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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구하 (110815)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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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 하나님 댓글[0]
묵상 (2007-07-03 오후 5:35:05) http://blog.somang.net/jookwanlee/2853

산과 하나님 - 그 진실함과 신뢰성



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도 산을 사랑하지만 주일이면 교회에 나가고,  사역 친교 등을 하다 보니 명산을 찾을 기회는 적어 졌습니다.


그러나 산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들은 이미 하나님의 말씀과 그 다스리시는 섭리에 다 녹아 들어와 있음을 깨닫고 있으며, 주일이면 근처 호수공원, 낮은 봉우리인 고봉산등으로 산책을 하며 자연경관도 감상하고 운동과 사색의 즐거움을 누리니, 내게는 부족함이 없다할 것입니다.



1. 산의 가르침


우리는 산의

인내와 부동심(不動心)을

배워야 한다.


산은

언제나 말이 없으며,

산은

인간의 한계를 깨닫게 한다.


산 앞에선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 드러나 있다.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나 구분 없이



산에 올라

정상에 서면

세상 모든 것이 작게 보여

스스로 속세의 욕심이 사라진다.

사람이 존재한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감격하게 된다.


우리는 산 같은 사람을 소망한다.

누구나 오를 수 있는,

누구나 배울 수 있는 산 같은 사람을! 



저는 이렇게 산을 바라보고 배우며 경외하는 마음으로부터 세상의 주관자이시며 산까지도 창조하신 하나님을 알고 믿고자 하는 영적인 단초를 열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산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여러 가지 가르침들 중에서 부동심(不動心) 나아가 “신뢰와 진실함”이 가장 두드러진 교훈이 될 것 같습니다. 이는 또한 주요한 하나님의 가르침 이라고 생각되는데, 하나님은 진실하시고 우리가 끝까지 신뢰할 수 있는 유일한 분이기 때문 입니다.


2. 하나님과 인간관계의 신뢰성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assurance)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conviction)니 선진들(the men of old)이 이로써 증거(approval, commendment)를 얻느니라 (히브리서11:1-2)”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 신뢰를 바탕으로, 우리들이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이 세상에서 바라는 것들을 이루어가며 지금 눈앞에는 보이지 않는 영원한 진리의 세계, 천국에 들어감을 확신합니다.


이세상의 현실생활에서, 산 같은 하나님의 진실하심과 신뢰성을 바탕으로 하여,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인간관계에서의 신뢰”에 대하여 살펴봅니다.



2-1. 이웃에 대한 신뢰


우리들의 삶에서 이웃들과의 인간관계에도 이러한 산 같은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진실함에 터를 둘 때에만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인간관계에서 교제의 상대방이 무슨 느낌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친밀한 교제를 누리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상대방은 어떤 상태에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고 무엇이 잘못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어떤 제3자가 말하기를 그 상대방이 여러분들의 행동 등을 싫어하고 여러분들에 대하여 기분이 상하여 있다는 등의 말을 간접적으로 들을 때가 있습니다. 이때의 여러분들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불쾌한기분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경험은 우리에게 실망과 상처를 줄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남을 신뢰할 수 있는 능력 자체를, 하나님의 은혜로 가꾸어온 우리들의 좋은 인간관계들을 유지 발전하여 가는 원동력을 훼손하게 됩니다. 이런 경험이 누적되면 우리는 우리의 인간관계 형성 자체를 포기하게 됩니다.  많은 이들이 더 이상의 상처를 막기 위하여 인간관계를 맺지 않는 이러한 마비된 안전유지책(the numb safety)을 택하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들이 발생하는 핵심적인 이유는 하나님의 성품인 ‘진실, 신뢰’라는 인간관계의 가장 주요한 요소가 붕괴되었기 때문입니다. 상호간의 진실성이 결여되면 인간관계의 기본구조 자체가 와해됩니다. 관계성은 해체되고 사랑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유익함도 줄어들고 맙니다. 이 문제를 분석하여 살펴 보고자합니다.



진실성의 결여로 인한 첫 번째 문제는 거짓된 인간관계(false relationship)가 되는 것입니다. 당신이 신뢰하고 관계하는 사람이 그 전체가 진실한 인격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당신에게는 밝혀지지 아니한 그들의 다른 측면들 즉 다른 감정들, 다른 생각들, 당신에게는 밝히지 아니한 다른 동기들이 그들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당신이 알지 못하는 또 하나의 사람이 있는 것과 같습니다. 당신은 그들과 잘 연계되어 있다고 생각하나 사실은 그러하지 못합니다. 성경에 이에 대하여 사용한 말이 ‘위선[hypocrite]'으로 예수님이 강한 어조로 이를 경계하여 말씀하시곤 하였습니다. 그 뜻은 “당신이 보는 것은 허상이며 실제로 당신이 얻는 것과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알지 못하는 전혀 다른 인격체가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진실성의 결여로 인한 두 번째 문제를 생각하여 봅시다. 상호관계에 충실한 것은 친밀함의 결과로부터 나온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이는 누군가를 진실로 알고 경험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우리가 정직하지 못하다면 다만 표면상의 관계만이 있을 뿐이며 친밀한 관계는 발생하지 아니합니다. 상호간에 은혜  또는 수용함(acceptance)이 있을지라도 상대방의 참 마음을 얻지 못한다면, 그 은혜와 수용함은 껍데기에 불과하며 결국은 실종 되고 말 것이며 내적인 친밀감은 생기지 아니합니다.


이러한 상태에서는 인간관계의 핵심적인 목표들의 추구는 실종된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마음과 영혼 깊은 곳에서 신실하지 못하다면 친밀한 관계는 이루어지지 아니하며, 결과적으로 우리들이 서로 나누고자하는 유익한  것들은 실종되고 치유되어야할 우리들의 고통과 약함 등은 다시 부각되어 나타나지 아니합니다. 야고보서 5장16절에는“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들의 정직하고 신실한 태도는 꼭 필요한 상호간의 친밀함을 가져옵니다.



진실성의 결여로 인한 세 번째 문제를 생각하여 봅시다. 우리들이 서로 해줄 수 있는 최상의 것은 서로 필요할 때 신뢰할 수 있는 도움을 주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우리는 진실한 말을 들으면서 성장하여 갑니다. 시편27장6절에는 “친구의 책망은 아파도 진심(faithful)에서 나오지만, 원수의 입맞춤은 거짓(deceitful)에서 나온다.”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배우자나 가족, 진실한 벗은 때때로 듣기 거북하여 하기 어려운 조언도 하며, 이때에 우리는 성장하고 친밀하여져 가며, 문제는 풀리고 상처는 치유됩니다. 이 방법이 하나님이 우리와 친밀한 관계를 다시 이루면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방법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일에 직접 대면하시고 우리에게 말씀을 주시며 또 회개하는 우리를 용서하시는데, 그렇게 하면서 우리와의 친밀함도 깊어집니다.

바울은 에베소서 4장 25절에서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됨이라 (for we are all members of one body)”라고 하였는데 여기에서 바울은 우리들이 서로 진실함으로 대하여야 하는  한 몸인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서로 나누일 수 없는 한 몸의 지체들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은혜와 진리(진실함)가 충만하신 분이라고 사도 요한은 말하였습니다. 진실함이 상실되면 은혜는 더 이상 은혜롭지 못하며 다만 달콤한(syrupy) 감정이입(sentimentality) 이거나 방종(license)에 불과합니다. 참된 은혜는 진실하고 숨김이 없으며 위선이 없음을 전제로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어려운 문제들에 대하여 서로 정직할 때에 우리는 성장합니다. 우리들은 서로 나누는 사랑으로부터 유익을 얻으며 그 과정을 통하여 더 나은 사람들이 되어갑니다. 결과적으로 우리들의 관계는 성장하며 더 건강해지고 생명력이 넘치게 됩니다.


하나님은 빛 가운데 계시며 그의 안에는 어두움이 일체 없습니다. 그는 항상 신실하시며 아무것도 어두움 안에 감추신 것이 없습니다. 이는 그분의 사랑이 순수한 것임을 말합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모든 인간관계에서의 목표가 되는 것입니다. 신실하고 순수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이 가장 성취도 높은 인간관계를 가져오게 됩니다. 이를 이루기 위하여서 우리도 신실하고 믿을 수 있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때때로 어렵고 무섭고 위험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결국 이 길만이 참사랑을 향한 지름길입니다.


우리들은 모두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닮도록 노력하여 가야하며 이때에 우리는 은혜와 진리 안에서 서로 사랑 하게 됩니다.

(“Secrets of Great Relationship; The Power of Truth” by Henry Cloud 중에서)



2-2. 공동체 안에서의 상호신뢰


찰스 핸디(Charles Handy)는 아일랜드가 낳은 세계적인 경제철학자 중 한 사람입니다. 그는 자신의 베스트셀러 「헝그리 정신(Hungry Spirit)」에서 현대 상황에 적응하기 위해 공동체 구조에 대해서 고찰했습니다. 목사의 아들인 핸디는 개인을 공동체적인 이슈들과 잘 연결해서 말하면서, 기업과 모든 단체는 공동체이며 거기에 속해 있는 모든 사람은 시민과 같이 생각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핸디는 기본적으로 영리단체에 대해서 말하고 있지만 이는 오늘날 교회의 다양한 사역자들에게도  잘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요즘의 많은 기업들처럼 교회나 선교단체들도 업무능력이 뛰어난 능력 있는 사람들을 요직에 앉히고, 또 필요할 때에는 특별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전문가들이 배치되기도 함으로, 신뢰의 필요성은 과거보다 더욱 증가되고 있습니다. 핸디는 "신뢰란 어머니가 하는 말처럼 아무도 거절할 수 없는 아주 따뜻하고 부드러운 소리처럼 기분 좋게 들린다. 그러나 실제로 믿음을 갖기는 어렵고 힘들다“라고 말합니다.


 핸디가 교회 사역자, 리더들에게 주는 신뢰의 중요한 7가지 원리를 살펴봅니다.


a. 신뢰는 맹목적이 아니다. 모르는 사람을 믿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대규모 조직들도 이제는 다른 그룹의 사람들과 더불어 능률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친밀감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소그룹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b. 신뢰는 경계선을 필요로 한다. 무제한적인 신용은 실제로는 비현실적이다. 조직에서의 신뢰란 확신을 의미한다. 누군가의 능력에 대한, 그리고 목표를 위한 임무에 대한 확신이다. 사역을 담당하는 그룹들에게는 해결책과 방법을 마련할 수 있는 충분한 자유가 주어져야 한다. 동시에 공동체의 사명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지켜주는 적절한 제한이 필요하다. 


c. 신뢰는 끊임없는 학습을 필요로 한다. 개개인과 마찬가지로 공동체는 계속해서 배워야 한다. 공동체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언제나 변화될 수 있는 유연성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성공과 실패를 통해 배울 수 있어야 한다. 새로운 선택과 기술을 탐구하면서 진정한 학습 문화를 창조해야 한다.


d. 신뢰는 잔인하다. 핸디는 개인에게 높은 표준과 헌신을 요구하는 냉혹한 신뢰를 옹호한다. 신뢰는 유리와 같아서 한번 깨지면 다시 붙일 수 없다.

 대부분 사람은 스스로 자신에게서 최고의 결과를 이끌어내기 위해 마감시간과 목표 등을 정하며 최선을 다하지만, 그러나 규칙과 확인이 주도하는 곳에서는 그럭저럭 요구된 수준을 유지할 정도로만 행동하게 된다는 점을 유념해야한다.


e. 신뢰는 결속을 필요로 한다. 신뢰는 관계를 바탕으로 한다. 신뢰는 비인간적인 것이 아니다. 지도자들은 신뢰를 쌓을 수 있도록 다른 사람들과 충분한 시간을 나눌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f. 신뢰는 손길을 필요로 한다. 첨단기술, 전자메일, 전화와 팩스, 음성 사서함이 일상생활이 된 오늘날에도 극대화된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직접적인 만남을 필요로 한다.  여기에는 일과 놀이가 적당히 섞여 있어야 한다. 이러한 시간은 소수의 특권층에게만 있는 특혜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필요한 윤활유 같은 것이다.  이러한 시간을 통해 서로를 알게 되고 지도자를 개인적으로 만남으로 공동의 목표를 강화하며 전략을 재고하게 된다. 당신이 이끄는 공동체는 이런 시간들을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가?


g. 신뢰는 스스로 구해야한다. 공동체가 구성원들에게서 신뢰를 기대한다면 먼저 자신이 믿을만하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개인 역시 자신들의 임무수행 능력을 증명할 때까지 완전한 신뢰를 받을 수 없다. 신용의 기초는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것, 즉 일관성 있는 행동이다.


3. 맺으면서

전도서3장14절에는 기자는 “하나님이 행하시는 모든 것은 영원히 있을 것이라 그 위에 더할 수도 없고 그것에서 덜할 수도 없나니, 하나님이 이같이 행하심은 사람들이 그의 앞에서 경외하게 하려하심인 줄을 내가 알았도다(전도서 3:14)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영원하신 하나님을 경외하고 산같이 변함없는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 모든 인간관계에서 신뢰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기 위하여 꾸준히 노력하여 나가야 하겠습니다.


이는 이 세상에서의 주어진 각자의 소명과 주님이 예비하신 하늘나라에 들어가기 위하여서는 물론이며, 아울러 이 세상에서의 건강한 인간관계형성으로 복된 삶을 누리기 위하여도 꼭 필요합니다.


2007. 6.19.  이 주 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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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꿈을 이루며 댓글[0]
묵상 (2007-05-18 오후 2:06:40) http://blog.somang.net/jookwanlee/2829

    

아름다운 꿈을 이루며


지난해 한가위 날!  장성한 아이들의 효도(孝道)관광으로 우리 내외와 아이들은 서귀포항 중문관광단지 해변가에 이르렀습니다.


저녁 무렵, 한쪽으로는 바다 건너 붉은 해가 지고 있는데 동시에 반대편 바다 위로는 한가위 보름달이 환하게 떠오르는 대자연의 장관(壯觀)이 저의 마음을 감동하게 하므로 여기에 그 기쁨과 앞으로의 소망의 마음을 담아 적었습니다.




바다 섬 건너 연붉은 색조를 짙게  뿌리며 지는 해,


맞은 편 청정(淸淨)한 하늘 위로 유유히 떠오르는 한가위 보름달,


이 천지자연의 오묘한 조화는 나를 우리 님의 생명의 세계로 이끌어 간다.




갈 바를 몰라 헤매는 중생들을 우리 님은 낮에는 햇빛으로 인도하시고

밤에는 달빛으로 인도 하시네,


출애굽의 이스라엘 백성을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이끄시어 예비하신 축복의 땅에 이르게 하신 것처럼


오늘 서귀포 해변위의 해와 달은 우리를 낮이나 밤이나

지켜 주시고 복락(福樂)의 세계로 이끄시는 우리 님의 영원한 언약이 아닌가!




우리 님은  참 빛이요 진리이시니, 그의 길이 뭇 중생들이 따라갈 길이로다.


이  생각이 보이지 않는 우리 님의  나라, 진리의 세계에 대한  증거라 할 것이니,


우리 님은 나의 인도자가 되시며, 내게는 끝내 후회함도 부족함도 없으리로다.




[여기에서의 ‘우리 님’은 참 진리이신 세상의 섭리(攝理)자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인간들이 희구(希求)하는 “영원한 생명의 세계”라고나 할까요! 인간의 첫째가는 도리(道理)인 효도함을 통하여 나아가 참 진리의 세계, 바른 도(道)의 세계를 추구하는 복(福)된 삶까지 내다보고자 하였습니다.]



우리 조상님들은 부모에 효도함을 인륜(人倫)의 으뜸 덕목(德目)으로 삼아 왔습니다. 이렇게 효도하는 자세는 참다운 진리의 복된 세계로 모든 이들을 이끌어 가는 단초(端初)가 되기도 하니, 효도하라는 우리 조상님들의 생각은 계승 발전 시켜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들은 부모에 효도하고 진리를 향한 보람된 삶을 살며, 직장에서도 부모에 효도하듯이 모든 이들을 섬기고 봉사하는 생활을 하여 회사와 세상에서 큰 덕(德)과 기쁨을 이루어 가야하겠습니다.



2007. 5.16 . 이 주 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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