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소망교회 카페 블로그 메일 SMS 문자보내기
검색
하나님 사랑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이웃에게 축복의 통로가 되기 원합니다.
카테고리
전체보기 (268)
안내, 알림 (5)
가정, 부모, 부부 (5)
간증, 증인, 기적 (1)
감사, 불평, 원망 (4)
겸손, 온유, 교만 (4)
고난, 역경, 시험 (5)
교육, 훈련, 연습 (4)
교회, 공동체 (8)
구제, 나눔, 베품 (2)
근면, 노력, 성실 (2)
기도 (10)
기쁨, 희락, 웃음 (5)
길, 인도, 홍보 (4)
노인, 허무, 고독 (2)
마음, 정신, 생각 (7)
만남, 관계, 감정 (1)
말, 언어, 입 (4)
믿음, 신앙, 의심 (6)
보호, 반석, 요새 (6)
부활, 성탄, 절기 (1)
부흥, 성장 (1)
복, 축복, 면류관 (2)
봉사, 선행 (4)
비판, 판단, 누명 (2)
빛, 소금 (1)
사랑, 관심 (11)
사명, 은사, 직분 (2)
선택, 약속 (6)
성경, 말씀 (3)
성공, 승리 (5)
소망, 희망 (10)
순종, 뜻 (3)
시간, 기회 (6)
실천, 행함 (2)
십자가, 순교 (6)
영광, 경외, 사모 (2)
예술, 미, 문화 (1)
용서, 관용, 분노 (1)
유머, 농담 (1)
은혜, 구원 (4)
위로, 친절 (4)
이웃, 형제 (2)
인내, 기더림 (4)
자비, 긍휼, 대속 (1)
작은, 큰, 위대 (1)
절제, 사치, 분수 (3)
제자, 군사. 성도 (4)
전도, 복음 (8)
정직, 진실 (2)
지도자, 교사 (1)
지혜, 슬기 (3)
진리, 가치 (6)
평안, 불안, 공포 (2)
찬송, 음악 (12)
책임, 자세, 각오 (1)
천국, 지옥, 낙원 (6)
충성, 오작예수 (2)
친구, 벗, 우정 (2)
편건, 오해, 착각 (1)
하나님, 창조 (4)
학문, 지식, 책 (4)
화목, 좌평, 전쟁 (3)
행복 (4)
헌신, 열심, 미치게 (1)
협동, 하나, 동역 (3)
회개, 거듭남 (3)
지유로운 글 (22)
0
61
무엇을 의지합니까? 댓글[0]
지유로운 글 (2014-04-04 오후 6:12:17) http://blog.somang.net/holylove/8114
무엇을 의지합니까?
?

본문: 렘17:7, 찬송가 542장 <통> 340장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
톨스토이는 부유한 귀족 출신에다가 작가로서도 크게 성공하여 부러울 것 없는 생활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참 만족이 없었습니다. 죄에 대한 공포로 불안한 나날을 보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적한 시골 길을 걸어가다가 너무나 평화로워 보이는 한 시골 농부를 만났습니다. 톨스토이는 농부에게 다가가 당신의 그 평화로움의 비결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농부가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저는 항상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살지요. 그래서 제 마음은 늘 기쁘답니다.’ 그 말을 들은 톨스토이는 그때부터 진지하게 하나님을 찾기 시작했고 결국 하나님을 만나 과거의 불안과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며 돌아가시는 순간까지도 하나님께서 아버지이시며 자신의 영혼을 받아주실 것을 확신하셨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하나님을 믿고 의지합니까? 항상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께 맡기십시오. 그러면 삶의 불안과 공포에서 벗어나 하나님께서 넘치도록 베풀어 주시는 평화와 기쁨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상에서 운명하실 때에도 하나님을 의지하였습니다.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운명하시다"(눅23: 46)

?
인생은 누구나 혼자서 살아갈 수 없습니다.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무엇인가 붙잡고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때로는 부모형제를 의지하고 남편은 아내를, 아내는 남편을 의지하고 살아갑니다. 혹은 지식이나 기술 재능 명예 권세를 붙잡고 삽니다. 인생은 원래 불안전하기 때문에 무엇이라도 붙잡지 않으면 불안해서 살아갈 수 없습니다. 무엇을 붙잡고 누구를 의지하고 사느냐에 따라 행복과 불행, 성공과 실패가 달려있습니다. 과연 우리는 어떻게 누구를 의지하고 살아야 영원한 축복과 승리를 얻을 수 있을까요
.

?
첫째, 자기 명철이나 지식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잠3:5)
?
로버트 슐러의 처남 프랭크벤드 마틴은 18세에 아버지가 경영하는 대장간에서 사고를 당하여 왼손의 엄지손가락을 제외한 나머지 네 손가락을 절단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좌절하지 않고 나머지 손가락들을 사용하여 바이올린을 연주하기에 이르렀고 열심히 연습하여 오하이오주에 있는 수 카운티 교양악단의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가 되었습니다. 성도의 삶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현재의 상황에 개의치 아니하고 오히려 그 모든 상황을 하나님이 주신 기회임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맡기면 전화위복의 역사를 맞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범사에, 즉 희로애락의 어떠한 순간에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그분을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자신의 명철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주님을 의지하여 주님의 지도하심을 받는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의 편협한 지식을 너무 신뢰하면 곧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경향이 생깁니다. 모든 문제의 해답이 자신에게 있다고 믿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기도로 간구하는 것을 잊을 뿐 아니라 심지어 하나님께서 주시는 거룩한 조언도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참으로 위험한 상태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지식을 하찮게 여기고 하나님께서 하나님 되시지 못하게 하는 것은 존귀와는 완전히 상반되는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에게 의존하느냐에 따라 사람의 정체성을 바로 판단됩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누구에게, 무엇에 의존하십니까?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 3:6)’

?
둘째, 이성이나 경험, 지식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달팽이는 무척추 동물이기 때문에 뼈가 없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보호하려면 단단한 겉껍질 뼈가 필요합니다. 달팽이는 누가 건들면 얼른 집 속으로 숨어버립니다. 집이 자신을 지켜줄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는 것입니다. 하지만, 달팽이집은 달팽이를 그리 안전하게 지켜주지 못합니다. 그러나 척추동물은 뼈가 자신의 몸 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재빠르게 도망쳐야 합니다. 딱딱한 껍데기 안으로 숨는 것과, 재빠르게 도망치는 것 중 어느 방법이 더 안전합니까? 당연히 도망치는 것이 더 안전합니다. 우리는 달팽이처럼 겉껍질만 너무 믿고 사는 것은 아닌가요?
사람에게 겉껍질이란 학연, 지연, 인간관계, 기득권 같은 것들입니다.
내 안에 힘이나 실력이 있으면 겉껍질을 의지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
'사랑할 때와 죽을 때'라는 영화에 보면, 한 사병이 일선에서 휴가를 얻어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그는 전쟁으로 지친 피곤을 풀고 온 가족과 더불어 즐거운 시간을 나눌 것을 생각할 때 기쁨을 억제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집에 도착했을 때 그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폭격으로 건물은 다 파괴되었고 가족은 행방불명이 되었습니다. 그는 일선에서 남의 생명을 죽이기도 했고, 남의 생명을 죽였다는 죄책감에 자살해 버린 친구의 죽음을 목격하기도 했으며, 전쟁으로 지금까지 자기가 믿고 있던 모든 질서와 가치와 도덕이 와해돼 버리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삶의 모순과 부조리를 뼈저리게 느낀 그는 어느 날 무거운 마음을 이끌고 옛 스승 풀만 교수를 찾아갔습니다. ‘교수님, 아직도 우리가 믿을 만한 그 무엇이 남아 있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이 때 교수는 ‘아무렴 남아 있고 말고.’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사병은 ‘그것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었고 풀만 교수는 엄숙한 태도로 ‘그것은 하나님이지.’라고 대답했습니다. ‘교수님은 아직도 신을 믿습니까?’라고 묻자 ‘이러한 위기와 부조리에 처해 있기 때문에 더 믿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어려운 문제에 직면할수록 더욱 주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
셋째, 인생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장학금을 받고 법과대학을 졸업한 가난한 청년이 사법고시를 치렀습니다. 이 고시생을 잘 아는 친구를 만나 시험이 어찌 됐느냐고 물었습니다. “이미 합격해 연수를 받고 있다는데요.”
나는 너무 감격해 그토록 가난한 청년이 오직 부모의 기도 하나에 의지해 합격했다고 교인들에게 설교했습니다. 그러나 한 주간 뒤 그 고시생으로부터 시험에 불합격했다는 얘기를 직접 들었습니다. 그때만큼 괴로울 수가 없었습니다. 수많은 사람 앞에서 한 설교가 본의 아니게 거짓말 설교가 된 것입니다. 목사에게 이보다 더 큰 실수, 더 큰 괴로움은 없습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습니다. 1년 동안 강단 앞에 엎드렸습니다. 청년이 반드시 합격해 나의 설교가 거짓이 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다음 해에 그 고시생은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했습니다. 그 후 사람을 믿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는 말씀을 내 마음에 깊이 새겼습니다.(렘17:5).
무릇 부모, 자식, 친구나 성직자, 이웃이나 형제나 심지어 품에 누운 여인에게라도 사람을 의지하고 믿으면 언젠가 실망하고 넘어집니다.(렘9:4, 미7:5)
예수님은 사람들의 마음이 쉽게 변한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에 누구도 의지하지 않으셨습니다. 내심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사람은 믿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특히 한국의 정치인과 삯꾼 목자들은 믿을 수 없습니다. 사람은 연약하고 질그릇처럼 깨지기 쉽습니다. 작은 재물이나 말 한마디로 오랜 친구사이가 우정이 깨지고 떠납니다. 믿었던 사람이 배신하고 속이고 변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귀인(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시146:3)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셈할 가치가 어디 있느냐’(사2:22)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잠29:25)

?
넷째, 현대과학이나 기술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도 이 배만은 침몰시킬 수 없다고 호언장담하던 거대한 호화여객선이 있었습니다. 1911년 영국의 화이트스타 회사가 건조한 타이타닉호입니다. 이 배는 총46,328t, 길이 259.08m, 폭 28,19m,깊이 19.66m나 되는 것으로 시속이 무려 26노트나 되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크고 빠른 배입니다. 일반인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배로서 선체 또한 이중으로 건조되어 있는 선박입니다. 따라서 설혹 어뢰를 맞는다고 할지라도 끄떡하지 않도록 설계되어 있었으니 교만한 인간들이 그렇게 까불거릴 만도 하지 않은가. 이 배가 영국의 사우샘프턴항에서 뉴욕을 향하여 처녀항해를 하던 1912년 4월 14일 밤 11시 40분경입니다. 배는 뉴턴들랜드 해역에 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배가 얼마나 튼튼하기에 나도 침몰시킬 수 없다고 큰 소리 치는 것인지 한번 시험해 보고 싶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배는 한 덩어리 얼음과 박치기를 했습니다. 이에 배는 2시간 40분 만에 허무하게 침몰했고 승선자 2,208명 중 힘깨나 쓰고 똑똑하다고 자부하던 남자들 1,513명이 배와 함께 수장되고 어린이와 여인 그리고 노약자들 703명만 살아 남았습니다. 사상 유례 없는 해난사고입니다. 타이타닉호의 승선자들과 관련된 사람들, 이 엄청난 비보에 접하자 사랑하는 이들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하여 구름 떼처럼 뉴욕항으로 몰려들었습니다. 이때 그들 앞에는 두 개의 명단이 걸려 있었습니다. 하나는 죽은 사람의 명단이요 다른 하나는 산 사람의 것입니다. 이 명단들을 바라보는 사람들, 문자 그대로 희비쌍곡선을 그리는 난장판을 이루었습니다. 도대체 어느 명단에 들어 있는가. 실로 심각한 문제입니다. 언젠가 우리들도 하나님 앞에서 심문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과연 나는 어느 쪽인가?
‘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의뢰하라 주 여호와는 영원한 반석이심이로다’(사26:4)

?
다섯째, 세상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잠14:12)
?
제2차 세계대전으로 폐허가 된 독일의 쾰른시. 독실한 신앙인으로 알려진 프랑케 부인의 부엌방에 6년 간 세들어 살고 있는 서른 여덟 살의 케테. 그녀의 인생은 온통 비극적이었습니다. 전화교환원인 남편은 가출했으며 남겨진 것은 가난에 중독된 창백한 세 자녀뿐이었습니다. 케테는 한 달에 한 번씩 지저분한 여관에서 남편을 만났습니다. 가난과 고생으로 부쩍 늙어버린 남편을 향해 던지는 케테의 절규. ‘당신은 왜 이 절망적 상황에서 기도하지 않나요. 기도만이 유일한 희망임을 당신도 알잖아요.’ ‘주님은 내게서 너무 멀리 있어.’ ‘아니예요. 지금 우리 곁에 있어요.’
이상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하인리히 뵐의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라는 작품의 일부입니다. 세상에는 완전하신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는 어리석은 도를 따르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들은 하나같이 모두 자신이 진리라고 말하고, 자신만이 평안과 성공으로 안내할 것이라고 유혹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행4:12).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참 길이요 진리가 되십니다. 세상을 바라보며 의지하지 마십시오. 지금 당신 곁에는 예수님이 함께 하고 계십니다.
‘이스라엘아 여호와를 의지하라. 그는 너희 도움이시요 너희 방패시로다 아론의 집이여 여호와를 의지하라 그는 너희 도움이시요 너희 방패시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너희는 여호와를 의지하라. 그는 너희 도움이시요 너희 방패시로다’(시편115: 9- 11)

?
여섯째, 재물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미국의 백화점 왕인 페니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사업에 투신했으나 심한 재정난으로 자살까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급기야는 미시간 주 배틀 크릭에 있는 격리 병원에 수용되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 낙망하고 좌절한 그에게 찬송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가 무거운 몸을 이끌고 맥없이 그곳을 찾아갔더니, 어떤 건물 특별실에서 기도회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그가 뒷자리에 앉아 있을 때 매우 친숙한 찬송 "너 근심 걱정 말아라" 가 불리고 있었습니다. 그 찬송을 듣는 순간 그의 마음에서 좌절감이 사라지고 큰 확신이 생겼습니다. 그는 주님께 외쳤습니다. ‘사랑하는 하나님,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저를 좀 돌봐 주시옵소서.’
그 후 그는 고백하기를 "나는 무한한 어두운 공간에서 찬란한 태양빛으로 옮겨지는 느낌이었고 마음속의 무거운 짐이 옮겨져서 그 방을 나올 때는 새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나는 마비된 심령으로 풀이 죽어서 그곳에 들어갔으나 해방되어 기쁜 마음으로 나왔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건강을 돌보아 주셔서 건강이 회복되었으며 다시 사업을 해서 크게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선하신 주님께서는 주님을 섬기고 의지하는 사람을 보호하시며 후손에게까지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으로 자기 힘을 삼지 않고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고 풍부함으로 자긍하는 자는 언젠가 자기 장막에서 뽑아지고 넘어지고(시49:6,7, 시52:5-7),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합니다.(막10:25)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어야 합니다.(딤전6:17)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는 자는 패망하려니와 의인은 푸른 잎사귀 같아서 번성하리라’(잠11:28)

?
어떤 어려움이 온다 해도 하나님만 의지하겠노라 결심한 허드슨 테일러에게 하나님은 물질적인 궁핍을 통해 시험하셨습니다. 그는 석 달에 한 번 나오는 봉급날이 훨씬 지나도록 돈을 받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전도와 심방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테일러에게 가난한 남자 한 명이 찾아와 죽어 가는 자기 아내를 위해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이때 호주머니에 당장 식비로 쓸 반 크라운짜리 은화 한 개밖에 없음을 알게 된 테일러는 ??이 반 크라운짜리 은화 대신에 잔돈이 있다면 1실링을 줄 수 있을 텐데…?? 하며 그를 따라갔습니다.(당시 영국에서 1크라운은 5실링에 해당했다.)
초라한 방에는 네 명의 아이들이 영양실조에 걸려 있었고, 냄새 나는 돗자리 위에는 갓난아이를 품에 안은 한 여인이 죽어 가고 있었습니다. 감히 그들에게 위로할 말을 찾지 못한 채,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말만 간신히 꺼냈습니다. 그때??이 위선자야, 날마다 사랑과 봉사를 운운하면서 네 주머니 속의 은화는 그들에게 통째로 줄 수 없단 말이냐???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비수처럼 그의 가슴에 꽂혔습니다. 결국 자신이 가지고 있던 은화를 그들에게 주면서 하나님을 증거했습니다. 테일러의 마음속에는 말할 수 없는 기쁨이 밀려왔고, 돌아오는 발걸음은 마냥 즐겁기만 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집 주인이 소포 꾸러미를 하나 건네주었습니다. 놀랍게도 그 속에는 10실링짜리 금화가 들어 있었습니다.

?
일곱째, 자기 자신의 권세와 힘, 재능, 마음을 의지하지 말아야 합니다.
1959년 9월 27일 주일이었습니다.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소련 수상 후르시초프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오늘은 주일이니 나와 함께 교회에 갑시다.”
후르시초프는 거절하였습니다. 아이젠하워는 한 시간 반만 기다려달라고 하였습니다. 예배가 끝나자 아이젠하워는 후르시초프를 만났습니다. 아이젠하워가 “한 시간 반 동안 무엇을 하셨습니까?” 하고 묻자 후르시초프는 “내가 먼 길을 찾아왔는데도 교회에 가야 할 아이젠하워의 핑계가 무엇일지 생각했소”라고 말했습니다.
당시 초강대국인 소련의 수상을 초청해놓고 예배에 참석하느라고 그를 기다리게 한다는 것은 외교적인 상식으로는 상상할 수조차 없는 일입니다. 잘못하면 외교 및 국가적인 손실과 분쟁으로 악화될 수도 있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아이젠하워의 행동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예배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신앙의 깊은 세계를 아는 자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헛된 것을 붙들지 마십시오. 깊은 세계가 있습니다. 깊은 신앙을 통하여 은혜의 세계를 체험하고 이 땅에 하나님의 세계를 이루어가시기 바랍니다. 말씀에 의지하여 순종하십시오. 말씀에 의지하여 신앙의 깊은 세계로 들어가십시오.
자신의 힘과 결심과 마음을 믿고 의지하지 마십시오. 베드로는 다른 사람은 버릴 지라도 자신은 결코 변하지 않는 다고 호언장담했으나 닭울기 전에 3번이나 주님을 부인했습니다.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베드로가 이르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그와 같이 말하니라’(마26:33- 35)

?
찬송가 214장 3절 가사를 봅시다.
‘내 힘과 결심 약하여 늘 깨어지기 쉬우니 주 이름으로 날 받아주소서 내 모습 이대로 주 받아주소서 날 위해 돌아가신 주 날 받아주소서 아멘’
?
심지어 어떤 사람은 자기 몸의 건강이나 생명보험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고 기도하십시오.

?
여덞째, 자국의 군사력이나 무기, 외국 군대의 힘을 의지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병거, 어떤 사람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시20:7)
?
다윗은 골리앗과 싸울 때 무기를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싸워 승리했습니다. 그런 다윗이 하나님보다 군대를 의지했다가 크게 매를 맞은 일이 있습니다. 사사기 7장에 보면 하나님이 기드온을 일으켜 이스라엘을 구원하려 하실 때 지원병이 32,000명이나 모여들었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 ‘…너를 좇은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붙이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스려 자긍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고 말씀하시고 추리고 추려서 300명을 데리고 미디안을 쳐부수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군대의 힘을 더 의지할까봐 그리하셨던 것입니다.
?
여호수아 11장 6- 9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말 뒷발의 힘줄을 끊고 병기를 불사르고 명하신 까닭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후일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마병을 의지할 것을 염려하여서입니다.
사무엘상 14장 6절에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의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고 하셨고, 시편 44편 6˜7절에 ‘나는 내 활을 의지하지 아니할 것이라 내 칼도 나를 구원치 못하리이다 오직 주께서 우리를 우리 대적에게서 구원하시고 우리를 미워하는 자로 수치를 당케 하셨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전쟁의 승리와 패배, 국가의 흥망성쇠는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깨닫고 하나님께만 의지해야 합니다.
북한은 핵무기를 의지하고 우리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핵무기를 무용지물로 만드실 것입니다.

?
아홉째, 다른 신 곧 우상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
‘우상은 은과 금이요 사람의 수공물이라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코가 있어도 맡지 못하며 손이 있어도 만지지 못하며 발이 있어도 걷지 못하며 목구멍으로 소리도 못하느니라 우상을 만드는 자와 그것을 의지하는 자가 다 그와 같으리로다’(시115:4-8)
?
일본에는 800만 종류의 우상이 있다고 합니다. 우상을 의지하고 섬기는 자는 망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상숭배자들을 미워하시고 진멸하십니다.
‘조각된 신상을 섬기는 자는 누구나 수치를 당할 것이며, 헛된 우상을 자랑하는 자들도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다. 모든 신들아, 주님 앞에 엎드려라.’(시97:7)
‘너희도 알거니와 너희가 이방인으로 있을 때에 말 못하는 우상에게로 끄는 그대로 끌려 갔느니라’(고전12:2)

?
모든 사람은 누군가를 섬기고 있습니다. 만약 하나님을 섬기고 있지 않다면, 다른 무엇인가를 섬기고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섬기는 그 ‘다른 무엇’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우상들’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섹스라는 우상, 술이라는 우상, 스타라는 우상, 게임이라는 우상, 돈이라는 우상, 마약이라는 우상, 개인숭배의 우상, 성공이라는 우상, 과학 기술이라는 우상 등에 빠른 속도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붙잡고 섬기다가 다른 것을 잡으면 멸망합니다.
세상에서 영원한 것이란 없습니다. 권력도 세월 속에 무상해지고, 인간의 지혜도 이성도 늙으면 흐려지며, 육체도 세월 속에 병들며 늙어가고 재물도 점점 사라집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것들에 자신을 의지하는 자는 결국 권력과 재물과 지혜가 사라져 갈 때 그의 삶도 허망하게 사라져갈 뿐입니다. 그러나 오직 한 분, 영원히 변치 않으시는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지혜와 힘과 능력을 의지하십시오. 그리할 때 하나님의 영원하심과 더불어 여러분의 삶도 영원한 생명으로 채워질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의 집에서 싱싱하게 자라나는 감람나무 같으니 내가 하나님의 한결같은 사랑을 영원히 의지하리라.’(시52:8)

?
작곡가 멘델스존이 유럽 최고의 오르간이 있다는 성당을 방문했습니다. 멘델스존은 오르간을 한 번 연주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지만 성당 연주자는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 "이 오르간이 얼마나 귀한 것인 줄 아십니까? 이 귀한 걸 아무에게나 맡길 수는 없습니다."
멘델스존은 끈질기게 간청한 끝에 마침내 허락을 받았습니다. 그의 손가락이 건반 위를 달리는 순간, 이제껏 성당 연주자가 들어보지 못한 아름답고 웅장한 멜로디가 성당을 가득 채웠습니다. 나중에 멘델스존의 정체를 알게 된 성당 연주자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당신이 그 위대한 음악가 멘델스존이란 말입니까? 위대한 음악가에게 오르간을 맡길 수 없다고 했다니, 제가 정말 어리석었군요."
나보다 능력 있는 분에게 인생을 맡길 수 있다면 아무것도 걱정하거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을뿐 아니라 더 큰 소망을 품고 더 큰 꿈을 꾸게 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가진 재능, 실력이 아니라 '누구를 붙들고 무엇을 의지하느냐'입니다. 우리 스스로 파도를 만들어 낼 수 없지만 크고 강력한 파도를 만나면 멋진 서핑을 할 수 있고, 우리 스스로 바람을 만들 수 없지만 센 바람을 만나면 하늘 높이 연을 날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그저 하나님이 우리 삶을 그분 뜻대로 연주하시도록 자리를 내 드리는 것뿐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죄악된 나는 죽고 하나님만을 온전히 의지하시기를 바랍니다.

?
* 기도: 나의 기도를 들으시는 주님, 주님만이 나의 구원이심을 고백합니다. 나의 암담한 현실과 방향 감각을 잃은 이 어두운 여정에서 곁에서 도우시는 주님을 온전히 의지하게 하시며 하나님만이 내 삶의 이정표가 되셔서 나를 인도하소서. 우리의 힘이신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소서. 인간의 수단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게 하소서. 하나님의 치유의 능력을 의지하게 하소서 마지막 순간까지 주님만을 의지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
* 갈릴리 공동체 http://cafe.daum.net/Galileecommunity
(http://blog.naver.com/allcome, http://cafe.naver.com/newgalilee)
 
이 포스트를...
끊을 수 없는 사랑 댓글[0]
사랑, 관심 (2014-03-28 오후 8:08:53) http://blog.somang.net/holylove/8110
끊을 수 없는 사랑
?

본문: 롬8: 34- 39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
어떤 상이 군인이 군대에서 제대를 하니까 자기 부인이 아기를 놔두고 도망을 가 버렸습니다. 다른 남자하고 바람이 나서 도망을 가 버렸습니다. 그래서 그는 어린 아기를 등에 업고 직장도 없이 구걸하면서 삼천리 방방곡곡을, 잃어버린 자기 아내의 얼굴을 그리면서, 밤이나 낮이나 찾아서 헤매고 헤매다가 기진해서 돈도 없어지고 마음도 쇠해졌습니다. 3년이 지난 후에 그는 부산 거리에서 행려병자로 죽어 버렸습니다. 어린 아이는 계속 그의 등에 업혀 있었습니다. 그 몸에서 사진 한 장과 유서가 나왔는데 자기를 버리고 간 아내의 사진 뒤에다가 그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사랑하는 아내여, 나는 그대를 사랑했었다. 지금도 사랑하고 있다. 앞으로 영원히 사랑하겠노라.' 얼마나 순정을 가진 상이 군인입니까? 과거에도 사랑했고 지금도 사랑하고 앞으로도 영원히 사랑하겠다는 것입니다. 아마 인간의 애정 속에서 이만큼 철저하고 고귀한 사랑은 드물 것 같습니다. 만일 그 부인이 어디서 이 소식을 들었다면 그 부인의 마음속은 뜨거운 감동으로 벅찰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히13:8)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지어다”(엡6:24)


?
니콜로 파가니니라는 바이올리니스트가 어느 날 아주 중요한 연주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연주 중에 갑자기 바이올린의 줄 하나가 끊어졌습니다. 파가니니는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남은 세 개의 줄로 계속 연주했습니다. 한 줄이 또 끊어졌지만, 그는 여전히 연주를 이어 갔습니다. 그때 세 번째 줄까지 날카로운 소리를 내면서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그는 포기하지 않고 줄 하나로 끝까지 연주했습니다. 그날 그 사건이 파가니니를 세계적인 연주가로 명성을 날리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줄 하나의 파가니니!' 이것이 그의 명예로운 별명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예외 없이 '인생'이라는 연주를 멋있게 하고 싶어 합니다. 모든 사람의 환호와 박수갈채를 받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이런 우리의 기대나 의지와는 상관없이 줄이 끊어집니다. 건강, 젊음, 물질, 직장, 사업, 부모라는 줄이 뚝뚝 끊어집니다. 멋진 연주를 하고 있었는데 내가 가진 것들이 하나하나 떨어져 나갑니다.
그러나 마지막 남은 하나의 줄을 절대로 끊어지지 않습니다. 바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연결된 '사랑의 줄'입니다. 세상 모든 것이 다 끊어져도 이 줄은 튼튼합니다. 그 줄 때문에 더 멋진 연주를 하게 될 것입니다.
포기하지 말라. 낙심하지 말라.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계획을 신뢰하라. 오늘 주어진 삶의 현장에서 최선을 다하라. 하나님이 당신을 위해 예비하신 놀라운 복을 안겨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5:8)

?
어느 날 폭풍우가 집을 휩쓸고 지나갔습니다. 휘몰아치는 바람에 나무들이 쓰러지고 전기와 전화선이 끊겼습니다. 변압기에 연결돼 있던 몇 가닥의 전선마저 견디지 못하고 끊어지자 순식간에 빛이 사라지고 어둠이 몰려왔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분의 사랑의 빛 아래에 살도록 지으셨습니다. 폭풍우로 빛이 사라진 집처럼, 하나님과 떨어져 어둔 삶을 살도록 짓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과거에 지은 죄로 인해 진정한 사랑의 능력을 모른 채 살아갑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온정과 돌보심을 경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님만이 과거의 죄를 지워 버리고 새 삶을 제시하실 수 있습니다.
자신이 지은 죄와 과거의 부당한 일을 더 이상 셈하지 마십시오. 과거는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과거를 바꾸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다만 우리는 용서하시고 깨끗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새로운 소망을 갖게 해달라고 간구할 수 있습니다.
?
주님의 사랑은 이렇게 끊을 수 없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사람같이 조변석개(朝變夕改)하여 그 사랑이 변하지 않으십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 사랑으로 인도하십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고 살면서 좌절될 때, 기억하고 있어야 할 사실은 주께서는 우리를 위해 승천 이후에도 여전히 기도해주신다는 사실입니다.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롬8: 34)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히7:25)

?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다고 결론을 내린 후 모든 인간적인 사랑을 끊을만한 악 조건들을 나열해 놓았습니다.
(1) 바울은 첫째로 환난이냐고 물었습니다. 사람이 환난을 만날 때 과연 그 사람의 참 인품을 알만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가기 스승이 환난을 만났을 때 모두 도망쳤습니다. 베드로도 자신이 받을지 모를 환난 앞에서 비겁해 져서 예수님을 센 번이나 부인했습니다. 믿음이 연약한 자는 환난을 만났을 때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을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진다”고 하셨습니다(마13:21). 그러나 이 환난이 혹 그리스도인들을 잠시 넘어뜨릴는지 모르지만 그리스로의 사랑에서 끊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환난 중에도 우리를 붙드시고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를 도와주시고 결코 떠나지 아니하시는 것입니다.
(2) “곤고냐”고 물었습니다. 곤고란 우리의 생애 중에 질병 또는 정신적 번민, 갈등, 어려움으로 말미암은 괴로움을 뜻합니다. 사람이 이 곤고한 밤을 만났을 때 앞이 캄캄해집니다. 사람의 위로도 거절합니다. 살아 있는 목숨이 한스러울 정도의 괴로움이 그의 생애를 움켜쥐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곤고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는 반드시 우리를 이 곤고한 밤에서 건져내실 것이며 우리의 곤고한 생애에 들어 오셔서 우리와 함께 그것을 맛보시며 급기야 영광으로 우리를 맞이하시는 것입니다.
(3) “핍박이냐”고 물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위해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핍박에 대하여 이처럼 말씀해 주셨습니다.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마5:11,12). 사도들은 복음을 전하다가 능욕 받은 일에 기뻐했습니다.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했다”고 했습니다(행5:41).
(4) “기근이냐”고 물었습니다. 기근은 사람의 생명과 직결되는 무서운 재앙입니다. 아람 왕 벤하닷이 사마리아를 에워쌌을 당시, 성중 사마리아인들이 기근에 허덕일 때 아들을 삶아 먹는 일로 두 여인의 싸우는 모습이 나옵니다. 이처럼 기근은 처참한 것입니다(왕하6:28,29). 그러나 이 같은 기근일지라도 그것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보다 더 더욱 강한 것입니다.
(5) “적신이냐”고 물었습니다. 적신이란 벌거벗은 몸을 말합니다. 이 같은 표현은 모든 자신의 소유가 다 없어지고 단지 자신의 육신만 남아 있는 상태의 표현입니다. 지난날의 욥이 그러했습니다. 욥이 사단의 궤계로 인하여 모든 것을 다 상실하고 오직 그의 몸만 남았을 때 그는 이처럼 기도했습니다.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은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고 했습니다(욥 1:21). 사업에 실패하고, 또 여러 가지 재앙을 만나 비록 우리의 처지가 적신이 되었다 할지라도 그것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6) “위험이냐 칼이냐”고 물었습니다. 위험이란 공포나 협박, 칼이란 순교를 의미합니다. 바울은 때마다 위험을 무릅썼다고 했습니다(고전15:30). 믿음의 선진들은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하려 하지 아니했다고 했습니다(히11:35). 이런 것들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기느니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바울의 자신에 찬 확신입니다. 성경이 증거해 주는 바요, 자신이 체험한 바에서 나온 확신입니다. 바울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는 존재로 몇 가지를 예로 들었습니다. 사망이란 인생이 가장 두려워하는 죽음으로 이 권세를 가진 자는 사단입니다. 생명이란 우리가 소유한 것 중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귀한 선물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까지라도 하나님의 사랑에 비교할 바가 아닌 것입니다. 천시들이란 하나님이 부리시는 영입니다. 그들까지라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는 것입니다.

?
하나님의 사랑보다 더 강한 것은 없습니다. 죄, 원수, 어두운 과거 등은 하나님의 사랑보다 더 강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자신을 용서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누릴 수 있는지 가르쳐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의 사랑으로 죄책감과 부끄러움이 씻기고 자유케 될 것입니다. 이것이 그 어떤 폭풍우로도 끊을 수 없는 사랑의 힘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랑에 접속될 때 하나님의 마음과 영원히 직결됩니다.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요13:1)

?
요한복음 15장 9- 17절을 함께 보겠습니다.
9절에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주신 말씀 가운데 한 구절입니다. 그는 인간의 모든 생활의 슬픔, 고통, 환난 죽음에까지 동참하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그 깊은 사랑의 표현을 나타내셨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믿는 사람의 생활은 이 같은 희생이 얼마나 있습니까? 다른 사람의 영혼과 육체를 구원하기 위해서 생활의 어떤 면에 희생했습니까? 시간의 희생입니까? 물질의 희생입니까?
예수님은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다"(13절)고 하셨는데 그는 원수를 위해서도 목숨을 버렸습니다. 예수님은 친히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성경의 교훈에 의지해서 하나님의 사랑이 어떻다고 하는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처음과 마지막이 없이 무한하신 불변의 사랑으로 그 아들 예수님을 사랑하신 줄 생각합니다. 이상과 같은 교훈은 너무 많이 들었으므로 그저 대수롭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예수님의 최후 교훈을 우리가 되새겨 보면서 은혜 받아야하는 때입니다.
가장 시급한 것은 전도 운동이요 다음으로는 사랑의 운동입니다.
오늘도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요13:34-35)
‘그러므로 사랑을 입은 자녀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엡5:1-2)

?
* 기도: 변함이 없으신 참 좋으신 하나님 아버지! 저희를 지금까지 사랑과 은혜로 보호하여 주시고 인도하여 주셨음을 감사드립니다. 은혜의 주님께서는 이토록 변함이 없으시건만 저희 인생들은 바람에 흔들림같이 이리 저리 요동하며 변하는 세월을 보냈습니다. 주님의 형상을 잃은 지 오랜 저희들이 얼마나 추한 모습을 하고 주님을 반역했던가를 생각하면 감히 고개를 들 수도 없습니다. 오직 부활의 주님만 의지하고 여기 나와 섰습니다. 저희들을 긍휼히 여기사 받아 주시옵소서. 우리가 예수님의 변치 않는 영원한 사랑, 진실한 사랑을 깊이 생각하고, 이 사랑에 동참하여 아버지의 영광을 나타나게 하옵소서. 우리를 항상 변함없이 사랑해주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한태완


?
* 갈릴리 공동체 카페 주소 : http://cafe.daum.net/Galileecommunity
(http://blog.naver.com/allcome)
 
 
 
이 포스트를...
임종 때 남긴 마지막 말 댓글[0]
말, 언어, 입 (2014-03-27 오후 6:43:48) http://blog.somang.net/holylove/8109
임종 때 남긴 마지막 말
?

본문 : 열왕기상 2: 1- 10

?
역대 최대 부자는 록펠러였다고 합니다. 산술상으로는 빌게이츠의 재산이 1000억 달러 이상으로 록펠러가 가진 재산의 배 정도입니다. 그러나 록펠러 당시의 경제 규모 등을 생각하면 그의 재산이 빌게이츠의 재산보다 13배가 더 많다고 합니다. 록펠러는 어떻게 그렇게 부자가 될 수 있었을까요? 그의 삶의 목표는 영적인 것이었고 하나님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늘 10가지 삶의 지침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것은 그의 어머니의 유언이었습니다. 록펠러는 어머니를 기념하여 저 유명한 리버사이드 교회를 세웠습니다. 록펠러의 어머니가 남긴 10가지 유언은 이렇습니다.
1. 하나님을 친아버지로 섬겨라.
2. 목사님을 하나님 다음으로 섬겨라.
3. 주일예배에는 본 교회에서 드려라.
4. 오른쪽 호주머니는 항상 십일조 주머니로 하라.
5. 아무도 원수를 만들지 말라.
6. 아침에 목표를 세우고 기도하라.
7. 잠자리에 들기 전 하루를 반성하고 기도하라.
8. 아침에는 꼭 하나님 말씀을 읽어라.
9. 남을 도울 수 있으면 힘껏 도와라.
10. 예배 시간에는 항상 앞자리에 앉아라.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6:23)

?
'신바람 건강법' 강연으로 유명한 황수관 박사는 몇 해 전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그가 몇 차례나 수술을 권했던 목 뒤에 있는 커다란 혹이 원인이 되어 아버지의 상태는 매우 위험했습니다.
"평생 몸에 칼 안 대고도 잘 살아왔는데 얼마나 오래 살 거라고 수술을 해."
이렇게 끝까지 수술을 안 하겠다고 버티는 아버지를 겨우 설득해 병원에 입원시켰습니다. 그런데 막상 수술 날짜를 정하고 나니 불안한 마음을 가눌 수가 없었습니다. 워낙 위험한 수술이라 실패할 확률이 더 높았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평소에도 꼼곰한 분이시니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수술 전에 유언을 남기시겠지. 그럴 경우 나는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하나.'
황수관 박사는 착잡한 마음으로 이제나저제나 아버지의 유언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인 아버지는 수술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면서도 무척 침착한 모습이었습니다.
'내가 집안의 장손이니 아버지는 내게 선산이 어디에 있으며 집과 땅은 어떻게 해야 할지 알려주셔야 하는데. 혹 나를 못 미더워 하시는 건 아닐까?'
수술날 아침까지도 아버지가 아무런 말씀을 하지 않자 그는 섭섭한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그가 먼저 유언 얘기를 꺼낼 수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수술실로 들어가기 직전 아버지가 곁에 서 있는 그를 나지막히 불렀습니다. 창백한 아버지의 모습에 그는 눈물이 The아질 것만 같았습니다. 애써 참으며 아버지의 손을 잡았는데, 아버지가 그의 손에 뭔가를 꼭 쥐어 주더니 빙그레 웃으며 말씀하셨습니다.
"내 평생 네게 남겨 줄 수 있는 것은 이것뿐이구나."
아버지가 수술실로 들어가신 후 천천히 펼쳐 본 종이에는 '봉사' 라는 두 글자가 정성스럽게 적혀 있었습니다.

?
사람이 죽을 때 남기는 유언으로 그 사람의 인생을 알 수 있습니다.
초대 한국교회의 목사님이셨던 길선주 목사님은 임종의 때에 미소를 지으며 “하늘나라에서 천사들이 왔으니 이제 그만 떠날 시간이 온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발명으로 일평생을 바쁘게 보냈던 벨은 친구에게 유언을 빨리 적어달라고 부탁하며 “할일은 많았는데 정작 한 일은 많이 없는 것 같아 아쉽다네.”라고 했습니다.
?
미국 뉴욕에 살던 한 코미디언이 몇 해전 그가 죽기 전에 이러한 유언을 남겼습니다. “내가 죽고 난 후 나의 시체를 대학의 해부용 실험 대상으로 기증하겠습니다. 특별히 대학 중에서도 꼭 하버드 대학으로 보내주시길 바랍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내 부모님의 소원을 풀어드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내 부모님의 평생 소원은 내가 하버드 대학에 입학하는 것이었는데, 내가 하버드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은 이 길 밖에 없습니다.”
평생동안 다른 사람들을 웃기며 살았던 그의 마지막 순간이었습니다.
그는 가쁜 숨을 몰아 쉬면서 이어서 이런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죽음은 역시 고통스럽습니다.”
?
재치 있는 희곡으로 노벨 문학상까지 받았던 버트난드 러셀은 끝까지 유머감각을 잃지 않고 임종을 바라보는 의사를 보며 “의사양반, 아직 당신을 칠 힘은 남아 있소,”라고 말했습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님은 유언은 아니지만 죽기 몇 시간 전에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저는 드디어 자유를 얻었습니다. 이제야 저는 진정 자유롭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저는 이제 자유롭습니다.”
임종의 순간엔 자신을 숨길 수가 없기 때문에 우리가 믿고 살아온 인생이 그대로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 순간엔 하나님을 찬양하고 진정한 자유를 얻게 됨을 기뻐하는 유언이 나올 수 있는 삶을 살아가십시오.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빌립보서 3:14)

?
본문을 보면 다윗이 솔로몬에게 마지막으로 이르는 말을 합니다. 본문 2, 3절을 읽겠습니다.
‘내가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이 가는 길로 가게 되었노니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지라’
신명기 31장 7, 8절에 보면 하나님의 사람 모세는 죽기 전에 여호수아를 불러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그에게 이르되 ‘너는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이 백성을 거느리고 여호와께서 그들의 조상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들에게 그 땅을 차지하게 하라 그리하면 여호와 그가 네 앞에서 가시며 너와 함께 하사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니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고 합니다. 그리고 신명기 33장에 보면 모세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축복합니다.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네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29절)

?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하신 일곱 가지 말씀입니다.
첫째,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소서(눅23:34)
둘째,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깨 낙원에 있으리라(눅23:43)
셋째,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요19:26- 27)
넷째,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마27:46)
다섯째, 내가 목마르다(요19:28)
여섯째, 다 이루었다(요19:30)
일곱째,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23:46)

?
프랑스 마르세유에 유명한 수전노가 있었습니다. 그는 자녀도 없으면서 열심히 돈을 모았습니다. 하지만 돈을 쓰는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그를 돈만 아는 수전노라고 놀려댔습니다. 그의 재산이 과연 얼마나 되는지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자신의 방에서 시체로 발견됐습니다. 자식도 없고, 평생 인색하게 지내서 사람들의 인심을 잃었기에 그의 장례식을 치러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시청 직원들이 대신 장례를 치러주었습니다. 그런데 장례를 준비하다가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힌 유언장이 발견되었습니다.
"나는 마르세유 시민들이 깨끗하지 못한 식수 때문에 질병에 걸려 일찍 죽는 것을 수없이 보아왔다. 그래서 내 삶을 희생해서라도 시민들에게 맑은 물을 공급하기로 결심하고 열심히 재산을 모았다. 나의 모든 재산을 시에 기부한다. 이 기부금으로 시민들에게 맑은 물을 공급하기를 바란다."
사람들에게 욕을 먹고 손가락질 당하는 것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욕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전 재산을 바친다는 것은 사랑과 희생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이러한 사랑과 희생이 그리스도인들이 베풀어야 할 것입니다. 희생이 담긴 사랑으로 세상을 변화시켜 가십시오.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롬13:8)

?
내 평생의 소원은 하나님으로 부터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말씀을 듣기 원합니다. 그리고 내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내가 마지막 남길 말은 “너희는 하나님을 몸과 마음과 힘을 다하여 사랑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라”고 유언으로 남기고 싶습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6:5)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시37:4)

?
몇 년 전 뇌졸중으로 숨진 재미교포 조나단 심씨의 비디오 유언이 미국에서 큰 감동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아들과 딸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 담긴 그의 비디오 유언은 미국 일간지 시애틀타임스를 통해 소개된 후 그 내용이 미 전역으로 급속히 퍼져나갔습니다. 아동구호 기구인 월드비전에서 일하던 심씨는 5년 전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비디오 유언을 제작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비디오에서 그는 두 자녀 네이던과 나탈리에게 말했습니다.
“삶은 예측할 수 없단다. 어떤 일이든 생길 수 있어. 그래서 너희들에게 메시지를 남기고 싶었어…. 너희들을 위해 많은 꿈을 갖고 있단다. 열심히 공부하고, 추종자가 아닌 지도자가 되렴…. 사람들이 꿈꾸는 것 이상의 꿈을 꾸렴. 어떤 일도 해낼 수 있다고 믿는다. 너흰 우리에겐 참 소중한 선물이야. 너희를 정말 사랑해.”
그렇습니다. 삶은 예측할 수 없습니다. 미래의 주인이신 그리스도를 믿고 사는 사람이 살아있는 생명의 유언을 준비하며 사는 자입니다.

?
뉴멕시코 주의 한 가난한 흑인 가정이 있었습니다. 이 가정엔 랄프 번치라는 자녀가 있었는데 소년이 12살이 되던 해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모두 돌아가시는 불행이 찾아왔습니다. 어머니의 임종을 지켜보고 있던 랄프는 앞으로의 인생을 혼자 살아가야 한다는 불안감과 어머니를 잃는다는 슬픔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랄프의 손을 잡고 따스한 표정으로 위로해 주었습니다.
“랄프야, 우리 집이 너무 가난해 너에게 물려줄 것이 아무것도 없구나 하지만 앞으로 어떤 시련이 찾아온다 하더라도 믿음과 소망, 그리고 사랑을 잃지 말거라. 하나님이 언제나 너와 함께 하신단다.”
랄프는 이후 할머니 밑에서 자라면서 열심히 공부를 했습니다. 가난한 환경과 인종차별로 인해 몇 번이나 학업을 그만둘 위기를 맞았지만 그때마다 어머니의 마지막 유언을 기억하고 이겨 내었습니다. 소년은 곧 명문대에 진학을 했고, 정치인이 되었고, 외교관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UN사무총장의 자리에까지 올라 흑인 최초의 노벨 평화상 수상자가 되었습니다. 훗날 그는 굴곡 많은 인생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님의 유언인 믿음, 소망, 사랑을 언제나 잃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말씀대로 모든 일이 이루어집니다. 어떤 순간에도 믿음, 소망, 사랑을 잃지 마십시오.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고전13:13)
?
내게 주어진 하루 하루를 예수그리스도와 복음을 위해서 살고 언제 부르셔도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자신있게 준비된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
* 기도: 인생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주님! 이 세상 나그네 길을 끝없는 탐심과 이기심으로 살지 말게 하시고 주님과 그 영원한 나라를 사모하는 뜨거운 열정을 주시옵소서. 우리가 세상에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통로가 되게 하소서. 생의 마지막에 주님을 찬양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
* 묵상: 지금 임종을 맞는다면 어떤 유언을 남길 것인지 적어보십시오.

?
* 갈릴리 공동체 http://cafe.daum.net/Galileecommunity
(http://blog.naver.com/allcome)

 
 
이 포스트를...
선교자료모음(인내, 끈기) 댓글[0]
인내, 기더림 (2014-03-27 오전 7:31:15) http://blog.somang.net/holylove/8108
선교자료모음(인내, 끈기)
?

▣ 무모함을 넘어선 끈기

?
본문: 눅 18:27
‘이르시되 무릇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

?
스마트폰의 영어성경 애플리케이션인 ‘엠코이(mKoiBible)’를 개발한 이재수 씨는 프로그램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비전공자입니다. 대학도 나오지 않은 비전공자가 스마트폰 앱을 개발하게 된 데에는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세계 일주를 떠난 이 씨는 동남아를 여행하던 중에 말라리아에 걸려 여행을 그만두게 됩니다. 병에서 회복된 뒤에는 안정적인 직장을 위해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고, 4개월의 준비 끝에 수석으로 합격을 했지만, B형 간염이 발견되어 합격이 취소되었습니다. 이 씨는 영어와 프로그래머가 앞으로 유망할 것이라는 생각에 혼자서 책을 사서 공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28살이 되던 해에 주님을 만나면서 성경을 향한 비전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이 씨가 교회 내의 청년들의 사역을 돕기 위해서 개발한 프로그램은 현재 SK네트웍스에서 맡아 ‘유핏바이블’로 운영되고 있고, 최근에 개발한 엠코이도 여러 가지 편의 기능 때문에 입소문을 타고 빠르게 알려지고 있습니다. 삼성전자에서도 소문을 듣고 연락이 왔을 정도였습니다. 이 씨는 앞으로 더욱 많은 언어로 제공되는 성경 애플리케이션을 제공해 해외 선교사와 현지인들에게 보급하는 것이 장래 꿈이라고 말했습니다.
되지 않는 이유가 아니라 되는 이유에 초점을 맞춘다면 하지 못할 일이 없습니다. 주님이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포기를 넘어서는 끈기를 가지십시오.
* 기도: 주님!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임을 알게 하소서!
* 묵상: 하나님과 함께 함으로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는 말씀을 믿으십시오.
/김장환 목사, 제공 : 나침반출판사

?
▣ 끝까지 간다

?
1984년 올림픽에서 제프 브라트닉이라는 레스링 선수가 금메달을 목에 건채 무릎을 꿇고 엉엉 울던 장면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이 선수는 위암에 걸렸지만 운명과 사투 끝에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는 "내 생명이 끝났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나는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을 통해서 다시 인생의 금메달을 향해 달려갈 것이다"라고 했다.
죽을병에 걸렸지만 그는 절망하지 않았다. 깨지기 쉬운 질그릇 같은 인생이지만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을 믿었던 것이다. 그는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사 43:19)라는 말씀을 끝까지 놓지 않았다. 하나님의 사람은 외로운 시간에 만들어진다. 외로움의 대가는 명품 인격을 탄생시킨다. 바울은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를 버린 이 일을 네가 아나니"(딤후 1:15)라고 외로움을 토했다. 때로는 믿었던 사람들이 떠나고 사랑했던 사람에게서 돌이 날아오리라. 그러나 슬퍼하지 말자. 이렇게 절박하고 외로운 순간이야말로 처절하게 주님을 찾는 시간이 아니겠는가.
"하나님! 이제 나는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이것이 믿음이다. 광야는 외로운 자리요 고요한 시간이다. 하나님의 역사는 여기에서 이루어진다. 위대한 믿음은 여기 광야에서 시작된다. 홀로 남은 외로운 시간에 야곱이 무너지고 이스라엘이 탄생되었듯이!
「광야수업」/ 정영진

?
▣ 견딘 만큼 쓰인다

?
미래의 쓰임을 위해 고난을 견디는 마음은 복된 마음이다. 고난을 견딘다는 것은 힘든 일이지만 오늘의 견딤이 없이는 내일의 쓰임이 없다. 우리는 견딤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인생의 승리는 꾸준한 견딤의 열매이기 때문이다. 견딤의 기간이 쓰임의 기간을 결정한다. 일본에는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목조 건축물인 '호류사'가 있다. 니시오카 가문은 화재와 소실의 위험이 있는 호류사를 1,400년간 대대로 지켜 왔다.
일본 사람들은 천 년 이상 갈 수 있는 건축물을 짓는 목수를 궁목수라고 한다. 니시오카 가문은 궁목수 가문이다. 그들이 천 년 이상 가는 목조 건축물을 세울 수 있는 까닭은 천 년 이상을 지탱할 수 있는 노송을 쓰기 때문이다. 그들은 나무의 생명력을, 그 나무가 오랫동안 견뎌 낸 연수로 결정했다. 천 년을 견딘 나무는 천 년 이상 쓰임받는다. 견딤이 있은 연후에 쓰임이 있는 것이다. 오래 쓰임받기 원하는 사람은 오래 견뎌야 한다. 모세는 광야 40년의 고난을 견뎠기에 평생을 쓰임받았다. 견딤의 기간이 쓰임의 기간을 결정한다면, 견딤의 강도는 쓰임의 강도를 결정한다. 뜨거운 용광로를 견뎌 낸 그릇이 견고하다. 뜨거운 불을 견뎌 낸 그릇이 빛난다. 견딤의 강도가 강할수록 그 영광 또한 찬란하다.
「마음에 담기지 않는 사랑은 없다」/ 강준민

?
▣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

?
우리를 변화시키는 것은 비난과 고소가 아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율법의 정죄로 변화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계셨다. 우리를 변화시키는 것은 사랑의 말이다. 그래서 비난하거나 판단하지 말고 서로 용납하라고 말씀하신다. 우리가 말로 다른 사람을 고치려 한다면, 그 안에는 자신이 하나님을 대신해서 하나님 자리에 앉으려고 하는 교만이 존재한다. 아내의 우울증과 슬럼프 기간에 나는 내 아내조차도 변화시킬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이 문제를 가지고 나아갔다. 그때 하나님이 아내를 변화시켜 주셨다. 내가 고치려 했다면 문제는 더 악화되었을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변화시키기 위해 오래 참으셨다. 내가 나 되기까지 오래 참으신 하나님을 생각하면 겸허해질 수밖에 없다. 나를 오래 참으신 하나님은 내가 판단하는 그 사람을 위해서도 오래 참으실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판단하는 대상의 현재만 보지만, 하나님은 그의 과거와 미래를 같이 보신다. 나는 그의 미래의 변화된 모습을 알지 못한다. 또 나의 미래의 모습도 알지 못한다. 변화되지 못했던 나의 예전 모습을 돌이켜 보면 하나님이 변화시키지 못할 사람이 없음을 알 수 있다. 지금은 모자라 보여도 앞으로 변화될 모습을 기대하며 그 사람을 바라보는 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분별의 지혜다.
- 「더 내려놓음」/ 이용규

?
▣ 명작을 만드는 것

?
본문: 골 1:16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
악성 베토벤은 청각장애를 이겨냈습니다. 베토벤은 귀가 들리지 않게 된 이후에는 피아노에 얼굴을 대고 음의 울림을 느끼면서 작곡을 했습니다. 보통 한 곡을 완성한 뒤에도 평균 12 번 이상을 다시 고쳤다고 합니다. 그러나 베토벤의 진정한 대표곡들은 바로 이 시기에 탄생했습니다.
하이든은 가난에 시달리면서도 8백 개가 넘는 곡을 작곡했습니다. 하이든의 초창기의 곡들은 대부분 인기가 없어서 팔리지도 않았지만 하이든은 묵묵히 자기의 일을 할 뿐이었습니다. 하이든이 작곡한 불후의 명곡인 ‘천지창조’는 예술가로써는 이미 전성기가 한참 지난 66세 때 발표한 곡이었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최후의 만찬을 10년에 걸쳐 그렸습니다. 그는 그림을 그리는 일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식사를 하는 것도 잊은 채 하루 종일 그림만 그리던 때가 많이 있었다고 합니다. 베토벤이 귀가 멀었다고, 하이든이 돈이 안 된다고, 다빈치가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포기했다면 세기의 가장 유명한 곡과 그림들은 완성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명작을 만드는 것은 실력을 뒷받침하는 오랜 인내입니다. 나의 노력을 가장 귀하게 사용해주실 주님의 방법과 계획을 인내함으로 기다리십시오.
* 기도: 주님!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의 귀한 작품임을 알게 하소서!
* 묵상: 나를 향한 큰 계획이 있으실 주님을 믿고 깊이 인내하십시오.
/김장환 목사, 제공 : 나침반출판사

?
▣ 달팽이의 인내

?
인생을 사노라면 어렵고 힘든 일들이 무수히 많다. 오죽하면 인생을 가리켜 광야를 통과하는 것으로, 거친 바다를 항해하는 것으로 비유할까. 그러므로 승리하는 인생을 살려면 무엇보다 인내가 필수적이다. 신앙의 수준을 여러 가지 척도로 측정할 수 있겠지만 대표적인 게 바로 인내다. 어떤 상황에서 얼마나 잘 인내하느냐가 바로 신앙의 성숙도다.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선진들은 하나같이 인내의 사람들이었다. 아브라함은 언약의 아들인 이삭을 얻기까지 25년을 인내했고,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되기까지 13년을 인내했다.
믿음의 선진들도 훌륭하지만 인내의 표상은 누구보다 예수님이시다. 그분은 십자가의 극한 고통과 수치를 참아내셨다. 부활 승리를 확신하셨기에 기쁨으로 인내하셨다. 승리하신 예수님은 지금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계신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권면한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히 12:2) 영어성경(NIV)을 보면 ‘예수님께 시선을 고정하자(Let us fix our eyes on Jesus)’는 말이다.
찰스 H 스펄전 목사가 이런 말을 했다. “달팽이는 인내 하나로 방주에 도달했다.” 노아의 방주에 모든 동물이 들어갔으니까, 분명히 달팽이도 들어갔을 거다. 달팽이의 속도가 얼마나 될까. 시속 0.012㎞ 즉 시속 12m 남짓 된다고 한다. 달팽이는 이렇게 느려도 인내하는 재주를 갖고 있다. 달팽이가 방주를 보고 끝까지 기어간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을 바라보고, 천국을 바라보고 끝까지 인내하자. 그리고 하나님의 때에 주시는 승리를 거두자(갈 6:9).
/홍문수 목사(신반포교회)

?
* 금언: 하나님은 우리의 능력이 아닌, 부르심에 대한 응답만을 요구하신다.
* 금언: 미래는 두려움과 믿음, 두 개의 손잡이를 갖고 있다. 당신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
* 갈릴리 공동체 http://cafe.daum.net/Galileecommunity
(http://blog.naver.com/allcome)

 

이 포스트를...
너 십자가 지고 가라 댓글[0]
십자가, 순교 (2014-03-08 오전 8:14:22) http://blog.somang.net/holylove/8073
너 십자가 지고 가라
?

본문: 요19:17- 30

?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곳은 해골 모양의 바위 언덕이었습니다. 언덕 이름은 라틴어로는 갈보리라 하였고 히브리어로는 골고다라고 불렀습니다. 십자가는 악한 죄인을 처형시키는 사형틀입니다. 사형수가 십자가를 지고 현장에 도착하면 옷을 벗기고 십자가 형틀에 두 손과 두 발을 고정시킵니다. 그러면 손과 발이 찢어지면서 몸속의 피가 흘러나와 결국 죽게 됩니다. 어떤 죄수는 3일동안이나 고통을 당하다가 죽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힌 지 6 시간만에 운명하셨습니다. 채찍에 너무 많이 맞아 기진한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해서 죄로 타락한 모든 사람의 죄값을 대신 치르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대속의 은혜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생을 얻습니다. 사람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대속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 오늘은 성 금요일. 우리를 위해 고난당하신 예수와 십자가를 바라봅시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12:2)

?
'거기 너 있었는가 그때에 주님 그 십자가에 달릴 때'(찬송가 147장)라는 유명한 흑인영가가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거기 있을 수는 없습니다. 십자가 사건은 우리가 태어나기 2,000년 전에 일어난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가 그 자리에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존 스토트의 지적처럼 우리는 '단순히 구경꾼으로만 거기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음모를 품고, 배반하고, 흥정하고, 넘겨주어서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히게 한, 그 모든 일에 참여한 유죄의 가담자로' 거기에 있었던 것입니다. 이 사실을 깨닫게 될 때 자신의 죄를 철저히 회개하고,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경험을 하며, 그로 인해 구원의 은혜를 누리게 됩니다.
?
렘브란트의 성화 중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는 장면을 그린 그림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고통 당하시는 십자가 아래에서 마리아와 여러 사람이 울며 두려워하는 모습을 그렸는데, 한 사람 한 사람의 표정이 실감 납니다. 그런데 그림 한쪽 구석에 당시 유대 사람과는 전혀 관계없는 사람의 얼굴이 그려져 있습니다. 바로 렘브란트 자신입니다. 이것은 렘브란트의 신앙고백을 보여 줍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는 현장, 거기에 내가 있었다.'
내 죄가 예수님을 못 박게 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참된 구원이 임합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2,000년 전 먼 유대에서 일어난 예수님의 죽음이 바로 나를 위한 사건으로 믿어져, 지금 여기에서 나를 구원하는 능력의 십자가로 역사하는 것입니다.
갈보리 산위에서 예수님이 십자가 지실 때 거기 너 있었는가? 예수님 십자가에 달릴 때 거기 너 있었으면 너도 주님과 함께 십자가를 질 수 있겠는가? 십자가는 주가 우리 죄를 대신 지시고 고난을 당한 표로서, 우리가 험한 십자가를 사랑함은 주가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보혈을 흘리신 까닭입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에 대하여 그러하니라’(갈6:14)

?
십자가 앞에는 4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
첫째는, 십자가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당시의 로마 군병들은 십자가 앞에 있었으나 그들의 관심은 오직 현실적인 이익에만 관심이 있었을 뿐입니다.
‘군인들이 서로 말하되 이것을 찢지 말고 누가 얻나 제비 뽑자 하니 이는 성경에 그들이 내 옷을 나누고 내 옷을 제비 뽑나이다 한 것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군인들은 이런 일을 하고’(요19:24)
?
둘째는, 십자가를 회피한 사람들입니다. 빌라도와 구경꾼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죄없이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심을 알고도 자기 직책이나 일신의 안전을 위해 구경만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가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가 보고 믿게 할지어다 하며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자들도 예수를 욕하더라’(막15:32)
‘빌라도가 패를 써서 십자가 위에 붙이니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 기록되었더라’(요19:19)
‘빌라도가 이르되 어찜이냐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하니 더욱 소리 지르되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는지라’(막15:14)
?
셋째는, 십자가를 바라보고 안타까워하며 눈물을 흘린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가족과 제자들입니다.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어머니와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요19: 25)
그런데 베드로는 십자가 앞에서 넘어졌습니다.(마26: 69- 75)
?
넷째는 사람을 두려워하여 자신을 숨겼다가 후에 주님의 일에 참여하는 사람입니다. 아리마데 요셉과 니고데모 같은 사람입니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예수의 제자이나 유대인이 두려워 그것을 숨기더니 이 일 후에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기를 구하매 빌라도가 허락하는지라 이에 가서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니라 일찍이 예수께 밤에 찾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리트라쯤 가지고 온지라“(요19:38- 39)

?
이를 다시 분류하면 예수님의 십자가를 중심으로 네 부류의 인간들을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인류의 죄를 대신해서 스스로 십자가의 죽음을 택하신 예수님께 속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주인공이 될 인물들입니다. 신앙이 훌륭하고 날마다 찬양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입니다. 법이 없어도 살 수 있는 선한 믿음의 사람들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꾼들입니다. 어느 곳에 있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하여 변함없이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말합니다.
?
둘째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향하여 회개하는 마음으로 ‘주님!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 나를 기억해주시옵소서.’ 하고 믿음으로 주님을 영접하는 무리들입니다. 많은 죄를 짓고 세상에서 손가락질을 받는 사람들이라고 해도 예수님을 믿고 영접함으로 인하여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아무리 큰 죄를 진 사람들이라고 해도 하나님께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속에 모시게 되면 천국의 백성이 되는 자격이 주어지게 됩니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어떤 세상적인 스펙이나 지식이 아니라 오직 순수한 믿음이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
셋째는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보고 빈정거리며 무신론적인 삶을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천국의 존재도, 하나님도, 구원도 믿지 않는 물질주의에 빠진 인간들입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무신론자들이 이런 부류에 속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성경적으로 본다면 하나님의 나라에 예약을 할 수 없는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거기 천국이죠? 제가 하나님의 나라에 예약을 좀 하려고 하는데요. 가능할까요?’ 하고 천국의 정문에 전화를 걸었을 때 ‘고객님은 신앙불량자라 하나님의 나라엔 예약이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지옥훈련소엔 예약이 됩니다.’ 하고 멘트가 나올 수밖에 없는 사람들입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1:18)
?
넷째는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먼발치에서 바라보며 우두커니 선 채로 구경만 하는 사람들입니다. 아직 예수님을 믿지는 않지만, 구원을 받을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이 왜 십자가에 달리셨는지, 그 의미가 무엇인가를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그냥 십자가 앞에서 아직도 구경꾼으로 남겨져 있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예수를 섬기며 갈릴리에서부터 따라온 많은 여자가 거기 있어 멀리서 바라보고 있으니’(마27:55)

?
나는 몇 번 째 사람에 해당되는지 점검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1번인 사람은 정말 하늘의 축복을 받은 예수님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2번도 회개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천국의 백성들입니다. 하지만 3번은 회개하지 않는다면 구원의 가능성이 전혀 없는 무신론자들입니다. 4번은 복음전도를 받고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3번의 강도 같은 사람도 진심으로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에게 구원의 기회를 동등하게 주셨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은 우리의 고통, 우리의 오해받음, 우리의 배신, 우리의 눈물, 우리 죄악의 치욕과 부끄러움을 이해하십니다. 그렇게 내 죄를 담당하시고 보배로운 피를 쏟아 내신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십자가 앞에 나오는 사람을 우리 주님은 구원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구원입니다. 십자가는 능력입니다. 십자가는 위로입니다. 십자가는 소망입니다.

?
찬송가 458장, <통> 513장 ‘너희 마음에 슬픔이 가득 차고’ 를 함께 부르겠습니다.

?
1. 너희 마음에 슬픔이 가득 차도
주가 즐겁게 하시리라
아침 해 같이 빛나는 마음으로
너 십자가 지고 가라
2. 때를 따라서 주시는 은혜로써
갈한 심령에 힘을 얻고
주가 언약한 말씀을 기억하고
너 십자가 지고 가라
3. 네가 맡은 일 성실히 행할 때에
주님 앞에서 상 받으리
주가 베푸신 은혜를 감사하며
너 십자가 지고 가라
<후렴>
즐거운 마음으로 십자가 지고 가라
네가 기쁘게 십자가 지고 가면
슬픈 마음이 위로받네

?
우리는 십자가 앞에서 내 자아와 고집, 욕심을 함께 못박아야 합니다.(갈5:24) 십자가는 곧 죽음입니다. 자기 자존심, 자기 만족, 자기 쾌락, 자기 욕심, 자기 이익을 모두 죽여야 합니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목숨까지 아끼지 않고 바치는 것입니다. 우리의 육신이 백 년 동안 아무리 부귀 영화를 다 누리면서 산다고 해도 그것은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삶에 비하면 한 순간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혼을 구원하는 일, 상대방으로 하여금 영생복락을 누리게 하는 일을 위해 희생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16:24, 막8:34, 눅9:23, 눅14:27)

?
예수님은 아무런 죄가 없었지만 나를 위하여 저 참혹한 십자가를 묵묵히 지셨고 그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온갖 수모와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뜨거운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억울함을 참지 못하고 용서하지 못하고 화해하지 못하고 품지 못하고, 사랑허지 못하고..
그럼에도 늘 사랑으로 품어주시고, 씻어 주시는 주님,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이제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뒤를 따르기를 원합니다.
고난 주간입니다. 주님의 사랑에 대해 묵상하는 주간이 되길 원합니다.
?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희생'을 원하십니다. 자기는 죽고 예수로 사는, 십자가의 삶을 살라는 말입니다. 교회 청년들 가운데 여러 가지 좋은 조건을 가졌음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쫒아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포기하고 아프리카, 아시아를 비롯한 세계 곳곳을 향해 선교사로 떠나는 것을 봅니다. 기꺼이 주님의 십자가를 진 것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뜻에 'YES'라고 답하면, 그분의 뜻에 따라 살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주님은 내게도 동일하게 물으십니다. "예수 믿으니까 좋지? 죄 용서받고 기도하는 대로 응답받으니까 좋지 않니?" "그럼요, 좋지요. 제 머리털까지도 헤아리시고, 어디를 가든지 동행해 주시고 보호해 주시니 정말 좋아요."
나의 마음은 그저 좋기만 합니다. 그런데 주님이 나를 향해 또다시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에게 할 말이 있어. 네가 예수 믿고 받은 복을 교회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전부 드린 후에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지 않으련?"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신다면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
기독교는 십자가의 종교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5:8) 즉 십자가는 그리스도가 자신의 사랑을 세상에 전한 설교단이며,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큰 복을 받았기 때문에 주님은 그 복을 가지고 희생하고 헌신하며 충성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십자가의 세계로 들어오시기 바랍니다! 우리도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십자가는 억지로 마지못해 지는 자에게는 너무 무거워 지기 힘이 드나, 기쁜 마음과 신앙으로 지는 자에게는 매우 가볍습니다.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나를 사랑하신 주님이 오라 하시는 길을 따라감으로, 하나님이 예비하신 진정한 행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아무쪼록 구레네 시몬(마27: 32) 처럼 억지로 라도 주님이 지신 십자가를 지고 따라가시는 모든 성도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큰 복을 받았기 때문에 주님은 그 복을 가지고 희생하고 헌신하며 충성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십자가의 세계로 들어오시기 바랍니다.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나를 사랑하신 주님이 오라 하시는 길을 따라감으로, 하나님이 예비하신 진정한 행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
* 기도 : 내 죄를 사하시려 십자가를 지신 주님, 주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시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우리는 십자가 앞에서 자신이 죽은 사람임을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날마다 십자가를 묵상하면서 변화되는 신앙생활을 하게 하옵소서. 제가 지고 가야 할 십자가에 복을 내려주소서. 저에게 십자가를 질 힘을 허락하시어, 진실로 사랑하는 기쁨으로 이웃을 만나 삶을 힘차게 이어가게 하소서. 사랑의 주님, 제가 만약 이웃을 사랑해야 하는 십자가를 지지 않고서 영원에 이르려 하고 있다면, 가슴 아프게 찔리는 벌을 내려주소서. 힘들이지 않고 평화를 얻으려 하거나, 누워서 하늘나라의 자유를 차지하려는 헛된 마음을 없애주시어 오직 이웃을 용서하는 아픔의 기쁨, 이웃을 위해 희생하는 봉사의 기쁨을 허락하소서. 주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드리고 주님의 기쁨이 되게 하소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한태완


?
* 갈릴리 공동체 http://cafe.daum.net/Galileecommunity
(http://blog.naver.com/jesuskorea, http://blog.naver.com/allcome)
 
이 포스트를...
너 십자가 지고 가라 댓글[0]
십자가, 순교 (2014-03-08 오전 8:14:22) http://blog.somang.net/holylove/8072
너 십자가 지고 가라
?

본문: 요19:17- 30

?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곳은 해골 모양의 바위 언덕이었습니다. 언덕 이름은 라틴어로는 갈보리라 하였고 히브리어로는 골고다라고 불렀습니다. 십자가는 악한 죄인을 처형시키는 사형틀입니다. 사형수가 십자가를 지고 현장에 도착하면 옷을 벗기고 십자가 형틀에 두 손과 두 발을 고정시킵니다. 그러면 손과 발이 찢어지면서 몸속의 피가 흘러나와 결국 죽게 됩니다. 어떤 죄수는 3일동안이나 고통을 당하다가 죽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힌 지 6 시간만에 운명하셨습니다. 채찍에 너무 많이 맞아 기진한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해서 죄로 타락한 모든 사람의 죄값을 대신 치르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대속의 은혜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생을 얻습니다. 사람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대속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 오늘은 성 금요일. 우리를 위해 고난당하신 예수와 십자가를 바라봅시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12:2)

?
'거기 너 있었는가 그때에 주님 그 십자가에 달릴 때'(찬송가 147장)라는 유명한 흑인영가가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거기 있을 수는 없습니다. 십자가 사건은 우리가 태어나기 2,000년 전에 일어난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가 그 자리에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존 스토트의 지적처럼 우리는 '단순히 구경꾼으로만 거기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음모를 품고, 배반하고, 흥정하고, 넘겨주어서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히게 한, 그 모든 일에 참여한 유죄의 가담자로' 거기에 있었던 것입니다. 이 사실을 깨닫게 될 때 자신의 죄를 철저히 회개하고,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경험을 하며, 그로 인해 구원의 은혜를 누리게 됩니다.
?
렘브란트의 성화 중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는 장면을 그린 그림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고통 당하시는 십자가 아래에서 마리아와 여러 사람이 울며 두려워하는 모습을 그렸는데, 한 사람 한 사람의 표정이 실감 납니다. 그런데 그림 한쪽 구석에 당시 유대 사람과는 전혀 관계없는 사람의 얼굴이 그려져 있습니다. 바로 렘브란트 자신입니다. 이것은 렘브란트의 신앙고백을 보여 줍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는 현장, 거기에 내가 있었다.'
내 죄가 예수님을 못 박게 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참된 구원이 임합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2,000년 전 먼 유대에서 일어난 예수님의 죽음이 바로 나를 위한 사건으로 믿어져, 지금 여기에서 나를 구원하는 능력의 십자가로 역사하는 것입니다.
갈보리 산위에서 예수님이 십자가 지실 때 거기 너 있었는가? 예수님 십자가에 달릴 때 거기 너 있었으면 너도 주님과 함께 십자가를 질 수 있겠는가? 십자가는 주가 우리 죄를 대신 지시고 고난을 당한 표로서, 우리가 험한 십자가를 사랑함은 주가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보혈을 흘리신 까닭입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에 대하여 그러하니라’(갈6:14)

?
십자가 앞에는 4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
첫째는, 십자가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당시의 로마 군병들은 십자가 앞에 있었으나 그들의 관심은 오직 현실적인 이익에만 관심이 있었을 뿐입니다.
‘군인들이 서로 말하되 이것을 찢지 말고 누가 얻나 제비 뽑자 하니 이는 성경에 그들이 내 옷을 나누고 내 옷을 제비 뽑나이다 한 것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군인들은 이런 일을 하고’(요19:24)
?
둘째는, 십자가를 회피한 사람들입니다. 빌라도와 구경꾼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죄없이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심을 알고도 자기 직책이나 일신의 안전을 위해 구경만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가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가 보고 믿게 할지어다 하며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자들도 예수를 욕하더라’(막15:32)
‘빌라도가 패를 써서 십자가 위에 붙이니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 기록되었더라’(요19:19)
‘빌라도가 이르되 어찜이냐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하니 더욱 소리 지르되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는지라’(막15:14)
?
셋째는, 십자가를 바라보고 안타까워하며 눈물을 흘린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가족과 제자들입니다.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어머니와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요19: 25)
그런데 베드로는 십자가 앞에서 넘어졌습니다.(마26: 69- 75)
?
넷째는 사람을 두려워하여 자신을 숨겼다가 후에 주님의 일에 참여하는 사람입니다. 아리마데 요셉과 니고데모 같은 사람입니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예수의 제자이나 유대인이 두려워 그것을 숨기더니 이 일 후에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기를 구하매 빌라도가 허락하는지라 이에 가서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니라 일찍이 예수께 밤에 찾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리트라쯤 가지고 온지라“(요19:38- 39)

?
이를 다시 분류하면 예수님의 십자가를 중심으로 네 부류의 인간들을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인류의 죄를 대신해서 스스로 십자가의 죽음을 택하신 예수님께 속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주인공이 될 인물들입니다. 신앙이 훌륭하고 날마다 찬양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입니다. 법이 없어도 살 수 있는 선한 믿음의 사람들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꾼들입니다. 어느 곳에 있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하여 변함없이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말합니다.
?
둘째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향하여 회개하는 마음으로 ‘주님!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 나를 기억해주시옵소서.’ 하고 믿음으로 주님을 영접하는 무리들입니다. 많은 죄를 짓고 세상에서 손가락질을 받는 사람들이라고 해도 예수님을 믿고 영접함으로 인하여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아무리 큰 죄를 진 사람들이라고 해도 하나님께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속에 모시게 되면 천국의 백성이 되는 자격이 주어지게 됩니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어떤 세상적인 스펙이나 지식이 아니라 오직 순수한 믿음이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
셋째는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보고 빈정거리며 무신론적인 삶을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천국의 존재도, 하나님도, 구원도 믿지 않는 물질주의에 빠진 인간들입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무신론자들이 이런 부류에 속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성경적으로 본다면 하나님의 나라에 예약을 할 수 없는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거기 천국이죠? 제가 하나님의 나라에 예약을 좀 하려고 하는데요. 가능할까요?’ 하고 천국의 정문에 전화를 걸었을 때 ‘고객님은 신앙불량자라 하나님의 나라엔 예약이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지옥훈련소엔 예약이 됩니다.’ 하고 멘트가 나올 수밖에 없는 사람들입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1:18)
?
넷째는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먼발치에서 바라보며 우두커니 선 채로 구경만 하는 사람들입니다. 아직 예수님을 믿지는 않지만, 구원을 받을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이 왜 십자가에 달리셨는지, 그 의미가 무엇인가를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그냥 십자가 앞에서 아직도 구경꾼으로 남겨져 있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예수를 섬기며 갈릴리에서부터 따라온 많은 여자가 거기 있어 멀리서 바라보고 있으니’(마27:55)

?
나는 몇 번 째 사람에 해당되는지 점검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1번인 사람은 정말 하늘의 축복을 받은 예수님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2번도 회개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천국의 백성들입니다. 하지만 3번은 회개하지 않는다면 구원의 가능성이 전혀 없는 무신론자들입니다. 4번은 복음전도를 받고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3번의 강도 같은 사람도 진심으로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에게 구원의 기회를 동등하게 주셨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은 우리의 고통, 우리의 오해받음, 우리의 배신, 우리의 눈물, 우리 죄악의 치욕과 부끄러움을 이해하십니다. 그렇게 내 죄를 담당하시고 보배로운 피를 쏟아 내신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십자가 앞에 나오는 사람을 우리 주님은 구원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구원입니다. 십자가는 능력입니다. 십자가는 위로입니다. 십자가는 소망입니다.

?
찬송가 458장, <통> 513장 ‘너희 마음에 슬픔이 가득 차고’ 를 함께 부르겠습니다.

?
1. 너희 마음에 슬픔이 가득 차도
주가 즐겁게 하시리라
아침 해 같이 빛나는 마음으로
너 십자가 지고 가라
2. 때를 따라서 주시는 은혜로써
갈한 심령에 힘을 얻고
주가 언약한 말씀을 기억하고
너 십자가 지고 가라
3. 네가 맡은 일 성실히 행할 때에
주님 앞에서 상 받으리
주가 베푸신 은혜를 감사하며
너 십자가 지고 가라
<후렴>
즐거운 마음으로 십자가 지고 가라
네가 기쁘게 십자가 지고 가면
슬픈 마음이 위로받네

?
우리는 십자가 앞에서 내 자아와 고집, 욕심을 함께 못박아야 합니다.(갈5:24) 십자가는 곧 죽음입니다. 자기 자존심, 자기 만족, 자기 쾌락, 자기 욕심, 자기 이익을 모두 죽여야 합니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목숨까지 아끼지 않고 바치는 것입니다. 우리의 육신이 백 년 동안 아무리 부귀 영화를 다 누리면서 산다고 해도 그것은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삶에 비하면 한 순간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혼을 구원하는 일, 상대방으로 하여금 영생복락을 누리게 하는 일을 위해 희생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16:24, 막8:34, 눅9:23, 눅14:27)

?
예수님은 아무런 죄가 없었지만 나를 위하여 저 참혹한 십자가를 묵묵히 지셨고 그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온갖 수모와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뜨거운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억울함을 참지 못하고 용서하지 못하고 화해하지 못하고 품지 못하고, 사랑허지 못하고..
그럼에도 늘 사랑으로 품어주시고, 씻어 주시는 주님,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이제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뒤를 따르기를 원합니다.
고난 주간입니다. 주님의 사랑에 대해 묵상하는 주간이 되길 원합니다.
?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희생'을 원하십니다. 자기는 죽고 예수로 사는, 십자가의 삶을 살라는 말입니다. 교회 청년들 가운데 여러 가지 좋은 조건을 가졌음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쫒아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포기하고 아프리카, 아시아를 비롯한 세계 곳곳을 향해 선교사로 떠나는 것을 봅니다. 기꺼이 주님의 십자가를 진 것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뜻에 'YES'라고 답하면, 그분의 뜻에 따라 살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주님은 내게도 동일하게 물으십니다. "예수 믿으니까 좋지? 죄 용서받고 기도하는 대로 응답받으니까 좋지 않니?" "그럼요, 좋지요. 제 머리털까지도 헤아리시고, 어디를 가든지 동행해 주시고 보호해 주시니 정말 좋아요."
나의 마음은 그저 좋기만 합니다. 그런데 주님이 나를 향해 또다시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에게 할 말이 있어. 네가 예수 믿고 받은 복을 교회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전부 드린 후에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지 않으련?"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신다면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
기독교는 십자가의 종교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5:8) 즉 십자가는 그리스도가 자신의 사랑을 세상에 전한 설교단이며,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큰 복을 받았기 때문에 주님은 그 복을 가지고 희생하고 헌신하며 충성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십자가의 세계로 들어오시기 바랍니다! 우리도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십자가는 억지로 마지못해 지는 자에게는 너무 무거워 지기 힘이 드나, 기쁜 마음과 신앙으로 지는 자에게는 매우 가볍습니다.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나를 사랑하신 주님이 오라 하시는 길을 따라감으로, 하나님이 예비하신 진정한 행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아무쪼록 구레네 시몬(마27: 32) 처럼 억지로 라도 주님이 지신 십자가를 지고 따라가시는 모든 성도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큰 복을 받았기 때문에 주님은 그 복을 가지고 희생하고 헌신하며 충성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십자가의 세계로 들어오시기 바랍니다.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나를 사랑하신 주님이 오라 하시는 길을 따라감으로, 하나님이 예비하신 진정한 행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
* 기도 : 내 죄를 사하시려 십자가를 지신 주님, 주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시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우리는 십자가 앞에서 자신이 죽은 사람임을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날마다 십자가를 묵상하면서 변화되는 신앙생활을 하게 하옵소서. 제가 지고 가야 할 십자가에 복을 내려주소서. 저에게 십자가를 질 힘을 허락하시어, 진실로 사랑하는 기쁨으로 이웃을 만나 삶을 힘차게 이어가게 하소서. 사랑의 주님, 제가 만약 이웃을 사랑해야 하는 십자가를 지지 않고서 영원에 이르려 하고 있다면, 가슴 아프게 찔리는 벌을 내려주소서. 힘들이지 않고 평화를 얻으려 하거나, 누워서 하늘나라의 자유를 차지하려는 헛된 마음을 없애주시어 오직 이웃을 용서하는 아픔의 기쁨, 이웃을 위해 희생하는 봉사의 기쁨을 허락하소서. 주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드리고 주님의 기쁨이 되게 하소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한태완


?
* 갈릴리 공동체 http://cafe.daum.net/Galileecommunity
(http://blog.naver.com/jesuskorea, http://blog.naver.com/allcome)
 
이 포스트를...
예수님을 대하듯이 봉사하라 댓글[0]
봉사, 선행 (2014-02-16 오후 8:34:12) http://blog.somang.net/holylove/8070
예수님을 대하듯이 봉사하라
 
 
본문: 마태복음 25: 35- 46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그들도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헐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하지 아니하더이까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구두장이 할아버지가 있었습니다. 이 구두장이 할아버지의 간절한 소원은 예수님을 단 한 번만이라도 만나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예수님이 꿈속에 나타나 내일 너희 집을 방문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할아버지는 어찌나 기뻤던지 온갖 정성을 들여 음식을 가득 차려놓고 기다렸으나 어찌된 셈인지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예수님은 그 날 저녁 가게문을 닫을 때까지도 오시지 아니 하였습니다. 단지 거지가 한 번 오고, 또 한 번은 청소부 할아버지가 오고, 저녁 때는 사과장수 아주머니가 왔을 뿐이었습니다. 이 구두장이 할아버지는 그만, 거지와 청소부 할아버지와 사과장수 아주머니에게 예수님을 대접하려고 정성스럽게 준비한 음식을 나누어 주고 말았습니다. 왜냐하면 이들 모두 너무나 불쌍하게 보였고 실제로 추위 때문에 또 배고픔 때문에 떨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날 밤 예수님께서 꿈 속에 다시 나타나시매 이 구두장이 할아버지는 왜 오시지 않으셨느냐고 질문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뜻밖에도 "나는 오늘 너희 집에 세 번이나 갔었는데 세 번 다 대접을 잘 받았다. 참으로 너는 나를 사랑하는 줄을 알겠다. 네 이웃에 사는 보잘 것 없는 사람을 대접하는 것이 곧 나를 대접한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이야기는 톨스토이의 작품 속에 나오는 것으로 본문에 언급된 최후의 심판광경을 생각나게 합니다. 최후의 심판시 의인으로 판결을 받은 자들에게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따뜻하게 맞아 주었다. 또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으며,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고, 감옥에 갇혔을 때에 찾아 주었다"고 칭찬을 하고 있습니다. 의인들은 오히려 놀라서 언제 이런 일을 당한 주님을 도와 드린 적이 있느냐고 반문을 합니다. 이에 심판주되신 임금님은 "분명히 말하건대,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중에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라고 심판의 근거를 밝히고 있습니다.
위의 이야기는 우리 주위에 있는 지극히 작은 자를 대접하며 용기를 북돋우어 주는 것이 곧 주님을 대접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구체적인 방법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 너희도 함께 갇힌 것 같이 갇힌 자를 생각하고 너희도 몸을 가졌은즉 학대 받는 자를 생각하라(히13:2, 3)
 
 
아브라함은 세 사람의 나그네를 영접하여 떡과 고기와 우유 등으로 융숭한 대접을 한 것이 결국 하나님의 천사를 영접한바 되어 나이 1백 살에 아들(이삭)을 얻는 축복을 받았습니다.(창18:1- 15)
어려운 이웃을 돕고, 이웃에게 친절하고, 이웃의 허물을 용서하고, 이웃을 사랑합시다.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골3:12- 14)
 
 
어린이 대공원과 아차산 사이의 능동로 가구거리에 가구대리점을 하시는 최 집사가 20대 때 시골에서 상경하여 그 가구점 점원으로 있을 때의 일입니다. 어느 날 소나기가 갑자기 쏟아지는데 바로 자기 점포 앞 대로에서 택시를 기다리던 할머니 한 분이 비를 맞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본 최 집사는 할머니를 점포 안으로 모셔들여 따뜻한 차 한잔을 권했습니다. 그런 뒤 자신이 택시를 잡아서 할머니를 귀가시켰습니다. 며칠 후 전화를 받고서야 그 할머니가 재벌 회장의 장모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회장은 이런 성실한 청년이 일하는 회사의 가구는 믿어도 될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 모든 사무용품을 이 회사 제품으로 쓰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 주께 하듯 하면 부지중에 천사를 대접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마7:12)
 
 
또 성경은 우리에게 형제를 사랑하라는 명령과 함께 나그네를 사랑하라고 명령합니다. 피를 나눈 형제도 사랑해야 하지만, 피를 나누지 않은 사람도 사랑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의무입니다. 부자는 끼니를 잇지 못하는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살 때 그리스도인인지 아닌지 알 수 있습니다. 손님 대접하기를 천사 대접하듯이 할 수 있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독특한 삶의 양식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구역 예배를 통해 자기 집을 공개하는 것도 이런 훈련 중 하나가 됩니다. 동창회 같은 것 말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사람을 초대한 일이 몇 번이나 있습니까? 앞으로는 이런 일들이 많이 있기를 바랍니다. 만약 당신이 목회자를 초대하면 정성껏 식사를 대접할 것입니다. 거지도 그런 마음으로 대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정말 대접할 가치가 없는, 대접할 대상이 아닌 분들을 예수님 모시듯이 잘 대접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대인 관계의 독특성은 고난 받고 있고, 학대받고 있고, 감옥에 있는 사람들까지도 생각하는 것입니다. 즉, 그리스도인이라면 고난 받는 형제들에 대한 깊은 긍휼과 애정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눈물 어린 긍휼을 기억하며, 지체를 대해 보십시오. 그 긍휼의 풍성함으로 사람을 대해 보십시오. 그 사람뿐 아니라 당신에게도 놀라운 변화가 있을 것입니다.
"선한 눈을 가진 자는 복을 받으리니 이는 양식을 가난한 자에게 줌이니라"(잠22:9)
 
 
동화작가인 권정생 선생님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저는 잊을 수가 없습니다. 어느 날 시내에 나갔다 돌아오려는데 버스비가 모자라 할 수 없이 완행열차를 탔더랍니다. 그런데 기차 안에서 어떤 아주머니가 자리를 내주면서 앉으라고 했습니다. 얼마 안 가 내린다며 사양을 했지만 아주머니는 기어코 권 선생을 자리에 앉혔습니다. 권 선생은 자리에 앉아서 무심코 아주머니께 혹시 교회 나가시는 분이 아니냐고 묻자, 아주머니는 반색을 하면서 그렇다고 대답했습니다. 어떻게 알았냐며 신기해 하면서 묻지도 않은 말을 들려주었습니다.
아주머니는 의성에 있는 시골교회의 집사님인데 한 십년 전에 이상한 체험을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날 아주머니가 몹시 바쁘게 집안 일을 하고 있는데 거지 한 사람이 구걸을 하러 왔습니다. 정신없이 일을 하던 아주머니는 퉁명스럽게 ‘지금은 바쁘니 다른 데나 가보라’고 거지를 내쫓았습니다. 그런데 그 거지가 돌아서서 나가는 뒷모습을 흘끗 보니 놀랍게도 틀림없는 예수님이었습니다. 깜짝 놀란 아주머니는 하던 일을 멈추고 허겁지겁 쌀을 한 대접 떠서 달려 나가 보았지만 거지는 그새 어디론지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습니다. 혹시나 해서 옆집으로 또 옆집으로 샅샅이 살펴 보았지만 역시 허사였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아주머니는 주저앉아 통곡을 했습니다. 그때부터 아주머니의 눈에는 어떤 낯선 사람도 예수님으로 보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아주머니는 십년을 하루같이 만나는 사람을 모두 예수님으로 알고 대접을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야기를 다하고 나서 아주머니는, “세상 사람이 다 예수님으로 보이니까 참 좋아요.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해드리고 싶어예” 하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을 길과 진리와 생명으로 고백한다는 것은 바로 이 마음으로 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예수 믿어서 복 받은 이야기보다도 예수를 만나 삶이 변화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우리 삶의 방식을 바꿔야 합니다. 강도 만난 이들 곁에 다가서야 하고 그들을 위해 불편함과 위험을 무릅써야 합니다. 고요한 곳에 앉아서 묵상과 기도만으로 주님을 알 수는 없습니다. 이것은 걷기 쉬운 길이 아니라 자기를 내려놓아야 갈 수 있는 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 길은 좁은 길이라 하셨습니다. 그 길은 인기 없는 길이지만, 그 길은 영생으로 이어지는 길입니다.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마10:42)

 
예수님은 성경 속에만 계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리고 천국에 가서야 비로소 예수님을 만난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은 주린 자, 목마른 자, 나그네, 헐벗은 자, 병든 자, 옥에 갇힌 자, 소외된 자의 모습으로 우리 곁에 오신다고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우리 곁에 오시는 예수님을 모시는 기회를 놓치지 맙시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골3:23)
 
우리가 주님을 대하듯이 언제나 누구에게나 따뜻하고 다정하고 친절하면서 베풀고 항상 선을 따르는 크리스천이 됩시다.(살전5:14- 15)
 
 
* 기도: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 내가 만나는 사람들 속에서 예수님의 모습을 보는 영적인 눈이 열리게 하옵소서.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오래 참으며 언제나 온유하고 부드러운 말을 하는 우리가 되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에 주 예수의 이름으로 우리의 손을 펴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게 하옵소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 갈릴리 공동체 http://cafe.daum.net/Galileecommunity
(http://blog.naver.com/jesuskorea, http://blog.naver.com/allcome)

 
이 포스트를...
예수님을 대하듯이 봉사하라 댓글[0]
봉사, 선행 (2014-02-16 오후 8:34:12) http://blog.somang.net/holylove/8069
예수님을 대하듯이 봉사하라
 
 
본문: 마태복음 25: 35- 46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그들도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헐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하지 아니하더이까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구두장이 할아버지가 있었습니다. 이 구두장이 할아버지의 간절한 소원은 예수님을 단 한 번만이라도 만나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예수님이 꿈속에 나타나 내일 너희 집을 방문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할아버지는 어찌나 기뻤던지 온갖 정성을 들여 음식을 가득 차려놓고 기다렸으나 어찌된 셈인지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예수님은 그 날 저녁 가게문을 닫을 때까지도 오시지 아니 하였습니다. 단지 거지가 한 번 오고, 또 한 번은 청소부 할아버지가 오고, 저녁 때는 사과장수 아주머니가 왔을 뿐이었습니다. 이 구두장이 할아버지는 그만, 거지와 청소부 할아버지와 사과장수 아주머니에게 예수님을 대접하려고 정성스럽게 준비한 음식을 나누어 주고 말았습니다. 왜냐하면 이들 모두 너무나 불쌍하게 보였고 실제로 추위 때문에 또 배고픔 때문에 떨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날 밤 예수님께서 꿈 속에 다시 나타나시매 이 구두장이 할아버지는 왜 오시지 않으셨느냐고 질문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뜻밖에도 "나는 오늘 너희 집에 세 번이나 갔었는데 세 번 다 대접을 잘 받았다. 참으로 너는 나를 사랑하는 줄을 알겠다. 네 이웃에 사는 보잘 것 없는 사람을 대접하는 것이 곧 나를 대접한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이야기는 톨스토이의 작품 속에 나오는 것으로 본문에 언급된 최후의 심판광경을 생각나게 합니다. 최후의 심판시 의인으로 판결을 받은 자들에게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따뜻하게 맞아 주었다. 또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으며,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고, 감옥에 갇혔을 때에 찾아 주었다"고 칭찬을 하고 있습니다. 의인들은 오히려 놀라서 언제 이런 일을 당한 주님을 도와 드린 적이 있느냐고 반문을 합니다. 이에 심판주되신 임금님은 "분명히 말하건대,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중에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라고 심판의 근거를 밝히고 있습니다.
위의 이야기는 우리 주위에 있는 지극히 작은 자를 대접하며 용기를 북돋우어 주는 것이 곧 주님을 대접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구체적인 방법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 너희도 함께 갇힌 것 같이 갇힌 자를 생각하고 너희도 몸을 가졌은즉 학대 받는 자를 생각하라(히13:2, 3)
 
 
아브라함은 세 사람의 나그네를 영접하여 떡과 고기와 우유 등으로 융숭한 대접을 한 것이 결국 하나님의 천사를 영접한바 되어 나이 1백 살에 아들(이삭)을 얻는 축복을 받았습니다.(창18:1- 15)
어려운 이웃을 돕고, 이웃에게 친절하고, 이웃의 허물을 용서하고, 이웃을 사랑합시다.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골3:12- 14)
 
 
어린이 대공원과 아차산 사이의 능동로 가구거리에 가구대리점을 하시는 최 집사가 20대 때 시골에서 상경하여 그 가구점 점원으로 있을 때의 일입니다. 어느 날 소나기가 갑자기 쏟아지는데 바로 자기 점포 앞 대로에서 택시를 기다리던 할머니 한 분이 비를 맞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본 최 집사는 할머니를 점포 안으로 모셔들여 따뜻한 차 한잔을 권했습니다. 그런 뒤 자신이 택시를 잡아서 할머니를 귀가시켰습니다. 며칠 후 전화를 받고서야 그 할머니가 재벌 회장의 장모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회장은 이런 성실한 청년이 일하는 회사의 가구는 믿어도 될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 모든 사무용품을 이 회사 제품으로 쓰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 주께 하듯 하면 부지중에 천사를 대접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마7:12)
 
 
또 성경은 우리에게 형제를 사랑하라는 명령과 함께 나그네를 사랑하라고 명령합니다. 피를 나눈 형제도 사랑해야 하지만, 피를 나누지 않은 사람도 사랑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의무입니다. 부자는 끼니를 잇지 못하는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살 때 그리스도인인지 아닌지 알 수 있습니다. 손님 대접하기를 천사 대접하듯이 할 수 있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독특한 삶의 양식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구역 예배를 통해 자기 집을 공개하는 것도 이런 훈련 중 하나가 됩니다. 동창회 같은 것 말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사람을 초대한 일이 몇 번이나 있습니까? 앞으로는 이런 일들이 많이 있기를 바랍니다. 만약 당신이 목회자를 초대하면 정성껏 식사를 대접할 것입니다. 거지도 그런 마음으로 대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정말 대접할 가치가 없는, 대접할 대상이 아닌 분들을 예수님 모시듯이 잘 대접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대인 관계의 독특성은 고난 받고 있고, 학대받고 있고, 감옥에 있는 사람들까지도 생각하는 것입니다. 즉, 그리스도인이라면 고난 받는 형제들에 대한 깊은 긍휼과 애정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눈물 어린 긍휼을 기억하며, 지체를 대해 보십시오. 그 긍휼의 풍성함으로 사람을 대해 보십시오. 그 사람뿐 아니라 당신에게도 놀라운 변화가 있을 것입니다.
"선한 눈을 가진 자는 복을 받으리니 이는 양식을 가난한 자에게 줌이니라"(잠22:9)
 
 
동화작가인 권정생 선생님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저는 잊을 수가 없습니다. 어느 날 시내에 나갔다 돌아오려는데 버스비가 모자라 할 수 없이 완행열차를 탔더랍니다. 그런데 기차 안에서 어떤 아주머니가 자리를 내주면서 앉으라고 했습니다. 얼마 안 가 내린다며 사양을 했지만 아주머니는 기어코 권 선생을 자리에 앉혔습니다. 권 선생은 자리에 앉아서 무심코 아주머니께 혹시 교회 나가시는 분이 아니냐고 묻자, 아주머니는 반색을 하면서 그렇다고 대답했습니다. 어떻게 알았냐며 신기해 하면서 묻지도 않은 말을 들려주었습니다.
아주머니는 의성에 있는 시골교회의 집사님인데 한 십년 전에 이상한 체험을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날 아주머니가 몹시 바쁘게 집안 일을 하고 있는데 거지 한 사람이 구걸을 하러 왔습니다. 정신없이 일을 하던 아주머니는 퉁명스럽게 ‘지금은 바쁘니 다른 데나 가보라’고 거지를 내쫓았습니다. 그런데 그 거지가 돌아서서 나가는 뒷모습을 흘끗 보니 놀랍게도 틀림없는 예수님이었습니다. 깜짝 놀란 아주머니는 하던 일을 멈추고 허겁지겁 쌀을 한 대접 떠서 달려 나가 보았지만 거지는 그새 어디론지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습니다. 혹시나 해서 옆집으로 또 옆집으로 샅샅이 살펴 보았지만 역시 허사였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아주머니는 주저앉아 통곡을 했습니다. 그때부터 아주머니의 눈에는 어떤 낯선 사람도 예수님으로 보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아주머니는 십년을 하루같이 만나는 사람을 모두 예수님으로 알고 대접을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야기를 다하고 나서 아주머니는, “세상 사람이 다 예수님으로 보이니까 참 좋아요.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해드리고 싶어예” 하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을 길과 진리와 생명으로 고백한다는 것은 바로 이 마음으로 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예수 믿어서 복 받은 이야기보다도 예수를 만나 삶이 변화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우리 삶의 방식을 바꿔야 합니다. 강도 만난 이들 곁에 다가서야 하고 그들을 위해 불편함과 위험을 무릅써야 합니다. 고요한 곳에 앉아서 묵상과 기도만으로 주님을 알 수는 없습니다. 이것은 걷기 쉬운 길이 아니라 자기를 내려놓아야 갈 수 있는 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 길은 좁은 길이라 하셨습니다. 그 길은 인기 없는 길이지만, 그 길은 영생으로 이어지는 길입니다.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마10:42)

 
예수님은 성경 속에만 계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리고 천국에 가서야 비로소 예수님을 만난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은 주린 자, 목마른 자, 나그네, 헐벗은 자, 병든 자, 옥에 갇힌 자, 소외된 자의 모습으로 우리 곁에 오신다고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우리 곁에 오시는 예수님을 모시는 기회를 놓치지 맙시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골3:23)
 
우리가 주님을 대하듯이 언제나 누구에게나 따뜻하고 다정하고 친절하면서 베풀고 항상 선을 따르는 크리스천이 됩시다.(살전5:14- 15)
 
 
* 기도: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 내가 만나는 사람들 속에서 예수님의 모습을 보는 영적인 눈이 열리게 하옵소서.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오래 참으며 언제나 온유하고 부드러운 말을 하는 우리가 되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에 주 예수의 이름으로 우리의 손을 펴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게 하옵소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 갈릴리 공동체 http://cafe.daum.net/Galileecommunity
(http://blog.naver.com/jesuskorea, http://blog.naver.com/allcome)

 
이 포스트를...
복음전파자료 모음(교회) 댓글[0]
교회, 공동체 (2014-01-30 오전 11:41:25) http://blog.somang.net/holylove/8057
복음전파자료 모음(교회)
 

▣ 작은 교회의 힘

 
본문: 마 23:11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미국의 워싱턴에 있는 세이비어 교회는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교회 중 하나입니다. 성도 150여명의 작은 교회이지만 지역 사회와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끼치는 영향력은 그 어떤 대형 교회에 비교를 해도 뒤지지 않습니다. 1947년 ‘토기장이의 집’이라는 간판을 달고 서점과 카페를 겸한 자그마한 매장이 세이비어 교회의 시작입니다. 처음부터 지역 주민들에게 다가가 복음을 전하는 것을 비전으로 삼았기 때문에 교회보다 서점과 까페로 먼저 시작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교회 교인들은 ‘하나님을 위한 철저한 헌신’의 마음으로 지역 주민들을 섬깁니다. 지금은 200여개의 소그룹을 통해 지역 주민들과 지속적인 모임을 갖고 있는데, 주로 노숙인, 마약 중독자, 알코올의존증 환자와 같이 사회적으로 소외된 계층들을 섬기고 있습니다.
세이비어 교회의 앤 딘 목사님은 적은 성도로도 이 같은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비결에 대해서 “우리 성도들은 지역 주민들에게 하나님을 전하기 위해 봉사합니다. 그런데 이 헌신의 과정에서 우리들도 하나님과 함께 계심을 체험하게 됩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교회의 가치는 성도들이 말씀을 실천하고 있는지, 얼마나 하나님과 함께하는 기쁨을 누리고 있는지에 의해서 결정됩니다. 맡은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교회의 비전을 따라 협력하는 성도가 되십시오. 반드시 창대하게 될 것입니다.
* 기도: 주님! 사역할 수 있는 교회를 주심을 감사하게 하소서!
* 묵상: 교회의 가치를 규모로 판단하는 실수를 조심하십시오.
/김장환 목사, 제공 : 나침반출판사

 
▣ 마음이 열린 교회
 
본문: 롬 14:18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한국 교회의 청년, 학생들이 점점 줄고 있는 현상이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1998년부터 진행된 갤럽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 교회의 청년들의 수는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으며 종교호감도에도 불교(36%), 천주교(35%), 개신교(24%)의 순서로 사실상 꼴찌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미국에서도 리서치기관인 바나 그룹에서는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에 대해서 대대적인 조사를 했는데 그 결과 다음의 다섯 가지 이유가 주요결과로 나왔습니다.(복수 응답 가능)
1. 교회 밖의 문화를 모두 사탄의 것으로 취급한다.(25%)
2. 과학적인 주장들을 모두 무시하고 거부한다.(23%)
3. 의심하거나 호기심이 많은 사람에 대해서 매우 공격적이다.(22%)
4. 다른 신앙과 종교를 지나치게 공격한다.(29%)
5. 삶에 직면한 문제와 완전히 동떨어진 해답을 제시한다.(31%)
위 이유가 모두 교회 자체의 문제는 아니며, 응답을 한 개인의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청년들이 점점 교회를 떠나는 현실에서 믿음의 선배들과 교회의 지도자들은 조금 더 열린 마음으로 지혜롭게 현 세대의 청년들과 학생들을 향해 먼저 다가가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조금 더 열린 태도로 미래 세대에 복음을 전하고자 노력하십시오. 반드시 창대하게 될 것입니다.
* 기도: 주님! 시대에 맞는 방법으로 복음을 전하는 지혜를 주소서!
*묵상: 교회에서 자리를 못 잡는 청년, 학생들의 믿음생활을 위한 멘토가 되십시오.
/김장환 목사, 제공 : 나침반출판사

 
* 갈릴리 공동체 http://cafe.daum.net/Galileecommunity
(http://blog.naver.com/allcome, http://cafe.naver.com/newgalilee)

 
 
이 포스트를...
복음전파자료 모음(교회) 댓글[0]
교회, 공동체 (2014-01-30 오전 11:41:25) http://blog.somang.net/holylove/8056
복음전파자료 모음(교회)
 

▣ 작은 교회의 힘

 
본문: 마 23:11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미국의 워싱턴에 있는 세이비어 교회는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교회 중 하나입니다. 성도 150여명의 작은 교회이지만 지역 사회와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끼치는 영향력은 그 어떤 대형 교회에 비교를 해도 뒤지지 않습니다. 1947년 ‘토기장이의 집’이라는 간판을 달고 서점과 카페를 겸한 자그마한 매장이 세이비어 교회의 시작입니다. 처음부터 지역 주민들에게 다가가 복음을 전하는 것을 비전으로 삼았기 때문에 교회보다 서점과 까페로 먼저 시작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교회 교인들은 ‘하나님을 위한 철저한 헌신’의 마음으로 지역 주민들을 섬깁니다. 지금은 200여개의 소그룹을 통해 지역 주민들과 지속적인 모임을 갖고 있는데, 주로 노숙인, 마약 중독자, 알코올의존증 환자와 같이 사회적으로 소외된 계층들을 섬기고 있습니다.
세이비어 교회의 앤 딘 목사님은 적은 성도로도 이 같은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비결에 대해서 “우리 성도들은 지역 주민들에게 하나님을 전하기 위해 봉사합니다. 그런데 이 헌신의 과정에서 우리들도 하나님과 함께 계심을 체험하게 됩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교회의 가치는 성도들이 말씀을 실천하고 있는지, 얼마나 하나님과 함께하는 기쁨을 누리고 있는지에 의해서 결정됩니다. 맡은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교회의 비전을 따라 협력하는 성도가 되십시오. 반드시 창대하게 될 것입니다.
* 기도: 주님! 사역할 수 있는 교회를 주심을 감사하게 하소서!
* 묵상: 교회의 가치를 규모로 판단하는 실수를 조심하십시오.
/김장환 목사, 제공 : 나침반출판사

 
▣ 마음이 열린 교회
 
본문: 롬 14:18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한국 교회의 청년, 학생들이 점점 줄고 있는 현상이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1998년부터 진행된 갤럽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 교회의 청년들의 수는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으며 종교호감도에도 불교(36%), 천주교(35%), 개신교(24%)의 순서로 사실상 꼴찌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미국에서도 리서치기관인 바나 그룹에서는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에 대해서 대대적인 조사를 했는데 그 결과 다음의 다섯 가지 이유가 주요결과로 나왔습니다.(복수 응답 가능)
1. 교회 밖의 문화를 모두 사탄의 것으로 취급한다.(25%)
2. 과학적인 주장들을 모두 무시하고 거부한다.(23%)
3. 의심하거나 호기심이 많은 사람에 대해서 매우 공격적이다.(22%)
4. 다른 신앙과 종교를 지나치게 공격한다.(29%)
5. 삶에 직면한 문제와 완전히 동떨어진 해답을 제시한다.(31%)
위 이유가 모두 교회 자체의 문제는 아니며, 응답을 한 개인의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청년들이 점점 교회를 떠나는 현실에서 믿음의 선배들과 교회의 지도자들은 조금 더 열린 마음으로 지혜롭게 현 세대의 청년들과 학생들을 향해 먼저 다가가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조금 더 열린 태도로 미래 세대에 복음을 전하고자 노력하십시오. 반드시 창대하게 될 것입니다.
* 기도: 주님! 시대에 맞는 방법으로 복음을 전하는 지혜를 주소서!
*묵상: 교회에서 자리를 못 잡는 청년, 학생들의 믿음생활을 위한 멘토가 되십시오.
/김장환 목사, 제공 : 나침반출판사

 
* 갈릴리 공동체 http://cafe.daum.net/Galileecommunity
(http://blog.naver.com/allcome, http://cafe.naver.com/newgalilee)

 
 
이 포스트를...

처음페이지  이전페이지  1  2  3  4  5  다음페이지  마지막페이지

최근방문자
즐겨찾기
즐겨찾기가 없습니다.
최근댓글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