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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09 댓글[0]
큐티 (2012-02-09 오후 9:03:17) http://blog.somang.net/jhcha/7145
이튿날 모세가 증거의 장막에 들어가 본즉 레위 집을 위하여 낸 아론의 지팡이에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어서 살구 열매가 열렸더라 모세가 그 지팡이 전부를 여호와 앞에서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로 가져오매 그들이 보고 각각 자기 지팡이를 집어들었더라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아론의 지팡이는 증거궤 앞으로 도로 가져다가 거기 간직하여 반역한 자에 대한 표징이 되게 하여 그들로 내게 대한 원망을 그치고 죽지 않게 할지니라  (민17:1-14)
열두지파에서 각 지파를 대표하는 어른들이 지도자의 상징인 지팡이를 가져오게 합니다. 모세의 지팡이는 뱀으로도 변했으며 홍해에서 반석에서 기적이 나타날 때 함께 했던 도구였습니다. 유목민인 그들은 양을 치면서 반드시 필요한 삶의 도구였습니다. 아직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론과 레위지파의 제사장됨에 대한 의문과 회의가 있었습니다. 그 틈을 이용하여 악한 영의 유혹이 있었고 그 반역의 결과로 이백만의 백성 중 만 여명이 죽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너무나 아팠습니다. 그래서 백성이 각성을 촉구하고 다시는 의심하지 않도록 증거를 보여 주시기 원하셨습니다. 모세를 부르셔서 열두지파 지도자들의 지팡이를 증거의 장막에 두고 다음날 와 보게 하셨습니다. 그 지팡이들 중 아론의 지팡이에 생명의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움이 돋고 순이 나며 꽃이 피었으며 열매가 열렸던 것입니다.
여기서 열렸던 열매를 살구나무라고 번역했는데 사실 이것은 아몬드 나무입니다. 히브리 말로는 "솨케드"라고 하는데 이는 "솨카드"하는 "감시(監視)하다"라는 어원에서 나왔습니다. 성막에 두었던 금촛대에도 아몬드 꽃의 형상을 본 딴 잔을 만들었던 것은 경계의 의미가 여기에 있기 때문입니다.(출25) 아몬드 나무는 겨울을 지내고 가장 먼저 피는 꽃입니다. 우리나라의 매화 같은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서두른다, 겨울을 이기고 새롭게 시작한다 혹은 부활의 의미도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은 의문과 회의로 사람들이 죄에 빠져 희생되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증거를 허락하십니다. 죽음을 이긴 생명의 기적으로 증거를 삼으십니다. 여기에는 추운 겨울을 이기고 새롭게 시작하면서 이 세상을 밝히고 살피는 모습으로 아몬드 열매를 맺게 하셨습니다. 저는 이것이 십자가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회의와 조롱을 확신으로 죽음을 생명으로 어두움을 밝음으로 인도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과 부활 이것이 우리에게 주신 증거이니 말입니다. 오늘은 아론의 움 돋은 지팡이를 통해 보여주신 십자가를 깊이 묵상하는 하루되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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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08 댓글[0]
큐티 (2012-02-09 오후 9:01:37) http://blog.somang.net/jhcha/7144
이에 모세가 아론에게 이르되 너는 향로를 가져다가 제단의 불을 그것에 담고 그 위에 향을 피워 가지고 급히 회중에게로 가서 그들을 위하여 속죄하라 여호와께서 진노하셨으므로 염병이 시작되었음이니라 아론이 모세의 명령을 따라 향로를 가지고 회중에게로 달려간즉 백성 중에 염병이 시작되었는지라 이에 백성을 위하여 속죄하고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에 섰을 때에 염병이 그치니라... 염병이 그치매 아론이 회막 문 모세에게로 돌아오니라 (민16:41-50)
죄가 이 세상에 만연하여 하나님의 심판이 있게 될 때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지 본문에서 보여 줍니다. 요사이 기독교에 대한 비난이 조롱에 가깝고 자살 등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가 심해지며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그 삶이 변화되지 않은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이 시대에 언제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여간 모세는 아론에게 향로를 가져다가 제단의 불을 담으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향을 피우라 하였습니다. 회중으로 달려가게 하였고 백성을 위해 속죄하고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에 섰을 때 염병이 그쳤습니다. 그리고 아론은 다시 모세에게 돌아옵니다.
첫째 향을 피우려면 불이 있어야 합니다. 단순한 인간적인 열정이 아니라 성령의 불이 필요합니다. 우리 내면에 말씀과 기도로 성령의 불과 같은 하나님의 열심을 채워야 합니다. 둘째 그 향로를 가지고 현장에 가야합니다. 속죄의 향로를 가지고 죽어가는 자들이 있는 곳에 가야합니다. 십자가를 들고 죽음의 현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아론은 그 모든 일이 정리된 이후 모세에게 돌아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치열하게 생명의 사역을 하고 난 이후 다시 우리를 기다리시는 주님 앞에 가서 예배 드리고 쉼을 얻어야 합니다.
성령의 열정으로 현장에서 뜨겁게 봉사하다가 주님께 돌아와 영광돌리는 모습을 오늘도 그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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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07 댓글[0]
큐티 (2012-02-09 오후 9:00:17) http://blog.somang.net/jhcha/7142
모세가 또 고라에게 이르되 너희 레위 자손들아 들으라 ..하나님이 너와 네 모든 형제 레위 자손으로 너와 함께 가까이 오게 하셨거늘 너희가 오히려 제사장의 직분을 구하느냐 이를 위하여 너와 너의 무리가 다 모여서 여호와를 거스르는도다 아론이 어떠한 사람이기에 너희가 그를 원망하느냐 모세가 엘리압의 아들 다단과 아비람을 부르러 사람을 보냈더니 그들이 이르되 우리는 올라가지 않겠노라 네가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이끌어 내어 광야에서 죽이려 함이 어찌 작은 일이기에 오히려 스스로 우리 위에 왕이 되려 하느냐 이뿐 아니라 네가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도 아니하고 밭도 포도원도 우리에게 기업으로 주지 아니하니 네가 이 사람들의 눈을 빼려느냐 우리는 올라가지 아니하겠노라  (민16:1-33)
지금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답답함이 있습니다. 바로 앞의 가나안을 가지 못하고 힘들고 입에서 단내가 나는 광야를 수십년간 방황해야하는 운명에 처했기 때문입니다. 그 잘못이 자신들에게 그 믿음 없음에 있었지만 그들을 그것보다는 원망과 애굽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마음이 더 컸습니다. 민수기 14장에 말한 것처럼 지휘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의 경고와 경계가 있었으나 그들은 그것에도 불구하고 아말렉인을 치러 올라갔다가 철저하게 패하였습니다. 아직도 그들은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답답함과 분노로 그들의 마음이 어두워졌습니다. 그래서 레위지파 중 고라 집안과 르우벤지파 엘리압의 아들들이 반역을 구체화 합니다. 그래서 250명이나 되는 지도자급 인사들도 가담합니다.
사단은 두가지 점을 공략합니다. 첫째 시기와 질투를 이용합니다. 하나님은 레위지파를 성별하여 성소에서 봉사하게 하셨습니다. 민수기 3장에 따르면 게르손 집안은 회막과 장막과 그 덮개와 회막의 휘장과 뜰의 휘장과, 회막과 제단을 둘러싸고 있는 뜰 입구의 휘장과 그 모든 것에 쓰는 줄을 맡아 관리하는 것이였습니다. 고핫 집안이 맡은 일은 언약궤와 상과 등잔대와 제단들과 성소의 연장들과 휘장을 맡아 관리하고, 이와 관계가 있는 그 밖의 모든 일을 돕는 것이었습니다. 제사장은 아론의 아들인 엘르아살 집안이 맡았고 므라리 집안이 맡은 일은 성막의 널빤지와 빗장과 기둥과 그 받침을 맡아 관리하고, 이와 관계가 있는 그 밖의 모든 일을 돕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또한 성막 둘레의 뜰에 있는 기둥과 그 받침, 말뚝과 줄을 관리하는 일도 맡았습니다. 모두 성막을 관리하는 중요한 일입니다. 그런데 사단은 고핫 집안 사람들에게 엘르아살 집안이 맡은 제사장의 역할은 중요한 것이고 자신들이 맡은 역할은 하챦은 것이라는 생각으로 질투에 불타게 하였습니다. 둘째, 우월의식을 이용합니다. 르우벤 자손이였던 다단과 아비람은 이스라엘의 장남의 자손으로 당연히 자신들이 민족의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모세 네가 왕이 되려고 하느냐는 등의 비방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첫째, 우리가 우리의 잘못으로 말미암아 고난을 당할 수 있습니다. 원망을 내가 아닌 남에게 찾고자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옛날의 영광을 그리워하며 다시 죄의 습성으로 돌아가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고난을 겪고 내게 허락하신 하나님의 광야 생활을 통과한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가나안 복지가 있습니다. 혹시 고난을 당하게 될 때 마음이 시험당하지 않도록 주의하여야겠습니다. 둘째, 지체로 구분된 각자의 역할에 내가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하다는 지레짐작으로 더 중요한 일을 맡은 자를 질투하는 시험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성막에 봉사하는 것은 모든 이스라엘의 장자를 대신하여 구별된 중요한 일이였습니다. 고핫집안 사람들의 오해를 그대로 받아드리면 나머지 11 지파 사람들은 모두 레위지파 사람들을 부러워해야 했습니다. 아닙니다. 하나님은 지체로 부르셨으며 다만 거기에서 얼만큼 깨끗하고 순전한 모습으로 봉사하는 가가 더 중하고 덜 중한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일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공동체에서 우월의식 역시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내가 이 교회 다닌지 오래되었다. 혹은 내가 직분이 있다. 등은 하나님 보시기에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겸손히 봉사하는 자를 높이시는 분이십니다. 고난당할 때 겸손하게 하나님이 맡기신 자기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는 저를 그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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