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아버지,
벌써 아버지가 소천하신지 17년이 되어갑니다. 그간 참 아버지를 많이 잊고 살았는데 지난 주일에는 아버지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늦었지만 아버지에게 편지를 쓰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참 이상한 것은 예전에 아버지에 대해 느끼던 감정과 이제 아버지의 이름을 떠 올리면 느껴지는 생각이 너무나 다르다는 겁니다. 예전에는 청중을 사로잡는 연설을 하는 분, 글 쓰기에 목숨을 거신 분, 산을 너무 사랑하여 하루가 멀다하고 뒷산에라도 오르시던 분으로 기억이 되었었는데 이제 기억되는 아버지는 화려함 뒤에 있던 홀로 있기를 즐기시던 쓸쓸한 뒤모습과 자신에게는 엄격하되 자식에게는 간섭하지 않으시던 분으로 생각이 됩니다.
아버지와 함께 다녔던 JBS MT가 생각이 납니다. 해마다 참 많이 따라다녔죠? 형들과 웃고 즐기시며 그리 멋지게 '두만강 푸른 물에'를 시를 곁들여 부르시고 제자들의 환호를 받으셨지만, 분위기가 무르익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그 자리를 빠져나와 그들과 떨어져 홀로 계신 시간을 갖곤 하셨죠? 제자들의 웃음을 뒤로하고 강이나 바다로 가서 혼자 유유히 수영하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 오릅니다. 어려서는 노래도 잘하고 좌중을 휘어잡으며 그리고는 넉넉히 수영하시던 아버지가 그리도 부러웠는데... 그런데 이제는 그렇게 홀로 수영하시던 쓸슬한 아버지의 뒷 모습이 왜 그리 생각이 나는지요. 아버지의 내면에 있었던 쓸쓸함이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