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소망교회 카페 블로그 메일 SMS 문자보내기
검색
하나님 사랑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이웃에게 축복의 통로가 되기 원합니다.
카테고리
전체보기 (268)
안내, 알림 (5)
가정, 부모, 부부 (5)
간증, 증인, 기적 (1)
감사, 불평, 원망 (4)
겸손, 온유, 교만 (4)
고난, 역경, 시험 (5)
교육, 훈련, 연습 (4)
교회, 공동체 (8)
구제, 나눔, 베품 (2)
근면, 노력, 성실 (2)
기도 (10)
기쁨, 희락, 웃음 (5)
길, 인도, 홍보 (4)
노인, 허무, 고독 (2)
마음, 정신, 생각 (7)
만남, 관계, 감정 (1)
말, 언어, 입 (4)
믿음, 신앙, 의심 (6)
보호, 반석, 요새 (6)
부활, 성탄, 절기 (1)
부흥, 성장 (1)
복, 축복, 면류관 (2)
봉사, 선행 (4)
비판, 판단, 누명 (2)
빛, 소금 (1)
사랑, 관심 (11)
사명, 은사, 직분 (2)
선택, 약속 (6)
성경, 말씀 (3)
성공, 승리 (5)
소망, 희망 (10)
순종, 뜻 (3)
시간, 기회 (6)
실천, 행함 (2)
십자가, 순교 (6)
영광, 경외, 사모 (2)
예술, 미, 문화 (1)
용서, 관용, 분노 (1)
유머, 농담 (1)
은혜, 구원 (4)
위로, 친절 (4)
이웃, 형제 (2)
인내, 기더림 (4)
자비, 긍휼, 대속 (1)
작은, 큰, 위대 (1)
절제, 사치, 분수 (3)
제자, 군사. 성도 (4)
전도, 복음 (8)
정직, 진실 (2)
지도자, 교사 (1)
지혜, 슬기 (3)
진리, 가치 (6)
평안, 불안, 공포 (2)
찬송, 음악 (12)
책임, 자세, 각오 (1)
천국, 지옥, 낙원 (6)
충성, 오작예수 (2)
친구, 벗, 우정 (2)
편건, 오해, 착각 (1)
하나님, 창조 (4)
학문, 지식, 책 (4)
화목, 좌평, 전쟁 (3)
행복 (4)
헌신, 열심, 미치게 (1)
협동, 하나, 동역 (3)
회개, 거듭남 (3)
지유로운 글 (22)
0
61
하나님의 도우시는 손길 댓글[0]
보호, 반석, 요새 (2014-01-16 오후 12:48:50) http://blog.somang.net/holylove/8055
하나님의 도우시는 손길
 
 
본문: 시139: 10
"곧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프랑스 화가 에밀 리노프의 그림 중에 “돕는 손”이라는 제목의 그림이 있습니다. 1981년에 발표한 그림으로 세계의 명화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넓은 바다에 조그마한 배 한 척이 있습니다. 딱 두 사람밖에 탈 수 없는 정도의 작은 배입니다. 그 배 위에는 늙은 어부가 한 쪽에 앉아서 노를 젓고, 맞은편에는 손녀처럼 보이는 어린 소녀가 할아버지 손 위에 자기 손을 얹고 노를 젓습니다. 소녀는 나름대로 열심히 기쁜 마음으로 웃어가면서 노를 젓고 있습니다. 어린 아이가 노를 젓는 것 같지만, 실은 어디까지나 할아버지 손등 위에다가 자기 손을 휘젓는 것뿐입니다. 이것이 인생입니다. 내가 뭘 하는 것처럼 요란을 떨지만, 결국은 큰 손이 노를 젓고 계시는 것입니다. 거기에 나는 지금 따라가고 있을 뿐입니다.
‘내가 항상 주와 함께 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시73:23)
 
 
가이드포스트에 실린 글입니다. 내가 여섯 살 때 우리는 오클라호마 시에 살았는데 동네에서는 언제나 밤이면 문을 잠그고 빗장을 질렀습니다. 뒷문으로 나가기 위해서 아버지는 안에서 질러진 빚장을 열기 위한 특별한 열쇠를 가지고 다녔습니다. 어느 날밤 나는 천둥과 번개 소리와 쏟아지는 빗소리에 놀라 갑자기 잠이 깨었습니다. 복도를 지나 부모님이 계시는 방으로 달려가는데 거실에서 뿜어 나오는 연기와 불길 때문에 갈 수 없었습니다. 우리 집이 벼락을 맞은 것이었습니다. 나는 밖으로 나가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불길 때문에 앞문으로 갈 수 없었고 뒷문은 자물쇠로 잠겨 있었습니다. 공포가 엄습해오려 할 때에 난 어둠 속에서 따스한 아빠의 손이 복도 아래로 날 이끌어 뒷문을 통해 뒷마당으로 인도해주어 저으기 안심이 되었습니다. 쏟아지는 빗속에 서 있는데 그분은 손을 놓고 사라져 갔습니다. 겁이 난 나는 집을 향해 되돌아섰습니다. 그때 엄마가 "메이시! 메이시!"하고 내 이름을 부르고 있었습니다. "엄마! 여기 밖에 나와 있어요" 나는 대답했습니다. 엄마는 내게 달려왔고 우린 함께 집 앞으로 갔는데 거기에는 아빠가 아기 동생 켄트와 세 살짜리 여동생 에이미를 데리고 서 있었습니다. "메이시, 무사했구나"하고 인도의 한숨을 쉬며 아빠는 말씀하셨습니다.
"널 데리러 가려 했는데 불길 때문에 건너갈 수가 없었어."
아빠는 나를 복도로 이끌어 주지 않았고 뒷문에 질러진 빗장을 열어주지도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 그때가 벌써 12년 전의 일입니다. 나는 지금까지 지내오는 동안 그때 나를 인도해주었던 그 손의 따스한 감촉을 잊지 못합니다. 그 손은 오늘도 어둠 속에서 나를 이끌어주십니다.
‘내가 환난 중에 다닐지라도 주께서 나를 살아나게 하시고 주의 손을 펴사 내 원수들의 분노를 막으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구원하시리이다’(시138:7)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길에서도 주님의 손을 잡고 있는 우리에겐 두려움이 없습니다. 주님의 손이 이끄시는 그 길이 비록 좁고 협착하여도 생명의 길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 붙들린바 된 그 순간부터 주님 앞에 설 그 날 까지 주님의 손을 놓지 않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여호와 그가 네 앞서 행하시며 너와 함께하사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니 너는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신31:8)
 
 
1979년 92세의 나이로 숨질 때까지 열정적으로 일했던 호텔 왕 콘래드 힐튼은 가난한 집안의 8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나 8살 때부터 점원 등으로 일하면서 돈을 벌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호텔 벨 보이로 시작해 점차 다른 호텔들을 인수하는 등 탁월한 수완을 발휘하면서 사업을 확장해 나갔습니다. 하지만 1929년 부터 시작된 미국의 경제 대공황으로 호텔 사업은 사양길에 접어들었고, 결국 힐튼은 천문학적 수치에 달하는 빚더미에 올라앉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힐튼은 호텔 사업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새벽마다 제일 먼저 교회로 나가 이 악몽과 같은 위기를 이겨 낼 수 있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3년이라는 시간이 흘러갔지만 희망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힐튼의 기도는 끊이지 않았습니다. 1933년 가을 어느 날, 지인들이 모아 준 3만 달러로 힐튼의 사업은 회생했습니다. 그리고 힐튼은 파산 위기에 몰렸을 때 지갑에 사진을 넣고 다니며 꿈꾸었던 월도프아스토리아 호텔까지 인수했다. 힐튼은 그 모든 일 위에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길이 함께하심을 느꼈습니다. 그는 알고 있었습니다. 꿈을 이루는 것은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힐튼 호텔은 미국을 넘어 전 세계로 뻗어 나갔습니다. 기도의 사람 힐튼은 하나님이 주신 재물을 귀하게 써야 한다는 청지기 정신으로 1944년 콘래드 힐튼 자선 재단을 설립하고 막대한 재산을 기부했습니다. 하나님은 강한 손으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네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거기서 너를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신5:15)

 
코리텐 붐 여사는 나치 수용소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기적적으로 석방된 이후 세계를 순회하며 전도하는 여생을 살았습니다. 아직 러시아가 소련 공산 체제 아래 있을 때에 그녀는 성경을 가방에 가득 담아 가지고 소련에 가서 나누어 주기로 했습니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은 이 계획이 무모하고 위험한 일이라고 만류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가방 가득 채워서 소련으로 가는 비행기를 탔습니다. 어느덧 비행기는 소련에 도착하였고, 모든 탑승객들은 세관에서 짐 검사를 하기 위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코리 여사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손에 땀이 나게 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녀는 과연 하나님께서 세관원의 눈을 멀게 하셔서 가방 속에 가득 담긴 성경을 발견하지 못하고 통과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세관원 한 사람이 코리 여사를 보더니 이렇게 외쳤습니다. “이것이 할머니 짐이에요? 할머니께서 이렇게 무거운 짐을 들고 다니시는군요. 제가 좀 들어 드리지요.” 그는 이렇게 말하면서 성경이 든 가방을 펼쳐보지도 않고 번쩍 들어서 택시 타는 곳까지 친절하게 옮겨 주었습니다. 믿음을 가지고 실천에 옮기는 사람에게는 이러한 기적이 일어나는 법입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41:10)
 
 
나이지리아의 노예시장. 한 소년이 담배 잎 한 부대와 교환되어 노예로 팔렸습니다. 소년의 가족들도 모두 노예로 팔려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소년은 미국으로 가는 불법 노예선에 태워졌습니다. 그런데 태평양으로 진입하던 노예선이 영국 군함의 검문을 받게 되었습니다. 영국 군인들은 이 배가 불법 노예선임을 눈치 채고 선원들을 모두 나포했습니다.
그때 영국 해군에 속한 군종목사의 시선이 한 곳에 고정되었습니다. 수백 명의 노예들 틈에서 유난히 까만 피부를 가진 소년,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심하게 몸을 떨고 있는 노예 소년을 바라보았습니다. 그의 마음속에 소년에 대한 연민과 사랑이 피어올랐습니다.
“저 소년을 양자(養子)로 삼아야겠다. 소년의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가 찾아오시면 어떻게 변할까.”
군종 목사는 노예소년을 집으로 데려가 양자로 입적하고 교육했습니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났습니다. 나이지리아에서 최초의 감리교 감독 취임예배가 열렸습니다. 나이지리아 기독교 역사의 새로운 장이 시작된 날이었습니다. 이날의 주인공은 위대한 성서학자이며 민족의 지도자인 사무엘 크로우더 목사였습니다. 30년 전 노예선에서 군종목사의 선택을 받았던 바로 그 노예소년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손길은 위대합니다. 하나님은 노예를 성자로 만듭니다. 하나님의 일은 인간이 감히 예측할 수 없습니다. 그 어떤 사람도 하나님의 손길이 닿으면 새롭게 변합니다.
신구약 성경에 하나님의 강한 손이란 표현이 15번 표현되어 있습니다. 신명기5:15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너를 거기서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를 명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 또 누가복음11:20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도우시는 손은 전능하신 능력의 손입니다. 그 손으로 우리를 구해 내시고 그 손으로 마귀를 쫓아내시고 그 손으로 우리를 보호하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강한 손은 지금도 여러분을 이끌며 보호하고 계십니다. 새해에 하나님의 그 강한 손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 기도: 우리를 눈동자같이 보호해주시는 하나님, 주님의 크신 손만 붙잡고 가게 하소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오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십니다. 주님은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님의 큰 손으로 늘 지켜주심을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실진대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내가 놓치고 있는 하나님의 약속을 다시 깨닫고 붙들 수 있게 하소서. 나의 삶 가운데 늘 함께 계시며 또한 나를 위기에서 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의지하여 더욱 담대할 수 있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 갈릴리 공동체 http://cafe.daum.net/Galileecommunity
(http://blog.naver.com/jesuskorea, http://blog.naver.com/allcome)
 

 
이 포스트를...
하나님의 도우시는 손길 댓글[0]
보호, 반석, 요새 (2014-01-16 오후 12:48:50) http://blog.somang.net/holylove/8054
하나님의 도우시는 손길
 
 
본문: 시139: 10
"곧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프랑스 화가 에밀 리노프의 그림 중에 “돕는 손”이라는 제목의 그림이 있습니다. 1981년에 발표한 그림으로 세계의 명화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넓은 바다에 조그마한 배 한 척이 있습니다. 딱 두 사람밖에 탈 수 없는 정도의 작은 배입니다. 그 배 위에는 늙은 어부가 한 쪽에 앉아서 노를 젓고, 맞은편에는 손녀처럼 보이는 어린 소녀가 할아버지 손 위에 자기 손을 얹고 노를 젓습니다. 소녀는 나름대로 열심히 기쁜 마음으로 웃어가면서 노를 젓고 있습니다. 어린 아이가 노를 젓는 것 같지만, 실은 어디까지나 할아버지 손등 위에다가 자기 손을 휘젓는 것뿐입니다. 이것이 인생입니다. 내가 뭘 하는 것처럼 요란을 떨지만, 결국은 큰 손이 노를 젓고 계시는 것입니다. 거기에 나는 지금 따라가고 있을 뿐입니다.
‘내가 항상 주와 함께 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시73:23)
 
 
가이드포스트에 실린 글입니다. 내가 여섯 살 때 우리는 오클라호마 시에 살았는데 동네에서는 언제나 밤이면 문을 잠그고 빗장을 질렀습니다. 뒷문으로 나가기 위해서 아버지는 안에서 질러진 빚장을 열기 위한 특별한 열쇠를 가지고 다녔습니다. 어느 날밤 나는 천둥과 번개 소리와 쏟아지는 빗소리에 놀라 갑자기 잠이 깨었습니다. 복도를 지나 부모님이 계시는 방으로 달려가는데 거실에서 뿜어 나오는 연기와 불길 때문에 갈 수 없었습니다. 우리 집이 벼락을 맞은 것이었습니다. 나는 밖으로 나가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불길 때문에 앞문으로 갈 수 없었고 뒷문은 자물쇠로 잠겨 있었습니다. 공포가 엄습해오려 할 때에 난 어둠 속에서 따스한 아빠의 손이 복도 아래로 날 이끌어 뒷문을 통해 뒷마당으로 인도해주어 저으기 안심이 되었습니다. 쏟아지는 빗속에 서 있는데 그분은 손을 놓고 사라져 갔습니다. 겁이 난 나는 집을 향해 되돌아섰습니다. 그때 엄마가 "메이시! 메이시!"하고 내 이름을 부르고 있었습니다. "엄마! 여기 밖에 나와 있어요" 나는 대답했습니다. 엄마는 내게 달려왔고 우린 함께 집 앞으로 갔는데 거기에는 아빠가 아기 동생 켄트와 세 살짜리 여동생 에이미를 데리고 서 있었습니다. "메이시, 무사했구나"하고 인도의 한숨을 쉬며 아빠는 말씀하셨습니다.
"널 데리러 가려 했는데 불길 때문에 건너갈 수가 없었어."
아빠는 나를 복도로 이끌어 주지 않았고 뒷문에 질러진 빗장을 열어주지도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 그때가 벌써 12년 전의 일입니다. 나는 지금까지 지내오는 동안 그때 나를 인도해주었던 그 손의 따스한 감촉을 잊지 못합니다. 그 손은 오늘도 어둠 속에서 나를 이끌어주십니다.
‘내가 환난 중에 다닐지라도 주께서 나를 살아나게 하시고 주의 손을 펴사 내 원수들의 분노를 막으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구원하시리이다’(시138:7)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길에서도 주님의 손을 잡고 있는 우리에겐 두려움이 없습니다. 주님의 손이 이끄시는 그 길이 비록 좁고 협착하여도 생명의 길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 붙들린바 된 그 순간부터 주님 앞에 설 그 날 까지 주님의 손을 놓지 않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여호와 그가 네 앞서 행하시며 너와 함께하사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니 너는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신31:8)
 
 
1979년 92세의 나이로 숨질 때까지 열정적으로 일했던 호텔 왕 콘래드 힐튼은 가난한 집안의 8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나 8살 때부터 점원 등으로 일하면서 돈을 벌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호텔 벨 보이로 시작해 점차 다른 호텔들을 인수하는 등 탁월한 수완을 발휘하면서 사업을 확장해 나갔습니다. 하지만 1929년 부터 시작된 미국의 경제 대공황으로 호텔 사업은 사양길에 접어들었고, 결국 힐튼은 천문학적 수치에 달하는 빚더미에 올라앉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힐튼은 호텔 사업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새벽마다 제일 먼저 교회로 나가 이 악몽과 같은 위기를 이겨 낼 수 있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3년이라는 시간이 흘러갔지만 희망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힐튼의 기도는 끊이지 않았습니다. 1933년 가을 어느 날, 지인들이 모아 준 3만 달러로 힐튼의 사업은 회생했습니다. 그리고 힐튼은 파산 위기에 몰렸을 때 지갑에 사진을 넣고 다니며 꿈꾸었던 월도프아스토리아 호텔까지 인수했다. 힐튼은 그 모든 일 위에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길이 함께하심을 느꼈습니다. 그는 알고 있었습니다. 꿈을 이루는 것은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힐튼 호텔은 미국을 넘어 전 세계로 뻗어 나갔습니다. 기도의 사람 힐튼은 하나님이 주신 재물을 귀하게 써야 한다는 청지기 정신으로 1944년 콘래드 힐튼 자선 재단을 설립하고 막대한 재산을 기부했습니다. 하나님은 강한 손으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네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거기서 너를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신5:15)

 
코리텐 붐 여사는 나치 수용소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기적적으로 석방된 이후 세계를 순회하며 전도하는 여생을 살았습니다. 아직 러시아가 소련 공산 체제 아래 있을 때에 그녀는 성경을 가방에 가득 담아 가지고 소련에 가서 나누어 주기로 했습니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은 이 계획이 무모하고 위험한 일이라고 만류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가방 가득 채워서 소련으로 가는 비행기를 탔습니다. 어느덧 비행기는 소련에 도착하였고, 모든 탑승객들은 세관에서 짐 검사를 하기 위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코리 여사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손에 땀이 나게 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녀는 과연 하나님께서 세관원의 눈을 멀게 하셔서 가방 속에 가득 담긴 성경을 발견하지 못하고 통과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세관원 한 사람이 코리 여사를 보더니 이렇게 외쳤습니다. “이것이 할머니 짐이에요? 할머니께서 이렇게 무거운 짐을 들고 다니시는군요. 제가 좀 들어 드리지요.” 그는 이렇게 말하면서 성경이 든 가방을 펼쳐보지도 않고 번쩍 들어서 택시 타는 곳까지 친절하게 옮겨 주었습니다. 믿음을 가지고 실천에 옮기는 사람에게는 이러한 기적이 일어나는 법입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41:10)
 
 
나이지리아의 노예시장. 한 소년이 담배 잎 한 부대와 교환되어 노예로 팔렸습니다. 소년의 가족들도 모두 노예로 팔려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소년은 미국으로 가는 불법 노예선에 태워졌습니다. 그런데 태평양으로 진입하던 노예선이 영국 군함의 검문을 받게 되었습니다. 영국 군인들은 이 배가 불법 노예선임을 눈치 채고 선원들을 모두 나포했습니다.
그때 영국 해군에 속한 군종목사의 시선이 한 곳에 고정되었습니다. 수백 명의 노예들 틈에서 유난히 까만 피부를 가진 소년,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심하게 몸을 떨고 있는 노예 소년을 바라보았습니다. 그의 마음속에 소년에 대한 연민과 사랑이 피어올랐습니다.
“저 소년을 양자(養子)로 삼아야겠다. 소년의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가 찾아오시면 어떻게 변할까.”
군종 목사는 노예소년을 집으로 데려가 양자로 입적하고 교육했습니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났습니다. 나이지리아에서 최초의 감리교 감독 취임예배가 열렸습니다. 나이지리아 기독교 역사의 새로운 장이 시작된 날이었습니다. 이날의 주인공은 위대한 성서학자이며 민족의 지도자인 사무엘 크로우더 목사였습니다. 30년 전 노예선에서 군종목사의 선택을 받았던 바로 그 노예소년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손길은 위대합니다. 하나님은 노예를 성자로 만듭니다. 하나님의 일은 인간이 감히 예측할 수 없습니다. 그 어떤 사람도 하나님의 손길이 닿으면 새롭게 변합니다.
신구약 성경에 하나님의 강한 손이란 표현이 15번 표현되어 있습니다. 신명기5:15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너를 거기서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를 명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 또 누가복음11:20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도우시는 손은 전능하신 능력의 손입니다. 그 손으로 우리를 구해 내시고 그 손으로 마귀를 쫓아내시고 그 손으로 우리를 보호하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강한 손은 지금도 여러분을 이끌며 보호하고 계십니다. 새해에 하나님의 그 강한 손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 기도: 우리를 눈동자같이 보호해주시는 하나님, 주님의 크신 손만 붙잡고 가게 하소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오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십니다. 주님은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님의 큰 손으로 늘 지켜주심을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실진대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내가 놓치고 있는 하나님의 약속을 다시 깨닫고 붙들 수 있게 하소서. 나의 삶 가운데 늘 함께 계시며 또한 나를 위기에서 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의지하여 더욱 담대할 수 있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 갈릴리 공동체 http://cafe.daum.net/Galileecommunity
(http://blog.naver.com/jesuskorea, http://blog.naver.com/allcome)
 

 
이 포스트를...
절제의 열매를 맺자 댓글[0]
절제, 사치, 분수 (2014-01-13 오후 12:21:46) http://blog.somang.net/holylove/8053
절제의 열매를 맺자
 
본문: 딛1:7-8
  "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근신하며 아담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딤전3:2)
 
 새해 벽두에 파산을 한 사람과 크게 성공한 기업가가 함께 기자회견을 하게 되었습니다. 먼저 파산한 사람에게 기자가 "실패의 요인이 무엇이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낭비였습니다. 사업이 한창 잘 될 때 돈을 종이처럼 썼죠."
 이번엔 성공한 재벌에게 기자가 "기업이 일어선 요인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절제였습니다. 사업이 한창 잘 될 때 종이를 금처럼 썼죠."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절제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절제할 줄 아는 것이 사람입니다.
 사람이 항상 편안한 집에서 재미있는 음악이나 감상하고 맛좋은 음식이나 즐기고 살겠다고 하면 사람으로 똑바로 사는 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는 육신의 욕망에 너무 마음을 쓰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루소는 "절제와 노동은 가장 훌륭한 두 의사들이다. 노동은 식욕을 돋구고 절제는 지나친 탐닉을 막는다"라고 했고, 에드워드는 "절제와 육신과의 관계는 종교와 영혼과의 관계와 같다. 또한 절제는 건강과 힘과 평안의 기초요, 근원이다."라고 했으며, 중국격언에 "절제는 최선의 양약이다." "진정한 행복은 절제에서 솟아난다"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들은 절제를 강조했고 절제 생활에 힘썼습니다. 그런데 오늘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것이 문제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욕망을 절제하기보다는 될수록 많이 표현하고, 많이 충족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사실 무엇이나 지나치면 폐단과 비극이 생기는 법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하나의 변함없는 리듬이 있습니다. 밤이 가고 낮이 오고 춘하추동 네 계절이 어김없이 바뀝니다. 이것은 자연의 리듬입니다. 생명과 생활에도 리듬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얼마의 돈을 벌어서 얼마의 돈을 쓰면서 삽니다. 이것은 경제생활의 리듬입니다. 이 리듬이 아름다운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이것이 건전한 생활이요 행복한 생활입니다. 이 리듬이 깨어질 때 심신의 병이 생기고 생활의 타락이 옵니다. 사람이 사는 데는 절도가 있어야합니다. 무슨 일이든 '이만해야 된다. 이 이상해서는 안 된다.'는 정도가 있습니다. 그 올바른 정도를 지키는 것이 절도요, 절도 있는 생활을 하는 것이 절제입니다. 절제하지 않고 과용할 때 방탕이니 낭비니 무리니, 탐욕이니 이런 여러 가지 형태의 악이 생깁니다.
 이 악이 우리의 생명을 단축시키고, 정신을 병들게 하고, 생활을 가난하게 하고, 도덕을 타락시키고, 사회를 부패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자신의 분수를 알고, 분수를 지키고, 분수에 만족할 줄 알아야 합니다. 돈을 낭비하면 가난뱅이가 되고, 건강을 낭비하면 병자가 되고, 정신을 낭비하면 폐인이 되고, 시간을 낭비하면 패자가 되고, 정력을 낭비하면 쓸모 없는 사람이 됩니다. 우리는 절제하는 사람이 되어 절제하는 사회를 건설해야 합니다. 절제에는 극기와 용기의 덕이 필요합니다. 극기와 용기와 덕이 없이는 절제의 생활이 불가능합니다. 지금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과소비입니다. 과소비의 부작용이 지금 이 사회의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최근 외국 언론들이 일하기 싫어하고 향락을 추구하는 우리의 풍토를 꼬집기도 했습니다. 절제와 건전한 생활과 사회의 건설, 이것은 우리 누구나가 꼭 실행해야 할 일입니다. 그래야 내가 살고, 나라가 살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 크리스천부터 절제와 절약운동을 펼쳐야 하겠습니다. 지나친 낭비와 소비로 인해 환경까지 오염시키는 일이 성행하고 있는 이때 그리스도인은 절제와 절약을 통해 자녀들에게 낭비하지 않는 습관을 길러주고 전등하나, 휴지 한 조각도 아끼는 정신을 심어주어야 합니다.
 구세군 창설자 윌리엄 부스는 어려운 곳만을 찾아다닌 사람입니다. 그는 교회로부터 일체의 생활비를 받지 않았습니다. 그저 저작물에 의한 수입에만 의존했습니다. 여유 돈은 모두 가난한 이웃들에게 나눠주었고 진수성찬을 대해도 토스트 두 조각, 뜨거운 홍차, 계란과 과일을 조금 먹을 뿐입니다. 그런 그를 보고 주위 사람들은 "검소함으로 천국에 이를 사람"이라고 평가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부스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던 것은 그가 어려운 이웃을 돕는 선행을 베풀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몸소 검소함을 실천에 옮겼기 때문입니다. 절제의 미덕은 항상 흐트러진 풍요로움을 압도하는 법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지녀야 할 절제란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어떤 죄악이나 잘못된 습관의 지배 아래 있지 않도록 스스로를 다스리는 것을 말합니다. 절제는 먹는 일, 마시는 일, 성생활, 감정 표현, 혀를 사용하는 일, 시간 사용, 등 우리 생활 전반에 걸쳐 꼭 필요한 요소입니다. 절제와 반대되는 것들은 성적 부도덕, 불순종, 게으름, 방탕함, 우상숭배, 증오, 질투, 시기, 술수, 원수 맺는 것, 분쟁, 당 짓는 것, 변덕스러운 감정, 술취함과 방탕함 등입니다. "절제"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절제하지 않으면 우리는 쉽사리 사단의 희생물이 되어 자기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에게까지 심한 피해를 입힙니다. 우리는 우리 앞에 깨끗한 목표를 두고, 올바른 방향감각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딤전3:2,11)
 
북미에서 유적을 탐사하던 답사단이 한 오지에서 광부가 기거했던 것으로 보이는 오두막집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그 집안에서 두 개의 해골과 많은 금을 발견했습니다. 왜 두 광부는 많은 금을 모으고 죽었을까? 한 단원이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이들은 금을 계속 캐는 욕심에 북쪽은 일찍 겨울이 온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들은 적당량의 금을 갖고 빨리 이곳을 떠났어야 했습니다. 엄청난 눈보라를 맞았을 땐 이미 식량도 바닥나 있었을 것입니다. 물론 금은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었겠죠" 욕심의 끝은 멸망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나친 욕심을 절제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깊은 산 속에 사는 멧돼지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먹이를 찾아서 어슬렁거리다가 뜻밖에 많은 도토리들이 땅바닥에 널려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멧돼지는 정신없이 다 주워 먹었습니다. 그런데도 양이 차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멧돼지는 낙엽을 파헤쳐 보았습니다. 그러자 그곳에서 여러 알의 도토리들이 또 나왔습니다. 미련한 멧돼지는 맛있는 도토리가 땅속에서 나오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래서 먹고 나면 계속해서 땅을 깊이 파헤치기만 했습니다. 결국 도토리 나무가 견디지 못하고 멧돼지 위로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멧돼지는 도토리 나무에 깔려 죽고 말았습니다. 인간의 욕심은 이와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자녀인 우리에게 언제나 좋은 것을 주십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만족하고 감사하면서 살지 못할까요? 욕심 때문입니다. 욕심으로 무엇을 얻으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좋은 것은 위에 계신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욕심으로 무엇을 얻으려고 하다가는 미련한 멧돼지처럼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에 보면 성령의 9가지 열매중의 하나가 바로 절제라고 말합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5:22-23) 삶의 절제가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하고 싶은 일일지라도 불의한 것이라면 단호하게 절제할 줄 알아야 합니다. 아무리 하기 싫은 일일지라도 하나님의 뜻이라 하면 감당할 수 있는 용기를 낼 수 있어야 합니다. 마음을 제대로 절제하지 못한 사람은 성벽이 없는 성과 같다고 이야기합니다. "자기의 마음을 제어하지 아니하는 자는 성읍이 무너지고 성벽이 없는 것 같으니라"(잠25:28)
 그리고 절제하는 생활은 우리 삶을 승리하게 합니다.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고전9:25) 이 말씀은 인생 승리는 자기를 절제할 수 있는 사람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 믿는 사람들도 절제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마음속에 새겨두고 절제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첫째, 물질에 대한 절제력이 있어야 합니다.
물질은 삶의 도구이지, 삶의 목표가 아닙니다. 물질에 대해 절제하지 못함으로 인해서 탐관오리들이 생기지 않습니까? 물질에 대하여 절제하지 못함으로 인해서 물질의 노예가 된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얼마나 많은 범죄가 물질로 인해서 일어납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사는 사람은 물질에 대해 절제할 줄 알아야 합니다. 옛날 중국의 주나라에 어진 신하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왕이 "나라가 잘살게 되었는데 왜 식탁에 상아젓가락이 오르지 않고 아직도 나무젓가락이 오르는가."라고 불평했습니다. 이때부터 어진 신하는 몹시 근심하며 두문불출했습니다. 동료들이 근심의 연유를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상아 젓가락이 대수롭지 않은 것 같아도 그게 아니네. 상아 젓가락을 장만하면 그 다음은 금그릇이요, 그 다음은 산해진미요, 그 다음은 금상이요, 그 다음은 아방궁을 장만하려 할 것인데 그러면 백성들이 고통당할 것 아닌가."
 
둘째, 육신의 정욕을 제어하고, 이성관계를 절제할 줄 알아야 합니다.(갈5:19- 21)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벧전2:11)
이성관계가 잘못되어서 패가망신한 경우와 가정 파탄이 일어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음란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는 언제 에이즈 병에 걸리고 암 병에 걸릴지 모릅니다. 앞으로는 절제하는 사람만이 살아남게 될 것입니다.
"만일 절제할 수 없거든 혼인하라 정욕이 불같이 타는 것보다 혼인하는 것이 나으니라"(고전7:9)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 대할 줄을 알고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이 색욕을 따르지 말고”(살전4:3-5)
 
셋째, 자기 감정을 절제해야 됩니다.
 영국에 유명한 성악가 헤비 라우더 경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분이 영국의 큰 극장에서 독창을 하는데 노래하는 도중, "당신의 아들이 전선에서 싸우다가 전사를 당했습니다."라는 전보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 때 웬만한 사람이면 이 독창회를 그만두고 집에 달려갔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라우더 경은 자식이 전쟁터에서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무대 뒤에서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노래를 불렀는데 전보다 더욱 영감 있는 독창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독창회를 다 끝내고 스코틀랜드의 자기 집에 돌아가 기다리던 아내와 함께 눈물을 흘리며 기도를 드렸습니다. "이렇게 된 것도 하나님의 뜻인 줄로 믿습니다." 눈물의 상황 속에서 자신의 감정을 절제할 수 있는 사람, 그는 절제라는 성령의 열매를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화를 낼 수밖에 없는 때가 있고, 남을 미워할 수밖에 없는 때가 있습니다. 여러 가지로 마음 상할 때가 많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감정에 치우쳐서는 안 됩니다. 동물은 감정과 본능에 의해서 생존하지만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때로는 감정과 본능을 이겨갈 수 있는 이성적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보십시오. 때로는 화내고 싶을 때도 계셨고, 배신감을 되씹을 때도 계셨고, 자기를 모욕하는 사람도 있었고, 오해하는 사람도 있었고, 죽이려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원수까지 사랑하라." 하시면서 십자가를 지고 가셨습니다. 그래도 "원수까지 사랑하라." 하시면서 십자가를 지고 가셨습니다. 자기 감정을 이겨 가신 분입니다. 자기의 감정을 절제할 줄 아셨습니다.
 
넷째, 말에 대해 절제해야 합니다.(시39:1,2)
터어키 남쪽에 있는 타우러스 산맥에는 두루미들이 많이 살고 있는데, 이들이 꽥꽥거리는 울음소리는 유난히 크고 시끄럽다고 합니다. 특히 이 두루미들은 하늘을 날 때 더 큰소리를 내는데, 이로 인해 많은 두루미들이 독수리에게 잡아먹힌다고 합니다. 때문에 경험이 많아 노련해진 두루미들은 날기 전에 자갈을 문다고 합니다. 우리에게도 노련해진 두루미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말하는 입에 대해 절제해야 합니다.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키 어려우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잠10:19)

 
다섯째, 명예욕에 대해 절제가 있어야 합니다. 명예욕이 지나치면 바리새인들처럼 외식하는 자가 되고, 사람에게 칭찬 듣고, 잘 보이려고 힘쓰면 자연히 하나님과 멀어지게 되고 하나님의 미움을 받는 자가 됩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마6:1)
 
여섯째, 먹는 것에 절제가 있어야 합니다.음식은 골고루 잘 먹어야 하지만 과식은 금물입니다. 과식하면 암이 잘 걸린다는 것이 현대의학에서 입증돼 있습니다. 과식하는 사람의 혈액에는 프리 래디컬(free-radical)이 급증합니다. 프리 래디컬은 활성산소라고 하며 이 활성산소가 동맥경화를 유발하고 노화를 촉진시키며 특히 암을 일으킨다는 것이 일찍이 밝혀졌습니다. 노화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인 미국 UCLA(캘리포니아대학 로스앤젤레스 분교) 월포드 박사는 실험을 통해 적게 먹은 쥐가 30% 정도 수명이 연장된다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이는 먹을 때에 각각 자기의 만찬을 먼저 갖다 먹으므로 어떤 사람은 시장하고 어떤 사람은 취함이라’(고전11:21)
‘율법을 지키는 자는 지혜로운 아들이요 음식을 탐하는 자와 사귀는 자는 아비를 욕되게 하는 자니라’(잠28:7)
 
화창한 어느 가을날, 한 농부가 토실토실하게 여문 옥수수를 엮어 나뭇가지에 매달았습니다. 한 다람쥐가 그 광경을 숨어서 지켜보았습니다. 그리고는 날마다 농부의 눈을 피해 옥수수가 매달려 있는 나뭇가지에 올라가 배가 터지도록 옥수수를 먹어댔습니다. 며칠 후 농부는 나무 밑에 떨어져 죽어 있는 다람쥐를 발견했습니다. 너무 먹어 둔해진 몸을 이끌고 내려오다 발을 헛디뎠던 것입니다. 우리들도 이 다람쥐처럼 절제를 하지 못해 실패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술취하고 탐식하지 말아야 합니다.(잠23: 21, 29- 35)
 
일곱째, 몸을 더럽히는 것에 대한 절제가 있어야 합니다.
술이나 담배, 마약, 도박 등 몸을 더럽히는 일을 절제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한국에 75%의 사람들이 술 담배를 하고 청소년들의 70%가 흡연하며 여대생들도 독실한 신앙인이 아니고는 거의 다 맥주를 마시고 못 마시면 도리어 바보 취급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칼빈은 "술 취함이 모든 악덕의 근원이 된다"고 했습니다. 어느 집사님이 미국에서 거지가 되어 얻어먹는 사람을 만나 얘기하다보니, 판사요, 법학 박사였는데 왜 그렇게 되었느냐고 하니까, 어느 날 화장실에서 나오다가 아는 사람을 만나 한 번 해보라고 마약을 주 길래 장난삼아 한 번 한 것이, 차츰차츰 중독이 되어 가정이 파탄되고, 변호사업도 못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마귀가 자기 멸망의 때가 얼마 남지 않았기에 육신의 쾌락으로 인간들을 타락시키며 멸망의 구렁텅이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여덟째, 과소비, 사치, 향락, 즐길 거리에 대한 절제가 있어야 합니다. 지금이야말로 과소비를 버리고 새롭게 태어날 때입니다. 현대사회에서 소비를 안하고 살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과소비는 생활을 망치는 독소입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제논은 허영이 가득하고 돈을 마구 쓰는 제자가 있다는 말을 듣고 그를 불러 사실여부를 물었습니다. 그런데 그 제자는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그만한 돈이 있어서 쓰는데 무엇이 잘못되었다는 말입니까?"라며 건방진 태도를 취했습니다. 그러자 제논은 엄한 목소리로 야단쳤습니다. "그러면 소금이 많이 있다고 요리하는 사람이 음식에 소금을 마구 집어넣어도 된다는 말인가?"
 
돈을 낭비하면 가난뱅이가 되고, 건강을 낭비하면 병자가 되고, 시간을 낭비하면 패자가 되고, 정력을 낭비하면 쓸모 없는 사람이 됩니다. 절제하지 않을 때 사치와 방탕과 탐욕 등 여러 가지 형태의 악이 생깁니다. 우리는 사치하지 말고 과소비를 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신앙인들에게 주어진 하나의 중요한 의무가 있습니다. 그것은 <목적과 책임이 있는 생활을 할 의무>입니다. 우리는 인생을 책임 있게 살아야 합니다. 자기 좋다고 자기만을 위해서 살면 안됩니다. 오늘이 좋다고 오늘만을 위해서 살아서도 안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그리고 훗날 내 이름의 아름다운 평가를 위해 살아야 합니다. 특히 신앙인들은 사치를 부려서는 안됩니다. 자신을 위해서는 적게 사용하고 좋은 일을 위해서는 인색해서는 안됩니다. 회갑 잔치를 위해서 천만 원을 사용하는 것을 줄여서 뜻 있고 소중한 일을 위해 그 일부를 믿음의 정도에 따라 사용할 줄 아는 성숙함이 있어야 합니다. 자녀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목적과 가치를 심어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분별력 있게 살도록 가르치는 것이 우리의 최우선적인 교육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어느 초등학교에서는 한 반에 두 명의 아이만 국산품 운동화를 신고 있다고 합니다. 운동화는 국산품이 어느 나라 제품에 못지 않은데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부모들이 아이들의 기를 살려 준다고 그렇게 한다고 합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부모들은 아이들을 붙잡고 이렇게 이해를 시켜야 합니다. "얘야, 국산품 하나도 뒤지지 않는다. 그런데 사치 때문에 외제를 사는 것은 오히려 안 좋은 것이란다." 그렇게 이해를 구하면 아이는 더 잘 자라게 될 것입니다. 성도는 항상 성실하고 진실한 자세를 가지고 살기를 힘써야 합니다. 과장하는 자세! 이것은 사람을 돋보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불성실하게 보이도록 만듭니다. 그래서 과장이 심하면 내실이 없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내실이 있는 사람은 구태여 과장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진짜 부자는 오히려 검소한 모습을 보이는 것 같습니다.
 
영국에서 헨리 4세 때 백성들이 너무 사치를 하니까 왕이 마지막으로 이런 담화를 발표했습니다. "국민 여러분, 사치하지 말고 검소하게 삽시다." 그 말을 누가 듣겠습니까? 그래서 담화문 밑에 한 줄 더 집어넣었습니다. "단, 창녀와 사기꾼은 예외입니다." 그러자 얼마 후에 사치 풍조가 사라졌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아홉째, 많이 잠자는 것을 절제해야 합니다.(막13:36, 37, 롬13:11)
잠을 잘 자는 것이 보약입니다. 그만큼 하루를 잘 보냈다는 증거입니다. 내일 하루 더 잘 뛸 수 있다는 신호입니다. 세상모르게 푹 잠든 내 사람의 모습이 더없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보입니다.(시127:2) 그러나 잠자는 것도 절제가 있어야 합니다.
‘좀더 자자, 좀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더 눕자 하면 네 빈궁이 강도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같이 이르리라’(잠6:10∼11)
‘너는 잠자기를 좋아하지 말라 네가 빈궁하게 될까 두려우니라 네 눈을 뜨라 그리하면 양식에 족하리라’(잠20:13)
"술 취하고 탐식하는 자는 가난하여질 것이요 잠자기를 즐겨하는 자는 해어진 옷을 입을 것임이니라"(잠23:21)

 
절제를 제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따를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성을 품을 수가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삶인 경건성을 유지해 갈 수 있습니다. 절제하는 생활이 있어야 합니다. 절제는 육체적 경건입니다. 그것은 거룩한 명령을 육신에 보전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사치와 허영, 낭비는 큰 죄악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크리스천들은 검소하고 깨끗한 삶의 모습을 세상에 보여줄 수 있도록 절제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절제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1. 소망을 가지므로 절제할 수 있습니다.(고전9:25) 제가 잘 아는 홀어머니 한 분이 부산에 계십니다. 그분은 행랑을 하시고 콩나물 장사를 하시면서 자식들을 교육시키셨습니다. 자식들이 다 성공하고 장성했는데도 자식들과 같이 살지 않으시고 혼자 자그마한 오두막집에서 사셨습니다. 자식들이 “어머니, 이제는 아파트로 이사 가시지요. 아니면 단독 주택으로 옮겨가시게 해 드릴게요”하며 졸라대자 어느 날 어머니는 자식들을 불러 놓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들이 정 원한다면 나를 위해 집을 한 채 지어라. 내가 원하는 집은 바닥을 반드시 유리로 지어야 하느니라. 유리뿐만 아니라 기둥을 꼭 12개를 세워야 한다. 그리고 그 기둥의 밑바닥은 반드시 보석을 박아야 하는데, 그 보석의 색깔이 다 달라야 하고 문은 12개 만들어야 한다.” 자식들은 “어머니, 농담하지 마세요. 그런 집이 어디 있어요?” 하자, “없으면 그만둬라. 나는 그 집을 하늘 나라에 갖고 있으니…”라고 했다고 합니다. 소박하고 검소한 삶 속에서도 위축되지 않고, 또한 자식들에게 기대지 않고 당당하게 사셨던 이 어머니의 삶의 비밀은 무엇일까요? 빛나고 영광스러운 상속에 대한 소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소망이 있다면, 이 땅에서의 삶이 때때로 우리를 지치게 하고 낙망하게 한다 할지라도 위축될 필요가 없으며, 절제하고 검소한 삶을 살게 합니다.
 
2. 성령을 힘입어야 절제할 수 있습니다.(갈5:22-23) 성령 충만한 사람은 세상 욕심을 버리고 절제할 수 있습니다. 어느 소년이 무화과나무와 개암나무 열매가 잔뜩 들어 있는 주전자 속에 그 손을 집어넣었습니다. 소년을 그 주먹에 쥘 수 있을 만큼 한껏 쥐었는데, 주먹을 끄집어내려 하니 주전자의 모가지가 가늘어 잘 되지 않았습니다. 열매는 조금도 잃고 싶지 않고, 그렇다고 그 손을 끄집어 낼 수도 없고, 소년은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더니 그 불운을 몹시 탄식하며 슬퍼했습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한 충실하고 정직한 사나이가 소년에게, 이런 현명한 조언을 해 주었습니다. "얘야, 지금의 그 반만 쥐어 보렴, 그렇게 하면 당장 잘 될거다."
 
3. 바른 교훈을 받음으로 절제할 수 있습니다."오직 너는 바른 교훈에 합한 것을 말하여, 늙은 남자로는 절제하며 경건하며 근신하며 믿음과 사랑과 인내함에 온전케 하라"(딛2:1-2)
 
4. 인내하여야 절제할 수 있습니다.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벧후1:5-7)인생은 정말 짧습니다. 우리는 곧 하나님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주어진 것을 가지고 절제와 검소함을 통해서 하나님이 기뻐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내가 사는 길이고, 우리 민족이 사는 길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참다운 기독교 정신일 것입니다.
 
*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주신 말씀처럼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형제 우애를, 형제의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고 하셨습니다. 특별히 우리에게 절제하는 마음을 주시옵소서. 모든 생활에서 절제할 수 있도록 성령님께서 우리를 주장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한태완 
 
* 2부: 분반(구역)공부 자료
 
1. 말씀:
 
절제 성령의 열매로 언급된 절제는 원래 ‘권력이나 지배에 대해 스스로를 다스리는 힘’, 곧 자제력을 뜻합니다. 만약 사회의 지도층 인사들이 자제력을 상실한다면, 서민들은 불안과 공포에 하루라도 마음 편할 날이 없게 될 것입니다. 또한 일반 사람들도 절제를 상실하면 가정이나 일터나 삶의 모든 자리에 혼란과 무질서가 난무하게 될 것입니다. 절제는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귀중한 덕목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절제할 내용들을 살펴보는 일은 우리의 삶에 매우 유익하리라 생각합니다.
 첫째, 우리는 육체의 정욕을 절제하는 것입니다. 육욕에는 지나친 식욕과 무절제한 성욕 등이 있습니다. 자신의 몸과 관련한 이런 정욕은 불건전하며 또한 건강에 해로움을 끼칩니다. 성욕과 관련하여 성경은 “만일 절제할 수 없거든 혼인하라 정욕이 불같이 타는 것보다 혼인하는 것이 나으니라”(고전 7:9)고 가르칩니다. 성적 욕구는 혼인관계를 통해 정상적으로 성립됩니다. 그리고 과식은 몸속의 각 기관들에 무리를 초래함으로서 질병을 유발시킬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몸은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입니다. 더 이상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 몸의 주인으로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육체의 정욕에 대해 절제하는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둘째, 우리는 생각(마음)과 말을 절제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은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 4:23)고 말씀합니다. 생각은 말을 지배하고 말은 행동을 유발시킵니다. 생각이 온전해야 말과 행동이 온전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이해관계에 따라 바뀔 수 있는 나약한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통제할 수 있도록 항상 깨어 기도하고 말씀으로 무장하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이런 훈련을 통해 우리의 생각과 말은 절제가 됩니다. 셋째, 우리는 권력욕과 명예욕을 절제해야 합니다. 사람이 권력이나 명예를 갖게 되면 더 큰 야먕을 품게 됩니다. 큰 권력이나 명예에는 강력한 절제가 동반돼야 합니다. 이것은 통치의 차원이기 때문에 사회에 대한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권력의 남용이나 명예의 오용은 나라와 사회와 모든 공동체에 해악과 수치를 초래하기 때문에 절제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려면 절제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과 명예에 대한 지나친 욕심을 절제함으로서 우리도 하나님의 성품을 공유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절제는 성령의 열매이기 때문에 우리가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드리고 의지함으로서 절제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2. 묵상 및 토의
 
0 나는 육체의 정욕의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해 절제하고 있는가?0 나는 무슨 일에서나 분수를 지키는가?0 나는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고 있지 않는가?
0 다른 사람이 시험에 들지 않도록 나의 행동이나 말을 절제했던 경험이 있습니까?
0 내가 절제하기 힘들었던 것을 이야기 해봅시다.
0 오늘 말씀을 통해 내가 실천해야 할 점이나 앞으로의 나의 결심, 각오, 다짐 등을 이야기 해보세요
 
3. 예화: 절제와 덕
 
벤자민 플랭크린, 그는 가난한 청교도 집안에서 태어나 평생 학교라고는 1년 밖에 다녀 보지 못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어머니의 교육과 마아트 목사님의 청교도 교육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어려서부터 열심히 일하는 것과 독서하는 것을 체득했다. 그는 미국의 철학회 창시자가 되었고, 피뢰침의 발명가가 되었고, 초대 프랑스 대사로 파견되기도 했다. 그는 “재산을 얻기 위해 덕을 팔지 말고 권력을 얻기 위해 자유를 팔지 말라”는 뼈있는 말을 남겼다. 또한, 그는 어릴 때부터 13가지 덕목을 정해서 평생 지켰다. 그 덕목의 첫 번째는 ‘절제’이다. 사도 바울도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하였다. 성경에서는 덕의 최우선 지침을 ‘절제’로 보고 있다. 절제하는 자는 덕을 세우는 것이며, 덕을 세우는 자는 절제하는 자이며, 그는 시험에 빠지지도 않으며, 시험 들게 하지도 않는다. 덕은 헬라말로, ‘집을 세운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덕성은 세우는 힘을 가지고 있다. 미국 사람들은 “미는 멸망해도 덕은 멸망하지 않는다.”는 속담을 가지고 있다.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 찌니라”(롬15:2)
 
4. 절제에 관한 성경, 금언:
 
0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롬13:13)
0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 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벧후1:5-7)
0 술과 기름을 좋아하는 자는 부하게 되지 못하느니라(잠21: 17)
0 술을 즐기는 자와 고기를 탐하는 자로 더불어 사귀지 말라.. (잠23:20)
0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엡5:18)
0 고기도 먹지 아니하고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고 무엇이든 네 형제로 거리끼게 하는 일을 아니함이 아름다우니라(롬14:21)
0 여인과 돈과 술에는 즐거움과 독이 있다.(프랑스 격언)
0 폭주는 인간을 배고프게 하고, 자학이요 자살이다.
0 술과 여자는 현명한 사람을 망치고 작은 것을 멸시하는 자는 점점 가난해 진다.
0 사람이 술을 마시고, 술이 술을 마시며, 술이, 사람을 마신다.(한국 속담)
0 바다에 빠져 죽은 사람보다 술에 빠져 죽은 사람이 더 많다.(시루스)
0 마음을 수양하는 데는 욕심을 적게 함 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
0 논밭은 잡초 때문에, 사람은 탐욕 때문에 손해를 본다.
0 노동은 적당한 때 시작하고 향락은 적당한 때 끝맺어라.
0 세상에는 지나치게 많이 쓰면 안되는 것 셋이 있다. 그것은 빵의 누룩, 소 금, 망설임이다.
0 절제는 욕심과 욕망의 감정을 다스리는 것인데, 절제를 못하면 재난을 당한다
 
5. 절제 표어
0 타오르는 연기 속에 꺼져 가는 나의 생명
0 마약 만진 당신의 손, 자녀 얼굴 만질 텐가?
0 세 살 절제는 여든 살 건강, 오늘 절제는 내일의 건강
0 지금 내뿜는 담배연기는 당신 가족의 눈물입니다
0 습관화된 절제생활, 평생건강 보장한다
0 쉽게 보낸 1분1초, 두 번 다시 오지 않네
0 남들보다 앞선 학교, 절제하는 우리 학교
0 건강한 몸 깨끗한 맘, 절제 속에 이뤄진다
0 어리석은 호기심, 평생건강 저해한다
 

* 갈릴리 공동체 http://cafe.daum.net/Galileecommunity
(http://blog.naver.com/jesuskorea, http://blog.naver.com/allcome)

 
이 포스트를...
절제의 열매를 맺자 댓글[0]
절제, 사치, 분수 (2014-01-13 오후 12:21:45) http://blog.somang.net/holylove/8052
절제의 열매를 맺자
 
본문: 딛1:7-8
  "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근신하며 아담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딤전3:2)
 
 새해 벽두에 파산을 한 사람과 크게 성공한 기업가가 함께 기자회견을 하게 되었습니다. 먼저 파산한 사람에게 기자가 "실패의 요인이 무엇이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낭비였습니다. 사업이 한창 잘 될 때 돈을 종이처럼 썼죠."
 이번엔 성공한 재벌에게 기자가 "기업이 일어선 요인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절제였습니다. 사업이 한창 잘 될 때 종이를 금처럼 썼죠."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절제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절제할 줄 아는 것이 사람입니다.
 사람이 항상 편안한 집에서 재미있는 음악이나 감상하고 맛좋은 음식이나 즐기고 살겠다고 하면 사람으로 똑바로 사는 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는 육신의 욕망에 너무 마음을 쓰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루소는 "절제와 노동은 가장 훌륭한 두 의사들이다. 노동은 식욕을 돋구고 절제는 지나친 탐닉을 막는다"라고 했고, 에드워드는 "절제와 육신과의 관계는 종교와 영혼과의 관계와 같다. 또한 절제는 건강과 힘과 평안의 기초요, 근원이다."라고 했으며, 중국격언에 "절제는 최선의 양약이다." "진정한 행복은 절제에서 솟아난다"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들은 절제를 강조했고 절제 생활에 힘썼습니다. 그런데 오늘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것이 문제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욕망을 절제하기보다는 될수록 많이 표현하고, 많이 충족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사실 무엇이나 지나치면 폐단과 비극이 생기는 법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하나의 변함없는 리듬이 있습니다. 밤이 가고 낮이 오고 춘하추동 네 계절이 어김없이 바뀝니다. 이것은 자연의 리듬입니다. 생명과 생활에도 리듬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얼마의 돈을 벌어서 얼마의 돈을 쓰면서 삽니다. 이것은 경제생활의 리듬입니다. 이 리듬이 아름다운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이것이 건전한 생활이요 행복한 생활입니다. 이 리듬이 깨어질 때 심신의 병이 생기고 생활의 타락이 옵니다. 사람이 사는 데는 절도가 있어야합니다. 무슨 일이든 '이만해야 된다. 이 이상해서는 안 된다.'는 정도가 있습니다. 그 올바른 정도를 지키는 것이 절도요, 절도 있는 생활을 하는 것이 절제입니다. 절제하지 않고 과용할 때 방탕이니 낭비니 무리니, 탐욕이니 이런 여러 가지 형태의 악이 생깁니다.
 이 악이 우리의 생명을 단축시키고, 정신을 병들게 하고, 생활을 가난하게 하고, 도덕을 타락시키고, 사회를 부패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자신의 분수를 알고, 분수를 지키고, 분수에 만족할 줄 알아야 합니다. 돈을 낭비하면 가난뱅이가 되고, 건강을 낭비하면 병자가 되고, 정신을 낭비하면 폐인이 되고, 시간을 낭비하면 패자가 되고, 정력을 낭비하면 쓸모 없는 사람이 됩니다. 우리는 절제하는 사람이 되어 절제하는 사회를 건설해야 합니다. 절제에는 극기와 용기의 덕이 필요합니다. 극기와 용기와 덕이 없이는 절제의 생활이 불가능합니다. 지금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과소비입니다. 과소비의 부작용이 지금 이 사회의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최근 외국 언론들이 일하기 싫어하고 향락을 추구하는 우리의 풍토를 꼬집기도 했습니다. 절제와 건전한 생활과 사회의 건설, 이것은 우리 누구나가 꼭 실행해야 할 일입니다. 그래야 내가 살고, 나라가 살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 크리스천부터 절제와 절약운동을 펼쳐야 하겠습니다. 지나친 낭비와 소비로 인해 환경까지 오염시키는 일이 성행하고 있는 이때 그리스도인은 절제와 절약을 통해 자녀들에게 낭비하지 않는 습관을 길러주고 전등하나, 휴지 한 조각도 아끼는 정신을 심어주어야 합니다.
 구세군 창설자 윌리엄 부스는 어려운 곳만을 찾아다닌 사람입니다. 그는 교회로부터 일체의 생활비를 받지 않았습니다. 그저 저작물에 의한 수입에만 의존했습니다. 여유 돈은 모두 가난한 이웃들에게 나눠주었고 진수성찬을 대해도 토스트 두 조각, 뜨거운 홍차, 계란과 과일을 조금 먹을 뿐입니다. 그런 그를 보고 주위 사람들은 "검소함으로 천국에 이를 사람"이라고 평가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부스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던 것은 그가 어려운 이웃을 돕는 선행을 베풀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몸소 검소함을 실천에 옮겼기 때문입니다. 절제의 미덕은 항상 흐트러진 풍요로움을 압도하는 법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지녀야 할 절제란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어떤 죄악이나 잘못된 습관의 지배 아래 있지 않도록 스스로를 다스리는 것을 말합니다. 절제는 먹는 일, 마시는 일, 성생활, 감정 표현, 혀를 사용하는 일, 시간 사용, 등 우리 생활 전반에 걸쳐 꼭 필요한 요소입니다. 절제와 반대되는 것들은 성적 부도덕, 불순종, 게으름, 방탕함, 우상숭배, 증오, 질투, 시기, 술수, 원수 맺는 것, 분쟁, 당 짓는 것, 변덕스러운 감정, 술취함과 방탕함 등입니다. "절제"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절제하지 않으면 우리는 쉽사리 사단의 희생물이 되어 자기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에게까지 심한 피해를 입힙니다. 우리는 우리 앞에 깨끗한 목표를 두고, 올바른 방향감각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딤전3:2,11)
 
북미에서 유적을 탐사하던 답사단이 한 오지에서 광부가 기거했던 것으로 보이는 오두막집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그 집안에서 두 개의 해골과 많은 금을 발견했습니다. 왜 두 광부는 많은 금을 모으고 죽었을까? 한 단원이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이들은 금을 계속 캐는 욕심에 북쪽은 일찍 겨울이 온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들은 적당량의 금을 갖고 빨리 이곳을 떠났어야 했습니다. 엄청난 눈보라를 맞았을 땐 이미 식량도 바닥나 있었을 것입니다. 물론 금은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었겠죠" 욕심의 끝은 멸망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나친 욕심을 절제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깊은 산 속에 사는 멧돼지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먹이를 찾아서 어슬렁거리다가 뜻밖에 많은 도토리들이 땅바닥에 널려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멧돼지는 정신없이 다 주워 먹었습니다. 그런데도 양이 차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멧돼지는 낙엽을 파헤쳐 보았습니다. 그러자 그곳에서 여러 알의 도토리들이 또 나왔습니다. 미련한 멧돼지는 맛있는 도토리가 땅속에서 나오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래서 먹고 나면 계속해서 땅을 깊이 파헤치기만 했습니다. 결국 도토리 나무가 견디지 못하고 멧돼지 위로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멧돼지는 도토리 나무에 깔려 죽고 말았습니다. 인간의 욕심은 이와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자녀인 우리에게 언제나 좋은 것을 주십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만족하고 감사하면서 살지 못할까요? 욕심 때문입니다. 욕심으로 무엇을 얻으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좋은 것은 위에 계신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욕심으로 무엇을 얻으려고 하다가는 미련한 멧돼지처럼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에 보면 성령의 9가지 열매중의 하나가 바로 절제라고 말합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5:22-23) 삶의 절제가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하고 싶은 일일지라도 불의한 것이라면 단호하게 절제할 줄 알아야 합니다. 아무리 하기 싫은 일일지라도 하나님의 뜻이라 하면 감당할 수 있는 용기를 낼 수 있어야 합니다. 마음을 제대로 절제하지 못한 사람은 성벽이 없는 성과 같다고 이야기합니다. "자기의 마음을 제어하지 아니하는 자는 성읍이 무너지고 성벽이 없는 것 같으니라"(잠25:28)
 그리고 절제하는 생활은 우리 삶을 승리하게 합니다.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고전9:25) 이 말씀은 인생 승리는 자기를 절제할 수 있는 사람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 믿는 사람들도 절제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마음속에 새겨두고 절제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첫째, 물질에 대한 절제력이 있어야 합니다.
물질은 삶의 도구이지, 삶의 목표가 아닙니다. 물질에 대해 절제하지 못함으로 인해서 탐관오리들이 생기지 않습니까? 물질에 대하여 절제하지 못함으로 인해서 물질의 노예가 된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얼마나 많은 범죄가 물질로 인해서 일어납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사는 사람은 물질에 대해 절제할 줄 알아야 합니다. 옛날 중국의 주나라에 어진 신하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왕이 "나라가 잘살게 되었는데 왜 식탁에 상아젓가락이 오르지 않고 아직도 나무젓가락이 오르는가."라고 불평했습니다. 이때부터 어진 신하는 몹시 근심하며 두문불출했습니다. 동료들이 근심의 연유를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상아 젓가락이 대수롭지 않은 것 같아도 그게 아니네. 상아 젓가락을 장만하면 그 다음은 금그릇이요, 그 다음은 산해진미요, 그 다음은 금상이요, 그 다음은 아방궁을 장만하려 할 것인데 그러면 백성들이 고통당할 것 아닌가."
 
둘째, 육신의 정욕을 제어하고, 이성관계를 절제할 줄 알아야 합니다.(갈5:19- 21)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벧전2:11)
이성관계가 잘못되어서 패가망신한 경우와 가정 파탄이 일어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음란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는 언제 에이즈 병에 걸리고 암 병에 걸릴지 모릅니다. 앞으로는 절제하는 사람만이 살아남게 될 것입니다.
"만일 절제할 수 없거든 혼인하라 정욕이 불같이 타는 것보다 혼인하는 것이 나으니라"(고전7:9)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 대할 줄을 알고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이 색욕을 따르지 말고”(살전4:3-5)
 
셋째, 자기 감정을 절제해야 됩니다.
 영국에 유명한 성악가 헤비 라우더 경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분이 영국의 큰 극장에서 독창을 하는데 노래하는 도중, "당신의 아들이 전선에서 싸우다가 전사를 당했습니다."라는 전보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 때 웬만한 사람이면 이 독창회를 그만두고 집에 달려갔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라우더 경은 자식이 전쟁터에서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무대 뒤에서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노래를 불렀는데 전보다 더욱 영감 있는 독창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독창회를 다 끝내고 스코틀랜드의 자기 집에 돌아가 기다리던 아내와 함께 눈물을 흘리며 기도를 드렸습니다. "이렇게 된 것도 하나님의 뜻인 줄로 믿습니다." 눈물의 상황 속에서 자신의 감정을 절제할 수 있는 사람, 그는 절제라는 성령의 열매를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화를 낼 수밖에 없는 때가 있고, 남을 미워할 수밖에 없는 때가 있습니다. 여러 가지로 마음 상할 때가 많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감정에 치우쳐서는 안 됩니다. 동물은 감정과 본능에 의해서 생존하지만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때로는 감정과 본능을 이겨갈 수 있는 이성적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보십시오. 때로는 화내고 싶을 때도 계셨고, 배신감을 되씹을 때도 계셨고, 자기를 모욕하는 사람도 있었고, 오해하는 사람도 있었고, 죽이려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원수까지 사랑하라." 하시면서 십자가를 지고 가셨습니다. 그래도 "원수까지 사랑하라." 하시면서 십자가를 지고 가셨습니다. 자기 감정을 이겨 가신 분입니다. 자기의 감정을 절제할 줄 아셨습니다.
 
넷째, 말에 대해 절제해야 합니다.(시39:1,2)
터어키 남쪽에 있는 타우러스 산맥에는 두루미들이 많이 살고 있는데, 이들이 꽥꽥거리는 울음소리는 유난히 크고 시끄럽다고 합니다. 특히 이 두루미들은 하늘을 날 때 더 큰소리를 내는데, 이로 인해 많은 두루미들이 독수리에게 잡아먹힌다고 합니다. 때문에 경험이 많아 노련해진 두루미들은 날기 전에 자갈을 문다고 합니다. 우리에게도 노련해진 두루미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말하는 입에 대해 절제해야 합니다.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키 어려우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잠10:19)

 
다섯째, 명예욕에 대해 절제가 있어야 합니다. 명예욕이 지나치면 바리새인들처럼 외식하는 자가 되고, 사람에게 칭찬 듣고, 잘 보이려고 힘쓰면 자연히 하나님과 멀어지게 되고 하나님의 미움을 받는 자가 됩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마6:1)
 
여섯째, 먹는 것에 절제가 있어야 합니다.음식은 골고루 잘 먹어야 하지만 과식은 금물입니다. 과식하면 암이 잘 걸린다는 것이 현대의학에서 입증돼 있습니다. 과식하는 사람의 혈액에는 프리 래디컬(free-radical)이 급증합니다. 프리 래디컬은 활성산소라고 하며 이 활성산소가 동맥경화를 유발하고 노화를 촉진시키며 특히 암을 일으킨다는 것이 일찍이 밝혀졌습니다. 노화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인 미국 UCLA(캘리포니아대학 로스앤젤레스 분교) 월포드 박사는 실험을 통해 적게 먹은 쥐가 30% 정도 수명이 연장된다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이는 먹을 때에 각각 자기의 만찬을 먼저 갖다 먹으므로 어떤 사람은 시장하고 어떤 사람은 취함이라’(고전11:21)
‘율법을 지키는 자는 지혜로운 아들이요 음식을 탐하는 자와 사귀는 자는 아비를 욕되게 하는 자니라’(잠28:7)
 
화창한 어느 가을날, 한 농부가 토실토실하게 여문 옥수수를 엮어 나뭇가지에 매달았습니다. 한 다람쥐가 그 광경을 숨어서 지켜보았습니다. 그리고는 날마다 농부의 눈을 피해 옥수수가 매달려 있는 나뭇가지에 올라가 배가 터지도록 옥수수를 먹어댔습니다. 며칠 후 농부는 나무 밑에 떨어져 죽어 있는 다람쥐를 발견했습니다. 너무 먹어 둔해진 몸을 이끌고 내려오다 발을 헛디뎠던 것입니다. 우리들도 이 다람쥐처럼 절제를 하지 못해 실패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술취하고 탐식하지 말아야 합니다.(잠23: 21, 29- 35)
 
일곱째, 몸을 더럽히는 것에 대한 절제가 있어야 합니다.
술이나 담배, 마약, 도박 등 몸을 더럽히는 일을 절제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한국에 75%의 사람들이 술 담배를 하고 청소년들의 70%가 흡연하며 여대생들도 독실한 신앙인이 아니고는 거의 다 맥주를 마시고 못 마시면 도리어 바보 취급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칼빈은 "술 취함이 모든 악덕의 근원이 된다"고 했습니다. 어느 집사님이 미국에서 거지가 되어 얻어먹는 사람을 만나 얘기하다보니, 판사요, 법학 박사였는데 왜 그렇게 되었느냐고 하니까, 어느 날 화장실에서 나오다가 아는 사람을 만나 한 번 해보라고 마약을 주 길래 장난삼아 한 번 한 것이, 차츰차츰 중독이 되어 가정이 파탄되고, 변호사업도 못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마귀가 자기 멸망의 때가 얼마 남지 않았기에 육신의 쾌락으로 인간들을 타락시키며 멸망의 구렁텅이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여덟째, 과소비, 사치, 향락, 즐길 거리에 대한 절제가 있어야 합니다. 지금이야말로 과소비를 버리고 새롭게 태어날 때입니다. 현대사회에서 소비를 안하고 살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과소비는 생활을 망치는 독소입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제논은 허영이 가득하고 돈을 마구 쓰는 제자가 있다는 말을 듣고 그를 불러 사실여부를 물었습니다. 그런데 그 제자는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그만한 돈이 있어서 쓰는데 무엇이 잘못되었다는 말입니까?"라며 건방진 태도를 취했습니다. 그러자 제논은 엄한 목소리로 야단쳤습니다. "그러면 소금이 많이 있다고 요리하는 사람이 음식에 소금을 마구 집어넣어도 된다는 말인가?"
 
돈을 낭비하면 가난뱅이가 되고, 건강을 낭비하면 병자가 되고, 시간을 낭비하면 패자가 되고, 정력을 낭비하면 쓸모 없는 사람이 됩니다. 절제하지 않을 때 사치와 방탕과 탐욕 등 여러 가지 형태의 악이 생깁니다. 우리는 사치하지 말고 과소비를 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신앙인들에게 주어진 하나의 중요한 의무가 있습니다. 그것은 <목적과 책임이 있는 생활을 할 의무>입니다. 우리는 인생을 책임 있게 살아야 합니다. 자기 좋다고 자기만을 위해서 살면 안됩니다. 오늘이 좋다고 오늘만을 위해서 살아서도 안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그리고 훗날 내 이름의 아름다운 평가를 위해 살아야 합니다. 특히 신앙인들은 사치를 부려서는 안됩니다. 자신을 위해서는 적게 사용하고 좋은 일을 위해서는 인색해서는 안됩니다. 회갑 잔치를 위해서 천만 원을 사용하는 것을 줄여서 뜻 있고 소중한 일을 위해 그 일부를 믿음의 정도에 따라 사용할 줄 아는 성숙함이 있어야 합니다. 자녀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목적과 가치를 심어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분별력 있게 살도록 가르치는 것이 우리의 최우선적인 교육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어느 초등학교에서는 한 반에 두 명의 아이만 국산품 운동화를 신고 있다고 합니다. 운동화는 국산품이 어느 나라 제품에 못지 않은데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부모들이 아이들의 기를 살려 준다고 그렇게 한다고 합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부모들은 아이들을 붙잡고 이렇게 이해를 시켜야 합니다. "얘야, 국산품 하나도 뒤지지 않는다. 그런데 사치 때문에 외제를 사는 것은 오히려 안 좋은 것이란다." 그렇게 이해를 구하면 아이는 더 잘 자라게 될 것입니다. 성도는 항상 성실하고 진실한 자세를 가지고 살기를 힘써야 합니다. 과장하는 자세! 이것은 사람을 돋보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불성실하게 보이도록 만듭니다. 그래서 과장이 심하면 내실이 없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내실이 있는 사람은 구태여 과장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진짜 부자는 오히려 검소한 모습을 보이는 것 같습니다.
 
영국에서 헨리 4세 때 백성들이 너무 사치를 하니까 왕이 마지막으로 이런 담화를 발표했습니다. "국민 여러분, 사치하지 말고 검소하게 삽시다." 그 말을 누가 듣겠습니까? 그래서 담화문 밑에 한 줄 더 집어넣었습니다. "단, 창녀와 사기꾼은 예외입니다." 그러자 얼마 후에 사치 풍조가 사라졌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아홉째, 많이 잠자는 것을 절제해야 합니다.(막13:36, 37, 롬13:11)
잠을 잘 자는 것이 보약입니다. 그만큼 하루를 잘 보냈다는 증거입니다. 내일 하루 더 잘 뛸 수 있다는 신호입니다. 세상모르게 푹 잠든 내 사람의 모습이 더없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보입니다.(시127:2) 그러나 잠자는 것도 절제가 있어야 합니다.
‘좀더 자자, 좀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더 눕자 하면 네 빈궁이 강도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같이 이르리라’(잠6:10∼11)
‘너는 잠자기를 좋아하지 말라 네가 빈궁하게 될까 두려우니라 네 눈을 뜨라 그리하면 양식에 족하리라’(잠20:13)
"술 취하고 탐식하는 자는 가난하여질 것이요 잠자기를 즐겨하는 자는 해어진 옷을 입을 것임이니라"(잠23:21)

 
절제를 제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따를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성을 품을 수가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삶인 경건성을 유지해 갈 수 있습니다. 절제하는 생활이 있어야 합니다. 절제는 육체적 경건입니다. 그것은 거룩한 명령을 육신에 보전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사치와 허영, 낭비는 큰 죄악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크리스천들은 검소하고 깨끗한 삶의 모습을 세상에 보여줄 수 있도록 절제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절제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1. 소망을 가지므로 절제할 수 있습니다.(고전9:25) 제가 잘 아는 홀어머니 한 분이 부산에 계십니다. 그분은 행랑을 하시고 콩나물 장사를 하시면서 자식들을 교육시키셨습니다. 자식들이 다 성공하고 장성했는데도 자식들과 같이 살지 않으시고 혼자 자그마한 오두막집에서 사셨습니다. 자식들이 “어머니, 이제는 아파트로 이사 가시지요. 아니면 단독 주택으로 옮겨가시게 해 드릴게요”하며 졸라대자 어느 날 어머니는 자식들을 불러 놓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들이 정 원한다면 나를 위해 집을 한 채 지어라. 내가 원하는 집은 바닥을 반드시 유리로 지어야 하느니라. 유리뿐만 아니라 기둥을 꼭 12개를 세워야 한다. 그리고 그 기둥의 밑바닥은 반드시 보석을 박아야 하는데, 그 보석의 색깔이 다 달라야 하고 문은 12개 만들어야 한다.” 자식들은 “어머니, 농담하지 마세요. 그런 집이 어디 있어요?” 하자, “없으면 그만둬라. 나는 그 집을 하늘 나라에 갖고 있으니…”라고 했다고 합니다. 소박하고 검소한 삶 속에서도 위축되지 않고, 또한 자식들에게 기대지 않고 당당하게 사셨던 이 어머니의 삶의 비밀은 무엇일까요? 빛나고 영광스러운 상속에 대한 소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소망이 있다면, 이 땅에서의 삶이 때때로 우리를 지치게 하고 낙망하게 한다 할지라도 위축될 필요가 없으며, 절제하고 검소한 삶을 살게 합니다.
 
2. 성령을 힘입어야 절제할 수 있습니다.(갈5:22-23) 성령 충만한 사람은 세상 욕심을 버리고 절제할 수 있습니다. 어느 소년이 무화과나무와 개암나무 열매가 잔뜩 들어 있는 주전자 속에 그 손을 집어넣었습니다. 소년을 그 주먹에 쥘 수 있을 만큼 한껏 쥐었는데, 주먹을 끄집어내려 하니 주전자의 모가지가 가늘어 잘 되지 않았습니다. 열매는 조금도 잃고 싶지 않고, 그렇다고 그 손을 끄집어 낼 수도 없고, 소년은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더니 그 불운을 몹시 탄식하며 슬퍼했습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한 충실하고 정직한 사나이가 소년에게, 이런 현명한 조언을 해 주었습니다. "얘야, 지금의 그 반만 쥐어 보렴, 그렇게 하면 당장 잘 될거다."
 
3. 바른 교훈을 받음으로 절제할 수 있습니다."오직 너는 바른 교훈에 합한 것을 말하여, 늙은 남자로는 절제하며 경건하며 근신하며 믿음과 사랑과 인내함에 온전케 하라"(딛2:1-2)
 
4. 인내하여야 절제할 수 있습니다.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벧후1:5-7)인생은 정말 짧습니다. 우리는 곧 하나님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주어진 것을 가지고 절제와 검소함을 통해서 하나님이 기뻐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내가 사는 길이고, 우리 민족이 사는 길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참다운 기독교 정신일 것입니다.
 
*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주신 말씀처럼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형제 우애를, 형제의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고 하셨습니다. 특별히 우리에게 절제하는 마음을 주시옵소서. 모든 생활에서 절제할 수 있도록 성령님께서 우리를 주장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한태완 
 
* 2부: 분반(구역)공부 자료
 
1. 말씀:
 
절제 성령의 열매로 언급된 절제는 원래 ‘권력이나 지배에 대해 스스로를 다스리는 힘’, 곧 자제력을 뜻합니다. 만약 사회의 지도층 인사들이 자제력을 상실한다면, 서민들은 불안과 공포에 하루라도 마음 편할 날이 없게 될 것입니다. 또한 일반 사람들도 절제를 상실하면 가정이나 일터나 삶의 모든 자리에 혼란과 무질서가 난무하게 될 것입니다. 절제는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귀중한 덕목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절제할 내용들을 살펴보는 일은 우리의 삶에 매우 유익하리라 생각합니다.
 첫째, 우리는 육체의 정욕을 절제하는 것입니다. 육욕에는 지나친 식욕과 무절제한 성욕 등이 있습니다. 자신의 몸과 관련한 이런 정욕은 불건전하며 또한 건강에 해로움을 끼칩니다. 성욕과 관련하여 성경은 “만일 절제할 수 없거든 혼인하라 정욕이 불같이 타는 것보다 혼인하는 것이 나으니라”(고전 7:9)고 가르칩니다. 성적 욕구는 혼인관계를 통해 정상적으로 성립됩니다. 그리고 과식은 몸속의 각 기관들에 무리를 초래함으로서 질병을 유발시킬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몸은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입니다. 더 이상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 몸의 주인으로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육체의 정욕에 대해 절제하는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둘째, 우리는 생각(마음)과 말을 절제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은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 4:23)고 말씀합니다. 생각은 말을 지배하고 말은 행동을 유발시킵니다. 생각이 온전해야 말과 행동이 온전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이해관계에 따라 바뀔 수 있는 나약한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통제할 수 있도록 항상 깨어 기도하고 말씀으로 무장하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이런 훈련을 통해 우리의 생각과 말은 절제가 됩니다. 셋째, 우리는 권력욕과 명예욕을 절제해야 합니다. 사람이 권력이나 명예를 갖게 되면 더 큰 야먕을 품게 됩니다. 큰 권력이나 명예에는 강력한 절제가 동반돼야 합니다. 이것은 통치의 차원이기 때문에 사회에 대한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권력의 남용이나 명예의 오용은 나라와 사회와 모든 공동체에 해악과 수치를 초래하기 때문에 절제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려면 절제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과 명예에 대한 지나친 욕심을 절제함으로서 우리도 하나님의 성품을 공유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절제는 성령의 열매이기 때문에 우리가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드리고 의지함으로서 절제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2. 묵상 및 토의
 
0 나는 육체의 정욕의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해 절제하고 있는가?0 나는 무슨 일에서나 분수를 지키는가?0 나는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고 있지 않는가?
0 다른 사람이 시험에 들지 않도록 나의 행동이나 말을 절제했던 경험이 있습니까?
0 내가 절제하기 힘들었던 것을 이야기 해봅시다.
0 오늘 말씀을 통해 내가 실천해야 할 점이나 앞으로의 나의 결심, 각오, 다짐 등을 이야기 해보세요
 
3. 예화: 절제와 덕
 
벤자민 플랭크린, 그는 가난한 청교도 집안에서 태어나 평생 학교라고는 1년 밖에 다녀 보지 못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어머니의 교육과 마아트 목사님의 청교도 교육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어려서부터 열심히 일하는 것과 독서하는 것을 체득했다. 그는 미국의 철학회 창시자가 되었고, 피뢰침의 발명가가 되었고, 초대 프랑스 대사로 파견되기도 했다. 그는 “재산을 얻기 위해 덕을 팔지 말고 권력을 얻기 위해 자유를 팔지 말라”는 뼈있는 말을 남겼다. 또한, 그는 어릴 때부터 13가지 덕목을 정해서 평생 지켰다. 그 덕목의 첫 번째는 ‘절제’이다. 사도 바울도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하였다. 성경에서는 덕의 최우선 지침을 ‘절제’로 보고 있다. 절제하는 자는 덕을 세우는 것이며, 덕을 세우는 자는 절제하는 자이며, 그는 시험에 빠지지도 않으며, 시험 들게 하지도 않는다. 덕은 헬라말로, ‘집을 세운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덕성은 세우는 힘을 가지고 있다. 미국 사람들은 “미는 멸망해도 덕은 멸망하지 않는다.”는 속담을 가지고 있다.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 찌니라”(롬15:2)
 
4. 절제에 관한 성경, 금언:
 
0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롬13:13)
0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 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벧후1:5-7)
0 술과 기름을 좋아하는 자는 부하게 되지 못하느니라(잠21: 17)
0 술을 즐기는 자와 고기를 탐하는 자로 더불어 사귀지 말라.. (잠23:20)
0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엡5:18)
0 고기도 먹지 아니하고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고 무엇이든 네 형제로 거리끼게 하는 일을 아니함이 아름다우니라(롬14:21)
0 여인과 돈과 술에는 즐거움과 독이 있다.(프랑스 격언)
0 폭주는 인간을 배고프게 하고, 자학이요 자살이다.
0 술과 여자는 현명한 사람을 망치고 작은 것을 멸시하는 자는 점점 가난해 진다.
0 사람이 술을 마시고, 술이 술을 마시며, 술이, 사람을 마신다.(한국 속담)
0 바다에 빠져 죽은 사람보다 술에 빠져 죽은 사람이 더 많다.(시루스)
0 마음을 수양하는 데는 욕심을 적게 함 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
0 논밭은 잡초 때문에, 사람은 탐욕 때문에 손해를 본다.
0 노동은 적당한 때 시작하고 향락은 적당한 때 끝맺어라.
0 세상에는 지나치게 많이 쓰면 안되는 것 셋이 있다. 그것은 빵의 누룩, 소 금, 망설임이다.
0 절제는 욕심과 욕망의 감정을 다스리는 것인데, 절제를 못하면 재난을 당한다
 
5. 절제 표어
0 타오르는 연기 속에 꺼져 가는 나의 생명
0 마약 만진 당신의 손, 자녀 얼굴 만질 텐가?
0 세 살 절제는 여든 살 건강, 오늘 절제는 내일의 건강
0 지금 내뿜는 담배연기는 당신 가족의 눈물입니다
0 습관화된 절제생활, 평생건강 보장한다
0 쉽게 보낸 1분1초, 두 번 다시 오지 않네
0 남들보다 앞선 학교, 절제하는 우리 학교
0 건강한 몸 깨끗한 맘, 절제 속에 이뤄진다
0 어리석은 호기심, 평생건강 저해한다
 

* 갈릴리 공동체 http://cafe.daum.net/Galileecommunity
(http://blog.naver.com/jesuskorea, http://blog.naver.com/allcome)

 
이 포스트를...
돈보다 믿음이 소중합니다. 댓글[0]
믿음, 신앙, 의심 (2014-01-11 오전 10:08:08) http://blog.somang.net/holylove/8051
돈보다 믿음이 소중합니다.
 
 
본문: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 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돈이 무엇보다도 귀중하게 여겨지는 시대입니다. 교회에서도 돈이 귀하게 여겨집니다. 교회의 크고 작은 활동들에 돈이 개입되지 않는 경우가 없습니다. 교육도, 전도도, 봉사도, 구제도 거의 대부분 돈이 없이는 할 수 없어 보입니다. 그러다 보니 교회를 평가하는 기준도 돈이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헌금이 많이 나오며 돈을 많이 쓸 수 있는 교회일수록 성장하는 교회, 부흥하는 교회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이런 모습은 신자 개개인의 신앙생활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주님을 향한 헌신을 일종의 투자로 여기는 교인들마저 있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헌금을 복의 기준으로 삼아 헌금을 많이 하면 물질의 축복이 클 것이라고 착각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받을 축복도 돈이면 더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이렇듯 돈이 개인과 가정과 교회에서 많은 위력을 발휘하는 현실입니다. 그러나 신앙생활과 인생살이에서 일어나는 여러 일들을 돈이 결정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되면 돈이 우상이 되고 맙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풍요를 위해 바알 우상을 섬긴 것과 결코 다르지 않습니다. 우상숭배는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명하신 계명 중 첫 번째 계명이 ‘우상숭배하지 말라’인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돈이 우상이 되면 안됩니다. 탐심은 우상숭배입니다. (골3:5)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6:24)
 
성령을 돈으로 사려고 했던 마술사 시몬의 어리석음이, 은혜라는 이름 아래 우리에게도 반복되지는 않습니까? 우상숭배를 하는 큰 죄를 범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반드시 우리 자신과 가정, 교회의 안팎을 잘 살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돈과 함께 우리도 망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돈을 사랑하는 자는 만족함이 없습니다. 돈은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지 않으며, 우리는 태어날 때 벌거벗고 왔고, 저 세상 갈 때도 아무 것도 없이 빈손으로 갑니다. (전5:10- 15)
‘부자 되기에 애쓰지 말고 네 사사로운 지혜를 버릴지어다 네가 어찌 허무한 것에 주목하겠느냐 정녕히 재물은 스스로 날개를 내어 하늘을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가리라’(잠23:4,5)
 
 
종교 개혁자 칼빈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우리의 문제는 교회에서 돈에 대해 너무 많이 이야기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돈에 대해서 바르게 이야기하지 않는 것에 있다.” 존 웨슬리도 비슷한 말을 남겼습니다. “나는 주머니가 회개하지 않는 사람의 회개를 믿을 수 없다.” 복음을 듣고서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새사람이 되었다면 제일 먼저 변화가 있어야 할 삶의 영역 중의 하나가 ‘돈의 사용처’ 라고 생각합니다. 경제생활은 우리의 가치관이 민감하게 반영되는 영역입니다. 더군다나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생겼고, 하나님 앞에 정말 감사하게 나 자신을 드리고 싶다고 할 때 그의 헌금 생활의 태도가 달라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헌금’이라는 것은 한 사람이 어느 정도로 헌신하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이라고 생각합니다. 헌금 행위야말로 우리의 헌신 행위의 본질을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돈의 씀씀이를 알면 그 사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돈 쓰임새야말로 우리의 인생관, 가치관, 세계관을 대변해주는 삶의 영역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참된 헌금은 내 삶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대한 응답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생각하는 의식의 결정체가 우리의 헌신이어야 하고 또, 우리의 헌금이어야 합니다.(잠3:9) 따라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헌금은 믿음으로 드려야 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11:6)

 
마가복음 10장 21- 22절과 누가복음 18장 22- 23절에 보면 한 부자 청년이 예수님을 따르고자 할 때 예수님께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다 나눠주고 나를 따르라’ 하자 이 말씀을 듣고 심히 근심하고 돌아간 말씀이 나옵니다. 이 청년은 예수님 보다 돈을 더 사랑하였기에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는 기회를 놓쳤습니다.
 
이 세상에는 돈(물질)보다 더 소중한 것들이 많습니다. 예를 들면 시간, 건강, 명예(잠22:1), 부모형제, 자유, 국가, 지혜(잠3:15, 잠16:16) 등입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소중한 것은 생명입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마16:26)
 
이처럼 생명이 소중하지만, 이 생명을 바쳐서라도 소중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믿음(신앙)입니다. 많은 순교자들이 믿음을 지키기 위해 생명을 버렸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2:8)
 
이 믿음의 선물을 받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믿음은 들음에서 납니다.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습니다.(롬10:17)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을 읽어야 믿음이 생깁니다.
성경에 보면 믿음의 대표적인 인물로 아브라함과 기생 라합을 들고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의 믿음이 산믿음이라고 했습니다.(약2:21- 25)
기생 라합은 여행객 손님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애굽과 광야에서 행하신 일들의 소문을 들음으로 믿음이 생겼고, 믿음을 행함으로 구원을 얻었습니다(수2:8-24)
우리가 교회를 왜 나갑니까? 사람들과 교제하려 나갑니까? 물론 그런 것도 있겠지요?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목사님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기 위해서입니다. 말씀이 내 안에 거해야 성령님이 역사 하십니다. 믿음이 생깁니다. 그런데 목사들 중에는 거짓목사, 삯꾼 목사들이 있습니다. 돈을 밝히는 지도자들입니다. 부자교인들의 헌물로 배불리운 자입니다. (갤34:2-5, 슥11:16) 또한 성경을 제멋대로 해석하거나 말씀 한 두 구절을 가르치면서 온갖 세상 이야기하다가 설교를 마치는 엉터리 목사들이 있습니다. 지도자 선택을 잘해야 합니다. 물질에 깨끗하고 믿음이 좋은 지도자를 선택해야 합니다. 대부분의 성도는 담임목사보다 더 큰 믿음을 갖기 어렵습니다. 담임목사의 외모나 학벌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가 얼마나 하나님 앞에 바르고 굳건한 신앙을 가지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성도들을 얼마나 사랑하고 돌보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잠27:23) 삯꾼은 목자가 아닙니다. 이리가 오면 달아납니다. 그러나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립니다.(요10:1- 17)
돈을 사랑하는 목사는 삯꾼 목사입니다. 그들을 멀리 하십시오.
 
성경은 말씀합니다.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히13:5)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6:10)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딤전6:17-18)
 
 
하나님은 돈과 물질에 깨끗하고, 정직하고, 믿음이 굳건한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하나님뿐만 아니라 세상 사람들도 돈에 욕심 부리지 않고, 정직하고 신의가 있는 사람을 칭찬합니다.
 
성도여러분, 세상의 어떤 부귀영화보다 값진 재산은 주님께서 내게 주신 믿음과 부활의 삶임을 깨달으시고, 우리의 후손들에게 돈을 유산으로 주기보다는 믿음을 유산으로 남기시는 지혜로운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 기도: 사랑하는 주님! 물질만능주의 시대에서 돈과 물질의 노예가 되지 말고 주님께만 소망을 두고 살아가게 하옵소서. 지나친 물질 중심의 가치관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하나님께서 주신 물질이 교회와 신앙인의 삶 속에서 우상으로 둔갑하는 일이 없도록 우리를 늘 깨어있게 하소서. 주님보다 물질에 더욱 큰 가치를 두는 어리석음을 범치 않고 이 세상 그 무엇보다 주 예수님을 사랑하게 하옵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 갈릴리 공동체 http://cafe.daum.net/Galileecommunity
(http://blog.naver.com/jesuskorea, http://blog.naver.com/allcome)

 

 
이 포스트를...
돈보다 믿음이 소중합니다. 댓글[0]
믿음, 신앙, 의심 (2014-01-11 오전 10:08:08) http://blog.somang.net/holylove/8050
돈보다 믿음이 소중합니다.
 
 
본문: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 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돈이 무엇보다도 귀중하게 여겨지는 시대입니다. 교회에서도 돈이 귀하게 여겨집니다. 교회의 크고 작은 활동들에 돈이 개입되지 않는 경우가 없습니다. 교육도, 전도도, 봉사도, 구제도 거의 대부분 돈이 없이는 할 수 없어 보입니다. 그러다 보니 교회를 평가하는 기준도 돈이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헌금이 많이 나오며 돈을 많이 쓸 수 있는 교회일수록 성장하는 교회, 부흥하는 교회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이런 모습은 신자 개개인의 신앙생활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주님을 향한 헌신을 일종의 투자로 여기는 교인들마저 있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헌금을 복의 기준으로 삼아 헌금을 많이 하면 물질의 축복이 클 것이라고 착각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받을 축복도 돈이면 더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이렇듯 돈이 개인과 가정과 교회에서 많은 위력을 발휘하는 현실입니다. 그러나 신앙생활과 인생살이에서 일어나는 여러 일들을 돈이 결정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되면 돈이 우상이 되고 맙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풍요를 위해 바알 우상을 섬긴 것과 결코 다르지 않습니다. 우상숭배는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명하신 계명 중 첫 번째 계명이 ‘우상숭배하지 말라’인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돈이 우상이 되면 안됩니다. 탐심은 우상숭배입니다. (골3:5)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6:24)
 
성령을 돈으로 사려고 했던 마술사 시몬의 어리석음이, 은혜라는 이름 아래 우리에게도 반복되지는 않습니까? 우상숭배를 하는 큰 죄를 범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반드시 우리 자신과 가정, 교회의 안팎을 잘 살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돈과 함께 우리도 망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돈을 사랑하는 자는 만족함이 없습니다. 돈은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지 않으며, 우리는 태어날 때 벌거벗고 왔고, 저 세상 갈 때도 아무 것도 없이 빈손으로 갑니다. (전5:10- 15)
‘부자 되기에 애쓰지 말고 네 사사로운 지혜를 버릴지어다 네가 어찌 허무한 것에 주목하겠느냐 정녕히 재물은 스스로 날개를 내어 하늘을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가리라’(잠23:4,5)
 
 
종교 개혁자 칼빈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우리의 문제는 교회에서 돈에 대해 너무 많이 이야기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돈에 대해서 바르게 이야기하지 않는 것에 있다.” 존 웨슬리도 비슷한 말을 남겼습니다. “나는 주머니가 회개하지 않는 사람의 회개를 믿을 수 없다.” 복음을 듣고서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새사람이 되었다면 제일 먼저 변화가 있어야 할 삶의 영역 중의 하나가 ‘돈의 사용처’ 라고 생각합니다. 경제생활은 우리의 가치관이 민감하게 반영되는 영역입니다. 더군다나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생겼고, 하나님 앞에 정말 감사하게 나 자신을 드리고 싶다고 할 때 그의 헌금 생활의 태도가 달라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헌금’이라는 것은 한 사람이 어느 정도로 헌신하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이라고 생각합니다. 헌금 행위야말로 우리의 헌신 행위의 본질을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돈의 씀씀이를 알면 그 사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돈 쓰임새야말로 우리의 인생관, 가치관, 세계관을 대변해주는 삶의 영역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참된 헌금은 내 삶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대한 응답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생각하는 의식의 결정체가 우리의 헌신이어야 하고 또, 우리의 헌금이어야 합니다.(잠3:9) 따라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헌금은 믿음으로 드려야 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11:6)

 
마가복음 10장 21- 22절과 누가복음 18장 22- 23절에 보면 한 부자 청년이 예수님을 따르고자 할 때 예수님께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다 나눠주고 나를 따르라’ 하자 이 말씀을 듣고 심히 근심하고 돌아간 말씀이 나옵니다. 이 청년은 예수님 보다 돈을 더 사랑하였기에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는 기회를 놓쳤습니다.
 
이 세상에는 돈(물질)보다 더 소중한 것들이 많습니다. 예를 들면 시간, 건강, 명예(잠22:1), 부모형제, 자유, 국가, 지혜(잠3:15, 잠16:16) 등입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소중한 것은 생명입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마16:26)
 
이처럼 생명이 소중하지만, 이 생명을 바쳐서라도 소중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믿음(신앙)입니다. 많은 순교자들이 믿음을 지키기 위해 생명을 버렸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2:8)
 
이 믿음의 선물을 받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믿음은 들음에서 납니다.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습니다.(롬10:17)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을 읽어야 믿음이 생깁니다.
성경에 보면 믿음의 대표적인 인물로 아브라함과 기생 라합을 들고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의 믿음이 산믿음이라고 했습니다.(약2:21- 25)
기생 라합은 여행객 손님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애굽과 광야에서 행하신 일들의 소문을 들음으로 믿음이 생겼고, 믿음을 행함으로 구원을 얻었습니다(수2:8-24)
우리가 교회를 왜 나갑니까? 사람들과 교제하려 나갑니까? 물론 그런 것도 있겠지요?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목사님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기 위해서입니다. 말씀이 내 안에 거해야 성령님이 역사 하십니다. 믿음이 생깁니다. 그런데 목사들 중에는 거짓목사, 삯꾼 목사들이 있습니다. 돈을 밝히는 지도자들입니다. 부자교인들의 헌물로 배불리운 자입니다. (갤34:2-5, 슥11:16) 또한 성경을 제멋대로 해석하거나 말씀 한 두 구절을 가르치면서 온갖 세상 이야기하다가 설교를 마치는 엉터리 목사들이 있습니다. 지도자 선택을 잘해야 합니다. 물질에 깨끗하고 믿음이 좋은 지도자를 선택해야 합니다. 대부분의 성도는 담임목사보다 더 큰 믿음을 갖기 어렵습니다. 담임목사의 외모나 학벌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가 얼마나 하나님 앞에 바르고 굳건한 신앙을 가지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성도들을 얼마나 사랑하고 돌보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잠27:23) 삯꾼은 목자가 아닙니다. 이리가 오면 달아납니다. 그러나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립니다.(요10:1- 17)
돈을 사랑하는 목사는 삯꾼 목사입니다. 그들을 멀리 하십시오.
 
성경은 말씀합니다.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히13:5)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6:10)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딤전6:17-18)
 
 
하나님은 돈과 물질에 깨끗하고, 정직하고, 믿음이 굳건한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하나님뿐만 아니라 세상 사람들도 돈에 욕심 부리지 않고, 정직하고 신의가 있는 사람을 칭찬합니다.
 
성도여러분, 세상의 어떤 부귀영화보다 값진 재산은 주님께서 내게 주신 믿음과 부활의 삶임을 깨달으시고, 우리의 후손들에게 돈을 유산으로 주기보다는 믿음을 유산으로 남기시는 지혜로운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 기도: 사랑하는 주님! 물질만능주의 시대에서 돈과 물질의 노예가 되지 말고 주님께만 소망을 두고 살아가게 하옵소서. 지나친 물질 중심의 가치관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하나님께서 주신 물질이 교회와 신앙인의 삶 속에서 우상으로 둔갑하는 일이 없도록 우리를 늘 깨어있게 하소서. 주님보다 물질에 더욱 큰 가치를 두는 어리석음을 범치 않고 이 세상 그 무엇보다 주 예수님을 사랑하게 하옵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 갈릴리 공동체 http://cafe.daum.net/Galileecommunity
(http://blog.naver.com/jesuskorea, http://blog.naver.com/allcome)

 

 
이 포스트를...
걸림돌이 디딤돌이 되다. 댓글[0]
감사, 불평, 원망 (2014-01-05 오후 2:09:38) http://blog.somang.net/holylove/8048
걸림돌이 디딤돌이 되다.
 

본문: 빌립보서 1:12
‘형제들아 나의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의 진보가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당나귀가 빈 우물에 빠졌습니다. 농부는 슬프게 울부짖는 당나귀를 구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마침 당나귀도 늙었고 쓸모없는 우물도 파묻으려고 했던 터라 농부는 당나귀를 단념하고 동네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우물을 파묻기 위해 제각기 삽을 가져와서는 흙을 파 우물을 메워갔습니다. 당나귀는 더욱 더 울부짖었습니다. 그러나 조금 지나자 웬일인지 당나귀가 잠잠해졌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궁금해서 우물 속을 들여다보다가 놀라고 말았습니다. 당나귀는 위에서 떨어지는 흙더미를 털고 털어서 바닥에 떨어뜨리며 발 밑으로 흙이 쌓이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흙더미를 타고 점점 높이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당나귀는 자기를 묻으려는 흙을 이용해서 무사히 그 우물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습니다. 당나귀처럼 곤경의 우물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사람들이, 때로는 환경이 흙더미로 나를 덮어 오지만 오히려 지혜로움과 인내로 용기를 가지면 자신이 더 성장하고 높아질 수 있는 디딤돌이 될 수 있습니다.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은즉 부끄러워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벧전4:16)

 
살다보면 슬럼프를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중요한 것이 마음가짐입니다. 좌절할 것인지 재기할 의지를 다져볼지 분명하게 결정해야 합니다. 여자 프로 골프 세계 랭킹 1위인 박인비는 25세에 메이저대회 3연승을 달성했습니다. 그는 남보다 뛰어난 장타력을 가진 것도 아니고 멋진 폼을 구사할 만큼 신체적 조건을 가진 것도 아니지만 ‘자신만의 길을 가는 골프’라는 극찬을 듣습니다. 그의 강점은 안정감과 좋은 퍼팅입니다. 그 어떤 경우도 흔들리지 않고 평온을 유지하며 자기 샷을 치기 때문에 ‘조용한 저격수’라는 말을 듣기도 합니다. 퍼팅은 평정심을 잃지 않는 데서 나온 결과라고 골프 전문가들 말합니다. 그가 이런 능력을 갖게 된 것은 2009년 슬럼프를 이후 고난의 시간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는 최연소 US오픈 우승을 했지만 그 후 4년째 어두운 터널을 통과해야 했습니다. 내로라할 만한 스폰서도 없었습니다. 골프는 무엇보다 바람과 싸워야 하는 운동입니다. 그는 고난의 바람과 싸워 이겼습니다. 고난이 그를 단단하게 만든 것입니다. 그 결과 뿌리가 깊어져 어떤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게 됐습니다. 처마 밑의 풍경도 바람이 불어야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있는 것처럼 고난의 슬럼프를 자신과의 싸움을 통해 디딤돌로 삼은 결과임이 틀림이 없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

 
길을 가다가 돌이 나타나면 약자는 그것을 걸림돌이라 하고 강자는 그것을 디딤돌이라고 말한다. 토마스 카알라일의 말입니다.
걸림돌과 디딤돌은 신부님들의 강론주제로도 자주 등장을 하는 말인데요,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수많은 삶의 돌을 만납니다. 그때마다 그 돌을 대하는 마음가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지는데요 그 돌을 어떤 사람은 걸림돌이라 말하고 또 어떤 사람은 디딤돌이라고 말합니다. 삶에서 오는 모든 장애를 불평과 원망의 눈으로 보는 것과 또 그것을 발판으로 재기와 도약의 발판으로 삼는 것과는 분명 큰 차이가 있을 겁니다. 오늘도 장애의 요소와 같은 돌을 곳곳에서 만나게 되겠지요. 그런 돌들은 생활에 무수히 널려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깔려있는 돌이 아니라 우리 마음의 자세가 아닐까 싶습니다. 나를 힘들게 하고 뒤쳐지게 하는 것들이라고 생각해온 모든 걸림돌을 오늘부터는 역으로 발판을 삼아서 디딤돌로 생각할 수 있다면 편안하고 행복할 수 있겠지요.
 
미국 32대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있습니다. 아버지가 그를 50살에 났습니다. 그의 어릴 때 꿈은 대통령 되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어떻게 하면 대통령이 될 수 있을까를 생각했습니다. 자신의 친척 아저씨 중에 대통령이 된 사람이 있었습니다. 미국 26대 대통령인 시어더 루스벨트였습니다. 그 루스벨트를 역할 모델로 삼았습니다. 그가 갔던 길로 그대로 따라가면 그가 이룬 대통령의 자리에 자신도 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시어더 루즈벨트가 하버드대학에 들어갔으니 자신도 하버드 대학에 들어갔습니다. 변호사가 되었으니 자신도 변호사, 뉴욕주 상원 의원이 되었으니 자신도 뉴욕주 상원의원, 해군 차관보가 되었으니 자신도 해군 차관보, 부통령 후보에 출마하여 부통령이 되었으니 자신도 부통령에 출마했습니다. 그런데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낙선하고 말았습니다. 다시 도전을 하였지만 패배 이듬해에 과로로 소아마비가 되었습니다.
당시 나이 39세입니다. 모두 재기가 불가능하다고 했습니다. 장애물을 만났습니다. 그 때 그는 시어더 루스벨트가 아니라 헬렌켈러를 역할 모델로 택했습니다. 헬렌켈러가 어떻게 3중고의 어려움을 딛고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았는가를 생각하며 그분의 길로 방법을 바꾸었습니다. 그는 사재로 조지아에 웜스프링 재활 센타를 지어 온천물에 수영을 하며 다른 장애인들과 함께 재기를 꿈을 키웠습니다. 장애물을 디딤돌로 만든 7년, 결국 그는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끄는 영웅, 미국의 대공황을 성공적으로 이끈 지도자, 미국 사상 유례 없이 대통령으로 12년 간 집권하였습니다. 그가 재활을 꿈을 꾸었던 웜스프링 재활센타를 지금은 리틀 화이트 하우스라고 한다고 합니다. 그 곳 정문 양쪽에는 두 개의 문구가 쓰여 있는데 한 쪽 문에는 헬렌 켈러의 말이 쓰여 있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그것을 불가능해라고 속삭이는 동안 그 불가능은 이미 가능으로 되었노라" 한 쪽 문에는 루스벨트 말이 쓰여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두려워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의 마음의 속의 공포뿐이다. 내일의 성취는 오늘의 꿈으로 결정된다. 우리가 꿈과 확신을 가지고 미래를 전진합니다."
 
경제 공황 때 한 말입니다. 목표를 이루는데 장애물이 없는 인생은 없습니다. 사업에도, 공부에도, 가정 생활에도, 신앙 생활에도 장애물은 있습니다. 그 장애물이 있을 때 어떤 사람은 그 장애물을 디딤돌로 사용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그 장애물이 거침돌이 되어 넘어지고 마는 사람도 있습니다.
 
장애물은 거침돌이 아니라 디딤돌이 되어야 합니다. 장애물이 디딤돌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장애물이 다가 올 때 그 장애물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장애물이 크면 클수록 목표를 분명히 하는 것입니다. "시대를 움직인 16인의 리더"라는 책을 쓴 미국의 저명한 정치학자이자 역사학자인 게리 윌스는 그 책속에서 역사 속에서 만날 수 있는 훌륭한 지도자와 실패한 지도자를 구분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를 질문합니다. 저자는 리더십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요소는 '추종자'와 '목표'라고 말합니다. 지도자에게 있어서는 목표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인생에 성공하려면 명확한 목표 선명한 목표가 필요한 것입니다. 장애물을 통해 목표는 더욱 명확해 지는 것입니다. 위드라 윌슨은 "사람들은 나름대로의 꿈을 가지고 산다. 시련과 역경이 닥쳐오면 절대 다수는 다 포기하지만 그 중에 극소수는 오히려 어둠 속에서 비전과 꿈을 창조하고 그 놀라운 꿈을 이룬다. 어둠이 없는 곳에는 꿈이 없다."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둘째는 장애물이 집요하게 달려들 때는 장애물과 정면으로 부딪치는 것보다는 장애물을 넘어가야 합니다. 장애물에 넘어지는 방법보다는 장애물을 넘어 목표지점에 도달하는 방법을 택해야 합니다. 공부 잘하는 사람들은 우연히 공부 잘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나름대로 공부 잘하는 방법을 택하였기 때문입니다. 서울 가려면 서울 가는 길을 택해야 하는 것처럼 부자가 되려면 부자가 되는 방법, 행복한 가정을 이루려면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는 방법, 존경받는 인격자가 되려면 존경받는 인격자가 될 수 있는 방법을 택해야 합니다.

 
셋째는 아무리 해도 방해물을 자신의 힘으로 극복할 수 없을 때는 자신의 힘이 아니라 전능자 하나님의 힘을 의지해야 합니다. 우리 인간은 무한한 존재가 아닙니다. "리더여, 두려움을 극복하라"라는 책을 쓴 조직 심리학 박사인 앨런 다운스는 비즈니스에서 성공하는 조건은 단지 세 가지 뿐이라고 단정하면서 "자신의 재능을 신뢰할 것, 자신의 열정을 추구할 것, 두려움을 물리칠 것"이라고 말합니다. 게리 월스도 CEO로서 자신의 경력을 성공적으로 꾸려 나가는 것은 자신의 열정, 재능, 그리고 자신감이 열쇠이고 오직 그것뿐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인간이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것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힘을 의지해야 합니다. 로버트 쉴러 목사는 장애물을 만났을 때 하나님께서 절벽가까이 오라고 하여가니 절벽 끝으로 인도하고 하나님은 절벽에서 자신을 밀어 절벽으로 떨어뜨렸다고 합니다. 떨어져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그는 이미 자신에게 하나님이 주신 날개가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하나님 만나면 장애물은 디딤돌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합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사 40:31)

 
진주는 조개 안에서 만들어집니다. 어쩌다 조개의 몸속에 들어온 모래알은 조갯살 속에 박혀 고통을 줍니다. 그때 조개는 ‘nacre(진주층)’이라는 생명의 즙을 짜내어 모래알 주변을 덮어 싸고 또 덮어 쌉니다. 그렇게 몇 달 몇 년이 흐르면 바로 진주가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약1:2-4)"
 
시련은 평범한 사람을 성숙하게 만듭니다. 시련은 마치 금광석을 제련하여 금을 만드는 것처럼 사람을 순수하게 만들어 줍니다. 시련을 통해 탐욕, 시기심, 이기심 등과 같은 인생의 불순물이 제거됩니다. 시련은 구비하여 부족함이 없는 사람으로 사람을 무장시켜 줍니다. 시련을 디딤돌로 삼으면 영광과 칭찬과 존귀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훈장은 전투에 참여하여 모든 시련을 이기고 승리한 자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시련은 거침돌이 아니라 디딤돌입니다.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시119:71)

 
헤럴드 러셀은 영국의 공수 부대원으로 제2차 세계대전에 참가했다가 포탄에 맞아 두 팔을 잃고 불구자가 된 상이용사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절망하지 않고 기독교신앙으로 온갖 어려움을 딛고 금속의 손으로 글을 쓰며 살았습니다. 그는 이런 투지를 인정받아 '우리 생애 최고의 해'라는 영화에 출연, 아카데미상까지 받았고 상금을 모두 자선사업 단체에 기부했습니다. 기자회견에서 "신체적 조건이 당신을 절망케 하지 않습니까?"라는 질문을 받은 그는 웃으며 말했습니다. "장애가 오히려 축복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당하는 모든 환난과 실패와 고통은 복으로 바꾸어 주시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감사할 것을 찾아야 합니다. 욥은 그 참담하고 캄캄한 절망 속에서도 “생명과 은혜를 내게 주시고 권고하심으로 내 영을 지키셨나이다”라고 감사했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고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한 사람이었지만 형들의 시기로 죽을 뻔하고 애굽에 종으로 팔려가 많은 고생을 했고, 또 억울하게 감옥살이를 몇 년씩이나 했습니다. 참으로 불행한 사람같이 보였고 세상 말로 억세게 재수 없는 사람처럼 보였지만 요셉은 끝까지 하나님의 사랑과 섭리를 믿고 의지하고 나아갔습니다. 감옥살이하면서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형통케 하셨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감옥 생활을 했기 때문에 정치인들과 사귀게 되었고 꿈 해몽도 해서 결국 애굽의 총리 대신이 된 것입니다. 후에 형들이 양식을 구하러 왔을 때 후하게 대접했고, 아버지 야곱이 죽은 다음에 요셉이 복수할까봐 형들이 두려워 할 때에 요셉이 말하기를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창50:19~21)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화를 선으로 바꾸시는 분이기 때문에 어떤 고난, 역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치 말고 감사할 조건을 찾으며 감사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 기도: 나의 기쁨, 나의 소망, 나의 생명이 되신 주님, 이 세상에 고통이 많은 것은 천국을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게 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합니다. 고난을 통해서 깊은 차원의 진리를 찾게 하옵소서. 고난 중에 위로와 평화의 주님을 바라보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서 늘 참고 기도하게 하소서. 우리에게 오는 고통 중에 삶의 의미를 찾고, 신앙의 힘으로 극복하여 성장의 기회로 삼게 하옵소서. 살아가면서 만나게 되는 풍랑과 같은 환난과 시험 가운데서도 의연한 믿음을 가지게 하소서. 걸림돌이 발판이 되어 도리어 디딤돌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 갈릴리 공동체 카페 주소 : http://cafe.daum.net/Galileecommunity
(http://blog.naver.com/allcome)

 
* 묵상:
0 지금까지 여러분 앞에 놓인 걸림돌은 무엇이었습니까?
0 그 걸림돌을 어떻게 디딤돌로 바꿀 수 있을까요?

 
이 포스트를...
걸림돌이 디딤돌이 되다. 댓글[0]
감사, 불평, 원망 (2014-01-05 오후 2:09:38) http://blog.somang.net/holylove/8047
걸림돌이 디딤돌이 되다.
 

본문: 빌립보서 1:12
‘형제들아 나의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의 진보가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당나귀가 빈 우물에 빠졌습니다. 농부는 슬프게 울부짖는 당나귀를 구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마침 당나귀도 늙었고 쓸모없는 우물도 파묻으려고 했던 터라 농부는 당나귀를 단념하고 동네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우물을 파묻기 위해 제각기 삽을 가져와서는 흙을 파 우물을 메워갔습니다. 당나귀는 더욱 더 울부짖었습니다. 그러나 조금 지나자 웬일인지 당나귀가 잠잠해졌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궁금해서 우물 속을 들여다보다가 놀라고 말았습니다. 당나귀는 위에서 떨어지는 흙더미를 털고 털어서 바닥에 떨어뜨리며 발 밑으로 흙이 쌓이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흙더미를 타고 점점 높이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당나귀는 자기를 묻으려는 흙을 이용해서 무사히 그 우물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습니다. 당나귀처럼 곤경의 우물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사람들이, 때로는 환경이 흙더미로 나를 덮어 오지만 오히려 지혜로움과 인내로 용기를 가지면 자신이 더 성장하고 높아질 수 있는 디딤돌이 될 수 있습니다.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은즉 부끄러워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벧전4:16)

 
살다보면 슬럼프를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중요한 것이 마음가짐입니다. 좌절할 것인지 재기할 의지를 다져볼지 분명하게 결정해야 합니다. 여자 프로 골프 세계 랭킹 1위인 박인비는 25세에 메이저대회 3연승을 달성했습니다. 그는 남보다 뛰어난 장타력을 가진 것도 아니고 멋진 폼을 구사할 만큼 신체적 조건을 가진 것도 아니지만 ‘자신만의 길을 가는 골프’라는 극찬을 듣습니다. 그의 강점은 안정감과 좋은 퍼팅입니다. 그 어떤 경우도 흔들리지 않고 평온을 유지하며 자기 샷을 치기 때문에 ‘조용한 저격수’라는 말을 듣기도 합니다. 퍼팅은 평정심을 잃지 않는 데서 나온 결과라고 골프 전문가들 말합니다. 그가 이런 능력을 갖게 된 것은 2009년 슬럼프를 이후 고난의 시간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는 최연소 US오픈 우승을 했지만 그 후 4년째 어두운 터널을 통과해야 했습니다. 내로라할 만한 스폰서도 없었습니다. 골프는 무엇보다 바람과 싸워야 하는 운동입니다. 그는 고난의 바람과 싸워 이겼습니다. 고난이 그를 단단하게 만든 것입니다. 그 결과 뿌리가 깊어져 어떤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게 됐습니다. 처마 밑의 풍경도 바람이 불어야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있는 것처럼 고난의 슬럼프를 자신과의 싸움을 통해 디딤돌로 삼은 결과임이 틀림이 없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

 
길을 가다가 돌이 나타나면 약자는 그것을 걸림돌이라 하고 강자는 그것을 디딤돌이라고 말한다. 토마스 카알라일의 말입니다.
걸림돌과 디딤돌은 신부님들의 강론주제로도 자주 등장을 하는 말인데요,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수많은 삶의 돌을 만납니다. 그때마다 그 돌을 대하는 마음가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지는데요 그 돌을 어떤 사람은 걸림돌이라 말하고 또 어떤 사람은 디딤돌이라고 말합니다. 삶에서 오는 모든 장애를 불평과 원망의 눈으로 보는 것과 또 그것을 발판으로 재기와 도약의 발판으로 삼는 것과는 분명 큰 차이가 있을 겁니다. 오늘도 장애의 요소와 같은 돌을 곳곳에서 만나게 되겠지요. 그런 돌들은 생활에 무수히 널려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깔려있는 돌이 아니라 우리 마음의 자세가 아닐까 싶습니다. 나를 힘들게 하고 뒤쳐지게 하는 것들이라고 생각해온 모든 걸림돌을 오늘부터는 역으로 발판을 삼아서 디딤돌로 생각할 수 있다면 편안하고 행복할 수 있겠지요.
 
미국 32대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있습니다. 아버지가 그를 50살에 났습니다. 그의 어릴 때 꿈은 대통령 되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어떻게 하면 대통령이 될 수 있을까를 생각했습니다. 자신의 친척 아저씨 중에 대통령이 된 사람이 있었습니다. 미국 26대 대통령인 시어더 루스벨트였습니다. 그 루스벨트를 역할 모델로 삼았습니다. 그가 갔던 길로 그대로 따라가면 그가 이룬 대통령의 자리에 자신도 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시어더 루즈벨트가 하버드대학에 들어갔으니 자신도 하버드 대학에 들어갔습니다. 변호사가 되었으니 자신도 변호사, 뉴욕주 상원 의원이 되었으니 자신도 뉴욕주 상원의원, 해군 차관보가 되었으니 자신도 해군 차관보, 부통령 후보에 출마하여 부통령이 되었으니 자신도 부통령에 출마했습니다. 그런데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낙선하고 말았습니다. 다시 도전을 하였지만 패배 이듬해에 과로로 소아마비가 되었습니다.
당시 나이 39세입니다. 모두 재기가 불가능하다고 했습니다. 장애물을 만났습니다. 그 때 그는 시어더 루스벨트가 아니라 헬렌켈러를 역할 모델로 택했습니다. 헬렌켈러가 어떻게 3중고의 어려움을 딛고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았는가를 생각하며 그분의 길로 방법을 바꾸었습니다. 그는 사재로 조지아에 웜스프링 재활 센타를 지어 온천물에 수영을 하며 다른 장애인들과 함께 재기를 꿈을 키웠습니다. 장애물을 디딤돌로 만든 7년, 결국 그는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끄는 영웅, 미국의 대공황을 성공적으로 이끈 지도자, 미국 사상 유례 없이 대통령으로 12년 간 집권하였습니다. 그가 재활을 꿈을 꾸었던 웜스프링 재활센타를 지금은 리틀 화이트 하우스라고 한다고 합니다. 그 곳 정문 양쪽에는 두 개의 문구가 쓰여 있는데 한 쪽 문에는 헬렌 켈러의 말이 쓰여 있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그것을 불가능해라고 속삭이는 동안 그 불가능은 이미 가능으로 되었노라" 한 쪽 문에는 루스벨트 말이 쓰여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두려워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의 마음의 속의 공포뿐이다. 내일의 성취는 오늘의 꿈으로 결정된다. 우리가 꿈과 확신을 가지고 미래를 전진합니다."
 
경제 공황 때 한 말입니다. 목표를 이루는데 장애물이 없는 인생은 없습니다. 사업에도, 공부에도, 가정 생활에도, 신앙 생활에도 장애물은 있습니다. 그 장애물이 있을 때 어떤 사람은 그 장애물을 디딤돌로 사용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그 장애물이 거침돌이 되어 넘어지고 마는 사람도 있습니다.
 
장애물은 거침돌이 아니라 디딤돌이 되어야 합니다. 장애물이 디딤돌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장애물이 다가 올 때 그 장애물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장애물이 크면 클수록 목표를 분명히 하는 것입니다. "시대를 움직인 16인의 리더"라는 책을 쓴 미국의 저명한 정치학자이자 역사학자인 게리 윌스는 그 책속에서 역사 속에서 만날 수 있는 훌륭한 지도자와 실패한 지도자를 구분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를 질문합니다. 저자는 리더십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요소는 '추종자'와 '목표'라고 말합니다. 지도자에게 있어서는 목표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인생에 성공하려면 명확한 목표 선명한 목표가 필요한 것입니다. 장애물을 통해 목표는 더욱 명확해 지는 것입니다. 위드라 윌슨은 "사람들은 나름대로의 꿈을 가지고 산다. 시련과 역경이 닥쳐오면 절대 다수는 다 포기하지만 그 중에 극소수는 오히려 어둠 속에서 비전과 꿈을 창조하고 그 놀라운 꿈을 이룬다. 어둠이 없는 곳에는 꿈이 없다."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둘째는 장애물이 집요하게 달려들 때는 장애물과 정면으로 부딪치는 것보다는 장애물을 넘어가야 합니다. 장애물에 넘어지는 방법보다는 장애물을 넘어 목표지점에 도달하는 방법을 택해야 합니다. 공부 잘하는 사람들은 우연히 공부 잘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나름대로 공부 잘하는 방법을 택하였기 때문입니다. 서울 가려면 서울 가는 길을 택해야 하는 것처럼 부자가 되려면 부자가 되는 방법, 행복한 가정을 이루려면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는 방법, 존경받는 인격자가 되려면 존경받는 인격자가 될 수 있는 방법을 택해야 합니다.

 
셋째는 아무리 해도 방해물을 자신의 힘으로 극복할 수 없을 때는 자신의 힘이 아니라 전능자 하나님의 힘을 의지해야 합니다. 우리 인간은 무한한 존재가 아닙니다. "리더여, 두려움을 극복하라"라는 책을 쓴 조직 심리학 박사인 앨런 다운스는 비즈니스에서 성공하는 조건은 단지 세 가지 뿐이라고 단정하면서 "자신의 재능을 신뢰할 것, 자신의 열정을 추구할 것, 두려움을 물리칠 것"이라고 말합니다. 게리 월스도 CEO로서 자신의 경력을 성공적으로 꾸려 나가는 것은 자신의 열정, 재능, 그리고 자신감이 열쇠이고 오직 그것뿐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인간이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것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힘을 의지해야 합니다. 로버트 쉴러 목사는 장애물을 만났을 때 하나님께서 절벽가까이 오라고 하여가니 절벽 끝으로 인도하고 하나님은 절벽에서 자신을 밀어 절벽으로 떨어뜨렸다고 합니다. 떨어져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그는 이미 자신에게 하나님이 주신 날개가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하나님 만나면 장애물은 디딤돌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합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사 40:31)

 
진주는 조개 안에서 만들어집니다. 어쩌다 조개의 몸속에 들어온 모래알은 조갯살 속에 박혀 고통을 줍니다. 그때 조개는 ‘nacre(진주층)’이라는 생명의 즙을 짜내어 모래알 주변을 덮어 싸고 또 덮어 쌉니다. 그렇게 몇 달 몇 년이 흐르면 바로 진주가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약1:2-4)"
 
시련은 평범한 사람을 성숙하게 만듭니다. 시련은 마치 금광석을 제련하여 금을 만드는 것처럼 사람을 순수하게 만들어 줍니다. 시련을 통해 탐욕, 시기심, 이기심 등과 같은 인생의 불순물이 제거됩니다. 시련은 구비하여 부족함이 없는 사람으로 사람을 무장시켜 줍니다. 시련을 디딤돌로 삼으면 영광과 칭찬과 존귀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훈장은 전투에 참여하여 모든 시련을 이기고 승리한 자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시련은 거침돌이 아니라 디딤돌입니다.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시119:71)

 
헤럴드 러셀은 영국의 공수 부대원으로 제2차 세계대전에 참가했다가 포탄에 맞아 두 팔을 잃고 불구자가 된 상이용사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절망하지 않고 기독교신앙으로 온갖 어려움을 딛고 금속의 손으로 글을 쓰며 살았습니다. 그는 이런 투지를 인정받아 '우리 생애 최고의 해'라는 영화에 출연, 아카데미상까지 받았고 상금을 모두 자선사업 단체에 기부했습니다. 기자회견에서 "신체적 조건이 당신을 절망케 하지 않습니까?"라는 질문을 받은 그는 웃으며 말했습니다. "장애가 오히려 축복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당하는 모든 환난과 실패와 고통은 복으로 바꾸어 주시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감사할 것을 찾아야 합니다. 욥은 그 참담하고 캄캄한 절망 속에서도 “생명과 은혜를 내게 주시고 권고하심으로 내 영을 지키셨나이다”라고 감사했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고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한 사람이었지만 형들의 시기로 죽을 뻔하고 애굽에 종으로 팔려가 많은 고생을 했고, 또 억울하게 감옥살이를 몇 년씩이나 했습니다. 참으로 불행한 사람같이 보였고 세상 말로 억세게 재수 없는 사람처럼 보였지만 요셉은 끝까지 하나님의 사랑과 섭리를 믿고 의지하고 나아갔습니다. 감옥살이하면서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형통케 하셨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감옥 생활을 했기 때문에 정치인들과 사귀게 되었고 꿈 해몽도 해서 결국 애굽의 총리 대신이 된 것입니다. 후에 형들이 양식을 구하러 왔을 때 후하게 대접했고, 아버지 야곱이 죽은 다음에 요셉이 복수할까봐 형들이 두려워 할 때에 요셉이 말하기를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창50:19~21)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화를 선으로 바꾸시는 분이기 때문에 어떤 고난, 역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치 말고 감사할 조건을 찾으며 감사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 기도: 나의 기쁨, 나의 소망, 나의 생명이 되신 주님, 이 세상에 고통이 많은 것은 천국을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게 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합니다. 고난을 통해서 깊은 차원의 진리를 찾게 하옵소서. 고난 중에 위로와 평화의 주님을 바라보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서 늘 참고 기도하게 하소서. 우리에게 오는 고통 중에 삶의 의미를 찾고, 신앙의 힘으로 극복하여 성장의 기회로 삼게 하옵소서. 살아가면서 만나게 되는 풍랑과 같은 환난과 시험 가운데서도 의연한 믿음을 가지게 하소서. 걸림돌이 발판이 되어 도리어 디딤돌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 갈릴리 공동체 카페 주소 : http://cafe.daum.net/Galileecommunity
(http://blog.naver.com/allcome)

 
* 묵상:
0 지금까지 여러분 앞에 놓인 걸림돌은 무엇이었습니까?
0 그 걸림돌을 어떻게 디딤돌로 바꿀 수 있을까요?

 
이 포스트를...
작은 일에 충성한 결과는 댓글[0]
충성, 오작예수 (2013-12-31 오전 7:45:49) http://blog.somang.net/holylove/8041
작은 일에 충성한 결과는
 

본문: 대상26:4 - 11

 
평북 정주에 있던 명문 오산학교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습니다. 당시 그 동네에는 아주 똑똑한 청년이 살았습니다.그는 남의 집 머슴살이를 하는 청년이었습니다.그는 비록 집안이 가난해서 머슴살이를 했지만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오히려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그는 매일같이 주인의 요강을 깨끗이 닦아놓곤 했습니다. 그러자 모든 일을 성실하게 감당하는 이 머슴의 자세를 보고 주인은 이 청년이 머슴살이를 하기에는 너무 아깝다고 생각해 학자금을 대주며 평양에 있는 숭실학교에 보내 공부를 시켰습니다.마침내 그 청년은 숭실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고향으로 내려와 오산학교 선생님이 되었습니다.이 청년이 바로 민족주의자요 독립운동가로 유명한 조만식 선생이었습니다. 그는 항상 제자들이 인생의 성공 비결을 물을 때마다 “여러분이 사회에 나가거든 요강을 닦는 사람이 되십시오”라고 일러주었다고 합니다.성경은 우리에게 인생의 성공비결은 “작은 일에 충성하는 데 있다”고 말해줍니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눅16:10)

 
1994년 11월 9일 제주발 광주행 대한항공 비행기가 이륙하다가 왼쪽 엔진에서 불꽃이 튀어 비상 착륙한 일이 있습니다. 다행히 기장이 재빨리 대처했기에 대형 참사는 면할 수 있었습니다. 사고 원인은 활주로에 있던 꿩 한 마리가 비행기 엔진에 부딪친 것이었습니다. 이 사고로 팬 날개(fan blade) 라는 엔진 부품 46개가 망가져 항공사는 40억 원에 달하는 손해를 입었습니다. 공군에서 군 복부를 하다 제대한 청년에게 주로 했던 일이 무엇인지 물은 적이 있습니다. 그러자 비행장에서 새 쫓는 일을 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때는 참 별난 임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그것은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새가 전투기와 부딪치면 전투기가 하늘을 날 수도, 안전하게 착륙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작은 것도 결코 소홀히 할 수 없음을 보여 주는 예입니다. 그 사람이 작은 일을 하는 태도를 보면 큰일을 어떻게 할지 얼마든지 예측할 수 있고, 한 가지 일에 대한 처신은 여러 상황에서의 태도를 알게 하는 잣대가 됩니다. 오늘의 충성은 어제와 내일의 충성을 반영하고, 현재의 불의는 과거와 미래의 불의를 반영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대단한 일, 주목받는 일이 아니어도 최선을 다해 책임감 있게 일해야 합니다. 건강한 신앙생활도 작은 충성에서 시작됩니다. 아무도 보지 않고, 아무도 칭찬해 주지 않아도 기도하고 말씀 보며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본문은 오벧에돔과 그의 후손들이 받은 축복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벧에돔과 그의 후손들은 하나님의 성전에서 문을 지키는 문지기로서 봉사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수많은 문지기들 중에서 특히 오벧에돔과 그의 후손들의 이야기가 눈에 띄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특히 하나님께서 그와 그 자손들에게 복 주신다는 내용이 선명하게 강조되어 있습니다. 왜 오벧에돔과 그의 후손들이 이처럼 축복을 받았습니까? 그것은 오래전에 오벧에돔이 하나님의 법궤를 자신의 집에 모셨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법궤를 자신의 집에 모시며 석달동안 마음과 정성과 뜻을 다해 지킨 결과 하나님은 오벧에돔의 집에 복을 주신 것이었습니다. 본문은 작은 일에 충성한 결과가 어떻다는 것을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작은 일에 충성된 결과가 무엇인지 다 같이 살펴봅시다.

 
1. 하나님의 영광의 나타나심으로 내가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법궤를 모신 오벧에돔의 집에 복을 내리셨습니다. 삼하 6: 11, 12절에 "여호와의 궤가 가르 사람 오벧에돔의 집에 석 달을 있었는데 여호와께서 오벧에돔과 그 온 집에 복을 주시니라... 여호와께서 하나님의 궤를 인하여 오벧에돔의 집과 그 모든 소유에 복을 주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하나님의 궤가 오벧에돔의 집으로 오기 전에 웃사가 흔들거리는 하나님의 궤를 손으로 만져 즉사하고만 사건이 있었습니다.(대상 13: 10) 이 사건으로 다윗 왕은 떨림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의 궤를 왕궁에 모시지 못하고 가르 사람 오벧에돔의 집으로 메어 가게 한 것이었습니다. 이런 경황 중에도 오벧에돔은 하나님의 법궤를 기꺼이 모셔 들었고 경외함으로 법궤를 지키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오벧에돔의 집에 큰 복을 내리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2가지 복을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첫째는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곳에는 큰 영광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오벧에돔은 웃사의 죽음을 생각하며 두려움과 떨리는 마음으로 밥궤를 석달동안 잘 모심으로 하나님은 당신의 영광을 오벧에돔의 집에 나타내셨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적은 일이나마 충성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축복하심으로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십니다.

 
2. 후손들이 복을 받습니다.(느9:8)
하나님은 은혜롭고 자비하신 분으로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신다"고 하셨습니다.(출20:6)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뜻을 잘 준행하는 한 사람으로 인하여 그의 후손들이 복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본문에서 잘 증명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벧에돔에게 여덟 아들을 주셨는데 그 아들들과 그 형제들은 다 능력이 있어 직무를 잘하는 자들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8절) 그리고 그들 후손들 가운데 큰 용사가 나왔고(6절) 또한 능력있는 자들이 나왔습니다.(7절) 이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오벧에돔에게 복을 주셨기 때문입니다.(5절) 오벧에돔이 하나님의 법궤를 잘 모시고 지킨 결과, 즉 작은 일에 충성한 결과 하나님은 오벧에돔뿐만 아니라 그의 후손들에게까지도 복을 주신 것이었습니다. 우리 모든 성도님들은 나 한 사람이 후손들에게 덕을 끼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을 잘 섬기며 작은 일에 충성하는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 더 큰 일을 맡습니다.(마25:21)
우리가 작은 일에 충성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더 큰 일을 맡기십니다. 예수님은 달란트 비유를 통하여 작은 일에 충성한 자에게 더 많은 것으로 맡기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25: 21- 23) 우리가 작은 일이라도 성심 성의껏 충성할 때 하나님은 기뻐하시며 더 큰 일을 맡기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처음부터 큰 일을 맡으려고 추구할 것이 아니라 지금 내게 주어진 작은 일부터 착실히 충성합시다. 오벧에돔이 석달 동안 하나님의 법궤를 잘 모시며 작은 일에 충성한 결과 하나님께서는 이제 더 큰 일을 그에게 맡기셨습니다.(13절) 즉, 오벧에돔은 하나님의 성전의 문지기로서 봉사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남방의 문을 담당했습니다. 이 문은 다윗과 솔로몬의 왕궁이 있는 쪽으로 왕이 사용하는 문입니다. 이 특별한 위치를 얻게 된 것은 제비뽑기를 통해 하나님께서 축복하신 결과 때문이었습니다.(잠16:33)
 
이밖에 작은 일에 충성한 결과는 하나님과 늘 교제하게 되고(민12, 7, 8), 약속된 땅을 차지하게 되고(민14:24),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하게 되며(마25:23), 큰 권세를 차지하게 되고(눅19: 17), 주께서 맡기시는 직분을 얻게 되며(딤전1:12), 다른 사람을 지도하게 됩니다.(딤후2:2) 또 생명의 면류관을 받으며(계2:10), 그리스도와 함께 왕노릇합니다(계20:4)

 
성도 여러분! 우리의 삶의 모든 순간은 여호와 앞에 다 드러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의 순간을 불꽃같은 눈동자로 살펴보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내게 맡겨주신 작은 일에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하나님 앞에 칭찬을 받으며 복을 받게 됩니다. 나아가서 내 후손들이 복을 받아 잘 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내게 더 큰 일을 맡기십니다. 우리는 항상 큰 일을 찾으면서 현재의 작은 일은 소홀히 하는 어리석은 자는 아닙니까? 현재 내게 맡겨주신 작은 일에 충성하면서 더 큰 일을 맡는 축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 기도: 하나님! 오벧에돔이 하나님의 궤를 모시므로 큰 축복을 받은 것처럼 우리 가정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득차 형통하게 하옵소서. 크고 작은 일 상관없이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게 하옵소서. 주님의 크신 은혜에 만분의 일이라도 보답할 수 있도록 죽도록 충성하게 하옵소서. 우리가 세상권력과 우상숭배로 인하여 주님을 배반치 않게 하시고 순교하기까지 말씀에 충실하는 자들이 되게 하소서. 모두가 충성하기 싫어하는 때 우리가 맡은 일에 충성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구주이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한태완 
 
* 갈릴리 공동체 http://cafe.daum.net/Galileecommunity
(http://blog.naver.com/jesuskorea, http://blog.naver.com/allcome)

 
이 포스트를...
작은 일에 충성한 결과는 댓글[0]
충성, 오작예수 (2013-12-31 오전 7:45:49) http://blog.somang.net/holylove/8040
작은 일에 충성한 결과는
 

본문: 대상26:4 - 11

 
평북 정주에 있던 명문 오산학교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습니다. 당시 그 동네에는 아주 똑똑한 청년이 살았습니다.그는 남의 집 머슴살이를 하는 청년이었습니다.그는 비록 집안이 가난해서 머슴살이를 했지만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오히려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그는 매일같이 주인의 요강을 깨끗이 닦아놓곤 했습니다. 그러자 모든 일을 성실하게 감당하는 이 머슴의 자세를 보고 주인은 이 청년이 머슴살이를 하기에는 너무 아깝다고 생각해 학자금을 대주며 평양에 있는 숭실학교에 보내 공부를 시켰습니다.마침내 그 청년은 숭실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고향으로 내려와 오산학교 선생님이 되었습니다.이 청년이 바로 민족주의자요 독립운동가로 유명한 조만식 선생이었습니다. 그는 항상 제자들이 인생의 성공 비결을 물을 때마다 “여러분이 사회에 나가거든 요강을 닦는 사람이 되십시오”라고 일러주었다고 합니다.성경은 우리에게 인생의 성공비결은 “작은 일에 충성하는 데 있다”고 말해줍니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눅16:10)

 
1994년 11월 9일 제주발 광주행 대한항공 비행기가 이륙하다가 왼쪽 엔진에서 불꽃이 튀어 비상 착륙한 일이 있습니다. 다행히 기장이 재빨리 대처했기에 대형 참사는 면할 수 있었습니다. 사고 원인은 활주로에 있던 꿩 한 마리가 비행기 엔진에 부딪친 것이었습니다. 이 사고로 팬 날개(fan blade) 라는 엔진 부품 46개가 망가져 항공사는 40억 원에 달하는 손해를 입었습니다. 공군에서 군 복부를 하다 제대한 청년에게 주로 했던 일이 무엇인지 물은 적이 있습니다. 그러자 비행장에서 새 쫓는 일을 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때는 참 별난 임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그것은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새가 전투기와 부딪치면 전투기가 하늘을 날 수도, 안전하게 착륙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작은 것도 결코 소홀히 할 수 없음을 보여 주는 예입니다. 그 사람이 작은 일을 하는 태도를 보면 큰일을 어떻게 할지 얼마든지 예측할 수 있고, 한 가지 일에 대한 처신은 여러 상황에서의 태도를 알게 하는 잣대가 됩니다. 오늘의 충성은 어제와 내일의 충성을 반영하고, 현재의 불의는 과거와 미래의 불의를 반영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대단한 일, 주목받는 일이 아니어도 최선을 다해 책임감 있게 일해야 합니다. 건강한 신앙생활도 작은 충성에서 시작됩니다. 아무도 보지 않고, 아무도 칭찬해 주지 않아도 기도하고 말씀 보며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본문은 오벧에돔과 그의 후손들이 받은 축복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벧에돔과 그의 후손들은 하나님의 성전에서 문을 지키는 문지기로서 봉사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수많은 문지기들 중에서 특히 오벧에돔과 그의 후손들의 이야기가 눈에 띄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특히 하나님께서 그와 그 자손들에게 복 주신다는 내용이 선명하게 강조되어 있습니다. 왜 오벧에돔과 그의 후손들이 이처럼 축복을 받았습니까? 그것은 오래전에 오벧에돔이 하나님의 법궤를 자신의 집에 모셨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법궤를 자신의 집에 모시며 석달동안 마음과 정성과 뜻을 다해 지킨 결과 하나님은 오벧에돔의 집에 복을 주신 것이었습니다. 본문은 작은 일에 충성한 결과가 어떻다는 것을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작은 일에 충성된 결과가 무엇인지 다 같이 살펴봅시다.

 
1. 하나님의 영광의 나타나심으로 내가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법궤를 모신 오벧에돔의 집에 복을 내리셨습니다. 삼하 6: 11, 12절에 "여호와의 궤가 가르 사람 오벧에돔의 집에 석 달을 있었는데 여호와께서 오벧에돔과 그 온 집에 복을 주시니라... 여호와께서 하나님의 궤를 인하여 오벧에돔의 집과 그 모든 소유에 복을 주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하나님의 궤가 오벧에돔의 집으로 오기 전에 웃사가 흔들거리는 하나님의 궤를 손으로 만져 즉사하고만 사건이 있었습니다.(대상 13: 10) 이 사건으로 다윗 왕은 떨림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의 궤를 왕궁에 모시지 못하고 가르 사람 오벧에돔의 집으로 메어 가게 한 것이었습니다. 이런 경황 중에도 오벧에돔은 하나님의 법궤를 기꺼이 모셔 들었고 경외함으로 법궤를 지키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오벧에돔의 집에 큰 복을 내리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2가지 복을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첫째는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곳에는 큰 영광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오벧에돔은 웃사의 죽음을 생각하며 두려움과 떨리는 마음으로 밥궤를 석달동안 잘 모심으로 하나님은 당신의 영광을 오벧에돔의 집에 나타내셨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적은 일이나마 충성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축복하심으로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십니다.

 
2. 후손들이 복을 받습니다.(느9:8)
하나님은 은혜롭고 자비하신 분으로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신다"고 하셨습니다.(출20:6)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뜻을 잘 준행하는 한 사람으로 인하여 그의 후손들이 복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본문에서 잘 증명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벧에돔에게 여덟 아들을 주셨는데 그 아들들과 그 형제들은 다 능력이 있어 직무를 잘하는 자들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8절) 그리고 그들 후손들 가운데 큰 용사가 나왔고(6절) 또한 능력있는 자들이 나왔습니다.(7절) 이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오벧에돔에게 복을 주셨기 때문입니다.(5절) 오벧에돔이 하나님의 법궤를 잘 모시고 지킨 결과, 즉 작은 일에 충성한 결과 하나님은 오벧에돔뿐만 아니라 그의 후손들에게까지도 복을 주신 것이었습니다. 우리 모든 성도님들은 나 한 사람이 후손들에게 덕을 끼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을 잘 섬기며 작은 일에 충성하는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 더 큰 일을 맡습니다.(마25:21)
우리가 작은 일에 충성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더 큰 일을 맡기십니다. 예수님은 달란트 비유를 통하여 작은 일에 충성한 자에게 더 많은 것으로 맡기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25: 21- 23) 우리가 작은 일이라도 성심 성의껏 충성할 때 하나님은 기뻐하시며 더 큰 일을 맡기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처음부터 큰 일을 맡으려고 추구할 것이 아니라 지금 내게 주어진 작은 일부터 착실히 충성합시다. 오벧에돔이 석달 동안 하나님의 법궤를 잘 모시며 작은 일에 충성한 결과 하나님께서는 이제 더 큰 일을 그에게 맡기셨습니다.(13절) 즉, 오벧에돔은 하나님의 성전의 문지기로서 봉사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남방의 문을 담당했습니다. 이 문은 다윗과 솔로몬의 왕궁이 있는 쪽으로 왕이 사용하는 문입니다. 이 특별한 위치를 얻게 된 것은 제비뽑기를 통해 하나님께서 축복하신 결과 때문이었습니다.(잠16:33)
 
이밖에 작은 일에 충성한 결과는 하나님과 늘 교제하게 되고(민12, 7, 8), 약속된 땅을 차지하게 되고(민14:24),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하게 되며(마25:23), 큰 권세를 차지하게 되고(눅19: 17), 주께서 맡기시는 직분을 얻게 되며(딤전1:12), 다른 사람을 지도하게 됩니다.(딤후2:2) 또 생명의 면류관을 받으며(계2:10), 그리스도와 함께 왕노릇합니다(계20:4)

 
성도 여러분! 우리의 삶의 모든 순간은 여호와 앞에 다 드러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의 순간을 불꽃같은 눈동자로 살펴보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내게 맡겨주신 작은 일에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하나님 앞에 칭찬을 받으며 복을 받게 됩니다. 나아가서 내 후손들이 복을 받아 잘 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내게 더 큰 일을 맡기십니다. 우리는 항상 큰 일을 찾으면서 현재의 작은 일은 소홀히 하는 어리석은 자는 아닙니까? 현재 내게 맡겨주신 작은 일에 충성하면서 더 큰 일을 맡는 축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 기도: 하나님! 오벧에돔이 하나님의 궤를 모시므로 큰 축복을 받은 것처럼 우리 가정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득차 형통하게 하옵소서. 크고 작은 일 상관없이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게 하옵소서. 주님의 크신 은혜에 만분의 일이라도 보답할 수 있도록 죽도록 충성하게 하옵소서. 우리가 세상권력과 우상숭배로 인하여 주님을 배반치 않게 하시고 순교하기까지 말씀에 충실하는 자들이 되게 하소서. 모두가 충성하기 싫어하는 때 우리가 맡은 일에 충성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구주이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한태완 
 
* 갈릴리 공동체 http://cafe.daum.net/Galileecommunity
(http://blog.naver.com/jesuskorea, http://blog.naver.com/allcome)

 
이 포스트를...

처음페이지  이전페이지  1  2  3  4  5  다음페이지  마지막페이지

최근방문자
즐겨찾기
즐겨찾기가 없습니다.
최근댓글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