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은 사람이 그것을 적법하게만 쓰면 선한 것이다.(딤후1:8)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는 것(마9:12)처럼 바리새인들에게는 은혜와 십자가, 예수님은 필요없는 존재였다. 건강한(?) 자였기 때문이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것은 논리적으로 당연한 귀결이다. 지극히.
나에게 율법도 필요하고 은혜도 필요하다.(여기에 구원의 핵심이 있다고 생각한다)
오직 믿음으로 맞는 말이다. 그렇다면 율법은?
하나님의 구원사역을 논리적으로 담아내려고 하는 자체가 이미 어리석은 인간의 한계이다.
한때. 이것으로 논쟁하기도 하였으나 어리석은 짓이다.
율법은 하나님의 식이다. 은혜도 하나님의 식이다. 율법은 지키려 하면 할수록 교만해지고 자기 의에 빠지는 것(바리새인과 같이)이 아니라 철저히 더 겸손해지고 낮아지는 것이다.
바울이 결코 바리새인들에게 율법의 행위로 뒤진다고 생각지 않는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율법으로 의롭게 되었고,
바울은 율법으로 죄인중의 괴수가 됨을 깨달았다.
율법은 지켜야 한다. 은혜가 필요하다는 것 깨닫기 위해서.
십자가 밖에서 나를 보면 나는 꽤나 괜찮은 사람처럼 보인다.
십자가 밖에서 다른 사람을 보면 죄인중에 그런 죄인이 없다.
십자가 밖에서 교회를 보면 이렇게 흠이 많아 보일 수가 없다.
십자가 통해서 나를 보면 나는 죄인 중에 괴수다. 겸손이 찾아온다.
십자가 통해서 다른 사람을 보면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예수가 사랑한 그 사람.
십자가 통해서 교회를 보면 예수의 몸으로 보여 눈물이 난다.
십자가 통해서 목사님을 뵈면 아픔의 고뇌로 기도하게되고
십자가 통해서 남편을 보면 애처러워 불쌍하기만하니...절로 고개가..
십자가 통해서 자녀를 보면 아버지의 자녀로 보여져 전심으로 아뢰게되니
십자가를 통해서 나 자신을 보면 나는 죄인중에 가증스러움의 인간이고.
십자가를 통해서 이웃을 보면 그 영혼을 대신해 사랑하신 하나님을 아뢰게되고
십자가를 통해서 나라를 보니 통탄할 참회의 눈물을 솟게되니
십자가를 통해서 당회롤 보니 하나님의 크신 사랑이...사랑.사랑.사랑.
주님. 주님. 주님. 바울서신을 깊이 묵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