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가장 불쌍한 사람은
억지로, 예수를 믿는 사람이고
억지로, 주의 길을 가는 사람이다.
사랑없이 평생을, 부부가 함께 산다고 생각해 보라.
사명없이 평생을, 목회 한다고 생각해 보라
하나님과 충돌한 적이, 언제로 기억되는가?
문제는, 주님과 충돌하지 않으면
반드시 사람과 충돌하든지,
교회와 충돌하든지,
목회자와 충돌하게 되어있다.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는 것도 중요한 것이지만
기도의 시간에, 주님과 통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예배의 자리에 있는 것도 중요한 것이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경험하는, 구체적인 경험이 필요한 것이다.
주님과 얼마나 가까이에 있는가? 하는 문제보다,
주님을 만지는 것이, 우리 신앙의 핵심이다.
혈루증 걸린 여인은, 주님을 만졌고 다른 사람들은, 주님 가까이에서 주님을 부대끼며, 밀치기만 하였다. 그러나 병고침 받은 사람은, 예수님 주변에 머물던 사람들이 아니라 주님을 만진 혈루증 걸린 여인, 한 사람뿐이었다.
만져야, 역사가 일어난다.
주님과 충돌해야, 나는 죽고 그분이 사시게 된다.
생각하거나, 지식만으로 안 된다.
임재가 중요하다.
기독교는, 명상의 종교나 수양의 종교가 아니라,
임재의 종교이다.
하나님과의 충돌, 성령님의 실재, 보혈의 마심은,
실로, 엄청난 일을 경험하게 한다.
펑펑 울게 하고, 차디 차게 굳은 심장은 펄펄 뛰게 하고, 세포들이 춤을 추게하고, 가라앉던 엔돌핀들을 솟아나게 하고, 우울하던 가슴은 시원하게 하고 하나님의 하자만 들어도, 기절하게 한다.
이것이 주님과 1:1의 충돌이다
어느 누가 비행기 조종에 대한 지식을 쌓았다고, 운전 지식을 쌓았다고,옹기 도자기 만드는기술을 획득했다고
조종에 대한 의욕과 열정이 있다고, 운전에 불타고 있다고,도자기가 눈에 영상으로 박혔다고 비행기를 자동차를 실제로 조종 할 수 있겠는가? 명품 도자기를 단번에 만들 수 있겠는가?
그렇다. 신앙생활도 다르지 않다. 말씀을 아는 것과, 말씀을 잘 배운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말씀이 몸에 배어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능력에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한국교회는 너무 많이 배우기만 하고 경험이 없어서 교만자가 많은 듯 하다
이러므로 하나님의 사람은, 연구소나 도서관에서 배출되는 것이 아니라 실험실과 훈련장에서 양성되어지는 것이다.
바울의 믿음은 유라굴로 광풍속에서 증명되었다.
욥의 믿음도 혹독하고 처절한 잿더미에서 빛을 발했다.
다니엘의 믿음은 포로생활 속에서도 굴하지 않음으로, 하나님을 감동시킬 수 있었다.
촛불의 밝기는, 어두울 때 증명된다. 이제 우리의 신앙을, 유라굴로 광풍가운데서 증명해야 한다. 우리는, 말씀연구소 직원이 아니다. 성경도서관, 사서가 아니다. 우리는 강한 용사이며, 필요하다면, 주와 복음을 위하여 죽어야 하는 제자들이다.
신앙은 지식이 아니라, 실재이다. 인공위성은 지구 주위를 돌며, 갖가지 촬영을 하여 온갖 정보를 보내온다. 그러나 인공위성은, 한번도 지구와 충돌 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요즈음, 은혜와 영의 세계 주위를, 열심히 돌기만 하는 성도들이 늘고 있어 속상하다. 실제로, 주님과 충돌은 거의 없다. 영의 실재와도 무관하다. 그냥 어제 믿던대로, 어제 하던 대로 기도하고. 지난날 가던 대로 교회 가고, 작년같이 사역하고, 설교하고, 선교하고, 찬양하고, 봉사하는 것이다.
문제는 충돌의 경험이다. 주님과의 만남이다.
보혜사 성령님의 실제적인 내주하심이다.
의학지식이나 비행조종에 관한 지식이, 전문가 수준이라 해도
실제로 수술의 경험이나, 비행의 경험이 없다면 아무 소용 없다.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이 중요하고, 보혈의 능력을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보혈을 한 방울이라도 마시는 경험이 중요하다.
배고플 때 밥에 대하여, 배우고 생각하는 것은, 굶주림에 아무 도움이 안 된다. 밥을 먹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임재가 있어야 한다. 하나님과, 거룩한 충돌이 있어야 한다.
큰 다라에 물이 가득 있어도, 먹물 한 방울만 떨어 뜨리면 온통 시커먼 물로 순식간에 변한다. 그렇다. 주님의 살아있는 보혈 한 방울이면 되고, 주님의 사랑 한 컵을 마심으로 족하다. 변한다 바뀌어 진다 뜨거워진다 삶이 풍성해 진다 하나님의 나라가 꽃피게 된다
그러면 순식간에 우리의 마음이 밝아지고, 편해지고, 쉼을 얻게 되고 안식에 들어가는 체험을 경험하게 된다. 신앙은 관념이 아닌 경험을 통해, 몸에 배어야 삶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제자는 지식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훈련으로 만들어 지는 것이다.
성령에 대한 지식만으로는. 아무 것도 달라질 수 없다.
성령의 임재가 몸에 배고 날마다 성령님의 임재와 충돌이 일어나야 한다. 그러면, 이대로 죽어도 좋은 경지까지 이르게 된다.
풍랑속에서도 평안하고, 잃을 것도 없는 궁핍과 허리가 꺽이는 고통 가운데서도 얼마든지 자족할 수 있다.
“잘 생긴 소나무 한 그루는 매서운 겨울 내내
은은한 솔 향기를 천리 밖까지 내쏘아 주거늘
잘 익은 이 세상의 사람 하나는
무릎 꿇고 그 향기를 하늘에 받았다가
꽃피고 비오는 날
뼛속까지 마음 시린 이들에게 골고루 나눠주고 있나니”
무릎 꿇고 향기를 받았다가 뼛속까지 마음 시린 이들에게 골고루 나눠주는 잘 익은 사람 하나. 세상이 어지럽고 험악 할 수록 마음 깊은 곳 향기를 지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리워집니다
주님과 1:1의 충돌이 말입니다