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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간 ‘희망편지’ 50만통 보낸 오아볼로씨 댓글[0]
수환 생각 (2004-10-01 오후 2:51:15) http://blog.somang.net/soohwanl/797

“키는 비록 1m도 안되지만 제겐 하나님 ‘빽’이 있지요”
“생명 다할때까지 편지 보낼것”

김한수기자 hansu@chosun.com

입력 : 2004.09.30 17:28 20'

▲ 오아볼로씨는 "희망은 절대 포기하면 안된다"고 말했다. / 조인원기자 join1.chosun.com
서울 은평구 응암동의 한 다가구 주택. 햇볕이 잘 들지 않는 작은 방 침대 앞에는 컴퓨터 1대와 전화기, 손때 묻은 성경책이 놓여있다. 침대 위에는 키가 1m도 되지 않는 한 사내가 앉아있다. 7년 전 두 다리뼈가 부러진 후로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한 발짝도 떼지 못하는 오아볼로(본명 오규근·52)씨. 그는 선천적으로 뼈가 자라지 않을 뿐 아니라 작은 충격에도 뼈가 부러지는 ‘골형성부전증’이라는 희귀병을 앓고 있다. 그러나 그는 20여년째 편지를 통해 마음의 고통을 받는 이에게 위로와 희망 그리고 하나님 말씀을 전하고 있다. 그렇게 그가 쓴 편지는 50만여통에 이른다. 컴퓨터와 전화, 성경책은 그가 세상에 희망을 보내는 통로다. 오씨는 최근 자신의 50년 인생을 정리한 자전 에세이 ‘희망을 푸는 두레박’(미다스북스)을 펴냈다.

책은 독자에게 ‘이 사람을 보고도 희망을 버리겠는가’라고 묻는다. 생후 3일째, 사랑스런 마음에 손을 꼭 쥔 어머니에 의해 처음으로 손뼈가 으스러진 후 서른이 될 때까지 툭하면 뼈가 부러지고 잘못 붙었던 사연은 믿기 어려울 정도. 무럭무럭 자라는 토끼, 쑥쑥 크는 농작물이 부러워서 청소년기엔 토끼풀, 비료까지 먹어봤다. 자력으로 살아보고자 꿀벌을 치고, 만화를 그리고 소설 습작을 쓰는 모습은 눈물겹다. 하반신 마비 사고로 편지 선교를 하던 이바울로씨와의 만남, 결혼, 그리고 기독교계 방송을 통해 자신의 사연을 소개하고 편지를 통해 선교를 결심하는 과정에선 오씨가 새로 태어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라는 성경구절에서 딴 ‘아볼로’로 이름을 바꾼 것도 그의 삶의 큰 전환점이었다.

▲ 희망을 푸는 두레박
오씨가 편지를 보내는 대상은 재소자를 비롯해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 인생진로와 학업부진 때문에 고민하는 학생 등 다양하다. 한 가지 공통점은 대부분 오씨보다 성한 신체를 가졌다는 점. 한 사형수는 그와 편지를 나누다 독실한 기독교인이 돼 이제는 신앙에 관한 내용의 편지를 주고받는다. 이런 태도 때문에 방송통신대 신학과 3년을 수강한 것이 정규학업의 전부이지만 그에게 편지를 보내는 이들은 오씨를 ‘전도사’로 부른다. 오씨는 “제가 심한 장애인이란 걸 알기 때문인지 많은 분들이 가족에게도 털어놓지 못하는 고민을 이야기하신다”며 “대부분 한 두 번 편지를 주고받다가 연락이 끊기지만 그래도 좋다”고 말했다. 연락이 끊긴 것은 고민이 해결됐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란 것. 오씨는 차마 ‘고맙다’는 답장을 하지 못하는 마음까지 이해하고 있다.

오씨는 “장애가 없는 사람들은 사회에서 쓸 수 있는 일원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잘 모를 것”이라며 “몸은 이렇지만 하나님 빽으로 정상인들을 도울 수 있게 돼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고 말했다. 또 “모두가 마음에 평안을 얻고 그것을 밖으로 보낸다면 사회 전체가 아름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편지를 부칠 우표값조차 후원금에 의지하는 형편이지만 오씨는 “생명이 다할 때까지 편지를 보낼 것”이라고 말했다.

 

* "땅으로부터 키를 재면 내가 가장 작지만

하늘로부터 키를 재면 내가 가장 크다"

라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이 분이야 말로 세상의 희망을 볼 수 있는 시각을 가지신 것 같다

하나님을 만나면 자신의 자존감이 높아진다는 목사님 말씀이 새삼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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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이 있는 한 희망이 있다 댓글[0]
수환 생각 (2004-08-26 오후 3:25:09) http://blog.somang.net/soohwanl/756

“죽음이 눈앞에 있더라도 끝까지 공부를 마무리하기 위해 혼신을 다했습니다. 생명이 있는 한 희망이 있는 거니까요.”

루게릭병으로 온 몸이 마비되어 가는 가운데에서도 결코 좌절하지 않고 박사학위를 취득한 이원규씨의 말이다
이 글을 읽는 순간 참 마음이 찡하면서도 내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생명이 있는 한 희망이 있다"
난 사지 멀쩡하게 건강한데도 생명이 있음을 깨닫지 못했고
더구나 희망이 없는 사람처럼 존재했는지 모른다
금주 목사님 설교중에 "내가 숨쉰다는 것은 사명이 있다는 증거"다 라고 말씀하셨는데...
정말 숨 쉰다는 것만으로도 늦은 나이에 박사학위를 취득했는데
난 너무 빨리 많은 것을 포기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본다

<관련기사>
불치병 딛고 박사학위
“죽음이 눈앞에 있더라도 끝까지 공부를 마무리하기 위해 혼신을 다했습니다. 생명이 있는 한 희망이 있는 거니까요.”

성균관대 학위수여식이 열린 25일. 박사학위 취득자 대표로 연단에 올라선 사람은 휠체어를 탄 40대의 만학도였다. 목은 힘이 없어 뒤로 꺾여 있었고, 가느다란 다리는 근육경련으로 떨리고 있었다.

주인공은 루게릭병으로 전신이 마비된 동성고 영어교사 이원규씨(43). 고3 담임을 9년 동안 맡았을 정도로 건강했던 그는 2000년 겨울 루게릭병이라는 최종선고를 받았다. “병원에서 나올 땐 사형대에 끌려가는 죄수의 심정이었죠. 그러나 절망에 찬 제 눈속에도 찬란한 겨울햇살은 쏟아지더군요. 그때 다짐했습니다. ‘생명이 있는 한 희망은 있다’고….”

곧 그의 몸은 급속히 마비되기 시작했다. 오른쪽 가운데 손가락만을 제외하곤 모두 기능을 멈췄다. 교사직도 쉬어야 했다. 그러나 이 무서운 병마도 ‘평생 공부해온 문학을 논문으로 집대성하겠다’는 그의 의지를 꺾을 순 없었다. 그는 양손이 마비되자 발로 책장을 넘기며 공부했고, 전신이 마비되자 손가락 하나로 키보드를 움직여 논문을 완성했다. 결국 그는 ‘한국시의 고향의식 연구’란 논문으로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제대로 말을 할 수 없는 상태여서 인터뷰도 부인 이희엽씨(41)의 통역을 통해 이뤄졌다. 남편의 옆을 지키며 궂은 뒷바라지를 감당해온 부인은 “사랑하는 당신없는 나는 ‘아무것도 아님’을 고백합니다”라는 남편의 말을 통역하며 끝내 눈물을 쏟아냈다.

이원규씨는 “평생을 배우고 가르치며 살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축복받은 삶은 없을 것”이라면서 “영국의 스티븐 호킹 박사처럼 의료기기의 도움을 받아 연구와 강의활동을 계속하고 싶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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