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잔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드러와 박혀
하늘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이육사
광야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디 닭 우는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하진 못하였으리라
끊임앖는 광음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심훈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
이 목숨 끊어지기 전에 와 주기만 할 양이면
나는 밤하늘의 나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 받아 울리오리다 .
두개골이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그날이 와서, 오오 그날이 와서
육조 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 뒹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듯 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들쳐 메고는
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거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1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