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위기와 윤리, 기독교인의 책임 김병연(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최근의 미국발 금융위기는 전 세계적 경기침체와 실업률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많은 국가들이 확장적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을 통하여 경기부양을 시도하고 금융기관에 재정자금을 투입하여 무너진 금융시스템을 바로잡으려 애쓰고 있지만 그 효과가 언제, 어떻게 나타날지 여전히 짐작하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가져다 준 이런 위기가 왜 발생하였는지를 따져보고 반성할 필요가 있다.
3월 21일자 헤랄드 트리뷴에는 독일 수상인 메르켈의 기고문이 실렸다. 위기탈출로드맵(A Road Map Out of Crisis)이라는 제하에서 메르켈은 이렇게 말한다. “시장의 주요 경제주체들이 건전한 경제행위라는 근본적 원칙을 무시한다면 세계화는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을 이번 사건은 뚜렷이 보여주고 있다“. 좀 더 직설적으로 언급하면 경제행위 주체, 특히 금융기관 종사자들의 불건전하고 비윤리적인 행위가 이번 위기의 진원지라는 지적이다.
직장이 없거나 소득이 없으면 대출받기가 어려워야 정상이다. 그런데 단지 집값이 계속 오를 것이라는 믿음 하에 금융기관들은 모기지 대출을 해주고 집을 사려고 하는 사람들은 이게 웬 떡이냐 싶어 돈을 빌려 집을 샀다. 금융기관들은 소위 첨단 금융기법을 동원하여 이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유동화시키고 위험을 줄이느라 파생상품으로 만들어 팔았다. 그런 가운데 일부 금융기관 종사자들은 천문학적인 월급과 보너스를 받아 챙겼다. 그 동안에는 보너스만 해도 수억원, 수십억원씩 받아 챙기다가 문제가 일어나니 평범한 사람들이 부담하는 세금으로 이들의 저지른 사고의 뒷감당을 하고 있는 셈이다.
최소한의 윤리가 지켜지지 않으면 경제는 돌아가지 않는다. 언뜻 경제가 돌아가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언젠가는 폭발하게 마련이다. 사실 그동안 경제학은 최소윤리에 조차 침묵했다. 윤리는 경제와 관계없고 오히려 비윤리적으로 행동해야 경제가 성장할 수 있다는 잘못된 암시조차 보내곤 했다. 개인이 아무리 이기적으로 행동해도 전능한 손, 보이지 않는 손이 있으니 문제가 없다고 설파하곤 했다. 얼마나 황당하고 파괴적인 주장인지 모른다.
보이지 않는 손을 처음으로 말했던 경제학의 창시자, 아담 스미스도 그런 식의 비윤리적인 행동이 경제성장을 가져온다고 말하지 않았다. 과도한 이기심에 이끌려 타인의 재산이나 신체, 평판을 위해할 수 있는 행동을 자제할 수 있는 동감(sympathy)의 정신이 있어야 보이지 않는 손이 움직일 수 있다고 설파하였다. 그는 양심이 계발된 사회, 법과 제도가 공평하게 집행되는 사회, 공정한 경쟁이 존재하는 사회가 전제되어야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할 수 있다고 강조하였다.
윤리가 희박한 사회를 바꾸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하다. 더욱 윤리적으로 사는 사람들이 나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그 삶에 도전을 주어야 사회의 윤리수준이 올라가는 법이다. 기독교인은 일반 사람들의 윤리 수준보다 너 나아가야 한다. 이른바 기독교인의 최대윤리의 원칙이다. 일반 사람들은 최소한의 윤리를 지키며 살아가더라도 기독교인은 최대한의 윤리의식을 가지고 생활해야 한다.
사실 현금의 위기는 진정한 기독교적 가치를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기독교인들은 이 어려운 시기에 적극적인 나눔운동을 펼쳐야 할 것이다. 교회 안에서 어려운 자, 실직당한 사람들을 돕고 교회 밖에 있는 소년, 소녀 가장, 독거노인, 실직자, 가난한 자들을 돕는 데 교회가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교회는 한국 사회의 잃어버린 근면의 정신을 회복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젊은 청년들이 노동의 소중함을 알도록 가르치고 주께 하듯 일을 하도록 깨우쳐야 한다. 마지막으로 교회가 간접적으로 일자리 창출에 기여할 수 있다. 기업가정신을 일깨우고 기업하는 사람들을 격려하는 것이다. 기업이야 말로 다른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최고의 이웃사랑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2009. 5. 13. 교회와신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