩니다. 잠언4: 23절에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라 하였습니다. 마음을 지키려면 마음속에 올바른 마음, 좋은 생각으로 채워져야 새사람이 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마음을 무엇으로 채워야 하는 가입니다. 수양이나 교육은 그 사람의 마음에 다소의 영향을 주나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다 주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시지 않고 그 사람의 마음을 살피십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이유가 그 마음이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마음으로 가득 채워져야 올바른 크리스천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지켜야 할 마음은 어떤 마음인가를 살펴봅시다.
 
 
1. 사랑하는 마음
저는 얼마전 지하철 사랑의 편지란에서 '300원의 행복'이란 글을 보았습니다. 어떤 목사님이 신혼 초에 몹시 배가 고픈 데, 가진 돈은 300원뿐이어서 배를 채우기 위해 호빵을 사먹을 까, 아내에게 줄 쵸코렛을 살까 망설이다가 결국 쵸코렛을 사가지고 갔는데, 나중에 그 사실을 안 아내가 무척 행복해 하더라는 이야기 입니다.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입니다. 사랑의 사도인 요한은 요한일서 4장 7∼8절에서 사랑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구약의 핵심 구절은 십계명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을 주님은 마태복음 22장 37∼40절에서 경천애인(敬天愛人)으로 요약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주님은 이 두 계명을 산상설교에서 황금률의 말씀으로 요약했습니다(마7:12).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을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십니다.
 
 
2. 감사하는 마음
미국의 미시간 호수에서 배 한 척이 침몰된 일이 있었습니다. 타고 있던 많은 사람들이 배의 침몰과 함께 호수에 빠져 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북서부 대학의 한 학생이었던 수영 선수 한 사람이 사력을 다하여 23명을 구출해 낸 일이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지난 어느 날, R.A. 토레이 박사가 로스엔젤레스에서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토레이 박사는 그의 설교 가운데서 오래 전 미시간 호수에서 있었던 배의 침몰사고에 대하여 얘기하면서 그때 젊은 대학생이었던 수영 선수의 용기와 인간애를 극구 칭찬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자리에 그때의 그 젊은이가 노인이 된 채 앉아서 그 설교를 듣고 있었습니다. 설교가 끝난 후 토레이 박사는 그 장본인이 그 자리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그때 사건을 통하여 가장 인상깊었던 일이 무엇이었느냐고 물었을 때 그 노인은 낮은 소리로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단 한 사람도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5:18)
"범사에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엡 5:20-21)
 
 
3. 애통하는 마음
하나님은 돈 많은 사람의 은전 헌금보다 과부의 엽전 한 닢을 바치는 마음을 더 크게 보십니다.
신유 은사를 가진 유명한 권사님이 계셨습니다. 그분은 치유를 위해 기도하다가 그 사람의 암 덩어리가 흘러나오면 그것을 입으로 다 빨아내는 사랑과 헌신이 많은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그분이 천국에 올라가는 꿈을 꾸었습니다. 천국에는 성도들을 위해 아름다운 집들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권사님은 당연히 자기에게도 큰집이 준비되어 있으리라고 기대를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자신에게 준비된 집은 개집처럼 작은 것이었습니다. 실망에 빠져있는 권사님에게 주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너는 세상에서 영광을 다 받지 않았니?" 꿈에서 깨어난 권사님은 그 후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가난한지를 깨닫게 되었으며, 그때부터 모든 재산을 가난한 사람을 위해 드렸습니다. 세상 권세와 부유함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부족함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복음이 미련해 보이고 예수님을 믿는 일이 하찮게 보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준비하신 은혜를 받지 못하고 심판에 이르게 됩니다. 우리는 항상 십자가 앞에서 은혜를 구하는 가난한 자로 살아야 합니다.
"화 있을 찐저 너희 이제 배부른 자여 너희는 주리로다 화 있을 찐저 너희 이제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눅6:25)
 
 
4.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
우리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합니다. 마음에 가득한 생각을 행동으로 옮깁니다. 우리가 가꾸어야 할 마음가운데 하나는 온유한 마음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온유한 마음입니다. 온유한 마음은 따뜻하고 부드러운 마음입니다. 사람은 차갑고 딱딱한 마음보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찾아갑니다. 따뜻함과 부드러움은 함께 가는 동반자입니다. 따뜻함은 부드러움을 줍니다. 부드러운 것은 따뜻합니다. 강한 것은 세고 딱딱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가장 강한 것은 부드러운 것입니다. 또한 모든 것을 살리는 것은 따뜻한 것입니다. 따뜻한 온도에 모든 것이 소생합니다. 봄바람은 따뜻합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살립니다. 마음이란 너무 차가우면 냉정해지고, 너무 뜨거우면 분별력을 상실하게 됩니다. 적절한 마음의 온도가 필요합니다. 그것은 따뜻한 마음입니다. 마음의 온도를 조절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합니다. 우리가 먹는 음식은 에너지가 됩니다. 그 에너지 가운데 25%는 몸과 정신이 운동하는 데 쓰이고, 나머지 75%는 몸의 체온을 유지하는데 쓰인다고 합니다. 몸의 체온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것이 음식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마음의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도 마음의 양식을 먹어야 합니다. 그 양식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매일 말씀을 읽으십시오. 읽은 말씀을 묵상하는 중에 마음의 온도를 조절하십시오. 따뜻하고 부드러운 마음의 상태를 유지하십시오. 그리고 교만, 음란, 거짓, 탐욕(탐심), 시기(질투), 나태(게으름), 불평(불만), 원망, 조급함, 원수 맺음(미움) 등의 악한 생각을 내어쫓고 우리 마음 밭에 사랑, 희락, 화평, 온유, 오래 참음, 충성, 양선, 자비, 절제, 겸손, 감사의 씨앗을 심으십시오. 당신이 품은 마음에 따라 당신 주위의 사람과 환경도 변화될 것입니다. 당신 마음에 푸른 잎이 있으면 평화의 비둘기가 와서 깃들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온유한 자에게 진정한 승리와 축복을 안겨주십니다. 그러면 진정 온유함이란 어떤 것입니까? 겸손한 마음입니다. 온유함에는 겸손함이 배어 있습니다. 온유를 사과라고 한다면 겸손은 그 사과의 달콤한 맛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겸손이란 무엇입니까? 겸손이란 자기를 낮추는 마음이요,자기 비움이요,자기부인입니다. 그래서 겸손한 사람은 언제나 자기보다 다른 사람을 높이고 배려합니다.
예수님은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마 11:29)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온유한 마음은 하나님이 쓰실 만한 훈련된 신앙인격입니다. 온유한 자는 행복한 자입니다. 그는 하늘에서 뿐만 아니라 분명 땅에서도 승리합니다.
"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게 되겠고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으리라"(잠29:23)
황우석 교수 문제도 결국은 교만으로 인해 발생한 것입니다.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4:2-3)
 
 
5. 청결한 마음
예수님께서는 성전을 깨끗이 하기 위해 상인들을 내쫓으셨습니다.(요2:14-21) 우리의 몸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 피로서 사신 하나님의 성전이므로 우리의 몸이 성전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깨끗해야 합니다. 우리가 귀한 손님을 맞이할 때도 먼저 집안 청소를 하지 않습니까? 하물며 거룩하신 분을 내 안에 거하게 하려면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온갖 더러운 것을 청소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야만 예수님을 모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거하지 않는 곳은 하나님의 성전이 아닙니다. 어떤 집에서 술을 팔면, 술집이 되고, 빵을 팔면 빵집이 되고, 예배를 드리면 예배당이 되는 것처럼, 내 마음에 음란한 마음이 가득하면 호색가가 되고, 남의 것을 탐내면 도적이 되고, 예수님을 모시면 성전이 됩니다. 다시 말하면 십자가가 달린 교회만이 성전이 아니고 내 가정도 성전이고(초대교회는 가정집이 전부 교회였음), 내 몸도 성전입니다. 즉 진정으로 예수님을 모신 곳이 성전입니다. 어떤 곳에 예수님이 계십니까? 사랑과 겸손과 온유와 화평이 충만한 곳이라면 어디든지 계십니다.(요4:23) 죄를 회개하고 마음의 문을 열어야 주님이 내 마음에 오십니다. 우리의 몸과 가정과 교회가 성전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들 마음속에 있는 음란과 우상 숭배와 분쟁과 시기와 도적질과 거짓과 탐심을 물리치고(골3:5-8, 막7:21-23)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랑과 온유와 겸손과 청결한 마음이 임하게 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생각으로 우리 마음을 가득 채울 때 놀라운 힘이 생깁니다.(시24:3-4) 우리 마음을 TV로 중계할지라도 부끄럽지 않을 청결한 마음을 갖으시기를 바랍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전3:16-17)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4:23-24)
 
 
6. 의에 주리고 목마른 마음
어떤 사람이 사막을 여행하다가 마실 물이 동이 났습니다. 물은 찾을 길이 없고 목은 점점 말라왔습니다. 죽을 것만 같았습니다. 마침내 그는 자기가 타고 있는 낙타를 죽여 그 속에 있는 물을 마시기로 했습니다. 그것이 자살 행위와 같다는 것을 알았지만 타는 듯한 목마름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었습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배고픔과 갈증은 이렇게 강렬합니다.
주님께서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이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재물과 지식과 명예와 이성은 추구할지언정 가장 중요한 의를 위해서는 작은 희생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우리가 먼저 구해야 할 것은 '의'입니다. 우리는 '의'에 굶주리고 목마른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는 십자가의 공로로 우리를 의롭다고 인정해 주시고, 죄와 싸워 이겨 의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성령의 능력을 주실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적인 배부름입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마5:6)
 
 
7. 긍휼과 자비의 마음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아버지가 아들에게 말하기를 이웃집에 가서 낫을 빌려오라고 했습니다. 아들이 이웃집에 갔다가 빈손으로 돌아와서 말합니다. "낫을 빌려줄 수 없다고 합니다." 거절당하고 왔다는 것이었습니다. 며칠 후에 바로 그 집에서 이 집에 낫을 빌리러 왔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낫을 빌려주어라." 아들은 항의를 했습니다. "며칠 전 우리가 빌려달라 했을 때는 저 집에서 빌려주지 않았는데요." 이 때에 아버지가 아들에게 지혜를 베풀었습니다. "저 집에서 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도 빌려줄 수 없다, 하면 이것은 복수다. 저 집에서 빌려주지 않았지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빌려준다, 라고 말하면서 그런 마음으로 빌려주면 이것은 증오다. 거절당했다고 하는 것을 다 잊어버리고 그와는 상관없이 깨끗한 마음으로 그저 낫이 필요하다니까 빌려준다 하는 마음으로 빌려주면 이것이 긍휼이다."
우리는 어떤 마음자세로 살아야 할까요? 범사에 복수하는 마음으로 살 것입니까? 아니면 남에게 용서하고 긍휼을 베풀며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할까요?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히 10:24)
 
그리스도인은 긍휼을 베푸는 사람입니다. 우리에게는 다른 사람들의 가련함을 보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고 도와줄 의무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병든 자를 고쳐주시고 굶주린 자들을 먹여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에서 어려움에 처해있는 사람들을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살면서 우리는 불쌍한 사람들을 위하여 얼만큼의 희생과 봉사를 하였습니까? 만일 지금까지 그렇지 않았다면 깊이 반성하고 이제부터는 긍휼을 실천하도록 계획을 세워야 할 것입니다.
 
 
8. 화평케 하는 마음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예수님은 화평을 사랑하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화평을 누리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화평케 하는 사람, 곧 화평을 만들어가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peace maker가 복이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며 이 직책을 잘 감당하는 자가 복이 있는 자입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입니다.
 
 
9. 충성된 마음
최선을 다해 그 일을 했지만 기대만큼의 결과를 얻지 못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럴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낙심합니다. 스코틀랜드에 있는 어떤 목사는 열심히 주님의 일을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 년 동안 새로 나온 교인이라고는 로버트 모펫트라는 단 한 명의 소년뿐이었습니다. 교인들은 목사님에게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고 수근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로버트라는 소년이 목사님을 찾아왔습니다. "목사님, 제가 열심히 공부해서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가 되겠어요." 이 말에 목사님은 다시 힘을 얻었습니다. 그 후 로버트는 아프리카 선교사가 되어 수많은 영혼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했습니다.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입니다. 충성을 다하십시요. 그리고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10. 인내하는 마음
서양우화에 보면 두 마리의 개구리가 뛰어다니다가 그만 우유통에 빠졌습니다. 여기서 두 마리의 개구리는 각기 다른 반응을 보였습니다. 한 마리는 미끄러운 벽과 우유 속에서 모든 것이 끝장났다고 판단하고 체념, 얼마 안 있어 죽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나머지 한 마리는 그냥 죽을 수 없다고 결심한 후 밤새도록 멈추지 않고 우유를 휘저었습니다. 그 결과 액체였던 우유가 차차 고체인 버터로 변했고, 개구리는 버터를 밟고 힘껏 뛰어 우유통 밖으로 나갔습니다.
과실이 잘 익으려면 눈보라 치는 엄동설한의 추위도 세찬 비바람도 견뎌내는 인내의 시간을 거치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의 신앙 열매에는 인내가 요구됩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에도 사랑과 희락, 화평 다음에 ‘오래 참음 ’(갈 5:22)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욥의 인내를 들었습니다. 욥처럼 어떤 곤경에서도 참고 기다립니시다.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롬8:24-25)
 
 
11. 정직하고 진실한 마음
어느 독실한 기독교인이 설렁탕집을 인수받아 경영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설렁탕 집을 열면서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이 집을 찾는 손님들을 예수님 대접하는 것처럼 모시겠습니다” 그런데 주방장이 이전에 하던 대로 커피에 넣는 크림으로 하루 종일 팔 만큼의 설렁탕 국물을 미리 만들어 놓았습니다. 뼈다귀를 오래 우린 진국같이 보이도록 만든 것입니다. 그는 그 날 음식점 문을 닫고 문에 글을 써 붙였습니다. “오늘 하루 쉽니다” 그리고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우리 집에 오시는 손님을 예수님처럼 모시기로 하였는데 어떻게 예수님을 크림 국물을 설렁탕 국물로 속여서 대접하겠습니까? 도저히 그럴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설렁탕 국물을 모두 쏟아버렸습니다. 그 후 그는 양심적이고 신앙적으로 음식점을 경영하였습니다. 이 소문이 주위에 퍼졌습니다. 이 음식점은 지금 대단히 번성하고 있습니다.
"또 청결하고 정직하면 정녕 너를 돌아보시고 네 의로운 집으로 형통하게 하실 것이라"(욥8:6)
"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마음을 감찰하시고 정직을 기뻐하시는줄 내가 아나이다 내가 정직한 마음으로..."(대상29:17)
"마음 속의 진실을 기뻐하시는 주님, 제 마음 깊은 곳에 주님의 지혜를 가르쳐 주셨습니다"(시51:6)
 
12. 성령충만한 마음
우리 마음과 생각과 언행에 성령의 열매가 나타나야 합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5:22- 23)
 
 
성도여러분 모두가 마음을 잘 관리하여 아름답게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도: 거룩하신 주님, 오늘 하루 주님 앞에서 저희의 마음과 생각이 새롭게 변화되길 원합니다. 사랑이 없는 마음에 사랑이 풍성하기를, 소망이 없는 마음에 소망이 깃들기를, 믿음이 없는 마음에 믿음이 세워지기를 원합니다.또한 하나님 중심으로 생각하는 우리가 되길 원합니다.우리의 생각이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로 바뀌길 원합니다.우리 마음에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충만하게 부어주옵소서. 마음 중심에 주님의 말씀이 좌정하옵소서. 주님께서 지금까지 동행하신 은혜에 대한 감격이 우리 마음에 늘 넘치게 하옵소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는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오늘 하루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과 생각으로 변화되길 원합니다. 오늘도 저희 마음을 깨끗하게 지켜주셔서 악한 생각이 틈타지 못하게 하시고 늘 주님의 은혜와 성령으로 충만케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한태완 
 
* 갈릴리 공동체 http://cafe.daum.net/Galileecommunity
(http://blog.naver.com/jesuskorea, http://blog.naver.com/allc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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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언어, 입 (2013-12-07 오전 9:40:26) http://blog.somang.net/holylove/8029
선교자료모음(입, 혀)
 

▣ 입을 크게 벌리라

 
전쟁 중에 왕의 목숨을 구해준 병사가 있었습니다. 왕을 구하는 것은 병사의 당연한 의무였지만 왕은 그 은혜를 잊지 않고 전쟁이 끝난 뒤에 그 병사를 불러 포상을 했습니다.
˝이것은 내가 가장 아끼는 보석이다. 나의 목숨을 구해준 대가로 이것들을 줄 테니 너의 좋은 대로 사용하여라.˝
병사는 온갖 진귀한 보석이 가득한 그 상자를 보고는 놀라 말했습니다.
˝저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게다가 이 보석들은 저에겐 너무나 큰 보상입니다. 너무 황송하옵니다.˝
왕은 병사의 대답을 듣고는 큰 소리로 한바탕 웃었습니다.
˝물론 자네에겐 매우 크게 느껴질지 모르네. 하지만 나에게 이정도의 선물은 별거 아니니 아무런 걱정 없이 받아도 된다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미 모든 것을 허락하셨습니다. 심지어 그 아들조차 아끼지 아니하시고 내어주셨습니다. 주님의 능력을 의심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바라는 대로 넘치게 주님께서 채우실 것입니다. 그 사랑을 기억하십시오.
* 기도: 주님! 저의 그릇으로 당신을 판단하지 않게 하소서!
* 묵상: 목표와 이상을 하나님의 통에 맞추어 크게 잡으십시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 입을 위한 기도

 
개인적으로 나는 입을 위해 오랫동안 3가지를 기도해 왔다.
“복된 입이 되게 해 주세요.” 이것은 축복권과 관련 있기 때문이다. “내 입에 파수꾼을 세워 주세요.” 이것은 입단속을 위한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살리는 말씀을 전하게 해 주세요.” 이것은 영적인 말씀을 전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 입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입에서 나오는 말로써 축복과 저주가 임하기 때문이다.
신참 목사시절이었다. 사관학교를 막 나와 임관한 새내기 소위처럼 잔뜩 목에 힘주고 원칙대로 했다. 의협심으로 남을 비판하기도 했다. 비판하는 순간은 내가 의로운 것 같았고 올바른 것 같았다. 그런 내가 스스로 보기에도 대견해 보였고 하나님 앞에서 바르다는 생각을 했다. 지나고 나니 착각이었고, 교만이었다. 목회를 하며 조금씩 철들고 보니, 이런 교만함이 남을 비판하게 되는 것임을 깨달았다.
말에 실수가 없는 자는 온전한 자라고 했다(약 3:2). 오죽하면 다윗처럼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도 내 입에 파수꾼을 세워 달라고 했을까? 우리는 입을 잘 다스려야 한다. 예수님은 죄 없는 분으로서 심문 받으셨다. 그래도 마지막까지 자신을 위한 변명도 변호도 않으셨다. 선한 말이라도 끝까지 밝히지 않으셨다. 세월이 지나면 하나님께서 다 밝혀 주시기 때문이다. 요셉을 보라! 다윗을 보라! 얼마나 억울하고 기막힌 일을 많이 당했나? 그래도 잠잠했고 입으로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오늘날 가장 잘 나가는 직업 중의 하나는 변호사다. 우리는 스스로 변론할 필요는 없다. 하나님께 문제를 내어놓고 묵상하고 기도함으로 자기 입을 관리해야 한다.
/김봉준 목사(구로순복음교회)

 
▣ 진실한 입술과 거짓된 혀

 
“진실한 입술은 영원히 보존되거니와 거짓 혀는 잠시 동안만 있을 뿐이니라” (잠12:22)

 
인간이 다른 피조물과 차별화되는 특성의 하나는 언어생활입니다.
언어로 인간은 자신을 표현하고 자신의 꿈을 실현합니다.
언어의 질은 한 사람의 크기와 깊이를 결정합니다. 인간은 언어를 빌려 자신의 인생의 갈망을 전달하고 인생의 비전을 추구해 갑니다.
그래서 언어는 우리의 정신이 살고 있는 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언어생활은 무엇보다 진실해야 합니다. 진실한 언어는 진실한 인격을 드러냅니다. 잠언 기자는 진실한 입술은 영원히 보존된다고 말합니다. 진실하신 하나님이 그 진실을 보장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참되고 진실하셔서 진실을 말하는 사람을 지키시고
진실의 가치가 실현되도록 진실하신 성령으로 도우십니다.
거짓된 혀는 잠시 동안 사람을 미혹하고 일시적으로 사람을 지배할 수 있습니다. 이런 모든 거짓의 배후에는 거짓의 영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사단은 거짓의 아비라고 했습니다. 사단은 결국 패배하고 멸망 받을 존재입니다. 따라서 사단의 역사는 결코 오래 갈 수 없습니다.
사단은 결국 빛이신 주님 앞에서 그 정체를 드러낼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거짓된 혀의 일시적 승리를 부러워 말아야 합니다. 거짓된 혀로 일시적 이익을 쟁취하는 사람들을 선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직 심판의 시간이 도래하지 않은 것을 기억하며 최후의 승리자가 됨을 열망해야 합니다. 진실을 위해 자기 희생을 드린 사람들이 마지막 웃는 자가 될 것이며, 진실하신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거할 것입니다.
* 기도: 진실하신 주님, 진실하신 주님과 더불어 마지막 웃는 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아-멘
/이동원 목사

 
▣ 혀의 중요성

 
이솝우화에 나오는 이야기 중 하나입니다. 주인이 어느 날 이솝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 저녁 귀한 손님을 초대했으니 세상에서 제일 좋은 요리를 만들도록 하여라.”
저녁이 되어 손님들이 모였는데 이솝이 내어오는 음식을 보니 전부 짐승의 혓바닥으로 만든 요리뿐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맛이 훌륭하다고 칭찬하던 손님들도 계속 혓바닥 요리만 나오자 불평을 하며 돌아갔습니다.
“어찌하여 혓바닥 요리만 만들었느냐?”
“주인님, 세상에서 혀보다 좋은 것이 있습니까? 혀가 있으므로 말도 하고, 노래도 하며, 지식도 전달할 수가 있지 않습니까?”
이에 주인은 다음날 다시 손님을 초대하였고 이솝에게 이번에는 장난삼아 세상에서 제일 나쁜 요리를 만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이솝은 전날과 똑같이 혓바닥 요리만을 만들었습니다. 몹시 화가 난 주인이 이솝을 책망하자 이솝은 “혀는 모든 다툼과 거짓말, 중상모략의 그릇입니다. 세상에 혓바닥보다 나쁜 것이 또 있습니까?”라고 말했습니다. 사람의 혀는 어떻게 쓰는가에 따라서 약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합니다. 혀를 지혜롭게 잘 활용하십시오.
* 기도: 주님! 지혜로운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 묵상: 자신의 입을 좋은 곳에 잘 활용하고 있는지 돌아보십시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 죽음을 부르는 혀

 
로마 제국 시대 최고의 재담가는 ‘마르쿠스 키케로’였습니다. 그는 뛰어난 웅변술 덕분에 로마 최초로 국부 칭호를 듣고 집정관의 벼슬에까지 오르게 되었습니다. 명성이 높아지자 그는 더욱 웅변술에 전력해 고대 그리스에서 가장 뛰어난 웅변가였던 ‘데모스테네스’와 쌍벽을 이룰 만큼 높은 경지에 들어섰습니다. 그러나 키케로는 웅변술에 부합할 만큼의 인품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기의 말재주만 믿고 남의 험담을 서슴지 않았고 자화자찬하는 버릇이 날로 심해져 갔습니다. 결국 그는 말년에 로마의 초대 황제였던 옥타비아누스의 미움을 받아 목이 잘려 죽게 되었습니다.
사람에 따라 자신의 장점이 최대의 약점이 될 수도 있고, 반대로 자신의 약점이 최대의 장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사람의 실수는 거의 말에서 나옵니다. 성경은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라’고 교훈하였습니다. 혀를 다스리는 사람이 되십시오.
* 기도: 주님, 말을 하기보다 듣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 묵상: 다른 사람으로 자기를 칭찬하게 합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 혀 길들이기

 
어느 날 한 아버지가 중학생인 딸아이로부터 “아빠! 이제부터는 엄마를 부를 때 ‘야’ 라고 소리치지 마세요. 특히 저희들 앞에서는 더욱 그러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라는 따끔한 충고를 듣게 되자 너무나 낯이 뜨거웠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부부는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온갖 저속한 표현을 사용해서 언어폭력을 일삼는가 하면 부부사이에 “야”, “너” 같은 칭호와 반말을 사용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배우자에 대한 존경심은 커녕 무시하는 감정만 불러 일으키겠지요. 이 같은 언어폭력은 정신과 영혼을 황폐하게 한다는 면에서 신체적 폭력보다 그 피해가 더 심각합니다.
사실 우리가 매를 맞으면 몸에 멍이 들고 아프지만 모욕을 당하면서 받은 마음의 상처는 더 큰 고통을 감내하게 만들지요. 그래서 성경은 “길들여지지 않은 혀를 쉬지 않는 악이요. 마음을 죽이는 독” 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길들여지지 않은 혀는 마치 지옥불과 같아서 사람의 온몸을 더럽히지요. 따라서 우리가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말하는 방법을 우리 혀에 길들이기만 한다면 혀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찬송의 도구가 될 것입니다.
/강안삼

 
▣ 혀의 파괴력

 
예전에 ‘애틀랜타 저널’이라는 잡지에 모간 블레이크라는 사람이 매우 인상 깊은 기사를 쓴 적이 있었습니다. 그 내용은 우리의 혀가 초래할 수 있는 중상 모략의 파괴력에 관하여 시사한 글이었습니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가할 수 있는 힘과 기술을 가지고 있다.
나는 사람을 죽이지 않고도 승리할 수 있다.
나는 가정과 교회와 국가를 파괴한다.
나는 수많은 사람의 인생을 파괴한다.
나는 바람의 날개를 타고 여행한다.
아무리 순결한 사람이라도 내게는 무력하며 아무리 정결한 사람도 내게는 무력하다.
나는 진리와 정의와 사랑을 경멸한다.
나는 나의 희생자를 전 역사와 전세계에 갖고 있다.
나는 바다의 모래보다 더 많은 나의 노예를 거느린다.
나는 결코 망각하지 않으며, 결코 용서하지 않는다.
나의 이름은 중상 모략이다.”
다른 사람들의 신상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것은 그 사람의 인격과 생애에 다시는 회복할 수 없는 큰 상처를 남깁니다. 혀의 영향력은 이처럼 무섭습니다.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불에서 나느니라- 야고보서 3:6
/이동원 목사

 
▣ 혀의 위력

 
"혀는 뼈가 없지만 뼈를 부숴뜨릴 수 있다"(J. 위클리프)는 말처럼 혀의 영향력과 파괴력은 엄청나다. 말 한마디에 한 사람의 인생이 세워지기도 하고 무너지기도 한다. 여러 해 동안 목회를 해온 나는 가정의 불화나 심각하게 악화된 사람들 간의 문제에 대해 자주 상담 했었는데, 그 배경은 언제나 부정적인 대화가 주된 원인이었다. 흰개 미는 아주 무서운 곤충이다. 그들은 작고 잘 보이지 않지만 날카로 운 입을 통해 집안의 많은 목재 가구들을 갉아 부순다. 야고보는 혀 가 비록 작은 것이지만 중요한 것이라고 말한다. 이 점에 있어서는 아이들의 말이 가장 적절한 듯 싶다. 아이들은 수다쟁이를 "빅 마우 스"(Mr. Big mouth)라고 부른다. 그것은 그의 입이 크기 때문이 아니 라, 그의 작은 입이 만들어 내는 많은 문제성을 빗대어 표현한 것이 다. 불이란 작은 영향력의 하나이지만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을 입힌 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불같이 격렬한 말은 종종 사람들 과의 관계를 파괴시킨다. 비록 나중에 그 관계가 회복되더라도 예전 과 같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음과 같이 쓰여진 표지 를 몸과 마음에 지녀야 할 것이다. 주의 : "인생이란 타 버리기 쉬운 물자이다 - 당신의 혀에 있는 불을 끄십시오.
혀를 다스리는 지혜 / 조셉 스토웰

 
▣ 그리스도인이여, 당신의 혀를 삼가라

 
부주의한 말로 얼마나 많은 축복을 낭비하는가? 당신이 그리스도와 함께 걸을 때 얼마나 자주 천국 문에 오르는가? 그 다음에 필요 없는 말들로 그 복을 너무나 빨리 상실하는도다. 당신의 혀의 바늘은 너무나도 빠르다. 그리스도인이여, 당신의 혀를 삼가라. 하나님의 성령은 당신의 말로 인해 자주 슬퍼하고 계신다. 하나님이 흘려보내시는 복을 당신은 얼마나 자주 거부하는가? 당신은 기다리며 기도하지 못하도다. 그 이유는 단지 당신이 불필요한 말을 너무 많이 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이여, 당신의 혀를 삼가라. 불평 없이 오래 말하는 것이 어찌 그리 어려운가? 그분께 의지하는 겸손이 없을 때 하나님의 복이 얼마나 쉽게 새어나가는가? 당신이 부주의한 잡담을 지껄일 때, 기도는 하지 않고 말만 할 때, 중요하지 않은 것들 가운데 그리할 때, 그리스도인이여, 당신의 혀를 삼가라. 주여, 부주의한 말 하나하나를 살피게 하소서. 하나라도 부주의한 말을 내뱉지 않게 하소서. 주여! 우리의 입술에 시계를 놓으소서. 주여! 은혜가 담긴 우리의 말이 사계절이 되게 하소서. 절제되지 않는 입술로부터 우리를 보존하시고 이성 없는 말들로부터 우리를 보존하소서. 우리에게 마음의 평강을 주시고 우리에게 명상으로 가르치소서. 가장 온전한 성결로 우리의 혀를 구별하게 도우소서. 구주여, 우리의 혀를 삼가게 하소서.
하나님의 자로 당신의 삶을 재어보라 / 웨슬리 듀웰

 
▣ 혀는 내게 보배이다

 
옛날 말 잘하는 '장의'는 초나라에 갔다가 구슬을 훔친 혐의를 받고 심한 고문을 받아 인사불성이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얼마 후 깨어나 부인에게 첫마디가 "내 혀가 있느냐"고 묻자, 부인이 "혀가 없으면 어떻게 말을 하겠느냐"고 반문하니 장의는 무릎을 치고 용기를 내어 "내 혀만 있다면 문제없다. 내 혀만 있다면 어디를 가든지 내 앞에는 영광이 온다"고 하며 안심하더라는 것이다. 왜 그랬을까? '장의'에게는 말 잘하는 그의 '혀'가 보배이기 때문이었다.
동물이나 사람이나 한 가지씩의 보배는 다 가지고 있다. '사향노루'는 배꼽이 보배요, '곰'은 쓸개가 보배요, '사슴'은 뿔이 보배요, '범'은 가죽이 보배인 것처럼, '사람'은 그 누구나를 망라하고 한 두 가지의 보배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기의 보배를 알지 못하고 사는 이가 많이 있다. 뿐만 아니라 사람이 살고 있는 이 땅위에는 수많은 보배가 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금보다 귀한 것은 믿음의 보배라고 했다. 베드로전서 1장 7절에는 "금보다 귀한 믿음"이라 했고, 베드로후서 1장 1절에는 "보배로운 믿음"이라 했다. 그렇다면 믿음을 왜 금보다 귀한 보배라고 했을까?
첫째로, 믿음은 생명의 근원이 되니까 금보다 귀한 보배가 된다는 것이다.
여호와를 아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 되며 여호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믿을 때 그 믿음을 보전하기 위하여 희생도 재물도 심지어는 순교까지도 기쁨으로 감수한다. 믿음에는 생명이 있고 영생이 있고 영원한 기쁨이 있기 때문이다.
둘째로, 믿음은 평화의 근원이기 때문에 금보다 귀한 보배가 된다. 인간의 진정한 평화는 믿음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러면서도 그 믿음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않다고 하였다. 로마서 8장 18절에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고 한 것은 믿음이 위에서 주시는 영원한 평화이기 때문이다.
셋째로, 인생의 사후에도 살게 하는 것이 믿음이기에 금보다 귀한 보배가 된다는 것이다.
요한복음 11장 25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라고 했으니 믿음이 얼마나 큰 보배인가?
(성구) 베드로전서 1장 7절 "1회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 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 고용봉 목사 <고용봉칼럼> 중에서

 
▣ 죽고 사는 것이 혀끝에

 
로마 제일의 재사 마커스 시세로는 당대를 대표하는 철학자요 웅변가로서, 로마 최초로 국부의 칭호를 들었고 집정관의 벼슬에까지 올랐던 사람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말재주가 있었던 그는 높은 학문을 더해서 로마제일의 웅변가요 변호사라는 평판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시세로는 그의 웅변술에 부합할 만큼의 인품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그의 웅변은 탁월했지만 혀끝에서 놀아나는 말재주에 불과했으며 그는 교만해서 자기의 말재주로 남을 험담하고 자화자찬하는데 사용하다가 만년에 옥타비아누스의 미움을 받아 목이 잘리어 죽었습니다. 그는 혀 때문에 성공해서 혀 때문에 망했습니다.
네티즌들의 익명성 언어폭력과 파괴가 우리 사회를 황폐화시키고 있습니다. 말은 영이요 문화의 씨앗입니다.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잠18:21).당신의 언어가 당신의 삶을 만듭니다. 건강한 언어는 건강한 삶을 만들고,부정적 언어는 부정적 인생을 만듭니다.
/이철재(서울성서교회 목사)

 
▣ 입속의 도끼

 
입속의 도끼를 버려라. 사람은 세상에 태어날 때 입 안에 무서운 도끼를 물고 있다. 그리고 입 안의 그 무서운 도끼로 스스로의 몸을 찍어댈 뿐만 아니라 세상을 더럽힌다. 그것은 오로지 입 안에서 뿜어져나오는 나쁜 말 때문이다.
- 김의정의《마음에서 부는 바람》중에서 -

 
* '도끼는 늘 시퍼렇게 날이 서 있어야 제격입니다. 그러나 그 시퍼런 도끼를 정말 잘 써야 합니다. 잘 쓰면 예술이지만 잘못 쓰면 흉기가 됩니다. 입속의 혀는 도끼보다 더 무섭습니다. 잘 쓰면 복(福)이 되고 잘못 쓰면 화(禍)와 독(毒)이 됩니다.
/고도원의 아침편지

 
▣ 입술의 범죄

 
고대의 로마시대에 기독교를 몹시 미워하고 박해하던 황제가 있었습니다. 그는 어느 날 기독교도인을 불러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들먹이며,
죽음을 앞에 둔 기독교도를 조롱했습니다.
“도대체 너가 믿는 주라고 하는 목수 나사렛 예수는 어디서 무엇을 하느냐!”
그의 조롱에 앞에 서 있던 기독교도는 주님의 능력으로 충만하여 그 황제의 영혼을 주께 드리면서 황제에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폐하! 나사렛 예수는 그의 하늘나라의 목공실에서 폐하를 위하여 관을 만들고 계십니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하나님을 망령되게 말하던 황제는 그 자리에서 그 인생의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마태복음 12: 36, 37)

 
▣ 거짓말하는 죄

 
어느 교회의 주일학교 어린이가 엄마에게 질문을 합니다. “엄마, 도적질하는 것과 거짓말하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나쁜 거예요?”

엄마는 이 아이에게 “그야 물론 도적질하는 것이 더 나쁘지”라고 대답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이 아이의 생각은 엄마의 생각과 전혀 달랐습니다.
“엄마! 아니에요. 엄마는 틀렸어요. 거짓말이 훨씬 더 나빠요. 왜냐하면 도둑질은 돌려 줄 수가 있지만 거짓말은 돌려 줄 수 없잖아요.”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지니라’(출애굽기 20: 16)

 
▣ 입술에 머물고 있는 찬송

 
설교의 대상은 인간입니다. 설교는 사람을 움직입니다.
기도의 대상은 하나님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움직입니다.
그리고 찬송은 하나님과 사람을 움직입니다. 성가대가 그래서 중요합니다.
오늘 주님께서 부르시면 설교도, 기도도 끝납니다.
그러나 찬송은 하늘나라에서도 영원히 계속됩니다.
천사들이 찬양할 것입니다.
다윗이 수금을 탈 때 사울 왕을 괴롭히던 귀신이 쫓겨 나갔습니다.
다윗은 법궤를 메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할 때 너무 기뻐서 춤을 추며 노래를 불렀습니다. 잔인한 죽음도 노래를 빼앗지는 못합니다. 신앙의 절정은 찬송을 통해서 나타납니다. 당신의 입술에 찬송이 머물러 있다면 당신의 영혼은 살아 숨쉬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당신의 입술에 찬양이 멈추었다면 당신의 삶을 되돌아보십시오. 당신의 삶은 메마른 가지일 것입니다.
당신의 입술에 주님을 찬양하는 음율이 끝없이 이어지길 기원합니다.
* 기도: 주님, 삶의 근원이요, 기쁨이 되는 찬양이 끝없이 이어지게 하소서.
* 묵상: 기도와 찬양으로 귀신을 결박한 경험이 있습니까?
<김장환 큐티365>

 
▣ 입, 혀, 말에 관한 성경말씀

 
0 저희가 칼 같이 자기 혀를 연마하며 화살같이 독한 말로 겨누고(시64:3)
0 여호와여 내 입 앞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시 141:3)
0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키 어려우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 의인의 혀는 천은과 같거니와 악인의 마음은 가치가 적으니라 의인의 입술은 여러 사람을 교육하나 미련한 자는 지식이 없으므로 죽느니라 (잠10:19-21)
0 의인의 입은 지혜를 내어도 패역한 혀는 베임을 당할 것이니라(잠10:31)
0 사람은 입의 열매로 인하여 복록에 족하며 그 손의 행하는 대로 자기가 받느니라(잠12:14)
0 사람은 입의 열매로 인하여 복록을 누리거니와 마음이 궤사한 자는 강포를 당하느니라(잠13:2)
0 입을 지키는 자는 그 생명을 보전하나 크게 벌리는 자에게는 멸망이 오느니라(잠13:3)
0 지혜로운 자의 입술은 지식을 전파하여도 미련한 자의 마음은 정함이 없느니라(잠15:7)
0 허물을 덮어 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 한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잠17:9)
0 말을 아끼는 자는 지식이 있고 성품이 안존한 자는 명철하니라(잠17:27)
0 미련한 자라도 잠잠하면 지혜로운 자로 여기우고 그 입술을 닫히면 슬기로운 자로 여기우니라(잠17:28)
0 명철한 사람의 입의 말은 깊은 물과 같고 지혜의 샘은 솟쳐 흐르는 내와 같으니라(잠18:4)
0 미련한 자의 입술은 다툼을 일으키고 그 입은 매를 자청하느니라 미련한 자의 입은 그의 멸망이 되고 그 입술은 그의 영혼의 그물이 되느니라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자의 말은 별식과 같아서 뱃속 깊은 데로 내려가 느니라(잠18:6-8)
0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잠18:21)
0 거짓 증인은 벌을 면치 못할 것이요 거짓말을 내는 자는 망할 것이니라 (잠19:9)
0 두루 다니며 한담하는 자는 남의 비밀을 누설하나니 입술을 벌린 자를 사 귀지 말지니라(잠20:19)0 너는 이웃과 다투거든 변론만 하고 남의 은밀한 일을 누설하지 말라(잠 25:9)
0 오래 참으면 관원이 그 말을 용납하나니 부드러운 혀는 꺾느니라(잠 25:15)
0 입을 열어 지혜를 베풀며 그 혀로 인애의 법을 말하며(잠31:26)
0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음이니라 그런즉 마땅히 말을 적게 할 것이라(전5:2)
 0 지혜자의 입의 말은 은혜로우나 우매자의 입술은 자기를 삼키나니 그 입 의 말의 시작은 우매요 꿀은 광패니라 우매자는 말을 많이 하거니와 사람이 장래 일을 알지 못하나니 신후사를 알게 할 자가 누구이냐(전 10:12-14)
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마12:36)
0 입에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 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마15:11)
0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10:9-10)
0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엡4:29)
0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하고 말하기 는 더디하며 성내기도 더디하라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 지 못함이니라(약1:19-20)
0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 받을 줄을 알고 많이 선생 되지 말라.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 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우리가 말을 순종케 하려고 그 입에 재갈먹여 온 몸을 어거하며....... 단물과 쓴물을 내겠느뇨(약 3:1-11)
0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 한 것이라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가 나는 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치 아니하니라(약3:8-10)
0 그러므로 이 여러 말로 서로 위로하라(살전4:18)0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고(벧전3:10)
0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고루게 함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골4:6)
0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요일3:18)

 
* 갈릴리 공동체 http://cafe.daum.net/Galileecommunity
(http://blog.naver.com/allc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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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언어, 입 (2013-12-07 오전 9:40:26) http://blog.somang.net/holylove/8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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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을 크게 벌리라

 
전쟁 중에 왕의 목숨을 구해준 병사가 있었습니다. 왕을 구하는 것은 병사의 당연한 의무였지만 왕은 그 은혜를 잊지 않고 전쟁이 끝난 뒤에 그 병사를 불러 포상을 했습니다.
˝이것은 내가 가장 아끼는 보석이다. 나의 목숨을 구해준 대가로 이것들을 줄 테니 너의 좋은 대로 사용하여라.˝
병사는 온갖 진귀한 보석이 가득한 그 상자를 보고는 놀라 말했습니다.
˝저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게다가 이 보석들은 저에겐 너무나 큰 보상입니다. 너무 황송하옵니다.˝
왕은 병사의 대답을 듣고는 큰 소리로 한바탕 웃었습니다.
˝물론 자네에겐 매우 크게 느껴질지 모르네. 하지만 나에게 이정도의 선물은 별거 아니니 아무런 걱정 없이 받아도 된다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미 모든 것을 허락하셨습니다. 심지어 그 아들조차 아끼지 아니하시고 내어주셨습니다. 주님의 능력을 의심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바라는 대로 넘치게 주님께서 채우실 것입니다. 그 사랑을 기억하십시오.
* 기도: 주님! 저의 그릇으로 당신을 판단하지 않게 하소서!
* 묵상: 목표와 이상을 하나님의 통에 맞추어 크게 잡으십시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 입을 위한 기도

 
개인적으로 나는 입을 위해 오랫동안 3가지를 기도해 왔다.
“복된 입이 되게 해 주세요.” 이것은 축복권과 관련 있기 때문이다. “내 입에 파수꾼을 세워 주세요.” 이것은 입단속을 위한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살리는 말씀을 전하게 해 주세요.” 이것은 영적인 말씀을 전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 입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입에서 나오는 말로써 축복과 저주가 임하기 때문이다.
신참 목사시절이었다. 사관학교를 막 나와 임관한 새내기 소위처럼 잔뜩 목에 힘주고 원칙대로 했다. 의협심으로 남을 비판하기도 했다. 비판하는 순간은 내가 의로운 것 같았고 올바른 것 같았다. 그런 내가 스스로 보기에도 대견해 보였고 하나님 앞에서 바르다는 생각을 했다. 지나고 나니 착각이었고, 교만이었다. 목회를 하며 조금씩 철들고 보니, 이런 교만함이 남을 비판하게 되는 것임을 깨달았다.
말에 실수가 없는 자는 온전한 자라고 했다(약 3:2). 오죽하면 다윗처럼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도 내 입에 파수꾼을 세워 달라고 했을까? 우리는 입을 잘 다스려야 한다. 예수님은 죄 없는 분으로서 심문 받으셨다. 그래도 마지막까지 자신을 위한 변명도 변호도 않으셨다. 선한 말이라도 끝까지 밝히지 않으셨다. 세월이 지나면 하나님께서 다 밝혀 주시기 때문이다. 요셉을 보라! 다윗을 보라! 얼마나 억울하고 기막힌 일을 많이 당했나? 그래도 잠잠했고 입으로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오늘날 가장 잘 나가는 직업 중의 하나는 변호사다. 우리는 스스로 변론할 필요는 없다. 하나님께 문제를 내어놓고 묵상하고 기도함으로 자기 입을 관리해야 한다.
/김봉준 목사(구로순복음교회)

 
▣ 진실한 입술과 거짓된 혀

 
“진실한 입술은 영원히 보존되거니와 거짓 혀는 잠시 동안만 있을 뿐이니라” (잠12:22)

 
인간이 다른 피조물과 차별화되는 특성의 하나는 언어생활입니다.
언어로 인간은 자신을 표현하고 자신의 꿈을 실현합니다.
언어의 질은 한 사람의 크기와 깊이를 결정합니다. 인간은 언어를 빌려 자신의 인생의 갈망을 전달하고 인생의 비전을 추구해 갑니다.
그래서 언어는 우리의 정신이 살고 있는 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언어생활은 무엇보다 진실해야 합니다. 진실한 언어는 진실한 인격을 드러냅니다. 잠언 기자는 진실한 입술은 영원히 보존된다고 말합니다. 진실하신 하나님이 그 진실을 보장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참되고 진실하셔서 진실을 말하는 사람을 지키시고
진실의 가치가 실현되도록 진실하신 성령으로 도우십니다.
거짓된 혀는 잠시 동안 사람을 미혹하고 일시적으로 사람을 지배할 수 있습니다. 이런 모든 거짓의 배후에는 거짓의 영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사단은 거짓의 아비라고 했습니다. 사단은 결국 패배하고 멸망 받을 존재입니다. 따라서 사단의 역사는 결코 오래 갈 수 없습니다.
사단은 결국 빛이신 주님 앞에서 그 정체를 드러낼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거짓된 혀의 일시적 승리를 부러워 말아야 합니다. 거짓된 혀로 일시적 이익을 쟁취하는 사람들을 선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직 심판의 시간이 도래하지 않은 것을 기억하며 최후의 승리자가 됨을 열망해야 합니다. 진실을 위해 자기 희생을 드린 사람들이 마지막 웃는 자가 될 것이며, 진실하신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거할 것입니다.
* 기도: 진실하신 주님, 진실하신 주님과 더불어 마지막 웃는 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아-멘
/이동원 목사

 
▣ 혀의 중요성

 
이솝우화에 나오는 이야기 중 하나입니다. 주인이 어느 날 이솝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 저녁 귀한 손님을 초대했으니 세상에서 제일 좋은 요리를 만들도록 하여라.”
저녁이 되어 손님들이 모였는데 이솝이 내어오는 음식을 보니 전부 짐승의 혓바닥으로 만든 요리뿐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맛이 훌륭하다고 칭찬하던 손님들도 계속 혓바닥 요리만 나오자 불평을 하며 돌아갔습니다.
“어찌하여 혓바닥 요리만 만들었느냐?”
“주인님, 세상에서 혀보다 좋은 것이 있습니까? 혀가 있으므로 말도 하고, 노래도 하며, 지식도 전달할 수가 있지 않습니까?”
이에 주인은 다음날 다시 손님을 초대하였고 이솝에게 이번에는 장난삼아 세상에서 제일 나쁜 요리를 만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이솝은 전날과 똑같이 혓바닥 요리만을 만들었습니다. 몹시 화가 난 주인이 이솝을 책망하자 이솝은 “혀는 모든 다툼과 거짓말, 중상모략의 그릇입니다. 세상에 혓바닥보다 나쁜 것이 또 있습니까?”라고 말했습니다. 사람의 혀는 어떻게 쓰는가에 따라서 약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합니다. 혀를 지혜롭게 잘 활용하십시오.
* 기도: 주님! 지혜로운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 묵상: 자신의 입을 좋은 곳에 잘 활용하고 있는지 돌아보십시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 죽음을 부르는 혀

 
로마 제국 시대 최고의 재담가는 ‘마르쿠스 키케로’였습니다. 그는 뛰어난 웅변술 덕분에 로마 최초로 국부 칭호를 듣고 집정관의 벼슬에까지 오르게 되었습니다. 명성이 높아지자 그는 더욱 웅변술에 전력해 고대 그리스에서 가장 뛰어난 웅변가였던 ‘데모스테네스’와 쌍벽을 이룰 만큼 높은 경지에 들어섰습니다. 그러나 키케로는 웅변술에 부합할 만큼의 인품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기의 말재주만 믿고 남의 험담을 서슴지 않았고 자화자찬하는 버릇이 날로 심해져 갔습니다. 결국 그는 말년에 로마의 초대 황제였던 옥타비아누스의 미움을 받아 목이 잘려 죽게 되었습니다.
사람에 따라 자신의 장점이 최대의 약점이 될 수도 있고, 반대로 자신의 약점이 최대의 장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사람의 실수는 거의 말에서 나옵니다. 성경은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라’고 교훈하였습니다. 혀를 다스리는 사람이 되십시오.
* 기도: 주님, 말을 하기보다 듣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 묵상: 다른 사람으로 자기를 칭찬하게 합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 혀 길들이기

 
어느 날 한 아버지가 중학생인 딸아이로부터 “아빠! 이제부터는 엄마를 부를 때 ‘야’ 라고 소리치지 마세요. 특히 저희들 앞에서는 더욱 그러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라는 따끔한 충고를 듣게 되자 너무나 낯이 뜨거웠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부부는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온갖 저속한 표현을 사용해서 언어폭력을 일삼는가 하면 부부사이에 “야”, “너” 같은 칭호와 반말을 사용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배우자에 대한 존경심은 커녕 무시하는 감정만 불러 일으키겠지요. 이 같은 언어폭력은 정신과 영혼을 황폐하게 한다는 면에서 신체적 폭력보다 그 피해가 더 심각합니다.
사실 우리가 매를 맞으면 몸에 멍이 들고 아프지만 모욕을 당하면서 받은 마음의 상처는 더 큰 고통을 감내하게 만들지요. 그래서 성경은 “길들여지지 않은 혀를 쉬지 않는 악이요. 마음을 죽이는 독” 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길들여지지 않은 혀는 마치 지옥불과 같아서 사람의 온몸을 더럽히지요. 따라서 우리가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말하는 방법을 우리 혀에 길들이기만 한다면 혀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찬송의 도구가 될 것입니다.
/강안삼

 
▣ 혀의 파괴력

 
예전에 ‘애틀랜타 저널’이라는 잡지에 모간 블레이크라는 사람이 매우 인상 깊은 기사를 쓴 적이 있었습니다. 그 내용은 우리의 혀가 초래할 수 있는 중상 모략의 파괴력에 관하여 시사한 글이었습니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가할 수 있는 힘과 기술을 가지고 있다.
나는 사람을 죽이지 않고도 승리할 수 있다.
나는 가정과 교회와 국가를 파괴한다.
나는 수많은 사람의 인생을 파괴한다.
나는 바람의 날개를 타고 여행한다.
아무리 순결한 사람이라도 내게는 무력하며 아무리 정결한 사람도 내게는 무력하다.
나는 진리와 정의와 사랑을 경멸한다.
나는 나의 희생자를 전 역사와 전세계에 갖고 있다.
나는 바다의 모래보다 더 많은 나의 노예를 거느린다.
나는 결코 망각하지 않으며, 결코 용서하지 않는다.
나의 이름은 중상 모략이다.”
다른 사람들의 신상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것은 그 사람의 인격과 생애에 다시는 회복할 수 없는 큰 상처를 남깁니다. 혀의 영향력은 이처럼 무섭습니다.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불에서 나느니라- 야고보서 3:6
/이동원 목사

 
▣ 혀의 위력

 
"혀는 뼈가 없지만 뼈를 부숴뜨릴 수 있다"(J. 위클리프)는 말처럼 혀의 영향력과 파괴력은 엄청나다. 말 한마디에 한 사람의 인생이 세워지기도 하고 무너지기도 한다. 여러 해 동안 목회를 해온 나는 가정의 불화나 심각하게 악화된 사람들 간의 문제에 대해 자주 상담 했었는데, 그 배경은 언제나 부정적인 대화가 주된 원인이었다. 흰개 미는 아주 무서운 곤충이다. 그들은 작고 잘 보이지 않지만 날카로 운 입을 통해 집안의 많은 목재 가구들을 갉아 부순다. 야고보는 혀 가 비록 작은 것이지만 중요한 것이라고 말한다. 이 점에 있어서는 아이들의 말이 가장 적절한 듯 싶다. 아이들은 수다쟁이를 "빅 마우 스"(Mr. Big mouth)라고 부른다. 그것은 그의 입이 크기 때문이 아니 라, 그의 작은 입이 만들어 내는 많은 문제성을 빗대어 표현한 것이 다. 불이란 작은 영향력의 하나이지만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을 입힌 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불같이 격렬한 말은 종종 사람들 과의 관계를 파괴시킨다. 비록 나중에 그 관계가 회복되더라도 예전 과 같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음과 같이 쓰여진 표지 를 몸과 마음에 지녀야 할 것이다. 주의 : "인생이란 타 버리기 쉬운 물자이다 - 당신의 혀에 있는 불을 끄십시오.
혀를 다스리는 지혜 / 조셉 스토웰

 
▣ 그리스도인이여, 당신의 혀를 삼가라

 
부주의한 말로 얼마나 많은 축복을 낭비하는가? 당신이 그리스도와 함께 걸을 때 얼마나 자주 천국 문에 오르는가? 그 다음에 필요 없는 말들로 그 복을 너무나 빨리 상실하는도다. 당신의 혀의 바늘은 너무나도 빠르다. 그리스도인이여, 당신의 혀를 삼가라. 하나님의 성령은 당신의 말로 인해 자주 슬퍼하고 계신다. 하나님이 흘려보내시는 복을 당신은 얼마나 자주 거부하는가? 당신은 기다리며 기도하지 못하도다. 그 이유는 단지 당신이 불필요한 말을 너무 많이 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이여, 당신의 혀를 삼가라. 불평 없이 오래 말하는 것이 어찌 그리 어려운가? 그분께 의지하는 겸손이 없을 때 하나님의 복이 얼마나 쉽게 새어나가는가? 당신이 부주의한 잡담을 지껄일 때, 기도는 하지 않고 말만 할 때, 중요하지 않은 것들 가운데 그리할 때, 그리스도인이여, 당신의 혀를 삼가라. 주여, 부주의한 말 하나하나를 살피게 하소서. 하나라도 부주의한 말을 내뱉지 않게 하소서. 주여! 우리의 입술에 시계를 놓으소서. 주여! 은혜가 담긴 우리의 말이 사계절이 되게 하소서. 절제되지 않는 입술로부터 우리를 보존하시고 이성 없는 말들로부터 우리를 보존하소서. 우리에게 마음의 평강을 주시고 우리에게 명상으로 가르치소서. 가장 온전한 성결로 우리의 혀를 구별하게 도우소서. 구주여, 우리의 혀를 삼가게 하소서.
하나님의 자로 당신의 삶을 재어보라 / 웨슬리 듀웰

 
▣ 혀는 내게 보배이다

 
옛날 말 잘하는 '장의'는 초나라에 갔다가 구슬을 훔친 혐의를 받고 심한 고문을 받아 인사불성이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얼마 후 깨어나 부인에게 첫마디가 "내 혀가 있느냐"고 묻자, 부인이 "혀가 없으면 어떻게 말을 하겠느냐"고 반문하니 장의는 무릎을 치고 용기를 내어 "내 혀만 있다면 문제없다. 내 혀만 있다면 어디를 가든지 내 앞에는 영광이 온다"고 하며 안심하더라는 것이다. 왜 그랬을까? '장의'에게는 말 잘하는 그의 '혀'가 보배이기 때문이었다.
동물이나 사람이나 한 가지씩의 보배는 다 가지고 있다. '사향노루'는 배꼽이 보배요, '곰'은 쓸개가 보배요, '사슴'은 뿔이 보배요, '범'은 가죽이 보배인 것처럼, '사람'은 그 누구나를 망라하고 한 두 가지의 보배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기의 보배를 알지 못하고 사는 이가 많이 있다. 뿐만 아니라 사람이 살고 있는 이 땅위에는 수많은 보배가 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금보다 귀한 것은 믿음의 보배라고 했다. 베드로전서 1장 7절에는 "금보다 귀한 믿음"이라 했고, 베드로후서 1장 1절에는 "보배로운 믿음"이라 했다. 그렇다면 믿음을 왜 금보다 귀한 보배라고 했을까?
첫째로, 믿음은 생명의 근원이 되니까 금보다 귀한 보배가 된다는 것이다.
여호와를 아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 되며 여호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믿을 때 그 믿음을 보전하기 위하여 희생도 재물도 심지어는 순교까지도 기쁨으로 감수한다. 믿음에는 생명이 있고 영생이 있고 영원한 기쁨이 있기 때문이다.
둘째로, 믿음은 평화의 근원이기 때문에 금보다 귀한 보배가 된다. 인간의 진정한 평화는 믿음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러면서도 그 믿음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않다고 하였다. 로마서 8장 18절에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고 한 것은 믿음이 위에서 주시는 영원한 평화이기 때문이다.
셋째로, 인생의 사후에도 살게 하는 것이 믿음이기에 금보다 귀한 보배가 된다는 것이다.
요한복음 11장 25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라고 했으니 믿음이 얼마나 큰 보배인가?
(성구) 베드로전서 1장 7절 "1회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 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 고용봉 목사 <고용봉칼럼> 중에서

 
▣ 죽고 사는 것이 혀끝에

 
로마 제일의 재사 마커스 시세로는 당대를 대표하는 철학자요 웅변가로서, 로마 최초로 국부의 칭호를 들었고 집정관의 벼슬에까지 올랐던 사람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말재주가 있었던 그는 높은 학문을 더해서 로마제일의 웅변가요 변호사라는 평판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시세로는 그의 웅변술에 부합할 만큼의 인품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그의 웅변은 탁월했지만 혀끝에서 놀아나는 말재주에 불과했으며 그는 교만해서 자기의 말재주로 남을 험담하고 자화자찬하는데 사용하다가 만년에 옥타비아누스의 미움을 받아 목이 잘리어 죽었습니다. 그는 혀 때문에 성공해서 혀 때문에 망했습니다.
네티즌들의 익명성 언어폭력과 파괴가 우리 사회를 황폐화시키고 있습니다. 말은 영이요 문화의 씨앗입니다.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잠18:21).당신의 언어가 당신의 삶을 만듭니다. 건강한 언어는 건강한 삶을 만들고,부정적 언어는 부정적 인생을 만듭니다.
/이철재(서울성서교회 목사)

 
▣ 입속의 도끼

 
입속의 도끼를 버려라. 사람은 세상에 태어날 때 입 안에 무서운 도끼를 물고 있다. 그리고 입 안의 그 무서운 도끼로 스스로의 몸을 찍어댈 뿐만 아니라 세상을 더럽힌다. 그것은 오로지 입 안에서 뿜어져나오는 나쁜 말 때문이다.
- 김의정의《마음에서 부는 바람》중에서 -

 
* '도끼는 늘 시퍼렇게 날이 서 있어야 제격입니다. 그러나 그 시퍼런 도끼를 정말 잘 써야 합니다. 잘 쓰면 예술이지만 잘못 쓰면 흉기가 됩니다. 입속의 혀는 도끼보다 더 무섭습니다. 잘 쓰면 복(福)이 되고 잘못 쓰면 화(禍)와 독(毒)이 됩니다.
/고도원의 아침편지

 
▣ 입술의 범죄

 
고대의 로마시대에 기독교를 몹시 미워하고 박해하던 황제가 있었습니다. 그는 어느 날 기독교도인을 불러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들먹이며,
죽음을 앞에 둔 기독교도를 조롱했습니다.
“도대체 너가 믿는 주라고 하는 목수 나사렛 예수는 어디서 무엇을 하느냐!”
그의 조롱에 앞에 서 있던 기독교도는 주님의 능력으로 충만하여 그 황제의 영혼을 주께 드리면서 황제에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폐하! 나사렛 예수는 그의 하늘나라의 목공실에서 폐하를 위하여 관을 만들고 계십니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하나님을 망령되게 말하던 황제는 그 자리에서 그 인생의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마태복음 12: 36, 37)

 
▣ 거짓말하는 죄

 
어느 교회의 주일학교 어린이가 엄마에게 질문을 합니다. “엄마, 도적질하는 것과 거짓말하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나쁜 거예요?”

엄마는 이 아이에게 “그야 물론 도적질하는 것이 더 나쁘지”라고 대답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이 아이의 생각은 엄마의 생각과 전혀 달랐습니다.
“엄마! 아니에요. 엄마는 틀렸어요. 거짓말이 훨씬 더 나빠요. 왜냐하면 도둑질은 돌려 줄 수가 있지만 거짓말은 돌려 줄 수 없잖아요.”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지니라’(출애굽기 20: 16)

 
▣ 입술에 머물고 있는 찬송

 
설교의 대상은 인간입니다. 설교는 사람을 움직입니다.
기도의 대상은 하나님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움직입니다.
그리고 찬송은 하나님과 사람을 움직입니다. 성가대가 그래서 중요합니다.
오늘 주님께서 부르시면 설교도, 기도도 끝납니다.
그러나 찬송은 하늘나라에서도 영원히 계속됩니다.
천사들이 찬양할 것입니다.
다윗이 수금을 탈 때 사울 왕을 괴롭히던 귀신이 쫓겨 나갔습니다.
다윗은 법궤를 메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할 때 너무 기뻐서 춤을 추며 노래를 불렀습니다. 잔인한 죽음도 노래를 빼앗지는 못합니다. 신앙의 절정은 찬송을 통해서 나타납니다. 당신의 입술에 찬송이 머물러 있다면 당신의 영혼은 살아 숨쉬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당신의 입술에 찬양이 멈추었다면 당신의 삶을 되돌아보십시오. 당신의 삶은 메마른 가지일 것입니다.
당신의 입술에 주님을 찬양하는 음율이 끝없이 이어지길 기원합니다.
* 기도: 주님, 삶의 근원이요, 기쁨이 되는 찬양이 끝없이 이어지게 하소서.
* 묵상: 기도와 찬양으로 귀신을 결박한 경험이 있습니까?
<김장환 큐티365>

 
▣ 입, 혀, 말에 관한 성경말씀

 
0 저희가 칼 같이 자기 혀를 연마하며 화살같이 독한 말로 겨누고(시64:3)
0 여호와여 내 입 앞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시 141:3)
0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키 어려우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 의인의 혀는 천은과 같거니와 악인의 마음은 가치가 적으니라 의인의 입술은 여러 사람을 교육하나 미련한 자는 지식이 없으므로 죽느니라 (잠10:19-21)
0 의인의 입은 지혜를 내어도 패역한 혀는 베임을 당할 것이니라(잠10:31)
0 사람은 입의 열매로 인하여 복록에 족하며 그 손의 행하는 대로 자기가 받느니라(잠12:14)
0 사람은 입의 열매로 인하여 복록을 누리거니와 마음이 궤사한 자는 강포를 당하느니라(잠13:2)
0 입을 지키는 자는 그 생명을 보전하나 크게 벌리는 자에게는 멸망이 오느니라(잠13:3)
0 지혜로운 자의 입술은 지식을 전파하여도 미련한 자의 마음은 정함이 없느니라(잠15:7)
0 허물을 덮어 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 한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잠17:9)
0 말을 아끼는 자는 지식이 있고 성품이 안존한 자는 명철하니라(잠17:27)
0 미련한 자라도 잠잠하면 지혜로운 자로 여기우고 그 입술을 닫히면 슬기로운 자로 여기우니라(잠17:28)
0 명철한 사람의 입의 말은 깊은 물과 같고 지혜의 샘은 솟쳐 흐르는 내와 같으니라(잠18:4)
0 미련한 자의 입술은 다툼을 일으키고 그 입은 매를 자청하느니라 미련한 자의 입은 그의 멸망이 되고 그 입술은 그의 영혼의 그물이 되느니라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자의 말은 별식과 같아서 뱃속 깊은 데로 내려가 느니라(잠18:6-8)
0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잠18:21)
0 거짓 증인은 벌을 면치 못할 것이요 거짓말을 내는 자는 망할 것이니라 (잠19:9)
0 두루 다니며 한담하는 자는 남의 비밀을 누설하나니 입술을 벌린 자를 사 귀지 말지니라(잠20:19)0 너는 이웃과 다투거든 변론만 하고 남의 은밀한 일을 누설하지 말라(잠 25:9)
0 오래 참으면 관원이 그 말을 용납하나니 부드러운 혀는 꺾느니라(잠 25:15)
0 입을 열어 지혜를 베풀며 그 혀로 인애의 법을 말하며(잠31:26)
0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음이니라 그런즉 마땅히 말을 적게 할 것이라(전5:2)
 0 지혜자의 입의 말은 은혜로우나 우매자의 입술은 자기를 삼키나니 그 입 의 말의 시작은 우매요 꿀은 광패니라 우매자는 말을 많이 하거니와 사람이 장래 일을 알지 못하나니 신후사를 알게 할 자가 누구이냐(전 10:12-14)
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마12:36)
0 입에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 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마15:11)
0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10:9-10)
0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엡4:29)
0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하고 말하기 는 더디하며 성내기도 더디하라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 지 못함이니라(약1:19-20)
0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 받을 줄을 알고 많이 선생 되지 말라.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 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우리가 말을 순종케 하려고 그 입에 재갈먹여 온 몸을 어거하며....... 단물과 쓴물을 내겠느뇨(약 3:1-11)
0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 한 것이라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가 나는 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치 아니하니라(약3:8-10)
0 그러므로 이 여러 말로 서로 위로하라(살전4:18)0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고(벧전3:10)
0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고루게 함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골4:6)
0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요일3:18)

 
* 갈릴리 공동체 http://cafe.daum.net/Galileecommunity
(http://blog.naver.com/allc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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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 희락, 웃음 (2013-11-23 오후 11:02:53) http://blog.somang.net/holylove/8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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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웃음의 운동효과

 
웃음은 습관이다. 다른 것에는 비용이 들지만 웃는 데는 비용이 필요없다. 그냥 웃으면 되는 것이다. 아무리 가난해도 웃는 데는 지장이 없어 노숙자들도 웃는데 만일 웃음이 없다면 노숙자보다 나을리가 없다. 생후 6개월 아이는 하루 평균 450회를 웃는다. 그러나 성인이 되어서는 점점 웃음이 사라지는데 그러다 보면 기가 없어지고 운도 쇠퇴하여 버리는 것이다. 다시 어릴 때로 돌아가 잃어버렸던 웃음을 되찾아야 한다. 아무리 기억력이 나빠도 어떻게 웃어야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습관이 바로 운명이고 보면 웃는 것이 바로 팔자를 고치는 길이다.
한 번 웃음의 운동효과는 에어로빅 5분의 운동량과 같습니다. 크게 웃으면 가슴, 근육, 심장까지 움직이게 만듭니다. 지금 크게, 활짝, 배꼽잡고 웃으세요!

 
▣ 하나님을 생각하며 웃으라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를 보면, 후반부에 이탈리아를 점령한 독일군이 유대사람을 잡아들이는 참혹한 장면을 섬뜩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감독 겸 배우인 로베르토 베니니의 화법은 뜻밖에 '웃음'이다. 이 영화는 '웃음은 인간을 위기에서 구해 낸다. 웃음을 가진 사람만이, 그 인생이 아름답다'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 같다. 성경에도 웃음으로 아름다운 인생을 회복한 사람이 있다. 바로 사라다. 사라는 불임으로 고통받았다. 그녀는 아이를 낳을 것이라는 말에 '속으로 웃었고,' 하나님은 그 불신앙의 웃음에 예리한 칼을 들이대셨다. 하나님이 사라의 웃음을 먼저 치료하시니 잉태하지 못하던 육적인 부분까지 자연적으로 치료되었다. 이삭을 출산한 이후 사라는 제대로 웃기 시작한다. 많은 사람 앞에서 개의치 않고 보란듯이 아이에게 젖을 먹이면서 박장대소한다. 믿는 사람은 자신의 얼굴에 믿음이 묻어나고 있는지 자주 살펴야 한다. 이 믿음은 웃음으로 표현된다. 사라가 이 웃음을 되찾았을 때, 아이를 낳을 수 있었다. 기적을 맛보았다. 하나님 앞에서 웃는 웃음이 곧 믿음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생각하며 웃으라. 이것이 믿음을 회복하는 첫 단추다. -
「믿음 사용설명서」 / 옥성석

 
▣ 웃음 스트레스

 
웃음은 만병통치약이라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어떤 모임에 가면 ‘억지로라도 웃어라’고 강요를 당하기도 합니다. 웃음 치료의 효과를 말하는 분들은 억지웃음도 어두운 마음을 긍정적으로 전환시키는 동력이 돼 웃는 사람에게 좋은 효과가 나타난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소하게는 감기를 예방하는 것은 물론, 사용하지 않던 굳은 근육들을 움직여 얼굴 피부 탄력을 개선하고 혈액순환을 통해 혈압강하와 혈당강하, 심각한 질병의 완화까지 일으킨다고 하니 웃음은 정말 만병통치약인 셈입니다. 그런데 최근 실제 자신이 느끼는 감정은 드러내지 않고 정형화된 행위나 감정으로 고객을 대해야 하는 감정노동에 종사하는 분들의 웃음 스트레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웃음의 이중성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계기를 가졌습니다.
상대방이 어떤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든지 마음으로는 눈물이 펑펑 나도 겉으로는 웃으면서 공손한 태도를 취해야 하는 이들을 생각해 보니 가슴이 짠했습니다. 감정노동해소를 위한 법과 제도의 마련도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이전에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눅 6:31)는 예수님의 가르침과 정신이 먼저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는 것이 더욱 필요하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상화 목사(드림의교회)

 
▣ 삶을 춤추게 하라

 
거울은 먼저 웃지 않습니다. 이 세상도 이 우주도 우리의 운명도 먼저 웃지 않습니다. 내가 먼저 웃을 때에 이 세상도 웃어줍니다. 내가 먼저 웃을 때에 이 우주도 웃어줍니다. 내가 먼저 웃을 때에 우리의 운명도 웃어줍니다.
세상이 주체가 아니라 내가 주체이기 때문입니다. 우주가 주체가 아니라 내가 주체이기 때문입니다. 운명이 주체가 아니라 내가 주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주체자들입니다. 그러하기에 내가 먼저 웃을 때에 세상도 우주도 운명도 따라서 웃게 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새해 인생 365일도 먼저 웃지 않습니다.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아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여 우리의 인생 365일을 춤추게 하십시오.

 
▣ 웃자

 
“행복하기 때문에 웃는 것이 아니라 행복하기 위해서 웃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15초만 박장대소해도 몸에 좋은 호르몬이 분비되어서 치매가 예방되고 수명이 연장된다는 연구결과도 발표됐다.
잘 웃는 사람의 특징 중 하나는 나누고 싶은 생각을 갖는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나누면 배가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잘 웃지 않는 사람은 스스로 자신을 가두는 마음을 가져 영혼이 자유롭지 못하다.
요즈음 여기저기서 어렵다고들 아우성이지만 그럼에도 호황을 누리는 기업이 있다. 경영에 웃음을 도입한 펀(fun)경영을 하거나 펀 리더들이 경영하는 기업들이다. 어떤 기업은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신나게 춤출 수 있도록 DDR을 설치하는가 하면 사원들의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한 경영주의 노력이 행복윤활유가 되어 사원들의 사기를 높이고 있다.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면 신나게 일하고 신나게 즐기자. 성경에도 하나님께서 “항상 기뻐하라”고 말씀하셨다. 항상 기뻐하는 일이 자신을 사랑하는 길이요, 세상을 이길 긍정적인 에너지가 생기는 일이다. 뿐만 아니라 유쾌한 에너지가 넘쳐나서 소통이 원활해진다. 웃음을 통해 암 환자가 고침을 받고 웃음을 통해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 사람들이 많다. “웃자.” 그래서 어디를 가든지 환영받는 사람이 되자.
/설동욱 목사 (서울 예정교회)

 
▣ 웃음을 조기교육 시키자

 
자녀의 지능지수, 감성지수를 올리기 위해 학원을 3~4개씩 보낸다.
동네에 지나다니는 학원차를 보면 참 다양한 학원이 있음을 알게 된다.
아이들은 저녁 먹고 학원에 가기 바쁘다. 밤늦게 집으로 향하는 청소년들을 보면 축 늘어진 어깨가 왠지 나를 슬프게 한다.
그래서인지 요즘 아이들의 얼굴을 살펴보면 웃음이 없다. 기껏 한다는 것이 부모 눈을 피해 온라인 게임을 하는 것이다. 진정으로 아이의 미래를 밝게 하려면 웃을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아이들은 생후 2~3개월부터 웃기 시작해서 20개월쯤 되면 스스로 웃음을 자아내는 행동을 한다.
하지만 아이 스스로 웃길 줄 아는 환경이 되지 않으면 자라면서 점점 무뚝뚝해지는 것이다. 웃음이 많은 아이로 자라게 하기 위해서는 부모가 먼저 많이 웃어야 한다. 즐거운 감정을 자주 전달하여 아이 스스로가 유머감각을 기를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이제 다른 조기교육에 열을 내지 말고 웃음 조기교육을 먼저 시키자.
- 김영식 (웃음 요가 창시자) -

 
환경이 좋아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어서 환경을 좋게 만드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값싸고 가장 큰 효과는 웃음입니다.

 
▣ 웃으면 더 팔린다

 
미국 프리스턴대 판매연구소 연구팀이 연기자 150명을 대상으로 웃음과 판매의 상관관계를 실험한 결과 판매원이 웃으면서 제품을 팔았을 때 목표량의 3~ 10배를 팔았다. 무표정한 판매원은 목표량의 10~30%를 팔았고 인상을 찌푸린 판매원은 전혀 팔지 못했다.
- 서진영 / 자의누리경영연구원 대표 -

웃음은 자신과 상대방의 마음을 즐겁게 만듭니다.

 
▣ 웃음 예찬

 
본문 : 시 126:2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그 때에 뭇 나라 가운데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다 하였도다’

 
인간관계론과 성공학의 대가 데일 카네기가 쓴 ‘웃음 예찬’이라는 글입니다.
“웃음을 위해 소비해야 할 것은 없지만, 그로 인해 얻는 것은 많습니다.
웃음을 주는 사람에게는 해가 될 것이 없고, 받는 사람은 얻는 것이 많습니다. 웃음은 짧은 시간이지만 때로는 그 기억이 평생을 갑니다. 웃음이 없다면 진짜 부자가 아니며, 웃음을 가지고 있다면 가난한 사람이 아닙니다. 웃음은 가정에 행복을 더하며, 사업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며, 사람과의 관계를 더욱 가깝게 해줍니다. 또한 피곤한 자에게 휴식이 되며, 실망한 자에게는 소망이 되고, 우는 자에게는 위로가 됩니다. 모든 독을 제거하는 해독제가 바로 웃음입니다. 하지만 기억하십시오. 웃음은 돈으로 살수도 없고, 누구에게 빌릴 수도 없고, 남의 것을 도둑질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소망이 있는 사람은 날마다 즐거워야합니다. 우리에게 행하실 주님의 놀라운 계획이 삶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 사실을 기억하며 항상 웃으며 살아가십시오.
* 기도: 주님! 주님으로 인해 진정으로 만족하고 즐거워하게 하소서!
* 묵상: 주님을 떠올리며 기분 좋게 웃음으로 하루를 시작하십시오.
/김장환 목사, 제공 : 나침반출판사

 
▣ 웃음에 관한 금언:

 
0 웃음 없는 하루는, 그날 하루를 낭비하는 것이다.(찰리 채플린)
0 나는 나를 웃게 하는 사람이 좋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웃음이다. 웃음에는 병도 낫게 하는 힘이 있다. 한 인간이 지닌 가장 중요한 재능이기도 하다(오드리 햅번)

 
* 갈릴리 공동체 카페 주소 : http://cafe.daum.net/Galileecommunity
(http://blog.naver.com/allcome , http://blog.naver.com/jfoc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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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자료모음(웃음, 미소) 댓글[0]
기쁨, 희락, 웃음 (2013-11-23 오후 11:02:53) http://blog.somang.net/holylove/8022
선교자료모음(웃음, 미소)
 

▣ 웃음의 운동효과

 
웃음은 습관이다. 다른 것에는 비용이 들지만 웃는 데는 비용이 필요없다. 그냥 웃으면 되는 것이다. 아무리 가난해도 웃는 데는 지장이 없어 노숙자들도 웃는데 만일 웃음이 없다면 노숙자보다 나을리가 없다. 생후 6개월 아이는 하루 평균 450회를 웃는다. 그러나 성인이 되어서는 점점 웃음이 사라지는데 그러다 보면 기가 없어지고 운도 쇠퇴하여 버리는 것이다. 다시 어릴 때로 돌아가 잃어버렸던 웃음을 되찾아야 한다. 아무리 기억력이 나빠도 어떻게 웃어야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습관이 바로 운명이고 보면 웃는 것이 바로 팔자를 고치는 길이다.
한 번 웃음의 운동효과는 에어로빅 5분의 운동량과 같습니다. 크게 웃으면 가슴, 근육, 심장까지 움직이게 만듭니다. 지금 크게, 활짝, 배꼽잡고 웃으세요!

 
▣ 하나님을 생각하며 웃으라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를 보면, 후반부에 이탈리아를 점령한 독일군이 유대사람을 잡아들이는 참혹한 장면을 섬뜩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감독 겸 배우인 로베르토 베니니의 화법은 뜻밖에 '웃음'이다. 이 영화는 '웃음은 인간을 위기에서 구해 낸다. 웃음을 가진 사람만이, 그 인생이 아름답다'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 같다. 성경에도 웃음으로 아름다운 인생을 회복한 사람이 있다. 바로 사라다. 사라는 불임으로 고통받았다. 그녀는 아이를 낳을 것이라는 말에 '속으로 웃었고,' 하나님은 그 불신앙의 웃음에 예리한 칼을 들이대셨다. 하나님이 사라의 웃음을 먼저 치료하시니 잉태하지 못하던 육적인 부분까지 자연적으로 치료되었다. 이삭을 출산한 이후 사라는 제대로 웃기 시작한다. 많은 사람 앞에서 개의치 않고 보란듯이 아이에게 젖을 먹이면서 박장대소한다. 믿는 사람은 자신의 얼굴에 믿음이 묻어나고 있는지 자주 살펴야 한다. 이 믿음은 웃음으로 표현된다. 사라가 이 웃음을 되찾았을 때, 아이를 낳을 수 있었다. 기적을 맛보았다. 하나님 앞에서 웃는 웃음이 곧 믿음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생각하며 웃으라. 이것이 믿음을 회복하는 첫 단추다. -
「믿음 사용설명서」 / 옥성석

 
▣ 웃음 스트레스

 
웃음은 만병통치약이라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어떤 모임에 가면 ‘억지로라도 웃어라’고 강요를 당하기도 합니다. 웃음 치료의 효과를 말하는 분들은 억지웃음도 어두운 마음을 긍정적으로 전환시키는 동력이 돼 웃는 사람에게 좋은 효과가 나타난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소하게는 감기를 예방하는 것은 물론, 사용하지 않던 굳은 근육들을 움직여 얼굴 피부 탄력을 개선하고 혈액순환을 통해 혈압강하와 혈당강하, 심각한 질병의 완화까지 일으킨다고 하니 웃음은 정말 만병통치약인 셈입니다. 그런데 최근 실제 자신이 느끼는 감정은 드러내지 않고 정형화된 행위나 감정으로 고객을 대해야 하는 감정노동에 종사하는 분들의 웃음 스트레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웃음의 이중성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계기를 가졌습니다.
상대방이 어떤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든지 마음으로는 눈물이 펑펑 나도 겉으로는 웃으면서 공손한 태도를 취해야 하는 이들을 생각해 보니 가슴이 짠했습니다. 감정노동해소를 위한 법과 제도의 마련도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이전에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눅 6:31)는 예수님의 가르침과 정신이 먼저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는 것이 더욱 필요하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상화 목사(드림의교회)

 
▣ 삶을 춤추게 하라

 
거울은 먼저 웃지 않습니다. 이 세상도 이 우주도 우리의 운명도 먼저 웃지 않습니다. 내가 먼저 웃을 때에 이 세상도 웃어줍니다. 내가 먼저 웃을 때에 이 우주도 웃어줍니다. 내가 먼저 웃을 때에 우리의 운명도 웃어줍니다.
세상이 주체가 아니라 내가 주체이기 때문입니다. 우주가 주체가 아니라 내가 주체이기 때문입니다. 운명이 주체가 아니라 내가 주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주체자들입니다. 그러하기에 내가 먼저 웃을 때에 세상도 우주도 운명도 따라서 웃게 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새해 인생 365일도 먼저 웃지 않습니다.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아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여 우리의 인생 365일을 춤추게 하십시오.

 
▣ 웃자

 
“행복하기 때문에 웃는 것이 아니라 행복하기 위해서 웃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15초만 박장대소해도 몸에 좋은 호르몬이 분비되어서 치매가 예방되고 수명이 연장된다는 연구결과도 발표됐다.
잘 웃는 사람의 특징 중 하나는 나누고 싶은 생각을 갖는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나누면 배가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잘 웃지 않는 사람은 스스로 자신을 가두는 마음을 가져 영혼이 자유롭지 못하다.
요즈음 여기저기서 어렵다고들 아우성이지만 그럼에도 호황을 누리는 기업이 있다. 경영에 웃음을 도입한 펀(fun)경영을 하거나 펀 리더들이 경영하는 기업들이다. 어떤 기업은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신나게 춤출 수 있도록 DDR을 설치하는가 하면 사원들의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한 경영주의 노력이 행복윤활유가 되어 사원들의 사기를 높이고 있다.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면 신나게 일하고 신나게 즐기자. 성경에도 하나님께서 “항상 기뻐하라”고 말씀하셨다. 항상 기뻐하는 일이 자신을 사랑하는 길이요, 세상을 이길 긍정적인 에너지가 생기는 일이다. 뿐만 아니라 유쾌한 에너지가 넘쳐나서 소통이 원활해진다. 웃음을 통해 암 환자가 고침을 받고 웃음을 통해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 사람들이 많다. “웃자.” 그래서 어디를 가든지 환영받는 사람이 되자.
/설동욱 목사 (서울 예정교회)

 
▣ 웃음을 조기교육 시키자

 
자녀의 지능지수, 감성지수를 올리기 위해 학원을 3~4개씩 보낸다.
동네에 지나다니는 학원차를 보면 참 다양한 학원이 있음을 알게 된다.
아이들은 저녁 먹고 학원에 가기 바쁘다. 밤늦게 집으로 향하는 청소년들을 보면 축 늘어진 어깨가 왠지 나를 슬프게 한다.
그래서인지 요즘 아이들의 얼굴을 살펴보면 웃음이 없다. 기껏 한다는 것이 부모 눈을 피해 온라인 게임을 하는 것이다. 진정으로 아이의 미래를 밝게 하려면 웃을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아이들은 생후 2~3개월부터 웃기 시작해서 20개월쯤 되면 스스로 웃음을 자아내는 행동을 한다.
하지만 아이 스스로 웃길 줄 아는 환경이 되지 않으면 자라면서 점점 무뚝뚝해지는 것이다. 웃음이 많은 아이로 자라게 하기 위해서는 부모가 먼저 많이 웃어야 한다. 즐거운 감정을 자주 전달하여 아이 스스로가 유머감각을 기를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이제 다른 조기교육에 열을 내지 말고 웃음 조기교육을 먼저 시키자.
- 김영식 (웃음 요가 창시자) -

 
환경이 좋아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어서 환경을 좋게 만드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값싸고 가장 큰 효과는 웃음입니다.

 
▣ 웃으면 더 팔린다

 
미국 프리스턴대 판매연구소 연구팀이 연기자 150명을 대상으로 웃음과 판매의 상관관계를 실험한 결과 판매원이 웃으면서 제품을 팔았을 때 목표량의 3~ 10배를 팔았다. 무표정한 판매원은 목표량의 10~30%를 팔았고 인상을 찌푸린 판매원은 전혀 팔지 못했다.
- 서진영 / 자의누리경영연구원 대표 -

웃음은 자신과 상대방의 마음을 즐겁게 만듭니다.

 
▣ 웃음 예찬

 
본문 : 시 126:2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그 때에 뭇 나라 가운데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다 하였도다’

 
인간관계론과 성공학의 대가 데일 카네기가 쓴 ‘웃음 예찬’이라는 글입니다.
“웃음을 위해 소비해야 할 것은 없지만, 그로 인해 얻는 것은 많습니다.
웃음을 주는 사람에게는 해가 될 것이 없고, 받는 사람은 얻는 것이 많습니다. 웃음은 짧은 시간이지만 때로는 그 기억이 평생을 갑니다. 웃음이 없다면 진짜 부자가 아니며, 웃음을 가지고 있다면 가난한 사람이 아닙니다. 웃음은 가정에 행복을 더하며, 사업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며, 사람과의 관계를 더욱 가깝게 해줍니다. 또한 피곤한 자에게 휴식이 되며, 실망한 자에게는 소망이 되고, 우는 자에게는 위로가 됩니다. 모든 독을 제거하는 해독제가 바로 웃음입니다. 하지만 기억하십시오. 웃음은 돈으로 살수도 없고, 누구에게 빌릴 수도 없고, 남의 것을 도둑질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소망이 있는 사람은 날마다 즐거워야합니다. 우리에게 행하실 주님의 놀라운 계획이 삶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 사실을 기억하며 항상 웃으며 살아가십시오.
* 기도: 주님! 주님으로 인해 진정으로 만족하고 즐거워하게 하소서!
* 묵상: 주님을 떠올리며 기분 좋게 웃음으로 하루를 시작하십시오.
/김장환 목사, 제공 : 나침반출판사

 
▣ 웃음에 관한 금언:

 
0 웃음 없는 하루는, 그날 하루를 낭비하는 것이다.(찰리 채플린)
0 나는 나를 웃게 하는 사람이 좋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웃음이다. 웃음에는 병도 낫게 하는 힘이 있다. 한 인간이 지닌 가장 중요한 재능이기도 하다(오드리 햅번)

 
* 갈릴리 공동체 카페 주소 : http://cafe.daum.net/Galileecommunity
(http://blog.naver.com/allcome , http://blog.naver.com/jfoc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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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라 댓글[0]
사랑, 관심 (2013-11-20 오전 8:13:35) http://blog.somang.net/holylove/8018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라
 

본문: 신6: 4- 5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이스라엘 민족이 위대한 것은 그들이 매일 아침저녁으로 식탁에서 쉐마 이스라엘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는 전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은 오직 하나뿐인 여호와 하나님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모세 때부터 이어져온 이 같은 신앙고백이 오늘날 작은 이스라엘 민족을 위대한 민족으로 만들었습니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신이 존재하지만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독생자로 이 땅에 보내주셔서 우리의 죄를 청산하게 하시고, 영원한 생명 길을 열어주신 창조주 하나님만이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도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라(마22:37, 막12:30)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으면 그것은 우상숭배입니다. 내 목숨과 내 삶을 다 바쳐 전심으로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14:7-8)

 
나의 꿈이 있습니다. 나의 소원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 땅에 예수에게 미친 사람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성실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마음이 선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모범생들이 많이 있고 선행을 하는 이들도 많이 있습니다. 나의 꿈은 사람들을 그렇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꿈은 오직 사람들을 예수에게 미치게 하는 것입니다. 돌아버리는 광신자가 되게 하는 것이 나의 꿈입니다.
교양있고 우아한 신자가 아닌 철저하게 빠져버린 신자.. 주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고 전 재산을 팔아서 천국보화를 사는 사람을 일으키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부르실 때 야곱아, 이스라엘아.. 하고 부르십니다. 야곱은 주께 속한 사람들의 대표입니다.
 
그는 성실한 사람이었을까요? 온전한 사림입니까?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갈망이 있는 사람의 전형입니다.
 
사기를 쳐서라도 장자권을 원했고 이는 팥죽을 원하는, 물질과 세상을 구하는 사람과 대비되어 오직 예수를 구하고 찾는 사람의 전형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주의 임재와 얼굴을 구하며 거기서 성취할 때까지 주의 옷자락을 놓지 않는, 그는 갈망의 사람을 대표하는 것입니다. 인격적으로 부족하고 재능도 부족하고 많은 연약함이 있어도 오직 예수에게 미치고 하나님께 함몰되기를 원하는..그런 사람을 대표하는 것이 야곱입니다.
오늘날 세상의 성공을 위하여 매진하는 이들은 많습니다. 자아의 성취를 위하여 전심을 기울이는 이들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의 얼굴을 구하여 목숨을 거는 이들은 많지 않습니다. 이들은 아주 쉽게 우주보다 크신 보화를 얻기 원하며 목숨을 걸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주의 은혜가 멀다고 한탄합니다.
 
주를 향하여 목숨을 거십시오.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다보지 마십시오. 우리가 주님께 드릴 것은 오직 한 가지 목숨밖에 없습니다. 목숨을 드리고 눈물을 드리며 가슴 중심에서 나오는 한탄과 고통어린 탄식으로 주의 얼굴을 구할 때 주님은 그 사모하는 자의 안타까움을 보십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것은 미칠 것 같은 강렬한 사랑의 표출이었습니다. 십자가에서 절규하는 주님의 부르짖음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시며 사랑을 고백하는 고통의 고백입니다.
그 가슴을 찢는 주의 눈물 앞에서 우리가 같은 사랑으로 반응하지 않는 것은 일종의 모독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먹다 남은 찌꺼기 음식을 주님께 던져 놓고 우리는 정말 주님을 사랑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주 적은 시간과 마음을 드리고 우리의 중심은 주님을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진정 주님을 사랑하기 원한다면, 알기 원한다면, 당신의 목숨을 주님께 드리십시오.
당신의 가슴을 찢으십시오. 우아함을 버리고 창자가 쏟아지듯이 주님께 당신의 마음을 쏟으십시오. 주님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를 찾는 자를 살피십니다. 그리고 그러한 자들에게 나타나시며 능력과 은총을 베푸십니다.
 
세상의 많은 일에 대하여 소극적이더라도, 주의 얼굴을 구하는 것에 적극적이 되십시오. 목숨을 던져 주를 구하십시오. 주께 나아가는데 방해가 되는 모든 것들을 처리하십시오.
갈망이 있는 곳에 주님은 오시며 당신은 그분을 가까이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영광은 온 세상을 천 번 얻는 것보다 더 놀라운 것이 될 것입니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잠8:17)

 
감옥에 죄수가 석방의 날을 기다리듯이 사병이 제대하기를 고대하듯이 굶주린 사람이 먹기를 기다리듯이 구차한 살림이 풍요하게 되기를 바라듯이 파숫군이 새벽 날새기를 고대하듯이 어린아이가 그 어머니의 젖을 사모함 같이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사모하고 진리를 갈급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잠시도 하나님을 떠나서 살 수 없습니다. 이는 마치 물고기가 물을 떠나서 살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 음부에 가서 숨을지라도 하나님의 눈이 거기 계십니다. 미치도록 예수를 사모하는 생활을 합시다.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시63: 1)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내 영혼이 주를 더 기다리나니 참으로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하도다’(시130:6)

 
당신은 미쳐야 합니다. 미치려면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미쳤다'라고 말할 때도 분명한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정신병이 들었다는 말이 아니라, 자기가 옳다고 하는 일에 몰입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 밖에 다른 길이 없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생명을 거는 것을 말합니다. 가슴에 있는 불을 아무도 끌 수 없는 사람이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저는 미친 사람이고, 여러분은 안 미친 사람이에요.
 
당신은 미쳐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에 미쳐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미쳐야 합니다. 좋은 일에 제대로 미쳐야 합니다. 아무나 제대로 미친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꿈이 있는 사람, 그 너머에 꿈 너머 꿈이 있는 사람, 그걸 생각하면 가슴이 뛰는 사람만 미칠 수 있습니다. 미친 사람만 새 길을 낼 수 있습니다. 좋은 길을 새로 낼 수 있습니다.
‘바른 길로 행하는 자는 걸음이 평안하려니와 굽은 길로 행하는 자는 드러나리라’(잠10:9)
‘의로운 길에 생명이 있나니 그 길에는 사망이 없느니라’(잠12:28)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 있습니다.(잠14:12) 어느 길로 가느냐에 따라 인생의 방향이 달라지고 목적지가 달라집니다. 이 세상을 떠날 때 어디론가 가야 합니다. 그 길은 사망의 길과 생명의 길, 지옥의 길과 천국으로 가는 길입니다. 이 두 갈래 길에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아 영원한 생명과 풍성한 복된 삶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마7: 13, 14)
 
많은 이들이 가고 있는 길, 죄인들의 길로 가지 말고 의인의 회중을 찾으세요.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 중에 들지 못하리로다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시1: 1- 6)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 했습니다. 하나님은 미지근한 기독교인을 기뻐하지 않습니다.
얼마 전에 어느 교회에 설교하러 간 적이 있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별로 없고 노인들만 모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말씀에 대한 그들의 반응은 냉담하였습니다. 설교 내용에 대하여 반감을 갖거나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관심이 없었습니다. 설교가 끝난 후에 모두 기도하자고 제의하였습니다. 그러나 기도가 시작되었는데도 모인 무리들은 고요하고 교회당 안에는 을씨년스러운 침묵만이 흘렀습니다. 그 누구의 기도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저는 지금 모든 사람들이 소리 지르며 기도해야 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를 드리고 찬송을 불러도 도무지 기도의 영이 느껴지지 않는 공동체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갈망은 삶의 모든 구석구석에 숨길 수 없도록 그대로 반영됩니다. 그러나 기도를 통하여 가장 잘 표출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향한 갈망은 기도보다 더 직접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도구가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예배하고 기도하기 위하여 모이는 대부분의 모임 가운데는 어찌하든지 하나님을 뵈옵고 하나님과 교제해야겠다는 단호하고도 끈질긴 마음이 결핍되어 있습니다. 타성에 젖어서 교회와 집 사이를 오고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지 않는 삶의 모습입니다.
‘나는 네 행위를 알고 있다. 너는 차지도 않고 덥지도 않다. 네가 차든지 덥든지 하기를 원한다. 이와 같이 네가 미지근하여 덥지도 않고 차지도 않으므로 내가 너를 내 입에서 뱉어내겠다.’(계3:15, 16)
‘지나쳐 그리스도의 교훈 안에 거하지 아니하는 자는 다 하나님을 모시지 못하되 교훈 안에 거하는 그 사람은 아버지와 아들을 모시느니라’(요2서: 9)

 
갈릴리 공동체는 몸과 마음과 뜻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예수와 복음을 위해 미친 성도들의 모임입니다. 옛적 길 곧 선한 길, 생명과 진리로 인도하는 좁은 길인 갈릴리 공동체를 찾으세요.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행치 않겠노라 하였으며’(렘6:16)

 
성도 여러분!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모하는 마음이 용광로처럼 항상 불이 붙어있어야 합니다. 그것도 활활 타올라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인생에 성공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식으면 우리 인생에 갖가지 문제가 생깁니다. 이것이 꺼지면 우리 인생은 그야말로 파산이 됩니다. 여러분의 인생에 미치도록 열정이 넘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 대한 사모와 열정, 기도와 말씀과 전도와 봉사와 사명에 대해 미치도록 열정을 가지시기를 축원합니다.

 
* 기도: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히도록 허락하신 하나님, 우리가 주님을 몸과 마음과 뜻을 다하여 사랑하고, 기도와 말씀과, 전도와 맡은 바 사명과 봉사에 미치도록 열심있는 신앙을 회복하게 인도하여 주옵소서. 우리가 주님께 완전히 미치는 성도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한태완

 
* 갈릴리 공동체 http://cafe.daum.net/Galileecommunity
(http://blog.naver.com/allc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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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라 댓글[0]
사랑, 관심 (2013-11-20 오전 8:13:35) http://blog.somang.net/holylove/8017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라
 

본문: 신6: 4- 5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이스라엘 민족이 위대한 것은 그들이 매일 아침저녁으로 식탁에서 쉐마 이스라엘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는 전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은 오직 하나뿐인 여호와 하나님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모세 때부터 이어져온 이 같은 신앙고백이 오늘날 작은 이스라엘 민족을 위대한 민족으로 만들었습니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신이 존재하지만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독생자로 이 땅에 보내주셔서 우리의 죄를 청산하게 하시고, 영원한 생명 길을 열어주신 창조주 하나님만이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도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라(마22:37, 막12:30)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으면 그것은 우상숭배입니다. 내 목숨과 내 삶을 다 바쳐 전심으로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14:7-8)

 
나의 꿈이 있습니다. 나의 소원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 땅에 예수에게 미친 사람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성실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마음이 선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모범생들이 많이 있고 선행을 하는 이들도 많이 있습니다. 나의 꿈은 사람들을 그렇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꿈은 오직 사람들을 예수에게 미치게 하는 것입니다. 돌아버리는 광신자가 되게 하는 것이 나의 꿈입니다.
교양있고 우아한 신자가 아닌 철저하게 빠져버린 신자.. 주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고 전 재산을 팔아서 천국보화를 사는 사람을 일으키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부르실 때 야곱아, 이스라엘아.. 하고 부르십니다. 야곱은 주께 속한 사람들의 대표입니다.
 
그는 성실한 사람이었을까요? 온전한 사림입니까?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갈망이 있는 사람의 전형입니다.
 
사기를 쳐서라도 장자권을 원했고 이는 팥죽을 원하는, 물질과 세상을 구하는 사람과 대비되어 오직 예수를 구하고 찾는 사람의 전형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주의 임재와 얼굴을 구하며 거기서 성취할 때까지 주의 옷자락을 놓지 않는, 그는 갈망의 사람을 대표하는 것입니다. 인격적으로 부족하고 재능도 부족하고 많은 연약함이 있어도 오직 예수에게 미치고 하나님께 함몰되기를 원하는..그런 사람을 대표하는 것이 야곱입니다.
오늘날 세상의 성공을 위하여 매진하는 이들은 많습니다. 자아의 성취를 위하여 전심을 기울이는 이들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의 얼굴을 구하여 목숨을 거는 이들은 많지 않습니다. 이들은 아주 쉽게 우주보다 크신 보화를 얻기 원하며 목숨을 걸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주의 은혜가 멀다고 한탄합니다.
 
주를 향하여 목숨을 거십시오.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다보지 마십시오. 우리가 주님께 드릴 것은 오직 한 가지 목숨밖에 없습니다. 목숨을 드리고 눈물을 드리며 가슴 중심에서 나오는 한탄과 고통어린 탄식으로 주의 얼굴을 구할 때 주님은 그 사모하는 자의 안타까움을 보십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것은 미칠 것 같은 강렬한 사랑의 표출이었습니다. 십자가에서 절규하는 주님의 부르짖음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시며 사랑을 고백하는 고통의 고백입니다.
그 가슴을 찢는 주의 눈물 앞에서 우리가 같은 사랑으로 반응하지 않는 것은 일종의 모독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먹다 남은 찌꺼기 음식을 주님께 던져 놓고 우리는 정말 주님을 사랑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주 적은 시간과 마음을 드리고 우리의 중심은 주님을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진정 주님을 사랑하기 원한다면, 알기 원한다면, 당신의 목숨을 주님께 드리십시오.
당신의 가슴을 찢으십시오. 우아함을 버리고 창자가 쏟아지듯이 주님께 당신의 마음을 쏟으십시오. 주님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를 찾는 자를 살피십니다. 그리고 그러한 자들에게 나타나시며 능력과 은총을 베푸십니다.
 
세상의 많은 일에 대하여 소극적이더라도, 주의 얼굴을 구하는 것에 적극적이 되십시오. 목숨을 던져 주를 구하십시오. 주께 나아가는데 방해가 되는 모든 것들을 처리하십시오.
갈망이 있는 곳에 주님은 오시며 당신은 그분을 가까이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영광은 온 세상을 천 번 얻는 것보다 더 놀라운 것이 될 것입니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잠8:17)

 
감옥에 죄수가 석방의 날을 기다리듯이 사병이 제대하기를 고대하듯이 굶주린 사람이 먹기를 기다리듯이 구차한 살림이 풍요하게 되기를 바라듯이 파숫군이 새벽 날새기를 고대하듯이 어린아이가 그 어머니의 젖을 사모함 같이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사모하고 진리를 갈급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잠시도 하나님을 떠나서 살 수 없습니다. 이는 마치 물고기가 물을 떠나서 살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 음부에 가서 숨을지라도 하나님의 눈이 거기 계십니다. 미치도록 예수를 사모하는 생활을 합시다.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시63: 1)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내 영혼이 주를 더 기다리나니 참으로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하도다’(시130:6)

 
당신은 미쳐야 합니다. 미치려면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미쳤다'라고 말할 때도 분명한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정신병이 들었다는 말이 아니라, 자기가 옳다고 하는 일에 몰입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 밖에 다른 길이 없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생명을 거는 것을 말합니다. 가슴에 있는 불을 아무도 끌 수 없는 사람이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저는 미친 사람이고, 여러분은 안 미친 사람이에요.
 
당신은 미쳐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에 미쳐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미쳐야 합니다. 좋은 일에 제대로 미쳐야 합니다. 아무나 제대로 미친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꿈이 있는 사람, 그 너머에 꿈 너머 꿈이 있는 사람, 그걸 생각하면 가슴이 뛰는 사람만 미칠 수 있습니다. 미친 사람만 새 길을 낼 수 있습니다. 좋은 길을 새로 낼 수 있습니다.
‘바른 길로 행하는 자는 걸음이 평안하려니와 굽은 길로 행하는 자는 드러나리라’(잠10:9)
‘의로운 길에 생명이 있나니 그 길에는 사망이 없느니라’(잠12:28)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 있습니다.(잠14:12) 어느 길로 가느냐에 따라 인생의 방향이 달라지고 목적지가 달라집니다. 이 세상을 떠날 때 어디론가 가야 합니다. 그 길은 사망의 길과 생명의 길, 지옥의 길과 천국으로 가는 길입니다. 이 두 갈래 길에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아 영원한 생명과 풍성한 복된 삶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마7: 13, 14)
 
많은 이들이 가고 있는 길, 죄인들의 길로 가지 말고 의인의 회중을 찾으세요.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 중에 들지 못하리로다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시1: 1- 6)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 했습니다. 하나님은 미지근한 기독교인을 기뻐하지 않습니다.
얼마 전에 어느 교회에 설교하러 간 적이 있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별로 없고 노인들만 모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말씀에 대한 그들의 반응은 냉담하였습니다. 설교 내용에 대하여 반감을 갖거나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관심이 없었습니다. 설교가 끝난 후에 모두 기도하자고 제의하였습니다. 그러나 기도가 시작되었는데도 모인 무리들은 고요하고 교회당 안에는 을씨년스러운 침묵만이 흘렀습니다. 그 누구의 기도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저는 지금 모든 사람들이 소리 지르며 기도해야 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를 드리고 찬송을 불러도 도무지 기도의 영이 느껴지지 않는 공동체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갈망은 삶의 모든 구석구석에 숨길 수 없도록 그대로 반영됩니다. 그러나 기도를 통하여 가장 잘 표출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향한 갈망은 기도보다 더 직접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도구가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예배하고 기도하기 위하여 모이는 대부분의 모임 가운데는 어찌하든지 하나님을 뵈옵고 하나님과 교제해야겠다는 단호하고도 끈질긴 마음이 결핍되어 있습니다. 타성에 젖어서 교회와 집 사이를 오고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지 않는 삶의 모습입니다.
‘나는 네 행위를 알고 있다. 너는 차지도 않고 덥지도 않다. 네가 차든지 덥든지 하기를 원한다. 이와 같이 네가 미지근하여 덥지도 않고 차지도 않으므로 내가 너를 내 입에서 뱉어내겠다.’(계3:15, 16)
‘지나쳐 그리스도의 교훈 안에 거하지 아니하는 자는 다 하나님을 모시지 못하되 교훈 안에 거하는 그 사람은 아버지와 아들을 모시느니라’(요2서: 9)

 
갈릴리 공동체는 몸과 마음과 뜻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예수와 복음을 위해 미친 성도들의 모임입니다. 옛적 길 곧 선한 길, 생명과 진리로 인도하는 좁은 길인 갈릴리 공동체를 찾으세요.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행치 않겠노라 하였으며’(렘6:16)

 
성도 여러분!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모하는 마음이 용광로처럼 항상 불이 붙어있어야 합니다. 그것도 활활 타올라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인생에 성공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식으면 우리 인생에 갖가지 문제가 생깁니다. 이것이 꺼지면 우리 인생은 그야말로 파산이 됩니다. 여러분의 인생에 미치도록 열정이 넘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 대한 사모와 열정, 기도와 말씀과 전도와 봉사와 사명에 대해 미치도록 열정을 가지시기를 축원합니다.

 
* 기도: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히도록 허락하신 하나님, 우리가 주님을 몸과 마음과 뜻을 다하여 사랑하고, 기도와 말씀과, 전도와 맡은 바 사명과 봉사에 미치도록 열심있는 신앙을 회복하게 인도하여 주옵소서. 우리가 주님께 완전히 미치는 성도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한태완

 
* 갈릴리 공동체 http://cafe.daum.net/Galileecommunity
(http://blog.naver.com/allc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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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같은 신앙훈련 댓글[0]
교육, 훈련, 연습 (2013-11-02 오전 8:54:14) http://blog.somang.net/holylove/8001
독수리같은 신앙훈련
 
 
본문: 벧전4: 12, 13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노르웨이의 들오리가 추운 겨울 날 기후가 덜 추운 덴마크로 먹이를 찾아 내려왔었습니다. 해빙기가 되어 노르웨이로 다시 돌아가는데 덴마크 상공에서 내려다보니 먹이가 많이 보였습니다. 다른 동료 오리들은 날아가는데 한 마리가 내려 그 맛있는 먹이를 실컷 주워 먹었습니다. 그 먹이에 정신이 팔려 동료들을 잊고 6개월을 지냈는데 추운 겨울이 되자 동료 오리들이 날아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이 오리는 자기도 합세하기 위해 날려 하니 너무 살이 많이 쪄서 날수가 없었습니다. “에라 모르겠다.”하고 다시 주저앉아 그 많은 먹이를 주워 먹으며 지냈는데 또 다시 6개월이 흘러 동료 오리들이 고향으로 날아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는 다시 시도해 보았으나 전번의 반도 못 오르고 그냥 주저앉았습니다.
이렇게 하여 세 번의 겨울이 지나니 그 오리는 몸이 너무 비대해져서 고향으로 날아갈 꿈을 영원히 포기하고 혼자 외로이 살다가 쓸쓸히 죽어갔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우리의 본향인 하늘나라로 돌아가야 합니다. 돈, 재물, 명예, 권력, 학식 등등 세상의 것으로 너무 비대해지면 안 됩니다. 운동을 하여 비계살을 빼듯, 신앙훈련을 통해 비계살을 근육으로 승화시킵시다. 비록 신앙훈련이 당시는 고통스러워도 신앙훈련 후에는 아름다운 열매가 있습니다.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히12:11)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독수리와 같이 훈련시키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시103:5)
 
 
최정예 군인은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훈련을 통해 만들어집니다. 미국의 특수부대 네이버 실이나 델타 포스, 한국의 UDT나 공수특전단은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집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를 믿음으로써 거듭나지만 하나님의 일꾼은 만들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훈련시키실 때 어미 독수리가 새끼를 훈련하듯 하십니다.
독수리는 높은 벼랑 위에 집을 짓습니다. 굵은 나뭇가지를 얼기설기 엮어 놓고 그 위에 부드러운 털이나 짐승의 가죽을 깐 후 새끼를 기릅니다. 새끼가 어느 정도 자라서 날 수 있게 되면 어미 독수리는 새끼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 너희는 멋진 날개가 다 자랐으니 둥지 속에만 있지 말고 창공을 멋지게 날아보렴.”
그러나 새끼들에겐 둥지 속 보금자리가 너무 좋아 나오려 하지 않습니다. 어미 독수리가 아무리 유인해도 나오지 않고 날개가 있어도 날려고 하지 않습니다.
어미 독수리는 둥지 속에 들어와 새끼를 위해 깔았던 부드러운 털과 가죽을 다 제거해 버립니다. 이제 남은 건 가시가 찌르는 나뭇가지밖에 없습니다. 포근한 보금자리였던 둥지가 이제는 가시가 찌르는 가시방석이 되었습니다. 어미 독수리는 새끼를 날개에 태우고 창공을 납니다. 그리고 높은 창공에서 날개를 털어 새끼를 떨어트립니다. 떨어지면서 새끼는 온힘을 다해 날개를 퍼덕이며 나는 법을 배웁니다. 새끼 독수리가 낭떠러지 밑으로 푸드득거리며 날려고 할 때에 어미는 가만히 보고 있다가 새끼가 벼랑 밑으로 떨어지기 직전에 쏜살같이 내려가 새끼를 어깨 위에 얹고서 다시 벼랑 위로 올라갑니다. 그리곤 또다시 새끼를 내던져서 날게 하고, 떨어지려 하면 어깨에 얹고 올라옵니다. 이것을 몇 번씩 반복하며 새끼를 훈련시킵니다. 이렇게 반복해서 시련을 당하게 하고 난관을 극복하게 함으로 말미암아 이 작은 독수리가 날짐승의 왕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독수리가 된다는 것은 결코 우연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인생에서 승리하기를 원한다면 부단한 훈련을 계속해야 할 것입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욥23:10)
 
 
모세는 80년의 세월을 광야에서 살면서 그 기간을 독수리 훈련기간이라고 말했습니다. 모세는 독수리가 어디에 집을 짓는지, 어떻게 새끼를 기르고 훈련하는지를 너무 잘 알았습니다. 그리고 고백합니다.
“마치 독수리가 그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그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 여호와께서 홀로 그들을 인도하셨고 함께한 다른 신이 없었도다”(신32:11-12).
 
 
조류학자들이 관찰한 바에 의하면 독수리는 일반 조류와는 다른 비범한 데가 있다고 합니다. 폭풍우가 불어 닥치면 일반 새들은 폭풍우를 피해 숨어버리는데, 독수리는 오히려 폭풍우를 향해서 날아갑니다. 바람이 불면 불수록 그 바람을 타고 더 높이 날아올라서, 구름 위에서 폭풍우가 치는 아래를 바라보며 유유히 날아다닌다는 것입니다. 독수리는 이렇게 독특한 방식으로 살기 때문에 새 중의 왕이라고 불립니다.
 
우리 신앙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환난과 풍파가 닥치면 낙심하고 절망하고 숨으려고 하지만,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앞으로 전진하여 싸웁니다. 오히려 연단과 훈련을 받아서 큰 능력을 얻고, 하나님 앞에 축복받고 쓰임 받는 위대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고통과 환난이 변하여 도리어 유익이 되고, 축복이 됩니다.(시119: 67, 71)
전화위복의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
‘형제들아 나의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의 진보가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빌1: 12)

 
어미 독수리는 새끼 독수리가 다치지 않도록 재빨리 날아가 날개에 업습니다. 안전하게 보호합니다. 또한 어떤 대적이 위협하고 공격해도 철저하게 보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망하게 하시지 않습니다. 죽게 하시지 않습니다. 실망하게 하시지 않습니다. 연단과 훈련을 통해서 강하게 만드시고 반드시 풍족하고 넘치는 삶을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출애굽기 19장 4절에도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독수리가 자기 새끼를 보호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보호하여 주셨습니다. 적군과 싸워 이기게 하셨습니다. 병들어 죽지 않게 하셨습니다. 만나를 내려 굶어 죽지 않도록 하셨습니다. 광야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을 돌봐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하나님을 부르고 믿음을 가지고 말씀에 순종하면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버리시지 않습니다. 결코 우리를 망하게 하시지 않습니다. 연단과 훈련을 통해서 더 큰 축복을 주십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사야 31장 5절에서 “새가 날개 치며 그 새끼를 보호함 같이 나 만군의 여호와가 예루살렘을 보호할 것이라 그것을 호위하며 건지며 넘어와서 구원하리라 하셨나니"라고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안전케 하십니다. 보호하십니다. 우리가 어떤 어려움 속에 있다 할지라도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면 당신의 뜻을 성취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고후9:27)
 
 
성 쿨라라라는 수녀가 있었습니다. 그는 어렸을 때 상당히 사치스러운 생활을 했습니다. 그것이 늘 마음에 가책이 되어 수도원에 들어가서부터는 잘 때 일부러 딱딱한 나무 침대 위에 잤으며, 목과 손목에는 꽤 묵직한 쇠 목걸이와 손목거리를 달고 잤다고 합니다. 어렸을 때 사치한 것을 회개하는 뜻에서 그렇게 했습니다. 한번은 자기를 비판하는 사람에 대하여 그만 성이 나서 자기도 상대를 비판하는 말을 했습니다. 그 다음 순간에 클라라는 자기의 잘못을 깨닫고 바늘로 혀를 세 번 찔러 사흘 동안 말을 못하도록 했다고 합니다. 수녀다운 자아훈련의 생활을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절제하며 훈련하는 것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오늘도 이와 같은 믿음 안에서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도: 나의 힘이 되신 하나님 아버지, 아버지께서 우리를 시험하시되 아비가 자식을 사랑하여 훈련하는 것같이 하시고, 우리를 단련하시기를 은을 단련함같이 하시고, 독수리같은 신앙훈련으로 단련케 하옵소서. 주님이 우리를 단련하신 후에는 우리가 정금같이 나올 줄 믿습니다. 그래서 거듭난 우리를 통하여 의와 평강과 희락의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게 하시고 주님 홀로 영원히 영광을 받으시옵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 갈릴리 공동체 http://cafe.daum.net/Galileecommunity
(http://blog.naver.com/allc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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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회심과 거짓된 회심 댓글[0]
회개, 거듭남 (2013-10-31 오후 6:19:43) http://blog.somang.net/holylove/7997
참된 회심과 거짓된 회심
 

본문 : 벧후 3:9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존이라는 사람은 자기가 여전히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열두 살 때, 교회 수련회에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는 세례를 받았고, 1주일에 적어도 두 번은 교회에 출석했습니다. 그의 행동을 보면 그는 모범적인 그리스도인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그는 기독교의 모든 것에 싫증을 느끼고, 그리스도인이기를 중단했습니다. 그는 그동안 단지 기독교 교리와 행동의 표전에 따랐을 뿐입니다. 그는 회심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회심하지 못하고 단지 기독교화 된 사람은 결국 그들의 영적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기독교가 아닌 다른 것을 찾는 경향을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사람들은 기독교화가 회심이라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참된 기독교는 죄가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았고 예수님이 주(主, Lord) 와 구주(救主,Savior)시라는 확신에서 시작됩니다.
 
혹시 당신은 단지 교회에 다니면서 거듭났다고 착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어서 빨리 착각에서 깨어나십시오. 자신의 믿음을 돌아보고 회심을 확증해보십시오.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고후13:5)

 
기독교 구원론에 있어서 회심은 절대 중요한 요소입니다. 회심이 없이는 그 어떠한 구원도 있을 수 없습니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7:22-2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3:3)

 
회심하지 못한 자가 목사나 장로가 되면 공동체를 자기 뜻(마음)대로 이끌려고 합니다.
거짓된 회심자는 예수를 믿는 다고 하지만 욕심이 많고, 자기 중심적인 사람이므로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위해 그리고 하나님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는 기도를 하지 않고, 기도를 할 때 나와 내 가족을 위해서 하나님을 끌어 드리려고(이용하려) 기도합니다. 따라서 거짓된 회심자는 기도가 응답되지 않고, 신앙으로 인해 어려움이나 고난이 오면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불신자가 됩니다. 그리고 자기 사욕으로 인해 진리를 떠나고 버립니다.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으로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막10:22)


 
마틴 루터는 사람의 회심에는 3가지 단계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머리의 회심과 가슴의 회심, 그리고 지갑의 회심입니다. 머리로 회심하는 것은 쉽지만 가슴으로 믿지 못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회심이 아닙니다. 지갑의 회심은 실천을 뜻합니다. 가슴으로 믿는다 해도 실천하지 못한다면 그것 역시 진저한 회심이 아닙니다. 루터는 먼저 복음을 머리로 알고 진리를 깨달아야 하며 그 다음에 가슴에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가 심어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물질을 모으고 사용하는 방법이 달라지는 실천의 단계까지 가야 진정으로 회심한 사람이 된다고 말했습니다.
 
회심이라는 것은 마음과 행동을 돌린다는 이야기입니다. 나 중심의 생각과 행동이 하나님 중심의 생각과 행동으로 바뀌고 변화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떠났던 생활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온다는 뜻입니다. 당연히 우리의 모든 것이 이전과 같지 않아야 합니다. 회심의 단계를 정확히 구분 지을 수는 없겠지만 우리의 마음과 행동을 돌아보고 내가 정말로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인지 그냥 함께 있는 군중인지 돌이켜 보십시오.

 
그러면 참된 회심자는 어떠합니까?
 
1. 생각과 삶이 변화됩니다.
알프레드 노벨은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하여 엄청난 돈을 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노벨은 신문을 보니 자기가 죽었다는 기사가 실려 있었습니다. “죽음의 상인 노벨이 죽다” 이 기사는 오보였습니다. 그의 형 루드비히 노벨이 죽었는데 프랑스의 한 신문이 실수로 기사를 잘못 쓴 것입니다. 이 일로 노벨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자신의 삶을 돌이켜 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의 인생을 죽음의 상인으로 마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 불명예를 씻고자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하여 벌어들인 돈을 좋은 일을 위하여 쓰기 시작하였습니다. 마침내 유산의 94%인 3200만 스웨덴 크로나(440만 달러)를 기부하여 노벨상을 제정하였습니다.
신문의 오보로 살아서 자신의 죽음을 발견한 노벨은 다시 태어나게 된 것입니다. 살아서 죽음을 대비하는 사람은 헛되지 않는 삶을 살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회심한 후 이전에 아끼고 소중히 여기던 것을 버리고 배설물처럼 여겼습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빌3: 7, 8)

 
2. 자기 의와 행위를 부인합니다.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눅18:13)
자기 의와 행위를 내세우며 종교적 교만함에 가득찬 바리새인(롬10:3)과는 상반되게 세리는 계속 가슴을 치며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회개하고 애통하며 겸손한 자를 불쌍히 여기시고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10:12)

 
3. 죄와 싸웁니다.
유명한 성 어거스틴이 예수를 믿고 하나님 앞에 돌아온 후, 어느 날 길을 가다가 옛날에 사귀던 여자를 만났습니다. 그 때 어거스틴은 그 여자를 모른 척하고 지나가려고 하는데 그 여자가 따라오더랍니다. “어거스틴, 나예요. 왜 모른 척 지나가는 거예요.”
막무가내로 좇아오는 여자에게 어거스틴은 돌아서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너는 너지만, 나는 내가 아니오. 당신은 당신이지만, 나는 더 이상 내가 아니란 말이오. 난 새로운 사람으로 변했소. 그렇기 때문에 당신이 알던 내가 아니라는 말이오.”
예수님을 믿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는데 아직도 옛사람이 범하는 죄 가운데 계속 거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매일 마음속에서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과의 전쟁이 일어납니다. 이러한 싸움이 없는 자는 아직 회심이 없는 자입니다. 회심한 자는 죄를 짓지 않으려고 마음에서 싸우게 됩니다.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히12:4)

 
4. 하나님께로 돌아섭니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가 후계자로 장남 프랭클린을 택했습니다. 그fp이엄 목사는 지금까지 '빌리 그리어엄 전도협회' 라는 세계적인 규모의 종교 재단을 이끌어 왔습니다. 이 재단은 수차례 한국에서 대형 전도 집회를 개최했으며, 1991년에는 한강시민공원에서 100만 명이라는 기독교 사상 최대의 군중 동원 기록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후계 문제에 대해서는 "하나님만이 알고 있다" 라고 말해 오던 그가 후계자로 장남을 선택한 것입니다. 이에 대해 반대 여론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후계자로 지목된 프랭클린은 문제의 인물로 유명했기 때문입니다. 10대에는 술주정뱅이에 싸움꾼이었고, 대학에서는 퇴학당한 전력까지 있었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목사를 아버지로 두고 있는 그의 삶에서 하나님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는 항상 그레이엄 목사의 기도제목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22세 되는 해에 예루살렘을 방문했을 때 하나님을 만나 거듭나게 된 것입니다.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지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울며 기도하던 세리처럼, 그는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아버지의 하나님을 찾은 것입니다. 그 후 그는 목회자가 되어 자선 단체인 '사마리아인의 지갑' 과 '세계의로사절단' 을 이끌어 왔습니다. 하나님을 잃어버렸던 그가 하나님을 찾게 되자 모든 것이 회복되었습니다.
그들이 우리에 대하여 스스로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너희 가운데에 들어갔는지와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지와(살전1:9)

 
5. 회개의 열매를 맺습니다.
사랑의 교회에 다니고 있는 김용남 씨는 ‘정치깡패 용팔이’로 유명했습니다. 작은 체구지만 골격이 튼튼하고 힘이 장사였던 김 씨는 전국적으로 유명한 싸움꾼이었습니다. 서울에서는 유흥업소를 관리하며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을 처리하는 해결사 역할을 하며 많은 조직들에게 스카우트 제의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1987년도에 ‘용팔이 사건’으로 불리는 정치와 관련된 범죄에 행동대장을 맡았다가 수배가 되어 전국을 도망 다니다가 교도소에 들어갔습니다. 전과 7범인 김 씨는 출소 뒤에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고, 그나마 손대는 사업마다 모두 망했습니다. 돈이 너무 궁했던 김 씨는 평소에 알고 지내던 작곡가 조은파 씨를 찾아갔는데, 이때 조 씨의 권유로 사랑의교회 예배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소천하신 옥한흠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천국에 대해서 알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게 된 김용남 씨는 이때부터 신앙생활을 시작했습니다.
 
2003년부터 시작한 성경 필사를 통해 중이염이 낫고 술, 담배를 끊게 되는 역사가 일어났고, 변화된 김용남 씨의 모습을 보고 온 가족도 교회에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한 번의 교회 출석으로 새로운 삶을 살게 된 김용남 씨는 수천억을 줘도 바꿀 수 없는 자신의 기쁨을 평생 동안 전하겠다며 간증을 통해 계속해서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한 번의 말씀이 평생의 신앙이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말씀이 어떤 의미로 다가오고 있을까요? 오늘 하루 큐티는 생명을 주시는 말씀임을 생각하며 더욱 깊게 한절 한절 묵상해 보십시오.
아그립바 왕이여 그러므로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내가 거스르지 아니하고 먼저 다메섹과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과 유대 온 땅과 이방인에게까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회개에 합당한 일을 하라 전하므로(행26: 19, 20)

 
6. 회심이 지속적으로 더욱 깊어집니다.
회심은 1회성이 아닙니다. 한 번 회심했다고 해서 영원토록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회심했다고 해서 항상 하나님 쪽(편)에서 산다는 것이 아니므로 끊임없이 회개하고 회심이 일어나야 합니다.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행26:19, 20)

 
7.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입으로 시인하고(롬10:10),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고(롬8:15, 16), 예수님을 닮고자 합니다.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빌2:11)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12:3)
 
참된 회심자는 예수님처럼 온유하고 겸손하고 순종하는 성품을 배우고 본받으려합니다(마11:29)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고전11:1)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엡4:13)

 
회심은 새롭게 재창조된 사람이 탄생하는 것입니다. 회심을 통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다시금 회복됩니다. 즉 자연인이 회심하므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됩니다. 이전에는 인격적 관계로 알지 못했던 하나님을 왕으로, 주(主)로, 아버지로 알고 그와 교제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회심은 고통과 부담이 아니라 기쁨이요 즐거움이요 행복이며, 하나님의 은혜요 능력입니다.
부디 많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회심하여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기원합니다.

 
* 기도: 자비하신 주님! 예수님은 나의 주님이십니다. 돈과 쾌락과 권세가 내 주인이 되지 않게 하소서. 특히 내가 주인이 되어 내 중심으로 생각하고 행동하지 않게 하소서. 하나님이 말씀을 통해 삶이 변화되는 놀라운 복을 주소서. 말뿐 아닌 마음과 행동이 따라오는 회심되게 하소서. 믿지 않는 많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시고 말로는 믿는 다고 하면서도 회심하지 못한 기독교인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게 하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 묵상:
0 매일 한 구절의 말씀이라도 깊이 묵상하는 시간을 가지십시오.
0 말씀을 따르고 실천하는 제자의 삶을 사십시오.
0 나의 신앙생활은 나 중심입니까? 하나님 중심입니까?
 
* 갈릴리 공동체 http://cafe.daum.net/Galileecommunity
(http://blog.naver.com/allc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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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회심과 거짓된 회심 댓글[0]
회개, 거듭남 (2013-10-31 오후 6:19:43) http://blog.somang.net/holylove/7996
참된 회심과 거짓된 회심
 

본문 : 벧후 3:9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존이라는 사람은 자기가 여전히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열두 살 때, 교회 수련회에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는 세례를 받았고, 1주일에 적어도 두 번은 교회에 출석했습니다. 그의 행동을 보면 그는 모범적인 그리스도인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그는 기독교의 모든 것에 싫증을 느끼고, 그리스도인이기를 중단했습니다. 그는 그동안 단지 기독교 교리와 행동의 표전에 따랐을 뿐입니다. 그는 회심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회심하지 못하고 단지 기독교화 된 사람은 결국 그들의 영적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기독교가 아닌 다른 것을 찾는 경향을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사람들은 기독교화가 회심이라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참된 기독교는 죄가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았고 예수님이 주(主, Lord) 와 구주(救主,Savior)시라는 확신에서 시작됩니다.
 
혹시 당신은 단지 교회에 다니면서 거듭났다고 착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어서 빨리 착각에서 깨어나십시오. 자신의 믿음을 돌아보고 회심을 확증해보십시오.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고후13:5)

 
기독교 구원론에 있어서 회심은 절대 중요한 요소입니다. 회심이 없이는 그 어떠한 구원도 있을 수 없습니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7:22-2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3:3)

 
회심하지 못한 자가 목사나 장로가 되면 공동체를 자기 뜻(마음)대로 이끌려고 합니다.
거짓된 회심자는 예수를 믿는 다고 하지만 욕심이 많고, 자기 중심적인 사람이므로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위해 그리고 하나님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는 기도를 하지 않고, 기도를 할 때 나와 내 가족을 위해서 하나님을 끌어 드리려고(이용하려) 기도합니다. 따라서 거짓된 회심자는 기도가 응답되지 않고, 신앙으로 인해 어려움이나 고난이 오면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불신자가 됩니다. 그리고 자기 사욕으로 인해 진리를 떠나고 버립니다.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으로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막10:22)


 
마틴 루터는 사람의 회심에는 3가지 단계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머리의 회심과 가슴의 회심, 그리고 지갑의 회심입니다. 머리로 회심하는 것은 쉽지만 가슴으로 믿지 못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회심이 아닙니다. 지갑의 회심은 실천을 뜻합니다. 가슴으로 믿는다 해도 실천하지 못한다면 그것 역시 진저한 회심이 아닙니다. 루터는 먼저 복음을 머리로 알고 진리를 깨달아야 하며 그 다음에 가슴에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가 심어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물질을 모으고 사용하는 방법이 달라지는 실천의 단계까지 가야 진정으로 회심한 사람이 된다고 말했습니다.
 
회심이라는 것은 마음과 행동을 돌린다는 이야기입니다. 나 중심의 생각과 행동이 하나님 중심의 생각과 행동으로 바뀌고 변화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떠났던 생활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온다는 뜻입니다. 당연히 우리의 모든 것이 이전과 같지 않아야 합니다. 회심의 단계를 정확히 구분 지을 수는 없겠지만 우리의 마음과 행동을 돌아보고 내가 정말로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인지 그냥 함께 있는 군중인지 돌이켜 보십시오.

 
그러면 참된 회심자는 어떠합니까?
 
1. 생각과 삶이 변화됩니다.
알프레드 노벨은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하여 엄청난 돈을 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노벨은 신문을 보니 자기가 죽었다는 기사가 실려 있었습니다. “죽음의 상인 노벨이 죽다” 이 기사는 오보였습니다. 그의 형 루드비히 노벨이 죽었는데 프랑스의 한 신문이 실수로 기사를 잘못 쓴 것입니다. 이 일로 노벨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자신의 삶을 돌이켜 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의 인생을 죽음의 상인으로 마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 불명예를 씻고자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하여 벌어들인 돈을 좋은 일을 위하여 쓰기 시작하였습니다. 마침내 유산의 94%인 3200만 스웨덴 크로나(440만 달러)를 기부하여 노벨상을 제정하였습니다.
신문의 오보로 살아서 자신의 죽음을 발견한 노벨은 다시 태어나게 된 것입니다. 살아서 죽음을 대비하는 사람은 헛되지 않는 삶을 살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회심한 후 이전에 아끼고 소중히 여기던 것을 버리고 배설물처럼 여겼습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빌3: 7, 8)

 
2. 자기 의와 행위를 부인합니다.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눅18:13)
자기 의와 행위를 내세우며 종교적 교만함에 가득찬 바리새인(롬10:3)과는 상반되게 세리는 계속 가슴을 치며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회개하고 애통하며 겸손한 자를 불쌍히 여기시고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10:12)

 
3. 죄와 싸웁니다.
유명한 성 어거스틴이 예수를 믿고 하나님 앞에 돌아온 후, 어느 날 길을 가다가 옛날에 사귀던 여자를 만났습니다. 그 때 어거스틴은 그 여자를 모른 척하고 지나가려고 하는데 그 여자가 따라오더랍니다. “어거스틴, 나예요. 왜 모른 척 지나가는 거예요.”
막무가내로 좇아오는 여자에게 어거스틴은 돌아서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너는 너지만, 나는 내가 아니오. 당신은 당신이지만, 나는 더 이상 내가 아니란 말이오. 난 새로운 사람으로 변했소. 그렇기 때문에 당신이 알던 내가 아니라는 말이오.”
예수님을 믿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는데 아직도 옛사람이 범하는 죄 가운데 계속 거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매일 마음속에서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과의 전쟁이 일어납니다. 이러한 싸움이 없는 자는 아직 회심이 없는 자입니다. 회심한 자는 죄를 짓지 않으려고 마음에서 싸우게 됩니다.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히12:4)

 
4. 하나님께로 돌아섭니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가 후계자로 장남 프랭클린을 택했습니다. 그fp이엄 목사는 지금까지 '빌리 그리어엄 전도협회' 라는 세계적인 규모의 종교 재단을 이끌어 왔습니다. 이 재단은 수차례 한국에서 대형 전도 집회를 개최했으며, 1991년에는 한강시민공원에서 100만 명이라는 기독교 사상 최대의 군중 동원 기록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후계 문제에 대해서는 "하나님만이 알고 있다" 라고 말해 오던 그가 후계자로 장남을 선택한 것입니다. 이에 대해 반대 여론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후계자로 지목된 프랭클린은 문제의 인물로 유명했기 때문입니다. 10대에는 술주정뱅이에 싸움꾼이었고, 대학에서는 퇴학당한 전력까지 있었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목사를 아버지로 두고 있는 그의 삶에서 하나님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는 항상 그레이엄 목사의 기도제목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22세 되는 해에 예루살렘을 방문했을 때 하나님을 만나 거듭나게 된 것입니다.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지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울며 기도하던 세리처럼, 그는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아버지의 하나님을 찾은 것입니다. 그 후 그는 목회자가 되어 자선 단체인 '사마리아인의 지갑' 과 '세계의로사절단' 을 이끌어 왔습니다. 하나님을 잃어버렸던 그가 하나님을 찾게 되자 모든 것이 회복되었습니다.
그들이 우리에 대하여 스스로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너희 가운데에 들어갔는지와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지와(살전1:9)

 
5. 회개의 열매를 맺습니다.
사랑의 교회에 다니고 있는 김용남 씨는 ‘정치깡패 용팔이’로 유명했습니다. 작은 체구지만 골격이 튼튼하고 힘이 장사였던 김 씨는 전국적으로 유명한 싸움꾼이었습니다. 서울에서는 유흥업소를 관리하며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을 처리하는 해결사 역할을 하며 많은 조직들에게 스카우트 제의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1987년도에 ‘용팔이 사건’으로 불리는 정치와 관련된 범죄에 행동대장을 맡았다가 수배가 되어 전국을 도망 다니다가 교도소에 들어갔습니다. 전과 7범인 김 씨는 출소 뒤에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고, 그나마 손대는 사업마다 모두 망했습니다. 돈이 너무 궁했던 김 씨는 평소에 알고 지내던 작곡가 조은파 씨를 찾아갔는데, 이때 조 씨의 권유로 사랑의교회 예배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소천하신 옥한흠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천국에 대해서 알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게 된 김용남 씨는 이때부터 신앙생활을 시작했습니다.
 
2003년부터 시작한 성경 필사를 통해 중이염이 낫고 술, 담배를 끊게 되는 역사가 일어났고, 변화된 김용남 씨의 모습을 보고 온 가족도 교회에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한 번의 교회 출석으로 새로운 삶을 살게 된 김용남 씨는 수천억을 줘도 바꿀 수 없는 자신의 기쁨을 평생 동안 전하겠다며 간증을 통해 계속해서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한 번의 말씀이 평생의 신앙이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말씀이 어떤 의미로 다가오고 있을까요? 오늘 하루 큐티는 생명을 주시는 말씀임을 생각하며 더욱 깊게 한절 한절 묵상해 보십시오.
아그립바 왕이여 그러므로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내가 거스르지 아니하고 먼저 다메섹과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과 유대 온 땅과 이방인에게까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회개에 합당한 일을 하라 전하므로(행26: 19, 20)

 
6. 회심이 지속적으로 더욱 깊어집니다.
회심은 1회성이 아닙니다. 한 번 회심했다고 해서 영원토록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회심했다고 해서 항상 하나님 쪽(편)에서 산다는 것이 아니므로 끊임없이 회개하고 회심이 일어나야 합니다.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행26:19, 20)

 
7.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입으로 시인하고(롬10:10),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고(롬8:15, 16), 예수님을 닮고자 합니다.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빌2:11)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12:3)
 
참된 회심자는 예수님처럼 온유하고 겸손하고 순종하는 성품을 배우고 본받으려합니다(마11:29)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고전11:1)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엡4:13)

 
회심은 새롭게 재창조된 사람이 탄생하는 것입니다. 회심을 통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다시금 회복됩니다. 즉 자연인이 회심하므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됩니다. 이전에는 인격적 관계로 알지 못했던 하나님을 왕으로, 주(主)로, 아버지로 알고 그와 교제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회심은 고통과 부담이 아니라 기쁨이요 즐거움이요 행복이며, 하나님의 은혜요 능력입니다.
부디 많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회심하여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기원합니다.

 
* 기도: 자비하신 주님! 예수님은 나의 주님이십니다. 돈과 쾌락과 권세가 내 주인이 되지 않게 하소서. 특히 내가 주인이 되어 내 중심으로 생각하고 행동하지 않게 하소서. 하나님이 말씀을 통해 삶이 변화되는 놀라운 복을 주소서. 말뿐 아닌 마음과 행동이 따라오는 회심되게 하소서. 믿지 않는 많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시고 말로는 믿는 다고 하면서도 회심하지 못한 기독교인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게 하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 묵상:
0 매일 한 구절의 말씀이라도 깊이 묵상하는 시간을 가지십시오.
0 말씀을 따르고 실천하는 제자의 삶을 사십시오.
0 나의 신앙생활은 나 중심입니까? 하나님 중심입니까?
 
* 갈릴리 공동체 http://cafe.daum.net/Galileecommunity
(http://blog.naver.com/allc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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