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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한라산에 올라 댓글[0]
묵상 (2006-10-19 오후 3:47:23) http://blog.somang.net/jookwanlee/2670

   가을 한라산에 올라



초가을 자연의 잔잔한 싱그러움과 기묘한 색조에 이끌리며,


한라산 마루, 1,700미터 고지, “윗세오름”에 오르니,


처처(處處)에 오색의 꽃과 나무들이 어울리고, 형형색색의 돌과 바위들이 풍취(風趣)를 더한다.




향기로운 꽃내음이 펴져나고, 더덕뿌리의 짙은 향기가 흩뿌리는데,


아득히 짙푸른 바다, 탁 트인 시야는 이 동산을 떠받치고 있는 듯하니,


이는 하나님이 손수 창조하신 최고의 정원이라 하겠다.




세상 제일의 이정원은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야 이루어짐을 보면서,


나의 어두운 눈 트여, 이제껏 욕심과 오만함으로 삶을 이루어 가고자 했음이 후회스러워지고,


전지전능하시고 사랑이 한없으신 하나님을 영혼 깊은데서 찬양한다.




이제는 내 삶을 말씀과 성령님의 인도로 이루어갈 것을 다짐하면서,


앞으로 나의 삶이 이 아름다운 정원에서처럼 주님 베푸시는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기를 기도드린다.


주여! 은혜로 이끄시어 제 삶이 이 정원처럼 주님 앞에 아름답게 하소서!


2006.10.6. 이주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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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희에 부쳐 댓글[0]
묵상 (2006-10-04 오전 9:29:23) http://blog.somang.net/jookwanlee/2662

환희에 부쳐 [Ode "An die Freude"]



1. 환희의 송가


누구나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의 대표작이자 전무후무의 명곡으로 꼽히는 교향곡 9번 ‘합창(Chorus)'을 들어 보셨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특히 년말에는 한해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한해를 다짐하며 숭고한 메시지의 이곡을 자주 듣게 됩니다.


그 4악장에는 독일의 시인 쉴러(Friedrich von Schiller)의 詩 “환희에 부쳐”중의 일부를 가사로 하여 인류의 화합과 사랑 등을 합창으로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 쉴러의 시에는 다음의 구절이 있어 하나님(창조주)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백만의 사람들이여, 너희 껴안으라!

온 세상에 (창조주가) 보내는 입맞춤을 받으라!

형제여! 별 반짝이는 저 높은 곳에

사랑스런 아버지 꼭 살아계시니

백만의 사람들아, 너희 무릎 꿇었는가?

세상이여, 너 창조주 계심을 깨달았는가?

별 반짝이는 저 높은 곳의 그를 알라!

저 높은 곳에 창조주 계시리니


Seid umschlungen, Millionen,

Diesen Kuss der ganzen Welt!

Brueder! ueber dem Sternenzeit

muss ein lieber Vater wohnen.

Ihr stuerzt nieder. Millionen?

Ahnest du den Schoefer, Welt?

Such ihn ueber'm Sterrnenzeit!

Uber Sternen muss er wohnen.


창조주 하나님의 實在와 사랑을 노래하며 기뻐하는 이 시를 감상하면서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인으로서 창조주이신 주님이 주시는 기쁨(Joy)이 우리 삶에  얼마나 크고 중요한지를 새겨봅니다.



2.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너에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창세기 12:2) 우리는 복의 근원이 될 수 있습니다. 믿음 안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복락(福樂)을 누리고 또 그 복음(Gospel)의 전달 통로가 되어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이웃을 사랑하는 참 기쁨을 누립니다.


C S Lewis 는 “예수 믿는 사람에게 있어서 기쁨이란 대문자로 표현, 강조할 수 있는 삶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만큼 예수 믿는 사람에게 기쁨은 중요한 요소입니다.


진정으로 신뢰 할만한 기독교,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크리스쳔 에게는 그 중심에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기쁨을 빼 놓으면 기독교의 진수는 없어지고 매력도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르는 기쁨을 크리스쳔은 가지고 있으며, 그래서 당당해집니다.(옥한음 목사)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하박국 3:17-18)


기쁨과 즐거움을 잃고 지낸다면 그 원인은 환경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에게서 멀어진 것이 원인입니다. 환경이 나아지면 신앙생활을 하겠다고 하는데 이것은 진리가 아닙니다. 믿음생활을 통하여 환경을 바꾸어야 합니다. 성도의 즐거움은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품안에 있는가? 하나님이 우리의 힘이 되는가? 이것이 중요합니다.(이병각 목사)



3. 구원의 감격


성경이 말하는 이 기쁨의 비결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구원의 감격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죄인인 우리가 예수님의 구속(救贖)하심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감격이지요.


안타까운 것은 구원의 감격을 변함없이 유지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교회를 오래 다닌 사람이 더하다고 합니다.


구원의 감격은 은혜를 받지 않으면 식어 버립니다. 하나님 말씀, 복음에 무지하면 은혜의 감격은 없다고 하지요. 또 구원의 감격은 우리 스스로 범죄 하면 사라집니다.


하여 구원의 감격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깊이 묵상하는 습관을 가져야 하고, 또 이를 실천 하여 나가야할 것입니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하박국 3:19) 우리는 세상에 살지만 영혼의 기쁨을 누리는 천국시민이 됩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 에게서로다.”(시121:1-2)




4. 생활 속에 넘쳐나는 기쁨


예수님이 세상을 떠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함이라.” (요한복음 15:11)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16:22)


이러한 주님이 주시는 기쁨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당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집니다. 크리스쳔들의 가장 큰 복음증거는 그 생활속에 넘쳐나는 기쁨이라고 합니다. (조용기 목사)


우리에게 기쁨을 주시는  예수님은 변치 않으시고 기쁨을 채우시는 성령님의 은혜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하여 사도바울은 “나의 형제들아 주안에서 기뻐하라‘”(빌립보서 3:1)고 하셨습니다.


제가 이제껏  공부하고 체험하여 온 바에 의하면 이러한 참 기쁨은 예수님을 떠나서는 어디서도 발견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갈한 영혼을 기뻐하게 하실 수가 있으십니다.


칼빈(John Calvin)은 “신앙이 우리에게 주는 내적 기쁨은 모든 두려움과 공포와 슬픔과 염려를 극복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짐 벋고 보니 슬픔 많은 이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 받고 주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주안에 있는 우리에게는  이 세상 생활현장 그 어디나 하늘나라, 참기쁨과 즐거움의 세계가 될 수 있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경지인지요!



시인 쉴러의 창조주 하나님 찬양은 너무도 아름답습니다.


2006. 10. 4.  이주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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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연인에게 댓글[0]
묵상 (2006-09-25 오후 8:08:46) http://blog.somang.net/jookwanlee/2657

 

삶의 의미를 찾아서



사랑하는 그대여 !  오래 전 읽은 책에서 메노-퍼스(menopause)는 여성 전유물이 아니라 오히려 남성들에게까지도 존재한다는 글을 보고  놀라 비로소 갱년기 혹은 폐경기 현상에 관심을 가진 적이 있습니다.


물론 남성은 여성에 비해 급격하지 않은 완만한 변화를 경험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호르몬 감소로 인한 무기력 증을 경험한다는 면에서는 동일할 것입니다. 어떤 의학적 표현으로는

남성 중지(andropause)라고 쓰여 있어서 나도 이제 인생 정리기에 들어 가는가하고 괜히

울적해 진 적이 있습니다. 물론 여성들이 경험하는 갱년기 증상과 비교할 수는 없겠지요.

사람에 따라서는 이런 증후군이 무려 10년 까지도 지속될 수 있다는 기록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당신도 그렇게 오래 고생하라는 말이 아니라 그럴 수 도 있다고 하니 느긋한 마음으로 이런 인생의 변화를 수용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아 드리는 말씀입니다. 때로는 병까지도 친구를 만들어 구슬려 보낼 필요가 있다는데 하물며 자연의 현상을 말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갱년기 혹은 폐경기는 일반적으로 중년 후기 현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생의 전반기를 끝내고 후반기에 들어서면서 겪게 되는 신체적이고 심리적인 이 현상을 우리가 잘못 해석하면 마치 이제는 내 인생이 그 의미와 사용가치를 잃어가는 현상이라고 그릇 진단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또 어떤 의학자들은 갱년기 이후야 말로 우리를 신경 쓰이게 하던 신체적-심리적 메카니즘 (mechanism) 에서 자유하게 되어 오히려 인생을 즐길 수 있는 계절이라고 말하기도 하는군요. 만일 우리가 덧없는 욕심에서 좀 더 자유롭고 보다 적극적으로 우리 주님의 뜻을 찾아 섬김의 삶을 살아간다면 이제부터가 가장 보람 있는 인생 추수의 계절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오히려 가져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제 우리에게도 적극적인 자기 치유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되는군요. 물론 가장 중요한 치유의 자리는 우리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 앞에 머무는 시간이겠지요.


다시 찾아 온 가을 냄새로 어쩐지 세월의 허망함을 느끼는 당신을 바라보며 가을 밤 갑자기 시인이 되어 시 한 구절을 당신에게 선물하고 싶어집니다. 어쩌면 이 짧은 편지가 유사한 가을정서를 갖는 이웃들에게도 위로이기를 기도하면서 말입니다.



가을의 연인아!


낙엽이 떨어지고 그 잎사귀는 색조가 변하는 계절


우리 늙어감의 상징인 듯 하여


슬픔이 안으로 침잠하여 울고픈 시간


허나 여전히 찬란한 낙엽의 화려함은


이 계절에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천연의 언약이 아닌가!




나의 가을 길  동반자여 !


무시로 알 수없이 마음이 허탈하고 갈 바를 모르는 듯한 독백으로


그대의 동행자를 가슴앓이 하게는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본디 인생이 그런 것이려니 웃어 버리고


따뜻한 포옹으로 희망의 주님을 바라보고 그만 가슴을 녹입시다.


우리에게는 주님이 주시는 소망과 평강과 기쁨이 있지 않은가요 !



우리는 주어진 여건을 넘어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 로다. “ 는 고린도후서 6:10의 말씀이 우리를 향함을 알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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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리부는 사나이 댓글[0]
묵상 (2006-09-20 오후 12:21:25) http://blog.somang.net/jookwanlee/2648

피리 부는 사나이



비틀즈(Beatles)의 ‘Let it be'의 歌辭가 노자(老子)의 무위자연사상(無爲自然思想)의 지혜를 상당히 대변하고 있다면, 송창식이 부른 ’피리 부는 사나이‘는 우리 크리스쳔의 자세, 이 세상 지나는 순례자의 삶의 모습으로 昇華 시켜 생각하여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 순례자의 삶


나는 피리 부는 사나이

바람 따라 도는 떠돌이

멋진 피리하나 불면서

언제나 웃고 다닌다.


갈길 멀어 우는 철부지 소년아!

나의 피리 소리 들으려므나.

삘릴리 삘릴리이


나는 피리 부는 사나이

바람 따라 도는 떠돌이

멋진 피리하나 불면서

언제나 웃는 멋쟁이.


모진 비바람이 불어도

거센 눈보라가 닥쳐도

멋진 피리하나 불면서

언제나 웃고 다닌다.


우리는 하나님말씀을 늘 묵상하고 전파하는 사람들

온 세상을 무대로 복음을 전하며 다닌다.

참 생명 이신 말씀만을 붙들고 전파하며

언제나 기쁘게 이 세상 나그네 길을 지나는 순례자들이다.


삶의 소망을 찾지 못하고  이리저리 헤메는 철부지 인생들이여!

우리의 복음의 나팔소리를 들어 보려므나.

믿음으로 사는 자는 하늘 나라 가겠네

무슨 일을 당하든지 만사형통 하리라.


우리는 하나님말씀을 늘 묵상하고 전파하는 사람들

온 세상을 무대로 복음을 전하며 다닌다.

참 생명 이신 말씀만을 붙들고 전파하며

언제나 기쁘게 달 가듯 나그네길 지나는 예수님 제자들이다.


인생의 거친 들에서 하룻밤 머무는데

쓰라린 고난과 역경이 닥쳐오면

천국의 소망 더 밝아지고,

기쁜 생명의 말씀 붙들고 언제나 즐겁게 웃으며 살아간다.




2. 고난은 하나님의 축복


대부분 고난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답게 반응할 때에 우리를 또 다른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할 수 있도록 인도합니다.(이동원 목사)


출애굽기 15장에 이스라엘 백성은 마라(Marah)의 쓴물을 경험하고 나서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그 쓴물이 변하여 단물이 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거기 여호와께서 지시하신 나뭇가지하나를  모세가 마라의 쓴물에 던졌더니 쓴물이 변하여 단물이 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또 우리 인생에서 쓴물의 그 쓰디씀을 먼저 체험하지 못한다면 단물의 그 기막힌 맛을 제대로 알 수는 없을 것입니다.


고통 저 건너편에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축복이 있습니다. 출애굽기 15장27절에 “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 물샘 열둘과 종려 칠십주가 있는지라 거기서 그들이 그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이 고난의 땅 마라를 지나 조금 더 가서(약11킬로미터) 엘림에 이르니 이제 풍성하고 황홀한 오아시스에 이릅니다.


그런데 왜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라에서 고통스럽고 원망에 가득 차 있었는가하면 단지 엘림이 보이지 아니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엘림은 보이지 아니하여도 엘림은 존재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엘림을 준비하셨으므로, 우리는 고난의 세월 속에서도 앞길이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의 엘림의 비젼을 붙잡고 믿음으로 나아가 끝내 하나님의 복을 받습니다.




3. 苦難의 언덕을 넘어


‘고난의 언덕’은 성도에게 특별한 자기부정이 요구되는 상황으로 이를 통하여 순례자가 은혜를 가지고 그 길을 가고 있는지, 아니면 은혜 없이 가는지의 여부가 드러납니다.


빌립보서 1장29절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고 했는데, 진정으로 은혜가 있다면 고난을 피하지 아니하고 택하여야 한다는 뜻이다. 믿음의 길에서 쉽고 편안한 것만 추구하면서 고난을 피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며 자신에게는 은혜가 없다는 증거도 됩니다.


고난의 언덕과 고난의 길은 힘들고 어려운길 이기 때문에 자신의 힘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만을 붙잡도록 만들며, 그리하여 영적인 것을 위하여 이 땅의 임시적인 이익을 희생하도록 만들며, 영적인 유익을 위해서 육신의 안락과 편안함을 버릴 수 있도록 훈련합니다(고후4;17). 더욱이 고난의 언덕과 길은 우리의 죄 된 습관을 고치게 하는 중요한 수단이 됩니다. “고난을 당하기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시 119:67)”


크리스쳔은 앞으로 당할 고난에 대하여 즐거운 심령을 가지고 미리 걱정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고난을 두려워하고 걱정할 것이 아니라 고난과 어려움을 이길 수 있도록 기도하고 주께서 힘주실 것을 믿어야합니다. 주께서 고난을 견딜 수 있도록 은혜주실 것을 믿고 감사하면서 노래를 불러야합니다. 히브리서 4장16절에는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Help in time of need)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with confidence) 나아갈 것 이니라”고 쓰여 있으니 고난을 미리 걱정하거나 두려워해서는 안 되며 고난을 당할 때 의지할 주가 주실 은혜를 생각하고 감사하면 됩니다.


고난과 어려움의 정도가 더욱 심해지는 경우가 있는데 욥에게 찾아왔던 고난이 그러했습니다. 이렇게 성도에게 고난이 길어지고 세지는 데에는 하나님이 사랑하는 성도들을 향하여 목표하시는 바가 있다는 것이지요. 고난을 통하여 성도들의 믿음의 근육을 강화시키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와를 더욱 앙망하도록 만드시는데, 이사야 40: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의 말씀같이 믿음의 근육이 튼튼한 성도를 만드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고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백성을 위하여 위로하시고 힘주시는 은혜, 곧 고난을 이길 수 있도록 새롭게 하시고 안식을 주시는 여러 가지 방편들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주일은 바로 그러한 은혜 중에 하나입니다. 사도 요한은 핍박과 고난 속에 있었는데 주일날에 복음의 메시지와 영원한 것에 대한 기억을 새롭게 할 때 하늘로부터 계시를 받았습니다(계1:10). 또 찬양과 감사는 두려움과 의심을 물리치며 고난 중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발견할 수 있게도 합니다. 매를 맞고 빌립보 감옥에 갇힌 바울은 찬양을 할 때 큰 지진이 나고 매인 것이 풀어지는 것을 경험하였습니다(사도행전16:25, 26).


사도 바울은 고난이 클수록 하나님의 위로 또한 큰 것임을 고린도 후서 1장5절에서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의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 도다.”라고 말하고, 우리의 고난이 점점 더 세지더라도 우리가 감당할 수없을 정도의 고난은 아니라고 말하며, 만일 성도들이 견딜 수 없는 고난이라면 또한 피할 길도 주시는 하나님이시다(고전10:13) 라고 하였습니다.


죤번연(John Bunyan)은 그의 천로역정(The Pilgrim's Progress)에서 말하기를 “고난의 언덕은 천성으로 가는 길 가운데 있는데 이는 하나님의 성도라면 반드시 지나가야한다. 수많은 영적 유익을 주는 고난을 피하지 말고 찬송하면서 즐거움으로 걸어 가야한다. 고난이 더욱 세지더라도 이상한일로 여기지 말고 피곤해하거나 낙망하지 말고 끝까지 믿음으로 인내하면, 결국 하나님의 위로하심과 그의 결말을 맛보게 된다.” 라고 하였습니다.


2006.9.20. 이주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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