늪
오 태 환
다슬기 다슬다슬 물풀을 갉고 난 뒤
졎몽우리 생겨 젖앓이 하듯 하얀 연 몽우리
두근두근 돋고 난 뒤
소금쟁이 한쌍 가갸거겨 가갸거겨
순 草書로 물낯을 쓰고 난 뒤
아침날빛도 따라서 반짝반짝 물낯을 쓰고 난 뒤
검정물방개 딋다리를 저어 화살촉같이 쏘고 난 뒤
그 옆에 짚오리 같은 게아재비가
아재비아재비 하며 부들 틈새에 서리고 난 뒤
물장군도 물자라도 지네들끼리
물비린내 자글자글 산란하고 난 뒤
버들치도 올챙이도 요리조리 아가미
발딱이며 해찰하고 난 뒤
명주실잠자리 대롱대롱 교미하고 난 뒤
해무리 환하게 걸고 해무리처럼 교미하고 난 뒤
기슭어귀 물달개비 물빛 꽃잎들이
떼로 찌글어지고 난 뒤
螺銓(나전)같은 풀이슬 한 방울 퐁당
떨어져 맨하늘이 부르르르 소름끼치고 난 뒤
민숭달팽이 함초롬히 털며 긴 돌그늘, 얼핏
아주 쬐끄만, 고요가 어슴푸레 눈을 켜고 난 뒤
- 이제 저 늪도 꽁꽁 얼어 고요만 남았겠지만
그러나 모든 아름다운 생명에게 끝나지 않는 '뒤'가
있겟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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