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마클럽] 어느 자매의 이야기.........이주혜
친정에 들렀더니 안방 옷걸이에 잠자리 날개 같은 옷 한 벌이 걸려 있다. 어느 자리에 입고 가도 점잖고 세련되어 보인다는 말을 들을 만큼 좋았다. 꽤 값이 나가는 브랜드 꼬리표까지 달려 있다.
평생 몸치장과는 거리가 멀게 살아온 친정 엄마라 대뜸 나온 입에서 나온 말이 “이거 누구 옷이야?”였다. 시대를 풍미했던 소위 ‘몸뻬 바지’나 ‘월남 치마’ 말고는 따로 옷을 구입하는 모습을 보인 적이 없는 엄마다. 차려입고 나갈 자리가 있으면 열에 아홉 번은 한복을 다려 입고 나섰다. 그러기에 백화점 부인복 코너에서 비싼 값을 치렀을 그 옷이 엄마 옷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내가 그 옷에 관심을 보이자 엄마는 금새 자랑거리가 생긴 여고생처럼 수줍은 표정을 짓는다.
“누구 거긴. 엄마 거지.” “엄마가 샀어요?”
“내가 그 비싼 옷을 어떻게 사?” “그럼 아버지가 사줬어요?”
“니 아버지가 그런 일 할 사람이냐?” 아니, 그럼, 도대체, 누가?
그 옷은 엄마의 동생인 이모가 사준 것이란다. 어느 날 새벽 한 시에 전화가 걸려와 깜짝 놀라 일어나 받았더니 이모였단다. 이모는 아닌 밤중에 홍두깨 격으로 다짜고짜 문을 열라고 하더란다. 무슨 일이 난 줄 알고 부리나케 현관문을 열었더니 이모가 그 옷을 들고 숨을 헐떡이며 서 있더란다. 엄마는 이게 꿈인가 도깨비 장난인가, 순간 당신 팔을 꼬집고 싶으셨단다.
이모는 어느날 문득 생각해보니, 천지간에 동기가 딱 엄마와 이모 둘 뿐이더란다. 게다가 공무원이신 이모부가 내년이면 정년퇴임이라 그나마 꼬박꼬박 월급이 들어오는 올해가 뭔가를 살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이 들더란다. 이모는 그 길로 백화점에 가 제일 좋아보이는 옷을 카드로 덜컥 샀단다. 평생 종부 역할을 하느라 몸뻬 바지에 김치 국물 자국 가실 날이 없는, 하나밖에 남지 않은 친정 동기인 우리 엄마가 사무치게 간절하더란다. 그 옷을 사고 좋아서 혼자서 벙싯벙싯 웃다가 볼 일 다 마치고 나니 밤 열두 시가 넘었더란다. 다음 날 줘야지, 하면서도 그 몇 시간을 못 기다리겠더란다. 염치불구하고 그 새벽에 엄마에게 찾아가 옷을 안겨줬단다.
엄마는 딸 넷, 아들 하나 중 셋째 딸이다. 외가는 큰 부자는 아니어도 먹고 살 걱정 없고, 이웃에 약간씩 나눌 정도는 되는 유복한 집안이었다. 내 성장기를 돌이켜보면, 문득문득, 베갯머리에서 밥상머리에서 시장길에서 엄마가 조금씩 조금씩 들려준 엄마의 어린시절 이야기들의 대부분은 형제 자매에 대한 것이었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큰 이모가 시집가던 날, 초례청 앞에서 민망한 옷차림으로 까불까불 춤을 추다가 집안 어른들에게 혼쭐이 났던 일곱 살 바가지머리 계집아이가 엄마였다는 이야기. 나이 차이가 가장 적게 나는 이모와 엄마가 여름날 밤 봉숭아 손톱물을 들일라치면 서로 상대가 잠이 든 새벽녘 손톱위의 봉숭아 잎을 빼버려 결국 둘 다 예쁜 손톱물 들이는데 실패한 일이 다반사였다는 이야기. 처녀가 된 엄마가 조카들 업어주고 밥해주며 소위 ‘신부수업’에 열중일 때 이제 막 소녀 티를 벗은 이모가 몰래 읍내에 나가 쌍꺼풀 수술을 하고 와 집안이 발칵 뒤집혔다는 이야기 등은 언제 들어도 재밌고 감칠맛 나는 대목들이다.
그런데 그 주인공들이 하나씩 하나씩 세상을 떠나셨다. 늘 그 자리에 계신 듯 안 계신 듯 조용히 그늘 역할을 해주시던 외할머니가 7년 전에 노환으로 돌아가셨다. 엄마와 이모는 크게 울지도 않으셨다. 외할머니가 워낙 정정하셨고, 또 오래오래 살다가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그 이듬해 외아들이라 말 그대로 집안의 기둥이셨던 외삼촌이 위암으로 바짝 마른 채 돌아가셨다. 엄마와 이모는 섧게 섧게 울었다. 그리고 얼마 전에 엄마와 나이차가 많이 나 우리 남매도 얼굴을 몇 번 못 뵌 큰 이모가 돌아가셨다. 엄마 바로 위의 언니였던 둘째 이모는 내가 아주 어렸을 때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이제 엄마가 태어나고 자란, 여름방학마다 우리 남매의 훌륭한 별장 역할을 해주었던 외갓집에는 외숙모만 동그마니 남으셨다.
이모가 한밤에 옷을 사들고 오셨다는 이야기를 듣는데 왜 내가 눈물이 나는 걸까? 그냥 그렇게 가슴 저몄다. 누구에겐들 그런 순간이 오지 않겠는가. 나이 들고, 병들고, 하나씩 하나씩 곁에 있던 사람들을 저 세상으로 먼저 보내고 나면, 곁에 남아 함께 늙어 가는 이가 누군들 소중하지 않겠는가. 하물며 그 사람이 한 뱃속에서 나온 형제 자매라면. 힘들 때마다 찾아가고 싶은 유년의 기억을 함께 공유하고 있는 이라면. 그러고 보니 형제 자매란, 함께 자라는 일 뿐만 아니라, 서로의 마지막까지도 기꺼이 배웅해주는 게 마땅한 관계인가보다.
‘아이들은 복수(複數)일 때 의미가 있다’는 누군가의 말이 사무쳐, 내 아이에게 동생을 만들어주기로 결심했던 어느 순간이 떠오른다. 뱃속의 둘째가 태어나면 아주 조금은 더 할 일을 한 느낌이 들 것 같다. (조선일보 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