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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나와 당신을 위하여 베푸신 사랑을 쉼 없이 감사하며 올 바른 믿음과 삶을 통하여 이 기쁜 소식을 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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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자씨 처럼 댓글[0]
오늘의 명상 (2009-04-04 오전 9:58:30) http://blog.somang.net/mochung/47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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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자씨 처럼

 

(마태복음 13: 3132)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하나님나라가 겨자씨 같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예수님 당시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극소수였고 그나마도 힘없는 서민(농부, 어부, 빈민 등)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세상에서 아무런 힘이나 자랑거리가 없는 제자들의 무리를 염두에 둔 것입니다.

 

‘비록 너희가 지금은 작고 연약하지만 결국 너희들을 통해 복음이 전세계에 퍼지고 하나님의 나라가 크게 발전하고 커지리라’는 위로의 말씀이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에게 이 말씀은 어떤 의미로 해석되어야 할까요?

신앙은 바로 씨앗과 같습니다. 씨앗은 수분햇빛 그리고 온도가 맞으면 그 생명의 활동을 시작합니다. 우리의 신앙도 이처럼 세 가지 조건이 선행될 때 결실을 위한 변화가 시작됩니다.


첫째, 빛의 조명 즉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이해와 확신이 있을 때입니다.

성경의 말씀이 경전의 말씀이 아니라 나를 위한 편지의 말씀으로 이해되고 다가올 때, 우리는 새 힘을 얻습니다. 인생을 보는 새로운 안목을 가지게 됩니다.

 

둘째, 성령의 뜨거운 열기가 있을 때입니다.

말씀을 통해 얻은 새로운 인생관은 성령의 체험을 통해서 그 실천력을 가지게 됩니다. 실천의 용기가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 자기를 썩히는 것입니다.

씨앗은 자기 안에 있는 에너지를 모두 발산해서 새싹을 틔웁니다.

이 에너지는 씨앗이 씨앗으로서의 자신의 생명을 포기할 때 나타납니다. 생명의 성장을 위해서 씨앗은 기꺼이 씨앗의 형태를 포기해야 합니다. 수분은 바로 이 역할을 하게 합니다.

 

자기포기가 아니고서는 결실은 불가능합니다.

 

감자를 캘 때 보면 어떤 줄기에는 많은 감자가 달려있는데 어떤 줄기에는 감자들이 별로 없고 있어도 매우 부실합니다. 그런 줄기를 자세히 살펴보면 예외 없이 씨 감자가 남아있습니다. 썩어 없어져야 할 씨 감자가 여전히 살아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죽여서 세상사람들을 구원하셨습니다.

죽으면 살리라는 기독교의 이 명료한 구호는

신자들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가장 단순하게

그러나 명쾌하게 드러내주는 말씀입니다.

 

오늘 나는 어떻게 죽을 것입니까?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말씀의 빛 아래서 새 힘을 얻고, 성령의 체험을 통해 실천의 용기를 얻어, 스스로를 썩히는 자기포기의 믿음으로 주님 자녀로서의 올바른 남은 삶을 살아 가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아래 url click 하시면 베다니찬양대의 은혜로운 찬양(어린 양을 보라)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http://www.somang.net/infobada/player/player01.asp?idx=9009:9411&idxc=C0000000015&langTyp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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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더 중요합니까? 댓글[0]
오늘의 명상 (2009-04-03 오전 11:14:05) http://blog.somang.net/mochung/47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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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중요합니까?

 

(마태복음 15: 3)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냐.

 

인류 교회역사에 있어서 중세 1,000년을 흔히 ‘암흑기’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중세는 교회가 세상을 지배하던 때였습니다. 교회의 수장이던 교황이 국가의 수장인 황제를 마음대로 폐위시키기도 하고 즉위시킬 수도 있을 만큼, 교회에 절대적인 권력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섬기는 교회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었는데, 왜 그런 시대를 암흑기라고 부를까요?

중세가 암흑기로 전락하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전통이나 제도가 더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이 중요한 것으로 인식되지 못하고, 중요하지 않는 것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서, 중요한 것이 중요하지 않는 것에 의해 비판 받고 정죄되었던 것입니다.


중세 때에 신학자들이 이런 토론을 했다고 합니다.

“뾰족한 바늘 끝에 과연 천사가 몇 명이나 올라갈 수 있을까?

“성찬식을 마치고 모아둔 포도주에 쥐가 빠졌다. 그러면 포도주가 더러워진 것인가?

쥐가 거룩해진 것인가?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해야 할 신학자들이 이런 것이나 연구하고 있으니, 중세교회가 과연 바른 길을 갈 수 있었겠습니까? 정작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사소하고 별 것 아닌 것에 에너지를 소비하고 있으니, 타락하고 망해갈 수밖에 없습니다.


제도와 전통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소중하게 여겼던 유대교는 결국 팔레스타인 땅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제도와 전통을 벗어나

정작 중요한 하나님의 말씀을 앞세웠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세계에 널리 퍼지게 되었습니다.

 

제도와 전통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중요하게 생각했던 중세교회

“오직 말씀으로만!을 부르짖은 종교개혁에 의해 비판 받았습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의 신앙도 잘 들여다보면,

열정은 있는데 기쁨이 없습니다.

성실은 있는데 자유가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바쁘고 분주하다고 다 유의미한 것은 아닙니다.

바른 방향성을 토대로 하는 열정만이 의미가 있습니다.


결코 제도와 전통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앞세워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앞세울 때 삶이 얼마나 자유롭고 행복한지 모릅니다.

 

사랑의 주님, 오랜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온전한 기쁨이 없고, 또 온전한 자유가 없습니다. 저와 저의 가족들에게 신앙 생활의 우선순위를 확실히 알게 하셔서 말씀이 주시는 자유, 말씀이 주시는 기쁨과 행복을 풍성히 누리며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아래 url click 하시면 베다니찬양대의 은혜로운 찬양(어린 양을 보라)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http://www.somang.net/infobada/player/player01.asp?idx=9009:9411&idxc=C0000000015&langTyp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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