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은 11장 1-16절
4절 예수께서 들으시고 아르시되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
베다니는 예루살렘에 가까운 도시입니다.
그리고 그뜻이 가난한자의 마을이랍니다.
나사로 형제는 가난했으나 주님을 사랑한 사람들입니다.
주님은 그들을 사랑하셨습니다.
마리아는 옥합을 깨는 사랑을 보였잖아요.
주님은 자주 그집에 유하셨다고 합니다.
그렇게 사랑하는 이가 죽어갑니다.
그리고 주님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저도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님의 사랑도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의 문제를 주님 앞에 내려놓았습니다.
아마 마리아는 주님이 당장 오실줄 알았을껍니다.
살리시는 주님임을 알고,믿으니 그리고 사랑받고 있으니
당연하다고 생각했을껍니다.
저도 주님에게 기도하고 부르짖으라,내가 응답하리라는
말씀 붙들고 기도하면서 당장 이루어 질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4절처럼 죽을 병이 아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고 ,
그 아들의 영광을 위함이라고 하십니다.
순간 아~ 죽지는 않겠구나. 곧 낫겠구나. 하겠지만
나사로는 죽었습니다.
왜? 주님은 당장 안가시고 이틀이나 더 계셨을까?
안가보셔도 산다는것인가?
그렇지만 죽지 않았는가?
온전히 주님의 영광을 위함이라고 합니다.
죽은자를 살린다는 전대미문의 역사가 일어나기 직전입니다.
나사로는 죽어야 합니다.
그래야 영광이 나타납니다.
내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할때 결과가 원하는데로 되면
죄악중에 태어난 인간이라 교만해 지지 않으면 다행입니다.
주님의 영광보다는 제 영광이 더 빛나게 됩니다.
우리에게 아직 응답을 안해 주신것
아직 우리가 안죽었습니다.
아니 죽어서 썩어져야 하는데
아직도 생생합니다.
내 계획, 내생각, 팔팔 합니다.
주님, 죽여주세요.
아직 주님은 이틀을 더 기다리라고 하시네요.
기다려야죠.
그러나 낮이라고 하십니다. 일할 수 있는 시간.
빛되시는 주님 모시고 행하면 실족치 않는답니다.
주님이 우리 가정에 오셔서 살리시는 역사를 일으키시기 까지
저의 일을 하겠습니다.
15절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그에게로 가자
이제 주님이 출발하십니다.
당신이 역사하실 시간입니다. 당신의 영광을 보이실 시간입니다.
이것으로 제자들을 확실히 가르치십니다.
당신의 죽음과 부활을 미리 기르치십니다.
주님이 우리가정에 오신다고 하니 기디리겠습니다.
그것으로 저와 남편, 아이들도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될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