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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의지합니까? 댓글[0]
지유로운 글 (2014-04-04 오후 6:12:17) http://blog.somang.net/holylove/8115
무엇을 의지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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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렘17:7, 찬송가 542장 <통> 340장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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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는 부유한 귀족 출신에다가 작가로서도 크게 성공하여 부러울 것 없는 생활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참 만족이 없었습니다. 죄에 대한 공포로 불안한 나날을 보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적한 시골 길을 걸어가다가 너무나 평화로워 보이는 한 시골 농부를 만났습니다. 톨스토이는 농부에게 다가가 당신의 그 평화로움의 비결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농부가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저는 항상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살지요. 그래서 제 마음은 늘 기쁘답니다.’ 그 말을 들은 톨스토이는 그때부터 진지하게 하나님을 찾기 시작했고 결국 하나님을 만나 과거의 불안과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며 돌아가시는 순간까지도 하나님께서 아버지이시며 자신의 영혼을 받아주실 것을 확신하셨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하나님을 믿고 의지합니까? 항상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께 맡기십시오. 그러면 삶의 불안과 공포에서 벗어나 하나님께서 넘치도록 베풀어 주시는 평화와 기쁨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상에서 운명하실 때에도 하나님을 의지하였습니다.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운명하시다"(눅23: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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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누구나 혼자서 살아갈 수 없습니다.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무엇인가 붙잡고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때로는 부모형제를 의지하고 남편은 아내를, 아내는 남편을 의지하고 살아갑니다. 혹은 지식이나 기술 재능 명예 권세를 붙잡고 삽니다. 인생은 원래 불안전하기 때문에 무엇이라도 붙잡지 않으면 불안해서 살아갈 수 없습니다. 무엇을 붙잡고 누구를 의지하고 사느냐에 따라 행복과 불행, 성공과 실패가 달려있습니다. 과연 우리는 어떻게 누구를 의지하고 살아야 영원한 축복과 승리를 얻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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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자기 명철이나 지식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잠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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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슐러의 처남 프랭크벤드 마틴은 18세에 아버지가 경영하는 대장간에서 사고를 당하여 왼손의 엄지손가락을 제외한 나머지 네 손가락을 절단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좌절하지 않고 나머지 손가락들을 사용하여 바이올린을 연주하기에 이르렀고 열심히 연습하여 오하이오주에 있는 수 카운티 교양악단의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가 되었습니다. 성도의 삶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현재의 상황에 개의치 아니하고 오히려 그 모든 상황을 하나님이 주신 기회임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맡기면 전화위복의 역사를 맞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범사에, 즉 희로애락의 어떠한 순간에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그분을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자신의 명철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주님을 의지하여 주님의 지도하심을 받는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의 편협한 지식을 너무 신뢰하면 곧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경향이 생깁니다. 모든 문제의 해답이 자신에게 있다고 믿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기도로 간구하는 것을 잊을 뿐 아니라 심지어 하나님께서 주시는 거룩한 조언도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참으로 위험한 상태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지식을 하찮게 여기고 하나님께서 하나님 되시지 못하게 하는 것은 존귀와는 완전히 상반되는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에게 의존하느냐에 따라 사람의 정체성을 바로 판단됩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누구에게, 무엇에 의존하십니까?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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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이성이나 경험, 지식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달팽이는 무척추 동물이기 때문에 뼈가 없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보호하려면 단단한 겉껍질 뼈가 필요합니다. 달팽이는 누가 건들면 얼른 집 속으로 숨어버립니다. 집이 자신을 지켜줄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는 것입니다. 하지만, 달팽이집은 달팽이를 그리 안전하게 지켜주지 못합니다. 그러나 척추동물은 뼈가 자신의 몸 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재빠르게 도망쳐야 합니다. 딱딱한 껍데기 안으로 숨는 것과, 재빠르게 도망치는 것 중 어느 방법이 더 안전합니까? 당연히 도망치는 것이 더 안전합니다. 우리는 달팽이처럼 겉껍질만 너무 믿고 사는 것은 아닌가요?
사람에게 겉껍질이란 학연, 지연, 인간관계, 기득권 같은 것들입니다.
내 안에 힘이나 실력이 있으면 겉껍질을 의지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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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때와 죽을 때'라는 영화에 보면, 한 사병이 일선에서 휴가를 얻어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그는 전쟁으로 지친 피곤을 풀고 온 가족과 더불어 즐거운 시간을 나눌 것을 생각할 때 기쁨을 억제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집에 도착했을 때 그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폭격으로 건물은 다 파괴되었고 가족은 행방불명이 되었습니다. 그는 일선에서 남의 생명을 죽이기도 했고, 남의 생명을 죽였다는 죄책감에 자살해 버린 친구의 죽음을 목격하기도 했으며, 전쟁으로 지금까지 자기가 믿고 있던 모든 질서와 가치와 도덕이 와해돼 버리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삶의 모순과 부조리를 뼈저리게 느낀 그는 어느 날 무거운 마음을 이끌고 옛 스승 풀만 교수를 찾아갔습니다. ‘교수님, 아직도 우리가 믿을 만한 그 무엇이 남아 있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이 때 교수는 ‘아무렴 남아 있고 말고.’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사병은 ‘그것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었고 풀만 교수는 엄숙한 태도로 ‘그것은 하나님이지.’라고 대답했습니다. ‘교수님은 아직도 신을 믿습니까?’라고 묻자 ‘이러한 위기와 부조리에 처해 있기 때문에 더 믿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어려운 문제에 직면할수록 더욱 주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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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인생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장학금을 받고 법과대학을 졸업한 가난한 청년이 사법고시를 치렀습니다. 이 고시생을 잘 아는 친구를 만나 시험이 어찌 됐느냐고 물었습니다. “이미 합격해 연수를 받고 있다는데요.”
나는 너무 감격해 그토록 가난한 청년이 오직 부모의 기도 하나에 의지해 합격했다고 교인들에게 설교했습니다. 그러나 한 주간 뒤 그 고시생으로부터 시험에 불합격했다는 얘기를 직접 들었습니다. 그때만큼 괴로울 수가 없었습니다. 수많은 사람 앞에서 한 설교가 본의 아니게 거짓말 설교가 된 것입니다. 목사에게 이보다 더 큰 실수, 더 큰 괴로움은 없습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습니다. 1년 동안 강단 앞에 엎드렸습니다. 청년이 반드시 합격해 나의 설교가 거짓이 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다음 해에 그 고시생은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했습니다. 그 후 사람을 믿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는 말씀을 내 마음에 깊이 새겼습니다.(렘17:5).
무릇 부모, 자식, 친구나 성직자, 이웃이나 형제나 심지어 품에 누운 여인에게라도 사람을 의지하고 믿으면 언젠가 실망하고 넘어집니다.(렘9:4, 미7:5)
예수님은 사람들의 마음이 쉽게 변한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에 누구도 의지하지 않으셨습니다. 내심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사람은 믿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특히 한국의 정치인과 삯꾼 목자들은 믿을 수 없습니다. 사람은 연약하고 질그릇처럼 깨지기 쉽습니다. 작은 재물이나 말 한마디로 오랜 친구사이가 우정이 깨지고 떠납니다. 믿었던 사람이 배신하고 속이고 변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귀인(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시146:3)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셈할 가치가 어디 있느냐’(사2:22)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잠2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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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현대과학이나 기술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도 이 배만은 침몰시킬 수 없다고 호언장담하던 거대한 호화여객선이 있었습니다. 1911년 영국의 화이트스타 회사가 건조한 타이타닉호입니다. 이 배는 총46,328t, 길이 259.08m, 폭 28,19m,깊이 19.66m나 되는 것으로 시속이 무려 26노트나 되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크고 빠른 배입니다. 일반인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배로서 선체 또한 이중으로 건조되어 있는 선박입니다. 따라서 설혹 어뢰를 맞는다고 할지라도 끄떡하지 않도록 설계되어 있었으니 교만한 인간들이 그렇게 까불거릴 만도 하지 않은가. 이 배가 영국의 사우샘프턴항에서 뉴욕을 향하여 처녀항해를 하던 1912년 4월 14일 밤 11시 40분경입니다. 배는 뉴턴들랜드 해역에 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배가 얼마나 튼튼하기에 나도 침몰시킬 수 없다고 큰 소리 치는 것인지 한번 시험해 보고 싶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배는 한 덩어리 얼음과 박치기를 했습니다. 이에 배는 2시간 40분 만에 허무하게 침몰했고 승선자 2,208명 중 힘깨나 쓰고 똑똑하다고 자부하던 남자들 1,513명이 배와 함께 수장되고 어린이와 여인 그리고 노약자들 703명만 살아 남았습니다. 사상 유례 없는 해난사고입니다. 타이타닉호의 승선자들과 관련된 사람들, 이 엄청난 비보에 접하자 사랑하는 이들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하여 구름 떼처럼 뉴욕항으로 몰려들었습니다. 이때 그들 앞에는 두 개의 명단이 걸려 있었습니다. 하나는 죽은 사람의 명단이요 다른 하나는 산 사람의 것입니다. 이 명단들을 바라보는 사람들, 문자 그대로 희비쌍곡선을 그리는 난장판을 이루었습니다. 도대체 어느 명단에 들어 있는가. 실로 심각한 문제입니다. 언젠가 우리들도 하나님 앞에서 심문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과연 나는 어느 쪽인가?
‘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의뢰하라 주 여호와는 영원한 반석이심이로다’(사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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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 세상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잠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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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으로 폐허가 된 독일의 쾰른시. 독실한 신앙인으로 알려진 프랑케 부인의 부엌방에 6년 간 세들어 살고 있는 서른 여덟 살의 케테. 그녀의 인생은 온통 비극적이었습니다. 전화교환원인 남편은 가출했으며 남겨진 것은 가난에 중독된 창백한 세 자녀뿐이었습니다. 케테는 한 달에 한 번씩 지저분한 여관에서 남편을 만났습니다. 가난과 고생으로 부쩍 늙어버린 남편을 향해 던지는 케테의 절규. ‘당신은 왜 이 절망적 상황에서 기도하지 않나요. 기도만이 유일한 희망임을 당신도 알잖아요.’ ‘주님은 내게서 너무 멀리 있어.’ ‘아니예요. 지금 우리 곁에 있어요.’
이상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하인리히 뵐의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라는 작품의 일부입니다. 세상에는 완전하신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는 어리석은 도를 따르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들은 하나같이 모두 자신이 진리라고 말하고, 자신만이 평안과 성공으로 안내할 것이라고 유혹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행4:12).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참 길이요 진리가 되십니다. 세상을 바라보며 의지하지 마십시오. 지금 당신 곁에는 예수님이 함께 하고 계십니다.
‘이스라엘아 여호와를 의지하라. 그는 너희 도움이시요 너희 방패시로다 아론의 집이여 여호와를 의지하라 그는 너희 도움이시요 너희 방패시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너희는 여호와를 의지하라. 그는 너희 도움이시요 너희 방패시로다’(시편115: 9-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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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째, 재물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미국의 백화점 왕인 페니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사업에 투신했으나 심한 재정난으로 자살까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급기야는 미시간 주 배틀 크릭에 있는 격리 병원에 수용되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 낙망하고 좌절한 그에게 찬송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가 무거운 몸을 이끌고 맥없이 그곳을 찾아갔더니, 어떤 건물 특별실에서 기도회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그가 뒷자리에 앉아 있을 때 매우 친숙한 찬송 "너 근심 걱정 말아라" 가 불리고 있었습니다. 그 찬송을 듣는 순간 그의 마음에서 좌절감이 사라지고 큰 확신이 생겼습니다. 그는 주님께 외쳤습니다. ‘사랑하는 하나님,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저를 좀 돌봐 주시옵소서.’
그 후 그는 고백하기를 "나는 무한한 어두운 공간에서 찬란한 태양빛으로 옮겨지는 느낌이었고 마음속의 무거운 짐이 옮겨져서 그 방을 나올 때는 새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나는 마비된 심령으로 풀이 죽어서 그곳에 들어갔으나 해방되어 기쁜 마음으로 나왔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건강을 돌보아 주셔서 건강이 회복되었으며 다시 사업을 해서 크게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선하신 주님께서는 주님을 섬기고 의지하는 사람을 보호하시며 후손에게까지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으로 자기 힘을 삼지 않고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고 풍부함으로 자긍하는 자는 언젠가 자기 장막에서 뽑아지고 넘어지고(시49:6,7, 시52:5-7),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합니다.(막10:25)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어야 합니다.(딤전6:17)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는 자는 패망하려니와 의인은 푸른 잎사귀 같아서 번성하리라’(잠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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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어려움이 온다 해도 하나님만 의지하겠노라 결심한 허드슨 테일러에게 하나님은 물질적인 궁핍을 통해 시험하셨습니다. 그는 석 달에 한 번 나오는 봉급날이 훨씬 지나도록 돈을 받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전도와 심방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테일러에게 가난한 남자 한 명이 찾아와 죽어 가는 자기 아내를 위해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이때 호주머니에 당장 식비로 쓸 반 크라운짜리 은화 한 개밖에 없음을 알게 된 테일러는 ??이 반 크라운짜리 은화 대신에 잔돈이 있다면 1실링을 줄 수 있을 텐데…?? 하며 그를 따라갔습니다.(당시 영국에서 1크라운은 5실링에 해당했다.)
초라한 방에는 네 명의 아이들이 영양실조에 걸려 있었고, 냄새 나는 돗자리 위에는 갓난아이를 품에 안은 한 여인이 죽어 가고 있었습니다. 감히 그들에게 위로할 말을 찾지 못한 채,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말만 간신히 꺼냈습니다. 그때??이 위선자야, 날마다 사랑과 봉사를 운운하면서 네 주머니 속의 은화는 그들에게 통째로 줄 수 없단 말이냐???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비수처럼 그의 가슴에 꽂혔습니다. 결국 자신이 가지고 있던 은화를 그들에게 주면서 하나님을 증거했습니다. 테일러의 마음속에는 말할 수 없는 기쁨이 밀려왔고, 돌아오는 발걸음은 마냥 즐겁기만 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집 주인이 소포 꾸러미를 하나 건네주었습니다. 놀랍게도 그 속에는 10실링짜리 금화가 들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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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째, 자기 자신의 권세와 힘, 재능, 마음을 의지하지 말아야 합니다.
1959년 9월 27일 주일이었습니다.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소련 수상 후르시초프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오늘은 주일이니 나와 함께 교회에 갑시다.”
후르시초프는 거절하였습니다. 아이젠하워는 한 시간 반만 기다려달라고 하였습니다. 예배가 끝나자 아이젠하워는 후르시초프를 만났습니다. 아이젠하워가 “한 시간 반 동안 무엇을 하셨습니까?” 하고 묻자 후르시초프는 “내가 먼 길을 찾아왔는데도 교회에 가야 할 아이젠하워의 핑계가 무엇일지 생각했소”라고 말했습니다.
당시 초강대국인 소련의 수상을 초청해놓고 예배에 참석하느라고 그를 기다리게 한다는 것은 외교적인 상식으로는 상상할 수조차 없는 일입니다. 잘못하면 외교 및 국가적인 손실과 분쟁으로 악화될 수도 있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아이젠하워의 행동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예배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신앙의 깊은 세계를 아는 자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헛된 것을 붙들지 마십시오. 깊은 세계가 있습니다. 깊은 신앙을 통하여 은혜의 세계를 체험하고 이 땅에 하나님의 세계를 이루어가시기 바랍니다. 말씀에 의지하여 순종하십시오. 말씀에 의지하여 신앙의 깊은 세계로 들어가십시오.
자신의 힘과 결심과 마음을 믿고 의지하지 마십시오. 베드로는 다른 사람은 버릴 지라도 자신은 결코 변하지 않는 다고 호언장담했으나 닭울기 전에 3번이나 주님을 부인했습니다.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베드로가 이르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그와 같이 말하니라’(마26:33-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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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214장 3절 가사를 봅시다.
‘내 힘과 결심 약하여 늘 깨어지기 쉬우니 주 이름으로 날 받아주소서 내 모습 이대로 주 받아주소서 날 위해 돌아가신 주 날 받아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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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어떤 사람은 자기 몸의 건강이나 생명보험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고 기도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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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덞째, 자국의 군사력이나 무기, 외국 군대의 힘을 의지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병거, 어떤 사람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시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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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은 골리앗과 싸울 때 무기를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싸워 승리했습니다. 그런 다윗이 하나님보다 군대를 의지했다가 크게 매를 맞은 일이 있습니다. 사사기 7장에 보면 하나님이 기드온을 일으켜 이스라엘을 구원하려 하실 때 지원병이 32,000명이나 모여들었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 ‘…너를 좇은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붙이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스려 자긍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고 말씀하시고 추리고 추려서 300명을 데리고 미디안을 쳐부수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군대의 힘을 더 의지할까봐 그리하셨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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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 11장 6- 9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말 뒷발의 힘줄을 끊고 병기를 불사르고 명하신 까닭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후일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마병을 의지할 것을 염려하여서입니다.
사무엘상 14장 6절에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의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고 하셨고, 시편 44편 6˜7절에 ‘나는 내 활을 의지하지 아니할 것이라 내 칼도 나를 구원치 못하리이다 오직 주께서 우리를 우리 대적에게서 구원하시고 우리를 미워하는 자로 수치를 당케 하셨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전쟁의 승리와 패배, 국가의 흥망성쇠는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깨닫고 하나님께만 의지해야 합니다.
북한은 핵무기를 의지하고 우리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핵무기를 무용지물로 만드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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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째, 다른 신 곧 우상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
‘우상은 은과 금이요 사람의 수공물이라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코가 있어도 맡지 못하며 손이 있어도 만지지 못하며 발이 있어도 걷지 못하며 목구멍으로 소리도 못하느니라 우상을 만드는 자와 그것을 의지하는 자가 다 그와 같으리로다’(시1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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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는 800만 종류의 우상이 있다고 합니다. 우상을 의지하고 섬기는 자는 망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상숭배자들을 미워하시고 진멸하십니다.
‘조각된 신상을 섬기는 자는 누구나 수치를 당할 것이며, 헛된 우상을 자랑하는 자들도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다. 모든 신들아, 주님 앞에 엎드려라.’(시97:7)
‘너희도 알거니와 너희가 이방인으로 있을 때에 말 못하는 우상에게로 끄는 그대로 끌려 갔느니라’(고전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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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은 누군가를 섬기고 있습니다. 만약 하나님을 섬기고 있지 않다면, 다른 무엇인가를 섬기고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섬기는 그 ‘다른 무엇’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우상들’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섹스라는 우상, 술이라는 우상, 스타라는 우상, 게임이라는 우상, 돈이라는 우상, 마약이라는 우상, 개인숭배의 우상, 성공이라는 우상, 과학 기술이라는 우상 등에 빠른 속도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붙잡고 섬기다가 다른 것을 잡으면 멸망합니다.
세상에서 영원한 것이란 없습니다. 권력도 세월 속에 무상해지고, 인간의 지혜도 이성도 늙으면 흐려지며, 육체도 세월 속에 병들며 늙어가고 재물도 점점 사라집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것들에 자신을 의지하는 자는 결국 권력과 재물과 지혜가 사라져 갈 때 그의 삶도 허망하게 사라져갈 뿐입니다. 그러나 오직 한 분, 영원히 변치 않으시는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지혜와 힘과 능력을 의지하십시오. 그리할 때 하나님의 영원하심과 더불어 여러분의 삶도 영원한 생명으로 채워질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의 집에서 싱싱하게 자라나는 감람나무 같으니 내가 하나님의 한결같은 사랑을 영원히 의지하리라.’(시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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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가 멘델스존이 유럽 최고의 오르간이 있다는 성당을 방문했습니다. 멘델스존은 오르간을 한 번 연주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지만 성당 연주자는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 "이 오르간이 얼마나 귀한 것인 줄 아십니까? 이 귀한 걸 아무에게나 맡길 수는 없습니다."
멘델스존은 끈질기게 간청한 끝에 마침내 허락을 받았습니다. 그의 손가락이 건반 위를 달리는 순간, 이제껏 성당 연주자가 들어보지 못한 아름답고 웅장한 멜로디가 성당을 가득 채웠습니다. 나중에 멘델스존의 정체를 알게 된 성당 연주자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당신이 그 위대한 음악가 멘델스존이란 말입니까? 위대한 음악가에게 오르간을 맡길 수 없다고 했다니, 제가 정말 어리석었군요."
나보다 능력 있는 분에게 인생을 맡길 수 있다면 아무것도 걱정하거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을뿐 아니라 더 큰 소망을 품고 더 큰 꿈을 꾸게 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가진 재능, 실력이 아니라 '누구를 붙들고 무엇을 의지하느냐'입니다. 우리 스스로 파도를 만들어 낼 수 없지만 크고 강력한 파도를 만나면 멋진 서핑을 할 수 있고, 우리 스스로 바람을 만들 수 없지만 센 바람을 만나면 하늘 높이 연을 날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그저 하나님이 우리 삶을 그분 뜻대로 연주하시도록 자리를 내 드리는 것뿐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죄악된 나는 죽고 하나님만을 온전히 의지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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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도: 나의 기도를 들으시는 주님, 주님만이 나의 구원이심을 고백합니다. 나의 암담한 현실과 방향 감각을 잃은 이 어두운 여정에서 곁에서 도우시는 주님을 온전히 의지하게 하시며 하나님만이 내 삶의 이정표가 되셔서 나를 인도하소서. 우리의 힘이신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소서. 인간의 수단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게 하소서. 하나님의 치유의 능력을 의지하게 하소서 마지막 순간까지 주님만을 의지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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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릴리 공동체 http://cafe.daum.net/Galileecommunity
(http://blog.naver.com/allcome, http://cafe.naver.com/newgal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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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의지합니까? 댓글[0]
지유로운 글 (2014-04-04 오후 6:12:17) http://blog.somang.net/holylove/8114
무엇을 의지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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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렘17:7, 찬송가 542장 <통> 340장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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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는 부유한 귀족 출신에다가 작가로서도 크게 성공하여 부러울 것 없는 생활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참 만족이 없었습니다. 죄에 대한 공포로 불안한 나날을 보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적한 시골 길을 걸어가다가 너무나 평화로워 보이는 한 시골 농부를 만났습니다. 톨스토이는 농부에게 다가가 당신의 그 평화로움의 비결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농부가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저는 항상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살지요. 그래서 제 마음은 늘 기쁘답니다.’ 그 말을 들은 톨스토이는 그때부터 진지하게 하나님을 찾기 시작했고 결국 하나님을 만나 과거의 불안과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며 돌아가시는 순간까지도 하나님께서 아버지이시며 자신의 영혼을 받아주실 것을 확신하셨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하나님을 믿고 의지합니까? 항상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께 맡기십시오. 그러면 삶의 불안과 공포에서 벗어나 하나님께서 넘치도록 베풀어 주시는 평화와 기쁨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상에서 운명하실 때에도 하나님을 의지하였습니다.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운명하시다"(눅23: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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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누구나 혼자서 살아갈 수 없습니다.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무엇인가 붙잡고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때로는 부모형제를 의지하고 남편은 아내를, 아내는 남편을 의지하고 살아갑니다. 혹은 지식이나 기술 재능 명예 권세를 붙잡고 삽니다. 인생은 원래 불안전하기 때문에 무엇이라도 붙잡지 않으면 불안해서 살아갈 수 없습니다. 무엇을 붙잡고 누구를 의지하고 사느냐에 따라 행복과 불행, 성공과 실패가 달려있습니다. 과연 우리는 어떻게 누구를 의지하고 살아야 영원한 축복과 승리를 얻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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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자기 명철이나 지식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잠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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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슐러의 처남 프랭크벤드 마틴은 18세에 아버지가 경영하는 대장간에서 사고를 당하여 왼손의 엄지손가락을 제외한 나머지 네 손가락을 절단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좌절하지 않고 나머지 손가락들을 사용하여 바이올린을 연주하기에 이르렀고 열심히 연습하여 오하이오주에 있는 수 카운티 교양악단의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가 되었습니다. 성도의 삶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현재의 상황에 개의치 아니하고 오히려 그 모든 상황을 하나님이 주신 기회임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맡기면 전화위복의 역사를 맞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범사에, 즉 희로애락의 어떠한 순간에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그분을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자신의 명철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주님을 의지하여 주님의 지도하심을 받는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의 편협한 지식을 너무 신뢰하면 곧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경향이 생깁니다. 모든 문제의 해답이 자신에게 있다고 믿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기도로 간구하는 것을 잊을 뿐 아니라 심지어 하나님께서 주시는 거룩한 조언도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참으로 위험한 상태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지식을 하찮게 여기고 하나님께서 하나님 되시지 못하게 하는 것은 존귀와는 완전히 상반되는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에게 의존하느냐에 따라 사람의 정체성을 바로 판단됩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누구에게, 무엇에 의존하십니까?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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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이성이나 경험, 지식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달팽이는 무척추 동물이기 때문에 뼈가 없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보호하려면 단단한 겉껍질 뼈가 필요합니다. 달팽이는 누가 건들면 얼른 집 속으로 숨어버립니다. 집이 자신을 지켜줄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는 것입니다. 하지만, 달팽이집은 달팽이를 그리 안전하게 지켜주지 못합니다. 그러나 척추동물은 뼈가 자신의 몸 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재빠르게 도망쳐야 합니다. 딱딱한 껍데기 안으로 숨는 것과, 재빠르게 도망치는 것 중 어느 방법이 더 안전합니까? 당연히 도망치는 것이 더 안전합니다. 우리는 달팽이처럼 겉껍질만 너무 믿고 사는 것은 아닌가요?
사람에게 겉껍질이란 학연, 지연, 인간관계, 기득권 같은 것들입니다.
내 안에 힘이나 실력이 있으면 겉껍질을 의지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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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때와 죽을 때'라는 영화에 보면, 한 사병이 일선에서 휴가를 얻어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그는 전쟁으로 지친 피곤을 풀고 온 가족과 더불어 즐거운 시간을 나눌 것을 생각할 때 기쁨을 억제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집에 도착했을 때 그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폭격으로 건물은 다 파괴되었고 가족은 행방불명이 되었습니다. 그는 일선에서 남의 생명을 죽이기도 했고, 남의 생명을 죽였다는 죄책감에 자살해 버린 친구의 죽음을 목격하기도 했으며, 전쟁으로 지금까지 자기가 믿고 있던 모든 질서와 가치와 도덕이 와해돼 버리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삶의 모순과 부조리를 뼈저리게 느낀 그는 어느 날 무거운 마음을 이끌고 옛 스승 풀만 교수를 찾아갔습니다. ‘교수님, 아직도 우리가 믿을 만한 그 무엇이 남아 있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이 때 교수는 ‘아무렴 남아 있고 말고.’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사병은 ‘그것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었고 풀만 교수는 엄숙한 태도로 ‘그것은 하나님이지.’라고 대답했습니다. ‘교수님은 아직도 신을 믿습니까?’라고 묻자 ‘이러한 위기와 부조리에 처해 있기 때문에 더 믿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어려운 문제에 직면할수록 더욱 주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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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인생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장학금을 받고 법과대학을 졸업한 가난한 청년이 사법고시를 치렀습니다. 이 고시생을 잘 아는 친구를 만나 시험이 어찌 됐느냐고 물었습니다. “이미 합격해 연수를 받고 있다는데요.”
나는 너무 감격해 그토록 가난한 청년이 오직 부모의 기도 하나에 의지해 합격했다고 교인들에게 설교했습니다. 그러나 한 주간 뒤 그 고시생으로부터 시험에 불합격했다는 얘기를 직접 들었습니다. 그때만큼 괴로울 수가 없었습니다. 수많은 사람 앞에서 한 설교가 본의 아니게 거짓말 설교가 된 것입니다. 목사에게 이보다 더 큰 실수, 더 큰 괴로움은 없습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습니다. 1년 동안 강단 앞에 엎드렸습니다. 청년이 반드시 합격해 나의 설교가 거짓이 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다음 해에 그 고시생은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했습니다. 그 후 사람을 믿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는 말씀을 내 마음에 깊이 새겼습니다.(렘17:5).
무릇 부모, 자식, 친구나 성직자, 이웃이나 형제나 심지어 품에 누운 여인에게라도 사람을 의지하고 믿으면 언젠가 실망하고 넘어집니다.(렘9:4, 미7:5)
예수님은 사람들의 마음이 쉽게 변한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에 누구도 의지하지 않으셨습니다. 내심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사람은 믿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특히 한국의 정치인과 삯꾼 목자들은 믿을 수 없습니다. 사람은 연약하고 질그릇처럼 깨지기 쉽습니다. 작은 재물이나 말 한마디로 오랜 친구사이가 우정이 깨지고 떠납니다. 믿었던 사람이 배신하고 속이고 변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귀인(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시146:3)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셈할 가치가 어디 있느냐’(사2:22)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잠2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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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현대과학이나 기술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도 이 배만은 침몰시킬 수 없다고 호언장담하던 거대한 호화여객선이 있었습니다. 1911년 영국의 화이트스타 회사가 건조한 타이타닉호입니다. 이 배는 총46,328t, 길이 259.08m, 폭 28,19m,깊이 19.66m나 되는 것으로 시속이 무려 26노트나 되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크고 빠른 배입니다. 일반인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배로서 선체 또한 이중으로 건조되어 있는 선박입니다. 따라서 설혹 어뢰를 맞는다고 할지라도 끄떡하지 않도록 설계되어 있었으니 교만한 인간들이 그렇게 까불거릴 만도 하지 않은가. 이 배가 영국의 사우샘프턴항에서 뉴욕을 향하여 처녀항해를 하던 1912년 4월 14일 밤 11시 40분경입니다. 배는 뉴턴들랜드 해역에 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배가 얼마나 튼튼하기에 나도 침몰시킬 수 없다고 큰 소리 치는 것인지 한번 시험해 보고 싶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배는 한 덩어리 얼음과 박치기를 했습니다. 이에 배는 2시간 40분 만에 허무하게 침몰했고 승선자 2,208명 중 힘깨나 쓰고 똑똑하다고 자부하던 남자들 1,513명이 배와 함께 수장되고 어린이와 여인 그리고 노약자들 703명만 살아 남았습니다. 사상 유례 없는 해난사고입니다. 타이타닉호의 승선자들과 관련된 사람들, 이 엄청난 비보에 접하자 사랑하는 이들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하여 구름 떼처럼 뉴욕항으로 몰려들었습니다. 이때 그들 앞에는 두 개의 명단이 걸려 있었습니다. 하나는 죽은 사람의 명단이요 다른 하나는 산 사람의 것입니다. 이 명단들을 바라보는 사람들, 문자 그대로 희비쌍곡선을 그리는 난장판을 이루었습니다. 도대체 어느 명단에 들어 있는가. 실로 심각한 문제입니다. 언젠가 우리들도 하나님 앞에서 심문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과연 나는 어느 쪽인가?
‘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의뢰하라 주 여호와는 영원한 반석이심이로다’(사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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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 세상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잠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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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으로 폐허가 된 독일의 쾰른시. 독실한 신앙인으로 알려진 프랑케 부인의 부엌방에 6년 간 세들어 살고 있는 서른 여덟 살의 케테. 그녀의 인생은 온통 비극적이었습니다. 전화교환원인 남편은 가출했으며 남겨진 것은 가난에 중독된 창백한 세 자녀뿐이었습니다. 케테는 한 달에 한 번씩 지저분한 여관에서 남편을 만났습니다. 가난과 고생으로 부쩍 늙어버린 남편을 향해 던지는 케테의 절규. ‘당신은 왜 이 절망적 상황에서 기도하지 않나요. 기도만이 유일한 희망임을 당신도 알잖아요.’ ‘주님은 내게서 너무 멀리 있어.’ ‘아니예요. 지금 우리 곁에 있어요.’
이상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하인리히 뵐의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라는 작품의 일부입니다. 세상에는 완전하신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는 어리석은 도를 따르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들은 하나같이 모두 자신이 진리라고 말하고, 자신만이 평안과 성공으로 안내할 것이라고 유혹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행4:12).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참 길이요 진리가 되십니다. 세상을 바라보며 의지하지 마십시오. 지금 당신 곁에는 예수님이 함께 하고 계십니다.
‘이스라엘아 여호와를 의지하라. 그는 너희 도움이시요 너희 방패시로다 아론의 집이여 여호와를 의지하라 그는 너희 도움이시요 너희 방패시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너희는 여호와를 의지하라. 그는 너희 도움이시요 너희 방패시로다’(시편115: 9-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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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째, 재물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미국의 백화점 왕인 페니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사업에 투신했으나 심한 재정난으로 자살까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급기야는 미시간 주 배틀 크릭에 있는 격리 병원에 수용되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 낙망하고 좌절한 그에게 찬송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가 무거운 몸을 이끌고 맥없이 그곳을 찾아갔더니, 어떤 건물 특별실에서 기도회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그가 뒷자리에 앉아 있을 때 매우 친숙한 찬송 "너 근심 걱정 말아라" 가 불리고 있었습니다. 그 찬송을 듣는 순간 그의 마음에서 좌절감이 사라지고 큰 확신이 생겼습니다. 그는 주님께 외쳤습니다. ‘사랑하는 하나님,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저를 좀 돌봐 주시옵소서.’
그 후 그는 고백하기를 "나는 무한한 어두운 공간에서 찬란한 태양빛으로 옮겨지는 느낌이었고 마음속의 무거운 짐이 옮겨져서 그 방을 나올 때는 새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나는 마비된 심령으로 풀이 죽어서 그곳에 들어갔으나 해방되어 기쁜 마음으로 나왔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건강을 돌보아 주셔서 건강이 회복되었으며 다시 사업을 해서 크게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선하신 주님께서는 주님을 섬기고 의지하는 사람을 보호하시며 후손에게까지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으로 자기 힘을 삼지 않고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고 풍부함으로 자긍하는 자는 언젠가 자기 장막에서 뽑아지고 넘어지고(시49:6,7, 시52:5-7),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합니다.(막10:25)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어야 합니다.(딤전6:17)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는 자는 패망하려니와 의인은 푸른 잎사귀 같아서 번성하리라’(잠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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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어려움이 온다 해도 하나님만 의지하겠노라 결심한 허드슨 테일러에게 하나님은 물질적인 궁핍을 통해 시험하셨습니다. 그는 석 달에 한 번 나오는 봉급날이 훨씬 지나도록 돈을 받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전도와 심방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테일러에게 가난한 남자 한 명이 찾아와 죽어 가는 자기 아내를 위해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이때 호주머니에 당장 식비로 쓸 반 크라운짜리 은화 한 개밖에 없음을 알게 된 테일러는 ??이 반 크라운짜리 은화 대신에 잔돈이 있다면 1실링을 줄 수 있을 텐데…?? 하며 그를 따라갔습니다.(당시 영국에서 1크라운은 5실링에 해당했다.)
초라한 방에는 네 명의 아이들이 영양실조에 걸려 있었고, 냄새 나는 돗자리 위에는 갓난아이를 품에 안은 한 여인이 죽어 가고 있었습니다. 감히 그들에게 위로할 말을 찾지 못한 채,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말만 간신히 꺼냈습니다. 그때??이 위선자야, 날마다 사랑과 봉사를 운운하면서 네 주머니 속의 은화는 그들에게 통째로 줄 수 없단 말이냐???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비수처럼 그의 가슴에 꽂혔습니다. 결국 자신이 가지고 있던 은화를 그들에게 주면서 하나님을 증거했습니다. 테일러의 마음속에는 말할 수 없는 기쁨이 밀려왔고, 돌아오는 발걸음은 마냥 즐겁기만 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집 주인이 소포 꾸러미를 하나 건네주었습니다. 놀랍게도 그 속에는 10실링짜리 금화가 들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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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째, 자기 자신의 권세와 힘, 재능, 마음을 의지하지 말아야 합니다.
1959년 9월 27일 주일이었습니다.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소련 수상 후르시초프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오늘은 주일이니 나와 함께 교회에 갑시다.”
후르시초프는 거절하였습니다. 아이젠하워는 한 시간 반만 기다려달라고 하였습니다. 예배가 끝나자 아이젠하워는 후르시초프를 만났습니다. 아이젠하워가 “한 시간 반 동안 무엇을 하셨습니까?” 하고 묻자 후르시초프는 “내가 먼 길을 찾아왔는데도 교회에 가야 할 아이젠하워의 핑계가 무엇일지 생각했소”라고 말했습니다.
당시 초강대국인 소련의 수상을 초청해놓고 예배에 참석하느라고 그를 기다리게 한다는 것은 외교적인 상식으로는 상상할 수조차 없는 일입니다. 잘못하면 외교 및 국가적인 손실과 분쟁으로 악화될 수도 있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아이젠하워의 행동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예배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신앙의 깊은 세계를 아는 자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헛된 것을 붙들지 마십시오. 깊은 세계가 있습니다. 깊은 신앙을 통하여 은혜의 세계를 체험하고 이 땅에 하나님의 세계를 이루어가시기 바랍니다. 말씀에 의지하여 순종하십시오. 말씀에 의지하여 신앙의 깊은 세계로 들어가십시오.
자신의 힘과 결심과 마음을 믿고 의지하지 마십시오. 베드로는 다른 사람은 버릴 지라도 자신은 결코 변하지 않는 다고 호언장담했으나 닭울기 전에 3번이나 주님을 부인했습니다.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베드로가 이르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그와 같이 말하니라’(마26:33-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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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214장 3절 가사를 봅시다.
‘내 힘과 결심 약하여 늘 깨어지기 쉬우니 주 이름으로 날 받아주소서 내 모습 이대로 주 받아주소서 날 위해 돌아가신 주 날 받아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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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어떤 사람은 자기 몸의 건강이나 생명보험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고 기도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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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덞째, 자국의 군사력이나 무기, 외국 군대의 힘을 의지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병거, 어떤 사람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시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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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은 골리앗과 싸울 때 무기를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싸워 승리했습니다. 그런 다윗이 하나님보다 군대를 의지했다가 크게 매를 맞은 일이 있습니다. 사사기 7장에 보면 하나님이 기드온을 일으켜 이스라엘을 구원하려 하실 때 지원병이 32,000명이나 모여들었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 ‘…너를 좇은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붙이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스려 자긍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고 말씀하시고 추리고 추려서 300명을 데리고 미디안을 쳐부수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군대의 힘을 더 의지할까봐 그리하셨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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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 11장 6- 9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말 뒷발의 힘줄을 끊고 병기를 불사르고 명하신 까닭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후일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마병을 의지할 것을 염려하여서입니다.
사무엘상 14장 6절에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의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고 하셨고, 시편 44편 6˜7절에 ‘나는 내 활을 의지하지 아니할 것이라 내 칼도 나를 구원치 못하리이다 오직 주께서 우리를 우리 대적에게서 구원하시고 우리를 미워하는 자로 수치를 당케 하셨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전쟁의 승리와 패배, 국가의 흥망성쇠는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깨닫고 하나님께만 의지해야 합니다.
북한은 핵무기를 의지하고 우리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핵무기를 무용지물로 만드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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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째, 다른 신 곧 우상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
‘우상은 은과 금이요 사람의 수공물이라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코가 있어도 맡지 못하며 손이 있어도 만지지 못하며 발이 있어도 걷지 못하며 목구멍으로 소리도 못하느니라 우상을 만드는 자와 그것을 의지하는 자가 다 그와 같으리로다’(시1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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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는 800만 종류의 우상이 있다고 합니다. 우상을 의지하고 섬기는 자는 망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상숭배자들을 미워하시고 진멸하십니다.
‘조각된 신상을 섬기는 자는 누구나 수치를 당할 것이며, 헛된 우상을 자랑하는 자들도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다. 모든 신들아, 주님 앞에 엎드려라.’(시97:7)
‘너희도 알거니와 너희가 이방인으로 있을 때에 말 못하는 우상에게로 끄는 그대로 끌려 갔느니라’(고전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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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은 누군가를 섬기고 있습니다. 만약 하나님을 섬기고 있지 않다면, 다른 무엇인가를 섬기고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섬기는 그 ‘다른 무엇’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우상들’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섹스라는 우상, 술이라는 우상, 스타라는 우상, 게임이라는 우상, 돈이라는 우상, 마약이라는 우상, 개인숭배의 우상, 성공이라는 우상, 과학 기술이라는 우상 등에 빠른 속도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붙잡고 섬기다가 다른 것을 잡으면 멸망합니다.
세상에서 영원한 것이란 없습니다. 권력도 세월 속에 무상해지고, 인간의 지혜도 이성도 늙으면 흐려지며, 육체도 세월 속에 병들며 늙어가고 재물도 점점 사라집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것들에 자신을 의지하는 자는 결국 권력과 재물과 지혜가 사라져 갈 때 그의 삶도 허망하게 사라져갈 뿐입니다. 그러나 오직 한 분, 영원히 변치 않으시는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지혜와 힘과 능력을 의지하십시오. 그리할 때 하나님의 영원하심과 더불어 여러분의 삶도 영원한 생명으로 채워질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의 집에서 싱싱하게 자라나는 감람나무 같으니 내가 하나님의 한결같은 사랑을 영원히 의지하리라.’(시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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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가 멘델스존이 유럽 최고의 오르간이 있다는 성당을 방문했습니다. 멘델스존은 오르간을 한 번 연주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지만 성당 연주자는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 "이 오르간이 얼마나 귀한 것인 줄 아십니까? 이 귀한 걸 아무에게나 맡길 수는 없습니다."
멘델스존은 끈질기게 간청한 끝에 마침내 허락을 받았습니다. 그의 손가락이 건반 위를 달리는 순간, 이제껏 성당 연주자가 들어보지 못한 아름답고 웅장한 멜로디가 성당을 가득 채웠습니다. 나중에 멘델스존의 정체를 알게 된 성당 연주자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당신이 그 위대한 음악가 멘델스존이란 말입니까? 위대한 음악가에게 오르간을 맡길 수 없다고 했다니, 제가 정말 어리석었군요."
나보다 능력 있는 분에게 인생을 맡길 수 있다면 아무것도 걱정하거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을뿐 아니라 더 큰 소망을 품고 더 큰 꿈을 꾸게 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가진 재능, 실력이 아니라 '누구를 붙들고 무엇을 의지하느냐'입니다. 우리 스스로 파도를 만들어 낼 수 없지만 크고 강력한 파도를 만나면 멋진 서핑을 할 수 있고, 우리 스스로 바람을 만들 수 없지만 센 바람을 만나면 하늘 높이 연을 날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그저 하나님이 우리 삶을 그분 뜻대로 연주하시도록 자리를 내 드리는 것뿐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죄악된 나는 죽고 하나님만을 온전히 의지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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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도: 나의 기도를 들으시는 주님, 주님만이 나의 구원이심을 고백합니다. 나의 암담한 현실과 방향 감각을 잃은 이 어두운 여정에서 곁에서 도우시는 주님을 온전히 의지하게 하시며 하나님만이 내 삶의 이정표가 되셔서 나를 인도하소서. 우리의 힘이신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소서. 인간의 수단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게 하소서. 하나님의 치유의 능력을 의지하게 하소서 마지막 순간까지 주님만을 의지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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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릴리 공동체 http://cafe.daum.net/Galileecommunity
(http://blog.naver.com/allcome, http://cafe.naver.com/newgali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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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유로운 글 (2013-07-24 오후 12:56:48) http://blog.somang.net/holylove/7910
크리스천의 나라사랑
 

본문: 시33: 12
‘여호와로 자기 하나님을 삼은 나라 곧 하나님의 기업으로 빼신 바 된 백성은 복이 있도다.’

 
가리발디는 19세기 이탈리아의 개혁과 통일운동에 공헌한 국민적 영웅입니다. 어느 날 가리발디가 청년들을 모아놓고 민족을 위해 싸우자고 역설하자 한 청년이 나와서 "만일 내가 조국을 위해 사운다면 그 대가는 무엇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가리발디는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칼에 베인 상처, 심한 부상, 끝내 죽음이 대가로 주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잊지 마십시오, 그대들의 상처와 죽음으로 이탈리아는 자유로운 나라가 될 것이요, 우리의 후손은 평화롭게 살 것입니다."
 
그리고 3 . 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이었던 남궁억 선생님은 암울한 역사에 한 줄기 빛으로 살았습니다. 그는 황성신문 사장, 현산학교 설립자, 관동학회 회장 등으로 나라를 위해 일했습니다. 찬송가 580장(구 371장)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은 그의 작품입니다. 그는 특히 무궁화 심기 운동을 전개해 나라 사랑과 독립의지를 일깨웠습니다. 그러나 그 일로 일경에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받아 순국했습니다. 그는 죽음을 앞두고 이런 유언장을 남겼습니다. "내가 죽으면 시체를 불살라 곱게 가루 내어 무궁화나무에 거름으로 주게 하라" "누가 진정한 애국자인가?" 이 질문에 대해 명쾌한 답변을 내리기는 참 어렵습니다. 지금처럼 세상이 어수선한 때는 더욱 애국자가 필요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애국자인 것 같은데 사실은 나라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도 많습니다. 애국자로 자처하면서 부정한 방법으로 부를 축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성경의 인물 중 느헤미아는 직접 조국 건설에 헌신한 애국 선지자입니다. 그는 본래 바사나라 수산궁에서 높은 지위의 권세자로 있었습니다. 하나니와 몇 사람을 통해서 자기의 조국 예루살렘의 비참한 소식을 전해 듣고 조국을 위하여 슬피 울고,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였습니다.(느1:1-11) 진정한 애국자란 나라와 민족을 위해 눈물 흘리며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또한 백성들의 죄를 위해 참회의 눈물을 대신 흘릴 줄 아는 사람이 애국자인 것입니다. 백성들이 타락하면 결국 그 나라는 망하게 됩니다. 관리들은 부정부패를 일삼고 인권이 무참히 짓밟히는 세상, 인신매매가 성행하고 약자들의 신음소리가 세상에 진동하는 사회, 퇴폐업소가 늘어나고 정직한 사람들이 바보 취급을 당하는 현상.... 이런 현상들이 바로 멸망의 징조입니다.
 

느헤미아는 백성들의 죄를 가슴에 안고 통회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가슴을 찢으며 회개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백성들이 당할 심판을 생각하며 두려운 마음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이들은 주께서 일찍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구속하신 주의 종이요 주의 백성이니이다. 큰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느혜미아의 눈물과 금식의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은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한 나라의 흥망과 성쇠는 모두 하나님의 주권하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으면 우리의 미래는 암흑일 뿐입니다. 오늘날 이 민족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은헤입니다. 모든 기독교인들이 한 목소리로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해야 합니다. 기독교인들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떠나버린 개인과 국가는 멸망하게 됩니다. 한국교회는 새벽마다 민족의 죄를 가슴에 안고 눈물의 기도를 드리는 백성들이 많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의 기도를 듣고 계십니다. 성경에 "의는 나라로 영화롭게 하고, 죄는 백성을 욕되게 하느니라"(잠14:34)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죄가 많고, 도덕적으로 문란하고, 무속이 성행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이 악한 세상을 안타까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계십니다. 침체된 한국교회가 다시 부흥하려면 성도들이 눈물로 회개하여 변화되고 용서받아 하나님의 은혜가 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도록 간구하는 사람들이 진정한 의미에서 애국자입니다. 기도의 용병들이 버티고 있는 나라는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느헤미아의 기도를 나의 기도로 삼아야 합니다. 우리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 눈물의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기독교인들은 모두 애국자여야 합니다. 그리고 애국하는 길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이 민족의 죄를 모두 털어놓고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고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우리도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할 일은 해야 되겠습니다. 국가는 비행기나 배와 같습니다. 비행기나 배가 위험하면 타고 있는 승객은 모두 위험합니다.
‘그가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또한 우리를 위하여 회당을 지었나이다 하니’(눅7:5)

 
이철신 목사(영락교회)의 칼럼을 소개합니다.
우리나라는 매우 위험한 나라입니다. 호전적인 세력과 분단되어 있습니다. 아직도 전쟁이 끝나지 않았고 계속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언제 어디서 전투가 벌어질지 예측할 수도 없습니다.
남북이 만나고 회담하고 합의하고 합의문을 발표합니다. 그러나 합의문은 간단히 휴지조각이 되고, 합의는 지켜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떤 방법으로도 도발을 막을 수 없고, 전쟁이 끝나지 않습니다. 아마 북한의 세습 독재체제에 굴복하면 전쟁위협이 끝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분단보다도 더 오랫동안, 더 극심한 고통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보다 더 위험한 나라가 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입니다. 주위의 아랍국가에 둘러싸여서 경제적, 외교적 제재를 받고 있습니다. 수시로 박격포 공격을 받고 테러를 당합니다. 전선이 없는 전쟁을 하기 때문에, 이스라엘 내에 안전한 곳은 아무데도 없습니다. 항상 전 국토가 위험한 나라가 이스라엘입니다. “창업국가(Start- up Nation)"라는 책은, 이렇게 위험한 나라에서 어떻게 경제성장이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기술한 책입니다.
 
이스라엘은 이민자의 나라입니다. 이 위험한 나라에 전 세계의 유대인이 용감하게 이민해 왔습니다. 1948년에 이스라엘이 건국할 당시 인구는 80만 명이었는데, 60년 만에 그 수는 9배가 되어 현재 인구는 710만 명에 이릅니다. 각국에 있는 탁월한 전문가들이 이 위함한 나라로 이민해 왔습니다. 그들은 조국을 위해서 자기 인생을 내던지며 도전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또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전쟁이 벌어져도 전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놀라운 것은, 반 이스라엘 투쟁이 일어나고 로켓포가 날아오는 기간에도 경제성장률이 변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아무리 포격이나 테러가 있어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미사일이 날아와도 직장에 출근하는 비율은 더 높았고, 방독면을 쓰고 일을 했고, 기업 생산성은 더 올라갔습니다.
그들은 다브카(davca), 즉 “공격할 테면 해봐라. 우리는 오기로라도 더 성공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가졌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기업들은 자기 기업을 선전하는 것보다 이스라엘 나라를 더 많이 선전했습니다. 또한 기업인들은 개인뿐 아니라 국가적 목적에 투자하는 “이익이 되는 애국”을 실천했습니다. 국민도 기업도 희생하고 헌신하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가장 위험한 나라이면서도 가장 활기차고 성장하는 나라입니다.
 
대한민국의 크리스천은 대한민국을 더 많이 사랑해야 합니다. 한국 기독교인도 한국인이기 때문에 당연히 한국을 사랑해야 합니다. 기독교인 공무원은 정직해야 하고, 기독교 사업가는 이익이 되는 애국을 해야 하고, 기독교인 시민은 질서를 지키고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기독교인은 자신의 소유, 은사 등 모든 것을 사용해서 한국을 사랑해야 합니다. 한국의 기독교인은 신앙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도 한국을 사랑해야 합니다.
 
북한에는 신앙의 자유가 없습니다. 북한의 헌법에는 신앙의 자유를 명문화했고, 교회가 있어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헌법은 글자뿐이고, 교회는 자율성이 없는 전시용 교회입니다. 실제로 기독교인은 자신의 신앙을 당당하게 드러낼 수 없습니다. 신앙인이라는 것이 알려지면 노동수용소나 감옥에 체포, 구금됩니다. 사형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북한 체제에서는 신앙의 자유가 전혀 없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자유를 지킬 수 있는 대한민국의 자유 민주주의 체제를 지키기 위해서 한국을 사랑해야 합니다.
 
한국의 크리스천은 지유와 권리를 누리지만, 자신을 희생하고 절제해서, 나라에 대한 의무와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국가적 목적을 위해서 자기 소유와 재능 등을 헌신하고 희생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유대인들은 유대교 신앙을 가진 국가를 만들기 위해서 자기를 희생하고 온갖 종류의 헌신을 합니다.
이와 같이 한국의 크리스천도 신앙의 자유를 보장하는 대한민국을 세우기 위해서 헌신하고 희생해야 합니다.
크리스천은 자신을 희생할 줄 알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을 위해 희생하는 사람이 많은 나라는 발전합니다. 그리고 미래가 밝은 것입니다. 새로운 창조의 역사가 창조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마10:39, 눅17:33)

 
* 기도: 이 나라 민족을 주관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어둠 속에 잠겨있던 이 나라를 구원해주심을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이 나라는 끊이지 않는 갈등과 대립이 난무하고 도덕적 기준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공교육이 무너지고 이 나라를 떠나 이민을 가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말씀의 기준이 더욱 필요한 때임을 고백합니다. 무엇으로도 우리의 허물어져 가는 마음을 채울 수는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무너져가는 세상을 바로 세우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 나라의 기초를 다시 세워주셔서 하나님 말씀으로 살아가는 나라가 되도록 해주옵소서. 이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새로운 소망을 허락해주소서. 불법과 불의가 사라지고 하나님의 공의가 하수같이 흐르게 해 주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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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유로운 글 (2013-07-24 오후 12:56:48) http://blog.somang.net/holylove/7909
크리스천의 나라사랑
 

본문: 시33: 12
‘여호와로 자기 하나님을 삼은 나라 곧 하나님의 기업으로 빼신 바 된 백성은 복이 있도다.’

 
가리발디는 19세기 이탈리아의 개혁과 통일운동에 공헌한 국민적 영웅입니다. 어느 날 가리발디가 청년들을 모아놓고 민족을 위해 싸우자고 역설하자 한 청년이 나와서 "만일 내가 조국을 위해 사운다면 그 대가는 무엇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가리발디는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칼에 베인 상처, 심한 부상, 끝내 죽음이 대가로 주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잊지 마십시오, 그대들의 상처와 죽음으로 이탈리아는 자유로운 나라가 될 것이요, 우리의 후손은 평화롭게 살 것입니다."
 
그리고 3 . 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이었던 남궁억 선생님은 암울한 역사에 한 줄기 빛으로 살았습니다. 그는 황성신문 사장, 현산학교 설립자, 관동학회 회장 등으로 나라를 위해 일했습니다. 찬송가 580장(구 371장)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은 그의 작품입니다. 그는 특히 무궁화 심기 운동을 전개해 나라 사랑과 독립의지를 일깨웠습니다. 그러나 그 일로 일경에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받아 순국했습니다. 그는 죽음을 앞두고 이런 유언장을 남겼습니다. "내가 죽으면 시체를 불살라 곱게 가루 내어 무궁화나무에 거름으로 주게 하라" "누가 진정한 애국자인가?" 이 질문에 대해 명쾌한 답변을 내리기는 참 어렵습니다. 지금처럼 세상이 어수선한 때는 더욱 애국자가 필요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애국자인 것 같은데 사실은 나라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도 많습니다. 애국자로 자처하면서 부정한 방법으로 부를 축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성경의 인물 중 느헤미아는 직접 조국 건설에 헌신한 애국 선지자입니다. 그는 본래 바사나라 수산궁에서 높은 지위의 권세자로 있었습니다. 하나니와 몇 사람을 통해서 자기의 조국 예루살렘의 비참한 소식을 전해 듣고 조국을 위하여 슬피 울고,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였습니다.(느1:1-11) 진정한 애국자란 나라와 민족을 위해 눈물 흘리며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또한 백성들의 죄를 위해 참회의 눈물을 대신 흘릴 줄 아는 사람이 애국자인 것입니다. 백성들이 타락하면 결국 그 나라는 망하게 됩니다. 관리들은 부정부패를 일삼고 인권이 무참히 짓밟히는 세상, 인신매매가 성행하고 약자들의 신음소리가 세상에 진동하는 사회, 퇴폐업소가 늘어나고 정직한 사람들이 바보 취급을 당하는 현상.... 이런 현상들이 바로 멸망의 징조입니다.
 

느헤미아는 백성들의 죄를 가슴에 안고 통회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가슴을 찢으며 회개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백성들이 당할 심판을 생각하며 두려운 마음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이들은 주께서 일찍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구속하신 주의 종이요 주의 백성이니이다. 큰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느혜미아의 눈물과 금식의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은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한 나라의 흥망과 성쇠는 모두 하나님의 주권하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으면 우리의 미래는 암흑일 뿐입니다. 오늘날 이 민족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은헤입니다. 모든 기독교인들이 한 목소리로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해야 합니다. 기독교인들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떠나버린 개인과 국가는 멸망하게 됩니다. 한국교회는 새벽마다 민족의 죄를 가슴에 안고 눈물의 기도를 드리는 백성들이 많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의 기도를 듣고 계십니다. 성경에 "의는 나라로 영화롭게 하고, 죄는 백성을 욕되게 하느니라"(잠14:34)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죄가 많고, 도덕적으로 문란하고, 무속이 성행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이 악한 세상을 안타까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계십니다. 침체된 한국교회가 다시 부흥하려면 성도들이 눈물로 회개하여 변화되고 용서받아 하나님의 은혜가 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도록 간구하는 사람들이 진정한 의미에서 애국자입니다. 기도의 용병들이 버티고 있는 나라는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느헤미아의 기도를 나의 기도로 삼아야 합니다. 우리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 눈물의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기독교인들은 모두 애국자여야 합니다. 그리고 애국하는 길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이 민족의 죄를 모두 털어놓고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고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우리도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할 일은 해야 되겠습니다. 국가는 비행기나 배와 같습니다. 비행기나 배가 위험하면 타고 있는 승객은 모두 위험합니다.
‘그가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또한 우리를 위하여 회당을 지었나이다 하니’(눅7:5)

 
이철신 목사(영락교회)의 칼럼을 소개합니다.
우리나라는 매우 위험한 나라입니다. 호전적인 세력과 분단되어 있습니다. 아직도 전쟁이 끝나지 않았고 계속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언제 어디서 전투가 벌어질지 예측할 수도 없습니다.
남북이 만나고 회담하고 합의하고 합의문을 발표합니다. 그러나 합의문은 간단히 휴지조각이 되고, 합의는 지켜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떤 방법으로도 도발을 막을 수 없고, 전쟁이 끝나지 않습니다. 아마 북한의 세습 독재체제에 굴복하면 전쟁위협이 끝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분단보다도 더 오랫동안, 더 극심한 고통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보다 더 위험한 나라가 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입니다. 주위의 아랍국가에 둘러싸여서 경제적, 외교적 제재를 받고 있습니다. 수시로 박격포 공격을 받고 테러를 당합니다. 전선이 없는 전쟁을 하기 때문에, 이스라엘 내에 안전한 곳은 아무데도 없습니다. 항상 전 국토가 위험한 나라가 이스라엘입니다. “창업국가(Start- up Nation)"라는 책은, 이렇게 위험한 나라에서 어떻게 경제성장이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기술한 책입니다.
 
이스라엘은 이민자의 나라입니다. 이 위험한 나라에 전 세계의 유대인이 용감하게 이민해 왔습니다. 1948년에 이스라엘이 건국할 당시 인구는 80만 명이었는데, 60년 만에 그 수는 9배가 되어 현재 인구는 710만 명에 이릅니다. 각국에 있는 탁월한 전문가들이 이 위함한 나라로 이민해 왔습니다. 그들은 조국을 위해서 자기 인생을 내던지며 도전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또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전쟁이 벌어져도 전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놀라운 것은, 반 이스라엘 투쟁이 일어나고 로켓포가 날아오는 기간에도 경제성장률이 변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아무리 포격이나 테러가 있어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미사일이 날아와도 직장에 출근하는 비율은 더 높았고, 방독면을 쓰고 일을 했고, 기업 생산성은 더 올라갔습니다.
그들은 다브카(davca), 즉 “공격할 테면 해봐라. 우리는 오기로라도 더 성공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가졌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기업들은 자기 기업을 선전하는 것보다 이스라엘 나라를 더 많이 선전했습니다. 또한 기업인들은 개인뿐 아니라 국가적 목적에 투자하는 “이익이 되는 애국”을 실천했습니다. 국민도 기업도 희생하고 헌신하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가장 위험한 나라이면서도 가장 활기차고 성장하는 나라입니다.
 
대한민국의 크리스천은 대한민국을 더 많이 사랑해야 합니다. 한국 기독교인도 한국인이기 때문에 당연히 한국을 사랑해야 합니다. 기독교인 공무원은 정직해야 하고, 기독교 사업가는 이익이 되는 애국을 해야 하고, 기독교인 시민은 질서를 지키고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기독교인은 자신의 소유, 은사 등 모든 것을 사용해서 한국을 사랑해야 합니다. 한국의 기독교인은 신앙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도 한국을 사랑해야 합니다.
 
북한에는 신앙의 자유가 없습니다. 북한의 헌법에는 신앙의 자유를 명문화했고, 교회가 있어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헌법은 글자뿐이고, 교회는 자율성이 없는 전시용 교회입니다. 실제로 기독교인은 자신의 신앙을 당당하게 드러낼 수 없습니다. 신앙인이라는 것이 알려지면 노동수용소나 감옥에 체포, 구금됩니다. 사형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북한 체제에서는 신앙의 자유가 전혀 없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자유를 지킬 수 있는 대한민국의 자유 민주주의 체제를 지키기 위해서 한국을 사랑해야 합니다.
 
한국의 크리스천은 지유와 권리를 누리지만, 자신을 희생하고 절제해서, 나라에 대한 의무와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국가적 목적을 위해서 자기 소유와 재능 등을 헌신하고 희생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유대인들은 유대교 신앙을 가진 국가를 만들기 위해서 자기를 희생하고 온갖 종류의 헌신을 합니다.
이와 같이 한국의 크리스천도 신앙의 자유를 보장하는 대한민국을 세우기 위해서 헌신하고 희생해야 합니다.
크리스천은 자신을 희생할 줄 알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을 위해 희생하는 사람이 많은 나라는 발전합니다. 그리고 미래가 밝은 것입니다. 새로운 창조의 역사가 창조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마10:39, 눅17:33)

 
* 기도: 이 나라 민족을 주관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어둠 속에 잠겨있던 이 나라를 구원해주심을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이 나라는 끊이지 않는 갈등과 대립이 난무하고 도덕적 기준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공교육이 무너지고 이 나라를 떠나 이민을 가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말씀의 기준이 더욱 필요한 때임을 고백합니다. 무엇으로도 우리의 허물어져 가는 마음을 채울 수는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무너져가는 세상을 바로 세우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 나라의 기초를 다시 세워주셔서 하나님 말씀으로 살아가는 나라가 되도록 해주옵소서. 이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새로운 소망을 허락해주소서. 불법과 불의가 사라지고 하나님의 공의가 하수같이 흐르게 해 주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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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추가 자료편(씨앗, 심다) 댓글[0]
지유로운 글 (2012-07-10 오후 7:22:58) http://blog.somang.net/holylove/7409

주제별 추가 자료편(씨앗, 심다)

 

씨앗의 힘

 

대구 하면 사과, 사과하면 대구가 떠오른다. 그러나 그 유래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1895년 대구지역에서 활동했던 애덤스 선교사는 안식년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사과씨를 가져왔다. 자기 집 앞마당에 사과씨를 심고 물을 주며 잘 보살폈다. 선교사의 집에서 재배한 사과나무는 대구지역에 확산되었다. 대구사과는 전국에서 가장 맛있고 탐스러운 사과가 되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다. 하나님 앞에 축복의 종자를 심어야 하나님의 보호와 구원을 받는다. 믿음의 기도를 하지 않고, 말씀을 믿지도 않고, 봉사를 하지도 않고, 하나님께 충성을 바치지도 않을 때 어찌 복을 받겠는가! 복을 받으려고 한다면 반드시 복을 받도록 씨앗을 심어야 한다. 복을 받으려면 복 받는 비결을 알고 실천해야 복이 임한다. 하나님의 손에 축복의 씨앗을 올려놓을 때 30배 60배 100배 이상의 축복의 열매를 거두게 될 것이다.

/고수철 목사

 

▣ 절망의 씨앗

 

본문 : 살후 2:17

‘너희 마음을 위로하시고 모든 선한 일과 말에 굳건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아동심리학 박사 제임스 돕슨(James Dobson)은 아이들에 대해서 절대로 해서 안 되는 행동 중 하나는 ‘외모 평가’라고 말했습니다. 4,5살이 된 아이들도 외모에 대한 개념과 아름다움과 추함에 대한 개념이 생겨 있는 상태입니다. 하지만 어른과 달리 그것을 여과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이 때 평가받는 자신의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를 가지고 평생을 갈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5살 때 들었던 외모의 혹평 때문에 평생을 고통 받는 성인들도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아이들의 어린 시절의 중요성을 매우 간과하기 때문에 너무나도 쉽게 ‘예쁘다, 못생겼다’고 평가하고, 무시하거나 놀리기도 합니다. 물론 악의적으로 이런 행동을 하는 경우는 없겠지만 그래도 그 결과는 아이의 평생을 좌우할 수도 있습니다.

돕슨 박사는 아이들에게 외모와 학력과 같이 능력에 관한 이야기보다는 근면, 관용, 정직과 같은 미덕을 강조하는 것이 훨씬 값진 일이며, 또 좋은 때라고 조언했습니다. 모든 말에는 씨앗이 담겨 있습니다. 어린이들 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하는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섣부른 평가는 하지 말고, 희망이 되는 씨앗을 심어주십시오.

* 기도: 주님! 선한 말로 위로하고, 영혼을 세우게 하소서!

* 묵상: 희망이 피어나는 말의 씨앗을 곳곳에 심으십시오.

/김장환 목사, 제공 : 나침반출판사

 

▣ 밭에 가라지를 심지 말라

 

한 사람이 밭을 열심히 갈고 난 뒤 고랑마다 가라지를 심고 있었다. 하루 종일 땀을 흘리며 오직 가라지를 심고 있었다. 주변 사람들이 그를 보고 왜 보리를 심지 않고 가라지를 심느냐고 물었다. 소를 위한 목초지를 만들려는 것인가 물었다. 그 사람은 보리를 거두기 위하여 가라지를 심는다고 대답하였다. 그 말을 들은 동네 사람들은 그를 보고 미쳤다고 하였다. 보리를 거두려면 보리를 심어야지 왜 가라지를 심느냐고 비난하였다. 그 때 그는 자신을 비난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당신들은 선을 거두려 하면서 날마다 악을 심느냐고 되물었다. 사람들은 콩을 심은 곳에서 콩이 나고 팥을 심은 데서 팥이 난다고 하면서 정작 자신들은 악을 심는 것을 본다. 그것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마음과 뜻을 다하여 죄악을 사방에 심는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영을 거두기를 원한다고 하면서 육을 심기에 바쁘다. 구원을 원한다고 하면서 심판을 심는다. 영원한 생명을 바라며 참된 것을 심어야 한다.

/김상현 목사(인천 부광교회)

 

▣ 나는 너에게 희망의 씨앗이 되고 싶다

 

"사람이 잘 살아간다는 것은 누군가의 마음에 씨앗을 심는 일과도 같다. 어떤 씨앗은 내가 심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린 뒤에도 쑥쑥 자라나 커다란 나무가 되기도 한다."

- 위지안의《오늘 내가 살아갈 이유》중에서 -

 

* 사람 사는 일이 내가 너에게, 네가 나에게, 영향을 주는 관계의 연속입니다. 내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은 너를 변화시키는 긍정의 말, 희망의 씨앗이 되는 말이 되길 소망합니다. 상처가 되는 너의 그 어떤 말도 내 가슴에는 쓴 약으로 스며들길 또한 바랍니다.

/고도원의 아침편지(글 이선주)

 

▣ 좋은 씨를 뿌리자

 

♬ 새벽부터 우리 (찬송가 496장. <통> 260장)

 

1. 새벽부터 우리 사랑함으로써

저녁까지 씨를 뿌려봅시다

열매 차차 익어 곡식 거둘때에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

2. 비가오는 것과 바람부는 것을

겁을 내지 말고 뿌려봅시다

일을 마쳐놓고 곡식 거둘 때에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라

3. 씨를 뿌릴 때에 나지 아니할까

슬퍼하며 심히 애탈지라도

나중 예수께서 칭찬하시리니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

<후렴>

거두리로다 거두리로다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

거두리로다 거두리로다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 아-멘

 

♬ 저 밭에 농부 나가 (찬송가 591장, <통> 310장)

 

1. 저 밭에 농부 나가 씨뿌려 놓은 후 주 크신 능력 내려 잘 길러 주셨네 또 사시사철 따라 햇빛과 단비를 저 밭에 내려 주니 그 사랑 한없네

2. 저 산과 들을 보라 참 아름답구나 길가의 고운 꽃도 주님의 솜씨라 저 공중 나는 새도 다 먹여 주시니 그 사랑하는 자녀 돌보지 않으랴

3. 씨 뿌려 거둔 곡식 주님의 은혜라 우리의 몸과 마음 새 힘이 넘치네 주 은혜 받은 우리 참 감사하면서 이 예물 드리오니 다 받아 주소서

[후렴] 온갖 귀한 선물 주님이 주신 것 그 풍성하신 은혜를 다 감사드리세아-멘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라’(시126:5, 6)

우리 모두 사랑의 씨, 의의 씨, 기도의 씨, 친절의 씨, 선행의 씨, 희망의 씨, 복음의 씨를 뿌리고 성령의 열매, 축복의 열매, 아름다운 열매를 거두자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6:7- 9)

 

▣ 신앙의 씨앗 세 가지

 

나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어머니 손에 이끌려 교회를 나가기 시작했다. 어른들과 아이들이 각각 20명 정도 되는 교회였는데, 전도사님을 통해 신앙의 씨앗 세 가지가 어린 마음에 뿌려졌다. 첫째, 전능하신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사실, 둘째, 그 하나님이 우리가 아닌 나 류태영을 사랑하신다는 사실, 셋째,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어린 시절 내 마음 지성소에 뿌려진 이 세 가지 씨앗은 일평생 신앙의 뿌리가 되었고 나를 키워 준 원동력이 되었다.

가난한 농촌을 위해 살겠다고 서원한 내가 덴마크 유학을 결심하고 이룬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다. 하나님은 기도 중에 농촌에 대한 논문을 쓰라, 유학을 위해 덴마크 국왕에게 편지를 쓰라는 마음을 주셨다. 또 기적같이 덴마크로 가서 언어를 배울 때도, 기도 중에 덴마크 사람들이 하는 말 소리를 흉내 내면 되겠다는 지혜를 주셨다. 그렇게 해서 새벽부터 밤까지 죽어라 문장을 외웠고, 3개월 만에 덴마크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까지 이런 유의 인도하심이 얼마나 많은지….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그분이 나를 사랑하심과 기도로 그분과 교제할 수 있다는 사실을 붙들지 않았다면, 이런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다. 내 심령의 지성소에 새겨진 씨앗으로 인해 그 모든 일이 실현될 수 있었다.

「나는 긍정을 선택한다」/류태영

 

* 금언: 말씀 묵상이 당신 삶에 영적 자양분의 공급원이 되도록 하라(위렌 위어스비)

 

* 빛의 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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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유로운 글 (2012-07-05 오전 4:24:24) http://blog.somang.net/holylove/7406

충성

 

충성

 

스코틀랜드의 수도 에든버러 시내에 중세풍의 건축양식을 지닌 아주 오래된 교회가 있다. 바로 그레이프리어스교회다. 종교개혁 이전부터 있었던 이 교회는 개혁기간 동안 개혁운동의 중심지가 되어 오늘의 스코틀랜드교회의 초석이 됐다. 교회의 정원은 신앙을 지키다 순교의 제물이 된 순교자들의 무덤으로 가득하다. 뒤뜰에는 당시의 감옥도 보존돼 있다. 수감자들은 지붕도 없어서 눈비와 추위를 온몸으로 견뎌야 했다. 이 감옥의 특색은 수감된 사람이 언제든 나가고 싶으면 나갈 수 있다는 점이다. 누구도 말리지 않았다. 얼마든지 자유롭게 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감옥에서 나가는 그 순간 그는 개혁신앙의 포기자로 간주되었다. 때문에 당시의 개혁 신앙인들은 스스로 맹세한 것처럼 형장의 이슬이 되어 생명을 주님께 바칠 뿐 살기 위해 감옥 문을 나서지 않았다. 충성이란 그런 것이다. 얼마든지 선택의 여지가 있지만 모든 가능성을 스스로 버리고 오직 주님께 드려진 삶을 살다가 생명을 바칠 뿐이다. 이런 충성의 터전 위에 오늘의 우리가 서 있다. 우리가 다음 세대에 물려줘야 할 유산도 바로 이 믿음이다. 이런 충성이 그립고 그립다.

/손달익 목사(서울 서문교회)

 

충성을 다하라

 

먼 옛날에 가난한 과부가 있었다. 그녀는 개와 고양이를 함께 키우고 있었는데 자기가 굶는 한이 있더라도 개와 고양이를 굶기는 법이 없었다. 개와 고양이는 주인의 정성에 보답코자 용왕이 가지고 있다는 여의주를 훔쳐다가 주인을 부자로 만들자고 합의를 봤다. 둘은 천신만고 끝에 여의주를 구해 집으로 오던 도중 그만 강물에 떨어뜨렸다. 개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갔지만 고양이는 끝까지 낚시꾼의 꽁무니에 붙어 있었다. 언젠가 물고기가 여의주를 삼킬 것이고 낚시꾼이 낚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렇게 많은 날이 흘러갔다. 드디어 어느 날 낚시꾼이 여의주를 삼킨 고기를 잡았다. 고양이는 목숨을 걸고 그 여의주를 훔쳐냈고 주인에게 바쳤다. 그때부터 집에서 기르는 같은 동물이지만 고양이는 따뜻한 방에서 주인과 함께 자고, 개는 추운 마루 밑에서 자게 됐다는 이야기다.

끝까지 충성을 다한 사람은 남달리 높이 대우받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어렵다고 포기하고 외면하는 사람은 낮은 대우를 받을 수밖에 없다. 충성은 얼마나 사랑했느냐 하는 것이다. 충성은 진실이요, 그 진실은 사랑의 마음이다.

/최승일 목사(서울 상도교회)

 

십자가를 질 수 있나 (찬송가 461장, <통> 519장)

 

1. 십자가를 질 수 있나 주가 물어보실 때

죽기까지 따르오리 저들 대답하였다

2. 너는 기억하고 있나 구원받은 강도를

저가 회개하였을 때 낙원 허락받았다

3. 주께 네 혼 맡기겠나 최후 승리 믿으며

걱정 근심 어둔 그늘 너를 둘러 덮을 때

4. 이런 일 다 할 수 있나 주가 물어보실 때

용감한 자 옛날처럼 선뜻 대답하리라

<후렴>

우리의 심령 주의 것이니 당신의 형상 만드소서

주 인도 따라 살아갈 동안 사랑과 충성 늘 바치오리다 아-멘

 

* 빛의 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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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추가 자료편(인간, 사람) 댓글[0]
지유로운 글 (2012-06-22 오전 4:53:20) http://blog.somang.net/holylove/7393

주제별 추가 자료편(인간, 사람)

 

▣ 나무와 같은 사람

 

나무와 같은 사람이란 어떤 사람일까 생각해 본다. 그는 아마도 늘 희망하는 사람, 기뻐하는 사람, 따뜻한 사람, 친절한 사람, 명랑한 사람,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 고마워할 줄 아는 사람, 긍정적인 사람일 것이다. 자신의 처지를 원망하고 불평하기 전에 우선해야 할 바를 최선의 성실로 수행하는 사람,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과 용기를 새롭게 하며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이다.

 

▣ 사람이 가장 소중합니다.

 

현대 사회는 생산하는 물질의 양으로 사람을 평가합니다. 얼마나 더 많이 가졌느냐 하는 것이 성공의 기준이 되고, 국가도 교육정책이나 사회기반사업의 절대적 가치 기준을 여기에 둡니다. 돈의 가치가 더 우월하게 여겨지는 현실 속에서 점차 한 생명의 가치는 세상으로부터 외면당하고 있습니다.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테레사 수녀는 이런 시를 남겼습니다.

‘한 번에 한 사람’ 나는 결코 대중을 구하려고 하지 않는다. 나는 다만 한 사람을 바라볼 뿐이다. 나는 한 번에 단 한 사람만을 사랑할 수 있다. 만일 내가 그 한 사람을 붙잡지 않았다면 난 4만 2천명을 붙잡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가 사랑한 사람은 세상으로부터 버려진 병자, 거지, 소외계층들이었습니다. 그녀의 삶은 세상이 추구하는 좋은 것을 비켜갔습니다. 그것은 오직 세상에서 소외받는 사람들과 나누기 위함이었습니다. 현대사회는 종교마저도 그들을 외면하고 지나갈 때가 많습니다. 예수께서도 한 인간을 ‘천하보다 귀하다.’ 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을 살리는 힘은 바로 한 생명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류중현 / 사랑의 편지 발행인)

 

* 빛의 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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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는 대로 거둡니다 댓글[0]
지유로운 글 (2012-05-09 오후 5:36:17) http://blog.somang.net/holylove/7345
심는 대로 거둡니다
 
본문: 갈6:7-9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 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미국을 여행해 본 사람이 느끼는 것은 미국은 잘사는 나라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미국은 세계의 경제를 좌우할 정도로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나라입니다. 경제력만이 아니라 군사력도 마찬가지입니다. 200여 년 밖에 역사가 안 되는 나라가 어떻게 이렇게 잘사는 나라가 되었습니까?
 저는 그들의 선조들이 즉 신앙의 자유를 찾아 나섰던 청교도들이 복 받을 만한 합당한 씨를 심었기에 그 후손들이 거두는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저들은 학교를 세우기전에 교회를 세웠고, 그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았고, 하나님께 감사의 열매를 드렸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나라가 하나님께 복 받는 나라가 되려면, 우리의 자손들이 하나님의 복을 누리는 자손들이 되기를 바란다면 우리도 하나님 앞에 복 받을 만한 씨를 많이 심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7절 말씀은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누구에게나 이 심은 대로 거두는 추수의 원칙을 적용하십니다. 우리는 먼저 자연계를 생각해 봅니다. 자연의 법칙은 심어야 거둡니다. 심지 않고는 거둘 수가 없습니다. 또 종류대로 심어야 종류대로 거둡니다. 콩을 심으면 콩을 거두고 팥을 심으면 팥을 거둡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대로 가시나무에서 포도열매를 엉겅퀴에서 무화과 열매를 거둘 수 없는 원칙입니다. 이 원칙은 영적 도덕적인 세계에서 그대로 적용됩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로스알데 힐이라는 작은 마을에 요한이라는 집배원이 있었습니다. 그는 젊었을 때부터 마을 부근 약 오십 마일의 거리를 매일 오가며 우편물을 배달해왔습니다. 어느 날 요한은 마을로 이어진 거리에서 모래먼지가 뿌옇게 이는 것을 바라보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하루도 빠짐없이 다녀야 하는 길이 이렇게 황폐하다니… 앞으로도 오랜 기간을 흙먼지만 마시고 다녀야 한단 말인가. 요한은 정해진 길을 왔다갔다 하다가 그대로 인생이 끝나버릴지도 모른다는 황막감을 느낀 것입니다. 풀, 꽃 한송이 피어 있지 않은 모래 길을 걸으며 요한은 깊은 시름에 잠겼습니다. 그러다가 그는 무릎을 탁 치며 혼잣말로 중얼거렸습니다. "어차피 나에게 주어진 일이고 그것이 매일 반복되는 것이라면 그저 구경만 할 수는 없잖은가? 그래, 아름다운 마음으로 내 일을 하자! 아름답지 않은 저것은 아름답게 만들면 되지 않은가?" 그는 다음날부터 주머니에 들꽃 씨앗을 넣어 가지고 다녔습니다. 그리고 우편배달을 하는 짬짬이 그 꽃씨들을 거리에 뿌렸습니다. 그 일은 그가 오십여 마일의 거리를 오가는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계속되었습니다. 이렇게 여러 해가 지나자 그가 걸어다니는 길 양쪽에는 노랑, 빨강, 초록의 꽃들이 다투어 피어났습니다. 봄이면 봄꽃들이 활짝 피어났고 여름에는 여름에 피는 꽃들이, 가을이면 가을 꽃들이 쉬지 않고 피어나 그가 가는 길을 환영해주었습니다. 그 꽃들을 바라볼 때마다 요한은 더 이상 자기의 인생이 외롭지도 황막하지도 않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그 긴 거리에 이어진 울긋불긋한 꽃길에서 휘파람을 불며 우편배달을 하는, 수채화같이 아름다운 그의 뒷모습을 보다가 자기들도 주머니에 꽃씨를 넣어 가지고 다니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누구나 다 농부입니다. 우리의 삶은 매일 매일이 씨를 뿌리는 것이고 씨를 심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도 씨앗입니다. 우리의 말도 씨앗입니다. 우리의 행하는 것도 씨앗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심고 사느냐에 따라 심는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개인생활도 심는 대로 거두고, 가정도 심는 대로 거두고 교회도 국가도 심는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봄에 심는 것을 가을에 거둡니다. 현재 심는 것을 미래에 거둡니다. 젊어서 심는 것을 늙어서 거둡니다. 조상들이 심는 것을 자손들이 거둡니다. 금세에 심는 것을 내세에 거둡니다. 우리는 이 분명한 원칙을 알고 내 생각, 내 말, 내 행동들을 심어가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의 신령한 농부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둔다면 우리는 무엇을 심어서 거두어야 합니까?

 첫째로 우리는 영적인 것을 심어야 합니다.(롬8:5-15)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입니다.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둘째로 우리가 심어야 할 것은 복음입니다. 복음이 무엇입니까? "복음은 예수를 믿어야 구원을 받는다. 예수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길이며 진리이며 생명이시다"라는 사실이 복음입니다. 나는 그 복음 때문에 구원받았고 그 복음을 전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으로 복음을 심어야 합니다. 우리 주님은 승천하시기 전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두 가지를 부탁하셨습니다. 하나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는 부탁이셨습니다.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하셨습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너희에게 성령이 임하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내 증인이 되라는 명령입니다. 오늘 우리가 복음을 전하려면 성령 받아야 합니다. 성령을 받아야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성령은 인격적인 신이시기에 우리가 성령을 사모하여 우리 마음에 모셔 들여야 합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만이 복음을 능력 있게 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매일 성령 충만을 구해야 합니다. 성령 충만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의 권능을 힘입고 복음의 씨앗들을 심어가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딤후 4:2에서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고 하였습니다. 복음의 씨앗을 항상 심어 가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안 하면 안 되는 것이 복음전하는 일입니다. 만일 우리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내게 화가 있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에스겔 33:6을 보면 "파숫군이 칼이 임함을 보고도 나팔을 불지 아니하여 백성에게 경고치 아니함으로 그중 한 사람이라도 제함을 당하면 그 피를 내가 파숫군의 손에서 찾으리라"하였습니다. 파숫군이 나팔을 불지 않는 것이 죄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죄 값으로 심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복음의 씨를 심어 나갑시다. 내가 심어나가는 그 복음의 씨앗들 때문에 많은 영혼 구원의 열매들이 맺혀지시기를 축원합니다.
 셋째로 기도의 씨앗들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힘은 영의 힘입니다. 이 영적인 힘과 능력을 축적해 가는데 있어서 유일한 방법은 기도 외에는 없습니다. 기도하는 사람들이 성령 충만을 받았고 성령 충만한 사람들이 능력 있는 삶을 살았습니다. 성경에 놀라운 영적 힘을 발휘하여 큰일을 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기도의 사람들이었습니다. 한번은 예수님이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따로 데리시고 변화산에 올라가 기도하시는 동안에 산아래에는 아홉 제자가 남아 있었습니다. 그때 어떤 사람이 간질병 걸린 자기 아들을 데리고 와서 고쳐주기를 바랐지만 제자들이 아무리 애를 써도 낫지 않았습니다. 그때 마침 예수님이 내려 오셨습니다. 그때 아이의 아버지가 예수님께 달려와서 "제 아이가 불에도 넘어지고 물어도 넘어집니다. 제자들에게 데려 왔지만 그들이 고치지 못했습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너희를 참으리요 그 아이를 내게로 데려 오라" 하시니 그 아이를 데려 오매 예수님이 "이 벙어리 더러운 귀신아 그 아이에게서 나가라"하시자 그 아이가 금방 나았습니다. 그 다음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주여,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기도하지 않아서 그러니라. 기도 외에는 이 같은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하셨습니다. 귀신을 쫓아 낼만한 능력은 기도함으로써만 얻을 수 있다고 하신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자에게는 능력이 임할 수가 없습니다. 영적인 힘을 공급받는데 있어서 기도보다 더 귀한 첩경은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기도로 내일을 준비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기도해서 하나님의 능력과 힘을 쌓아 가면 내일 부닥치는 어떤 어려움도 영적인 장애물도 넉넉히 이겨갈 수 있습니다. 또한 기도는 씨앗과 같습니다. 농부가 씨앗을 땅에 심고 물을 주고 거름을 주면 반드시 싹이 나고 열매를 거두는 것과 같이 우리들이 심는 기도도 반드시 응답의 열매가 맺히게 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가지만 그 기도는 살아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자녀들을 위하여 많은 기도의 씨앗들을 심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기도가 자녀들의 삶에 성공과 실패를 좌우한다면 자녀들을 위해 기도를 심어 가시기 바랍니다.


 넷째는 의와 화평을 심고 긍휼을 거두어야 합니다.(호10:12, 고후9:10)
나치 독일 사람들이 유대인을 수없이 닥치는 대로 학살할 때였습니다. 어떤 비행장의 한 조종사가 자기 비행기 속에서 무엇을 고치고 있는데 어떤 젊은 사람이 상기가 되어서 황급하게 비행기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 "나는 지금 당신이 살려 주지 않으면 죽을 것인데 어서 이 비행기를 띄워서 독일 국경 밖으로 좀 데려가 달라"고 애원을 했습니다. 이 청년은 유대인이었습니다. 이 사람의 뒤를 지금 비밀 경찰대가 추격해 오고 있었습니다. 이 비행기 조종사는 불쌍한 생각이 들어서 얼른 비행기를 띄워 멀리 국경 밖으로 데려다 주었다고 합니다. 물론 오랜 세월을 지나는 동안에 그 사실을 다 잊어버렸습니다. 얼마 후에 2차 대전이 일어났습니다. 이 조종사 역시 독일에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영국으로 가서 연합국의 공군으로 종군하면서 전쟁에 가담해서 싸웠습니다. 한 번은 비행기를 타고 출전했다가 큰 사고를 당해 그가 탔던 비행기가 추락하면서 중상을 입었습니다. 뇌를 다쳐서 도무지 의식이 하나도 없고 중태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때 수술을 제일 잘하는 의사를 초청하여 수술을 하고, 두어 주일 후에야 의식을 회복하게 되었고, 그 의사를 만나 감사하다고 인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만나 이야기하는 가운데 그 의사가 바로 여러 해 전에 자기가 비행장에서 구해준 그 유대인인 것을 알았습니다. 덕을 심으면 덕을 거둡니다.
"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약3:18)


 다섯째는 물질의 씨앗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심든지 심는 대로 거두게 하시는 하나님은 우리가 복음의 씨앗을 심으면 영혼구원의 열매를 거두게 하시며, 기도의 씨앗을 심으면 응답의 열매를 거두게 하시지만 우리의 물질 축복은 물질을 심는데서 얻어지는 결과입니다. 그러기에 바울 사도는 고후 9:6에서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두나니 각각 그 마음에 정한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하였습니다. 물질은 하나님의 것이기에 즐거운 마음으로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경제계에 투자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영리를 위하여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물질을 여러 곳에 투자를 합니다. 어떤 때는 그 투자로 인하여 많은 이익을 얻기도 하고 또 그 투자로 인하여 많은 실패를 가져오기도 합니다.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안전한 투자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가장 안전하고 보람있는 투자가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사업에 투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업에 투자하면 위대하신 하나님이 하늘의 축복으로 땅의 축복으로 보상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빌리그래함 박사는 이 세상에 100%의 이윤을 주는 은행이 없으나 하나님의 천국은행은 30배 60배 100배의 이윤을 붙여준다고 하였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위해 과감하게 투자하는 만큼 과감하게 하나님은 그 사람을 축복해 주시는 것입니다. 마 19장 29절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영생을 얻지 못할 자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주님을 위해서 주의 복음 사업을 위해서 희생하는 것만큼 하나님은 여러 배로 축복하시는 말씀입니다. 사르밧의 과부는 자기 아들과 마지막으로 먹고 죽으려고 했던 식량을 몽땅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에게 투자하자 그 나라의 가뭄이 끝날 때까지 그 집에 떡 반죽 그릇과 기름병의 기름이 마르지 아니하는 축복을 받았고 보너스로 그 아들이 죽게 되었을 때 그 아이가 엘리야의 기도로 살아났습니다.
 저물어 가는 벳세다 광야에서의 소년은 어떠했습니까? 다른 사람들은 바치지 않았을 때 갸날픈 어린 손으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바친 후 5천명을 먹이고 12광주리가 남는 축복이 나타났지 않습니까? 하나님께 물질을 심어야 물질 축복을 가져옵니다. 하나님의 사업의 많은 것으로 투자하여 많은 것으로 거두게 하시는 축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너는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일곱에게나 여덟에게 나눠 줄지어다 무슨 재앙이 땅에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함이니라’(전11:1, 2)
 인도의 어떤 왕이 궁정에서 나가다가 한 거지를 만났습니다. 손을 내밀고 무엇을 달라고 하자 왕이 거지에게 하는 말이 "네가 나에게 무엇을 먼저 주면 나도 너에게 주겠다." 거지는 옆집에서 강냉이 한 홉을 얻었는데 그 강냉이 주머니를 열고 "저는 이것밖에 없습니다."하며 강냉이 다섯 알을 내밀었습니다. 왕이 그것을 받더니 웃으면서 하인에게 "금주머니에서 이 강냉이 알만한 금덩이 다섯 개만 꺼내서 주라"고 했습니다. 그때 거지는 속으로 탄식하면서 돌아갔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그 강냉이 주머니를 다 그대로 드렸으면 금주머니채 내가 다 받았을 텐데"하는 후회 때문이었습니다.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두는 것입니다.(고후9:6)
 ‘사람의 행위를 따라 갚으사 각각 그의 행위대로 받게 하시나니’(욥34:11)
 또한 우리 인생은 파종하는 인생입니다. 심는 대로 거두게 하십니다. 낙심하지 말고 심어야 합니다. 착한 일을 하다가 낙심할 때가 있습니다. 복음의 씨앗을 심다가 영혼구원의 열매가 없다고 낙심 할 수도 있습니다. 기도하다가 응답의 열매가 없다고 낙심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업에 물질로 헌신하다가 물질축복의 열매가 없다고 낙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9절 말씀을 보면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하였습니다. 시편 126장 5절에는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이 추수의 법칙은 절대로 없어지지 않습니다. 심는 대로 거두게 하시는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번에는 심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첫째는 죄악의 씨를 심지 말아야 합니다.
이화대학 부속병원에서 있었던 실화입니다. 거기에 여전도사님으로 수고하던 분이 들려준 말씀입니다. 돈 많은 집 며느리가 아이를 낳으러 왔습니다. 보통은 일반 산실에서 낳는 것이지만 돈이 워낙 많아서 특실에서 아이를 낳게 되고 그리고 뭐 화환이 아주 즐비하게 들어왔고 굉장하게 이렇게 환영을 받으면서 정말 공주처럼 환영을 받으면서 아이를 낳았어요. 마침 아들을 낳았는데 문제는 이겁니다. 혈액 조사를 해보니까 그 아이가 그 집안에서 태어날 아이가 아니에요. 그 아버지가 지금 그 아버지가 아니란 말이에요. 이걸 알고 간호원들이 숙덕숙덕하고 의사들이 숙덕숙덕 하다가 마침내 이것을 미리 알리는 게 좋겠다고 그 어려운 일을 여전도사님에게 책임을 지웠어요. 들어가서 얘기하라고. 조용한 시간에 당신이 이렇게 아이를 낳고 이 집에서 환영을 받지 만은 사실은 저 아이는 이 집 아이가 아니요, 하고 선언을 하니까 처음에는 펄쩍 뛰었지만은 그래봐도 소용없다고 애가, 아이가 크면은 언젠가는 다 알게 될 텐데 그래서 미리 알라는 거라고. 그랬더니 울면서 어떻게 하면 되겠냐고 하지만 어떻게 하긴 어떡해요 심은 대로 거둬야지…….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마 12:35)
 ‘악을 뿌리는 자는 재앙을 거두리니 그 분노의 기세가 쇠하리라’(잠22:8)
 ‘함정을 파는 자는 그것에 빠질 것이요 돌을 굴리는 자는 도리어 그것에 치이리라’(잠26:27)


 둘째는 게으름(나태)을 심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이스의 아테네에 어떤 부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멋진 여행을 즐기고자 배를 타고 여행을 떠났었는데 그만 폭풍을 만나 배가 뒤집히고 말았습니다.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바닷가로 헤엄쳐 나가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이 부자는 아테네 여신에게 계속 호소하면서 자기를 살려만 주신다면 자기의 재물을 아낌없이 바치겠노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이때 난파된 배의 승객 중 한 사람이 헤엄쳐 지나가면서 이렇게 외쳤다고 합니다. "여보시오! 아테네 여신에게만 만사를 떠맡기지 말고 당신의 두 팔도 좀 사용해 보시구려."
 우리는 이 이야기에서 매우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스스로 노력하지 않고 신의 도움만 빌리려고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자신은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으면서 요행만 바란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우리 크리스천 청소년들은 시험 때에 특히 이런 어리석은 생각에 빠지기가 쉽습니다. 더 좋은 성적을 원하는 마음과 신앙이 묘하게 어우러져서 노력은 별로 않고서는 시험에서 좋은 성적 얻도록 해 달라고 기도만 열심히 하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다가 성적이라도 떨어지면 하나님은 능력 없는 분이시거나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분이라고 원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스스로를 속이는 행위"라고 꼬집습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을 만홀히 여김 받게 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쉽게 말해서 하나님을 조롱하는 엄청난 잘못을 저지르는 행위가 된다는 것입니다.
공부하지 않고서 좋은 성적을 바란다거나, 수고하지 않은 일에서 성공을 기대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합니다. 나태하게 살면서 풍요하기를 기도하는 신앙은 자기를 속이는 것입니다. 기도는 나태한 크리스천의 도피처가 아닙니다.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 주께 하듯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심든지 심는 만큼 거두게 될 것입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 만이 기쁨으로 단을 거둘 수가 있습니다.


 셋째는 거짓(속임수)을 심지 말아야 합니다. 아버지 이삭을 속이고 장자권을 얻은 야곱은 동생 요셉을 애굽의 종으로 팔은 자기 아들들에게 속임을 당합니다.
 영국의 어느 제과업자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빵을 만들어 마을 사람들에게 팔았습니다. 그 제과업자에게는 매일 아침, 버터를 만들어 공급해주는 가난한 농부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납품되는 버터를 보니 정량보다 조금 모자라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며칠을 두고 납품된 버터를 저울로 일일이 달아보았습니다. 예측한 대로 정량에 미달되었습니다. 화가 난 이 업자는 버터를 납품하는 농부에게 변상할 것을 요구하며 법정에 고발했습니다. 농부는 체포되어 재판을 받았습니다. 재판을 하던 재판관은 농부의 진술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가난한 농부의 집에는 저울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버터를 만들어 그 제과업자가 파는 1 파운드 짜리 빵의 규격에 맞추어 버터를 자르고 포장해서 납품을 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 제과업자가 이익을 남기기 위해 그 1 파운드 짜리 빵의 양을 줄였던 것입니다. 그것도 모르고 이 농부는 줄여서 만들어진 빵에 맞추어서 버터를 만들고 납품을 한 것입니다. 누구의 잘못입니까?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빵을 줄인 결과가 자신에게 돌아오고야 만 것입니다. 우리가 남을 헐뜯고 비난하고 거짓말을 하게 되면, 그 비난과 헐뜯음과 미움과 증오, 거짓은 결국 자기에게 돌아오는 것입니다. 선한 일을 하면 그 선한 결과가 자기에게로 되돌아옵니다. 심은 대로 거둔다는 만고 불변의 진리가 있습니다.


 넷째는 가라지를 심지 말아야 합니다.(마13:28-39)
 가라지를 심고 보리를 기대하지 말라. 악습을 심으며 어떤 날 우연히 고매한 품성의 인물이 되리라고 기대하지 말라. 시기와 증오를 심으며 우정과 사랑을 기대하지 말라. 뱀의 알을 품고 병아리가 깨일 것을 기대하지 말라. 남의 인격을 멸시하는 사람아 그대가 존경받을 것을 기대한다면 탱자를 심어놓고 감귤을 기대하는 것과 같다. 인생은 심은 대로 거둡니다. 어떤 제자가 스승인 현인에게 물었습니다. "제게 왜 기쁨이 없습니까? 왜 다른 사람들이 제게 행복을 주지 못합니까?" 현인은 말했습니다. "그대는 어찌 한 되짜리 그릇을 갖고 한 말의 쌀을 받아오려 하는가. 한 조각의 천을 들고 옷 만드는 집에 가서 한 벌의 옷을 지어 달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매사를 찡그린 얼굴로 대하면서 기쁨이 있기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다정한 이웃, 베푸는 사람이 되지 않고서 어찌 다른 사람이 행복을 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게으른 사람이 성공을 기대하는 것은 심지 않은 밭에서 곡식을 기대하는 것과 같습니다. 심은 대로 거두리라. 이것은 인과의 철칙이요,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지식을 뇌 속에 입력(入力)한 만큼 유식할 것이며 선수는 연습한 만큼 챔피언이 될 것입니다. 육으로 심은 것은 육이요, 영으로 심은 것은 영이니 내 인생의 밭에 영원한 사랑과 믿음을 심어 양질의 영원한 생명을 거두도록 노력합시다.
 어떤 바보스런 사람이 어느 누구도 자기를 인정하지 않아 주기 때문에 매우 고민 중에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인생을 비관한 나머지 산으로 가면서 소리를 질러 보았습니다. 산도 자기를 아는 체 하지 않았습니다. 산에 올라가서 얼마나 자기 자신이 싫었던지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나는 너를 싫어한다."
 조용한 산중에 그 소리가 메아리쳐 다시 울렸습니다.
"나는 너를 싫어합니다." 그래서 그는 매우 실망한 나머지마을의 현명하고 덕 있는 분에게 물어보았습니다. 그분이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큰소리로 `나는 너를 사랑한다고 외쳐 보십시요."
그 바보스러운 사람은 다시 산에 올라가 소리를 질렀습니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 그 소리가 다시 메아리쳐 들려 왔습니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눅6:31)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히13: 1- 2)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심은대로 거두게 하시며 행한대로 갚아 주십니다. 이 말씀을 믿고 순종하며 하나님께서 그 믿음대로 역사해 주시므로 기도하는 대로 응답받게 됩니다. 자기 자신의 마음 밭을 점검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거울같이 비춰봐서 골라낼 것 골라내고 잘라 버릴 것은 잘라버려서 옥토로 개간하여 여러 가지 많은 씨를 심고 인내하면서 정성껏 가꾸어 풍성한 열매를 많이 수확하게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오늘도 의와 자비와 복음과 기도와 덕을 심어서 사랑과 의와 선과 성령의 열매를 맺는 아름다운 날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도: 공의로우신 하나님, 주님의 말씀을 듣기만 하는 자가 아니라, 듣고 깨달아 행하여 좋은 씨를 뿌리는 자 되게 하소서. 그러함으로 풍성한 열매,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자 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빛의 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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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함께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사람 댓글[0]
지유로운 글 (2012-03-13 오후 7:31:48) http://blog.somang.net/holylove/7289

끝까지 함께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사람

 

염소장사를 하는 교인이 있었습니다. 갑자기 복막염이 터져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무사히 치료를 받고 퇴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병원을 퇴원한 후 "자신의 생명을 연장시켜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을 수 없다"고 하면서 두어 달 교회에 잘 나왔습니다. 얼마 후에는 차츰 예배에 불참하는 수가 점점 늘어만 갔습니다. 목사님께서 심방을 가서 이유를 물으니 이렇게 대답합니다. "목사님 하나님의 은혜를 잊을 수 있나요? 그런데 요즈음 너무 바빠서요. 염소 장사는 요즈음이 한 철 이거든요. 목사님 한가하면 열심히 믿을 깨요" 그러더랍니다.

어스킨 목사가 스코틀랜드에서 목회 하던 시절에 스칼렛이라는 부인이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그날 큰 은혜를 받고 깊은 감동을 체험했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 주일 스칼렛부인은 어스킨 목사의 설교를 들었으나 은혜를 못 받았습니다. 스칼렛 부인는 목사님을 만나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어스킨 목사는 이렇게 대답을 하였습니다."지난주에는 당신이 예수님을 만나려고 왔기 때문에 신령한 은혜를 받았지만, 오늘은 나를 보려고 왔기 때문에 은혜를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유대인의 지혜서인 탈무드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아기를 낳았는데, 그 아기는 불행하게도 머리가 둘 달린 아기였습니다. 그래서 그 부모는 랍비에게 달려가 이 아이가 한 명인지 두 명인지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랍비가 대답하기를 "이쪽 아이를 때렸을 때 저쪽 아이도 울면 하나요, 저쪽 아이가 울지 않으면 둘이요"라고 했다고 합니다.

몇 해 전, 당시 미국 부통령 앨 고어는 빌리 그레이엄 목사가 국회에서 명예 훈장을 받는 행사에 수많은 정부 관리와 세계적 리더가 국회의사당을 가득 메웠습니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는 훈장을 받을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상은 제가 받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 상은 우리 팀이 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45년을 함께 일했습니다. 그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것입니다. 나는 그들에게 큰 빚을 진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는 사역의 핵심 팀원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렀습니다. 그는 그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복받치는 감정을 억제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습니다.

그 후 노스캐롤라이나 몬트리트에 있는 그의 집을 방문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빌리 그레이엄 목사와 그의 동료들이 얼마나 팀을 존중하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고 합니다. 그의 집 언덕 아래에 팀원들을 위한 집을 건축하고 있었습니다. 인생의 황혼이 가까워 오자 그들은 서로를 보살피고 도우며 더욱 함께하기를 원하고 있었습니다. 분명한 것은 그들이 단지 45년이라는 오랜 세월을 함께했기 때문에 이런 훌륭한 팀이 된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지금까지 함께 사역한 세월 동안 그랬던 것처럼, 나는 인생의 끝까지 함께한다는 그들의 약속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진정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이라면 머리 둘 달린 아이처럼 같이 울어야 합니다. 우리 주님이 기뻐하실 때 같이 기뻐하고 슬퍼하실 때 같이 슬퍼하며 일할 때 수고의 땀을 함께 흘려야 합니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 팀은 주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는 사람들 이었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일에 그들의 생을 걸었던 사람들입니다. 우리 모두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함께 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인도에 선교사로 나간 고든 맥스웰이라는 선교사가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하루는 힌두교 수도승에게 찾아가서 인도어를 가르쳐 달라고 했어요. 왜요? 영어와 인도말, 두 가지를 다 할 수 있어야 자기를 가르칠 수 있는데, 그 당시 인도에는 공부한 사람들이 그다지 많지 않았습니다. 이 힌두교 수도승이 마침 미국에서 유학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가르쳐 달라고 했더니 안 된다고 했습니다. "당신 날 전도하려고 그러지?" "아니요, 내가 전도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언어만 가르쳐 주시오" 그래도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 사람이 "지금까지 당신하고 지낸 사람 치고 그리스도인이 안된 사람이 있소?" 라고 했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얘기입니까? 이러한 소문이 우리에게서도 번져나가야 합니다. 저 사람하고 같이 몇 달을 지내면, 그리스도인이 돼요. 변화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라요. 이런 영향력을 주며 빛의 역할을 같이 감당하여야 합니다. 등불을 됫박 안에 두지 않고 등잔대 위에 놓는다. 그래야 등불이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빛을 비추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너희 빛을 사람들에게 비춰라. 그래서 사람들이 너희의 선한 행동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여라. <마태복음 5장 14~15절>

우리가 주의 동역자가 되기 위해 멀리 가서 무슨 일을 할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슴으로 받고, 들려온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가정, 직장, 교회에서, 개인의 삶 속에서 말씀을 실천하는 일을 통해서 우리 가정의 담을 넘어서서 내 직장으로, 내 주위로 번져나가게 하십시다.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일꾼으로서 여러분께 권면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은총을 베풀 때에 너의 말을 들었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보십시오. 지금이 하나님께서 은총을 베푸실 때이며, 지금이 구원의 날입니다. <고린도후서 6장 1~2절>

/빛의 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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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밀함과 경외함의 두 기둥 댓글[0]
지유로운 글 (2012-03-12 오후 6:12:09) http://blog.somang.net/holylove/7286

친밀함과 경외함의 두 기둥

 

모든 의사가 파업에 찬성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고대 안암병원 레지던트였던 안수현은 병원에 남기로 결정했습니다.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에게 의사란 환자 곁에서만 의미가 있다는 소신이 있었고, 또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의 눈과 평가를 무서워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밤을 새우고 끼니를 걸러 가며 파업 병동을 지켰습니다. 그 청년이 돌봤던 한 난소암 말기 할머니는 "이 어린 의사가 날 살렸다"라고 말하고 다녔습니다. 그 청년은 일과가 끝난 후 환자들을 일일이 찾아가 잠들어 있는 환자들의 머리맡에 서서 그들이 살아나기를 충심으로 기도했습니다. 그의 이러한 행동이 환자들을 일으키는 기적을 낳았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복음은 우리의 연약함을 겨우 받쳐주는 지지대 정도가 아니다. 그것은 생명이고 능력이다. 나는 책상 앞에 코람데오(Coram Deo)라는 문구를 붙였다. 하나님 앞에서라는 이 말을 읽을 때마다 옷깃을 여민다. 경외는 우리를 하나님께 집중하게 하는 건강한 두려움이다. 나는 그분 앞에 서서 친말함과 경외함의 두 기둥을 축으로 내 안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분주한 생각을 가라앉히고, 마음과 생각을 그분께 고정시킨다."

「그 청년 바보 의사」/ 안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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