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의 크리스마스
2002년 미국 로스 엔젤레스에 있는 남가주 대학교(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에서 신문 방송대학원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Annenberg 대학원에 교환 교수로 일년 동안 있을 때 그곳에서 보낸 크리스마스는 잊을 수가 없습니다.
연동 교회 이성희 목사님이 미국 로스 안젤레스에서 크리스마스를 지내게 되면 꼭 보라고 추천해준 곳을 구경했는데 정말로 좋았습니다.
맨 먼저 가본 곳은 로버트 슐러 목사님 부자가 목회하는 크리스탈 교회에서 해마다 공연하는 ‘크리스마스의 영광’이라는 성탄 극이었습니다.
이 극의 공연은 22년째 계속되어온 이교회의 전통적인 것으로 유명합니다. 하얀 크리스탈로 높은 탑을 세운 교회는 햇빛을 받아 정말 수정처럼 빛나고 진짜 크리스탈로 십자가 조각을 해놓은 ‘기도하는 집’은 항상 문이 열려있습니다. 교회 마당에 묘지도 있고 분수도 있고, ‘웃으시는 예수님’ 이란 조각 작품 옆에 ‘물 위를 걸으시는 예수님’은 정말 물위에 서 게시고, ‘십계명을 든 모세’ 옆에는 떨기나무에 붙은 불이 활활 타고 있었어요.
일류호텔보다 더 화려하고 깨끗한 화장실이며 기증자들의 이름이 새겨진 보도를 걸으면서 이렇게 훌륭한 교회 건물을 보며 거부감이 일지 않고 좋기만 한 것은 여기가 부자나라이기 때문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예배당인 공연장 역시 온통 유리건물인데 굉장히 높은 천장 양쪽 끝에 파이프 올겐을 매달아 놓았어요. 이 공연에는 주연 몇 명을 제외하곤 백 여 시간이 넘는 봉사를 즐겨하는 교인들과 자원봉사자들로 어린이가 어른이 돼서도 계속 참여하는 뜻 깊은 전통을 가지고 있답니다.
공연이 시작되니 마리아의 잉태를 알리는 가브리엘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 왔습니다. 고개를 제치고 바라보는데 이번에는 베들레헴으로 가는 사람들 속에 나귀와 양떼가 등장하고 큰 낙타를 탄 동방박사며 말을 탄 헤롯 군사며 중간 중간 소프라노와 테너의 성가가 울려 퍼지다가 예수의 탄생을 기뻐하는 천사들이 여덟 명이나 하늘에서 오르락내리락 앞뒤로 날아다니는 장면은 환상 그 자체였습니다. 여기저기 나타나는 천사의 숫자를 세느라 얼굴을 유심히 보느라 고개가 아플 정도였는데 흑인 천사도 있고 동양인 천사도 있더군요. 온 가족이 와서 볼만큼 좋은 공연이기에 오래 계속할 수 있으며 또 기부금으로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을 매년 이만 명 정도 초대한다니 이렇게 확실하게 좋은 데 쓰여 지는 돈이라면 기부를 왜 마다하겠는가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다음으로 구경한 곳은 파사데나 북쪽 시에라 마드레라는 마을인데 이 마을은 언덕 위에 있는데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유명해진 곳입니다.
반상회에서 의논했는지 한 집도 빼놓지 않고 온 동네가 불을 밝혔는데 골목마다 주제를 정해 한 곳은 천사가 들어서 있고, 다음 골목은 보따리를 맨 산타가 기웃거리는가 하면 루돌프 썰매가 줄을 이은 광경에 감탄이 절로 나왔습니다. 잔디 위에, 지붕 위에 각 집마다 독특한 솜씨와 아이디어로 빛을 내는 동네, 자기네 차는 전부 뜰 안에 들여놓고 거리를 비워 꼬리를 문 구경을 온 자동차들을 위한 배려는 또 얼마나 아름답던지요. 큰 저택이 아닌 자그마한 단층집들이 전기 값도 상당하련만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정말 사는 게 뭔지 아는 사람들의 마을이었습니다.
그 언덕을 내려와 조금 가면 이름부터 ‘크리스마스 트리 길’이라는 길이 나오는데 양쪽에 늘어선 큰 나무에 오색등을 달아놓아 터널처럼 긴 골목을 동화의 나라로 만들었어요.
이 동네는 별이 쏟아지는 거리로 만들려고 일부러 집집마다의 장식은 삼갔더군요. 반짝이는 별이 쏟아지는 거리를 그 별빛을 받으려고 자연 헤드라잇을 작은 등으로 바꾸고 기어가듯이 천천히 움직이게 되는데 이것은 금방 전염이 돼 이곳을 지나가는 차들의 예의가 되었고 그 거리를 벗어나기 싫어 아무리 천천히 가도 탓하지 않는 별천지였습니다.
이런 꿈같은 아름다움이 결국 사람의 마음과 손에서 나오는 것인 만큼 한 없이 부러웠습니다. 크리스마스를 장사하는 사람들의 돈벌이라고 못마땅해 하는가 하면 의례적인 행사로 무감각해지기도 하는데 크리스마스 없이 오늘 우리 크리스챤이 있을 수 없음을 생각한다면 정말 기쁘고 기뻐해야할 절기입니다. 내가 즐거워야 남에게도 즐거움을 베풀 수 있지요. 크리스마스가 매일이라면 좋겠다는 어린이 같은 마음으로 이번 크리스마스를 보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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