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1-20 오전 12:47:40)http://blog.somang.net/skkim/3490
내 속에 사랑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이 외로울 때면 나는 늘 남을 보았습니다.
남이 나를 버리는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 보니, 내가 외롭고 허전한 것은
남 때문이 아니라 내 속에 사랑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에 불평이 쌓일 때면 나는 늘 남을 보았습니다.
남이 나를 불만스럽게 하는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 보니,
나에게 쌓이는 불평과 불만은 남 때문이 아니라 내 속에 사랑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에 기쁨이 없을 때는 나는 늘 남을 보았습니다.
남이 내 기쁨을 빼앗아 가는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 보니,
나에게 기쁨과 평화가 없는 것은 남 때문이 아니라 내 속에 사랑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에서 희망이 사라질 때면 나는 늘 남을 보았습니다.
남이 나를 낙심시키는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 보니,
내가 낙심하고 좌절하는 것은 남 때문이 아니라 내 속에 사랑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부정적인 일들이 내 마음에 사랑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된 오늘
나는 내 마음 밭에 사랑이라는 이름의 씨앗 하나를 떨어뜨려 봅니다.
이 글은 옮긴글입니다.
난, 주님을 기뻐하는 자인가?댓글[0]
새삶
(2008-01-15 오후 1:16:00)http://blog.somang.net/skkim/3470
난,
난, 주님이 기뻐하는 자인가?
김상국(컬럼비아대학교 방문교수)
커피를 마시다 문득, 오드리 헵번이 한 이야기가 생각난다. “아름다운 얼굴을 가지려면 남을 사랑하고, 아름다운 눈을 가지려면 남의 좋은 점만 보고, 아름다운 손을 가지려면 남을 위해 일하고, 아름다운 몸매를 가지려면 내 음식을 가난한 이웃과 나누라. 우리가 나이가 들면 손이 두 개라는 사실을 깨닫는데, 하나는 나를 위한 손이요, 또 다른 하나는 남을 위한 손이다.” 참 의미 있는 말이다.
니카라과 선교지에서 문득,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진짜, 내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될까? 나는 죽고 예수님이 내안에 주인 노릇해야 되겠지... 그렇게 예수님 닮기를 실천해 보려고 노력 할 때마다 난, 실패하고 말았다. 이 문제로 너무 많이 고민해 보고 또 우울증까지 경험했다. 우울증은 여자만 오는 것이 아니라 50대 남성들에게도 찾아온다는 것을 새삼 실감했다. 그런데 어느 날 주님의 은혜로 마음비우기, 내려놓기가 시작되었다. 노력하려는 욕심까지도 내려놓은 다음에야 조그마한 깨우침이 생겨났다. 이것은 내 노력으로 되지 않는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성경의 구약을 읽다가 문득, 참 그리스도인은 어떤 모습일까? 성경 많이 읽고 기도 많이 하는 사람일까? 아니면 봉사 많이 하는 선하고 착한 사람일까? 자꾸만 의문이 생겨났다. 장자권을 사기 친 야곱이나 자기 부하의 여인을 취한 부도덕한 다윗에게 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지속적으로 임했을까? 다윗이나 야곱은 하나님을 향한 마음의 중심 때문일까?
하지만 난, 늘 이 세상에서 길들어진 가치나 규범에 충실하려고 노력했으며, 나의 상아탑 올리기에만 열을 올리며 살아왔다. 세상일에서 성취되는 것들이 주님의 축복이라고만 생각했다. 세상일을 열중해가면서 내 마음에 하나님은 없어지고, 내가복음 1장 1절속으로 빠져버렸다. 지금까지 순한 양이 아니라 염소처럼 살아왔다는 점이다. 아니 쭉정이 인생처럼 살아왔다는 표현이 더 솔직한 표현이다. 난, 솔직히 야곱이나 다윗처럼 주님이 내 중심에 서있지는 않았다. 세상에서 얻어진 모든 것들을 십자가 앞에 다 내려놓아야 비로소 주님을 향한 진정한 마음인 것은 아닌지? 내려놓는다는 것이 말처럼 그리 쉬운 것은 아니다.
귀국하는 비행기 속에서 문득, 의자를 뒤로 밀치고 지그시 눈을 감고, 또 죽음 후의 나는 어떻게 될까? Who am I ? 비행기가 상공에 이르자 영문도 없이 두 눈에서 눈물이 하염없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승무원이 다가와 무엇을 마시겠냐고 하면서 빤히 내 두 눈을 응시하고 있었다. 솔직히 창피한 생각이 들었지만, 그 승무원의 청에 그저 “No, Thank You"라고 하고 눈을 감아 버렸다. 나의 지나 온 과거 속으로 영화처럼 지나가고 있었다. 내 마음 속에서, 소년, 청소년, 청년기, 유학생활, 지금의 교직생활 등이 너무 생생하게 지나가고 있었다.
난, 지난 12월에 T.V뉴스를 보다 문득, 대통령당선자의 “섬기는 자세로 국정에 임하겠습니다”라는 당선소감을 들으면서 이런 생각에 잠긴 적이 있다. 이 “섬긴다”라는 자세는 어떤 의미를 포함하고 있을까? 이 남을 위해 섬긴다는 의미는 “영웅(hero)”이라는 의미와 유사하다. 스타와 영웅의 차이점은 스타는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에 모든 열정을 다해 자기 자신을 얻어진 결과라면, 영웅이란 자신을 위해서라기보다는 타인들의 유익을 위해 열정을 쏟는 사람들을 영웅이라 부른다. 영웅은 스타가 될 수 있지만, 스타는 스타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우리들 주위에 영웅이란 최근에 지금까지 번 대부분의 돈을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 일하는 빌 게이츠나 워런 버핏, 그리고 소외된 자들을 위해 헌신해온 테레사 수녀나 슈바이쳐박사 등을 가리켜 스타라고 부르기 보다는 히어로가 더 친숙하게 다가온다. 왜냐면 자신의 유익보다도 타인들의 유익을 위해 살아 온 분들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우리 인류의 슈퍼 영웅이다.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 사건은 우리들의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 자기의 희생이야말로 진정한 영웅이시다. 이것이 ‘섬기는 자세’의 거울이자 표상이다. 이런 것들이 주님이 말씀하시는 “마음이 가난한자”, “애통하는 자”들의 모습은 아닐까? 그러한 자만이 천국백성이 되지 않을까? 하지만 난, 내 이웃을 위해 무엇을 했으며 또 어떻게 하고 있는가? 난 작은 영웅도 아니고 주님 앞에 졸장부에 불과한 인생을 살아왔다. 무늬만 교인이었고, 나의 유익만을 위해 동분서주했고, 내 안에는 주님은 없고 나의 의만 살아서 춤을 추었다.
새해가 시작되면서 문득,
2008년 새해, 난 어떤 모습으로 거듭 태어날까? 마음을 새롭게 정리하며 또 다시 다짐해 본다. 나의 유익보다 주님이 주신 사랑을 내 이웃을 위해 실천하고, 또 섬기는 자세로 인생을 살아갈 수 있을까?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자가 되기를 소원해 본다. 주님이 주신 또 하나의 손으로 다른 이들을 위해 헌신하는 자세로 임하고 싶은 것이 주님을 향한 진정한 나의 소원이다. 새해 주님께 드리는 기도의 글로 마무리 하고자 한다. 이글을 읽는 모든 분들께 주님의 은혜가 강물처럼 넘치시길 기원 드린다.
2008년 주님께 드리는 기도
사랑의 주님 2007년도 주님이 주신 모든 사랑과 은혜에 감사와 찬송과 존귀 그리고 영광을 올립니다.
2008년에는 마음이 가난하고 애통하는 자가 되게 복을 내려주옵소서.
힘을 가져도 오만한자가 되지 않게 하옵시고, 학식이나 혹은 다른 어떤 것을 가졌을 지라도 자랑하는 마음을 내려놓게 하옵시고,
대신 겸손한 마음이 풍성하게 하옵소서.
다른 사람들보다 열등하다고 해서
비굴해지지 않게 하옵시고,
지나간 성공에 대해 빨리 잊게
은혜내려 주옵소서.
주님을 향한 마음 처음이나 지금이나 흔들리지 않게 하옵시고, 날이 더해 갈수록 더 깊어지는 마음이 되게 하옵소서.
모든 주변의 탐욕으로부터 해방되게 하옵시고 늘 빈 마음으로 십자가만 향하게 하옵소서.
주님이 주신 모든 것들을 열린 마음으로 충성하게 하옵시고, 내 이웃을 사랑으로 돌보게 하시옵고, 감사함으로 주님의 영광만 드러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원 드립니다. 아멘.
복을 지니는 방법댓글[0]
새삶
(2008-01-12 오후 10:22:39)http://blog.somang.net/skkim/34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