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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바로셀로나. 댓글[0]
카페등재글 (2008-06-29 오후 7:52:35) http://blog.somang.net/ydw902/3800
출처카페 > 교수선교회원문http://cafe.somang.net/sofamis/88277
스페인 바로셀로나(Barcelona) . . .
  • 글쓴이: 올치
  • 조회수 : 16
  • 08.06.23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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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 (Barcelona)

스페인 제2의 도시 이며  피카소가우디의 성지

스페인 바르셀로나는프랑스 국경에서 남쪽으로

150㎞ 떨어져 있는 항구도시로서지중해에 면한

스페인의 주요항구이며 상업 중심지로

독특한 특성, 문화사업, 아름다운 경치로 유명하다.

 

바르셀로나 항은 17세기에 건설되었으며

1992년 제25회 올림픽 대회가 이곳에서 개최되었다.

 

수도보다도 인기있는 스페인의 관광도시인 바르셀로나는

피카소와 천재건축가 가우디(Antoni Gaudi)를 배출한 도시로도 유명하다.

 

 

면적 : 시 91㎢,   도시권 477㎢,

인구 : 시  1,578,546 ,  도시권  3,765,994

 


바르셀로나 시전경


 


바르셀로나 시전경


 


 


 


 Ciutadella 공원


 


 Triumphal  Arch


 


 콜롬버스 탑

 

 무역센터


 스페인광장


 스페인광장에서의 나체쇼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가족 성당)

바르셀로나의 상징인 가우디의 미완성 대작

그리스도의 탄생을 주제로 한 옥수수 모양의 탑 8개가 유명하다.

 

1882년 3월 19일(성 요셉 축일) 공사를 시작해서

1926년 6월 죽을 때까지 교회의 일부만 완성하였다

교회 전체가 완성되기까지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릴지는 알 수 없다.

Antoni Gaudi cornet 

1852년 6월 25일 - 1926년 6월 10일


 


 


  파밀리아 성당은보는 곳마다 조각이고 예술이다


 


Gaudi가 만든 쿠엘공원


쿠엘공원


 


 


 


 


 


 


 Antoni Gaudi’s Casa Mila apartment 


 Gaudi 작품


 Gaudi 작품


 


 Torre Agbar는  Jean Nouvel 이 건축한  멋지고 근사한 21세기 건축물

높이146미터에  지상 34층, 지하 4층


 멋진 가로등


멋진 가로등

 

 지하철


 FC바르셀로나구단 구장

 

 


 


 

몬 쥬익 언덕

 

몬은 여기 말로 산이란 뜻이고

쥬익은 유대인의 신이라는 뜻이며

바르셀로나 올림픽 주경기장이 있는 곳인데.

몬쥬익의 영웅 황영조 선수가

마라톤 우승의 영광을 안았던 곳이다

 


 


 


 구시가지


 


 Monastery of Montserrat, Barcelona


 Monastery of Montserrat, Barcelona


 


 


 바르셀로나 항구


 


 

Sarah Brightman & Jose Carreras - Amigos Para Siemp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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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르단의 고대도시 페트라. 댓글[0]
카페등재글 (2008-06-29 오후 4:07:35) http://blog.somang.net/ydw902/3799
출처카페 > 제6남선교회원문http://cafe.somang.net/somang6nam/86873


 

 

Jordan의 고대도시  페트라 (Petra)

 요르단 남부에 있는 대상 도시인 페트라는. 아랍계 유목민 나바테아인이

건설한 해발 950m의 산악도시로서 최고 높이 300m의 바위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며좁은 통로와 골짜기가 많은 산 중턱 바위를

반쯤 깎아내고  세워진 세계적으로 유명한 고고유적지중 하나이다

세계 7대 불가사의 가운데 하나로 거론되고있으며

아직까지 4분의 1밖에 발굴되지 않은 광활한 유적지이다.

찬란한 고대도시 요르단 페트라는 중동의 숨은 보석으로

1985년 유네스코(UNESCO)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페트라에서 가장 볼 만한 것은 무덤인데, 많은 무덤이

정교한 겉모양을 가지고 있어 지금은 거주지로 쓰이고 있다.

기원 후 106년 로마의 트라야누스 황제에게 점령당하였고,

4세기에는 콘스탄틴에 의하여 기독교화되었다,

6세기에 있었던 큰 지진으로 인하여 함몰되어 폐허화되었다가.

1812년에 스위스의 작가 요한 루트비히 부르크하르트가

여행중에 발견하였다.


 


 


 알 카즈네

암벽 사이의 좁은 협곡인 시크를 걸어들어가면 보물창고라는 뜻을 가진

알 카즈네가 나온다. 높이 약 25m의 그리스식 건축 양식의 건물.

 

 알 카즈네

아랍어로 보물창고를 뜻하는 그리스식 건축양식의 건물.

기원전 1세기 경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영화 인디아나존스 <최후의 성전> 편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로마식 원형극장

 2세기 초 이곳을 지배한 로마인들의 극장 유적이 남아 있다.

바위산을 반쯤 깎아 움푹하게 만든 건축물로서

약 6000명의 인원을 수용하였던 규모이다.

극장 왼쪽에는 로마시대의 시가지가 있는데,

이곳에는 열주대로가 뻗어 있고 왕궁·신전·공공욕장 등의 유적이 있다.


페트라 유적지 입구

진 블록(Djinn blocks)이라 불리는 이곳은 무덤길이자 페트라 유적지의 입구이다.

처음엔 물을 저장하는 저수지로 알려졌다가 후에 무덤으로 밝혀졌다.

왼쪽에는 둥글둥글한 모양이, 오른쪽에는 직각 모양의 형태가 있다.


시크

페트라로 들어가는 폭 2m 정도의 좁은 협곡으로 그 길이는 약 2km에 달한다.


 


 


 


 


 

 

 


 


 


 


 


 


 


 수도원

이 건물의 원래 용도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내부 벽면에

십자가가 새겨져 있어 수도원으로 추정한다.

이 부근은 기독교인들이 바위 굴 속에서 은둔생활을 했던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묘지문

요르단 페트라. 페트라는 나바테안 왕국의 수도였던 곳으로

기원전 2세기에서 서기 5세기까지 영위하다가 7세기부터

점차적으로 쇠퇴하여 지진등의 자연재해로 묻히게 된다.


4층  무덤군

요르단 페트라. 페트라는 나바테안 왕국(Nabataean kingdom)의 수도였던 곳으로

기원전 2세기에서 서기 5세기까지 영위하다가

7세기부터 점차적으로 쇠퇴하여 지진등의 자연재해로 묻히게 된다


 


 오벨리스크 무덤과 트리클리니움 무덤

윗층이 오벨리스크 무덤이며, 아래층은 로마의 식탁과 비슷한

내부구조를 가지고 있어트리클리니움 무덤이라는 이름이 붙여져 있다.


 두사자 신전

요르단 페트라. 1세기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정면에

사자들이 조각되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왕족 무덤지역

 

 실크 무덤

단층 지괴의 낮은 부분에 조각되어 있는 무덤으로서

물결모양의 바위때문에 실크(silk)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납골당


 


 오리엔트 무덤

와디 알 파라사(Wadi Al-Farasa) 협곡 입구에 있는 무덤이다


 왕궁 무덤

4개의 입구가 있는 거대한 무덤이다. 단층 지괴의 낮은 부분에 조각되어 있다.


 


 로마 병사의 무덤


 


 


 


 


 


 


 

 

 


 


 


 

 

  

Glen Campbell - Mary In The Mor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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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해변. 댓글[0]
카페등재글 (2008-06-29 오후 4:06:20) http://blog.somang.net/ydw902/3798
출처카페 > 제6남선교회원문http://cafe.somang.net/somang6nam/87002

Mexico cancun 해변 시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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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산토리니섬. 댓글[0]
카페등재글 (2008-06-29 오후 4:04:36) http://blog.somang.net/ydw902/3797
출처카페 > 제6남선교회원문http://cafe.somang.net/somang6nam/87273

그리스 산토리니 섬



 피라(Fira)市 전경

 


 그리스  산토리니섬 (Santorini)

유럽에서 가장 가보고 싶은 관광지로 꼽혀지고

300m 절벽 가장자리에 백색의 건물들이 뒤덮여

섬 전체가 예술 적인  풍경을 품고 있는  산토리니섬

그리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으로 알려져 있다.

절벽 위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하얀집과 교회가 지중해의

푸른 바다와 대비된 모습이 매우 이색적이다.

산토리니는 다섯 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수많은 관광객들이 매해 이섬의 화산 분화구를 보기 위하여 온다.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큰 화산분출의 유산이 아닐까 한다.

화산분출은 BC1600년경 일어났는데, 이로 인해 화산의 중간이

가라앉기 시작하였으며 높은 절벽이 있는 분화구를 남겨 놓았다.

이 광경은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지형적 장관이 될 것이다.

이로 인해 생긴 타는 듯한 검은 모래사장과

검은 절벽이 매우 인상적이다.



 


  피라(Fira)市

피라(Fira)는산토리니의 중심도시로서 서부 해안의 위쪽 경사면위에 있다.

피라는 가파른 계단으로 된 길과 케이블카로 항구와 연결된다.

피라는 항구와 해안선이 매우 빼어난 경관을 지니고 있으며

집들이 섬의 독특한 스타일로 지어졌다.

수많은 창문과 둥근 아이치형의 지붕이 있는 조그맣고

깜찍한 흰색 집들이 기절할만큼 빼어난 경관을 보여준다.

이곳에는 대저택과 고고학박물관이 있다

피라 마을은 해발 100~300m에 이르는 해안절벽 위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로프웨이를 타고 올라가야 한다.

당나귀를 타고 가파른 계단을 올라보는 것도 재미있다.




 아랫집 지붕은 윗집 테라스가 되고 아랫집 돌담이 윗집 축대가 되는

식으로.아무렇게나 들어선 듯한 성냥갑 모양의 앙증맞은 집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레고 블록처럼 짜임새가 완벽하다.

도시계획도 없었지만 손댈 틈 없이 정교하다

 




 아이마을

산토리니의 북단의 화산 분화구 가장자리의 절벽 정상 높은 곳에 았으며

산토리니에서 단연코 가장 아름답고 그림 같은 마을이다.

특히 석양모습은 가히 마력적이어서 전세계적으로 유명하다.

900년에 이아는 9,000여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었으나,

1980년에는 단지 500여명의영구 주민만이 살고 있다














 













 


 





 





 

 

Nana Mouskouri (그리스 아테네출신) - Adios

                          자료제공:심갑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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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진주, 어머니의바다, 흡스골호수 댓글[0]
카페등재글 (2008-06-29 오후 3:57:18) http://blog.somang.net/ydw902/3796
출처카페 > 의료선교부원문http://cafe.somang.net/medical/85522
아시아의 진주, 어머니의바다, 흡스골호수 조회수 : 0
신광근(1225skk) http://cafe.somang.net/timothy/85507
 
첨부파일 1.bmp, 2.bmp, 3.bmp, 4.bmp, 5.jpg, 6.bmp

아랍 여성이 차도르에 신비한 아름다움을 감추듯 몽골 최대의 호수 흡스골은 북부 삼림지대에 자태를 숨긴 채 긴 세월을 지내왔다. 그래서 몽골인은 흡스골을 원시림 사이에 숨겨진 몽골의 보석이라고 부른다. 유럽인이 바이칼을 시베리아의 진주라 부르지만 흡스골에 비하면 돌멩이에 불과하다. 흡스골과 바이칼을 동시에 본 관광객들은 흡스골의 경치가 한수 위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흡스골 호수는 외국인에게 칭기즈칸의 탄생지로 널리 알려진 몽골북부지방의 원시림 사이에 자리 잡고 있다. 길이 150여 킬로미터, 너비 20~40킬로미터로 넓이만도 2760제곱킬로미터가 되는 거대한 담수호이다. 침엽수가 주종인 타이가의 하늘을 찌를 듯한 모습은 한 폭의 풍경화다. 아름드리 나무가 우거져 있고 이름 모를 야생동물들이 손에 잡힐 듯 가까운 거리에서 뛰논다.


 

호숫가에 난 숲길은 그늘이 져서 터널 같은 느낌을 자아낸다. 청정한 물에 비친 밤하늘에서는 금방이라도 별들이 쏟아질 것 같다. 태양이 강하게 비치면 물살에 부딪히는 햇살이 보석처럼 반짝인다. 이런 경관을 보존하기 위해 호수에서는 수영, 빨래, 보트놀이 등이 금지되어 있다. 물론 오염물질을 방류하거나 폐기할 수도 없다.


 

몽골인들은 흡스골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가장 신성한 호수라고 생각한다. 이곳으로 그들의 기가 흘러들어 합쳐진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몽골인은 흡스골은 ‘달라이 에치(어머니의 바다)’라고 부른다. 바다가 없는 몽골인은 이 호수를 바다로 높여 불렀던 동시에 정신적인 숭배 대상으로 섬겨왔다. 몽골인은 국운이 걸린 싸움 직전이나 개인에게 고난이 닥쳐오면 호수의 수호신에게 제사를 지내왔다.


 

이 지방의 원주민인 드르브드 종족은 아이가 태어나면 제일 처음 호숫물을 한 숟가락 떠먹인다. 조상대대로 이어 내려온 흡스골의 정기를 이어 받게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몽골에서도 신비한 힘을 지닌 종족으로 손꼽히며, 몽골 무당이 나오는 종족 중의 하나다. 드르브드족에서 무당이 나오는 요인으로는 견디기 어려운 추위를 들 수 있다고 한다. 지독한 추위가 몰아닥치면 사람은 평상시와 같은 의식 활동을 할 수 없게 된다. 자아를 상실하고 의식 밖의 일을 보고 듣게 된다는데 이를 극북 히스테리아라고 말한다. 즉, 이 지역의 추위는 극북 히스테리아를 유발할 만큼 강력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흡스골 호수 근처의 기온은 한겨울이면 영하 40도까지 내려간다. 이 시기에 머리에 아무 것도 쓰지 않고 게르 밖에 나서는 것은 곧바로 의식을 잃을 수 있어 금기시되어 있다. 호수는 얼어붙어 활동이 중지된 것처럼 보인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쩡쩡 울어대는 호수의 소리를 듣고 몽골족들은 호수가 살아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흡스골 호수는 겨울에 구경하는 것이 제격이다. 꽁꽁 얼어붙은 호수 위로 다니는 트레일러를 타볼 수 있으며, 얼음을 깨고 차강자가스(흰 물고기)를 잡는 재미도 쏠쏠하다. 2~4미터 두께로 꽁꽁 언 얼음을 톱으로 썰고 틈을 만들어 그곳에 그물을 넣었다가 꺼내면 1~2미터의 하얀 물고기를 잡을 수 있다.


 

겨울철 흡스골의 또 다른 낭만은 얼음집이다. 모든 것이 꽁꽁 얼어 버린 백색의 공포 속에 맞이하는 달빛은 교교하다 못해 두렵다. 하지만 호수의 얼음을 잘라다 만든 얼음집에서 따스한 차를 마실라치면 그보다 더 포근한 것이 없다. 의자와 침대 등 모든 것이 얼음으로 지어졌지만 내부는 훈훈하게 느껴진다. 밖이 너무 추워 상대적으로 온기를 느끼기 때문이다. 영하 30도 이하의 추위에 질린 사람들은 온도계가 영하 3~4도를 가리키더라도 온기가 느껴진다고 착각한다. 양피를 2장만 겹치면 얼음집 안은 그대로 동화 속의 왕국이 된다


 

Besame Mucho <베사메무쵸>


Giovanni Marradi-Besame Mu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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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타이산맥 만년설이 녹아내리고 있다--(몽골씨리즈7) 댓글[0]
카페등재글 (2008-06-29 오후 3:54:50) http://blog.somang.net/ydw902/3795
출처카페 > 의료선교부원문http://cafe.somang.net/medical/86748

알타이산맥 만년설이 녹아내리고 있다

 


알타이산맥 보르항 보다이 산의 만년설. 이제 꼭대기에만 만년설이 남았다.

 

최근 지구온난화로 인한 자연의 역습이 심상치 않다. 미얀마에서는 엄청난 위력의 사이클론이 나라 전체를 덮쳐 인도네시아의 쓰나미 피해 이후 최악의 사망피해를 가져왔고, 미국의 중부지역에서도 강력한 토네이도로 50명이 넘는 희생자가 발생하였다. 사이클론과 토네이도의 피해가 휩쓸고 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중국에서는 리히터 규모 7.8의 초강진이 쓰촨 지역에 발생, 수만여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최근의 자연재해는 상당부분 ‘지구온난화’에 그 원인이 있지만, 그 책임을 져야할 인간의 지구를 괴롭히는 행위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보르항 보다이 아래서 만난 낙타떼. 만년설산에서 흘러내린 빙하수를 마시고 있다.

 

초원의 사막화, 1천여 개의 강과 호수가 사라졌다

 

지구온난화의 피해는 청정무구한 몽골도 예외가 아니다. 몽골의 수도인 울란바토르에서 차로 닷새를 달려 도착한 알타이에서 나는 온난화로 몸살을 앓는 지구를 실감했다. 길안내를 맡은 몽골 국립대학 한국어과 비지아 교수(37)에 따르면, 최근 8년간 알타이 산맥의 여러 만년설산은 지난 30여 년간 녹은 빙하의 양보다 훨씬 많은 양이 녹아내렸다고 한다. 10여 년 전보다 몽골의 겨울은 피부로 느낄 만큼 따뜻해졌고, 사막화로 황사바람은 더욱 더 기승을 부리고 있다고 한다. 나 또한 알타이 가는 길에 바얀고비에서 길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엄청난 비바람과 황사폭풍을 만났다. 비바람은 낮은 곳에서는 가랑비가 되었다가 언덕에서는 진눈깨비로, 고지대로 올라가면서 함박눈으로 돌변했다.

 


알타이에서 3시간 30분 거리에 있는 보르항 보다이는 외국인이나 관광객이 거의 가지 않는 험로이다. 

 

“올해는 유례없이 가문데다, 최근에는 폭풍에 가까운 황사바람이 계속 불었다. 옛날에는 봄에만 황사가 있었는데, 이제 황사는 눈비가 오는 날을 빼고 사계절 발생하고 있다.” 비지아 교수의 말이다. 최근 몇년간 몽골은 계속해서 봄/여름 가뭄에 시달렸다고 한다. 계속된 가뭄은 몽골의 사막화를 가속화시켰으며, 수백만 마리의 가축 피해로 이어졌다. 국토의 대부분이 초원(준사막)과 사막인 몽골에서는 지난 20여년간 지구온난화로 인한 사막화 현상으로 약 1천여 개의 강과 호수가 말라붙거나 아예 사라졌다고 한다.

 


바얀고비에서 만난 엄청난 황사폭풍(위). 남고비로 흘러가는 유일한 강, 옹기 강은 바짝 말라 곧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아래).


 

한국에서는 아직 ‘지구온난화’의 피해를 태풍과 집중호우 등으로 느끼지만, 몽골에서는 가뭄과 황사, 사막화, 빙하의 녹아내림과 겨울 온도 상승 등 다양하게 느끼고 있다. 몽골에는 커다란 두 개의 산맥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러시아에서 남고비까지 이어진 알타이 산맥이고, 다른 하나는 몽골 중서부에 걸쳐 있는 항가이 산맥이다. 몽골에서 항가이는 나무가 있는 산, 알타이(몽골어 ‘Altan’은 ‘금으로 이루어진’이란 뜻으로 알타이는 알탄에서 비롯되었다)는 바위가 있는 산을 가리킨다.

 


만년설산 아래 봄풀이 막 돋기 시작한 초원을 지나는 양떼와 염소떼.


 

울란바토르에서 알타이를 가는 가장 쉬운 방법은 비행기를 타고 가는 것이지만, 육로를 이용할 경우 대부분은 항가이 산맥 남쪽 루트를 이용한다. 이 남쪽 루트(약 1000km)는 쉬지 않고 달리면 3일, 평범하게 달려도 4일이 걸린다. 그러나 나는 이 편한 길을 놔두고 닷새나 걸리는 항가이 산맥 북쪽 루트(약 1400km)로 길을 잡았다. 이 길은 알타이를 가려는 여행자들과 현지인들조차 거의 이용하지 않는 ‘사서 고생길’이나 다름없는 험로로 손꼽힌다.

 


보르항 보다이로 가는 황야의 길.

 

그러나 이 길은 산과 협곡, 초원과 습지, 몽골에서 보기 힘든 삼림지대와 크고 작은 강줄기를 차례로 만나며 가는 황금길이나 다름없다. 히터가 들어오지 않는 옛 공산시대의 초대소같은 숙소와 현지인 게르에서, 5월인데도 밤이면 영하 12도까지 내려가는 추위를 침낭 하나로 견디며 나는 꼬박 닷새를 달려 알타이에 도착했다. 오는 동안 다섯 번의 펑크가 났다는 것 빼고는 아무런 사고도 일어나지 않았다. 알타이 산맥의 최고봉 후이툰(4355m) 인근(알타이 시내에서도 하루 반나절은 더 가야 하는 곳)이 고향인 비지아 교수조차 이 북쪽 루트는 처음 경험하는 길이었다.

 


알타이산맥의 만년설산 보르항 보다이 전경. 보다이는 붓다, 즉 부처를 뜻한다.

 

알타이산맥 만년설, 지난 30년간 녹은 양보다 최근 8년간 녹은 양이 훨씬 더 많다

 

울리아스타이를 지나 알타이 산맥의 항타시르 산이 보이기 시작하자 비지아 교수는 어린시절 이야기를 꺼내며 상념에 젖었다. “어릴 때 알타이 최고봉 만년설산 아래서 말을 탔다. 그 때는 만년설산 빙하가 산 아랫부분까지 뒤덮고 있었다. 그런데 8년 전 고향에 다니러 갔더니 빙하가 산 중턱에 걸쳐 있었다. 그리고 또 요즘에 가서 보니 만년설이 꼭대기밖에 남지 않았다. 최근 8년 동안에 녹아내린 빙하는 그 전 20~30년 동안 녹아내린 것보다 훨씬 많은 양이 녹아내린 셈이다. 남고비 홍고린 엘스로 흐르는 옹기 강도 메말라서 지금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어릴 때에 비하면 지금은 겨울이 엄청 따뜻해졌다.”

 


보르항 보다이 만년설산의 최고봉. 이곳의 만년설은 지구온난화의 피해로 급격하게 사라지고 있다.

 

알타이 산맥에는 모두 800여 줄기, 약 600km2 면적의 빙하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는 수년 전의 보고이므로, 이중 상당수는 이미 사라졌거나 축소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알타이에서 내가 찾아간 보르항 보다이 산(3705m)과 하삭트 하이르항 산(3370m)의 만년설도 이제 꼭대기에만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을 뿐이다. 알타이에 도착한 이튿날 보르항 보다이 만년설산으로 가는 길에 나는 엄청난 자연현상을 목격했다. 수십 미터 높이로 치솟은 모래기둥이 그것이다. 계곡의 회오리바람이 만들어내는 모래기둥은 순식간에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순간의 자연현상이지만, 몽골에서는 아주 흔하게 만나는 풍경이다. 그러나 그것을 찍으려 할 때마다 감쪽같이 사라지는 바람에 그것을 사진에 담지는 못했다.

 


만년설산에서 흘러내리는 빙하수 인근에 터를 잡은 유목민 게르 한 채와 빙하수를 마시는 고원의 낙타떼.


 

초원의 신기루도 몽골초원에서 흔하게 만나는 풍경이다. 아지랑이와 햇빛의 반사가 만들어내는 초원의 신기루는 마치 지평선에 호수가 있거나 물이 흐르는 듯 보이는 게 특징이다. 내 눈에는 이런 풍경이 마냥 신기한 것이지만, 몽골인들에게는 이것이 일상풍경이어서 눈길을 끌지도 못한다. 보르항 보다이로 가는 길은 협곡과 초원과 언덕을 번갈아 건너는 롤러코스트 같은 길이다. 만년설산이 가까워질수록 초원에 보이는 소떼는 야크떼로, 말은 낙타로 바뀌어간다. 몽골 유목민의 삶은 이 높고 깊숙한 곳까지 이어져 만년설산이 보이는 언덕과 구릉에도 드문드문 게르 몇 채가 보인다.

 


양을 치던 양치기가 말을 타고 멀리서 달려와 오랜만에 세상 이야기를 나눈다.

 

멀리 설산이 보이는 언덕에서 양과 염소를 몰던 양치기는 난데없이 설산 아래 차와 사람이 나타나자 말을 타고 달려왔다. 비지아 교수와 운전기사가 양치기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날씨가 쌀쌀해 나는 교수님이 지피고 간 마른 야크똥 불길에 손을 쬔다. 야크똥은 금세 불이 붙는데다 화력 또한 좋았다. 알타이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는 중간에 먹을 데가 없어 빙하수가 흘러내리는 개울가에 차를 세우고 물을 끓여 컵라면으로 점심을 떼웠다. 컵라면을 먹는 동안 낙타떼는 어디서 나타났는지 십여 마리 넘게 개울로 모여들어 차디찬 빙하수를 마시고 있다. 불과 40여 미터 위에 녀석들은 자리를 차지하고, 우리가 떠날 때까지 오랜 시간 물을 마셨다.

 


날이 추워 야크똥으로 피운 불(위). 알타이로 길안내를 해준 비지아 교수가 말을 쓰다듬고 있다(아래).


 

염소떼가 몽골의 사막화를 부추긴다

 

알타이에 머문 지 3일째 되는 날은 날씨가 하루종일 흐렸다. 하삭트 하이르항 산으로 가는 동안 눈앞에 보이는 만년설산은 하늘에 뜬 회색구름에 덮여 이따금 모습을 드러냈다. 지나는 초원마다 어김없이 양떼와 염소떼를 만난다. 그런데 초원에서 나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염소떼가 몽골의 사막화를 부추긴다는 이야기였다. 비지아 교수가 들려준 이 이야기는 실제로 몽골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기도 했다.

 


하삭트 하이르항 가는 길, 어버(돌서낭당)에서 만난 유목민.

 

“몽골 유목민은 염소와 양을 함께 키우는데, 염소는 전체 무리의 10~20%만 있어야 한다. 양은 식물의 줄기만 잘라먹지만, 염소는 식물의 뿌리까지 캐먹기 때문에 염소가 지나간 자리는 초토화되어 버린다. 그런데 최근 바얀홍고르 등의 대초원에서 염소떼의 수가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다. 이유는 염소털, 즉 캐시미어 때문이다. 양털이 1kg에 100투그릭인 반면, 캐시미어는 1kg에 무려 4만 투그릭이나 한다. 그러니 유목민들이 돈을 벌기 위해 점점 더 많은 염소를 키우기 시작했고, 그로 인해 초원의 사막화는 더욱 심해지고 있다.”

 


하삭트 하이르항 가는 길에 만난 할머니 양치기.

 

하삭트 하이르항 산중 계곡에는 외국인이 아예 오지 않는 휴양소가 자리해 있다. 알타이에서 3시간 거리의 산중에 있는 휴양소를 외국인이 찾아간다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알타이가 고향인 비지아 교수도 가는 길에 몇 번이나 길을 물어 겨우 찾아갔다. 외국인을 거의 본 적 없는 안내원과 그의 딸과 두 마리의 몽골견은 처음 찾아온 외국인을 위해 양을 몰다 말고 계곡의 길안내를 맡고 나섰다. 여기저기 샘솟는 약수와 나무가 우거진 빙하수 계곡과 여름에도 녹지 않는다는 동굴 얼음까지 다 보여주고서야 안내원은 계곡을 내려갔다.

 


하삭트 하이르항 만년설산 휴양소의 안내원과 그의 딸.

 

알타이 산맥은 거의 한반도 남북 길이 2배 정도인 총길이 2,000km에 이르는 엄청난 규모의 산맥으로, 러시아, 카자흐스탄, 중국에 걸쳐 있지만, 몽골에 가장 넓고 길게 뻗쳐 있다. 알타이 산맥은 고비알타이, 몽골알타이(보통 알타이산맥이라고 함), 소비에트알타이 등 세 지맥으로 나뉘는데, 삼림지대를 이루는 산맥의 서남쪽에 비해 산맥의 북동쪽인 몽골지역은 스텝과 준사막을 이룬 곳이 많다. 환경이 척박한 몽골의 알타이 산맥에는 동물의 분포도 많지 않아서 늑대나 스라소니, 야생염소가 이따금 발견될 뿐이다. 다만 알타이 산맥과 그 부근에는 앞발이 짧은 타라바그 같은 설치류가 많아 이것을 포식하는 솔개와 독수리 등 맹금류가 꽤 많이 분포한다.

 


하삭트 하이르항의 만년설이 흘러내리는 건천에 가까운 개천.

 

사실 알타이는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이름이다. 학교에서 배운 알타이 어족에 한국어가 속한다는 것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민족의 기원을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알타이는 바이칼 호수와 더불어 우리 민족의 발상지로 유력하게 손꼽히는 곳이다. 공교롭게도 알타이족의 시조신화와 부여의 시조신화는 너무나 비슷하다. 알타이족의 시조는 개구리왕 탄자강이며, 부여의 시조 또한 ‘금개구리왕’ 금와왕이다. ‘알타이’의 ‘Altan’이 ‘금으로 이루어진’이란 뜻을 지니고 있으니 ‘탄자강’은 바로 금개구리왕을 뜻하는 것이다.

 

* 구름을 유목하는 옴팔로스::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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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비를 건너는 단하나의 방법--(몽골씨리즈6)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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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비를 건너는 단 하나의 방법

 



몽골의 지프차 운전수 2명이 고비 여행을 앞두고 초원의 모미 앞에 잠시 서 있다.

 

몽골에 가기 전에는 몽골이 지구의 끝자락처럼 아득했다. 몽골에 도착해서는 이제 고비가 몽골의 끝자락처럼 아득하다. 아시아에서 아직도 탐험이나 모험을 해야 할 곳이 있다면, 몽골이 그렇다. 더더욱 고비에 가는 것은 사실 여행보다 고행에 가깝다. 고비를 건너는 단 하나의 방법은, 그냥 가는 것이다. 내가 탄 지프는 울란바토르를 벗어나 외곽의 ‘어버’(돌서낭)를 천천히 한 바퀴 돌아 멈춘다. 고비까지의 무사운행을 비는 몽골의 풍습이다. 바퀴로 한 바퀴 돌고 나면 두발로 또 한 바퀴를 돌며 운전수는 무사귀환을 빈다.

 



고비 가는 길에 만난 초원의 야생마.

 

이제부터 일주일간 운전수는 덜컹거리는 길에 모든 것을 맡기고, 어쩔 수 없이 여행자는 운전수에게 모든 것을 맡겨야 한다. 고비의 길은 마치 ‘비포장길의 진수를 보여주마’ 하는 표정으로 여름 햇빛 속에 맹렬하게 누워 있다. 끝도 없고, 물도 없고, 그늘도 없는 길. 울란바토르에서 몇 개의 고개를 넘어가면 곧바로 지루한 지평선이 펼쳐진다. 하늘과 맞닿은 초원. 초원을 굴러다니는 구름. 하늘과 초원 사이로 이따금 양떼가 지나가고, 소떼와 염소떼가 지나가며 초원과 하늘의 간극을 간신히 떠받친다.

 


초원의 100차선 도로라 불리는 몽골초원의 수십 갈래 길.

 

비로소 사막이 열리고, 적막이 펼쳐진다



끝이 보이지 않는 초원의 길에서는 바퀴가 달려간 자국이 고스란히 차선이 된다. 10차선, 20차선, 갈수록 늘어나는 차선과 갈증. 아침에 출발해 점심 때가 되어서야 작은 마을을 만난다. 10여 채의 건물과 수백마리의 양떼들이 점령한 마을. 여기서 밥 먹지 않으면 저녁까지 굶고 마는 정확히 끼니에 맞춰 나타난 쵸크토부 마을. 여기서 밥 먹고 출발하면 다시 저녁 때쯤에야 마을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하늘은 갑자기 어두워지고, 느닷없이 초원에 소나기가 흩뿌린다. 소나기 너머로 무지개가 걸려 있고, 무지개 사이로 양떼와 야생마 몇 마리가 풀을 뜯는 비현실적인 풍경. 길가에는 내내 야생 파꽃 무리가 일렁인다.

 


고비 가는 길에 만난 무지개.

 

하루종일 달려서 덜컹거리는 지프는 만달고비에 도착한다. 비로소 사막이 열리고, 적막이 펼쳐지는 곳. 여기서부터 초원이 다하고 진정한 모래의 세계가 펼쳐진다. 말이나 양떼 대신 모래벌판에는 이제 낙타가 자주 눈에 띈다. 가도가도 모래땅. 다시 하루를 꼬박 달려서야 공항이 있는 사막도시 달란자드가드에 가 닿는다. 여기서 본격적으로 사막이 펼쳐진 홍고린엘스까지는 또다시 하루를 달려야 한다. 사막으로 가는 길목에는 얼음 계곡으로 알려진 욜링암이 있는데, 사시사철 녹지 않는 빙하가 이곳에 있다. 고비를 지척에 두고 빙하가 있다는 게 믿기지 않지만 사실이다.

 


고비 인근의 욜링암. 사막을 지척에 두고 얼음계곡에 빙하가 있다.

 

내내 말이 없던 운전수는 초원의 언덕에 차를 세우고 손가락을 가리킨다. 그가 가리키는 손가락 너머로 드디어 모래의 바다, 고비사막의 실루엣이 모습을 드러냈다. 울란바토르에서 꼬박 3일을 달려서야 고비사막에 도착한 것이다. 엄격히 말해 이곳은 아직 사막이 아니라 사막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 홍고린 엘스다. 때는 저녁이어서 석양 속의 사막은 온통 황금빛으로 빛난다. 아침에도 비슷한 풍경이 펼쳐진다. 아침 햇살이 사구에 부딪쳐 고비사막은 더없이 눈부신 황금 물결을 이룬다.

 


초원의 한복판에서 만난 유목민의 무리.

 

아침이 되자 게르 한 편의 세면통에서는 눈물겨운 풍경이 연출된다. 기껏해야 2리터쯤 물이 담긴 세면통의 아랫꼭지를 누를 때마다 한방울 한방울 물방울이 떨어지고, 게르 주인인지 여행자인지 분간할 수 없는 몽골인은 그것을 손바닥에 받아 세수도 하고 목까지 닦는 것이다. 사실 몽골에서는 우리가 먹는 2리터 생수 한 통이면 온가족이 세수하고 남겨서 이튿날까지 세수할 분량이다. 어차피 이 세면통은 여행자를 위한 것이다. 고비의 원주민은 세수하는 것조차 사치에 가깝다. 나도 세면통으로 가 현지인이 하는 모양으로 물방울을 받아 세수를 한다. 겨우 물 한 모금 정도로 세수를 마치고 나자 느닷없는 모래돌풍이 세수한 내 얼굴을 덮치고 간다. 고비의 원주민이 굳이 씻지 않아도 되는 이유를 내가 방금 경험한 것이다.

 


고비사막을 바라보며 서 있는 황혼 무렵의 낙타떼.

 

낙타를 타고 원초적 우주에 빠지다



정말로 고비고비 여기까지 왔다. 누군가는 고비를 인생의 고비에 비유하고, 누군가는 ‘고비의 고비’를 이야기한다. 고비의 비유는 이제껏 너무 많아서 어떤 비유도 참된 고비를 수사하지 못한다. 오로지 여행자의 목적은 ‘시간의 무덤’인 저 사막에 발목을 내리고, 푹푹 빠지는 현실을 경험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곳에서 저기까지 가는 방법은 낙타가 유일한 교통수단이다. 여기서는 낙타만이 사구를 견디고, 모래땅을 건널 수 있다. 낙타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내 몸은 덩달아 기우뚱거린다.

 


고비사막. 사막 위로 펼쳐진 눈부시게 푸른 하늘.

 

사막은 이제 아침의 황금빛을 벗어버리고 흰색에 가까운 모래빛으로 바뀌어 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사구의 곡선무늬와 물결무늬는 다가갈수록 선명하고 분명해진다. 그리고 드디어 사막이다. 난생 처음 나는 낙타의 등에서 내려 사막의 모래를 발목으로 느낀다. 한발한발 디딜 때마다 발목이 잠긴다. 이런 사막에 빠지기 위해 나는 왔다. 누군가는 고비에서 모래알만한 존재감을 안은 채 돌아가고, 누군가는 낙타의 눈에 비친 또다른 고비를 발견한다지만, 사막에서 내가 본 것은 사막의 궁륭에 뜬 낮달과 맹렬한 직사광선과 사막의 무늬를 제압하는 시리도록 푸른 하늘과 사막의 한복판에서 보란 듯이 싹을 틔운 갸륵한 새싹들이다.

 



낙타를 타고 사막 깊숙이 들어가는 여행자들.

 

이 사막을 횡단하는 일은 며칠의 일정으로는 불가능하다. 다만 나는 사구의 꼭대기에 올라 말없이 모래의 풍경과 모래의 시간을 본다. 고비는 그 자체로 ‘모래땅’, ‘사막’이란 뜻이다. 그러니 ‘고비사막’이란 말은 의미의 중첩일 뿐이다. 흔히 고비에서 우리가 사막이라고 부르는 모래언덕은 전체의 10%에도 미치지 못한다. 나머지는 황량한 벌판이거나 성긴 풀이 듬성듬성한 모래땅이다.

 



고비사막 사구 위에서 바라본 고비의 풍경.

 

살아 있는 동안, 다시 고비에 올 수 있을까. 아마도 그러기는 어려울 것이다. 고비가 아니더라도 내가 서 있는 곳으로 나는 두 번 다시 오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늘 내 앞의 광경은 나에게 마지막 풍경이다. 굳이 고비를 넘어갈 이유가 내게는 없다. 고비를 만나서 고비를 떠나는 것. 그것이 내가 바라던 고비에 대한 예의다. 낙타를 타고 나는 다시 사막을 빠져나간다. 그동안 사막까지 나는 3일간 달려왔고, 3일을 더 달려 울란바토르에 도착할 것이다.



덜커덩, 황무지, 도대체, 으악!



또다시 계속되는 모래땅, 허허벌판, 황무지, 도대체, 으악, 지평선, 적막, 단조로움, 덜커덩을 견디며 나는 또 이 모래벌판을 달려야 한다. 홍고린 엘스에서 2시간을 달려가 만난 오아시스. 사하라의 오아시스처럼 사막 한가운데 있는 것이 아니라 벌판 한가운데 있는 오아시스다. 고작해야 그곳에는 샘이 솟는 우물이 한 채 있을 뿐이었고, 우물에서 길어올린 물을 가축에게 먹이기 위해 긴 구유통을 놓았을 뿐이다. 그러나 이 곳의 오아시스 우물은 사방 수십 리에 걸쳐 사는 고비의 원주민과 가축들의 생명수이다.

 



고비 인근 벌판에서 만난 오아시스. 이 우물이 주변의 유목민과 가축을 먹여살린다.

 

한 양치기가 우물물을 길어 구유에 붓자 주변에 있던 수많은 염소떼와 양떼가 몰려와 목을 축인다. 누군가는 오아시스의 샘물이 무슨 대단한 구경이냐 하겠지만, 인근의 원주민과 아이들의 상당수는 매일같이 이 우물 주변에 나와 지나가는 여행자를 상대로 장사를 한다. 너무 조악해서 그냥 준다고 해도 가져가지 않을 것들을 버젓이 그들은 팔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장사 수단은 조악한 물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불쌍한 표정에 있다. 아이들의 불쌍한 표정이 배부른 여행자들의 주머니를 열게 하는 것이다.

 



초원에 외떨어진 유목민의 게르.

 

가도가도 초원이고 지평선인 풍경은 지루하도록 계속된다. 그렇게 다시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가고 사흘이 되었을 때, 고비의 마지막 밤이 찾아왔다. 마지막 밤을 기억하기 위해서 나는 게르 밖으로 나와 하늘을 가로지르는 은하의 물결을 구경했다. 툭하면 초원으로 떨어지는 별똥별과 지평선 위로 곧바로 뜨는 월출도. 초원의 별똥별은 내가 별똥별의 추억을 새기던 어린시절로 나를 데리고 갔다. 우주적이고 자연적인 세계로 나를 몰입시켰다. 지구에는 아직도 이렇게 별똥별이 수없이 쏟아지는 곳이 있고, 은하의 물결이 다 보이는 곳이 있구나, 라고 나는 막 감격했다. 원초적이고, 본질적이고, 우주적인 풍경으로 가득한 곳이 바로 몽골이고, 몽골의 진면목이다.

 


게르에서 만난 몽골 청년이 올가(올가미)를 이용해 야생마를 낚아채고 있다.

 

고비를 떠나 울란바토르를 향해 갈 때, 난데없이 소나기가 퍼부어댔다. 고비로 오는 날에도 소나기를 만났는데, 가는 날에도 똑같이 소나기를 만났다. 그러나 그 때와 달리 이번에는 돌풍과 함께 바람이 차서 여름인데도 날씨는 초겨울과 같았다. 내가 탄 차도 마지막 고비에 이르렀는지 연달아 두 번이나 펑크가 났다. 그런데도 운전사는 느긋하게 우리의 70년대식 펌프기를 꺼내 설렁설렁 타이어에 바람을 넣고 있다. 계속되는 비와 돌풍. 바람을 넣은 차가 거의 울란바토르 인근까지 와서야 하늘은 잠잠해졌다. 익숙한 초원의 언덕을 넘어서자 불 켜진 도시의 풍경이 눈앞에 주욱 펼쳐진다. 저녁 7시 30분. 다시 나는 울란바토르에 입성한 것이다.

 



유목민의 게르 내부 풍경. 이 대가족이 모두 게르에서 먹고 잔다.

 

<여행정보>

몽골을 여행하려면 우선 몽골 몽골 대사관(02-794-1951)에서 비자(3일 소요, 38,000원)를 받아야 한다. 인천-울란바토르 간 항공편은 몽골항공과 대한항공이 1일 1회(여름 기준) 운항하며, 항공료는 60~75만원선(왕복, 5시간 소요). 울란바토르에서 지프차를 렌트할 경우 왕복 520달러. 기름값 별도 지불. 숙소는 울란바토르 게스트 하우스 도미토리 기준 1일 5달러, 트윈 14달러, 고비 게르 숙박 15~30달러. 식사 3000~5000투그릭(3천원~5천원). 울란바토르 MK마트에서 라면, 김치 등 한국 식료품을 살 수 있다. 울란바토르를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에서 신용카드 사용 불가. 고비에 갈 때는 지프가 실을 수 있을 만큼의 생수를 싣고 가는 것이 신상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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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유목민 차탄족의 고향,흡스굴--(몽골씨리즈5) 댓글[0]
카페등재글 (2008-06-29 오후 3:52:59) http://blog.somang.net/ydw902/37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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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후의 유목민 차탄족의 고향, 홉스굴



홉스굴의 유목민이 야크 수레를 끌고 간다.

 

몽골은 단순하다. 이 단순함은 원초적인 느낌에서 온다. 이를테면 그냥 아무것도 없는 초원과 사막. 길 없는 길과 원시적인 구름들. 1년에 260일은 맑고, 1년에 7개월은 겨울이며, 두달 여의 봄날은 모래폭풍이 휩쓸고 가는, 몽골은 혹독하고 혹독해서 더욱 아름답다. 그렇다면 몽골에서 가장 신성한 곳은 어디인가? 몽골인들은 주저없이 말한다. 홉스굴이라고. 홉스굴은 중앙아시아의 호수 가운데 가장 깊고, 세계에서 14번째로 크며, 세계 담수량의 2%를 차지하는 곳으로 경탄할만한 96개의 강이 이 곳으로 흘러들어 단 한개의 강(에진 강)만이 러시아의 바이칼로 흘러간다.

 



저녁 무렵의 홉스굴과 타이가 숲.

 

누군가는 홉스굴을 일러 ‘몽골의 푸른 보석’이라거나 ‘몽골의 알프스’로 부른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몽골에서 가장 몽골답지 않은 곳. 홉스굴의 관문인 무릉에서부터 홉스굴까지는 몽골 특유의 완만한 초원지대가 펼쳐지지만, 홉스굴에 가까워질수록 타이가 삼림지대가 빽빽한 원시림을 이룬다. 북쪽은 해발 3500여 m의 산맥지대이며 러시아와의 국경이고, 불가사의한 종족으로 손꼽히는 차탄족이 여기에 살고 있다. 수심은 속을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지만, 물은 수정처럼 맑고, 투명하다. 이 곳에 민물연어가 살고, 주변에는 순록과 사향노루, 무스와 큰곰이 산다.

몽골에서 가장 뛰어난 동식물의 보고 역시 홉스굴이다.

 



홉스굴 가는 길에 만난 어버(돌서낭).

 

홉스굴을 가자면 무릉을 거쳐야 한다. 울란바토르에서 무릉까지는 무려 692km. 비행기를 타면 두어 시간이 걸리지만, 차를 타면 며칠이 걸린다. 홉스굴에 가는 사람들은 무슨 통과의례처럼 무릉을 거쳐가지만, 아무도 무릉을 기억하지 않는다. 꿈 속에 스쳐간 마을이거나 기시감 속에나 존재하는 마을처럼 무릉은 그렇게 기억되고, 그렇게 존재한다. 여기에는 어떤 도시의 느낌도, 훌륭한 숙소와 유흥시설도, 구경할만한 시장도 없다. 여기를 벗어나면 홉스굴까지 내내 지루한 초원만이 계속될 뿐이다. 그러나 유목민에게 초원은 ‘모든 것’이다. 가축과 우유와 집과 길이 다 거기에 있다. 그들에겐 초원만이 무궁하고, 초원만이 무진하다. 야크나 염소에게도, 독수리나 두루미에게도 초원은 곳간이고 둥지다.

 



타이가숲이 시작되는 초원과 하늘의 천사구름.

 

오로라처럼 번지는 북방의 무지개



아침 먹고 초원, 점심 먹고 초원. 이 곳에서 유목민의 삶이란, 초원에서 나서 초원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심심하다거나 불행하다고 느끼는 건, 우리의 생각일 뿐이다. 설령 힘들다고 해서 이들은 초원을 떠날 생각이 없다. 길고 지루한 초원을 건너면 이제 지금까지의 몽골 풍경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웅장한 호수와 울창한 타이가숲. 바로 홉스굴이다. 호수는 하트갈 마을에서부터 장카이, 타일럭트 마을을 지나 북쪽으로 러시아의 국경까지 끝없이 펼쳐져 있다.

 



저녁 무렵 홉스굴 호숫가의 야크떼.

 

홉스굴은 평화롭다 못해 이런 풍경에 익숙하지 않은 여행자는 심심함을 느낄 지경이다. 아침에 게르에서 일어나 문을 열면 호수의 맑은 바람이 곧바로 들이닥치는 곳. 앞에는 눈 시린 호수가 초원처럼 펼쳐지고, 뒤로는 타이가숲이 원시림을 이룬 곳. 말을 타도 호수, 보트를 타도 호수, 트레킹을 해도 호수와 만나야 하는 곳. 여름 밤에도 날씨가 쌀쌀해서 밤새 난로를 피워놓고 잠들어야 하는 곳. 밤에는 달과 별밖에는 보이지 않고, 호숫가를 지나는 말 탄 유목민의 노랫소리만이 애잔하게 들려오는 곳. 지극히 지구적이고 우주적인 생각들이 교차하는 곳.

 



오로라처럼 번진 신비한 북방의 무지개.

 

홉스굴에서 나는 오로라처럼 번지는 북방의 무지개를 보았고, 호숫가를 느릿느릿 배회하는 야크떼를 만났으며, 이름을 알 수 없는 많은 꽃들과 차탄족의 순박함과 길 없는 적막과 외로움을 경험했다. 특히 순록과 함께 사는 종족인 차탄족과의 만남은 아주 특별한 경험이었다. 그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강하고 신비로운 종족이다. 영하 40도의 날씨에도 순록의 등에서 아랑곳없이 잠을 자는 사람들. 순록을 타고 그들은 순록이 더 이상 가지 않는 곳까지 이동해서는 순록이 머물 때까지 그 곳에 머문다. 그러다 다시 순록이 이동하는 시기가 되면, 순록이 가는 곳으로 길을 떠난다.

 



관광객에서 말을 태워주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홉스굴의 신종 마부.

 

최후의 유목민, 차탄족의 고향



애당초 그들에게는 ‘고향’이나 ‘정착’이라는 말이 없으며, 지금도 몽골과 러시아의 국경을 오고 가며 진정한 노마드의 삶을 살고 있다. 현재 전세계에 남은 순수한 차탄족(Tsaatan)은 겨우 200여 명 정도(또 다른 보고서에 따르면 80여 명)에 불과하다. 때문에 인류학자들은 차탄족을 일러 전세계에서 가장 경이로운 부족이자 믿을 수 없는 부족이며, 원시적인 인류의 원형을 간직한 부족이라고 말한다. 아무튼 그들은 몽골계 인종 가운데서도 가장 희박하고, 가장 알 수 없는 소수민족임에는 분명하다.

 



몽골의 할흐족 게르와 다르게 생긴 차탄족의 전통 천막, 오르츠와 차탄족 아버지와 딸.

 

내가 홉스굴에서 말을 타고 지나가다 차탄족 천막인 오르츠를 발견하고, 그 안에 들어가보고 싶다고 여긴 건, 오래 전 동화책처럼 읽었던 차탄족 이야기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거기에는 이렇게 씌어 있었던 것같다. "그들은 아마도 아메리카 인디언의 원주민일지도 모릅니다. 무속과 양육, 생김새까지도 인디언과 다를 바 없으니까요." 그리고 이런 이야기도 있었던 것같다. "그들은 순록을 가축으로 길들여 그것을 말처럼 타고 다닐뿐만 아니라 그것의 젖을 짜 먹고, 고기도 먹고, 사냥도 합니다.” 뭐 이런 내용인 듯하다. 실제로 내가 만난 차탄족도 순록이 말보다 훨씬 온순하고, 길들이기도 쉽다고 말하는 걸 들었다. ‘차탄’이란 말도 몽골어로 ‘순록 유목민’이란 뜻이다. 그러나 본래 야생동물인 순록은 길이 들면 순하지만, 몇 개월만 그냥 두면 도로 야생으로 되돌아간다.

 



차탄족과 함께 살아가는 순록.

 

몽골 정부에서는 지난 1960년대 소수민족 보호를 위해 차탄족을 위한 집을 지어주고 땅도 주겠다고 제안했지만, 그들은 그 제안을 받아들이기는커녕 이해할 수가 없었다. 순록과 천막 하나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가 있는데, 답답하게 한 곳에 머물러 산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몽골 인종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할흐족이 유목민에서 점차 정착민이 되어가는 현실도 이들에게는 믿고 싶지 않은 현실이었다. 차탄족이 말을 듣지 않자 몽골 정부에서는 차탄족에게 모든 사냥을 전면 금지시켰다. 평생을 유목과 사냥으로 살아온 그들의 앞날에 빨간 불이 켜졌고, 점차 이들은 믿을 수 없는 그 현실을 받아들이고 있다.

 



차탄족은 야생의 순록을 가축으로 길들여 타고 다닌다.

 

차탄족은 현재 몽골 최북단 홉스굴 인근에 살고 있다. 홉스굴 인근의 차탄족은 호수 주변의 타이가숲이 삶의 근거지인데, 여름이면 관광객을 상대로 호숫가까지 내려와 차탄족의 전통 천막인 오르츠를 세워놓고 장사를 한다. 차탄족의 전통 장신구와 생활용품을 팔기도 하고, 사진을 찍는 대가로 돈을 받아 생활한다. 하지만 아직도 상당수의 차탄족들은 자신들이 이렇게 전시용 박물관 대접을 받는 것에 대해 아주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점점 더 세상이 순록을 타고 이동해 살기에는 어려워졌다는 사실을 이들은 아직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차탄족 오르츠의 내부 모습. 온 가족이 이 작은 천막 안에 산다.

 

헬기를 타고 오는 침략자들



지구상에 마지막 남은 원시적인 유목의 삶을 보기 위해 어떤 서구의 관광객들은 수십 명씩 헬기를 빌려타고 차탄족의 거주지까지 여행을 오는 경우도 요즘엔 늘고 있다. 차탄족들은 그들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 “그들은 우리의 천막촌을 일방적으로 침략해서는 우리 손에 돈 몇 푼 쥐어주고 갑니다.” 서구인들의 차탄족 관광은 차탄족 의사와는 상관없이 이뤄지고 있다. 물론 그 돈을 벌기 위해 손을 내미는 차탄족이 이제는 점점 많아지고 있는 것이 어쩔 수 없는 현실이기는 하지만.

 



호숫가를 말 타고 지나가는 여행자들.

 

홉스굴에서 만난 차탄족은 때마침 내가 도착했을 때, 천막 앞에 장신구와 생활용품을 잔뜩 펼쳐놓고 있었다. 이들의 천막은 할흐족의 게르와는 그 모양새부터가 다르다. 게르가 지붕이 둥그런 천막이라면, 차탄족의 오르츠는 우리나라의 김치움막처럼 뾰족한 원추형이다. 천막 가운데는 난로가 있고, 바닥에는 동물 가죽을 깔아놓았는데, 천막 구석에는 젖먹이 아기가 이불에 싸여 새근새근 잠을 자고 있었다. 원래 이 가족도 여기서 좀더 떨어진 침엽수숲에 살고 있으나, 관광객을 위해 잠시 내려온 것이라고 한다.

 



홉스굴 입구 하트갈에서 만난, 전통 의상 델을 입은 여인.

 

몽골의 할흐족이 말이나 양, 소젖으로 우유와 치즈를 생산한다면, 이들은 순전히 순록의 젖으로 모든 유제품을 만들어낸다. 순록의 가죽으로는 옷과 천막을 만들고, 밧줄도 꼰다. 이들의 생활은 순록과 떨어져서는 생각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차탄족의 천막 주위에는 언제나 순록이 있다. 차탄족끼리는 얼마나 많은 순록을 가졌느냐가 부의 척도나 다름없다. 내가 찾아간 차탄족은 약 20여 마리의 순록을 가축으로 키우고 있었는데, 많을 경우 50마리 이상의 순록을 거느린 차탄족도 있다고 한다.

 



몽골의 가장 신성한 호수인 홉스굴 풍경.

 

지금도 홉스굴 인근의 차탄족은 순록과 함께 여름이면 좀더 북쪽으로 올라가고, 겨울이면 좀더 남쪽으로 내려와 생활하는 오랜 전통을 유지해오고 있다. 다만 옛날과 달라진 것이라면 그들의 행동 반경이 정치적 목적과 환경적 제약에 의해 제한받고 있다는 것이다. 사냥도 이제는 마음대로 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유목과 사냥을 동시에 하면서 끊임없이 이동하는 부족에서 이제는 유목만을 하며 제한적으로 이동하는 부족이 된 것이다. 현재 이들의 미래는 매우 불확실하다. 겨우 200여 명에 불과한 소수민족의 핏줄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도 알 수가 없다. 다만 확실한 것은 이들이 대대로 살아온 홉스굴이 있는 한, 이들은 결코 홉스굴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홉스굴의 게르 숙소.

 

<홉스굴에 가려면>

몽골을 여행하려면 우선 몽골 몽골 대사관(02-794-1951)에서 비자(3일 소요, 38,000원)를 받아야 한다. 인천-울란바토르 간 항공편은 몽골항공과 대한항공이 1일 1회(여름 기준) 운항하며, 항공료는 60~75만원선(왕복, 5시간 소요). 울란-무릉간 항공료 250달러 정도(1시간 30분~2시간). 숙소는 울란바토르 게스트 하우스 도미토리 기준 1일 5달러, 트윈 14달러, 홉스굴 게르 숙박 15~30달러. 차량 렌트 1일 1대 기준 80달러. 식사 3000~5000투그릭(3천원~5천원). 울란바토르 MK마트에서 라면, 김치 등 한국 식료품을 살 수 있다. 울란바토르를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에서 신용카드 사용 불가.



* 이 기사는 지난 2008.01.16일자 <한겨레신문>에 실었던 <이용한의 몽골기행 1> 기사에서 사진을 더 추가한 기사입니다. 이 기사의 저작권은 저작자 이용한(dall-lee)과 <한겨레신문>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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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의 한류는 어떤모습--(몽골씨리즈4) 댓글[0]
카페등재글 (2008-06-29 오후 3:51:26) http://blog.somang.net/ydw902/3792
출처카페 > 의료선교부원문http://cafe.somang.net/medical/86566

몽골의 한류는 어떤 모습

 


 

몇 년 전 몽골에서는 <야인시대>라는 드라마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적이 있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울란바토르의 뒷골목은 지금까지도 <야인시대>에 나오는 김두한을 흉내내는 사내들로 넘쳐난다고 한다. 이들은 복장조차도 <야인시대>에서 나온 옛날식 양복에 흰색 중절모를 쓴다는 것이다. 울란바토르 UB 게스트하우스 인근에는 <야인시대>에 나온 안재모 사진을 그대로 갖다 쓴 <야인시대> 레스토랑까지 있다.

 


몽골에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드라마 <야인시대>의 후광으로 울란바토르 시내 한국식당 <야인시대>도 인기다. 

 

몽골에서는 TV를 틀면 언제든 한국의 드라마를 볼 수가 있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고비사막 인근 달란자드가드에서 나는 몽골의 한 가정집에서 하룻밤 묵은 적이 있는데, 온 가족이 모여 밤 늦게까지 TV를 시청하고 있는 거였다. 바로 90년대 한국에서 방영된 되게 오래된 한국의 드라마였다. 내가 손짓을 하며 TV를 가리키자 드라마를 보던 몽골 부부는 한국 드라마가 재미있다는듯 손가락을 치켜올렸다. 울란바토르의 비디오 대여점에서는 한국영화 비디오테잎과 한국에서 수입한 영화를 그대로 복제해온 영화가 인기다.

 


울란바토르 국립백화점을 중심으로 한 중심가에는 한국식 미용실이 꽤 많이 들어서 있다.

 

몽골에서 한류 바람이 분 것은 꽤 오래되었다. 일본이나 중국에서 한창 한류 붐이 일어날 때 몽골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다만 몽골이 일본이나 중국과 다른 것은 드라마나 가수 등 특정 연예인을 중심으로 한류가 형성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1990년 시장경제가 도입되면서 몽골은 한국을 경제모델로 삼았고, 몽골의 젊은이들도 한국을 ‘동경의 나라’로 여기기 시작했다.

 


한국의 화장품 가게 <미샤>와 한국 문구점 <모닝글로리>.


 

지금도 울란바토르 국립백화점 거리를 걷다 보면 한국에서 건너온 화장품 가게 ‘미샤’와 한국의 문구점 ‘모닝글로리’, 한국식 이름의 간판을 내건 미용실을 얼마든지 만날 수 있다. 미용실의 창문에는 김희선을 모델로 한 화장품 광고가 몽골어 카피로 걸린 풍경도 볼 수 있다. 휴대폰도 울란바토르에서는 SK텔레콤이 인기다. 이곳의 젊은이들은 한국의 연예인과 한국문화에 관심이 많으며,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것을 꿈으로 여기는 젊은이도 많다. 몽골을 대표하는 울란바토르대학에서는 한국어를 아예 제2외국어로 채택하고 있다. 따라서 울란바토르에서 만나는 대학생들과는 간단한 의사소통이 가능할 정도이다.

 


울란바토르 시내 한복판에 자리한 <서울정>과 <서울의 거리>.


 

몽골에는 한국에서 볼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중고차가 울란바토르에 다 있다. 어떤 버스는 강남학원 간판을 달고 혹은 서울의 노선과 번호판을 버젓이 붙이고 시내를 질주한다. 어떤 승합차는 아직도 무슨무슨 태권도학원이거나 유치원 이름을 그대로 붙여놓고 있다. 중고차일지언정 차가 한국산이라는 것을 과시하기 위함이다. 1990년 한몽수교 이후 울란바토르 시내에는 따로 ‘서울의 거리’가 한복판에 생겼고, 한국식 정자인 ‘서울정’도 국립백화점 건너편에 생겼다.

 


울란바토르 자이산 남쪽에 자리한 이태준 선생 기념공원.

 

사회주의 혁명기념 승전탑이 있는 울란바토르의 자이산에는 항일운동의 최전선에서 활동했던 이태준 선생(1883~1921)의 기념공원도 남쪽 기슭에 자리해 있다. 사실 우리에게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한국전쟁 당시 북한의 전쟁고아를 받아 보살펴준 나라도 몽골이었다. 과거 김대중 대통령이 몽골을 방문한 이후 민간교류가 꾸준히 늘어난 것도 한류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울란바토르에는 한인수퍼 를 비롯해 꽤 많은 한국식당이 자리잡고 있다.


 

울란바토르 시내에는 한국 음식점과 한국인이 운영하는 가게도 꽤 많은 편이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한인슈퍼마켓 ‘MK마트’는 울란바토르를 여행하는 한국인 여행자들에게는 꽤나 유명한 슈퍼마켓이다. 이곳에는 한국의 김치를 비롯해 컵라면과 라면, 밑반찬 류가 대대수 구비돼 있다. 울란바토르에서 가장 유명한, 론리 플래닛에도 등장하는 UB 게스트하우스도 운영자가 한국인이다. 그러나 최근 UB 게스트하우스는 한국인 푸대접과 바가지 요금으로 여행자들 사이에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

 


울란바토르 대학의 학생들은 제2외국어로 한국어를 사용하므로 간단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사실 울란바토르에서 소매치기보다 무서운 게 한국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내가 아는 어떤 여행사 대표는 말이 통한다는 것과 한국인이라는 인연을 강조하며 오히려 한국인 등쳐먹는 짓거리를 하는 것으로 소문이 자자하다. 나 또한 피해를 당한 당사자이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그처럼 당한 피해자가 한두 명이 아니었다. 가령 이런 것이다. 여행사나 게스트하우스를 통해 홉스골이나 고비를 간다고 했을 때, 이들은 통상적인 경비의 2~3배쯤 바가지를 씌우곤 한다. 가격이 비싸다는 이유로 예약을 해지하면 위약금을 왕창 떼버리는 것이다. 심지어 우리 일행은 예약을 취소해 위약금을 물고도 여행사에서 제시한 금액의 절반 정도로 홉스굴을 여행하고 왔다. 어디를 가나 한국인이 한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등쳐먹는 곳이 있다고는 하지만, 울란바토르에서는 정도가 더 심한 편이니 주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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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본 몽골--(몽골 씨리즈 1) 댓글[0]
카페등재글 (2008-06-29 오후 3:46:52) http://blog.somang.net/ydw902/3791
출처카페 > 의료선교부원문http://cafe.somang.net/medical/86562
 안녕하십니까? 몽골 의료선교(7/26~8/2)처음가시는 부원께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하고
좋은 자료가 있어서 10여번에 걸쳐서 보여드리고자 합니다.
감사 합니다.

 
 
 
 

하늘에서 본 몽골


 



드넓은 초원에 들어선 무릉공항.


 

몽골은 단순하다.

이 단순함은 원초적인 느낌에서 온다.

이를테면 그냥 아무것도 없는 초원과 사막.

길 없는 길과 원시적인 구름들.


 



하늘에서 바라본 초원의 화산지형. 제주도의 오름을 연상시킨다.


 

1년에 260일은 맑고, 1년에 7개월은 겨울이며

두달여의 봄날은 모래폭풍이 휩쓸고 가는

몽골은 혹독하고, 혹독해서 더욱 아름답다.

몽골에서는 영하 30도의 긴 겨울과 모래폭풍으로 범벅된 봄이 지나간 뒤의

짧은 여름이 아름답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하다.


 



홉스굴 인근의 산자락 풍경.


 

하늘에서 본 몽골 또한 그저 심심하다.

가도가도 초원이 펼쳐져 있거나

그곳을 이따금 소떼나 염소떼가 지나가거나

황량한 벌판이 태초의 자태로 아무렇게나 이어져 있다.


 



초원의 소떼와 오아시스의 소떼와 염소떼.



 

그러나 홉스굴 쪽으로 올라가는 북쪽이나

알타이 쪽으로 이어진 서쪽은 또다른 풍경도 만날 수 있다.

몽골에서 드문 산악지대가 이곳에서 펼쳐진다.

특히 몽골에서 그나마 물이 풍족한 홉스굴 인근에서는

산악지대를 구불구불 흘러가는 은빛 강줄기도 흔하게 만난다.


 



햇빛을 받아 은빛으로 반짝이는 구불구불한 강줄기.


 

본래는 푸른 물줄기여야 할 홉스굴 인근의 강줄기는

하늘에서 보면 햇빛을 받아 은빛으로 반짝거린다.

외국인들은 이것을 보고 ‘스네이크 리버’라고 부른다.

은빛으로 빛나는 거대한 뱀이

구불구불한 산자락을 휘감은 모습이기 때문이다.


 



경지정리하듯 잘 구획된 무릉 시가지 풍경.


 

홉스굴 인근의 무릉공항에서 울란바토르를 향해 날아가다 보면

구불구불한 산자락의 굴곡이 점점 편평하게 펴지는 느낌이다.

급기야 울란바토르에 가까워지면

산자락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가도가도 초원만 펼쳐진다.


 



구릉 사이로 난 구불구불한 길과 초원의 수십차선 비포장길.



 

여기서 다시 남쪽으로 고비를 향해 가면

푸른 초원은 어느덧 황량한 모래벌판으로 바뀌어 있다.

바닥에 성기게 자란 사막식물들과

한 무리의 낙타도 만난다.

그리고 이내 너무나도 유명한 고비사막이 펼쳐진다.


 



민둥산과 초원에 건설된 황량한 소도시와 홉스굴 인근의 첩첩 쌓인 산자락 풍경.



 

하늘에서 내려다본 몽골은

티베트나 동남아, 남태평양의 섬나라처럼

대단한 풍경이 존재하지 않는다.

단순하고 심심하며, 지루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이 단순한 풍경이 바로 몽골의 진면목이고

몽골의 아름다움인 것이다.


 

* 구름을 유목하는 옴팔로스::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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