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07-19 오후 5:07:38)http://blog.somang.net/koenonia/1631
헨리 데이빗 소로우를 어떤 사람이라고 소개해야 할까? 환경보호론자? 자연주의 사상가? 동식물 연구가? 박물학자? 시인? 금욕주의자? 참 어려운 문제이다. 왜냐하면 그는 이 중 어느 하나의 이름에 한정시키기보다는 이 모두이면서 또한 이 모두를 넘어서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팀호만의 표현에 의하면 소로우는 환경운동가라는 단어가 생기기 훨씬 이전부터 환경운동가였으며, 미국 환경보호주의의 요람은 "월든 호수의 물결에 흔들렸던 그의 보트"였다는 것이다 (그의 자연환경에 대한 빛나는 산문들은 그의 활동시기를 생각하면 지금의 환경론보다 150년은 앞섰다).
1817년 매사추세츠 주 콩코드에서 태어난 소로우는 하버디 대학을 졸업한 수재였음에도 당시 한창 산업화가 진행되던 문명의 도시를 버리고 월든 호숫가로 들어가 한 칸 짜리 통나무집을 짓고, 단 하나의 침대와 단 세 개의 의지를 만드는 등 생활을 최소한으로 간소하게 하면서 홀로 산, 어찌 보면 문명의 숲속을 외롭게 걸어 간 기인(奇人)이었다.
그러나 그는 결코 그 의자에 멍하니 앉아 있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그 의자에 고독하게 앉아 깊이 사색하면서 매일 [저널]을 썼다. 처음엔 문체를 향상시키기 위하여 그가 관찰한 것을 거의 그대로 써내려 가던 [저널]은 나중에는 그의 책이나 에세이의 소재가 되고 모든 시대를 포용하는 지혜의 내용이 되어버렸다.
그가 사랑한 콩코드의 작은 새들이며 일출과 일몰, 물고기, 나무, 작은 동물들은 그의 [저널] 속에 숨어 있다가 그의 펜에 의해 꺼내져 그의 산문 구석구석을 찬탄과 함께, 그렇게 아름다운 생명들이 도시화로 인하여 사라지는 것에 대한, 실감나는 사색의 한숨이 되었으며 또한 지혜의 외침이 되었던 것이다.
햇빛의 색깔은 물론 그 소리까지도 아름다운 구절과 빛나는 시각으로 표현했던 그의 [저널]은 그를 시인으로 만들지 않을 수 없었으며 (그가 청어에 대해 쓴 부분을 한 번 보자. "... 수많은 친구들이 네가 모험을 하는 동안 바다 괴물의 먹이로 사라져버렸어도 결코 절망하지 않고, 오히려 여유있는 지느러미로 용감하고 담담하게 더 고귀한 숙명을 맞이하기 위해 남아 있는 청어여... 네 친구는 오늘 그 미덕을 알고 있으면서도 찬탄하질 않는구나! 누가 과연 듣고 있는가, 물고기들의 저 울부짖음을! 하지만 우리가 모두 동시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은 누군가의 기억에 남아 잊혀지지 않으리라....") 자연현상과 동식물에 대한 체계적인 관찰의 꼼꼼한 기록은 그를 탁월한 동식물 연구가, 탁월한 박물학자, 곤충연구가, 기상연구가, 콩코드 지역의 강과 호수에 대한 호소학(湖沼學) 연구가로 만들었을 뿐 아니라, 또한 "바람의 소리를 들었던" 고독과 구도의 작업은 그를 깊은 사색의 사상가가 되게 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자연 속에서 걸었던 길은 그냥 길이 아닌 구도자의 길어 되곤 했다.
다음의 산문들은 그러한 그의 구도의 길에서 획득한 삶의 지혜를 잘 보여준다.
"달빛이 내리는 밤에는 모든 것이 단순해진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마음까지도 일으켜 세울 수 있다. 사물들은 복잡하게 보이지 않고, 우리의 마음은 더 이상 심란해지지 않는다. 달빛이 내리는 밤은 마치 물과 빵만의 식사처럼 단순하다...."
"아침과 봄에 얼마나 공명하는가에 따라 그대의 건강을 가늠해 보라. 자연의 깨어남을 보고도 그대 속에 아무 반응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이른 아침 산책을 해도 잠이 달아나지 않는다면.... 이른 아침 가장 먼저 귓가를 두드리는 새의 노랫소리에도 전율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깨달으라, 그대 인생의 봄과 아침은 이미 지나가버렸음을, 맥박을 느낄 수 있을지 몰라도."
"문명인들은 거의 습관적으로 집을 지니고 있다. 인간의 집은 감옥이다. 그를 압박하고 속박하는 감옥, 그를 보호해 주는 편안한 안식의 쉼터가 아니고 말이다.
그는 조심스럽게 살아간다. 마치 자신이 지붕을 떠받치고라도 있는 듯이. 그리고 마치 벽이 금방이라도 무너져 자신을 덮칠 것처럼 온갖 무장을 하고 있고 발은 저 밑 지하실을 기억하고 있다. 근육은 결코 긴장을 푸는 법이 없다.
집을 정복하고, 그 속에 편안히 앉아 있는 법을 배우며, 지붕과 바닥과 벽이 하늘과 나무와 땅처럼 자연스럽게 서로를 안고 있는 일은 매우 드물다."
"이 우주는 사람들이 살고도 남을 만큼 크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집 밖으로 거의 나가지 않으며 특히 밤에는 항상 집 안에만 머문다. 복잡한 인간 세상 너머 저 길가에 저희들끼리 오롯이 핀 버섯 같은 것들을 바라볼 수 잇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부질없게도 인간들은 지상의 현상보다 천체의 현상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우리가 풀어야 할 매듭은 별들의 저 교차점이 아니다."
"천국은 우리 머리 위뿐 아니라 우리 발 아래에도 있는 것을."
그런데 그 시절 미국에도 지금 우리의 땅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것과 같은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었던 모양이다. 밀렵, 대량어획, 강의 훼손, 숲의 훼손, 오염, 대자연 속의 공장 들어서기, 사유지들의 확대.... 그의 산문에는 그러한 환경의 파괴에 대한 깊은 사색들이 많이 등장한다.
"하지만 가죽을 얻기 위한 것도 아니며, 대단한 노력이나 위험도 감수하지 않고 순전히 죽일 때의 쾌감을 위해서 사슴을 사냥하는 행위는 마치 밤에 숲 옆에 있는 목장에 나가서 이웃집 말을 쏘아죽이는 것과 같은 짓이 아닐는지...."
"언덕은 폐선이었다. 그때, 바로 그때, 그 순간이 왔다! 나무 밑에 있는 난쟁이들은 범죄현장에서 도망치고 있었다. 그 죄 많은 톱과 도끼를 내던지고. 나무는 얼마나 천천히, 그리고 장엄하게 쓰러지기 시작했던가! 이제 그것은 한낱 재목일 뿐이다. 이 청정한 대기를 앞으로는 누가 숨쉴 것인가. 봄이 되어 물수리새가 머스키타퀴드 강둑으로 돌아오면 늘 앉았던 횃대를 찾고자 헛되이 맴돌 것이며, 암컷 매는 넉넉한 품으로 새끼들을 지켜주던 소나무를 애도하리라. 성장한 나무가 되기까지 2백 년이 걸리며 하늘을 향해 조금씩 조금씩 자라났던 한 식물이 이날 오후에 존재를 그친 것이다...."
그러한 자연에의 사랑은 그로 하여금 자연스레 "시민복지에 대한 새로운 제안"을 하게 하기도 했다. 그 대표적인 것이 "공원에 대한 제안"이다. 그는 돈을 좀 번 사람들이 단지 돈을 벌었다는 그 이유만으로 아름다운 자연을 혼자 소유하는 것에 대해서 분개하면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연을 즐길 수 있는 방법으로 공원에 대한 제안을 하는데 이는 거의 세계 최초라고 한다. 뿐 아니라 그 당시에는 아무도 생각지 못한 공로에 대한 사색도 펼치며 강에 대해서도, 그것을 보다 많은 사람들이 소유할 수 있는 방안들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인디언들 사이에서는, 대지와 거기서 나는 산물들은 공기와 물처럼 대체로 모든 부족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공동의 재산이었다. 그러나 인디언들을 밀어낸 우리 사회에서는, 대중들은 기껏해야 작은 뜰이나, 마을 한가운데의 공터, 그리고 그 옆의 묘지나 공동으로 쓰고 있다. 도로에선 주인의 묵인으로 정해진 좁은 길이나 다닐 권리를 갖고 있을 뿐이고. 그 길마저 해마다 접차 좁아지고 있다...."
"아직은, 우리가 자유스럽게 어떤 부지를 가로질러 가기도 하고, 자연의 것을 슬쩍 훔치거나 "낚아채기도" 하고 있지만, 주인들의 반대에 부딪치면서, 해마다 자연스럽게 조금씩 그 자유를 잃어가는 게 사실이다... 사람들은 그 소수의 사람들이 허락한 길말고는 산책할 길이 없게 되리라."
"이 도시를 계획한 사람들은 애당초 강을 영원히 공동 소유로 쓸 수 있게 해야 했으리라... 실로 나는... 강의 한쪽 혹은 양쪽 강둑 모두가 대중들이 거니는 도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강은 단지 뭔가를 뛰어보내는 데에만 쓸모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그의 말들을 내 식으로 고쳐 본다.
"빨리빨리 달려가려고만 하는 이들이여, 아침해에 이미 전율하지 않는 이들이여, 그래서 인생의 봄을 가버리게 하고 있는 이들이여.... 그러나 자연의 음악은 계속되고 있다. 다만 우리가 그 노래를 듣지않고 있을 뿐. 당신의 삶이 아무리 비천한 것이라 해도 맞부딪혀 살아가리라... 그대가 나쁜 사람이 아니듯 삶도 그렇게 나쁘진 않다... 자신의 삶을 사랑하라... 황혼의 빛은 부자의 집 창문뿐이 아니라 가난한 이의 집 창문도 밝게 비추는 것이니... 지금이 당신의 기회이다. 의심을 품지 말라... 당신의 있는 그대로, 단호하게 성실하게 살라. 그리고 동시에 자신의 금고는 늘 비워두어라. 비어야 찰 것이니 또는 될수록 간소하게 살기 위해서 애쓰라. 자연은 혼자 즐길 수는 없다. 자연은 보다 많은 사람들의 것일 때 의미가 있을 것이다...."
아무에게도 이해를 받지 못했으며 팔리지 않는 작가였던 그는 생전에는 [콩코드 강과 메리맥 강에서의 일주일]과 [월든]의 단 두 권의 산문집밖에 펴내지 못했지만 (그의 사후 1864년 말에 [메인 주의 숲], 케이프 코드], [유람여행]이 여동생 소피아와 그의 친구 채닝의 작업으로 출판되었다) 그의 시대를 앞서는 환경보호의 사상과 깊은 사색은 그린 어메니티 운동이 일고 있는 지금 도시의 숲을 걸어 문명화 때문에 오히려 잃어버린 것들이 많은 문명인들의 머리를 시원하게 하여주며 달려오고 있다. 지금 소로우는 당대보다도 더 인기있는, 말하자면 세계적인 유명작가가 되고 있는 것이다.
소로우를 옮기고 엮으면서 나는 지금 삶에 대한 깊은 사색의 소리와 함께 그동안 잘 듣지 못했던 아름다운 새소리를 새삼 듣는다. 물론 그동안에도 들려왔지만 "빨리빨리 자라려고"만 하다보니 듣지 못했던 그 순결한 소리를. 매미의 한숨소리도 듣는다. 작디 작지만 세상을 움직여 가는 것들, 자연 속에 있는 작은 것들의 소리를 새삼 듣는 것이다.
그의 책의 페이지를 덮으며 내다보는 밤바다에서 그의 나직한 목소리가 별의 노랫소리처럼 달려온다.
"집이 무슨 소용이 있으랴. 그대가 집을 지을 수 있는 이 넉넉한 별의 품이 없다면."
그렇다. 이 별은 우리를 사랑하고 있다. 우리가 그를 사랑한 만큼.
1999년 4월에 바닷가의 한 방에서 강은교
이런 사람이 좋지요댓글[0]
시와 그림
(2005-07-15 오후 6:01:04)http://blog.somang.net/koenonia/1629
이런 사람이 좋지요.
자기 일에 만족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 좋고, 어떠한 형편에든지 자기 자신을 지킬 줄 아는 사람이 좋고, 노래를 썩 잘하지는 못해도 부를 줄 아는 사람이 좋고, 어린아이와 노인들께 좋은 말벗이 될 수 있는 사람이 좋고,
책을 가까이 하여 이해의 폭이 넓은 사람이 좋고, 음식을 먹음직스럽게 잘 먹는 사람이 좋고, 철 따라 자연을 벗삼아 여행할 줄 아는 사람이 좋고, 손수 커피 한잔을 탈 줄 아는 사람이 좋고, 이웃을 돌아볼 줄 아는 사람이 좋고, 하루 일을 시작하기 앞서 기도할 줄 아는 사람이 좋고,
다른 사람의 자존심을 지켜줄 줄 아는 사람이 좋고, 때에 맞는 적절한 말 한마디로 마음을 녹일 줄 아는 사람이 좋고,외모보다는 마음을 읽을줄 아는 눈을가진 사람이좋고, 친구의 잘못을 충고할 줄 아는 사람이 좋고,
적극적인 삶을 살아갈 줄 아는 사람이 좋고, 자신의 잘못을 시인할 줄 아는 사람이 좋고, 용서를구하고 용서할줄 아는 넓은 마음을가진 사람이좋고, 새벽공기를 좋아해 일찍 눈을 뜨는 사람이 좋고, 남을 칭찬하는데 인색하지 않은 사람이 좋고,
그리우면 그립다고 말할 줄 아는 사람이 좋고, 불가능 속에서도 한줄기 빛을보기 위해 애쓰는사람이좋고, 다른 사람을 위해 호탕하게 웃길 줄 아는 사람이 좋고, 옷차림이 아니더라도 편안함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좋고, 자기 부모 형제를 끔직히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좋고, 바쁜 가운데서도 여유를 누릴 줄 아는 사람이 좋고,
항상 겸손하여 인사성이 바른 사람이 좋고, 춥다고 솔직하게 말할 줄 아는 사람이 좋고, 자기 자신에게 자신감을 가질 줄 아는 사람이 좋고, 어떠한 형편에든지 자족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