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39장을 통해서 요셉이 노예로 팔려가서도,
자신을 내팽겨치고, 막 굴리고, 자포자기 하고 그럴수 있었는데,
그렇지 않은 것은...
과연 어떤 힘에 의해서 그런것인가?
누가 도와준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단다.
어떤 교육을 받았고,
누가 가르쳤기에 이렇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었지.
10대 고등학생일 때는 이런 미숙한 생각을 했단다.
내 손으로 벌이를 할수 있는 나이가 지나면
죽는게 좋겠다구요.
아무런 능력도 없이 밥만 축낸다면,
그건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겼기 때문이었지..
그런데....
꽤 오래전부터 지녔던 꿈중 하나는 "멋있는 할아버지 되기" 란다.
나름대로 이런 소망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면서,
제게 이 소망을 주신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간구하곤 했었지.
제게 모델이 되는 인물을 만나게 해 달라고~.
마음 속에는 상충되는 두가지 생각이 같이 다니곤 했기에,
말씀 위에서 정리된 생각을 지닐수 있기를 바랬지요...
그렇게 지내오는 동안에,
요셉의 Mentor를 통해서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단다.
동생 베냐민을 낳다가 어머니인 Rachel은 돌아가신 상태였고,
큰 엄마, 작은 두 엄마, 배다른 형제들...
그리고, 약간 일그러진 자아를 지니고 있는 아버지...
이집트로 팔려가기 전까지의 17세까지...
누군가가 도와주었고, 돌봐주었고 양육해주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더구나.
그 어려운 상황- 부족의 후계자(채색옷은 당시 족장과 후계자만이 입을수 있었던 것이었죠.)에서
종으로 떨어지는 그 나락에서도 하나님을 찾고 함께 할수 있었다는 걸 봐도 대단하긴 대단하지.
물론, 하나님께서 강권적으로 사랑하셔서 함께 하셨다고 볼수도 있지만,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형들을 찾으로 가는 장면에서도,
원래 장소에서 없을 때 물어보고 찾아가는 것을 보더라도,
요셉의 본성이 성실한 사람이었슴을 알수 있더군.
그런데, 잘 심기운 나무라도 누군가가 돌봐주어야 잘 자라듯,
10세를 전후한 시기에 누군가가 후원해주고 돌봐주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어.
이 때 하나님께서 이 의문에 대한 실마리를 주셨지.
37:1 야곱이 가나안 땅 곧 그 아비의 우거하던 땅에 거하였으니 야곱의 약전이 이러하니라
요셉이 십칠세의 소녀으로서 그 형제와 함께 양을 칠 때에...
35:27~29 야곱이 기럇아르바의 마므레로 가서 그 아비 이삭에게 이르렀으니
기럇아르바는 곧 아브라함과 이삭의 우거하던 헤브론이더라
이삭의 나이 일백팔십세라
이삭이 나이 많고 늙어 기운이 진하매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니
그 아들 에서와 야곱이 그를 장사하였더라.
참 신기한 일이야.
나이 많고 눈 멀어 바로 코 앞에 있는 작은 아들을 맏아들과도 구별하지 못하면서 축복할 때도 죽을 때가 다 되었다고 느껴서 그렇게 했던 건데...
몇년이 지난 거니...
이삭이 40세에 리브가에게 장가 들었고,
기도한 후에야 60세에 이란성 쌍둥이 아들 에서와 야곱을 얻게 되었죠.
큰 아들 에서가 40세에 가나안지역의 딸들과 결혼해서(26:34) 아버지 이삭과 어머니 리브가의 마음을 아프게 했었고...
가장 적은 나이라 하더라도,
100세 이상에서 그 축복을, 장자의 축복을 야곱에게 한 것이었죠.
아브라함이 175세까지 살았는데,
이삭을 100세에 얻었으니까,
에서와 야곱은 할아버지 아브라함과 15년정도를 같이 살면서 배운것이겠네.
결국, 이삭은 180세에 소천하기전에,
말도 잘 통하지 않고 마음 불편한 큰 며느리보다는,
작은 아들 야곱과 그 후손들과 함께 살게 되었을 거야.
눈 앞에 있는 아들의 얼굴조차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는데,
나가서 경제활동을 하거나,
어떤 일을 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상태로 수십년을 살았던거지.
야곱이 외삼촌 라반에게로 가서 혼인하고,
아들들을 낳고, 돌아올 때까지~
그 오랜 시간동안을
할아버지 이삭은 거부로 살았던거지.(창26:13).
이 할아버지 이삭도,
아버지 아브라함처럼 후손들,
자손들을 통해 나타날 복을 바라보는 사람이었고- 축복하는 아버지,
손자들 중에서도,
어미 없이 자라고 있는 아이,
자신의 아들인 야곱이 아끼는 아이인 요셉에게 더 많은 애정이 기울여진 것은
당연한 일 아니었을까.
요셉은 붙임성도 좋았던거 같아.
형들 찾으러 갔다가 없으니까,
그 쪽 사람들한테 물어보잖아~
어디 갔는지 혹시 아셔요? 이렇게 말야.
할아버지에게도 더 그랬겠지.
가족이고 할아버지시고, 할아버지 눈에는 또 얼마나 어여뻤을까?
요셉이 할아버지 이삭과 함께 하는 동안에,
할아버지는 요셉에게 기도와 말씀을 가르쳐주고 배워주고,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
자신이 시내산에서 제단에 죽을뻔 했던 이야기,
아버지 아브라함이 자신을 100세 되어서 노년에 얻은 이야기며,
자신의 이름이 이삭(웃슴)이 된 이유에 대해서도,
자신이 블레셋 사람들로부터 계속해서 이동하면서 우물을 팠던 이야기 등등을 얘기하면서,
동행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겠지.
그리고, 성실하고 영민한 요셉은 그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할아버지 이삭에게서 또 변한 아버지(35장)에게서도 하나님을 듣고 배웠겠지.
그랬기에,
이집트에 종으로 팔려가서도 요셉으로 인해서 보디발의 가정에 복을 주셨고,
감옥에 있을 때에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사람이었고,
파라오 앞에 서 있을 때에도 하나님의 신이 감동한 사람이었고,
그리고, 아내 아스낫에게도 존경받는 남편으로 살았던 거지.
아이 요셉에게,
할아버지 이삭이라는 믿음의 가정의 제사장,
믿음의 Mentor가 있었다는 것이 참 크~~은 축복이었구나 하는 마음이 드는구나.
나이 많고, 눈 멀고 외출하기도 어려운 상태로 기십년을 살아 온 것은,
어쩌면 요셉의 Mentor가 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었구나 싶은 생각도 들구.
하나님께서 이런 기쁨,
후손들이 하나님을 섬기며 공경하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배우도록 도우며,
가르치며 본이 되는 즐거움을 허락하신 것이 너무 부럽고,
제게도 말씀하시며 모델을 보여주심에 감사하구나.
우리도 우리 후손들에게 할아버지 이삭같은 Mentor가 되기를 축복한다.
오늘부터 하나님과 동행하며 배우며,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는 이들이 되기를 축복한다.
ps. 2003년 늦여름에 쓴 글의 어투를 아이들에게 얘기하듯 조금 수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