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7장 14- 36절
교사대학 졸업선물로 책을 한권 받았습니다.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저자 필립 얀시)
제목은 평범합니다.
너무나 종교냄새가 난다고 할까요?
좀 진부한 내용일꺼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이 외모로만 판단하는 오류를 범하는데
책도 제목만 보고 내용을 짐자하는 오류를 범합니다.
그래서 작가들이 제목을 정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내나 봅니다.
눈에 확 들어오고 읽고 싶은 맘이 생기도록
자극적인 제목의 책이 많은 이유이겠지요.
전 이 책을 목용탕에 두고 틈틈이 읽었고
지금 중간까지 왔습니다.
제 생각대로 내용은 별 다르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구원받은것이 은혜다.
그래서 우리는 누구나 다 용서받아야하고 용서해야 한다.
그동안의 제가 성경을 쬐끔 읽고 느꼈던 점과 같았습니다.
그런데 중간에 이르러 눈에 확 들어 오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불량품.- 우리는 불량품이랍니다.
근거는 레위기까지 올라갑니다.
부정한 음식을 먹지말라는 말씀과 함께
우리 이방인- 베드로가 환상을 보았던거 아시죠? 그리고 백부장을 만났지요?-도
부정하게 여기는 유대인들의 기준으로 보면
절대 함께 할 수 없는 부정한 인간들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이방인과 가까이한 사마리아인들을 개 취급을 했고
부정한것을 만지면 하루종일 부정하다부정하다 하며 죄 씻는 형식을 취해야 했고
여자도 부정하고 거기다 월경하는 여자는 더 부정해서
성전에도 갈 수 없고...
헤아릴수 없는 많은 계명을 만들어서
부정한것과 그렇지 않을 것을 갈라 놓고
사람을 꼼짝달싹 못하게 하는 율법이 만연한 시대에 주님이 오신것입니다.
주님은 사마리아 여인을 선교사로 만드시고
죽은 시체를 만지시고 살리시고
간음한 여자를 구원하시고
안식일에 사람을 고치시고
혈루병 앓는 피 흘리는 여자 - 이 여자는 부정한 여자라 대중 앞에 나올수 없는 여자였고
죽기살기로 주님께 매달린 여자였죠-
모두 싫어하는 세리 - 제자중에도 한 명 끼어있죠-
이런 부정한 인간들과 함께하시고
신자라고 자처하는 바리새인은 미워하셨으니
당시로는 너무나 파격적인 것이었습니다.
계명으로 보면 예수님은 부정한것을 가까이한 부정한 사람이므로
죽어 마땅한 것이었습니다.
누가 나타나서 내가 그리스도라고 한다고
그저 병든자 고치고 죽은자 살리는 좋은 일 하는 사람을
꼭 죽여야 했을까?
그렇게 미워해야 할일이었을까?
당시 왕이었던 헤롯은 별 상관치 않는데
종교인들은 미친듯이 날뛰는 모습에 의아해 했었는데
이제야 알겠습니다.
그리고 나니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가 정말 놀라운 은혜입니다.
요한복음 7장에서 말씀하시는 주님은
목숨 거시고 하는것입니다.
아무도 믿지 않으려하고 오히려 죽이려는 사람들 가운데서
가르치고 계십니다.
날 믿어라. 난 하나님의 아들이다.
난 곧 간다. 그러면 너희는 날 볼수 없다.
얼마나 긴박한 순간인지요.
모두 배척하는 사람들 가운데 혼자 계시는 예수님.
주님은 불량품인 저를 위하여 모든걸 버리시고
온전히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순종을 하셨습니다.
만약 주님께서 안오셨었다면
아직도 어둠의 자녀로 살고 있겠지요?
옛 성전을 상상해 봅니다.
감히 들어갈 수 없는 성전.
여화와라고 부르기 조차도 어려워 그저 주님이라고
부를수 밖에 없던 인간들.
그런데 주님이 오신후 하나님 아버지, 그것도 아바(아빠) 아버지가 되셨으니.
할렐루야!!!!!
감동감동의 물결이 밀려 옵니다.
대한독립만세 하던 기분이 이런것 아닐까 싶습니다.
구원의 감격.
이것 하나만으로도 너무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