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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나와 당신을 위하여 베푸신 사랑을 쉼 없이 감사하며 올 바른 믿음과 삶을 통하여 이 기쁜 소식을 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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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들이 추구해야 할 것 댓글[0]
오늘의 명상 (2009-04-02 오전 11:58:41) http://blog.somang.net/mochung/47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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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들이 추구해야 할 것

 

(고린도전서 10: 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바울은 우상 제물(offered in sacrifice share, Good News Bible, 희생제물)을 먹는 문제에 대하여 설명하던 중, 성도들이 이 세상을 살아갈 때 꼭 기억해야 할 대원칙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원칙은 모든 사람에게 해당합니다.

첫째로,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해야 합니다(고전10:24).

바울은 시장에서 구입한 고기는 먹되, 누군가가 그것이 제물이라는 것을 알려주거든 알려준 이와 양심을 위하여 먹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남의 유익을 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결국 이웃을 향한 사랑의 실천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웃을 향한 사랑의 실천을 위하여 자신의 삶을 절제하고 양보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연약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기 때문입니다.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주님께서는 영원히 죄 가운데에서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들을 위하여 하늘의 높고 높은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것도 부족하여 당신의 존귀한 육신을 십자가에서 찢으시고 고초 당하시며 한 방울의 물과 피도 남김없이 모두 쏟아주셨습니다.


우리를 향한 주님의 사랑이 이러할진대 어찌 우리가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연약한 형제를 위하여 일신상의 즐거움을 절제하지 못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연약한 형제의 유익을 먼저 구하며 살아야 합니다.

둘째로,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야 합니다(고전10:31).

성도들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이웃의 유익을 구하는 것도 결국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그러면 어떤 삶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삶일까요? 하나님을 먼저 생각하고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것이며, 하나님의 영광을 훼손하는 행동은 하지 않도록 삼가 조심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이제까지 어떤 인생을 살아왔습니까?

우리들의 삶의 목표는 무엇이었습니까?

과연 우리들은 이웃을 구원하기 위해 우리의 자유를 절제하고

나아가서 나의 시간, 소유를 포기할 각오가 되어있습니까?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하여

이웃의 유익을 구하는 성도의 삶이 되기를 간절히 소원하며 바랍니다.

 

저와 저의 가족들을 구원하신 주님! 철저한 성도의 삶을 실천하지 못하는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매사에 나의 유익보다는 이웃의 유익을 먼저 생각하고 구하게 하시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남은 삶이 되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아래 url click 하시면 베다니찬양대의 은혜로운 찬양(어린 양을 보라)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http://www.somang.net/infobada/player/player01.asp?idx=9009:9411&idxc=C0000000015&langTyp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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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좋은 알곡으로 댓글[0]
오늘의 명상 (2009-04-01 오후 12:23:06) http://blog.somang.net/mochung/4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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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좋은 알곡으로

 

(마태복음 13: 30)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 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어떤 책에서 본 글입니다.

“완벽한 교회를 찾지 마라.

그런 교회는 찾지도 못할 뿐 아니라 만일 찾는다 해도 그 교회가 너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현재 저는 교구에 속한 기관에 근무하기 때문에 여러 교회에 가서 설교하고 성찬례를 집전할 기회가 많습니다. 그때마다 교회가 주는 다양한 모습들에 때로는 기쁘기도 하고 때로는 슬퍼지기도 합니다.

 

어떤 곳은 교인들과 목회자가 하나가 되어 활기차고 기쁨이 넘치는 반면, 어떤 곳은 성직자와 교인 간에 또는 교인과 교인 간에 갈등하는 모습들이 은연 중에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갈등 중에 있는 교회는 성장하거나 성숙하지도 못하고 심하면 와해될 위기 가운데 있어서, 교회가 왜 감사와 기쁨이 넘치지 못하고 이런 갈등과 고민에 시달려야 하는지 안타깝게 생각됩니다.

그러나 본문을 보면 교회의 이러한 어두운 모습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교회에는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고 구원의 기쁨에 감사하고 헌신·봉사하는 신자들만 있는 곳이 아니라, 외형적으로는 신자이지만 내면적으로는 교회를 훼방하는 가라지들이 함께 공존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가라지들은 세상 끝날까지 그 처리가 유보되었습니다. 가라지를 뽑다가 알곡이 상할까 하나님께서 염려하시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진짜 가라지와 일시적으로 가라지처럼 보이는 가라지 아닌 가라지도 있어서일 것입니다.

 

분명 알곡 신자인데 가라지의 영향으로 자라지 못하고 때로는 가라지와 함께 엮여있어서 가라지를 제거하다 보면 이들도 함께 제거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지요(29).

올바른 신앙인들은 교회의 불완전한 모습에 낙심하고 이 교회 저 교회 순례하는 이들이 아니고, 지금 있는 교회에서 가라지들을 참고 견디면서 도리어 그 힘으로 성장하는 사람들입니다.

 

교회는 가라지의 부정적인 요소가

완전히 사라지기를 바라기보다는

그 부정적 요소 때문에 오히려

긍정적인 요소들이 더 강해지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이 지상의 교회로서는 최선의 방책이 됩니다.

만일 부정적인 것들을 제거하는 데만 주력한다면 결국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만을 주게 될지도 모릅니다. 가라지는 하나님의 심판의 날에 맡깁시다.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가라지를 참고 견디며 제거하시지 않으시는 주님의 따뜻한 사랑을 다시 확인하게 하시오니 감사합니다. 오히려 더 좋은 알곡으로 거듭나는 가라지가 될 수 있도록 주님의 긍휼하심과 은혜를 풍성하게 누리는 우리 교회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아래 url click 하시면 베다니찬양대의 은혜로운 찬양(어린 양을 보라)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http://www.somang.net/infobada/player/player01.asp?idx=9009:9411&idxc=C0000000015&langTyp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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